겹말 손질 347 : 저녁 석양



수업만 마치면 저녁 석양이 질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연습했다

《김수박-빨간 풍선》(수다,2012) 73쪽


 저녁 석양이 질 때까지

→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 저녁이 될 때까지

→ 저녁빛이 저물 때까지

→ 저녁해가 질 때까지

 …



  한자말 ‘석양(夕陽)’은 “저녁때의 햇빛. 또는 저녁때의 저무는 해”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녁 석양”이라고 적으면 겹말입니다. “저녁 저녁빛”이나 “저녁 저녁해”가 될 테니까요.


  사람들이 ‘저녁빛’이나 ‘저녁해’라는 낱말을 널리 쓴다면 이 같은 겹말이 나타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에는 한국말 ‘저녁빛’이나 ‘저녁해’가 안 실립니다. 한자말 ‘석양’만 나오지요. 그래도 ‘저녁노을’이라는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있어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녁뿐 아니라 아침을 헤아릴 적에도 ‘아침빛·아침해’ 같은 낱말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낮빛·낮해’ 같은 낱말을 쓸 수도 있어야 합니다. 햇빛은 아침과 낮과 저녁에 따라 다르니, 이렇게 다르게 적어야 때와 결에 맞게 한국말을 알맞게 살찌울 수 있고, 우리 느낌도 제대로 살릴 만합니다.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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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풍선
김수박 지음 / 수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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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3



외로우면 술을 마시지 마

― 빨간 풍선

 김수박 글·그림

 수다 펴냄, 2012.3.12.



  손수 흙을 일구어 씨앗을 심어서 거두는 이들은 밥을 아무렇게나 먹지 않습니다. 해마다 볍씨를 알뜰히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즐겁게 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이들은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언제나 마음 가득 비손하면서 수저를 듭니다. 땅이 하늘이고 하늘이 하늘이며 내 손길이 하늘입니다.


  손수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열매를 얻는 이들은 철마다 나는 열매를 고맙게 얻습니다. 겨울에 딸기를 바라지 않고, 봄에 배나 능금을 바라지 않습니다. 제철에 제철 열매를 먹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삶을 가꾸고 지으면서 사랑스레 일굽니다.


  손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를 사랑으로 돌봅니다. 아이를 학교에 섣불리 보낼 일이 없어요. 아이한테는 교과서 지식이 아닌 삶을 가르쳐야 하니, 굳이 학교에 보내야 하지 않아요. 아이가 교과서 지식을 얻어야 하더라도, 맨 먼저 삶을 알고 사랑을 깨달으며 꿈을 꾸어야 하니, 아이를 손수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나눌 숨결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물려줍니다.



- ‘변기만 뚫리면 행복할 것 같다. 이상하지. 평소엔 당연한 줄로만 알다가.’ (15쪽)




  먼먼 옛날부터 어느 겨레에서나 어느 마을에서나 밥 한 그릇은 온누리였습니다. 온삶을 담은 밥이고, 온넋을 실은 밥이며, 온꿈을 넣은 밥입니다. 왜냐하면, 밥 한 그릇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던 겨레는 없어요. 밥 한 그릇을 남이 지어서 차려서 대주는 일이란 없어요. 늘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었으니, 밥 한 그릇은 언제나 온누리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밥뿐 아니라 술도 온누리였습니다. 술을 아무 데에서나 마구 팔지 않았어요. 팔 일조차 없어요. 먹을 만큼 밥을 지어서 먹듯이, 마실 만큼 술을 빚어서 마셨습니다. 밥이 되는 곡식을 알뜰히 여겨 고맙게 먹고 즐겁게 하루를 누리듯이, 술이 되는 곡식을 살뜰히 돌보아 반갑게 먹고 기쁘게 하루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밥이나 술이 온누리가 아닙니다. 하늘도 아닙니다. 밥 한 그릇에서 사랑을 느끼거나 술 한 잔에서 꿈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주 많이 줄었습니다. 어디에서나 값싸게 사고파는 밥이나 술이 되었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알맞게 즐기는 밥이나 술이 아닌,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퍼넣다가 게우는 밥이나 술이 됩니다.



- “지난날이 행복이었고, 현재를 고통이라고 판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성 시스템의 오류에서 비롯된 거야. 인간은 이미 창조주에 의해 탄생되었고, 이미 너무 오랫동안 자기복제를 했어. 남은 육체의 기간 동안 근본적 오류를 가진 이성을 어떻게 할지는 자네의 몫이네!” (40쪽)

- “살아가는 일 그대로가 축복이었다! 앞만 보고 가! 어제는 끝났어!” (44∼45쪽)






  김수박 님 만화책 《빨간 풍선》(수다,2012)을 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끝없이 나옵니다. 삶에 지치는 사람이 아닌 돈에 지치는 사람이 가없이 나옵니다. 사랑이 아닌 살곶이에 얽매이는 사람이 줄줄이 나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때에 삶을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침과 낮과 저녁에 세 끼니를 챙겨서 먹으면 삶일까요. 번듯하다는 회사에 이름을 내밀어 쏠쏠하다는 숫자를 통장에 찍어야 삶일까요. 내 아파트가 있거나 내 자가용이 있으면 삶일까요. 시집이나 장가를 예식장에서 치른 뒤 아이를 몇쯤 낳아서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보내면 삶일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돈을 벌려고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나요. 학교에 다니고 성적표를 받으며 동무를 밟고 올라서서 대학교에 붙으려고 태어났나요.



- ‘도시는 더 차갑게 느껴졌어. 따뜻한 곳을 찾아 헤매었지. 둘만 있고 싶었어. 둘만 있을 곳이 없었어. 도시가 야속했어.’ (61쪽)

- ‘5학년 때 나는 성자와 같은 반이 아니었다. 나는 키가 뻘쭘해서 운동회에서 달리기 계주 선수로 뽑혔다. 수업만 마치면 저녁 석양이 질 때까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연습했다. 성자는 처마 그늘 밑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웃곤 했다. 그러나 우린 구태여 아는 체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반이면 아는 체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73쪽)





  삶이 차갑구나 싶으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똑같이 차갑습니다. 삶이 따스하구나 싶으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늘 따스합니다. 삶은 스스로 짓습니다. 남이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삶은 스스로 가꿉니다. 남이 선물하거나 베풀 수 없습니다.


  내가 손수 수저를 들어 내 입으로 밥을 넣은 뒤, 내 몸에서 밥을 삭혀야 기운을 얻어 목숨을 건사합니다. 남이 먹어 주는 밥이란 없습니다. 남이 마셔 주는 술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스스로 합니다. 즐거움도 스스로 짓고, 슬픔도 스스로 짓습니다. 웃음도 스스로 지으며, 눈물도 스스로 짓습니다.



- ‘난 그 애를 거의 1년 만에 만난 셈이었습니다. 그동안의 과거는 서로에게 무의미했어요 .우리는 공유할 미래가 없었으므로, 난, 난 외로울 땐 그 애를 불렀습니다. 그 애가 나를 부르는 법은 없었죠. 맞아요.’ (86쪽)



  외로우면 술을 마시지 마셔요. 외로움을 바라보셔요. 즐거우면 술을 마시지 마셔요. 즐거움을 바라보셔요. 외로움이 무엇이고 즐거움이 무엇인지 똑똑히 바라보셔요. 빛을 똑똑히 바라본 다음, 이 빛을 또렷하게 알아챌 수 있을 때에 생각을 기울여요. 생각을 기울여서 삶을 하나하나 짚어요. 이제껏 걸어온 길을 짚고, 오늘 선 곳을 짚으며, 내가 나아갈 곳을 짚어요.


  술을 마시려면, 모든 생각을 마친 뒤에 마셔요. 동무를 불러 즐겁게 술잔을 부딪히려면, 먼저 모든 생각을 다 지어요. 나한테 삶이 있어야 내 이웃한테도 삶이 있어요. 나한테 생각이 있어야 내 동무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나한테 사랑이 있어야 내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 수 있어요.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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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 태어난다. 슬그머니 시집 한 권 태어난다. 시를 쓴다. 슬그머니 시를 쓴다. 그러나, 알아챌 사람은 일찌감치 알아채고, 아는 사람은 다 알면서 조용히 지켜본다. 내 삶을 이루는 힘은 어디에서 솟을까. 나는 내 삶을 어떤 길로 나아가도록 가꾸는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시를 쓰는가. 시를 머릿속으로 지은 생각만으로 쓸 수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부딪히거나 마주하는 삶이 있을 때에 쓸 수 있는가. 그런데, 삶이 있더라도 모든 사람이 시를 쓰지는 않는다. 날마다 살고 또 살지만 모든 사람이 시를 읽지는 않는다. 삶이 있더라도 저마다 내 삶이 어떤 이야기인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에 깃든 이야기를 읽고, 이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려는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시를 한 줄 쓰고, 시나브로 시집 하나 태어날 수 있다.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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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8) -의 : 남부의 목화 농장


해리슨 할아버지는 남부의 목화 농장은 아주 더운 곳이니 우리가 남쪽으로 가고 있다면 기차 안이 점점 더워져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셸리 피어설/홍한별 옮김-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양철북,2012) 269쪽


 남부의 목화 농장

→ 남부 목화 농장

→ 남부에 있는 목화농장

→ 남부 목화밭

→ 남부에 있는 목화밭

 …



  서울에 있는 골목길은 “서울에 있는 골목길”이나 “서울 골목길”입니다. 부산에 있는 바다는 “부산에 있는 바다”나 “부산 바다”입니다. 오대산에 있는 숲은 “오대산에 있는 숲”이나 “오대산 숲”입니다.


  남녘에 있는 목화밭이라면 어떻게 가리키면 될까요? “남녘 목화밭”이라 하면 됩니다. “남녘에 있는 목화밭”이나 “남녘에 가득한 목화밭”이나 “남녘에 많이 있는 목화밭”이라 할 수도 있어요. 4347.8.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해리슨 할아버지는 남녘 목화밭은 아주 더운 곳이니 우리가 남쪽으로 간다면 기차가 차츰 더워져 알 수 있다고 했다


“가고 있다면”은 “간다면”으로 손보고, “기차 안이”는 “기차가”나 “기찻간이”로 손봅니다. ‘점점(漸漸)’은 ‘차츰’이나 ‘조금씩’으로 손질하고, “알 수 있을 거라고”는 “알 수 있다고”로 손질합니다. “목화 농장(農場)”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목화밭”으로 고쳐써도 됩니다. ‘남부(南部)’도 그대로 둘 만하면서 ‘남쪽’이나 ‘남녘’으로 고쳐쓸 수 있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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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88) 안 5


숲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를 찾을 게 틀림없었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릴리 할머니를 불러 우리를 구해 달라고 해야 했다

《셸리 피어설/홍한별 옮김-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양철북,2012) 47쪽


 숲 안으로 들어오면

→ 숲으로 들어오면

→ 숲 속으로 들어오면

 …



  둘러싸인 곳에서 가운데를 바라보는 쪽을 두고 ‘안’이라고도 합니다. ‘속’도 이와 거의 비슷하게 쓰는 낱말입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건물 안(에 있다)”이나 “극장 안에 들어가다”나 “지갑 안에서 돈을 꺼내다”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나 “옷장 안에 넣어라”나 “공원 안에서는 취사를 금합니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 보기글은 모두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이라는 낱말은 이렇게 안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네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라든지 “바닷속에는 물고기가 살아요.”처럼 ‘속’을 쓰곤 합니다. 그리고, ‘네 머리에는 무엇이 들었을까?’라든지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아요.’처럼 ‘속’이 없이 쓰기도 해요. 둘러싸인 곳에서 가운데를 바라보는 쪽을 가리킬 적에 한국말로는 ‘속’을 쓰지만, 이 낱말조차 안 쓰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 말투입니다. ‘마음·마음속’이라든지 ‘가슴·가슴속’도 이와 같은 얼거리입니다.


 저 건물 안에 있다 → 저 건물에 있다

 극장 안에 들어가다 → 극장에 들어가다

 지갑 안에서 돈을 꺼내다 →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 식당으로 들어가니

 옷장 안에 넣어라 → 옷장에 넣어라

 공원 안에서는 취사를 금합니다 → 공원에서는 밥을 못 짓습니다



  아마 영어 말투를 잘못 받아들여 이렇게 ‘안’을 아무 데나 넣는구나 싶고, 한국말사전까지 올바르지 않다 싶은 보기글을 실었지 싶습니다.


  “너는 이 집에서 사니?” 하고 말하지 “너는 이 집 안에서 사니?”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방에서 자요.” 하고 말하지 “우리는 이 방 안에서 자요.”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랍에서 공책을 꺼낸다.”처럼 말하지 “서랍 안에서 공책을 꺼낸다.”처럼 말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한국말사전에 낱말 쓰임새를 제대로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된 쓰임새를 넣었으니,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라든지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사람도 엉뚱하거나 잘못된 말투를 자꾸 쓸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생각해야 합니다. 잘못된 사전이나 교재에 기대지 말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부터 한국말을 어떻게 썼는지 생각하고, 우리가 알맞고 바르며 아름답게 쓰던 말투와 낱말을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4347.8.31.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숲으로 들어오면 우리를 틀림없이 찾겠지. 더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릴리 할머니를 불러 우리를 살려 달라고 해야 했다


“찾을 게 틀리없었다”는 “틀림없이 찾는다”나 “틀림없이 찾을 테지”로 손질합니다. ‘문제(問題)’는 ‘말썽’으로 다듬고, “구(救)해 달라고”는 “살려 달라고”나 “도와 달라고”로 다듬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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