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 결혼을 배운 적이 없는 모든 당신들을 위하여
강수돌 외 지음 / 샨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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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옆지기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책읽기 삶읽기 85]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샨티,2011)라는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을 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로는 ‘네 살 딸아이까지 세 식구가 중동에서 넉 달째 나들이를 한다’는 편해문 님을 안다.

 나는 편해문 님을 1999년이었나 2000년부터 알았다.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던 이무렵, 막 어린이책 두 가지를 내놓아 ‘새내기 작가 이름’을 걸친 편해문 님은 어린이놀이 이야기에 여러모로 마음을 쓰는 분이었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며 이름을 알기로는 이때부터이지만, 막상 느긋하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로는 2010년 이른겨울이 처음이었다고 느낀다.

 어찌 되든, 옆지기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라는 책에서 편해문 님 글만 골라 먼저 읽는다. 편해문 님 글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 글은 읽지 않았단다.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다. 모두들 ‘혼인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글을 한 꼭지씩 쓰는데, 옆지기 말마따나 누구라도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밑앎 이야기를 다루려 애썼다고 느낀다. 다만, 편해문 님을 빼놓고는 ‘혼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구성진 이야기’에 눈길을 두려는 분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땅에서 얼마나 벅차고 힘들며 고단한 혼인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결혼을 하는 순간, 우린 종종 상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송두리째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그의 과어와 미래까지도 모두 아내 혹은 남편이란 이름으로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  (28쪽/목수정)


 책을 덮고 나서 옆지기 말을 거듭 곱씹는다. 열일곱 사람 어느 누구라도 ‘한국땅에서 혼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밝히겠다며 힘썼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내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드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한다. 어느 이야기라도 답답하다. 어느 분 글이라도 갑갑하다.


.. 결혼 후 몇 번 이사를 다니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서재, 아내의 서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렇게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는 방이었다. 여성은 남편과 함께 공동의 서재를 쓰기 때문에 집 안에 서재는 하나로 충분하며, 만일 두 개의 서재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둘 다 남편의 서재이거나 혹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미리 만들어 놓은 아이의 방이었다 ..  (68∼69쪽/서윤영)


 열일곱 사람 가운데 ‘혼인을 하며 즐거이 살아간다’고 글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편해문 님은 세 식구가 오붓하게 중동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마실을 여러 달째 한다고 글을 쓴다.

 참 꿈 같다. 세 식구가 여러 달 나들이라니. 돈은 얼마나 있을까. 아이가 하나이니 단출하게 마실을 할 수 있겠지? 아이가 둘만 되어도 넋을 온통 사로잡아 도무지 어쩌지 못하겠는데. 아이가 셋이라면 그야말로 허둥지둥 더 복닥거리겠지. 넷이라면? 넷이라면 참 빠듯할는지 모르지만, 두 아이와 살아가건데, 넷부터는 첫째가 막내나 동생을 찬찬히 보살피도록 함께 살아가야 할 테니, 이럭저럭 짐은 좀 덜지 않으랴 생각한다. 그러나, 집에서 빨래기계 안 쓰고 아버지가 집일을 도맡는 우리 모습을 돌아본다면, 서른일곱에 둘째가 태어난 이 집에서 넷째까지 보려 한다면, 아이들 사이에 세 해는 틈을 주어야 하니까, 나는 마흔다섯 살까지도 기저귀를 빨며 보내야 한다.

 아, 기저귀 빨래란! 첫째 아이 밤오줌 가리기를 겨우 떼고 첫째 아이 기저귀 빨래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할 무렵,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새삼스레 둘째 아이 기저귀 빨래로 접어들어야 하던 일이란! 이레 남짓 첫째랑 둘째 기저귀를 빨래하느라 아주 손목 팔목 빠지던 일이란! 제발 밤에 잠 한 번 제대로 자자고 꿈꾸던 나날이란!

 머잖아 둘째 아이 젖떼기밥을 마련할 일을 헤아리면 집일은 도무지 끝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집일이 조금이나마 줄 틈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옆지기하고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오면서 ‘혼인은 뭐지?’ 하는 생각을 거의 못 했다.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생각을 안 하지 않는다. 참말 끝없는 집일을 건사하면서 하루하루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자고 다짐하기에도 눈알이 핑핑 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며 오늘은 오늘대로 좋아하고, 이듬날은 새롭게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빌며 눈을 감는다. 이듬날은 아이들과 더 예쁘게 말을 섞자고 다짐하며 눈을 감는다.


..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고학력에 비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만은 봉건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한다. 고학력 여성군의 독신 비율이 늘어나는 이유도 우리 사회 결혼 제도의 모순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  (121쪽/오진희)


 나는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를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하다. 왜 이 책에 글을 쓴 열일곱 사람은 ‘집에서 하는 일’을 놓고는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아니, 집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밝히면서 올바로 보여주는 글은 왜 하나도 없을까. 혼인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열일곱 사람 모두 ‘바깥에서 하는 일’과 ‘내 마음에 맞는 짝꿍이 있을 때에 꼭 법률 제도에 따라 예식을 올려 한 집에서 살을 섞어야 하는가’에만 눈길을 두면 되는가. 이만 한 글이라면 혼인 제도나 혼인 문제를 다 다루었다고 여길 만한가.

 여남 불평등이건 남녀 평등이건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사회가 불평등이건 평등이건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는 길이 가장 즐겁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면서 나와 함께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일굴 짝꿍을 사귀어 서로를 지키고 기대는 옆지기로 한삶을 돌보면 가장 따사로우리라 느낀다.

 먼저 서로 아끼고 사랑할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서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느낀다. 돈벌이에 사로잡히거나 돈벌이에 얽매이는 공해덩어리 도시가 아닌, 삶짓기에 걸맞거나 삶사랑에 알맞을 좋은 마을살이를 꿈꾸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른인 두 사람부터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라면, 이 아름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랄 수 있겠지.


.. 왕자라는 사내가 옳은 정신이 박힌 자라면 신데렐라가 부엌데기이든 무어시든 신데렐라의 현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참 남자들이 이렇게 어리석다. 한 세월 아무리 한 이불 덮고 자도 서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고, 끝까지 지켜 줘야 할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남자들이 이런 걸 잘 못한다 … 쉽게 말해 나무꾼은 선녀들을 염탐하던 한 짐승의 귀띔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선녀의 옷을 훔치고, 그것을 빌미로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둬 버리려는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 나무꾼은 아이를 셋이나 낳고 온갖 살림살이를 다 하며 사는 아내를 진정 사랑했던 것일까? 사랑했다면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 아니면 둘을 낳았을 때 서둘러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어야 했다 ..  (196, 200쪽/편해문)


 나는 생각한다.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라면 오직 ‘삶·사람·사랑’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보살필 수 있느냐라고. 혼인에 앞서 물을 한 가지란, 내가 살아가며 나 스스로 묻고 이야기할 한 가지라고.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할 짝꿍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스스로 마음에 아로새길 책을 만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아이하고 마주한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린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흙을 만지고 밥을 먹는다.

 내 하루 오늘 삶을 어떻게 얼마나 아끼느냐에 따라, 내 사랑과 혼인과 일놀이 모두 새삼스레 거듭난다고 느낀다. (4344.10.31.달.ㅎㄲㅅㄱ)


― 결혼 전 물어야 할 한 가지 (강수돌과 열여섯 사람 씀,샨티 펴냄,2011.10.25./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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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둘하고 시골길 걷기
 [고흥살이 1] 볕살 따가운 한낮에



 아침을 먹고 나서 바깥마실을 하기로 합니다. 나는 새 보금자리 손질하랴 집일을 하랴 눈코 뜰 사이가 없지만, 아무리 집에서 할 일이 많더라도 아이들이 새 보금자리로 왔는데 바깥마실을 못하며 지낸다면 너무 갑갑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에는 둘째가 새근새근 잠든 동안 옆지기가 첫째 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 즈음 바깥마실을 다녔습니다. 둘째가 깰까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둘째는 고맙게 새근새근 잠을 잤고, 나중에 잠을 깰 무렵에는 집일하던 일손을 살짝 멈추고 아이하고 놀며 쉬었습니다.

 새 보금자리로 모든 짐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아직 끝방을 다 못 치웠고, 책짐을 풀어놓을 옛 흥양초등학교 빈 교실 네 칸을 못 치웠어요. 책 놓을 자리는 책이 들어온 다음에 부랴부랴 치우며 책을 갈무리할 수 있다지만, 집살림을 마저 들일 끝방을 못 치우면 일이 안 되니까 마음만 바쁩니다.

 내 집이라는 곳을 얻었다는 느낌을 아직 제대로 모릅니다. 벽종이를 바르면서 벽종이를 어떻게 발라야 하는 줄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설프고 어수룩하게 벽종이를 바르다가 뒤늦게 깨우칩니다. 뒤늦게 깨우친 대로 벽종이를 바르니 구김살이나 뜬 데가 없이 말끔합니다. 내 어린 날, 어머니랑 형이랑 벽종이를 바를 때에도 이렇게 했을 텐데, 왜 그때 일을 옳게 되새기지 못할까요. 마음이 바쁘대서 일이 잘 풀릴 수 없는데, 왜 이리 서두를까요.

 시월 삼십 날인데 볕살이 퍽 따갑습니다. 방온도는 25도이고 바깥은 더 따뜻하니까,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날씨는 27도는 넘으리라 생각합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안고 걷자니 땀이 솔솔 납니다. 지난 한 해를 머물던 충청북도 멧골자락을 헤아리니, 남녘이 참 따뜻하기는 따뜻하고, 멧자락에 깃든 시골집은 춥기는 춥구나 싶어요.

 옆지기는 멧등성이 타는 길을 못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직 안 가 본 길을 가면 멧등성이 타는 데가 나올 수 있겠지요. 밭뙈기를 따라 멧길을 찾다 보면 으레 무덤만 나온답니다. 척 보기에도 멧기슭 따라 볕 잘 드는 자리에 무덤이 꽤 많습니다. 예부터 뿌리내린 이곳 사람들 무덤입니다. 흙을 일구며 흙하고 살아온 사람들 마지막 쉼터입니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옆지기랑 첫째 아이는 긴바지를 입습니다. 들풀 아직 우거진 멧길을 따라 걷자니 풀씨가 긴바지에 잔뜩 달라붙습니다. 따갑습니다. 이 멧길을 오르자면 낫을 들고 와서 풀을 베야 할까 싶어요. 한참 아이를 업고 멧길을 오르니, 끝자락에는 어김없이 무덤이 나타납니다. 이 무덤을 따라 더 올라가면 또다른 무덤이 나올까요. 낯모르는 분들 무덤가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해바라기하며 쉬기에는 멋쩍을까 싶지만, 다리쉼을 하거나 그늘쉼을 하며 지나가는 일은 괜찮겠지요.

 오늘은 첫째 아이가 많이 졸려 하고, 둘째 아이도 업힌 채 잠들어 일찍 내려오기로 합니다. 다음에는 더 깊이 들어서며 다른 멧길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멧자락 따라 마련한 마을밭은 둑이 꽤 높습니다. 멧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지나가는 밭둑은 어른 키보다 훨씬 높아 하나도 안 보입니다. 숨은 길 찾는 놀이를 할 만합니다.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밭둑을 높였을까요. 꼭 굴길을 낸 듯한 거님길이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나무밭을 스칩니다. 짧은 대나무 조각 있어 살짝 줍습니다. 첫째 아이한테 좋은 놀잇감이 됩니다. 대나무 막대기 든 아이는 씩씩하게 앞장서서 걷습니다. 멧길을 업고 오르내렸더니 몸이 좀 나아졌나 봐요.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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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순이와 잠들기


 네 살이 무르익고, 곧 다섯 살로 접어들 딸아이는 막내이모가 선물로 준 콩순이를 퍽 귀여워한다. 새 보금자리로 살림을 조금 옮기기 앞서 딸아이 인형 가운데 하나만 먼저 들고 와야 하는데 콩순이를 골랐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갓난쟁이 동생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콩순이한테 그대로 하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저를 나무라거나 꾸짖을 때에 툇마루에서 콩순이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흉내를 낸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저를 예뻐하면서 쓰다듬는 날이면 콩순이를 예뻐하면서 쓰다듬고, 어머니나 아버지가 저를 나무라거나 꾸짖으면 콩순이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말을 따라하는데, 딸아이는 아직 제가 잘못해서 꾸중을 듣는 줄 모른다. 아직 잘못이나 꾸중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를 섣불리 나무라거나 꾸중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막상 제대로 못하는 날이 잦다. 돌이키면, 나부터 내 삶을 한결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일구지 못할 때에 아이한테도 똑같이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마주하지 못하는 꼴 아니랴 싶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길은 교육책에 없다. 아이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은 교육이론에 없다. 아이랑 오순도순 살아가는 길은 신문·방송·인터넷 어디에도 없다. 오직 오늘 하루 아이하고 복닥이는 이 자리에 있다. 언제나 아이랑 북적이는 내 보금자리에 있다.

 아침 먹는 자리에서 콩순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온 딸아이가 동생 머리맡에 콩순이를 눕힌다. 밥먹는 동안 고맙게 새근새근 잠든 동생 곁에서 콩순이도 함께 이불을 덮도록 한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마친 다음 따가운 볕살 내리쬐는 시골길을 한 시간 남짓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세 식구가 잠든다. 나도 졸립다. 그러나 나는 빨래를 하고 부엌 벽종이를 마저 바른다. 이제 드러누워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딸아이가 제 긴걸상에 콩순이하고 나란히 누워 잠든 모습이 보인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사랑하는 삶이 되자면, 나는 내 삶부터 착하게 사랑하며 아낄 줄 알아야 한다.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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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안기


 네 식구 먹을 밥을 차리는데 옆지기가 부른다. 밥 차릴 때에 얼마나 바쁜데 왜 부른담. 그러나, 부를 때에는 부를 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일 테지. 옆지기가 첫째 아이한테 안아서 건넸는지 첫째 아이가 스스로 안았는지, 첫째 아이 무릎에 둘째 아이가 눕는다. 네 살 아이가 한 살 동생을 무릎에 앉히면서 웃는다.

 무거울 텐데, 힘들 텐데, 꽤 오래 이렇게 있네. 조금 뒤 힘들다며 옆지기 손을 얻어 동생을 바닥에 내린다. 몇 분 안지 않아도 힘들다고 느끼면, 첫째 아이부터 제 어머니나 아버지 무릎에 털썩 주저앉거나 살살 비집고 들어오는 일을 그치면 좋으련만. 아침부터 밤까지 네 식구 함께 복닥이는 바쁜 나날이다. (4344.10.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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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빨간 외투 비룡소의 그림동화 75
애니타 로벨 그림, 해리엣 지퍼트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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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랑을 입고 살아갑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3] 아니타 로벨·해리엣 지퍼트, 《안나의 빨간 외투》(비룡소,2002)



 나는 아이한테 사랑 말고는 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 말고는 받을 수 없습니다.

 네 살과 한 살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아이들이 한글을 빨리 깨치거나 우리 말을 얼른 익히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글을 서둘러 가르치자며 그림책을 읽힐 수 없어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따사로운 하루를 누리려고 그림책을 읽습니다. 살가운 이야기에 포근한 그림을 어우른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어버이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서 서로서로 따사로운 마음을 북돋웁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입히는 옷은 값비싼 옷이 아닙니다. 어버이 사랑이 고이 깃든 옷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받아 입는 옷은 값진 옷이 아니에요. 어버이한테서 받는 사랑이 물씬 스민 옷이에요.

 아이와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은 사랑입니다. 아이도 사랑을 먹고 어버이도 사랑을 먹습니다. 어머니 젖꼭지를 빠는 갓난쟁이 또한 어머니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필수영양소를 받아먹는 갓난쟁이가 아니에요.

 아이와 살아가는 보금자리는 아이와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터입니다. 돈으로 따지는 부동산일 수 없습니다. 무슨무슨 학군으로 잴 수 없어요. 어버이도 아이도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 지난해 겨울에 엄마가 말했어요. “전쟁이 끝나면 다시 물건을 살 수 있을 거야. 그땐 네게 멋진 외투를 새로 사 줄게.” 하지만 전쟁이 끝났어도 가게들은 텅 비어 있었어요 ..  (7쪽)


 지식을 다루는 책이 쏟아집니다. 아이들한테 지식을 집어넣으려 하는 그림책이 넘칩니다. 과학이나 자연을 보여주겠다는 잘 빚은 그림책과 동화책과 정보책이 그득합니다. 역사나 철학이나 문학이나 정치나 교육을 이야기한다는 어린이책이며 학부모책이 푸짐합니다. 요사이는 아이들한테 일찌감치 영어나 한자를 가르치는 학습책이 퍽 불티나게 팔립니다.

 아이들은 머리속에 무언가를 자꾸 집어넣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지식조각을 끝없이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마음밭에 사랑을 심을 겨를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들일 틈이 없습니다.

 돌이키면, 아이들한테 지식조각을 집어넣는 어버이는, 어버이 삶부터 어버이한테 지식조각과 정보조각을 채우는 나날입니다. 지식조각을 생각하고 정보조각을 바라보는 어버이 삶이에요. 이 어버이 삶이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이어집니다.

 어버이 스스로 자연스러이 살아간다면, 어버이 스스로 자연을 품에 안으며 자연스러이 살아간다면, 아이한테 굳이 자연그림책이나 자연동화나 환경그림책이나 환경동화를 읽히지 않아도 돼요. 어버이와 아이 삶이 온통 자연사랑과 환경사랑일 테니까요.

 어버이 스스로 꿈을 북돋우면서 일구는 나날이라면, 애써 아이한테 역사나 문화나 사회나 정치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읽히지 않아도 돼요. 어버이 스스로 북돋우거나 일구는 꿈이란, 어버이 스스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일구는 삶일 테니까요.


.. 안나는 봄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일요일마다 안나와 엄마는 양을 만나러 갔어요. 안나는 양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물었어요. “양들아, 털은 잘 자라니?” 그러면 양들은 언제나 “매매!” 하고 대답했지요. 그러고 나서 안나는 양들에게 깨끗하고 맛있는 마른 풀을 먹이고, 꼭 안아 주었어요 ..  (12쪽)


 아이들이 아름다이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어버이부터 아름다이 살아가면 됩니다. 아이들이 맑고 밝게 살아가기를 꿈꾼다면, 어버이부터 맑고 밝게 살아가면 돼요.

 아이들이 거짓없는 터전에서 거짓없는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꾀한다면, 어버이부터 거짓없는 일터를 찾고 거짓없는 삶터를 찾아 거짓없는 일놀이를 붙잡아야 합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다면, 아이들도 이와 같은 길을 따라갑니다. 이름값을 지키는 자리를 거머쥐려 한다면, 아이들도 이와 같은 길을 좇습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어버이와 살아가는 아이는 자전거를 즐깁니다. 자가용으로 움직이기를 즐기는 어버이와 살아가는 아이는 자가용 타기가 아주 익숙합니다. 퍽 먼 길도 으레 걷는 어버이와 살아가는 아이는 어릴 적부터 다리가 튼튼하게 자랍니다. 밭에서 호미질하는 어버이와 살아가는 아이는 어린 나날부터 호미질을 거뜬히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어버이와 살아가는 아이는 일찍부터 그림놀이를 좋아합니다.


.. “안나야. 무슨 색 외투를 입고 싶니?” 하고 엄마가 물었어요. 그러자 안나는 “빨간색이요!” 하고 얼른 대답했어요. “그러면 산딸기를 좀 따와야겠구나. 그걸로 실을 빨갛게 물들이면 아주 예쁠 거야.” 하고 엄마가 말했어요.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엄마는 숲속에서 잘 익은 산딸기를 따서 바구니마다 가득 담았어요 ..  (18쪽)


 어버이가 할 일이란 하나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어버이가 나눌 것이란 하나입니다. 오로지 사랑이에요.

 어버이가 보살필 꿈이란 하나입니다. 그예 사랑이랍니다.

 아이를 함께 낳아 살아가는 옆지기 또한 사랑이겠지요. 아이를 함께 바라보는 살붙이 또한 사랑일 테지요.

 좋은 사랑이면 됩니다. 고운 사랑이면 넉넉합니다. 착한 사랑이면 아름답습니다. 티없는 사랑이면 즐겁습니다.


.. 재봉사 아저씨는 단추 상자에서 외투레 잘 어울리는 예쁜 단추 여섯 개를 골라 외투에 달았어요. 재봉사 아저씨는 길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외투를 상점 창가에 자랑스럽게 걸어 놓았어요 ..  (26쪽)


 아니타 로벨 님과 해리엣 지퍼트 님이 함께 일군 그림책 《안나의 빨간 외투》(비룡소,2002)를 읽습니다. 어린 안나는 가난한 어머니하고 둘이 살아갑니다. 끔찍한 전쟁을 치른 탓에 가난한 어머니하고 조그마한 집에서 살아갑니다. 안나네 아버지는 어쩌면 끔찍한 전쟁통에 휩쓸려 슬프게 죽었는지 모릅니다. 안나와 어머니는 외로운 나날일 수 있지만, 오늘 이곳에 둘이 함께 있기에 서로서로 기대고 믿으면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꿈속에서 마주하면서 날마다 예쁘게 비손할는지 모릅니다.

 안나네 식구는 돈이 없습니다. 안나네 이웃도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안나네나 안나네 이웃이 배를 곯지는 않아요. 돈이 없으면서 다들 이렇게든 저렇게든 밥을 먹습니다. 예수님나신날에 조촐히 잔치를 열기도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지, 돈을 먹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곡식을 일구지, 돈을 일구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살아가지, 돈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돈은 밥을 얻도록 다리를 놓는 작은 징검돌입니다. 돈을 벌어야 밥을 먹지 않아요. 밥이 있어야 밥을 먹어요. 옷이 있어야 옷을 입고, 집이 있어야 잠을 자요.

 안나네 어머니는 안나한테 새 겉옷을 마련해 주려고 합니다. 안나네 어머니한테는 돈이 없기에 새 겉옷을 마련하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아마, 안나네가 날마다 먹는 밥 또한 돈이 없어서 아침이나 낮밥이나 저녁을 차릴 때에도 퍽 오래 걸리거나 빠듯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이러하든 저러하든 안나 얼굴에 근심이 서리지 않습니다. 안나네 어머니 얼굴에 걱정이 맴돌지 않아요.

 몸에 작은 겉옷을 입어야 하는 안나는 제 삶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옷이야 작든 크든 대수롭지 않아요. 이제는 작아진 옷이라 하더라도 안나는 제 어머니한테서 받은 예쁜 사랑인 줄 느끼거든요.

 좀 헌 옷을 입든, 퍽 해진 옷을 입든 이와 다르지 않아요. 파란 빛깔 옷이든 검정 빛깔 옷이든 이와 마찬가지예요. 안나는 사랑을 입으며 살아가는 아이예요. 안나네 어머니는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어버이예요.


..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말했어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구나. 올해는 조촐한 축하파티라도 열도록 하자.” 그러자 안나가 말했어요. “야, 신난다! 제 외투를 만들어 주신 분들을 모두 초대해요, 네?” ..  (31쪽)


 사랑이 있기에 삶이 있습니다. 삶이 있기에 꿈이 있습니다. 꿈이 있기에 사랑을 차곡차곡 심어 돌볼 수 있습니다.

 옷 한 벌은 돈이 있대서 쉬 장만할 수 있지 않습니다. 오래오래 아끼면서 좋아하는 옷 한 벌은 돈으로 장만하지 못합니다. 두고두고 아끼는 책은 큰돈을 들여 장만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되읽고 곱새기는 책은 큰돈을 들여 갖춘 책이 아닙니다.

 값비싼 자전거를 타야 즐겁지 않습니다. 값나가는 사진기로 찍어야 사진이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물려받고 사랑을 물려줄 때에 비로소 즐거운 나날이며 따사로운 누리입니다. 안나네 어머니는 안나한테 가장 아름다우면서 더없이 빛나는 씨앗 하나를 심어 한 해에 걸쳐 시나브로 돌보아 열매를 맺도록 이끕니다. 안나는 제 어머니하고 한 해 동안 차근차근 마음밭을 일굽니다. 함께 땀흘리고 함께 가을걷이를 합니다. (4344.10.31.달.ㅎㄲㅅㄱ)


― 안나의 빨간 외투 (아니타 로벨 그림,해리엣 지퍼트 글,엄혜숙 옮김,비룡소 펴냄,2002.2.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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