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메뚜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3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정근 옮김 / 보림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내 삶을 아름다이 가꾸자
 [그림책이 좋다 58] 다시마 세이조, 《뛰어라 메뚜기》



- 책이름 : 뛰어라 메뚜기
- 글ㆍ그림 : 다시마 세이조
- 옮긴이 : 정근
- 펴낸곳 : 보림 (1996.9.20.)
- 책값 : 8000원



 (1)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


 옆지기가 먹을 푸성귀를 장만하러 생협 나들이를 갑니다. 그러나 오늘은 생협 매장 문을 열지 않아 헛걸음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옵니다. 어제 다녀왔어야 했다고 생각해 보아야 벌써 지나간 일입니다. 하는 수 없이 생협보다 비싸고 멀리 있는 ㅇ마트까지 가서 장만해야 합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다른 골목을 걷습니다. 가는 길은 늘 걷는 안쪽 샛골목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자동차 많이 오가는 싸리재 찻길로 다니지만, 우리는 이 찻길 바로 옆으로 난 골목집 사이를 잇는 ‘자전거도 못 지나가고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샛골목을 걷습니다.

 벌써 몇 해째 거니는 길인데, 이 길을 걷는 하루하루 새롭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새롭기도 하지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릅니다. 어제 못 본 모습을 오늘 보고, 오늘 못 본 모습은 내일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골목집 가운데 어느 한 집에 눌러살게 되더라도 날마다 다른 집살림을 느끼게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경동 샛골목을 지나다가, 27번지 문패를 보고는 우뚝 걸음을 멈춥니다. 볕이 잘 안 드는 자리에 있기는 해도, 비와 바람에 닳고 낡은 문패는 이 집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도록 뿌리내리면서 삶을 이어왔는지 보여줍니다. 이제는 빈집이 된 이곳, 앞으로 어찌 될는지 알 수 없는 이곳, 이제 이 집이 재생사업이니 도시정화사업이니 하는 이름으로 헐리게 되면, 문간에 아주 단단히 붙여놓아 떨어지지도 않을 터라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릴 저 문패며 집이며 대문이며 …….


.. 조그마한 수풀 속에 메뚜기 한 마리가 숨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무서운 녀석들이 메뚜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지요. 그래서 메뚜기는 날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살았습니다 ..  (2∼4쪽)


 아침에 아기를 씻기고 빨래를 하니 금세 낮으로 바뀝니다. 넘어져 다친 손가락과 팔꿈치 아픔을 찌릿찌릿 느끼면서 비빔질을 하고 물짜기를 합니다. 부시시한 눈도 비비면서 빨래를 모두 끝마치고 옥상마당에 차곡차곡 내다 널고 걸고 나니 조금은 개운합니다. 삼월을 맞이하며 한결 따뜻해졌다고 느껴지는 이 햇볕을 쬐는 빨래는 한결 보송보송 마르며 아기 몸한테도 고운 햇살을 이어주리라 믿습니다.

 한동안 옥상마당을 서성이며 둘레 골목집을 둘러봅니다. 바지런한 골목집에서도 아침 빨래를 마치고 저마다 저희 옥상마당에 빨래를 내다 넙니다. 옥상마당이 따로 없는 골목집은 창문가나 골목가에 빨래줄을 이어 넙니다. 모르는 사람은 골목집과 골목집 사이에 줄이 왜 이어져 있는지 모르기 일쑤이고, 또 지저분하게 이런 줄을 왜 이었느냐 궁시렁거리기도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 메뚜기는 이런 곳에서 겁먹고 사는 것이 몹시 싫어졌어요 ..  (7쪽)


 제가 처음 태어난 동네를 서른 몇 해 만에 찾아가 ‘떠오르지도 않는 그 옛날’ 모습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또 숱하게 옮겨다니며 살았다는 동네를 하나하나 되찾으며 ‘그때 어느 집에 살았을까’ 곱씹으며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리고 고향땅이 싫어 서울로 충주로 또 다른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으로 떠돌며 지내던 때에도 이곳에 고이 남아서 살아온 사람들 삶자락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아립니다. 저로서는 ‘적바림하는’ 사진(기록사진, 다큐사진)이 아님에도 제가 찍는 사진을 적바림 사진으로만 여기는 사람둘 눈길이 슬프고, 제가 만나고 부대끼는 사람들 삶터가 ‘없어져야 할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 마음이 슬프며, 고향 없이 돈만 바라며 집자리를 옮겨다니게 되는 사람들 모습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나무처럼 뿌리내리면서 싱그럽고 시원한 그늘을 백 해 이백 해 즈믄 해 선사하는 사람으로는 살아가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산처럼 우람하고 튼튼하게 선 채로 맑고 밝은 숨결을 널리널리 고이고이 베푸는 사람으로는 살아내지 못할까요.

 돈이 되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웁기에 하는 일이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재미가 있어야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고 넉넉해지기에 함께하는 놀이가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이름값을 높여야만 맡는 자리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맡는 자리가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 메뚜기는 커다란 바위 꼭대기로 나와 대담하게 햇볕을 쬐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뜨여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  (10쪽)


 빨래를 마치고 쌀을 씻다가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누런쌀에 온갖 다른 곡식과 콩팥을 잔뜩 섞어 먹는 밥이 맛있다고 여기고, 여느 흰쌀밥은 도무지 씹을 수 없어 맛없다고 느끼는데, 어쩌면 우리 삶이 하루하루 흰쌀로만 밥을 먹듯 우리 생각과 삶도 흰쌀처럼 되어 가고 있지 않느냐고.

 사람몸에 도움되는 알맹이를 다 깎아내어 허여멀겋게 남은 흰쌀로 지은 밥이 마치 좋은 밥이라도 되고 맛난 밥이라도 되는 양 잘못 알듯 우리 생각과 삶도 흘러가지 않느냐고.

 버려지는 알맹이마냥 우리 몸과 마음에 깃든 아름다움을 우리 스스로 내동댕이치거나 내버리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들 모두한테는 마음자리 깊숙한 데에 하느님이 살아 있는데, 우리 마음자리에 깃든 하느님은 못 본 채 절집과 예배당과 성경과 불경만 파고드는 우리들이 아니냐고.


.. 이제는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메뚜기는 온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습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위로 떠올랐습니다. “아니 저게 뭐야. 뭐가 저렇게 날아?” 잠자리가 사뿐 날아들며 메뚜기를 비웃었습니다. “하하하. 저런 엉터리 날갯짓!” 나비들이 나풀나풀 가볍게 날면서 떠들어댔습니다 ..  (26∼28쪽)


 보채고 꿍얼대다가 엄마젖을 물고 가까스로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오늘은 아직 아침똥을 누지 않는데, 몸이 안 좋고 힘이 드는가 봅니다. 아기야, 네가 튼튼하게 놀고 먹고 자고 옹알이를 해야 엄마도 한결 즐겁고 고된 몸이 놓이면서 너한테 더 맛나고 좋은 젖을 줄 수 있단다, 부디 새근새근 잘 자고, 이따가 일어나면 다시금 신나게 놀자꾸나.


 (2) 《뛰어라 메뚜기》는 어떤 그림책인가


 1996년에 《뛰어라 메뚜기》(보림)가 옮겨진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책은, 2002년에 《늑대의 돼지 꿈》(현암사)이 두 번째로 옮겨지고, 2002년에 《1111마리의 벼룩과 고양이》(효리원)가 세 번째로 옮겨지며, 2006년에 《채소밭 잔치》(우리교육)가 네 번째로 옮겨진 다음, 2007년에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우리교육)이 다섯 번째로 옮겨지고, 지난 2008년에 《쿨쿨쿨》(보림)이 여섯 번째로 옮겨집니다.

 투박하면서 수수한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결은,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마음껏 즐기는 그림결처럼 느껴집니다. 어른이면서 어린이 같은 그림을 흉내내는 분들이 제법 많고, 이런 그림이 퍽 사랑받고 있음을 헤아린다면,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은 ‘어떤 유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이들 그림 같은 그림’하고 다른 대목이 있어, 이분 그림책이 사랑받고 또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첫째로, 아이들은 다시마 세이조 님처럼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거침없으면서 투박한 그림이지만, 이 거침없음과 투박함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 스스로 녹여낸 붓질이지, 이제 막 붓을 잡은 아이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거침없음과 투박함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어설픈 잔재주나 섣부른 아이 흉내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녹여낸 거침없으며 투박한 이 붓끝으로 ‘아이와 함께 나눌 삶과 생각’을 차분하게 담아냅니다.

 둘째로,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은 어른입니다. 아이는 아이 삶이 있고 어른은 어른 삶이 있습니다. 어른은 아이 때를 거쳐 어른이 되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세상 보는 눈을 좀더 기르게 됩니다. 어른인 그림쟁이가 펼쳐 보이는 그림책은 아이한테 주는 선물이면서 아이 때를 거친 자기 발자국이고, 선물을 받아든 아이들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고마운 눈물입니다. 그래서 잘 빚은 그림책은 억지로 떠먹이지 않는 몸에 좋으며 맛난 밥과 같고, 잘못 빚은 그림책은 아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아이가 거스르게 되는 달갑잖은 먹을거리와 같습니다.

 셋째로, 오래도록 서로서로 함께 나눌 이야기를 곰삭입니다. 어른으로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고, 어린이로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저마다 다르게 찾습니다. 이런 길찾기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또 어른대로 서로서로 눈을 마주하고 몸을 맞대면서 저절로 느낍니다. 겉으로 사랑한다 하는지, 입으로만 사랑한다 읊는지, 속으로 사랑하는구나 느껴지는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지를, 서로서로 찬찬히 헤아립니다.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책은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이와 함께 즐거울 길을 차근차근 뚫고 가꾸고 돌보며 몸소 걸어가는 마음자락을 담아내는 놀이이면서 일입니다.


.. 하지만 메뚜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날 수 있으니, 정말 기쁘고 즐거웠거든요. 메뚜기는 높이높이 날았습니다. 자기 날개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갔습니다 ..  (30쪽)


 《뛰어라 메뚜기》라는 그림책은, 그린이 스스로 ‘뛰고 싶은 삶’을 보여줍니다. 스스로 펄쩍 뛰어오르려는 몸가짐을 보여줍니다. 부딪혀서 온몸이 조각조각 부수어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거나 뒤에 숨어 있는 채로 밟혀 죽거나 잡혀 찢어져 죽고 싶지 않은 메뚜기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주 작은 한 가지부터 고쳐 나갈 길을 찾고, 이러한 길을 남들보고만 가라 하지 않고 스스로 먼저 갑니다. 말보다 몸이 먼저이고, 몸이 가면서 살며시 말을 건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 아름다워져야겠지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겠지요. 비록 아름다워지려고 애쓰고 힘써도 아름다움에 가까이 닿지 못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꾸준하게 애쓰고 한결같이 힘쓰는 삶이 바로 아름다움일 수 있어요. 이런 넋과 생각과 삶이 그림책 《뛰어라 메뚜기》에 고이 담깁니다. “전쟁이 싫어요!” 하고 외치는 목소리 하나로 전쟁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나, 바로 이 조그마한 목소리 외침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발걸음 하나입니다. 그런 다음, 자기한테 싫은 전쟁을 맞이하지 않을 길을 하나씩 찾고,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가꿀 일거리를 찾으며,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불러올 사람 사귐을 헤아리는 가운데, 전쟁을 내어쫓고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할 삶이란 어떻게 가꾸는가를 톺아보면서 스스로 일구게 됩니다.


.. 메뚜기는 황무지를 지나,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  (32∼34쪽)


 두꺼비, 뱀, 사마귀, 거미, 새, …… 여기에 사람까지. 메뚜기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녀석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이 짜증스럽고 무서운 녀석들한테서 몸을 숨기면서 아주 외롭고 쓸쓸하게 어두운 구석에 갇혀 지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이 부서지거나 목숨마저 잃을지라도 다부지고 당차게 몹쓸 녀석들하고 한판 붙을 수 있습니다. 굳이 한판을 붙지 않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밝고 맑게 살아갈 길을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좀 굶주리더라도, 좀 헐벗더라도, 좀 가난하더라도. 좀 고달프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좀 괴롭더라도. 좀 벅차더라도 나와 같은 길을 가는 벗을 만나며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됩니다. 좀 고단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걷는 이웃을 사귀며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며 사랑힘을 키웁니다. 좀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밑바탕부터 다지면서 우리 스스로와 우리 뒷사람 모두한테 흐뭇할 터전을 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바야흐로 거칠고 메마른 땅을 훨훨 날아서 가로지르고, 우리가 꿈꾸던 싱그럽고 고운 세상에 가 닿게 됩니다. (4342.3.1.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랑 가방 일공일삼 8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 글, 에스페란자 발레주 그림, 하윤신 옮김 / 비룡소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 하나 91 ― 가난한 사람만이 책을 읽고 사랑한다
 : 리지아 누네스, 《노랑가방》



- 책이름 : 노랑가방
- 글 : 리지아 누네스
- 그림 : 하윤신
- 옮긴이 : 길우경
- 펴낸곳 : 민음사 (1991.3.20.)



 (1) 나는 빈민입니다


 국어사전에서 ‘빈민(貧民)’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가난한 백성”이라고 나옵니다. ‘영세민(零細民)’이라는 낱말도 찾아봅니다. 이 낱말은 “수입이 적어 몹시 가난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사람들이 빈민과 영세민을 말할 때에는 조금 다른데, 빈민보다는 영세민을 조금 낫게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느냐 싶고, 빈민이라 하면 꼭 구질구질하거나 꾀죄죄하거나 변두리로 내몰려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빈민이든 영세민이든 자기도 모르게 세금을 냅니다. 세무서에 대놓고 내는 세금은 거의 없다고 할 터이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크고작은 간접세를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땅속에 묻힐 때까지 끊임없이 내게 됩니다.

 예부터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습니다만, 가난한 사람들 누구나 “나라를 먹여살린다”면서 세금을 내고 있는데, 세금을 받아먹은 나라가 세금을 내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어딘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그치지 않습니다. 가난이야말로 나라가 먹여살리거나 보듬어야 할 대목이고, 나라살림 북돋우기란 바로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어루만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그렇담 왜 여자 친구가 아니라 남자 친구를 생각해 냈지?” “왜냐면 여자보다는 남자인 게 훨씬 더 좋기 때문이에요.” 오빠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니?” “그래요, 정말이에요. 오빠 같은 남자들은 나 같은 여자들이 할 수 없는 것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보세요. 학교에서 어떤 놀이를 할 때도 대장을 뽑으면 늘 남자애들이에요. 집안의 가장도 남자고요.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사람들은 나보고 남자애들 운동이래요. 내가 연을 날리고 싶어해도 마찬가지고요. 나 같은 여자애들은 바보가 될 때까지 어리석게 굴 수밖에 없어요. 모두들 늘 오빠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고 책임을 짊어지게 될 사람이라고 하고― 간단히 말해서 오빠가 모든 걸 갖게 될 거예요. 모든 걸. 결혼하는 것까지도. 식구들은 오빠가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리죠. 식구들은 늘 오빠가 우리 대신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를 바래요. 한 가지 알려 드릴까요? 난 소녀라는 게 힘든 거라고 생각해요.” ..  (20∼21쪽)


 엊저녁,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빈민’으로 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뇝니다. 저 스스로 도시에서 빈민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빈민인 주제(?)에 글도 쓰고 사진도 찍습니다. 그러나 빈민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부자인 사람은 글을 쓸 일도 사진을 찍을 일도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배가 부르니 배 두들기며 놀게 된다고 느끼며, 배가 고프니 책을 펼치게 된다고 느낍니다.

 가난하게 배우는 학생이 책을 펼치고, 넉넉하게 배우는 학생이 술잔을 붙듭니다. 가난하게 사는 어른이 좁은 방구석에서 아이와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며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고, 넉넉하게 사는 어른이 아이 손을 잡고 고기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가용 타고 아파트로 돌아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젊음을 보내는 동무가 세상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넉넉하게 태어나 젊음을 누리는 동무가 사랑놀이를 신나게 하고 또 합니다. 가난한 마음이기에 절집에 가고 예배당에 갑니다. 가난한 생각이기에 부처님이든 하느님이든 고운 말씀을 차근차근 받아먹습니다. 가난한 넋이기에 누구 앞에서라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서 말을 낮춥니다. 가난한 몸이기에 두 발을 땅에 디디고 두 손으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 난 집으로 돌아와서, 노랑가방 속에 물건들을 정리해 넣었다. 나의 이름 주머니를 정리해서 아코디언 주머니 속에 넣었고, 긴 주머니는 그 안에 숨겨 둘 날씬한 것을 찾을 때까지 비워 두기로 했다. 애기 주머니 속에는 내가 길가에서 주운 옷핀을 넣었고, 단추 있는 주머니 속에는 집 정원을 그린 그림과 다른 그림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넣었다. 지퍼 달린 주머니 속에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집어넣고 잘 잠그었다. 또 하나의 지퍼 달린 주머니 속에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더 깊숙히 넣어 두고 잘 잠그었다. 마지막 남은 단추 달린 주머니 속에는 소년이 되고 싶은 욕망을 넣었다(그 욕망은 너무 커서 단추 닫는 데 애를 먹었다) ..  (39쪽)


 옆지기와 함께 밥을 먹고 아기한테 옷과 밥과 집을 내어주면서 우리 살림살이로 이 동네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돌아보면 늘 아찔합니다. 그러나 용케 살아갑니다. 동네 도서관도 용케 열어 놓고 있으며, 없는 살림에도 새롭게 사들이는 책은 꾸준합니다. 없는 살림에도 몇 군데 시민모임에 뒷배하는 돈을 내고, 없는 살림에도 이웃한테 책 선물을 하며, 없는 살림에도 생협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합니다.

 그러나, 없는 살림이었기 때문에 더 알아보게 됩니다. 없는 살림이기 때문에 가림 없이 먹어대지 못합니다. 없는 살림이라서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은 돈 한푼 함부로 못 씁니다. 이 한푼을 어디에서 써야 할는지, 이 한푼으로 무엇을 해야 할는지, 이 한푼을 손에 쥐기까지 어떤 땀을 흘려야 했는지를 곱씹게 됩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틀림없이 책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반드시 자전거를 타지 않았습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꼭 고등학교만 마칠 생각이 아니었을 터입니다. 있는 살림이었다면 굳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뿌리내리며 살 까닭이 없습니다.

 없었기에 책방을 찾고, 없었기에 더 바지런히 책을 넘겼으며, 없었기에 더욱 두 다리와 자전거에 기댄데다가, 없었기에 대학교육이 내 삶에 도움될 일이 없다고 느껴 선선히 멀리할 수 있었습니다.


.. “내가 이기는 걸 너에게 보여주려고. 그것도 쉽게 이기는 걸.” “그럼 우리가 벌써 한 판 대결해서 네가 이긴 걸로 하자.” 그는 맹렬이의 날갯죽지를 쳐들고 소리쳤다.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맹렬이는 어리둥절해 있었다. “넌 져도 괜찮아?” “물론이지.”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지?” … “맹렬이는 싸움밖엔 생각하는 게 없어. 정말로 사람들이 맹렬이의 다른 생각들을 꿰매 버린 걸까?” ..  (72, 76쪽)


 “최종규 씨는 영세민이 아니에요. (철거민도 아니고) 빈민이에요.”

 이 말을 듣고 제 삶터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제가 사는 골목동네는 ‘재개발’이 아닌, 그리고 ‘재생사업’조차 아닌 ‘도시정화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헐리게 됩니다. 아마도. 2013년까지.

 2009년까지 우리 골목동네를 허물고 싶던 인천시 공무원과 개발업자였으나, ‘2009 세계도시축전’을 치를 돈이 모자라 어영부영 ‘도시정화사업’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만, 2014년 아시아경기를 치를 때까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를 비롯한 이웃 빈민을 싹쓸이하듯 인천에서 내쫓고 싶다고, ‘도시재생국장’이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또박또박 힘주어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저나 이웃 빈민은 얌전히 있지 않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면서 따집니다. 도시재생국장은 조용히 우리들 빈민 외침을 듣다가, 도시정화사업이 끝나면 처음 이곳에 살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살 수 없음은 잘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영세한 주민이 재정착을 할 수 있게 돈을 쓸 생각이 없다고 다시금 또박또박 힘있게 말합니다.

 그 거침없는 또박또박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구나, 저 도시재생국장이라는, 이름도 참 그럴싸하게 잘 지은 ‘도시재생국’이라는 관공서 부서 우두머리인 저분은, 책을 안 읽는 분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책을 안 읽는 사람하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다는 생각이 잇따라 듭니다.

 너무 배부르게 살고 있기에, 너무 넉넉하게 살고 있기에, 너무 모자람이나 아쉬움 하나 없이 살고 있기에, 너무 넘치게 살고 있기에, 너무 많이 벌고 너무 많이 쓰며 살고 있기에, 자기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달삯을 받고 있는 줄을, 그리고 우리 골목동네 허무는 돈을 바로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하는 일임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깨닫습니다. 톨스토이 님이 왜 소설쓰기를 하다 말고 《국가는 폭력이다》와 같이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인 책을 썼는가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 “넌 전에는 뭘 했니?” 그는 핀 끝으로 헝겊 위에 금을 그으며 대답했다. “난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었어.” “그래?” “난 공장에서 나올 때 포장이 잘못되었어. 그래서 남들과 같이 있으려고 온힘을 다해 끝을 붙잡고 있었지만 결국은 길가에 떨어졌어.” “그런데 넌 다시 일어나지 않았어?” “내가 몸을 일으켜세울 때마다 사람들이 내 위를 밟고 지나갔어.” “아무도 널 보지 못했단 말야?” “사람들이 날 알아보았을 땐, 난 이미 온통 녹슬어 있었어. 그래서 아무도 날 가지려고 하지 않았어.” ..  (56쪽)


 믿음이 없으니 절집을 크게 짓고 탑을 높이 세웠음을 바야흐로 깨닫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예배당을 크게 짓고 십자가를 높이 올림을 바야흐로 깨닫습니다.

 성철 스님 법어집을 읽다가, 성경책을 읽다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라는 대목에서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는데, 믿음이 여리니 우찌무라 간조라는 이가 무교회주의를 말하고,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이가 빈민굴에서 어깨동무하는 삶을 진보 지식인한테 말할 때, 제대로 알아들은 이가 없었다고 깨닫습니다.

 지난날 절집은 오늘날 문화재가 되는데, 오늘날 예배당은 앞으로 백 해쯤 뒤에는 멋들어진 우리네 문화재가 되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벌써부터 수많은 성당은 ‘백 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지역문화재가 되어 가고 있어요.


.. “아주머니는 알베르토가 하는 건 뭐든지 재미있다고 생각하시죠? 그애가 세상에서 가장 바보스런 짓을 해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시겠죠.” 언니가 눈을 찌푸렸다. “아주머니께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라.” “아주머니는 알베르토가 내게 무슨 짓을 하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왜 아주머니께 신경을 써 드려야 해요?” “라켈!” “언니는 왜 늘 아주머니께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라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왜 아주머니에게 늘 아첨을 떨지?” “라켈, 그만두라고 말했잖아!”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부자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그만두지 못하겠니.” “가방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늘 선물을 주니까 그런 거지, 그치?” “그∼만!!!” ..  (95쪽)


 둘레에서 저보고 ‘돈 좀 많이 벌어야 아기도 나중에 커서 아빠 미워하지 않지.’ 하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싱긋 웃으면서 아무 말을 않곤 하지만, 때때로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고 안 벌어도 돼요. 지난번에 춘천에 나들이 다녀올 때 그곳에서 뵌 분이 우리보고 당신은 당신 아이가 어릴 적에 많이 안아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우리는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기쁨이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보람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꾸하곤 합니다.

 저로서는 좋은 하늘나라에 갈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지금 저지르는 잘못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죽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태어날 때에는 첫째로 짐가방으로 되고, 둘째로 자전거로 되고, 셋째로 고무신이 되고, 넷째로 빨래비누가 되고, 다섯째로 연필이 되고, 여섯째로 수첩이 되고, 일곱째로 사진기가 되고 …… 지금 무척이나 애먹이는 님들한테 갚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간다고 해서 걱정입니다. 저로서는 마음도 생각도 말도 살림도 집도 책도 그 무엇도 넉넉해지고픈, 그러니까 부자가 되고프지 않은데, 그예 가난을 둘도 없는 벗이나 님이자 옆지기자 이웃이자 어버이자 아이자 제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갈 뿐이고 살고픈데, 가난하지 않은 삶을 꿈꾸지 않는데, 가난한 헌책방 나들이를 좋아하고 가난한 골목길 나들이를 즐기며 가난한 동무와 이웃하고 사귀면서 재미가 쏠쏠한데, 하늘나라 문은 가난한 이한테만 열려 있다고 하니, 어느 모로나 근심입니다.
 





 (2) 어린이문학 《노랑가방》이 들려주는 세상


 어린이문학 《노랑가방》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책이 판이 끊어졌을까 궁금했으나, 틀림없이 어느 출판사에선가 다시 냈을 테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를 하니, 제 생각대로 다시 나왔으며 무척 사랑받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민음사에서 1991년에 처음 냈다가 1995년에 문예공간에서 다시 냈고, 1996년에 비룡소에서 고침판으로 해서 새 그림을 담아 거듭 펴냈습니다. 새판을 내놓으면서 글쓴이 이름을 ‘리지아 누네스’에서 ‘리지아 보중가 누니스’로 고쳐 적습니다.


.. “왜 너의 아빠가 요리를 하고, 엄마가 냄비를 고치는 일을 하는 거니?” “왜냐면 오늘 엄마는 벌써 요리를 많이 했구, 아빠는 꽤 많은 것들을 수선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벌써 공부를 많이 했고, 할아버지는 냄비 때우는 일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시간이 됐으니까 이제는 일을 서로 바꾸는 거야.” “왜?” “누구도 한 가지 일을 너무 오래 하지 않기 위해서지. 아무도 자기가 하는 일이 남이 하는 일보다 더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할아버지는 그럼 공부를 한단 말야?” “응.” “그렇게 나이가 드셨는데도?” …… “할아버지는 겉모습만 늙으셨어. 할아버지 마음은 늘 젊고 새로운걸.” “어떻게?” “늘 공부하시기 때문이지. 아빠나 엄마보다도 더 많이.” “부모님도 공부하시니?” “우리 집에선 누구나 공부를 해.” “언제나?” “응, 언제나 배울 게 있거든.” “각자 어떤 공부를 하라고 누가 결정하니?” “무슨 말이야?” “누가 그런 것들을 결정하니? 누가 대장이니?” “대장?” “응, 집의 대장, 가장 말이야. 그게 누구지? 아빠니, 할아버지니?” “왜 가장이 있어야 하는데?” ..  (140∼141쪽)


 《노랑가방》에 나오는 주인공 ‘라켈’은 가난한 집에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계집아이입니다. 왜 천덕꾸러기이느냐 하면 ‘사내아이가 아닌 계집아이’이기 때문이고, 형제나 식구들과는 다르게 ‘돈에 크게 욕심이 없고, 겉멋과 겉치레에는 마음을 안 쏟기’ 때문입니다. 꾸밈없는 삶을 좋아하고, 푸대접받는 작고 하찮다 싶은 물건을 아끼며, 다치거나 아픈 목숨붙이를 고이 껴안습니다. 집에서는 어느 누구하고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기에 홀로 생각에 잠기다가 스스로 소설을 쓰기로 다짐을 하고, 참말 소설을 씁니다. 어쩌면 이 《노랑가방》은 동화에 나오는 라켈이 쓴 이야기가 아닐까 싶고, 글쓴이 어릴 적 삶이 꼭 라켈이라는 아이가 보낸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죄다 꽉 막힌 사람뿐인데다가 빛줄기란 하나도 없어 외로움을 느끼는 삶.

 그런데 그 괴롭고 고달프던 삶에서 조그마한 틈을 하나 찾았고, 이 틈에서 아주 조용하고 낮게 살아가는 ‘참멋’을 나누는 이웃을 봅니다. 이제까지는 오로지 슬픔과 어둠뿐이었는데, 이제부터는 한결같은 기쁨과 밝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 라켈은 어린이에서 푸름이(청소년)로 거듭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 마음에 박혀 있던 선입관과 편견을 하나씩 느끼면서,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배웁니다.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배우면서, 이 즐거움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도록 자기 매무새를 추스르게 됩니다.


.. 기쁨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로렐라이의 엄마는 정말로 여자인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 로렐라이는 작은 소녀인 것에 기뻐했다. 그 아이는 소녀인 것이 소년인 것만큼이나 좋다고 생각했다. 어쩜 이게 사실일까? ..  (146쪽)


 다 읽은 책을 옆지기한테 건넵니다. 옆지기가 읽고 나서는 도서관 책시렁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난 다음 신나게 읽을 책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우리 살림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가난하다면 아이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읽을 책이 또 하나. (4342.2.28.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어머니 이야기 1부 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글.그림 / 새만화책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한테 선물하고 나란히 누워 읽을 만화책
 [살가운 만화 42] 김은성, 《내 어머니 이야기 (1부)》



- 책이름 : 내 어머니 이야기 (1부)
- 글ㆍ그림 : 김은성
- 펴낸곳 : 새만화책 (2008.12.1.)
- 책값 : 13000원


 (1) 재미있게 나눌 우리 삶자락 이야기는


 처음에는 아기 얼굴 오른쪽 눈가에 살짝 생채기가 났습니다. 아기가 자면서 혼자 간지럽다고 긁으면서. 그런데 이 생채기에 딱지가 앉아 떨어질 무렵 또 긁어서 다시 덧나고 거듭 덧나다가는 차츰 볼과 귀로 오돌도돌한 녀석이 번지더니 온 얼굴 가득 벌겋게 되어 버립니다. 이웃에서는 이 모습을 보며 태열이니 아토피이니 하고, 일산 식구들은 얼른 병원에 가자고 채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아기가 제 얼굴을 긁지 않도록 하면서 엽록소물을 만들어 바르고, 생협에서 파는 아기 화장품을 살짝살짝 발라 줍니다. 나무숯물을 탄 물로 자주 얼굴을 닦아 주면서 하루하루 기다리는 동안,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엄마 밥차림을 바꾸기로 합니다. 우리 세 식구는 아빠(저) 일 때문에 여러모로 돌아다닐 일이 많고, 일산 옆지기 식구들 사는 집에 가서 여러 날 머물면서 옆지기가 폭식을 하는 때가 잦아서, 이 모든 흐름이 아기한테 이어지지 않았느냐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옆지기는 오롯이 생채식만 하기로 하고 줄기푸성귀와 뿌리푸성귀에 김하고 미역만 먹으려 합니다.

 애 아빠도 함께한다면 좋을 테지만, 이렇게 생채식만 하자면 도시에서는 푸성귀 값이 장난이 아니라 애 엄마만 하기로 합니다. 우리가 시골 살림이라면 조그마한 텃밭 하나로 모든 푸성귀를 거두어 먹을 텐데, 다른 집에서도 비슷비슷한 걱정을 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일산으로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 우리 아기를 들여다본 어느 할배가 그러더군요. “저런, 애기 저럴 때는 물 좋고 공기 좋은 데 가면 금방 낫는데.”
 





..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1907), 함경도 어느 마을에 한 여인네가 살고 있었다. 열여섯 살에 시집와서 3년 만에 막 첫딸을 낳은 상태였다. 그로부터 3년 뒤 둘째 딸을 낳았고, 둘째 딸을 낳은 4년 뒤 4대 독자 아들을 보았다. 홀시아버지와 어린 시누이 둘, 남편과 자꾸 불어나는 아이들을 거두며 살았다. 그래도 농토는 넉넉한 편이어서, 다른 집들이 하는 양식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지만, 장정 하나 없는 집에서 넓은 농토를 남편과 함께 직접 경작도 하고 일꾼을 쓸 때는 일꾼들 밥도 해 주느라 쉴 새가 없었고, 조상님 모시기도 소홀할 수 없는 노릇이라 여인네는 제삿날이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북새통 속에서 여인네는 애를 계속 낳았는데 아들 낳은 지 6년 만에 넷째 딸을 낳았고, 넷째 딸을 낳은 지 4년 만에 다섯째 딸을 낳았다. 그러자 애들 다섯에 시아버지, 시누이 둘, 남편, 여인네까지 열 식구가 되었다. 여인네는 열 식구 뒷바라지에 죽은 조상들까지 수발하며 살았다. 그 힘든 삶에도 여인네는 지치지 않았고, 착실한 남편과는 금슬 좋게 살았다. 그런데 그 여인네도 당해 내기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아버지 모시기였다 ..  (7∼9쪽)


 인천에 있는 생협 매장에는 날푸성귀가 몇 가지 들어와 있지 않아, 이곳에서 고를 수 있는 만큼 골라 장만한 다음, 하는 수 없이 ㅇ마트로 나들이를 갑니다. 날푸성귀야 가까운 저잣거리에서도 장만할 수 있으나, 저잣거리 날푸성귀는 유기농이 아니라서 발길을 끊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유기농이든 유기농이 아니든 똑같은 먹을거리가 아니냐 생각하는 분이 많고, 곡식이 먹고 마시는 물과 바람과 흙이 일찌감치 더럽혀져 있는데 풀약과 항생제와 비료를 안 친 곡식이라고 더 나을 구석이 있겠느냐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더욱이, 세상이 더러우니 어른도 아이도 ‘좀 더러워진 먹을거리를 먹으면서 몸에서 견디어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도권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과 입시지옥이 가득하여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기 어려운 형편이라지만, 동무를 사귀며 사회살이를 익히자면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꼭 입시지옥에다가 교과서 외우기로 치닫는 제도권 학교를 다녀야만 사회살이를 익힐 수 있을까요. 또래 동무는 제도권 학교 울타리가 아니면 만나거나 사귈 수 없을까요. 제도권 바깥 또래 동무라고 하여 모두 좋지 않겠습니다만, 제도권 안쪽 또래 동무라고 하여 꼭 반갑고 살가운 동무를 만나리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어느 자리에 서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날 수 있으면 되고, 또래 동무라고 하여도 나이나 밥그릇만으로 따지기보다는 마음자리와 생각자리로 서로를 살피고 헤아릴 때 한결 사이좋게 지내면서 다 함께 북돋울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저한테 또래 동무들은 얼마나 있고 얼마나 살가우며 얼마나 오붓한지를 돌아봅니다. 이 동무들은 꼭 그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동무들이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동무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동안 ‘우리가 어느 학교를 나왔었고 어느 대학교까지 다니거나 그냥 고등학교까지만 마쳤는가’는 하나도 큰일이 아닐 뿐더러 생각하지도 않음을 떠올립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이름이 그리 큰일이 아님을 곱씹습니다. 우리한테는 얼마쯤 돈이 있어야 할 터이나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되씹습니다. 우리한테는 어느 만큼 힘이 있어야 할 테지만 힘만 있다고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돌아봅니다.

 삶을 가꾸고 싶어 더 나은 밥을 찾고, 삶을 아름답게 여미고 싶어 한결 나은 일자리를 찾으며, 삶을 즐거이 나누고 싶어 좀더 반가운 벗을 찾습니다. 밥이든 옷이든 집이든, 동무든 사랑이이든 이웃이든, 나를 나답게 꾸리고 우리를 우리답게 이끌어 주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 “그래! 고생 오래 했네!” “그래도 내 한 열 살 정도 될 때부터는 고생을 아이 했어! 우리 오빠가 취직하면서 집이 확 피기 시작했지.” “근판이는 어떻게 됐어?” “일본이 망하이까 남선으로 도망 나왔지. 근판이한테 당한 사램들이 근판이 집이 몰려들어 기둥을 도끼로 찍고 집이 불을 놓았대.” 그랬더이 어디 숨었다가 확 나오더래. 그 질로 도망 나와서 삼팔선을 넘어 남선까지 온 거야. 남선 나와서도 한 고을을 해먹다가 산이 내란이 일어나서 막는다고 하다 죽었대.” “토벌대를 하다가 죽은 모양이구먼!” “근판이 얘기는 그리지 마라. 그 자손들이 보면 뭐이라 그러겠니야? 자손들이 보면 자기 아버지 얘긴 줄 그답 아지.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해서 그런지 자손들도 잘못됐어. 정식이는 큰 병 만나서 죽고, 문식이는 죽지는 아이 했지만 병이 많아서 고생하고 살아. 문식이 아들도 마흔도 안 됐는데, 풍이 지나가고.” “그러니까 어떤 집이 잘 되려면 조상 때부터 덕을 쌓아야 해.” ..  (73∼74쪽)


 지지난주쯤, 국민학교 적 동무한테서 밤 늦게 전화가 오며 “야, 한번 보자.”고 해서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나가 두 시간쯤 밤술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우리 집이야 아기가 아직 많이 어리지만, 동무녀석은 벌써 여섯 살 되는 아이가 있는데, 녀석은 자기 가게 일 때문에 일요일에도 늦은때까지 선배들하고 술잔을 부딪혔다고 합니다. 동무녀석한테 선배 되는 분들은 거의 모두 집안이 있을 테고 집식구가 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기다릴 텐데, 동무녀석은 가까스로 그 술자리에서 빠져나와 저를 찾았다지만, 그분들 남은 식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좀 서글픕니다. 술자리라 하여도 식구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술자리를 마련할 수 없는가 싶고, 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놀아야 한다면 온식구가 다 함께 어울릴 수 있게끔 놀 수 없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을 돌아보면, 도시에서 회사일이니 무슨 일이니 하면서, 늦도록 밖에서 ‘다른 사람 만나는 데에 시간을 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파김치가 되어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시간을 거의 못 쓰’게 되고 말지 않느냐 싶습니다. 집안살림과 집밖살림이 다르거나 나뉘어야 할 까닭이 없을 텐데, 우리 스스로 똑 금을 그어서 아예 다르게 꾸리고 아예 다르게 살아 버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집안일을 집 바깥에서 이야기하기 꺼리고, 집밖일을 집 안쪽에서 이야기하기 꺼리지는 않는가요. 아니, 이렇게 주고받을 까닭이 없다고 느끼지 않는가요. 있는 그대로 만나고 꾸밈없이 사귀는 삶보다는, 겉을 치레하거나 꾸미는 삶으로 나아가지는 않는가요. 우리가 집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만 하여도 밤새 수다를 떨어도 그치지 않을 터이고,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사는 이야기만 하여도 밤늦도록 이야기를 이어도 끝나지 않을 터이며, 이웃집과 어울리는 이야기만 하여도 이틀 사흘 이어도 이야기는 넘치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도시 삶터에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잊게 됩니다. 잃고 맙니다. 내놓고 되고 뒤로 젖히고 맙니다. 우리 얼굴이 없고 우리 모습이 없으며 우리 삶이 없습니다.
 



.. 그 무렵에 오징어 꾸들꾸들하게 말린 걸 처음 봤는데, 그걸 가지고 댕기면서 먹지도 않고, 가지고 댕기다 버렸어. 먹을 줄도 모르고, 먹어 봤더이 이상하고. 그래도 엄마가 우리를 혼내지도 않고. 우리가 어떤 때 입이 출출하다 하면 독아지서 배랑 과질이랑 꺼내서 가지다 주더라고. 그기 도화선이 언니 시집갈 때 큰상으로 가지온 음식들인 거야! 그때는 속상해서 안 먹고 놔뒀던 거지! 그거 먹으면서 우리 엄마가 얼매나 눈물을 흘리는지 몰라. 우리 오빠도 도화선이 언니는 못사는 집이 시집 보냈다고, 나중이 돈 벌어서 옷감이랑 끊어 보낼 때 꼭 도화선이 언니 것도 챙겨서 보내! 아무튼 도화선이 언니 시집 보낼 때 우리 집이 재난이야. 그러더이 귀동녀 언니 시집 보낼 때는 집 분위기가 얼매나 좋은지! 꽃이야..  (105∼106쪽)


 지난주에,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소설쓰는 공선옥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옆지기와 아기는 집에 있고 혼자만 다녀오는데, 아이 둘 키우는 아주머니가 아이는 애 아빠가 보기로 하고 당신은 즐겁게 나들이를 나오는데 얼마나 홀가분하고 훨훨 날아다닐 듯했는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즐거웠다고 합니다. 애 아빠는 애 엄마가 하루 쉬게 하려고 회사일을 하루 쉬었다고 하더군요. 애 아빠 되는 그분은 얼마나 자주 이렇게 ‘애 엄마 쉬게 하기’를 해 주셨는지 모릅니다만, 하루 내내 아이 둘을 붙잡고 놀고 돌보고 밥해 먹이고 빨래하고 씻기고 집 치우고 하노라면 …… ‘아이 키우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으랴 싶어요.

 사람은 모든 일을 몸소 겪어내야만 알지는 않으나, 겪어서 받아들이는 앎과 책이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앎이란 사뭇 달라요. 굴막에서 굴 까는 일을 하루 내내 해 보고 가게에서 사먹는 굴맛과, 굴막조차 모르고 굴 까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며 그저 마트에서 값싸게 사먹는 굴맛은 같을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버이를 둔 사람이 밥집에서 밥 한 그릇 받아먹을 때하고, 농사일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밥집에서 밥 한 그릇 받아먹을 때는 똑같을 수 없습니다. 여남평등이든 양성평등이든 지식과 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매무새하고, 집안일과 아이 키우기를 몸소 겪어 보고 나서 ‘평등’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매무새는 한동아리일 수 없어요.

 이러는 동안 우리한테는 늘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날마다 새 이야기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면서 ‘새 수다꺼리’가 샘솟기도 할 터이나, 이러한 새 수다꺼리는 채 하루가 가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잊혀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닥이며 꾸리는 삶에서 얻고 느끼는 ‘새 수다꺼리’는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뿐 아니라 당신 아이한테까지 물려주며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늘 새삼스러워집니다.


.. 우리 집이 내 일고여덟 살 때 제일 못살았다고 했잖아. 그래서 서당 갔다와서 숙자랑 나랑 보릿져 먹고 막 웃었다고 했지 않아. 그래도 우리 오빠 재혼하고는 집이 밥이 없은 적이 없어. 새 며늘 들였다고 음식을 갖춰서 먹는 거지. 부잣집이서 귀하게 자란 일산 시이는 굉자이 사랑을 받았어. 추운데 짐치를 뜨러 가도 우리가 가야 하는 줄 알았어. 일산 시이가 아깝아서. 새 며늘 들어오고 오빠가 좋아하이까 우리도 얼매나 좋으 줄 모르고, 우리 엄마, 아버지도 얼매나 좋아하는지! … 우리 엄마도 그렇기 며느리를 애껴. 한 번은 동네 어느 집냥이란 그 남편이 손님질을 왔어. 그래서 일산 시이가 떡을 반죽했는데, 반죽이 질게 돼서 떡을 찔 수가 없어. 그래서 귀동네 언니가 동네 방앗간이 가서 방아를 다시 찧어 와서, 떡을 해서 밥을 해서 내오이, 손님 밥상 내온다는 기 오밤중이야. 그 일을 잘하는 우리 엄마가 얼매나 갑갑했겠어. 그래도 며늘에게 뭐이라고 안 해. 일산 사이가 일을 해 본 적이 없어도 맘은 참 착해. 그 시이 들어오고부터 우리 집이 잘 됐으이, 얼매나 좋은 시이야 ..  (109∼111쪽)


 잠깐 숨을 돌리며 지난 몇 해를 돌아봅니다. 혼자서 동네 도서관을 꾸리다가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면서 꾸리던 삶은 아주 크게 달라지면서, 더 많이 더 널리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새롭게 디딜 수 있던 동네가 있었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8월에 아기가 태어나며 움직임은 더 줄어들었으나, 아기와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도 오히려 세상을 더 넓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는 한편, 딱히 더 많은 사람을 못 만나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이웃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저 스스로도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기를 한손으로 가슴에 안고 걸어다닐 때에는 사진찍기가 힘들고 번거로워서 혼자 맨몸으로 다닐 때하고 견주면 더 멀리 마실을 못 갈 뿐더러 몇 장 못 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장을 찍더라도 더 속깊이 찍도록 매무새를 고치게 되고, 아기와 함께 있기 때문에 한결 홀가분하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아기 사진’ 찍기를 몸으로 배우게 되고, 아기 사진을 가까이에서 날마다 수없이 찍는 하루하루가 쌓이는 동안 ‘오늘 사진이 어제와 다르도록’ 하는 손길과 눈길을 익힙니다. 책 읽을 겨를을 내기 어렵지만, 책 하나를 손에 쥐어도 ‘허튼 책은 금세 알아채게 되는 눈썰미’를 익히기도 합니다.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하나를 잃었다기보다 하나를 새로 만나며 그 하나를 좀더 곰곰이 들여다보고 껴안는 몸짓을 녹여낸다고 해야 알맞지 싶습니다.

 문득, 집안살림이 퍽 쪼들리고 고달프고 괴로운 이들이 당신 삶 또한 쪼들리거나 고달프거나 괴롭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떠오릅니다. 제 살림살이 또한 꽤 쪼들리고 고달프고 괴롭다고 할 만한데, 제 삶은 우리네 골목 이웃과 마찬가지로 그리 쪼들리지 않고 고달프지 않고 괴롭지 않습니다. 일이 버겁고 벅차 눈물이 핑 돌 때가 잦으나, 이렇게 눈물이 핑 돌기 때문에 삶이 재미있습니다. 일이 쏟아지고 넘쳐 어깨와 팔다리가 빠질 노릇이지만, 이렇게 온몸이 쑤시기 때문에 삶이 보람있습니다. 잠깐이나마 다리 쭉 뻗고 드러누울 겨를이 없어 살이 쪽 빠지는데, 이렇게 살이 쪽 빠지기 때문에 삶이 튼튼하고 싱그럽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제 옷주머니에는 돈이 거의 없습니다만, 제 생각주머니에는 이야기가 꽉꽉 들어차 있어, 푸고 또 퍼내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2)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를 장만했습니다. 이번에 1부가 첫 권으로 나와 2부를 기다리는데, 1부 이야기는 만화잡지 《새만화책》에 꾸준히 실렸습니다. 만화잡지에 실리는 동안 다 보았지만, 이렇게 낱권책으로 나온 판은 또 남다르기에 즐겁게 따로 사들입니다.


.. “오오, 좋은 말들도 많다.” “엄마, 내 만화가 들어 있는 잡지책이 왔어.” “어디 좀 보자!” “어때?” “알았다. 이렇기 시시콜콜한 걸 다 적는 기 만화로구나! 그래도 속에 있는 소리는 다 했네! 그런데 방이 어쩌구저쩌구해서 니 오빠가 보면 뭐이라고 아이 할라나! 하기사 뭐 작가 맘이다. 지 맘대로 하는 기 작가지.” “맞았어. 작가 마음이야. 이 사람 비위에도 맞고 저 사람 비위에도 맞고, 그렇게 다 맞게 할 수는 없어.” “그래도 내가 남편이 아인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챙피스러워! 니 오빠가 보면 뭐이라고 그러겠어.” “엄마, 그건 실제 얘기가 아니고 꿈 얘기잖아. 엄마보고 그렇게 생각할 사람 하나도 없으니까 신경쓰지 마.” “난 남자를 아이 좋아하는데…….” ..  (141∼142쪽)


 옆지기한테 만화책을 건넵니다. 옆지기는 방바닥에 아기와 나란히 드러누워 책을 받들고 읽습니다. 아기도 만화책에 눈길을 보냅니다. 그러나 아기한테는 그리 재미가 없는 듯합니다. 빛깔이 없어서 그런가? 그림이 너무 작고 글이 많아서 그런가? 이 만화책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글맛’이 제맛이니, 엄마가 읽어 주어도 아기한테는 아직 재미가 있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

 마땅한 소리이지만, 대여섯 달밖에 안 된 아기가 책읽는 재미를 알 수 없겠지요(그러나 아기로서는 지 엄마 아빠가 맨 보는 책이니 저도 재미를 붙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뭔가 그림이 있으니 까르르 웃기도 하면서 들여다볼 뿐 아니랴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옆지기는 이 만화책은 아기와 나란히 누워서 읽기보다, 옆지기 어머님하고 나란히 누워서 읽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름이 “내 어머니 이야기”이듯, ‘어머니 삶을 돌아보는 만화’는 아이가 지 엄마 삶을 돌아볼 만한 나이가 되어야 함께 읽을 수 있을 테니까요.
 





.. 보정집 할머이는 결혼하구 얼매 안 돼 남편이 죽었는데, 둘이 결혼해서 한 번 자 보지도 못한 거야! 옛날이는 그런 일이 많았어! 다 어릴 때 결혼하이까 결혼하구 1,2년 있다 자는 부부도 많았지! 그러구선 다시 시집을 안 갔으니 평생 남자하고 한 번 자 보지도 못한 거야! 그래 가지고는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면 보지다 솔바울 차고 이런 거야! ‘내 보지를 봐라. 처여 보지를 봐라.’ 어렸을 때 그기 얼매나 웃깁던지 ..  (54쪽)


 나중에 우리 어머니한테 이 만화책을 보여 드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는 우리 아기가 커서 이 만화책을 볼 수 있도록 남겨 두고, 돌아오는 어머니 태어난날에 선물로 이 만화책 하나 새로 장만해서 슬며시 건네 드리려 합니다. (4342.2.25.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복호 사람들 - 김보섭 사진집
김보섭 지음 / 눈빛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를 부탁해’도 인천‘사람’은 못 담는데
 [잠깐 읽기 26] 김보섭 사진, 《수복호 사람들》



- 책이름 : 수복호 사람들
- 사진 : 김보섭
- 펴낸곳 : 눈빛 (2008.4.9.)
- 책값 : 2만 원
 





 (1)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지난주에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디브이디를 장만했습니다. 단돈 2000원에 나와 있기에 낼름 장만했는데, 셈틀에 넣어 돌리니 화질이 몹시 나쁩니다. 설마, 했는데 이 디브이디는 복제판이었구나 싶고, 그래서 헌책방에서도 5000원이 아닌 2000원에 거저 주듯 팔았구나 싶습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2001년에 개봉을 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올 무렵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나왔으며, 두 가지 모두 ‘시중 개봉관’에서는 그리 사랑받지 못하고 일찍 내려졌음에도, 몇몇 신문에서 끊임없이 소개하고 알리면서 차츰 사랑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시민모임에서 소매를 걷으며 영화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무렵 여러 가지 신문기사를 얼핏설핏 읽으며 〈고양이를 부탁해〉가 얼마나 대단할까 궁금했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때 회사사람하고도 보고 술동무하고도 보며 모두 세 번 극장에서 보며 눈가가 젖었기에, 〈고양이를 부탁해〉는 언젠가 디브이디를 얻건 아는 분 집에 놀러갔을 때 텔레비전으로 보건 볼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나날이 어느새 여덟 해. 영화가 나온 지 여덟 해 만에 비로소 집에서 옆지기와 아기와 나란히 앉아서 봅니다.

 영화에 나오는 다섯 여학생은 ‘인천에서 가장 좋다는 여상’인 인천여상을 나옵니다. 한 아이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고, 한 아이는 아버지가 하는 찜질방 일을 돈 한푼 못 받으며 거듭니다. 한 아이는 중구 북성동 판자집에서 할매 할배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텍스타일을 익힙니다. 다른 두 아이는 쌍둥이인데 화교학교 앞에서 길장사를 합니다.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만날 일이 뜸해지고, 이 가운데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림집(자취방)까지 서울로 옮긴 아이는 더더욱 다른 네 아이 사이에 벽이 높아집니다. 인천을 고향으로 두었으나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일자리 얻어 살아가다가 살림집도 서울에서 마련한 제 둘레 선후배 동무들 또한 하나같이 ‘영화에 나오는 이 아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인천에서 놀아 보았자 뭐 놀거리가 있느냐’ 여기고, 참말로 놀거리가 없는 인천이기도 하여 전철 타고 멀리 서울로 나들이를 가 보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올 전철은 저녁 열 시 반 무렵이면 끊기기 때문에 얼마 놀지 못하고 곧바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인천 중구 북성동 판자집과 골목길과 북성포구 들을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이때는 2000년일 텐데, 그 뒤로 꼭 아홉 해가 된 2009년, 얼마나 많은 모습이 남아 있는지 헤아렸을 때, 웬만한 모습은 안 남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는 한편,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제법 많다는 데에 생각이 미칩니다. 시내버스는 달라졌고, 아이들(고등학교) 옷차림과 머리 모양은 바뀌었으며, 곳곳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그사이에 갑작스레 늘었습니다. 새 간판을 올린 가게도 많으나 예전 간판이나 처음 간판 그대로 빛바랜 채 고스란히 이어오는 곳도 많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흐른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끝이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디브이디 겉에는, 그러니까 그때 나온 영화 포스터에는 틀림없이 “스무 살, 섹스 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고 적혀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네 갈래 모습 아이들한테서 ‘무엇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가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섹스 이야기’가 안 나왔을 뿐, 그러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느냐에서는 ‘글쎄?’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제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일까요. 제가 영화 보는 눈이 없어서일까요. 그러나, ‘인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인천에서 나고 자라다가 서울로 떠난 아이들’ 삶자락은 참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떠돌고 맴돌고 하릴없는 모습들, 힘없고 풀죽고 여린 모습들, 고등학생 때까지는 막 기운이 넘치는 듯하다가도 학교를 마친 뒤 갈 곳 모르고 할 일 못 잡으며 쓸쓸해지고 낯빛이 어두워지는 모습들은, 어쩜 이렇게 인천사람 속내를 찬찬히 그려낼 수 있으랴 싶어 놀랍니다(그러나, 임순례 감독이 이 영화를 본 느낌을 적은 글(2001년, 한겨레신문)에서도 나타나듯, 저와 제 또래와 선후배들 학교 때를 돌아보면, 영화에 나온 아이들처럼 그렇게 까르르 우하하 웃으면서 놀았던 일이나 해맑은 듯 보여진 일이 거의 없었고, 늘 무엇엔가 눌려서 어두워야 했고 학교 안과 밖에서 교사와 깡패들한테 벌벌 떨면서 살아야 했던 일들이 줄줄줄 떠오르지만). 그런데, 어쩌면 인천사람 이러한 속내를 잘 담아낸 〈고양이를 부탁해〉라기보다는, ‘풋풋하고 싱그럽던 푸른 빛깔’이 학교를 마치고 저마다 다른 곳에서 고달픈 사회살이를 하면서 칙칙하고 쓸쓸해지는 모습과 느낌을 따오려고 인천이라는 데를 빌어 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인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 중구 북성동과 송월동 둘레는 나라안에서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가난한 도심지 동네이면서, 예부터 부두 노동자와 조개와 굴 까는 아주머니들이 어렵사리 판자집 살림을 이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동화책이 나왔을 때, 이 책을 만석동 사는 동무녀석한테 선물해 주면서,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던 일을 떠올려 봅니다. 틀림없이 인천 만석동에서 ‘기찻길옆공부방’을 꾸리던 분이 인천 만석동이라는 데를 바탕 삼아서 살뜰히 여미어 낸 동화책이기는 하지만, 외로 치우친 눈길과 마음길 때문에 읽는 내내 거북했어요. 이야기 무대가 인천일 뿐,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삶자락’ 가운데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이 삶자락으로 ‘이 땅 사람들 삶자락’과 어떻게 잇대어 이야기를 펼치려 했는지 갑갑했습니다. 만석동이며 화수동이며 송월동이며 송현동이며 송림동이며 창영동이며 금곡동이며 숭의동이며 관동이며 경동이며 유동이며 내동이며 전동이며 신포동이며 선린동이며 송학동이며 해안동이며 선화동이며 신흥동이며 도원동이며 화평동이며 항동이며 …… 코딱지 만하다고 할 만한 땅덩이가 조각조각 잘게 나뉜 이 오래된 동네 골목길은 ‘가난 = 어두움’만이 아니라 ‘가난하나 밝음’이 있고, ‘가난 = 괴로움’만이 아니라 ‘가난하기에 이웃과 더 나누는 마음’이 있으며, ‘가난 = 짜증 + 벗어나고픔’만이 아니라 ‘가난하면서 더 이웃사랑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 나름대로 이곳을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려는 몸부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전에 앞과 뒤와 있다고 하듯, 골목길이라는 데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환함과 쓸쓸함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있습니다. 서러움과 흐뭇함이 있고, 반가움과 못마땅함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테두리와 울타리와 보금자리가 있는 우리 삶터입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애틋하며 사랑스러운 이웃과 터전이 있는 한편, 고개를 돌리고 싶거나 내버리고 싶은 얄궂은 이웃과 터전이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이라는 데에서, 또 골목길이라는 데에서, 또한 인천 골목길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다니는 자그맣고 오래된 동네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얻어서 무엇을 우리들하고 나누려고 했을까요. 무엇을 나누게 되었을까요.
 





 (2)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사람과 인천땅 사진만 찍는 김보섭 님이 ‘인천 아닌 곳에서 전국을 무대로’ 책을 나누는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펴낸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을 봅니다. 《청관》, 《한의사 강영재》, 《바다 사진관》 같은 사진책을 펴냈으나, 거의 눈길을 못 받았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인천 바깥’에서 눈에 뜨이어 이렇게 야무진 사진책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2008년 4월에.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책방에 들어가 ‘판매지수’라는 숫자를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웬걸. ‘0’이라는 대목에 그만 입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그렇지, 나온 지 거의 한 해가 다 되어 가는 책인데, 판매지수가 ‘0’이라니. 아니, 인터넷책방 이곳에서만 판매지수가 0일 뿐, 다른 데에서는, 또 여느 동네책방에서는 사랑받고 있을지 모르는 노릇이겠지요.

 영화 〈고양이가 부탁해〉가 나왔을 때, ‘〈고양이를 부탁해〉 살리기 인천시민모임’이 최원식 교수를 앞장세워 일어나기도 했다는데, 동화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왔을 때 ‘느낌표 책’으로 뽑히고 ‘기찻길옆공부방’이 전국으로 널리 알려지기까지 하며 크게 도움을 받았는데, 정작 인천이라는 데에 뿌리를 박고 인천이라는 데에서 밑바닥 삶을 꾸리던 사람들 자취가 담긴 사진책 《수복호 사람들》은 푸대접도 찬밥대접도 아닌 똥대접이라니.

 〈고양이를 부탁해〉를 아꼈다는 사람들 손길이라면,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눈물겹게 읽었다는 눈길이라면, 《수복호 사람들》에 담긴 바닷가마을 낮은자리 사람들 이야기에 조곤조곤 말을 붙이고 쫑긋쫑긋 귀를 세우며 토닥토닥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아니,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 하는 풋생각일는지.


.. ‘조개 캐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1998년 인천 연수동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연수동은 갯벌을 흙으로 메워서 그 위에 만든 도시이다. 예전에는 물때에 맞춰 소달구지를 타고 나가 조개를 캐던 갯벌이었으나 삶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소 대신 트랙터를 타고 나가 조개를 잡던 곳이다. 인천이 고향인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끈으로 묶은 장화를 신고, 양은 ‘다라이’를 끌고 다니며 열심히 조개를 캐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동구에 있는 만석동과 화수동엘 갔었다. 아직도 기찻길 옆에는 판잣집들이 남아 있고, 오래된 공장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이 뒤엉켜 있는 곳, 그곳에는 이북 피난민들이 내려와 굴이나 조개를 캐던 생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닐로 벽을 삼은 작은 굴막에 들어앉아 끊임없이 굴을 까는 사람들의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곳은 인천의 과거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었다 ..  (찍은이 말)
 





 찌뿌둥한 하늘이 비를 뿌릴 듯 말 듯한 낮나절, 옆지기 심부름을 받아 생협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자전거머리를 북성동으로 돌립니다. 답동에서 인현동으로 넘어가고,인현동에서 전동과 화평동을 스친 다음, 송월동1가로 접어듭니다. 그러면서 만석동과 잇닿은 북성동1가로 들어섭니다. 기차길과 고가도로가 맞닿아 있는데다가, 저 철길과 고가도로 건너편으로는 하늘을 뒤덮은 큰 굴뚝 공장이 가까이 바라다보이는 북성동에서 자전거를 내려, 고가도로로 올라가 보고, 천천히 골목을 거닐어 봅니다. 큰 개가 컹컹 짖어 더 못 들어가는 골목에서는 돌아나오고, 막혀 버린 골목에서도 돌아나옵니다. 굴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물어져 가는 집을 쳐다보다가, 뒷짐 지고 걷는 할매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다가, 깃들인 사람 없어 비어 있는 집과 가게 앞에서 괜히 서성이다가, 조용히 사진 몇 장 찍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동일방직 들머리에서 잠깐 멈추어 다시 한 번 골목 안쪽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나옵니다. 우람한 공장과 창고 옆으로 올망졸망 붙어 있는 오래 묵은 집들 옆으로 자전거를 가볍게 스쳐 지납니다. 엊저녁에 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떠올려 봅니다. 용케 이 동네 삶터를 잡아채어 참으로 살뜰하게 담아냈구나 싶으면서, 이런 삶터를 이런 동네를 이런 골목길 사람들을 무대로 삼은 생각바탕에 무엇이 있었을까 헤아려 봅니다. 고가도로에 올라서서 높직한 방음벽을 옆으로 하고 걷는 동안, 이 ‘산업도로 구실’ 고가도로를 지나는 컨테이너짐차와 원목짐차와 자동차짐차가 지나갈 때마다 덜덜 떨립니다. 고가도로 한켠에 서서 동네를 사진으로 담으려 하다가도 온몸이 덜덜 떨려서 도무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저 무거운 짐차가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데에도 고가도로가 무너지지 않으니 용합니다. 그러면 이 고가도로 밑에서 살아가는 북성동 사람들과 만석동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한두 해도 아닌 기나긴 세월을 끔찍한 자동차 소음과 매연과 먼지들에다가 공장 소음과 매연과 먼지를 마시면서 굴을 까고 부두노동자로 일하고 중공업 공장과 유리공장과 제철소와 목재소에서 일했는데, 이 사람들 삶은?


.. 조그만 배로 인천 근해(경기도)에 조그마한 섬(무인도)을 다니며 굴(조개)을 채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복호를 타고 다니시는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이북에서 가족들과 피난 나온 분들이었고, 종종 전라도와 충청도 등에서 어렵게 사시다가 인천으로 올라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들은 인천에서 굴을 따고 또 밤을 새워 굴을 까다가 연안부두에 나가 상인에게 팔고, 그 돈으로 쌀과 보리를 사서 생계를 이어오신 분들입니다. 그들이 싸 온 주먹밥은 보리쌀이 전부였고, 밀기울(밀겨)을 버무린 찬밥을 더운물에 말아 먹곤 하였습니다. 물론 당시는 경제가 어려워 온 국민이 어렵게 지내던 시절이었고, 수복호의 선장을 비롯하여 그 선박을 타고 다니는 아주머니들 모두가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해서 불행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선장과 아주머니들 모두 한식구처럼 지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고 슬픈 일에는 서로 위로해 주며 웃음을 잃지 않고 지내 왔습니다 ..  (머리글 / 수복2호 선주 최영식)


 지금 살고 있는 집이 4월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만석동이나 북성동, 또는 송월동이나 화수동, 또는 화평동이나 송현동으로 옮겨 갈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남들은 살기 싫다고 나오는 동네이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는 아직 보증금 50에 월세 25만 원짜리 방, 보증금 100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 보증금 200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이 있어요. 저는 보증금 100에 월세 10만 원짜리 방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4342.2.2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목어 이야기 우리 문화 그림책 14
김혜리 글.그림 / 사계절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림책이라 한다면
 [그림책이 좋다 57] 김혜리,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책이름 :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
- 글ㆍ그림 : 김혜리
- 펴낸곳 : 사계절 (2009.1.22.)
- 책값 : 9800원

 





 (1) 그림책을 펼치면서 즐거움


 절에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인 ‘목어’가 있습니다. 이 ‘나무물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교원청규》라는 책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두들기면서 마음닦이 하는 이들이 잠을 쫓고 마음을 맑게 다스리도록 도우려고 쓰는 나무물고기라고 합니다. 그림책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는 절에서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늘날 어린이들한테 절에서 흔히 보는 나무물고기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재미나고 싱그럽게 보여줍니다.

 어쩌면 오늘날 절은 산속 깊이깊이 들어가 있어서 이와 같은 나무물고기 하나를 눈여겨보기 어려울 수 있고, 절에 깃든 우리 옛 문화재를 이야기할 때에도 돌탑이나 대웅전이나 벽그림처럼 크게 앞세워지지는 않아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를 그려낸 분은 절집을 이루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담긴 애틋함을 잘 담아내었고, 이 애틋함을 돌아볼 만한 마음그릇이 되어야 비로소 절집에서 마음닦이를 하는 뜻을 스님들 스스로 돌아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책을 펴낸 ‘사계절’ 출판사에서도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가 찬찬히 헤아리지 못하거나 스쳐 지나가는 우리 삶자락을 아이들이 하나하나 돌아볼 수 있게끔 해 주는 일을 하면서 어느덧 열네 번째 그림책을 선보입니다.

 저 또한 이 그림책을 보면서 절집에 매달린 나무물고기가 이러한 이야기에서 비롯했구나 하고 깨닫고, 나중에 절집에 가면 나무물고기를 좀더 애틋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아기 엄마가 아기한테 이 그림책을 펼쳐서 보여주니, 아기도 크고작은 그림과 빛있고 빛없는 그림에 눈길을 보내면서 까르르 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또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혼자서 보기에 재미있는 한편, 아이 키우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함께 펼쳐서 보기에 즐거울 만한 그림책이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줄거리를 살펴봅니다. 그림책 주인공 이름은 ‘멋대로’입니다. 이 멋대로는 동자승이면서 큰스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고 허구헌날 장난만 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장난과 못된 짓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병을 얻어 그만 일찍 죽었고, 죽은 뒤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는데 물고기가 되어서도 못된 짓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하늘은 다시 벌을 내려 이 아이 ‘멋대로’ 등에 나무가 자라게 하고, 이렇게 자란 나무 때문에 멋대로 물고기는 물속에서 움쭉달싹을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예전에 자기를 거두어 준 큰스님을 우연하게 만나서 잘못과 죄를 씻어내게 되고 ‘절에 매다는 나무물고기’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책 뒤에는 절집 문화와 역사, 그리고 나무물고기와 얽힌 이야기를 두 쪽에 걸쳐 실어 놓아서, 그림책을 보고 난 다음, 어버이와 아이가 ‘나무물고기’란 무엇이고 절집 문화와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 놓았습니다.
 







 (2) 그림책을 덮으면서 아쉬움


 다만, 책을 덮으면서 몇 가지 아쉽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엿보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줄거리와 짜임새와 그림결’이기는 하나, 제멋대로 군다고 하는 ‘멋대로’라고 하는 아이는 왜 다른 아이와 달리 절집에서도 제멋대로 구는가 하는지가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에는 제대로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꼭 담아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한 주인공’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런 이야기까지 담자면 그림책이 너무 길어진다고 할 테지만, 그림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이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여 그림책이 그리 길어지지 않을 수 있으며, ‘처음부터 못된 아이는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을 넘어서, ‘이 아이가 제멋대로 굴게 되고 절집에 동자승으로 들어왔지만 큰스님이 큰스님답게 좀더 너그러이 아이를 보듬고 키우면서 애쓰는’ 이야기를 살며시 집어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애를 썼어도 멋대로라는 아이는 자기 삶을 찬찬히 되짚지 않고 더 제멋대로 까불면서 이웃을 괴롭히게 되었고, 이런 괴롭힘은 뒷날 고스란히 자기한테 돌아오게 되고, 이렇게 되돌아온 괴롭힘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 ‘스님이 되어 마음닦이를 하는 뜻’뿐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서로서로 이웃과 동무가 되어서 살아가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짚는 데까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림책 하나에 이 모두를 담아내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이런저런 대목까지 짚어내야만 하지는 않아요.

 그저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동자승으로 있는 아이들이 어떤 까닭에 아빠 엄마와 어릴 때부터 헤어져 절집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그처럼 제멋대로 굴던 아이였는지 나타나지 않아서 살짝 아쉬웠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한두 줄로도 얼마든지 살을 입힐 수 있으니까요. 군말이지만, ‘멋대로’라고 하는 아이가 이렇게 제멋대로로 굴 때, 동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아이한테 마음을 안 쏟게 되는 흐름, 또 큰스님도 이런 대목을 짚지 못하는 대목이 섭섭하지만, 이런 섭섭함을 담아내자면 ‘나무물고기’라는 그림책은 나올 수 없었겠지요. 덧붙여,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아이가 잘못에 따른 벌을 받고 뉘우치면서 나무물고기로 다시 태어난다는 옛이야기를 고스란히 살려야 이 그림책이 마무리될 테고요.

 그렇지만 이 그림책이 옛이야기에 새옷을 입힌 창작물임을 헤아리기 때문에, 여러모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마냥 멋대로 굴다가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아 마땅한 놈이 되고, 이리하여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는데 다시금 잘못을 저지르고, 그런 다음 더 큰 벌을 받고서야 비로소 잘못을 뉘우치고 거듭 사랑을 받아 새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줄거리만을 보여주어도 될까 하는 생각 또한 문득문득 듭니다. 이만한 이야기로는 굳이 새 옷을 입혀 빚어내는 그림책으로는 좀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뜻있는 출판사에서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고 내걸기까지 했는데, 좀 아쉽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옛이야기에 바탕을 두어야 비로소 나무물고기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기도 할 터이나, 옛이야기에 살을 붙이면서 남다른 재미를 보탤 수 있는 한편, 우리 둘레에서 얄궂은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마음자리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개구쟁이나 말괄량이가 아닌 ‘멋대로’가 되어 버린 아쉬움을 그저 따끔하게 꾸짖기만 하거나 아예 등돌리고 따돌리는 줄거리가 펼쳐지는데,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어른이나 동무 하나 없는 외로운 ‘멋대로’라고만 자꾸자꾸 느껴집니다. ‘외로운 아이가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하면서 그 외로움을 씩씩거리며 둘레에 화풀이를 해대는데, 이 화풀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주거나 껴안아 주는 이웃이나 어른이나 동무가 하나 없어 더 외롭고 더 까불고 더 나대는 모습’이 아니랴 싶은 생각이 자꾸자꾸 듭니다. 마음닦이에 들어서는 스님들한테 가르침을 베풀고자 지어낸 나무물고기 이야기를 함부로 손대거나 어줍잖게 뜯어고쳐서는 안 됩니다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려는 생각이 앞서면서 정작 우리 삶과 사람을 더욱 따뜻하고 애틋하게 보살피거나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놓쳐 버릴 걱정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야기 끝에 가서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대목에서도 ‘등에 갑자기 나무가 자라서 옴쭉달싹 못하는 괴로움을 겪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러한 괴로움을 겪기까지 한 번쯤 살을 더 입혔더라면, 옛이야기 틀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한결 부드럽고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새이야기’로 태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을 더 들어 본다면, 그림책에 나오는 동자승 옷차림이 꼭 ‘우리 아이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때는 틀림없이 조선시대이고, 아이들은 절접 동자승입니다. 그리고 동네사람도 한복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승사자 옷차림만 ‘펑퍼짐한’ 옷이고, 발목을 동인 매무새이고, 동자승이나 동네사람이나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짧고 통 좁은 바지’입니다. 웃도리도 몸에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동자승이요 동네사람입니다. 그런데 절집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 웃도리와 아랫도리가 이렇던가요? 우리 옷차림이 이렇게 ‘쫄티나 쫄바지’ 느낌이 나는 옷이었던가요?

 우리 한복은 ‘몸에 찰싹 달라붙도록 입지 않음’을 헤아린다면, 그리고 동자승한테도 ‘몸에 꼭 끼는 옷을 입히지 않음’을 돌아본다면, 비록 ‘그림책에 담는 새 창작 그림’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대목을 살리고 그 나름대로 북돋웠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그냥’ 그림책이 아닌 ‘우리 문화’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면 ‘우리 옷’이 우리 옷답게, ‘우리 집’이 우리네 집답게, ‘우리 사람’이 우리 사람답게 그려질 수 있는 바탕에서 새로운 창작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342.2.22.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