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민들레
윤주영 / 호영출판사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촉촉한 가슴에서 저절로 샘솟는 고운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3] 윤주영, 《동토의 민들레》(호영,1993)


 잘 찍는 사진, 또는 잘 찍은 사진하고는 동떨어졌을 뿐더러, 훌륭한 사진이나 놀라운 사진이나 대단한 사진이나 좋은 사진하고도 멀거니 떨어진 윤주영 님 사진을 읽습니다. 1928년에 태어나 여태껏 사진기를 힘차게 쥐는 당신은 1928년에 태어나 이제껏 사진기를 당차게 쥐는 최민식 님하고 동갑내기입니다. 윤주영 님은 당신이 예순다섯이던 1993년에 내놓은 사진책 《동토의 민들레》에서 “사실 내가 2∼3년만 일찍 태어나 국민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농사일이나 거들고 있었다면 나도 영락없이 이곳에 끌려와 그들이 살아온 세월처럼 형용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을지도 모를 일(126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윤주영 님이 러시아에서 쭈그렁 할아버지로 지내는 가운데 최민식 님이 러시아로 사진 취재를 떠나 만나는 사이가 되었을 수 있어요. 그러나저러나, 얼어붙은 땅 러시아 사할린에서 겪는 한겨레붙이 아픔과 슬픔이란 ‘강제이주’ 하나뿐 아니라 ‘강제이주에 재이주에 재재이주’까지 덧달립니다. 이루 말로 담아내기 힘들고, 이루 사진으로 실어내기 벅찬 눈물입니다.

 그러나 이 얼어붙었다는 땅에서도 한겨레붙이는 서로 믿고 기대어 사랑을 나눕니다. 다 함께 손잡고 어깨동무하며 따순 품을 나눕니다. 끔찍한 나날을 겪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운데에는 ‘러시아 녀석하고 내 손주가 시집장가 가는 꼴을 못 본다’고 외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한겨레붙이하고 똑같이 한겨레붙이라 할 만한 남녘땅 한겨레붙이는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러시아사람하고 맞대 놓을 때에 얼마나 한겨레붙이답다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재일조선인 소설쟁이 유미리 님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 아무개가 다니는 대학교에 놀러갔을 때 이야기를 당신 수필책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2000)에 적바림합니다. 당신을 “유입니다.” 하고 말했더니 한국사람이냐고 묻기에 한국사람이라 하니까, 한국사람치고 일본말을 참 잘한다고 하기에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그렇다 했는데, 한국 유학생은 “그럼 일본사람이잖아요?” 하고 물었고, 유미리 님은 “아니, 그러니까 재일한국인 2세인데요.” 하고 대꾸했는데, 막상 돌아온 말이란 “그게 무슨 소리죠?”였다고 적바림합니다.

 윤주영 님은 다큐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인물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사진이나 상업사진을 찍지도 않습니다. 이른바 프로사진이 아닌 윤주영 님 사진이라 할 텐데, 윤주영 님은 당신이 좋아하는 결대로 다리품을 팔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런 이름도 어울리지 않고 저런 갈래도 걸맞지 않습니다. 그예 사람들 살아가는 품새를 다루고, 그저 사람들 복닥이는 매무새를 들여다봅니다.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저마다 아는 만큼’ 찍는다 여길 수 있습니다만, 저마다 아는 만큼 사진을 찍는 일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람과 삶터를 바라보고, 저마다 살아가는 만큼 사진기를 장만해서 단추를 눌러 사진 하나 일굽니다.

 이리하여, 윤주영 님 사진하고 견주면 솜씨 빼어나거나 틀이 괜찮거나 생각이 좀 깊거나 한달지라도 윤주영 님 사진만큼 이야기가 넉넉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윤주영 님처럼 살아내지 못하면서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섣불리 붙인다든지, 윤주영 님처럼 다리품과 손품을 팔지 않으면서 사진쟁이라는 허울을 우쭐거리면서 쓴다든지 한다면, 보잘것없는 사진 작품만 잔뜩 쏟아냅니다. 가만히 보면, 스스로 ‘다큐’라 이름 붙일 때에는 다큐사진이 아니고, 제 입으로 ‘인물’이라 이름 달면 인물사진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문화이고 예술이고조차 아닌 겉멋이나 겉치레에 머물고 맙니다.

 윤주영 님만큼이라도 다리품을 팔거나 손품을 들이면서 사진길을 걷는다면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얼마나 크게 발돋움할까요. 돈이 있고 겨를이 많아 윤주영 님이 이렇게 다리품과 손품을 팔았겠습니까. 나한테 돈이 아주 많거나 겨를이 참말 넉넉하다면 윤주영 님은 저리 가라 하도록 멋진 사진을 내놓을 수 있는가요.

 사진책 《동토의 민들레》를 들여다보면, 윤주영 님이 사할린 한겨레붙이를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결 살가이 보듬지 못했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윤주영 님 스스로 밝히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 사진집을 통해 사할린 교포들의 삶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한 욕심이었던 듯싶다. 그들이 50년 동안 겪고 살아온 그 엄청난 수난의 세월을 짧은 시간에 담아내는 데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127쪽/윤주영).”는 말이 아니더라도 몇 차례 사진여행을 떠나 수십 또는 수백 통 필름을 썼달지라도 ‘러시아 사할린땅 한겨레붙이’ 삶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작 한 차례 나들이를 했으면서도 얼마든지 러시아 사할린땅 한겨레붙이 삶을 알뜰살뜰 여밀 수 있어요. 윤주영 님은 아직 이 대목을 깨닫지 못하시는데, ‘미리 촬영 대상을 공부하고 살피거나 알아본다’고 하든 ‘사람들하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담는다’고 하든 이야기사진이나 다큐사진 하나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우리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삶을 곰삭이며 내 깜냥과 주제와 그릇에 걸맞게 내 삶을 사진 하나에 실어내려고 할 때에 이야기 한 자락을 사진 하나에 살포시 얹으며 삶꽃 어여삐 일굽니다.

 잘 찍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깊거나 놀랍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곧거나 옳은 목소리를 외칠 까닭이란 없습니다. 멋지거나 그윽한 그림을 보여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이지 ‘글’도 ‘그림’도 아닙니다. 사진을 글인 듯 여기면서 줄줄줄 꼬리말을 달아 놓는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을 그림처럼 받아들이면서 그럴싸한 모습을 달달달 늘어 놓는다면 덧없습니다.

 더 많은 필름이나 더 좋은 장비나 더 기나긴 겨를로는 사진을 이루지 못합니다. 더 너른 사랑과 더 따순 믿음과 더 깊은 마음으로 사진을 이룹니다. 내 삶부터 따뜻하게 여미어 주셔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셔 주셔요. 내 눈망울을 맑게 빛내어 주셔요. 사진은 저절로 우러납니다. (4343.12.1.달.ㅎㄲㅅㄱ)


―  (윤주영 사진,호영 펴냄,1993.3.20./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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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5] 쪽지가 왔습니다

 손전화로 쪽지가 왔을 때에는 언제나 “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라는 소리가 울립니다. 손전화로 전화가 온다든지 단추를 누른다든지 할 때에 노래나 소리를 따로 담을 수 있다지만, 쪽지가 왔을 때에는 어쩌는 수 없이 손전화에 딸린 소리가 나도록 할밖에 없습니다. 한자말 ‘도착’을 영어로 하면 뭐가 되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그나마 ‘메세지’ 아닌 ‘문자’라 해 주어도 좋겠으나, 이마저 바라기는 참 어렵습니다. ‘쪽지’ 아닌 ‘쪽글’까지 바라지조차 못합니다. 고작 “쪽지가 왔습니다”라는 말소리 하나라도 좋으니, 제발 손전화에 살가운 말마디를 담아 준다면, 인터넷도 하고 텔레비전도 하며 영화를 보는 한편 뭣도 하고 뭣도 한다는 손전화 귀퉁이에 쪽글 알림말을 알뜰살뜰 여미어 마련해 놓는다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할매 할배이며 어머니 아버지이며 차츰 눈이 가물어 가는 분들이 보기 좋도록 큰 글월판 손전화를 내놓기도 하는데, 아주 어린 아이들도 함께 쓰는 손전화라 한다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두루 곱고 바르며 사랑스러운 말과 글을 들으며 전화기를 쓸 수 있게끔 마음을 기울이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4343.8.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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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7] 씨앗콩

 올 칠월에 멧기슭에 깃든 시골집으로 들어오면서 늦깎이 텃밭 일구기를 했습니다. 칠월에야 씨앗을 심어 무엇을 언제 거두느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조그마한 옥수수랑 아욱이랑 갓이랑 무랑 요모조모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콩을 거두는데, 조금 더 일찍 따야 했으나 이래저래 다른 일 때문에 젖히거나 잊은 채 지냈습니다. 거름 한 번 제대로 내지 않고 텃밭을 일구었으니 참말 엉터리 텃밭농사였습니다. 그러나 땅이랑 햇볕이랑 비랑 바람은 이 어처구니없는 사람들 엉망진창 텃밭에도 고운 손길을 내밀어 콩알이 제법 열렸고, 이듬해 다시 심을 씨앗콩을 어느 만큼 갈무리하도록 선물을 베풉니다. 콩밥을 한다면 고작 두어 끼니 먹으면 그만인 콩알이지만, 씨앗콩으로 삼는다면 텃밭 두어 고랑쯤 알뜰히 심을 만큼 됩니다. 얼마 안 되는 콩이기에 다른 농삿집처럼 콩줄기를 뽑아 마당에 죽 펼쳐 놓고 도리깨로 두들겨 콩알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냥 밭도랑에 쪼그려앉아 콩꼬투리를 하나하나 따서 두 손으로 톡톡 열어 한 알 두 알 꺼냅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혼자서 다 하다가는, 아빠 곁에 나란히 쪼그려앉은 아이한테 ‘아빠가 벌려 놓은 꼬투리’에서 알 꺼내는 몫을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이는 스물여덟 달에 첫 씨콩 갈무리를 함께합니다.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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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쥐는 마음


 책을 아끼는 마음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곧 책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책을 돌보는 마음은 사람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돌보는 마음은 곧바로 책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비로소 책을 아끼는 마음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을 돌보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새책방을 다닐 때에는 그때그때 잘 팔리는 책이라든지 눈에 뜨이는 책이라든지 읽을 만한 책이라든지 찾을 뿐이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사서 읽든 눈에 뜨이는 책을 장만하여 읽든 읽을 만한 책을 살펴 읽든 하나도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입니다. 책을 읽고 그치는 책읽기요 또다른 책읽기로 뻗는 책읽기입니다.

 나는 책읽기만 되풀이하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즐겼지만 또다른 책읽기로 뻗기만 하는 책읽기는 즐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 줄이 가슴에 와닿으면 이 한 줄 때문에 책을 샀고, 책을 읽다가 마지막 줄에 이르러 뒤통수를 쿵 내려치듯 엉터리 모습을 본다면 이 아까운 책을 아깝다 여기지 않고 내다 버렸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말을 하는 책이어야 읽을 만하다 여겼지만, 참말만 있고 참삶이 없다면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참말만 가득하고 참삶은 한 가지조차 없다면, 제아무리 참말이 훌륭하거나 거룩하달지라도 못마땅합니다.

 나 스스로 참삶을 일구며 길어올린 참말일 때 가장 반갑고 즐겁습니다. 나부터 참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가운데 얻은 참말일 때 가장 고맙고 벅찹니다.

 책을 쥘 겨를이 없이 아이하고 부대낍니다. 아이가 낮잠 없이 늦게까지 안 자려고 버둥거리다가는 이듬날 아침이나 새벽에 아주 일찍 깨어나면 그지없이 죽을맛입니다. 아이 아빠는 하루 내내 아이한테 시달리면서 몸이 지쳤는데, 그나마 아침나절에 글조각 좀 붙든다든지 책귀퉁이 집어들 무렵부터 또다시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틀림없이 나 또한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힘들도록 했을 테니까요. 나는 내 아주 어린 나날은 떠올리지 못하는데, 나도 내 아이처럼 아침잠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에 으레 새벽 여섯 시나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또는 아버지 뒤에 아침을 먹고 나서 일찌감치 학교길에 올랐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조금 늦게 갔으나 2학년 즈음부터는 학교에 닿은 때가 으레 아침 일곱 시 안팎이었습니다. 학교 지킴이 아저씨조차 아직 나오지 않은 때, 학교문이 잠겨 있어 으레 담을 타고 학교로 들어와서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하루를 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며 어머니가 하루일을 열기 번거롭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글조각 하나 건사하지 못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이맛살을 가만히 문지릅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아이를 무릎에 눕히다가는 아이 사진을 몇 장 찍다가는, 그래 이렇게 일찍 깨어났으니 일찍부터 배고프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아침을 차려 주어야겠습니다. 어제도 못 쓰고 오늘도 못 쓰는 글은? 글쎄,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요. 아이가 아침을 참말 일찍 먹고 나서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인형하고 놀아 주면서 제 아빠가 일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때에는 쓸는지 모르지요.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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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나기 무네요시 다시읽기


 여러 해 만에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을 다시 읽는다. 이번에는 《조선을 생각한다》(학고재,1996)를 다시 읽기로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 넋을 가장 잘 간추렸다고 하는 책이지만, 정작 이 책은 출판사에서 더 찍지 않는다. 더 안 팔리니까 더 찍기 어려울 테지.

 지난 2007년에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지식산업사,2007)이라는 책이 나온 적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을 찬찬히 읽으려 하지 않고 ‘죽은 자료’를 들추어 내는 한편 ‘집안 발자국’을 살피기까지 하는 책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이런 책은 굳이 읽고프지 않다. 내가 옳게 살아가며 옳게 바라본다면,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책을 읽으면서 얼마든지 이이 삶과 넋과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바른지 그른지 착한지 궂은지 고운지 미운지를 깨닫는다. 나 스스로 옳게 살아가지 않거나 옳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따끔하거나 찬찬하다 싶은 비평이든 논설이든 비판을 읽는달지라도 제대로 삭이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가 읽을 글이란 ‘어느 한 사람이 온마음을 쏟아 내놓은 첫마음’ 담은 글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한 사람이 쓴 모든 글을 두루 읽을 수 있는 가운데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 같은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다면 더 널리 헤아리거나 돌아볼 수 있기도 하겠지. 그러나, 정작 《조선을 생각한다》라든지 《공예문화》라든지 《다도와 일본의 미》 같은 책을 찾아볼 수 없다면 우리로서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살피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아쉽다면 《조선을 생각한다》는 더 찾아 읽을 수 없으나 《다도와 일본의 미》(1996)는 아직 찾아 읽을 수 있다. 《미의 법문》(2005)이나 《수집 이야기》(2008)도 찾아 읽을 수 있다. 《조선과 그 예술》(2006)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온 책도 하나 있다. 2006년에 신구문화사에서 다시 찍은 《조선과 그 예술》이 앞으로 언제까지 새책방 책시렁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우리 삶과 문화와 발자취를 곰곰이 되새기고자 마음쓰는 이라면 헌책방마실을 꾸준히 하면서 야나기 무네요시 님 예전 책이든 다른 좋은 책이든 넉넉히 찾아서 읽으리라 본다. 내가 읽을 책은 ‘산 야나기’이지 ‘죽은 야나기’가 아니니까.

 《조선을 생각한다》는 2000년에 읽었으니 열 해 만에 다시 펼친다. 열 해 뒤에 책을 다시 펼치니 가슴으로 새롭게 와닿는 대목이 있다. 아니, 열 해에 걸쳐 내 삶은 굵든 짧든 구비구비 헤치며 흘렀으니, 이만큼 새롭게 볼 눈길을 길렀다 할 만하리라. 이를테면, “조선에 대해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이 조금도 현명하지 않고 깊이도 없고 또한 따뜻함도 없다는 것을 알고(14쪽)” 같은 대목을 새롭게 읽는다. 나로서는 이 글월에서 “따뜻함도 없다”라는 대목이 눈에 걸린다. 잇달아, “이웃과의 사귐은 오직 사랑이 맺어 주는 것이다. 군정이나 압박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15쪽)”를 읽으며 가만히 되짚는다. 참말 사랑 아니고 무엇을 하겠는가. 참말 따뜻함 없이 무슨 일을 하거나 무슨 글을 쓰겠는가. 따뜻한 사랑을 담아 쓰는 글이 아니라면 나부터 이런 글을 되읽기 싫다. 내가 쓴 내 글을 나부터 기쁘게 되읽을 만해야 내 글을 사람들 앞에 내놓는다. 아니, 나는 내가 쓴 글을 나 스스로 한 해 뒤이든 열 해 뒤이든 되읽으며 내 삶을 일구고 싶지, 누구한테 내보이거나 선보일 생각으로 글조각만 붙잡을 마음이 없다. 내가 쓰고픈 글은 따뜻한 사랑을 담는 글이요, 내가 읽고픈 책은 따뜻한 사랑을 담은 책이다.

 “고분을 파헤쳐 옛 예술품을 모은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조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15쪽)” 같은 대목을 차분히 곱씹는다. 이는 지식인을 이르는 대목이다. 지식인들은 수많은 책을 읽어 지식을 쌓지만, 이 지식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 줄을 헤아리지 않기 일쑤이다. 수많은 논문이 있고 또다른 책이 쏟아지지만, 정작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수수한 삶에는 눈길을 안 두기 일쑤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을 사진으로 담는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쟁이는 가난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들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나. 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 환경운동을 말하면서 내 몸 깊이, 아니 내 삶으로 환경사랑 자연사랑을 잇는 일꾼은 얼마나 있다 할 만한가. 지식과 구호와 논문과 논설로 4대강사업하고 다부지게 맞선다 하는 분들은, 당신 삶을 얼마나 ‘4대강사업을 몰아낼 만한 눈높이’로 가꾼다 할는지 궁금하다. 목소리만 내어서는 아무 일을 하지 못한다. 목소리는 내지 않더라도 몸으로 살아내고 마음으로 삭일 수 있어야 한다. 농사짓는 사람들 마음이 되어야 하고, 아이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 마음이 되어야 하며, 아이를 품에 안고 살가이 보듬는 어버이 마음이 되어야 한다.

 “승리하는 것은 그들의 아름다움이지 우리의 칼이 아니다(17쪽)”나 “칼의 힘은 결코 현명한 힘을 낳지 않는다(18쪽)” 같은 대목은 잘 읽어야 한다. 뭐랄까, 제대로 읽어야지. 야나기 무네요시 님은 일본 군벌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일만 놓고 슬퍼 하거나 아파 하지 않는다. 불쌍한 사람은 식민지 조선사람뿐 아니라 총칼을 앞세운 일본 군인과 권력자이기까지 하다. 아니, 식민지 조선사람보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 군인과 권력자가 훨씬 불쌍하다. 얼마나 덧없고 부질없으며 값없는 삶을 보내는 군인과 권력자인가. “사람들은 일본의 사상을 심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살리려고는 하지 않았다(20쪽)”고 하듯, 일본 권력자와 한국 권력자는 일제강점기에 더 큰 잇속을 챙기려 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참으로 크나큰 잇속을 챙긴 두 나라 권력자이다. 일본 권력자만 잇속을 챙기지 않는다. 한국에도 똑같은 권력자가 있다. 그런데, 이런 권력자가 있든 저런 권력자가 있든 밑바닥에서 짓눌리는 사람들은 내 삶을 버리지 않는다. 지식인들은 갖은 일본말과 중국말과 미국말을 주워섬기는데, 이 나라에서 이 나라 말과 글을 지키거나 건사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바로 여느 사람, 수수한 사람, 가난한 사람, 지식 없는 사람 들이다. 이 나라 지식인들은 아직까지도 ‘일본 제국주의 물이 짙게 밴 일본 한자말과 일본 말투’를 아무렇지 않게 쓴다. 게다가, 당신들 지식인 스스로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에 젖어들어 있는 줄 못 깨닫기까지 한다. 일제강점기를 꾸짖으면서 정작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자들 말투와 낱말로 이야기를 한다면, 이 얼마나 슬프고 딱한 노릇인가.

 지식에 앞서 삶이고, 지식이 아닌 사랑이어야 한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을 꾸준히 읽고 되읽어 왔다. 내가 읽는 야나기 무네요시 님은 중국사람 노신 님하고 한동아리이다. 연변땅 김학철 님하고도 한동아리이다. 남녘땅 리영희 님이라든지 일본땅 오다 마코토 님하고도 한짝이라고 느낀다. 남녘에서는 일찍이 1976년에 송건호 님이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을 《한민족과 그 예술》(탐구당)이라는 이름으로 옮긴 적이 있다. 이때 옮긴이 말에 송건호 님은 “일본에는 아직도 옛날의 식민주의적 잔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재진출을 꾀하는 층이 있음에 비추어, 그들에게 저자세로 영합하는 친일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한편 일본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 나라의 참된 우호를 위해서는 실로 우리 민족을 이해하고 협조를 아끼지 않는 양심적 인사들이 많다는 점에서, 일본을 무조건 증오하고 배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본의 대한 태도에 있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환영하고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분명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적었다. 일본에서 살아가며 옳은 삶 옳은 넋 옳은 말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있는 한편, 한국에서 살아가며 슬픈 삶 그릇된 넋 못난 말로 미움을 쏟아붓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식민지 조선 무렵 일본사람’ 야나기 무네요시가 아니라 ‘참삶을 사랑하고 아낀’ 야나기 무네요시를 읽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금전이나 정치로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맞닿을 수 없다(23쪽)” 같은 말을 1919년에 일본사람이 읊은 대목을 못마땅해 할는지 모르겠다. 아마, 무척 못마땅하다고 느낄 만하다. 그렇다면 이무렵 한국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읊었는가. 뒷날 시인 신동엽 님은 〈껍데기는 가라〉 같은 시를 읊기도 했는데,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라는 대목이나 “이웃 간에 영원한 평화를 구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깨끗이 하고 동정으로 따뜻하게 하는 길밖에 없다(22∼23쪽)”라는 대목이나 서로 한 흐름이고 한 넋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조선사람을 생각한다〉라는 글이 요미우리신문에 실렸다 해서 말썽거리가 많다는 사람이 많기도 한데, 1970∼80년대에 글 하나 써서 내놓으려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싣지, 어느 신문에 실었을까. 동아투위니 무어니 하고 이야기하는데, 조선일보이든 동아일보이든 이무렵에 어떤 글투로 어떤 이야기를 신문에 담았는가. 더군다나 요즈음 한겨레신문 기사를 돌아보건대, 나로서는 한겨레신문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2200년이나 2500년쯤에 살아갈 뒷사람들한테는 한겨레신문이 진보 목소리를 지켜 주는 매체라 여길는지 모르나, 2010년을 살아가는 내 눈썰미로는 한겨레신문은 진보 목소리를 앞세워 장사를 한다고 느낀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매체는 보수라든지 안보라든지 경제 목소리를 내세워 장사를 한다고 여긴다. ‘진보 목소리’가 아니라 ‘진보’라 한다면, 한겨레신문에는 주식시세표나 방송편성표나 골프 기사나 재벌회사 광고 따위는 실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국민주 신문이라 한다면 광고 하나 없는 신문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지, 더 많은 몹쓸 광고를 실으며 신문사 살림을 꾸리는 일이란 얼마나 두동진 모습인가. 〈조선사람을 생각한다〉라는 글이 어느 신문이나 매체에 실렸든 하나도 돌아볼 만한 값어치가 없는 대목이다. 이 글이 어떠한 글인가를 읽어야 한다. 이 글이 무슨 뜻과 넋을 실었는가 헤아려야 한다.

 삶을 읽는 책이어야지 지식을 갈무리하는 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을 사랑하는 글이어야지, 지식을 우러르는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올 3월에 읽은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유미리 산문,2000)를 엊그제 다시 끄집어 내어 읽다 보니, “진상을 폭로해 버릴까 싶기도 하지만, 진상 따윈 들을 귀가 없을 것이다(40쪽)” 같은 대목이 있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서글퍼 눈물이 난다. 왜 우리한테는 들을 귀가 없을까. 왜 우리한테는 읽는 눈이 없을까. 왜 우리한테는 아로새기는 가슴이 없을까. 왜 우리한테는 부둥켜안는 몸이 없을까. 유미리 님은 거듭 이야기한다. “여성은 어디서든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눈썹, 복사뼈, 엉덩이 사이에서도.” 하고.

 그래, 야나기 무네요시 님, ‘유종열’ 님은 어머니 같은 눈길과 손길로 글을 썼고 사람을 사귀었다. 어떤 이들은 야나기 무네요시 님을 정치나 군사나 종교나 문화 따위에 써먹으려고 휘두르기도 했겠지. 어머니한테서 돈을 울궈낸다든지 시골집 논밭을 팔아 대학교를 다닌다든지 하는 딸아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머니는 제 뼈와 살과 피를 아이한테 내어주는데다가 젖까지 먹인다.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도록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옷을 입힌다. 잘 자라며 자장노래까지 부른다.

 사람들이 어머니 넋을 읽거나 어머니 사랑을 깨닫거나 어머니 슬기를 알아챈다면, 야나기 무네요시 님을 새로우면서 옳게 삭일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믿어 보련다. 믿고 싶다. 한 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12월을 맞이하면서 아름다운 삶과 사람과 사랑을 헤아리고 싶었는데, 자꾸만 슬프며 아픈 삶과 사람과 사랑만 되뇌고 마는구나.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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