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2.16. 

혼자서 옷 잘 입는다고 자랑하는 어린이. 참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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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41] EVENT & NOTICE

 인터넷에 마련하는 집인 누리집에 적는 말마디는, 누리집마다 어떤 사람이 찾아오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리집에 나라밖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면 한글이 아닌 알파벳을 쓰고 우리 말 아닌 영어를 쓸 테지요. 일본사람을 헤아려 일본말로 만들거나 중국사람을 살펴 중국말로 만드는 누리집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밖 사람이 아닌 한국사람이 찾아드는 누리집이라면 어떠한 말로 만들어야 알맞거나 올바르다 할 만할까요. 한국사람이 드나드는 누리집인데, 게시판 이름을 “EVENT & NOTICE”처럼 적는 일은 얼마나 알맞거나 올바르다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글로 “이벤트 앤 노우티스”라 적는다 해서 썩 알맞거나 올바른지 아리송합니다. “행사와 알림”쯤으로만 적어도 될 뿐 아니라, “알리는 말씀”이라고 적어야 올바른 누리집 말매무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4344.2.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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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하나를 되풀이 읽기


 어린 날 만화책을 빌려서 읽을 때면 늘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거듭 읽었습니다. 천천히 읽으면서도 ‘앞으로 읽을 쪽’이 차츰 줄어드니까 아쉬워 아주 더디게 읽지만, 이렇게 더디 읽으면서도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거듭 읽습니다. 얼른 읽자는 마음이 아니라 금세 술술 읽히면서 제발 앞으로 더 남기를 하고 빌었습니다. 마음으로 깊이 아로새기는 만화를 읽을 때에는 ‘부피가 너무 적다’고 느낍니다.

 어느 책을 읽든 예나 이제나 똑같이 생각합니다. ‘앞으로 읽을 쪽’이 얼마나 남았나를 헤아릴 때에 두근두근 조마조마 설레면서 아쉬운 책은 여러 차례 되읽는 책입니다. ‘앞으로 읽을 쪽’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느끼면서 마지막 쪽을 덮는 책은 으레 다시 읽지 않는 책입니다.

 줄거리를 외자고 읽는 책이 아니기에, 줄거리를 간추린다든지 ‘책에 나오는 사람이나 땅이나 물건에 붙는 이름을 줄줄 꿰’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아로새기고픈 책을 읽으니까, ‘책에 나오는 사람이나 땅이나 물건마다 깃든 넋과 사랑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생각’하면서 두고두고 곱씹습니다.

 책을 차근차근 처음부터 끝까지 읽든, 군데군데 뽑아 가며 읽든, 소리내어 찬찬히 읽든, 내 마음으로 스며드는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되풀이해서 읽겠지요. 책마을 일꾼이 땀을 쏟아 내놓는 책은 책마을 일꾼부터 스스로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되읽는 책입니다. 그저 많이 팔아 돈을 벌자며 내놓는 책일지라도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읽고, 참으로 좋다고 느껴서 사람들한테 두루 알리고프니까 내놓는 책 또한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읽습니다.

 그러면, 책마을 일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책마을 일꾼이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을 거듭 읽으며 내놓는 책을 사서 읽을 사람들이 당신처럼 세 번 다섯 번 일곱 번 거듭 읽어 주기를 바랄까요, 그냥 한 번 슥 읽기를 바랄까요. 한 번 읽고 그칠 만한 책을 만드는가요, 숱하게 되읽으며 아낄 만한 책을 만드는가요. 많이 팔리지 않고서야 일하는 보람을 못 느끼는 책을 만드는가요, 알뜰히 읽히며 사랑받을 책을 만드는가요.

 아마 책마을 역사에는 ‘숫자로 쳐서 많이 팔리는 책’이 적바림되겠지요. ‘숫자로 쳐서 적게 팔리는 책’이 책마을 역사에 적바림되는 일이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숫자로 쳐서 많이 팔리는 책’이 우리 가슴이나 마음밭에 알뜰살뜰 스며들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꼭 ‘숫자로 쳐서 적게 팔리는 책’이 우리 가슴이나 마음밭에 깊이 아로새겨지지는 않을 테지만, 책을 말하고 책마을을 말하며 책삶을 말할 때에는 팔림새 아닌 읽힘새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듦새에 앞서 책을 마주하는 내 매무새를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두고두고 되읽다가는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어 우리 아이도 거듭 읽을 만한 책을 우리 가난한 살림돈을 바쳐서 장만하고 싶습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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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담은 그림책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마주보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무는 다릅니다. 나무이기는 똑같은 나무이지만, 나무가 뿌리내려 지내는 터전은 사뭇 다릅니다.

 도시사람이랑 시골사람은 다릅니다. 둘은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지내는 보금자리가 다릅니다. 그러나, 도시사람하고 시골사람이 다르대서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도,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치고 제 목숨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한국땅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는 백 해를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한국사람 살아가는 도시는 끝없이 다시 파헤치거나 무너뜨려 개발하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는 집짓기만 하기 때문에, 나무 몇 그루쯤이야 돈으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쉰 해를 살았건 이백 해를 살았건, 고운 목숨 하나로 나무를 살피지 않는 도시입니다.

 시골이라 해서 나무가 잘 살아남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땔감으로 베기도 하지만, 이보다 지난 한국전쟁 때 온통 죽고 말아 벌거숭이가 된 멧자락에 아무 나무나 함부로 심는 바람에 이 나무들은 제 결대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흙에 내어 자라난 나무는 많지 않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래도 시골 멧자락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뜻으로 심건 저런 까닭으로 심건, 열 해 스무 해 지나면서 저희끼리 씨앗을 내어 천천히 조용히 자랍니다. 사람들이 솎아내기를 하지 않거나 가지치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면, 시골나무는 시골나무 그대로 마음껏 자랍니다.

 도시나무는 걷는 사람한테 걸리적거리거나 오가는 자동차한테 번거로우니까 가지를 자릅니다. 전깃줄에 걸린다느니 건물 창문을 가린다느니 해서 줄기이든 가지이든 뭉텅뭉텅 자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도 키가 클수록 줄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시골나무는 키가 크면서 제 스스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립니다. 억지로 가지를 잘라내면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리지 않습니다. 잎사귀가 햇볕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 하니까 위쪽 가지가 아래쪽 가지보다 잎이 우거집니다.

 도시에서는 어린나무를 보기 힘듭니다. 아니, 도시에는 어린나무를 아예 볼 수 없다고 해야겠지요. 시골땅에서 웬만큼 키운 다음 가지치기를 한 젊은나무를 심으니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무는, 또 도시사람이 ‘나무숲’이라는 수목원을 찾아가서 마주한다는 나무는, 가지가 으레 위쪽에만 남습니다. 어느 나무이든 잔가지가 얼마나 많은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무 잔가지’를 볼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겨울을 난 나무마다 새로 뻗는 가지가 얼마나 많은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봄이 되기 앞서 도시 공무원들은 ‘가로 정비’라는 이름을 붙여 잔가지며 몸통 아래쪽 가지는 모조리 잘라내거든요.

 그림책에 담기는 나무란, 으레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림쟁이가 그림으로 담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책마을 일꾼이 엮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들여다보는 그림책 나무입니다. 흙에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새 목숨을 영차영차 일구는 시골나무가 그림책에 담기는 일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무는 흙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람은 흙이 없는 곳에서도 살아가는 나머지, 나무와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과 풀과 짐승이 어떻게 얼크러지는가를 도시사람으로서는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도 ‘나무 이야기 다룬 그림책’이라도 읽어야 도시사람 마음에 푸른 싹이 틉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이래저래 어수룩하거나 어설픈 자연 그림책이든 나무 그림책이든 가까이해야, 모자라나마 나무사랑 흙사랑 자연사랑 사람사랑을 조금이나마 맛보거나 생각할 만합니다.

 나무다운 나무를 그리지 못하는 도시사람 그림책이지만, 어찌 되든 나무이기는 나무이지, 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런 나무를 그린 그림책이라도 만들고 팔며 사서 읽습니다.

 나무는 그림책이 아니라 멧자락에 있습니다. 나무는 사진책이나 도감이 아니라 시골마을이나 우리 집 자그마한 마당에서 살아숨쉽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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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필요 : “꼭 필요하다”라 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한자말 ‘필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를 뜻하는 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꼭’과 ‘반드시’는 뜻이 같은 우리말입니다. 그러니까 “꼭 필요한 서류”나 “꼭 필요한 물건”이라 말하면 겹말이 돼요. 한자말로 이야기하고 싶으면 “필요한 서류”라 하고, 우리말로 얘기하고프다면 “꼭 있어야 할 서류”나 “꼭 챙길 서류”라 해야 알맞습니다.

[필요(必要) :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음]
※ 내 도움이 필요하면
→ 내가 도와야 하면
→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42. 인간 : ‘인간’이라는 한자말은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이러한 말짜임을 잊고 맙니다. ‘인간’이랑 ‘사람’을 사뭇 다른 자리에 써야 할 낱말로 여겨 버릇해요.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인간’과 ‘사람’을 영어로 옮긴다면, 또 노르웨이말이나 네덜란드말로 옮긴다면 어떻게 적어야 할까요. 덴마크사람이나 버마사람한테 우리말을 가르친다 할 때에 ‘인간’이랑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 할까요. “저 인간 좀 보라구.” 같은 대목은 “저 사람 좀 보라구.”로 고쳐쓰면 되지만, 느낌을 달리하자면 “저놈 좀 보라구.”나 “저 녀석 좀 보라구.”나 “저 쓸개빠진 녀석 좀 보라구.”나 “저 머저리 좀 보라구.”처럼 다 다른 낱말을 넣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사람’이라는 우리말을 잊으면서, 사람들 모습과 삶을 나타낼 숱한 말투 또한 잊습니다.

[인간(人間) : 사람]
※ 인간적인 생활
→ 사람다운 삶


43. 행복 : ‘복(福)된’ 일이란 “복을 받아 기쁘고 즐거운” 일을 일컫습니다. ‘행복’이란 곧 ‘즐거운 일’, ‘즐거움’입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란, 말 그대로 “즐거운 삶”이고, 이를 한자말로 옮길 때에는 “행복한 생활”이 돼요. 말 한 마디 즐겁게 나누고, 생각 한 자락 즐거이 펼칩니다. 글 한 줄 즐겁게 쓰고, 이야기 한 자락 즐거이 주고받습니다.

[행복(幸福) : 복된 좋은 운수]
※ 불행과 행복
→ 슬픔과 기쁨
→ 궂은 일과 좋은 일
※ 행복해 보이다
→ 즐거워 보이다
→ 좋아 보이다
→ 흐뭇해 보이다


44. 상상 : 마음속으로 그리는 일이란 ‘생각’입니다. 마음으로 꾸는 삶이니 ‘생각’해 보는 삶입니다. 예부터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고 했는데, 생각하는 사람이란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슬기롭고 알차게 일구려는 사람입니다.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라, 이루기 힘들더라도 차근차근 이루어 가려는 꿈을 품는 사람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상상(想像) :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 상상 밖의 일
→ 생각 밖 일
→ 생각도 못한 일
→ 생각조차 못할 일
→ 생각을 벗어난 일
→ 생각을 뛰어넘는 일
→ 꿈 같은 일


45. 안녕 : 우리 집 아이를 보는 어른들은 으레 ‘바이바이(bye-bye)’라는 영어를 씁니다. 아이는 이런 인사말이 영어인 줄 모르고 따라합니다. 옆에서 보던 아빠가 못마땅한 나머지 “잘 가셔요.” 하고 말하면 아이는 어느새 “잘 가셔요.”라는 말을 따라합니다. 아이보다 서넛이나 너덧 위 언니 오빠들이 아이를 보며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면 아이도 “안녕.” 하고 따라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슬그머니 “또 봐요.” 하고 말하면 아이도 스스럼없이 “또 봐요.” 하며 따라합니다.

[안녕(安寧) : 아무 탈 없이 편안함.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다
→ 사회가 걱정없게끔 지키다
→ 사회에 걱정이 없게끔 지키다
→ 사회가 튼튼하도록 지키다
※ 안녕, 또 만나자
→ 잘 가, 또 만나자
→ 잘 들어가, 또 만나자
→ 살펴 가, 또 만나자


46. 태양 : 하늘에 뜬 해를 놓고는 ‘해’라 하기보다 ‘태양’이라 하면서, 하늘에 걸린 달을 놓고는 딱히 ‘달’ 아닌 다른 이름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어로 ‘썬(sun)’이나 ‘문(moon)’을 말하는 사람이 꽤 늘어납니다. 그나마 ‘썬에너지’라 안 하고 ‘태양에너지’라 하니 고맙다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햇빛과 햇볕조차 제대로 가누어 쓰지 못하기 때문에, ‘햇볕힘’ 같은 말마디를 알뜰히 살피거나 살찌우지 못합니다.

[태양(太陽) : 태양계의 중심이 되는 항성]
※ 태양에너지
→ 햇볕에너지
→ 햇볕힘


47. 최상 : 가장 높으니 “가장 높다”입니다. 가장 낮으니 “가장 낮다”입니다. 가장 나을 때에는 “가장 낫다”에요. 가장 나쁘기에 “가장 나쁘다”입니다.

[최상(最上) : 수준이나 등급 따위의 맨 위]
※ 최상의 선택이다
→ 가장 낫게 고르다
→ 가장 잘 고르다
→ 가장 잘 되다
→ 가장 낫다


48. 완전 : “완전 짱이야.” 같은 말마디를 쉽게 듣습니다. 어린이도 쓰고 푸름이도 쓰며 어른도 씁니다. 누가 먼저 썼는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말마디를 곰곰이 되짚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주 훌륭해.”라든지 “참 좋아.”라든지 “몹시 대단해.”라 말하는 사람은 차츰 사라집니다. “완전히 엄마가 된 기분이네.” 같은 말마디도 쉽게 듣습니다. “아주 엄마가 된 느낌이네.”라든지 “꼭 엄마가 된 듯하네.”라든지 “마치 엄마가 된 듯하네.”라 말하는 사람 또한 나날이 사라집니다. 우리말은 ‘아주’ ‘깡그리’ ‘송두리째’ ‘모조리’ ‘온통’ ‘참말로’ 우리말다움을 잃습니다.

[완전(完全) :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
※ 완전히 실망이야
→ 매우 실망했어
→ 아주 미워
→ 너무 안타깝구나
→ 참 안쓰럽구나


49. 가족 : 한자말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가족’은 일본사람이 쓰는 낱말이고, ‘식구(食口)’가 한국사람이 쓰는 낱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얼개로, ‘혼인(婚姻)’과 ‘결혼(結婚)’이 있어요. ‘혼인’이 한국사람 낱말이요, ‘결혼’은 일본사람 낱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삶터를 돌아보면, 한국말인가 일본말인가를 옳게 가르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씁니다. 따지고 보면, 일본말만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아요. 영어도 어느 곳에나 거리끼지 않고 써요.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옳게 쓰거나 바르게 쓰지는 않습니다. 말을 살리는 넋이나 글을 북돋우는 얼을 생각할 수조차 없이 메마른 우리나라입니다.

[가족(家族) :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 가족을 부양하다
→ 식구를 먹여살리다
→ 살붙이를 먹여살리다
※ 가족적 분위기이다
→ 따스한 느낌이다
→ 오순도순 좋다


50. 충분 : 말을 제대로 살피면 생각을 한결 깊이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한결 깊이 하는 사람은 내 삶을 더욱 차분히 일굽니다. 말사랑벗들은 둘레 어른들이 “밥은 충분히 먹었니?” 하고 묻는 말을 더러 들은 적 있나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어느 어른이든 “밥은 배불리 먹었니?” 하고만 물었습니다. 지난날 어른들은 일터에서 “돈은 넉넉히 받나?” 하고 얘기했으나, 이제는 “보수(報酬)는 충분히 지급(支給)되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충분(充分)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함]
※ 이만 하면 충분하니
→ 이만 하면 넉넉하니
→ 이만 하면 되니
→ 이만 하면 괜찮니
※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다
→ 솜씨를 제대로 뽐내다
→ 솜씨를 마음껏 펼치다
→ 솜씨를 실컷 보여주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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