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영어] 펭귄penguin



펭귄(penguin) : [동물] 펭귄과의 황제펭귄, 아델리펭귄, 수염펭귄, 로열펭귄, 갈라파고스펭귄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키는 40∼120cm이며 등은 검은색, 배는 흰색이다. 몸은 방추형이고 날개는 짧고 지느러미 모양으로 변화하여 날지 못하며, 다리는 몸 뒤쪽에 있는데 짧고 땅 위에서는 곧추서서 걷는다. 헤엄을 잘 치며 물고기·낙지·새우 따위를 잡아먹고, 바닷가에서 무리 지어 사는데 대부분 남극 지역에 분포한다 ≒ 인조

penguin : 펭귄

ペンギン(penguin) : 펭귄



우리 낱말책은 영어 ‘펭귄’을 ‘≒ 인조(人鳥)’처럼 다루기도 합니다만, 이웃나라에서 쓰는 이름을 그대로 쓸 바가 아니라면 ‘사람새(인조)’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보다는 이 새가 얼음나라에서 살아가는 결을 헤아려 ‘얼음새’라고 할 만합니다. 포근하거나 따뜻한 터전이 아닌, 꽁꽁 얼어붙은 터전에 알맞게 살림을 짓기에 ‘얼음새’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얼음눈새’라 할 만하고, ‘눈밭새·눈얼음새’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ㅍㄹㄴ



질문을 한 펭귄이 흠뻑 젖은 채

→ 물어본 얼음새가 흠뻑 젖은 채

→ 묻는 눈얼음새가 흠뻑 젖은 채

《엉뚱하기가 천근만근》(다니엘 네스켄스·에밀리오 우르베루아가/김영주 옮김, 분홍고래, 2017) 6쪽


펭귄을 만나 처음 한 일은 펭귄을 잡아 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작업이었다

→ 얼음새를 만나서 처음에는 뒤좇기를 붙였다

→ 얼음새를 만나면 처음에는 길찾기를 붙인다

《물 속을 나는 새》(이원영, 사이언스북스, 2018) 10쪽


펭귄들은 시린 바람과 흩날리는 눈발에도

→ 눈밭새는 시린 바람과 흩날리는 눈발에도

《측광》(채길우, 창비, 2023)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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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누구를 보는가



  어려서나 나이들어서나 같다. 몸피는 늘 바뀌지만, 마음은 누구나 늘 같다. 배우는 마음인 사람은 아직 철들지 않아서 퍽 어리숙하더라도 차근차근 나아가며 기꺼이 맞아들인다. 안 배우는 마음인 사람은 어느 나이에서도 안 배울 뿐 아니라, 어느 자리에 있든 어느 때를 마주하든 안 배우니까 노상 멈춰서 고인다. 어릴적에 멍하니 쳐다보곤 했는데, 뭔지 모르니 한참 보며 알아차리려고 했다. 이때마다 언니나 또래는 “넌 왜 함께 안 하고서 구경만 하니!” 하고 타박하며 꿀밤을 먹이거나 때렸다.


  영문도 모르는 채 섞여서 뭐가 뭔지도 모르는 물결에 휩쓸리는데, “같이 하다 보면 저절로 알아!” 하고 나무라는 소리가 빗발친다. 느리거나 더디거나 더듬대거나 부끄러운 사람을 억지로 밀어넣거나 욱여넣으면, 언제나 더 말썽이거나 어긋난다. 스스로 알아채서 손모을 틈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억지로 서두르는 일이라면 아무리 여러 사람이 힘쓰더라도 무너지게 마련이다.


  “내 너머 불구경”이라는 말처럼, ‘구경’이란 “남일로 여겨서 팔짱끼는 몸짓”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내 일”로 받아들이려면 곰곰이 보고서 두루 짚어야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모르겠고 어지럽기 일쑤이지만, 보고 겪고 느끼는 사이에 천천히 알아볼 수 있다. 아기가 하루아침에 안 서고, 하루아침에 말꼬를 트지 않는다. 이리하여 ‘글꼬’가 있다. 글을 쓰기까지 누구나 “지켜보고 돌아볼 뿐 아니라. 내 삶으로 녹이고 풀어서 품는 틈”을 둘 노릇이다.


  요즈음 쏟아지는 숱한 글(한국문학)은 으레 ‘구경글’이라고 느낀다. 구경글이기에 옮김말씨(번역체)가 춤춘다. 구경글은, 점잖게 “객관적 시선”이나 “적정한 거리”라는 일본말씨를 허울로 휘감는다. ‘삶글’도 ‘살림글’도 아니라서 구경글이다. “내 삶”이 아니기에 짐짓 팔짱끼고서 뒤로 물러난 몸짓으로, 내 너머에서 구경을 한다. 이윽고 구경눈에 길들고 물드느라, 한 발조차 안 담그고, 한 손조차 안 내민다. “내가 안 다치면서 길미만 누리는 데”라고 느낄 때까지 입다문다. 다칠 일이 없어도 입벙긋을 안 한다.


  옮김말씨는 하나같이 ‘졸졸졸(피동형·수동형)’이다. 우리말씨는 ‘스스로+몸소(능동형)’이다. 글결이 ‘졸졸졸(입음꼴)’이라면 문득 책을 덮고서 헤아려 보자. 이 글이나 책을 쓴 이는 왜 구경만 하면서 손도 발도 몸도 안 움직이는지 생각을 해보자. 왜 옮김말씨나 일본말씨를 안 버리는지 살펴보자. 굳이 옮김말씨나 일본말씨에다가, 일본말과 중국말과 영어를 잔뜩 곁들여서 글을 쓰는 까닭을 곱씹자.


  누구를 보는가? 저 먼발치 남을 보는가? 나와 너와 우리를 보는가? 글을 쓰고 싶다면 ‘자료조사’와 ‘증언수집’을 안 해야 할 노릇이다. 글쓰기를 바라면, ‘살면’ 된다. ‘살림하면’ 된다. 숲빛으로 푸르게 ‘사랑하면’ 된다. 삶과 살림과 숲과 사랑은 ‘입음꼴’이 없다. 모두 늘 ‘스스로+몸소’이다. ‘자료조사·증언수집’은 언제나 ‘졸졸졸’이면서 ‘남(사회·정부·우상·전문지식)’한테 기댄다. 남한테 기대는 곳에는 우리 나름대로 짓는 삶과 살림과 사랑이 없다. 초라하거나 가난하거나 모자라 보이더라도, 우리가 손수 짓고 몸소 하면서 스스로 펴는 삶·살림일 적에 바야흐로 ‘읽기(삶읽기·살림읽기·숲읽기·사랑읽기)’를 하기에, 저절로 ‘쓰기(삶쓰기·살림쓰기·숲쓰기·사랑쓰기)’로 거듭난다.


  글은 스스로 쓸 일이다. 스스로 살아낸 바를 쓸 적에 나랑 너를 살려서 하늘(하나인 우리)을 이룬다. 몸소 살림하는 바를 쓰기에 나하고 너가 만나는 우리(아우름)를 일군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바를 쓰니, 나도 너도 가만히 날개돋이를 하면서 파란바람으로 피어난다.


  너는 너를 보면 된다. 나는 나를 보면 된다. 너랑 내가 스스로 들여다보는 사이에 차분히 눈을 뜰 테니, 제빛을 바라보는 둘은 이윽고 한빛을 돌아보는 이곳을 편다. ‘시늉글(현대 한국문학)’이란 “남을 구경한 줄거리”이다. ‘참글(수수글)’이란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나로서 서는 오늘을 그리는 노래”이다. 같이 노래하니 즐겁다. 함께 노니 기쁘다. 수수하게 쓰니 스스럼없이 숲으로 간다. 수수꽃다리는 수수하게 빛나는 봄나무이다. ‘글감’이 아닌 ‘글’을 보려고 해야 비로소 너랑 나랑 우리를 읽어서, 이 별과 넋과 숨을 알아보며 쓸 수 있다. 2025.1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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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오늘 빌었어



새벽에 집을 나서는 길에

곁님과 아이한테 즐겁게 놀라 이르고서

나는 나대로 즐겁게 걷자고 빈다


아침을 지나가는 시외버스에서

옆자리 할머니가 팔뚝을 자꾸 툭툭 치니

나는 내 길과 길을 보자고 빈다


낮에 닿은 서울에서

올해 나올 그림책을 놓고서 얘기하는 자리에서

나는 나부터 웃으며 끝손질 하자고 빈다


저녁에 이르는 모임에서

함께 둘러앉은 〈악어책방〉 여러 이웃과

나는 나로서 빛나고

너는 너로서 비우고

함께 하루를 빚는

오늘밤 별빛노래를 빈다


2026.1.26.달.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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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재료 교유서가 시집 2
원성은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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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1.30.

노래책시렁 530


《비극의 재료》

 원성은

 교유서가

 2025.11.6.



  누구나 날마다 죽습니다. 언제나 날마다 태어납니다. 모든 숨붙이는 밤낮을 갈마들면서 죽살이를 잇습니다. 밤에 까무룩 죽기에 온몸에 새롭게 기운이 돌고, 새벽에 새롭게 밝는 하루이기에 차츰 힘을 차립니다. 아침이 환할 무렵에 즐겁게 기지개를 켜니, 낮에 나무와 나비라는 두 마음을 하나로 모두어 나로 서는 살림을 짓습니다. 이윽고 저물녘이면 차분히 모든 일놀이를 접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서 다시금 죽으러 갑니다. 《비극의 재료》를 돌아봅니다. 이 삶에는 눈물거리와 웃음거리가 나란합니다. 눈물만 흘리거나 웃음만 짓지 않아요. 가난하든 가멸차든 눈물웃음이 넘나들어요. 태어나거나 죽거나 두 손은 빕니다. 누구나 빈손에 빈몸으로 떠나고 돌아와요. 나고죽는 수수께끼를 날마다 스스럼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가 늘 나누는 모든 말이 바로 삶인 줄 알아챌 테고, 누구나 스스로 펴는 말씨 그대로 살림씨를 일구고 삶씨를 맞이하며 사랑씨를 피우는 줄 깨닫습니다. 돈이 많기에 느긋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기에 바쁘지 않습니다. 밤에 기꺼이 죽으면서 꿈을 새로 그리기에 느긋합니다. 아침에 기쁘게 태어나면서 꿈씨를 새로 심기에 즐겁습니다. 먼발치에서 글감을 안 찾으면 됩니다. 우리 삶이 다 다르게 글감입니다.


ㅍㄹㄴ


길 잃은 사람을 제외한 마을 사람들은 / 그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 안다 알고 지켜보고 걱정하고 관여하고 / 참견하고 간섭하고 괴롭힌다 가만히 두지 않아야 한다 (블랙박스 해체하기/12쪽)


죽었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한다 /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어서 / 살아 숨쉬면서 그 말을 정의하려고 노력해본다 (미싱링크/107쪽)


+


《비극의 재료》(원성은, 교유서가, 2025)


함께 좋아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 혼자서만 좋아하고 싶은 것도 있다

→ 함께 좋아하고 싶은 일이 있듯 혼자서만 좋아하고 싶은 일도 있다

→ 함께 좋아하고 싶기도 하듯 혼자서만 좋아하고 싶기도 하다

5쪽


태양을 맨눈으로 쳐다보면 앞이 캄캄해지니까

→ 해를 맨눈으로 쳐다보면 앞이 캄캄하니까

12쪽


장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 꽃찔레라는 이름과는 달리 아름답게 안 보인다

→ 꽃찔레라는 이름과는 달리 안 아름다워 보인다

14쪽


고유명사일까 일반명사일까

→ 홀이름일까 고루이름일까

→ 홑이름일까 두루이름일까

14쪽


결론은 아무튼 N분의 1일로 나눠 먹자는 뜻이야

→ 아무튼 나눠먹자는 뜻이야

→ 아무튼 나눠서 내자

→ 아무튼 도리기를 하자

18쪽


그걸 읽는 독자의 찡그림처럼

→ 읽는 사람이 찡그리듯

→ 읽으며 찡그리듯

→ 읽다가 찡그리는 사람처럼

22쪽


유통기한이 짧은 자의식을 가졌다 방치되어 잊히기에는 다급한 열망을 가졌다

→ 나를 잘 안 본다 팽개쳐서 잊힐까 서두른다

→ 나를 보는 틈이 짧다 내팽개쳐서 잊을까 조바심을 낸다

25쪽


새 한 마리가 아스팔트 위에 누워서 붉은 내장을 드러내놓고 죽은 장면을 목격했다

→ 새 한 마리가 길바닥에 누워서 붉은 속을 드러내놓고 죽은 모습을 보았다

→ 새 한 마리가 까만길에 누워서 붉은 배알을 드러내놓고서 죽었다

33쪽


폭우가 그렇게 좋았는지 온몸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 벼락비가 그렇게 반가운지 온몸으로 기뻐한다

→ 소나기가 그렇게 기쁜지 온몸으로 반긴다

49쪽


내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다가왔다

→ 그림자를 들여다보려고 다가온다

→ 그림자를 잘 보려고 다가온다

58쪽


누군가는 그것에 해체적이라고 누군가는 그것이 모던하다고 말한다

→ 누구는 풀어헤친다고 누구는 새롭다고 말한다

→ 누구는 찢는다고 누구는 산뜻하다고 말한다

→ 누구는 뜯는다고 누구는 반짝인다고 말한다

62쪽


비극의 구두점을 지뢰처럼 밟아 완성시키는 나의 눈사람

→ 몸서리를 쉬려고 펑 밟아 마무르는 이 눈사람

→ 눈물쉼꽃을 꽝 밟아서 맺는 이 눈사람

→ 동티를 마치려고 쾅 밟아 끝내는 눈사람

73쪽


그것이 검은 백조였다는 것을 안다

→ 그 새는 검은고니인 줄 안다

90쪽


양치류를 채집하는 소녀는

→ 민꽃풀을 모으는 아이는

→ 홀씨풀꽃을 담는 아이는

100쪽


우성과 열성은 일란성쌍둥이

→ 첫씨와 뒷씨는 나란둥이

→ 윗씨와 밑씨는 한둥이

→ 큰씨와 작은씨는 함둥이

→ 으뜸씨와 버금씨는 나란꽃

110쪽


난분분하게 흩어지는 모래알들

→ 흩어지는 모래알

→ 나풀거리는 모래알

→ 흐늘거리는 모래알

11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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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문학동네 동시집 78
문신 지음, 임효영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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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6.1.30.

노래책시렁 534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문신 글

 임효영 그림

 문학동네

 2020.9.7.



  우리가 마음을 쓰는 길에 따라서 말을 스스로 바꿉니다. 겉으로 귀엽거나 예쁘게 꾸미려는 길에 마음을 쓰면, 말도 어느새 귀염귀염 꾸미고 예쁘게 씌우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말과 마음뿐 아니라 삶이 나란히 흔들립니다. 귀엽게 차려야 먹을 밥이 아니고, 예쁘게 차려야 입을 옷이 아니며, 예쁘게 꾸며야 살아갈 집이지 않습니다. 글과 말과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쁘게 겉옷을 입힌들, 귀엽게 말을 꾸민들, 그냥 겉치레에 겉훑기로 그칩니다.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를 읽으면서 막상 ‘바람’이 ‘눈’을 어떻게 ‘빛’으로 흐르는지 느끼기 어렵습니다. ‘동시’라는 글을 ‘색동회 동심천사주의’마냥 그저 귀염귀염으로 꾸미면 된다고 잘못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온나라 모든 아이를 사납게 찍어누르면서 ‘꾸며쓰기·꾸며말하기’를 시키던 틀 그대로 옮기는 ‘동시’라면, 굳이 오늘아이한테 읽혀야 할 뜻이 없다고 느껴요. 지난날 ‘동심천사주의 동시’는 먼발치에서 하느작거리며 구경하며 노닥거리는 줄거리였다면, 오늘날 ‘동심천사주의 동시’는 모든 아이가 일찍부터 짝짓기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얼개입니다. 꿈씨가 없는 글쓰기라면 ‘글씨(글씨앗) 흉내’로 그치거나 맴돕니다. 아이는 손으로 뭘 해야 하고, 발로 어딜 디뎌야 할까요?


ㅍㄹㄴ


저녁에는 / 강가에 나가 볼까 해요 // 혹시 알아요? / 자전거를 세워 놓고 / 저녁 강가에 앉아 있던 / 조그마한 아이가 / 아주 멀리까지 나를 팔매질할지 (강가에 굴러떨어지는 돌멩이/17쪽)


좋아한다는 말 꿀꺽 삼켜 버렸던 / 횡단보도까지 말고 / 버스 정류장까지만 / 뒤로 / 뒤로 / 더 걸어 볼 거예요 (뒤로 걸으면/21쪽)


무엇보다도 / 선생님 말씀을 골똘하게 듣는 / 내 짝 수지 왼쪽 볼에 / 콩닥콩닥 / 조그맣게 볼우물이 생기는 시간 (열한 시/22쪽)


윤이가 좋다, 라고 / 놀이터 모래 위에 쓰는데 / 나비 한 마리 / 그걸 읽고는 / 팔랑 / 날아간다 / 나는 얼른 / 발로 쓱쓱 글자들을 지워 버렸다 (윤이가 좋다/43쪽)


겨울밤에는 / 참 / 궁금한 것도 많다 // 눈은 / 왜 / 도둑처럼 내리는지 // 바람은 / 왜 / 화살처럼 날아다니는지 (겨울밤/46쪽)


무심코 /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 저녁 하늘에 / 쨍 / 구멍이 났다 (반달/95쪽)


+


《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문신, 문학동네, 2020)


뭔가 지나간 것 같다면

→ 뭐가 지나간 듯하면

10쪽


열두 개나 되는 투명한 손가락을

→ 열둘이나 되는 맑은 손가락을

10쪽


그날이 자꾸만 기다려진다

→ 그날을 자꾸 기다린다

→ 그날을 자꾸자꾸 기다린다

16쪽


후― 하고 내쉬었던 한숨도

→ 후 하고 내쉬던 숨도

→ 후 하고 한숨을 쉬던

20쪽


하루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 오늘 하루 가장 즐거운 때

→ 이 하루에서 가장 반기는 때

23쪽


놀이터 모래 위에 쓰는데

→ 놀이터 모래에 쓰는데

→ 놀이터 모래밭에 쓰는데

43쪽


쓱쓱 글자들을 지워 버렸다

→ 쓱쓱 글을 지워버린다

→ 쓱쓱 글씨를 지워버린다

43쪽


양지쪽에 피었다

→ 볕달에 핀다

→ 볕자리에 핀다

66쪽


무심코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 문득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 그냥 돌멩이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95쪽


도서관에 얼마나 많은 늑대를 키우고 있는지 몰랐던 거예요

→ 책숲에 늑대를 얼마나 많이 키우는지 몰랐어요

10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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