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꼴을 갖춘다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1.29.

 


 이원수 님 동시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간다. 살림집과 도서관이 코앞에 맞닿는다면 새벽이나 밤에도 책 갈무리를 할 텐데, 아무리 가까이 있기는 하더라도 걸어서 2∼3분쯤 걸어가야 한다면, 이만 한 길조차 날마다 못 가기 일쑤이다. 며칠 앞서부터 이원수 님 동시책을 가지러 도서관에 가려 했으나, 자꾸 잊는다. 집에서 하는 일에 밀리고, 읍내나 면내로 마실을 다녀오며 뒤로 미룬다. 설을 쇠기 앞서부터 설을 쇤 뒤 도서관 청소조차 못했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책도 가지러 가자 다짐하며 한낮 해가 차츰 기울 무렵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다.

 

 석 달째 그럭저럭 갈무리하고 치우면서, 사진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과 교육책 두려는 교실은 꽤 꼴을 갖춘다. 인천에서 도서관을 꾸리며 만든 사진틀 꾸러미가 꽤 많아, 이 꾸러미를 어디에 두나 하고 생각하다가, 책꽂이 벽에 붙이기로 한다. 책꽂이 벽에 못 자국이 생기니 싫지만, 즐기자고 생각한다. 빛깔 고운 사진을 붙여 책꽂이도 살고 도서관도 살리자고 생각한다. 어른 눈높이에 사진틀 하나, 어린이 눈높이에 사진틀 하나. 요 밑에는 나중에 조그마한 종이쪽을 붙일까 싶다. 이를테면, 고흥군 군내버스 ‘종이 버스표’를 널따란 판에 하나씩 그러모아 붙일 수 있으리라. 인천에 살던 어린 날 모은 ‘종이 버스표’라든지 음성에서 지내며 모은 ‘종이 버스표’도 그러모아 붙일 수 있겠지. 좋은 길을 생각하자. 예쁜 꿈을 품자. 도서관은 도서관대로 살림집은 살림집대로 아름다이 일굴 사랑을 헤아리자.

 

 오늘 한 시간 반쯤 갈무리하니 제법 꼴을 갖추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직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운 잡동사니가 곳곳에 있는데, 이듬날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놀며 설레설레 치우면 되겠지. 나 혼자 흐뭇해서 사진 몇 장 찍는다. 다음에 와서 더 붙일 사진틀을 앞에 놓는다. 문간 옆 책상과 책꽂이도 다음에 올 때에는 다 치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참말 시나브로 꼴을 갖추니 시원하고 개운하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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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1-3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관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날짜 알려주세요.

파란놀 2012-01-30 16:55   좋아요 0 | URL
넵, 그러겠습니다~~
따순 날, 고흥이 얼마나 따숩고 좋은가를
사람들한테 알려서
이곳으로 살림집 옮기라고 할 만한 날을
잡고 싶어요~~~ ^^

마녀고양이 2012-01-3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이런 도서관을 꾸미시는거군요.
정리하시면 더 많은 사진 올려주셔염, 멀어서 실제는 못 봐도 사진으로나마 보고파여~

파란놀 2012-01-30 16:56   좋아요 0 | URL
나중에 신나게 마실 오셔야지요~

정안휴게소에서 갈아타면, 고흥에 더 빨리 올 수 있더라구요.

아무튼, 예쁘고 즐거이 꾸미려고 해요.
이제 이곳은 우리 집이라 여기면서 꾸미고 싶어요~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28) 회오의 1 : 회오의 눈물

 

 

.. 어떤 이는 그를 한때의 격랑일 뿐이라 하며 / 또 어떤 이는 회오의 눈물 / 굴절과 비통의 소용돌이라고도 하겠지만 ..  《송경동-꿀잠》(삶이보이는창,2006) 126쪽

 

 ‘격랑(激浪)’은 “거센 물결”을 뜻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소용돌이”로 손볼 수 있으나, 뒤에 소용돌이라는 낱말이 나오니, 앞말과 묶어 “한때 이는 거센 물결”이나 “한때 휘몰아치는 물결”이나 “한때 이는 물결”이나 “한때 부는 바람”처럼 손질할 수 있어요. “굴절(屈折)과 비통(悲痛)의 소용돌이”는 “꺾이고 슬픈 소용돌이”로 다듬어 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은 싯말입니다. 여느 글이 아닌 싯말이기에 이렇게 다듬자고 해도 좋을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싯말이든 소설말이든 똑같이 말이에요. 입으로 하는 말이든 손으로 쓰는 글이든 모두 한국말입니다. 한국말이라는 테두리에서, 어떻게 적거나 읊을 때에 한결 살가우면서 사랑스러울까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회오(悔悟) :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음.
   -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회오의 눈물을 흘렸다 /
     반성문은 절절한 회오로 가득 차 있었다

 

 회오의 눈물
→ 뉘우치는 눈물
→ 뉘우치며 흘리는 눈물
→ 고개 떨군 눈물
 …

 

 꼭 싯말이기 때문은 아니나, 이 싯말을 읽으며 다른 말마디는 그럭저럭 읽고 지나가다가, ‘회오’라는 대목에서 걸립니다. 다른 말마디를 그대로 둔다 하더라도 ‘회오’라는 말마디는 참말 아니지 않느냐고, 이러한 말마디를 반드시 써야 하느냐고, 하는 생각이 자꾸자꾸 납니다.

 

 국어사전에서 한국말 ‘뉘우치다’를 찾아보면, “스스로 제 잘못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끼다”로 풀이합니다. 국어사전에서 한자말 ‘회오’를 찾아보면 말풀이가 겹말입니다. 아마, 한자말 ‘회오’만 국어사전에서 찾아본다면, 이 한자말 풀이가 겹말인 줄 알아채지 못하리라 봅니다. 한국말 ‘뉘우치다’를 함께 찾아볼 뿐 아니라, 한자말 ‘회오’가 딱히 남다르다 싶은 낱말이 아닌 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이 얄궂은 말풀이와 말씀씀이를 깨닫습니다.

 

 회오의 눈물을 흘렸다
→ 뉘우치며 눈물을 흘렸다
→ 뉘우치는 눈물을 흘렸다
 …
 절절한 회오로 가득 차 있었다
→ 애타는 뉘우침으로 가득 찼다
→ 애끓는 뉘우침으로 가득 찼다
→ 눈물겨운 뉘우침으로 가득 찼다
 …

 

 보기글에서 밝히는 “뉘우치는 눈물”은 여러모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말뜻 그대로 뉘우치는 눈물입니다. 다음으로, 슬프다고 여기는 눈물입니다. 다음으로, 부끄러이 여기는 눈물이며, 안타까이 여기는 눈물이거나, 안쓰러이 여기는 눈물입니다. 스스로 꾸짖는 눈물이나, 스스로 나무라는 눈물일 수 있어요. 나를 채찍질하는 눈물이 되거나, 나를 다그치는 눈물이 되기도 할 테지요.

 

 잘못을 깨닫는다 할 때에는, 뉘우칠 수 있고 슬프게 여길 수 있으며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참 바보였구나 하고 여긴다거나, 나는 꽤 멍청했구나 하고 여길 수 있어요.

 

 어떤 빛, 어떤 느낌, 어떤 이야기, 어떤 결인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어떤 말, 어떤 글일 때에 내 넋을 환하게 밝힐 만한가 곰곰이 따집니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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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1-31 18:37   좋아요 0 | URL
버릇처럼 쓰는 말투를 손질하거나 고치기란
참 힘들어요.

생각을 깊이 기울여야
차근차근 하나씩 가다듬을 수 있어요.

에고..
 

 

묶음표 한자말 165 : 감우(甘雨)

 


.. 문자 그대로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들과 풀과 나무와 내와 배꽃, 복숭아꽃이 달디달게 목을 축이고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이는 듯했다 ..  《박완서-혼자 부르는 합창》(진문출판사,1977) 16쪽

 

 “문자(文字) 그대로”는 “말 그대로”로 다듬고, “자라는 게”는 “자라는 모습이”로 다듬어 줍니다.

 

 이 글월에서는 ‘배꽃’이라 적지, ‘이화(梨花)’라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이름이라든지 적잖은 데에서는 ‘이화’라는 낱말을 곧잘 씁니다. 배나무에 핀 꽃은 배꽃이라 하면 될 텐데, 굳이 한자로 덮어씌우고야 말아요.

 

 이리하여,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마디는 ‘단비’이지만, 이 글월에서는 ‘감우(甘雨)’라는 한자말이 튀어나옵니다. 한글로만 적는다면 자칫 헷갈릴까 싶어 묶음표를 치고 ‘甘雨’를 달아 놓습니다. 그런데, 보기글 뒷자리를 보면 “달디달게 목을 축이고”라는 대목이 있어요. 이러한 말마디는 ‘달다’라고 적으나, 빗물이 달디달다고 하는 자리에는 왜 ‘단비’라 적지 못할까 궁금합니다.

 

 감우(甘雨) : 때를 잘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
   - 7년 대한에 감우를 만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 단비로구나 싶었다
→ 반가운 비로구나 싶었다
→ 달콤한 비로구나 싶었다
→ 고마운 비로구나 싶었다
 …

 

 ‘감우’나 ‘甘雨’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자말이요 중국말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이 주고받을 한국말은 ‘단비’입니다. 같거나 비슷한 뜻으로 “달디단 비”라 할 수 있고 “달콤한 비”라 할 수 있습니다. 글흐름을 살피면, “반가운 비”나 “고마운 비”나 “즐거운 비”나 “좋은 비”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알맞게 내리는 비”라든지 “제때에 내리는 비”라든지 “목마를 때 내리는 비”라든지 “가뭄을 씻는 비”처럼 적을 수 있어요. “목마름을 씻는 비”나 “타는 목을 씻는 비”나 “가문 땅을 적시는 비”라 해도 됩니다.

 

 알맞게 살릴 말마디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살가이 북돋울 글줄을 톺아보면 반갑겠습니다. 기쁘게 일굴 겨레말을 꿈꾸면 고맙겠습니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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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가 걷는 길

 


 옆지기와 아이들이랑 마실을 다닌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마실을 간다. 택시를 불러 탈 수 있지만, 바닷가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탄다. 그런데 버스는 포구로 갈 뿐, 모래밭 있는 바닷가로는 가지 않는다. 포구에서 내리니 바닷가까지는 몇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한단다.

 

 옆지기는 둘째를 업고 나는 첫째 손을 잡고 걷는다. 첫째는 요리조리 장난스레 걷다가 졸린 나머지 안아 달라 말한다. 첫째를 안고 걷자니 처음에는 괜찮으나 이내 아이 무게가 꽤 묵직하다고 느낀다. 참 많이 컸구나, 참 튼튼히 자라는구나, 앞으로 네가 안길 날은 얼마 안 되겠구나 싶다.

 

 그나저나, 아이들과 걸을 만한 흙길이 너무 적다. 모든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깐다. 사람들은 밑창 두툼한 신을 신는다. 멧자락을 오르든 논둑이나 밭둑을 걷든, 온통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곱고 넓게 깔린다. 흙과 풀을 밟으며 바닷가를 거닐거나 멧자락을 오르내릴 수 없을까. 꼭 이렇게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온누리에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뿌려야 할까.

 

 모든 목숨이 살아갈 수 있는 밥을 얻자면 흙땅이 있어야 한다. 풀은 흙땅에서 돋는다. 풀 먹는 짐승을 잡아먹는 큰 짐승은 ‘흙에서 나는 풀을 먹는 짐승’이 있어야 살아가니까, 큰 짐승도 흙을 밟고 누려야 목숨을 잇는다. 우리에 가두어 기르는 소나 돼지나 닭 또한 풀이 있어야, 풀이 돋는 흙이 있어야 목숨을 잇는다. 풀을 즐겨먹을 사람이든 고기를 즐겨먹으려는 사람이든, 풀이 돋는 흙을 누려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누빌 풀 돋는 흙땅이 자꾸 줄어든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씽씽 재빨리 달릴 길만 신나게 새로 닦는다. 새 다리를 놓고, 새 굴을 뚫는다. 새 기찻길을 놓고 새 찻길이 뻗는다. 자전거 달릴 길이라서 아스콘을 깔 까닭이 없다. 흙길을 반반하게 다지면 된다. 걸을 만한 길이면 자전거로 달릴 만한 길이다. 빨리 달리는 내기를 해야 하지 않으니, 아늑하거나 푸근하게 돌보면 좋은 길이다. (4345.1.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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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아버지 곁으로 기어오기

 


 둘째를 씻긴다. 씻긴 아이를 방으로 안고 간다. 씻긴 아이한테 옷을 새로 입힌다. 둘째는 방에 두고 아이 씻긴 물이 가득한 씻는방으로 간다.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를 빨래한다. 한참 비빔질과 헹굼질을 하는데, 뒤에서 방바닥 척척 때리는 소리가 난다. 뭔가 하고 뒤돌아보니 둘째가 기어서 씻는방으로 다가온다. 곧, 씻는방 문턱에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는 바닥 물 흐르는 자리에 손을 대려 한다. 물을 만지고 싶구나. 그러나 빨래하는 아버지는 아이가 바닥에 손을 대지 않게 허벅지를 내밀며 막는다. 이런 모습으로 빨래를 잇는다. 아이가 아버지 허벅지에 두 손을 척 대고 발을 버티어 선다. 허벅지에 닿은 아이 손이 차갑다. 아이구, 이렇게 차가운 손으로 물놀이를 하겠다고? 여름이면 몰라, 겨울이잖니. 아버지는 허벅지로 버티며 빨래를 더 한다. 네가 씻은 이 물이 아직 따스할 때에 빨래를 해야 하거든. 둘째는 아버지 허벅지에 기대어 선 채 빨래 구경을 한다. 옳거니, 네 아버지가 네 옷가지랑 기저귀를 어떻게 빨래하는지 보고 싶니. 그러면 잘 보고, 무럭무럭 자라서 네 누나랑 함께 너희 옷가지를 신나게 빨렴. 너희 이불도 너희가 기쁘게 빨렴. 어느덧 빨래를 다 마칠 무렵까지 아버지 허벅지에 기대어 서며 구경하던 둘째는, 이제 다 되었다 싶을 때에 허벅지에서 손을 내리더니 뒤돌아선다. 두꺼운 겉옷은 씻는방에 걸어 물이 떨어지도록 하고, 나머지는 바가지에 담는다. 이제 방에 널려고 하니, 아이도 아버지를 따라 척척 긴다. 방으로 들어가 옷걸이에 빨래를 꿰어 널 때에, 첫째가 일을 거든다. 아버지가 열 몇 점을 꿰고, 첫째가 석 점을 꿴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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