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베개로 책읽기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 어느새 아침이 밝고 바깥은 환하다. 어제 늦게까지 안 자던 아이는 열한 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은 일찌감치 아침 차리느라 부산을 떨지 않아도 좋구나 생각하면서 차츰 몸이 처진다. 아이가 일찍 일어나면 아빠도 글쓰기를 일찍 마치며 아침을 차리느라, 이무렵은 아이가 밥을 거의 다 먹고 설거지를 할 때. 모처럼 이때까지 집일을 뒤로 젖히니 느긋하기는 하지만, 늘 이무렵 설거지를 하고 살짝 기지개를 켜며 방바닥에 드러눕다 보니 눈이 무섭게 감긴다. 눈을 뜨나 떴다 하기 힘들고, 애써 자판을 두들겨 보려 하지만 자꾸 손가락이 엇나간다.

 히유 한숨을 몰아쉰다. 집식구가 조금 늦게까지 꿈나라에 빠졌어도 아빠는 느긋하게 글쓰기를 못 하는구나. 셈틀을 끈다. 바닥에 그대로 눕는다. 머리가 허전해서 옆에 쌓은 책 몇 권을 옮겨 베개로 삼는다. 몇 분쯤 지긋이 눈을 감고 쉰다. 조금 뒤 눈을 살짝 뜨고는 왼편에 놓은 책 하나를 펼친다. 책을 베개로 삼아 누운 채 책을 읽는다.

 책을 읽은 지 5분쯤 지나자 아이가 잠에서 깬 소리가 난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언제나처럼 노래를 부른다. 어쩜, 이렇게 잠에서 깰 때마다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우리 집 아이라지만 참으로 놀라우며 예쁘다. 아이한테 지난달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 잘 잤어요? 아버지 잘 잤어요?” 하고 말하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바로 오늘부터 “어머니, 잘 잤어요?” 하고 물으며 흔드는 소리가 난다. 이 녀석아, 일어난 사람한테 하는 인사이지, 어머니는 둘째를 배어 몸이 힘드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잖니. 어머니를 깨우며 그런 인사를 하면 어떡하니.

 아이는 겉바지와 웃겉옷을 하나씩 들고 아버지한테 온다. “치마 입혀 주셔요. 바지 입혀 주셔요.” 하고 말한다. 변기에 오줌을 누면 “쉬 했어요.” 하고 똥을 함께 누었으면 “쉬 했어요. 똥 눴어요.” 하고 말한다. 치마 같은 웃겉옷이랑 겉바지를 입혀 달라는 소리를 하나하나 한다. 이리하여, 아빠는 책을 베개 삼아 책을 읽는 아침 말미는 고작 5분 만에 끝낸다. (4344.1.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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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숲말


 도시에는 빌딩숲이 있습니다. 빌딩으로 숲을 이루어 빌딩숲입니다. 시골 멧자락은 나무숲이 있습니다. 들판이 있고 나무가 자라기에 시골이에요. 파랗디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거진 풀숲에 흐드러진 꽃누리가 펼쳐졌기에 시골입니다.

 도시는 사람들로 숲을 이루기도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 몰려들기에 도시는 사람숲입니다. 사람물결이요 사람바다이며 사람판입니다. 여기에, 어디를 가든 자동차가 가득하기에 자동차숲이라 할 만합니다. 이제 도시는 새로 솟는 아파트가 나무보다 키가 높은 만큼 아파트숲이기까지 합니다. 빌딩숲에 사람숲에 아파트숲에 자동차숲입니다. 더구나, 도시는 이쪽 길로든 저쪽 길로든 가게가 끊이지 않습니다. 옷가게이든 술가게이든 전화가게이든 가게들이 가득가득합니다. 도시는 가게숲까지 이룹니다.

 길바닥은 아스팔트이거나 시멘트인 도시에서는 흙으로 된 맨땅을 밟기 아주 어렵습니다. 맨땅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그나마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은 흙땅에서 인조잔디땅으로 바뀝니다. 가까스로 흙을 밟을까 싶던 학교 운동장마저 싹 사라집니다.

 숲다운 숲이란 없는 도시이고, 숲에 깃드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 없는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서는 숲과 얽힌 말, 이를테면 풀숲이나 나무숲이나 꽃숲 같은 말은 쓰기 어렵습니다. 아니, 이런 말을 할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맨드라미 진달래 찔레꽃을 이야기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 도시에서 할 말이란 돈과 얽힌 말, 이를테면 돈숲·돈바다·돈하늘·돈땅·돈사람·돈일 따위일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는 볍씨나 풀씨나 꽃씨 같은 말을 쓸 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일하는 기자로서는 풀베기나 나무베기나 벼베기 같은 말을 쓸 자리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종달새나 골짜기나 산들바람 같은 말을 쓸 데가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살고 물을 마셔야 목숨을 잇는 사람입니다. 숲이 있어 나무가 자라고, 숲에서 온갖 짐승이 함께 어우러져야 사람 또한 살가운 숨결을 사랑할 만합니다. 작은 도시는 큰 도시가 되려 하고, 시골은 작은 도시로 거듭나려 하는 마당이지만, 밥을 아끼고 물을 사랑하며 목숨을 어깨동무하고 싶은 마음으로 숲말을 하나하나 되뇌어 봅니다.


1. 숲길 :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숲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숲이란 나무가 우거져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숲길을 걷는 사람들은 숲길을 걸으면서 숲길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수목원(樹木園)’에서 ‘삼림욕(森林浴)’을 한다고 여깁니다. 


2. 산타기 : 숲에서 사는 사람은 숲길을 따로 걸을 까닭이 없고, 논밭에서 구슬땀 흘리는 사람은 논밭에서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을 받아먹습니다. 멧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멧자락 기운을 곱게 받아안아요. 따로 ‘등산(登山)’이라는 이름으로 ‘산타기’를 하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3. 멧짐승 : 멧골에는 멧쥐가 멧굴을 파고, 멧토끼가 멧집에 살며, 멧새가 멧노래를 우짖습니다. 다 함께 멧짐승이고 멧삶입니다. 멧사람은 멧골집을 마련하고 멧마을을 이룹니다. 


4. 멧나물 : 들에서 얻어 들나물이고, 멧골에서 얻어 멧나물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나물이 되겠지요. 밭에서는 밭나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일본말 ‘야채(野菜)’에다가, 중국말 ‘채소(菜蔬)’만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말 ‘나물’과 ‘남새’와 ‘푸성귀’를 가눌 줄 모릅니다. 사람이 키우면 남새이고, 절로 자랐으면 나물이요, 남새와 나물을 통틀어 푸성귀입니다. 


5. 콩팥 : 우리 식구는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 먹을거리를 즐겨 장만합니다. 그런데 이곳 생협에서도 ‘콩’과 ‘팥’이라는 낱말을 잘 안 써요. 으레 ‘대두(大豆)’랑 ‘적두(赤豆)’라 합니다. 멸치를 말렸으면 마른멸치일 테지만 ‘건(乾)멸치’라 쓰기까지 해요. 하기는, 여느 자리에서도 ‘말린포도’ 아닌 ‘건포도’라고만 하니까요. 


6. 누런쌀 : 모든 쌀은 맨 처음에는 ‘누런쌀’입니다. 씨눈까지 깎아내듯 하얗게 더 깎은 쌀이 되면 ‘흰쌀’입니다. 누르스름하기에 누런쌀이요, 하얗디하얗기에 흰쌀이에요. 


7. 가을걷이 : 가을날 곡식을 거두기에 가을걷이라 일컫습니다. 가을에 잔치를 한다면 가을잔치가 될 테지요. 프로야구판에서 으레 ‘가을잔치’라는 말을 써요. 경기장에서 벌이는 배구나 농구나 핸드볼은 흔히 겨울잔치라 일컫습니다. 겨울날 따스한 실내에서 놀이마당을 마련하니까요. 가을날 가을볕을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면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씻어 주며 가을열매 넉넉히 나눕니다. 


8. 고샅길 : 도시에서는 골목이고, 시골에서는 고샅입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시골에서는 고샅이 자꾸 스러집니다. 자동차가 너무 많이 는 탓이며, 아파트를 새로 올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9. 가랑잎 : 팔랑팔랑 하늘하늘 토옥 툭 살살 한들한들 떨어지는 잎이란 가랑잎입니다. 대롱대롱 건들건들 달린 잎이란 나뭇잎입니다. 


10. 큰나무 : 숱한 싸움판을 겪은 우리나라에는 큰나무가 드뭅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시골이라 해서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지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더더욱 아름드리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하더라도 쉰 해나 백 해를 한 자리에서 튼튼히 서도록 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사람들 삶터 또한 한 곳에서 쉰 해나 백 해 즈음 즐거이 뿌리내리도록 놓아 주지 않는 우리 사회입니다. 큰나무 없는 터에 큰사람이란 없고, 작은나무조차 흔들거리는 두려운 곳에 작은사람 또한 힘을 잃거나 기운을 빼앗깁니다. 


11. 오얏꽃 : 능금나무에는 능금꽃이, 대추나무에는 대추꽃이, 배나무에는 배꽃이 핍니다. 오얏나무에는 오얏꽃이 피겠지요. 이화여자대학교를 굳이 ‘배꽃대학교’로 이름 바꿀 까닭은 없습니다만, ‘배꽃’처럼 어여쁜 이름을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은 슬픕니다. 우리는 ‘오얏꽃’ 예쁜 봉우리 또한 잊거나 잃었습니다. 오얏은 사람 성씨 ‘이(李)’에만 남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자두 이’ 씨로 써야지 싶습니다. 


12. 물놀이 : 겨울날 얼음판에서 얼음을 지치며 얼음놀이를 합니다. 여름날 물가에서 물을 가르며 물놀이를 합니다. 들에서 들판을 박차며 들놀이를 합니다. 멧자락에서 멧길을 오르내리며 멧놀이를 합니다. 


13. 맹꽁이 : 맹 꽁 맹 꽁 운대서 맹꽁이입니다. 사람은 왜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려나요. 요새는 사람이라는 낱말은 뒤로 밀리고 ‘인간(人間)’이라는 낱말만 흔히 들립니다. 우리는 왜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고 인간이라 말하려나요. 까매서 까마귀요 하얘서 해오라기인데, 짐승한테 붙이는 이름과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에는 어떠한 느낌과 빛깔과 마음과 삶과 사랑과 믿음을 담았으려나요. 


14. 함박꽃 : 함박꽃을 보면 말 그대로 함박꽃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함박눈을 보면 그야말로 함박눈이네 하고 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입이 함박만 해지며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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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24] Song Battle

 춤을 추는 사람들은 서로 춤겨루기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춤이 아닌 ‘댄스’이기 때문에 ‘댄스 배틀’을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면 노래겨루기를 하겠으나, 오늘날에는 어김없이 ‘송’을 부르니까 ‘송 배틀’이요, 아예 ‘Song Battle’입니다. (4344.1.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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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23] GIFT몰 설 선물전

 ‘GIFTmall’이 아닌 ‘GIFT몰’이라 적었으니 고맙다 해야 할는지 궁금한데, 끝에는 ‘선물전’이라 적은 만큼 참말 고마운 노릇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그렇지만, 차라리 “GIFTmall happy new year GIFTparty”라 이름을 붙여야 제대로 어울리는 책장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4344.1.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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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의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82
베라 윌리엄스 지음,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걸상 하나로 즐거운 아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 베라 윌리엄스, 《엄마의 의자》



 사람들이 그림책 《엄마의 의자》를 살갗 깊숙이 받아들이려면 얼마나 걸릴까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집에 불이 나 보아야 이 그림책을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집에 불이 나 쫄딱 거덜나 버려야 비로소 이 그림책 이야기를 살필 수 있을가요. 쫄딱 거덜나 슬피 우는데, 이웃들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살림살이를 주섬주섬 나누어 주는 일을 겪어 보아야 바야흐로 이 그림책 속살을 맛볼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을 겪든 저런 일을 치르든 그림책 《엄마의 의자》를 쓰고 그린 사람 마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살포시 헤아릴 수는 있으나, 그린이 마음까지 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내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내 삶으로 내 아이하고 하루하루 복닥이면서 내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엄마의 의자》를 그린 분은 당신이 겪은 숱한 사람과 삶을 그림과 글에 살짝 얹는 이야기책으로 빚습니다. 그린이로서는 그림 한 장마다 곳곳에 당신 생각과 마음과 꿈이 묻어납니다. 읽는이로서는 그림 한 장마다 곳곳에 서린 ‘아, 나는 어떻지? 내 삶은 어떻지?’ 하는 생각과 마음과 꿈을 돌아봅니다.

 살가운 동무랑 이야기꽃을 피울 때, 서로서로 제 삶을 이야기합니다. 서로서로 제 동무 삶을 다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동무가 들려주는 동무 삶을 가만히 귀기울여 듣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듣든, 말없이 눈을 감고 머리속으로 이야기마다 떠오르는 모습을 그리면서 듣든, 이야기동무 삶자락 이야기를 찬찬히 듣습니다. 이윽고 내가 살아가며 겪고 치르느라 느끼며 생각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이때 내 이야기동무는 나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듣거나, 말없이 한손으로 턱을 괴고는 눈을 지긋이 감고 듣겠지요.

 그림책을 즐기는 일은 이야기나눔과 같습니다. 그린이는 그린이 삶을 우리한테 들려줍니다. 그린이 삶을 듣는 우리들은 우리 나름대로 우리 이야기를 그린이한테 들려줍니다. 이렇구나 저렇구나 그렇구나 고개를 까딱까딱 건들건들 흔들흔들 하는 동안 어느새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납니다.


.. 우리 엄마는 블루 타일 식당에서 일을 하십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는 가끔 식당으로 엄마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식당 주인인 조세핀 아줌마는 나에게도 일거리를 주십니다. 나는 소금통과 후춧가루통을 씻고, 병에 케첩을 가득 채웁니다. 한번은 양파 수프에 넣을 양파를 혼자서 다 깐 적도 있습니다. 일을 모두 마치면, 조세핀 아줌마는 “정말 수고했구나!” 하며 돈을 주시지요. 나는 언제나 그 돈의 절반을 유리병에 넣습니다 ..  (5쪽)


 지난가을,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이웃한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날 집을 치우며 고치느라 매우 부산하셨습니다. 아이하고 놀아 준다든지 아이를 바라볼 틈 없이 바쁘셨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이리 좋고 저리 좋은지, 이곳저곳 콩콩 뛰고 내달리며 놉니다.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끌어당기니, 아이가 가자는 대로 함께 걷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는 앞뜰 한켠에 푸른빛 작은 걸상이 있습니다. 아이는 요 조그마한 걸상에 턱 앉더니 아주 좋아합니다. 이내 이 걸상을 들고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일하는 맡으로 다가옵니다. 이 맡에 걸상을 착 내려놓고는 척 앉아서 말끄러미 바라봅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건만, 아이는 이 조그마한 걸상을 놓지 않습니다. 제 낮은 키에 꼭 알맞춤하니까 제 걸상으로 여깁니다. 면내 가게에서 살 수 있을까, 읍내로 나아가야 살 수 있을까, 어찌 되든 웬만큼 큰 가게라면 으레 팔 듯한 값싼 플라스틱 걸상인데, 이 걸상에 눈과 마음이 확 꽂힌 듯합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작은 걸상을 자전거수레에 함께 싣습니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자가용이 있으니 나중에 큰 가게에 가서 다시 사면 되고, 우리는 큰 가게 있는 데까지 자전거를 몰고 사러 가기는 좀 힘드니까, 쑥스럽게 이 작은 걸상을 얻어 가기로 합니다.

 집으로 돌아올 즈음, 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잠듭니다. 땀 뻘뻘 흘리며 집에 닿아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살몃살몃 안아 자리에 눕힙니다. 저녁나절 깬 아이는 제가 그토록 챙기려던 작은 걸상은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냥 놓고 와도 되었겠다고 여겼지만, 모르는 척 작은 걸상을 슬그머니 꺼내어 아이 앞에 놓습니다.

 아이는 새삼스레 좋아하며 걸상에 앉고 서며 놉니다.


.. 우리는 부엌 식탁에 앉아 팁을 셉니다. 할머니도 옆에 와서 앉으시지요. 우리가 돈을 세는 동안 할머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십니다. 할머니의 낡은 가죽 지갑에는 대개 우리에게 줄 동전 몇 닢이 들어 있습니다. 할머니는 토마토나 바나나 그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싸게 살 때마다, 남은 돈을 모아 두었다가 병에 넣으십니다 ..  (9쪽)


 작은 걸상 하나 얻어 온 뒤부터, 아이는 날마다 이 걸상을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합니다. 그동안 제 작은 키로는 손이 닿지 않던 데를 올라가 보려고, 이 작은 걸상을 받치고는 척척 올라섭니다. 작은 걸상을 디디고 서면, 온 방 불을 켜고 끄는 단추에 손이 닿습니다. 제발 그렇게 켰다 끄지 말라 해도, 단추 누르는 재미 때문인지 신나게 껐다 켰다를 되풀이합니다. 하도 눌러대어 크게 나무랐더니 잔뜩 풀이 죽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갑니다. 조금 뒤 이 걸상에 올라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머리에는 제 작은 이불을 모자치마처럼 뒤집어쓰고는 이리 손짓 저리 발짓을 하며 춤을 곁들여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는 하루에 한두 번씩 ‘걸상에 올라서서 춤추며 노래하기’를 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보여줍니다.

 방에서 함께 영화를 볼 때에도 아이는 이 걸상에 앉곤 합니다. 이렇게 걸상을 좋아할 줄 몰랐고, 이토록 걸상을 즐긴다면 진작에 아이 키높이에 맞는 앉은뱅이 걸상 하나 마련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올 오뉴월에 둘째가 태어나, 둘째 아이도 무럭무럭 자라고 나면 이렇게 작은 걸상 하나를 알뜰살뜰 여길까 궁금합니다. 아마, 어슷비슷하겠지요. 첫째 아이가 쓰던 걸상은 둘째한테 물려주라 하고 첫째 아이 걸상을 새로 장만해 주든, 아니면 둘째 아이가 쓸 걸상을 새로 마련해 주든 해야겠구나 싶습니다.


.. 집안에 있던 물건들은 죄다 타서 시꺼먼 숯덩이와 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이다 이모와 샌디 이모부 집에서 지냈어요. 그러다 아래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벽을 노란색으로 칠했어요. 마룻바닥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습니다. 하지만 방들은 모두 텅텅 비었습니다. 새 집으로 이사하던 날, 이웃 사람들이 피자와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또 여러 가지 살림살이도 갖다 주었습니다. 길 건너 앞집에서는 식탁과 의자 세 개를 갖다 주었고요. 옆집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어렸을 적에 쓰던 침대를 주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양탄자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샐리 이모는 하얀 바탕에 빨간 무늬가 있는 커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엄마가 일하는 식당의 조세핀 아줌마는 냄비와 프라이팬, 그리고 은그릇과 접시들을 갖다 주셨습니다. 내 사촌은 자기 곰인형을 내게 주었지요 ..  (17∼19쪽)


 그림책 《엄마의 의자》를 들춥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는 고된 몸을 느긋하게 쉴 걸상을 꿈꿉니다. 넓거나 으리으리한 집이 아니라, 느긋하게 쉴 걸상 하나를 바랍니다. 온갖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꽃밭이 아니라, 느긋하게 쉴 걸상 하나를 비손합니다.

 앉자면 바닥에 앉아도 되고 이부자리에 앉아도 됩니다. 흙땅이나 길바닥에 앉아도 되고 그루터기에 앉든 돌에 앉든 해도 됩니다.

 사람들은 굳이 걸상을 만들어 앉습니다. 둘레를 살피면 어디이든 다 앉을 자리가 되지만 애써 걸상을 마련해 앉습니다.

 꼭 한 가지로만 쓰는 걸상을, 꼭 앉는 데에만 쓰는 걸상을, 궁둥이를 들이밀고 허리를 받치며 머리를 스윽 기대는 걸상 하나를 부러 장만하거나 만들어서 앉습니다.

 바닥이나 이부자리에 앉으면 그대로 잠이 듭니다. 폭신하거나 느긋한 걸상에 앉아도 솔솔 잠이 듭니다. 그러나, 걸상에 앉으면 몸을 쉬면서 입만 조잘조잘 열며 이야기꽃을 피울 만합니다. 걸상에 앉아 잠이 들었다가 퍼뜩 깨면 기지개를 켜고 금세 일어날 만합니다. 걸상을 창가로 옮겨 놓고는 해바라기를 하면서 느긋하게 쉴 만합니다.

 하루일로 고단한 어머님으로서는, 또는 아이를 배어 몸속에 고운 목숨을 품는 어머님으로서는, 또는 집살림을 건사하다가 살짝 다리쉼을 하려는 어머님으로서는, 이러한 걸상이 곁에 있으면 참 좋습니다. 다른 데에는 쓸모가 없다지만, 바로 앉는 쓸모 하나만 있는 이 걸상이기에 참 좋습니다.

 냄비는 냄비라서 좋고 밥그릇은 밥그릇이라서 좋으며 걸상은 걸상이라서 좋습니다. 냄비는 냄비라서 좋으니, 알뜰히 쓸 냄비를 찾으러 냄비집에 찾아가 요모조모 살피거나 들여다보며 고릅니다. 밥그릇은 밥그릇이라서 좋으니, 오로지 밥그릇으로 쓸 그릇을 찾으러 그릇집으로 마실을 한 다음 이모저모 살펴보고 들여다보며 고릅니다.

 책은 오로지 책으로 읽으려고 찾아서 장만하여 읽습니다. 노래는 오로지 노래로 즐기려고 가만히 귀담아들으며 익혀서 부릅니다. 사랑은 오로지 사랑으로 나누려고 즐거이 어깨동무하거나 얼싸안으며 따사로이 나웁니다.


.. 우리는 가구집을 네 군데나 돌아다녔습니다. 큰 의자에도 앉아 보고 작은 의자에도 앉아 보고, 높은 의자와 낮은 의자, 푹신한 의자와 딱딱한 의자에도 앉아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온갖 종류의 의자에 앉아 보니, 마치 ‘곰 세 마리’ 이야기에 나오는 금발머리 소녀가 된 기분이라고 하셨습니다 ..  (25쪽)


 아이는 작은 걸상 하나로 즐겁습니다. 아이는 어마어마한 돈이 아닌 작은 걸상 하나로 즐겁습니다. 아이한테 몇 천만 원이나 몇 억짜리 자가용을 사 준다 한들 즐거울 수 없습니다. 아이는 오로지 이 작은 걸상 하나로 흐뭇합니다. 십만 원이나 백만 원짜리 놀라운 걸상을 선물해 준다 한들, 천 원쯤 될까 싶은 작은 플라스틱 걸상 하나로 기쁩니다.

 《엄마의 의자》에 나오는 세 사람, 할머니랑 엄마랑 나, 이 세 여자는 걸상을 새로 장만하면서 돈값을 따지지 않습니다. 새 걸상을 사자면 틀림없이 돈이 제법 들 테니, 돈을 바지런히 모으기도 했습니다만, 걸상을 고르는 자리에서는 ‘오직 당신 세 여자가 아주 좋아하며 무척 기뻐할 걸상’인가 아닌가만 살핍니다.

 걸상 값이야 얼마가 되든 좋습니다. 비싸든 싸든 아랑곳할 대목이 아닙니다. 당신한테 좋은 걸상이냐 아니냐 이 한 가지만 살핍니다.

 세 여자네 이웃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들 세 여자가 ‘부자이냐 유명인사냐 권력자이냐’는 하나도 아랑곳할 대목이 아닙니다. 이들 세 여자가 ‘살가우며 좋은 이웃’인가만 돌아봅니다. 사랑스러운 이웃으로서 서로 사랑을 나눌 좋은 벗인가만 살핍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나라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려 할 때에 얼굴을 따지고 재산을 따지며 자가용이나 아파트 따위를 따지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가방끈을 따지고 옷차림을 따지며 웃기는 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를 따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려면 참으로 이 사람이 사랑스러우며 나와 이이 둘이서 사랑꽃을 피우는가를 살필 노릇입니다. 사랑이라면 사랑 하나이지, 돈도 이름도 권력도 부질없습니다. 아니, 돈이나 이름이나 권력에 눈이 멀기에 참사랑하고는 멀어집니다.

 우리들은 서로를 아끼면서 살아갈 사람입니다. 내 아이를 아끼고, 내 어버이를 아낄 사람입니다. 내 동무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할 사람입니다. 좋은 삶은 곧 사랑입니다. 즐거운 삶은 바로 사랑입니다. (4344.1.31.달.ㅎㄲㅅㄱ)


― 엄마의 의자 (베라 윌리엄스 글·그림,최순희 옮김,시공사 펴냄,1999.1.20./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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