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술쟁이 2부 1
문계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문계주 님 단편집 <아프리카의 꿈>은 아예 목록으로도 안 뜬다. 하는 수 없이, 절판된 만화책인 <엄마는 요술쟁이>에 걸친다. 나중에 <엄마는 요술쟁이>라는 만화책은 따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만화로 살가이
 [만화책 즐겨읽기 29] 문계주, 《아프리카의 꿈》



 환경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면서 ‘o.k.’나 ‘땡큐’ 같은 영어를 아무렇지 않게 섞는 일은, 환경사랑을 하자면서 과자봉지를 들판이나 멧길에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아무것 아니라 여길 수 있는 자그마한 말마디 하나를 곱게 돌볼 수 있을 때에 환경사랑이든 나라사랑이든 삶사랑이든 사람사랑이든 만화사랑이든 이룰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살아숨쉬는 만화란 살아숨쉬는 생각으로 그립니다. 살아숨쉬는 생각이란 내 마음과 몸이 튼튼하며 씩씩하게 살아숨쉴 때에 생깁니다. 내 마음이며 몸이 싱그러이 살아숨쉬도록 다스리지 못할 때에 내 생각이 살아숨쉴 수 없습니다. 내 마음과 몸이 사랑으로 가득할 때에 비로소 사랑이 태어나고, 이렇게 태어난 사랑을 바탕으로 사랑스러울 만화를 그립니다.

 새롭게 만화쟁이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고, 일찌감치 만화쟁이가 된 사람이 많으며, 오래도록 만화쟁이 한길을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

 만화쟁이가 되는 길이라든지 만화쟁이로 살아가는 길이란 남다르지 않습니다. 글쟁이로 살아가는 길이나 노래쟁이로 살아가는 길이나 흙쟁이로 살아가는 길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살림꾼으로 살아가거나 여느 일꾼으로 살아가는 길하고도 매한가지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내 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일구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오롯이 깨달아서 아낌없이 껴안을 때에 비로소 만화에 어떠한 이야기를 담으면 좋으면서 즐거울까를 느낍니다. 내 살림살이를 내 손으로 일구는 나날을 이을 때에 시나브로 내 만화로 담아 이웃이랑 동무하고 어여쁘며 신나게 나눌 만화를 그리는 길을 알아챕니다.


- “아니, 저, 다른 기자들이 하도 많아서, 난 없어도.” “그게, 우리 신문사 기자던가?” “아니오. 하지만 똑같은 기사를 여러 신문사에서 싣는 건 지면 낭비라고 생각돼서…….” (15쪽)
- “미야는 우리와 틀려요. 어머니. 억지로 우리의 방식에 맞출 순 없어요. 그 아인 그 나름대로 삶과 생활이 있으니까. 저 애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보내야 해요. 옛날, 우리가 오빠를 보냈던 것처럼 그렇게…….” (87쪽)



 문계주 님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습니다. 이 만화책이 처음 나오던 1993년에도 읽었고, 이 뒤로도 한두 번 더 장만해서 읽기도 한 작품인데, 얼마 앞서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다시금 눈에 뜨여서 또 장만해서 새삼스레 읽습니다.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은 1967년에 태어난 문계주 님이 스물여섯 나이에 내놓은 작품모음입니다. 모두 네 꼭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아프리카의 꿈〉과 한 꼭지로 마무리하는 짧은만화 〈하늘이 보이는 창〉하고 〈비오는 크리스마스〉에다가 두 꼭지로 끝맺는 짧은만화 〈이 겨울이 가기 전에〉를 담습니다.

 만화쟁이 문계주 님으로서는 스물여섯에 내놓은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이고, 만화즐김이 저로서는 열여덟에 처음 만난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입니다. 열여덟에 처음 읽은 《아프리카의 꿈》은 스물여섯 즈음에도 새로 읽었고 서른일곱 나이에 다시금 새로 읽습니다.

 책장을 넘기니 그림결이며 이야기이며 줄거리이며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러나 오늘 처음 넘기는 만화책이라 여기며 조마조마 두근두근 콩닥콩닥 마음으로 기쁘게 읽습니다.

 한 시간 만에 다 읽기에는 너무 아쉬워 여러 날에 걸쳐 천천히 읽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쪽을 덮으면서, 아, 이제 이 책을 또 다 읽었구나 느끼며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렇게 깨끗한 판으로 장만했으니까 잘 건사해서 마흔여섯이나 마흔여덟쯤 될 나이에 거듭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첫째 딸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열 몇 살쯤 될 무렵 스스로 이 만화책을 읽을 수 있겠지요.


- ‘어느덧 변두리를 빠져나오자, 대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21쪽)
- “애비한테 얘기해 봐. 외국 생활이 힘들지?” “아, 아니요. 그냥, 밤하늘이 보고 싶어서. 오늘 따라 유난히 맑은 밤이라서. 그래서 그냥 잠들기 아쉬워서 그래요.” “그래. 그렇구나.” (67쪽)



 만화쟁이 문계주 님은 나이 스물여섯에 한창 맑고 밝은 빛과 기운을 뽐내며 《아프리카의 꿈》을 내놓았기 때문에, 이 뒤로도 얼마든지 여러 만화책을 내놓을 법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요술쟁이》 뒤로는 좀처럼 다른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어린이책에 사잇그림을 그려 넣은 책이 몇 가지 나옵니다.

 요사이는 새 작품모음을 거의 만나지 못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데, 제가 낱권책으로만 만화를 읽고 잡지만화로는 읽지 않기 때문에 소식을 모른다 할 수 있습니다. 잡지에 만화를 그리더라도 낱권책이 안 나올 수 있으니까요.

 꼭 나이로 쳐서가 아니라, 스물여섯 즈음부터 서른여섯을 거쳐 마흔여섯에 이르기까지 만화를 그리든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스스로 튼튼하며 빛나는 작품세계를 이룩하기 마련입니다. 문계주 님은 당신 삶에서 가장 빛나는 때에 만화창작을 한결 튼튼하거나 씩씩하게 잇지 못하고 말았다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퍽 많은 한국 만화쟁이들이 한창 빛나야 할 서른이나 마흔이나 쉰 나이에 만화꽃을 잘 못 피웁니다. 예순이나 일흔쯤 되는 나이라면 만화열매를 맺어 젊은 만화쟁이한테 좋은 길잡이나 밑거름이 될 만하지만, 이렇게 만화꽃이나 만화열매로까지 나아가는 어르신은 퍽 드뭅니다.

 언제나 새로운 삶을 부대끼면서 이러한 새로운 삶을 만화로 담는 만화쟁이인데, 새로운 삶을 일구기에는 새 만화를 실을 매체가 너무 적거나 새 만화를 책으로 빚어 내놓을 출판사가 너무 모자란 탓일까요. 만화쟁이 스스로 한결 새롭게 거듭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글이든 사진이든 만화이든, 글이나 사진이나 만화로 담는 이야기는 머나먼 남쪽나라나 멀디먼 북쪽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머나먼 남쪽나라나 멀디먼 북쪽나라에도 글이건 사진이건 만화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있겠지요. 그러나 바로 우리 곁에도 좋은 이야기가 있으며,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 또한 좋은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아이 돌보는 삶이 곧바로 글이나 사진이나 만화로 담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혼자서 살든 여럿이서 살든 혼인해서 살든 헤어져서 따로 살든, 저마다 다 다르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좋은 글감이고 사진감이다가는 만화감입니다.


- ‘나, 떠날 수 있을까. 이곳에 네가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보고 싶어.’ (73쪽)
- ‘나와 같이 가자. 이제 다시는 널 슬프게 하지 않을 거야.’ (85쪽)
- “또 내 얘기만. 나도 모르게 빠져들면 꼭 이래요. 지루하지요?” “아니오. 참 좋아요. 따스하구요. 고마워요.” (154쪽)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여기에 만화를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영화를 찍거나, 누구나 내 삶을 예쁘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쁘게 사랑하는 내 삶을 글로든 그림으로든 사진으로든 만화로든 살포시 담으면 기쁘겠습니다.

 내 이야기를 그리고, 내 어머니 이야기를 그리며, 내 할머니 이야기를 그리면 됩니다. 내 이야기를 돌아보고, 내 동무 이야기를 살피며, 내 이웃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돼요.

 “아니오. 참 좋아요. 따스하구요. 고마워요.” 하고 대꾸할 말마디는 남쪽나라나 북쪽나라 이야기에서 비롯하지 않습니다. 여느 이야기, 수수한 이야기, 투박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에서 바로 “아니오, 참 좋아요. 따스하구요. 고마워요.” 하고 대꾸할 만한 사랑스러운 꿈이 태어납니다.


- “엄만, 누구 좋아한 적 있었어? 저기, 첫사랑 말이야.” “어머, 얘는! 10번도 더 해 봤는걸.” (107쪽)
- ‘누군가의 말처럼 만나면서 우리는 이별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때엔 다시 누굴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마도 나에겐 너무 아픈 기억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상처를 받을 땐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만큼은 성숙해진다는 걸 알았어.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 사랑했고 아파했느냐는 거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일이니까.’ (109쪽)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만화로 살가이 담으면 넉넉합니다.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살가이 담은 만화는 오래도록 물리지 않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수수한 내 하루하루를 살가이 보듬은 만화이기에 아이 아버지인 저부터 두고두고 즐겼으며, 우리 딸아이한테 물려줄 만하며, 우리 딸아이도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된 다음 제 딸아이를 낳는다면 언제까지나 예쁘게 사랑을 나누는 해맑은 이야기꽃이 흐드러지리라 믿습니다. (4344.3.16.물.ㅎㄲㅅㄱ)


― 아프리카의 꿈 (문계주 그림·글,서화 펴냄,1993.6.25./판끊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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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왜 어른들한테 높임말을 써야 하나요
 : 어른이기 때문에 높임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나하고 견주면 손윗사람입니다. 손윗사람이기 때문에 높임말을 씁니다. 손윗사람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일은 나한테 반갑거나 즐겁거나 좋은 일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손아랫사람이라 해서 함부로 깎아내리는 일 또한 썩 반갑거나 즐겁거나 좋은 일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손위사람한테든 손아랫사람한테든 말을 낮추어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한테나 서로를 높이는 말을 써야 즐거우며 반갑습니다. 길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 해서 낮춤말이나 반말을 함부로 써도 되지 않습니다. 밥집에서 밥을 돈을 내어 사서 먹는다기에 밥집 일꾼한테 낮춤말이나 반말을 마구 써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말을 써야 즐거우며 반갑습니다.

 26. 어른들은 왜 우리들한테 반말을 쓰나요
 : 어른한테 푸름이나 어린이는 손아랫사람입니다. 어른 가운데 푸름이나 어린이한테 반말을 쓰는 사람은 푸름이나 어린이가 손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푸름이나 어린이한테 반말을 쓰는 어른은 당신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어른이라면 푸름이와 어린이한테 하듯 똑같이 반말을 씁니다. 오로지 나이로만 사람을 살피기 때문에 쉬 반말을 써요.

 27. 우리들은 왜 고운 말 바른 말을 써야 하나요
 : 곱거나 바른 말은 따스하거나 너른 사랑과 믿음을 담는 말입니다. 곱거나 바른 말로 내 생각을 들려주면, 나한테서 곱거나 바른 말을 듣는 사람은 한결 따스하면서 넉넉한 마음을 함께 받습니다. 말에 담긴 줄거리뿐 아니라 말에 서리는 사랑을 함께 나눕니다. 이때에는 말을 듣는 사람뿐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 또한 따스하면서 넉넉할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손과 입으로 고운 말을 들려줄 때에는, 내 마음과 가슴과 몸에 고운 기운이 감돌면서 한결 사랑스럽습니다. 나부터 내 손과 입으로 바른 말을 펼칠 때에는, 내 마음과 가슴과 몸에 바른 넋이 흐르면서 더욱 믿음직합니다. 내 이웃과 동무랑 다 함께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기에 고우며 바른 말을 쓰자고 이야기합니다.

 28. 사투리와 방언을 같은 말인가요
 : 다른 말입니다. ‘사투리’는 우리말이고 ‘방언(方言)’은 중국말이에요. 다만, 두 낱말은 뜻이 같아요.

 29. 사투리는 왜 쓰나요
 : 사투리는 고장말입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고장이 다르니까, 다 다른 고장 삶터에 따라 다 다른 말을 써요. 멧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멧골자락에서 멧골 기운을 받아들이며 멧골말을 쓰고, 바닷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바다 기운을 받아들여 바닷말을 쓰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 기운을 받아들여 도시말을 씁니다. 똑같은 고장이 없고, 똑같은 삶터가 없습니다. 일본사람과 중국사람이 쓰는 말도 더 넓게 살피면 일본 고장과 중국 고장에서 쓰는 말인 셈입니다. 고장말이란 고장 빛깔을 드러내는 말이요, 우리 스스로 이웃 고장을 살피며 이웃 고장 사람이 쓰는 말을 알뜰히 익히거나 살핀다면, 서로서로 더 살가이 사귈 수 있습니다.

 30.  띄어쓰기를 꼭 해야 하나요
 : 띄어쓰기는 안 해도 됩니다. 우리말에는 띄어쓰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띄어쓰기를 받아들여 쓰는 까닭은,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면서 낱말마다 또박또박 띄어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은 그저 술술 합니다. 글을 쓰며 띄어쓰기를 하는 까닭은, 누군가 쓴 글이 제대로 빨리 잘 읽히도록 도와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띄어쓰기란, 글이 잘 읽히도록 하는 글쓰기 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31. 순우리말은 얼마나 되나요
 :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말사랑벗이 읽는 어린이책을 가만히 살펴보면 됩니다. 어린이책에 쓰는 낱말하고 어른책에 쓰는 낱말이 사뭇 다른데, 어른책은 온갖 지식과 정보를 다룬다면서 외국말인 한자말과 영어를 지나치게 함부로 많이 섞습니다. 어린이책에는 우리 겨레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익히도록 하자면서 되도록 우리 겨레 말과 글을 알뜰히 쓰려 합니다. 모든 소리말·빛깔말·느낌말·시늉말을 국어사전에 담을 수는 없으나, ‘토박이말 사전’을 엮을 때에 20만 낱말은 되지 않겠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으로 엮는 낱말 숫자가 얼추 20만이나 30만이 된다고 할 뿐,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빚어서 쓸 수 있는 낱말은 훨씬 많습니다. 국어사전에 못 실리는 낱말을 아우르면 100만을 훌쩍 넘어섭니다.

 32. 짱, 레알, 즐과 같은 언어를 써도 되나요
 : 어떠한 말이든 쓰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낮춤말이나 막말이라 하더라도 쓰고픈 사람은 써야 합니다. 그러나, 낮춤말이나 막말이나 남을 깎아내리는 말이나 얄궂게 줄여서 쓰는 말이나 서툴게 받아들여 엉성하게 쓰는 말이란, 이 말을 듣는 사람에 앞서 이 말을 쓰는 사람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남들이 쓰니까 나도 따라서 쓰는 말이 아니라, 나 스스로 사랑할 만하다고 여기는 말을 쓰면 좋겠어요. 남들이 이런 말을 하든 저런 말을 하든, 나부터 두루 아끼며 기뻐할 만한 말을 슬기롭게 찾아서 쓰면 좋겠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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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우리가 외국말을 배우는 까닭이 있나요
 : 외국사람하고 사귀려고 외국말을 배웁니다. 외국사람을 사귈 마음이 없으면 애써 외국말을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외국책을 읽거나 나라밖 문화를 살피려고 외국말을 배웁니다. 외국책을 읽거나 나라밖 문화를 살피며 무언가 나한테 도움되는 대목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외국말을 배웁니다. 외국책을 읽을 생각이 없거나 나라밖 문화를 살필 생각이 없으면 굳이 외국말을 배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9. 사투리는 왜 생겨났을까요
 :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터전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살아가는 고장에서 쓰는 말이 다릅니다. 사투리가 생겨났다기보다, 고장마다 고장말을 썼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지난날에는 작은 고장이 한 나라였고 온누리였습니다. 제주섬은 제주섬대로 작은 고장이면서 한 나라이고, 강원도는 강원도대로 작은 고장이면서 한 나라예요. 그리고 제주섬에서도 제주시나 조천읍이 다른 고장이면서 한 나라이고, 강원도에서도 횡성이나 원주는 횡성이나 원주대로 작은 고장이면서 한 나라입니다. 충청북도 음성군과 괴산군은 서로 다른 작은 고장이면서 한 나라였고, 음성군에서는 음성과 금왕과 대소와 감곡이 또 서로 다른 작은 고장이면서 한 나라입니다. 저마다 지내는 고장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제 고향이 있어도 한 나라를 통틀어 움직이거나 사귀거나 만나기 때문에 고장에 따라 다 다르던 고장말이 옅어집니다. 지난날에는 내 고장에서 이웃 고장으로 걸어서 오가는 데에도 한나절이 꼬박 들었으나 이제는 서울부터 부산까지도 두어 시간이면 넉넉하니까, 앞으로는 고장말이 거의 사라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20. 중국에서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 민족은 무슨 글을 썼나요
 : 한국에서 나라를 다스리던 이들이 중국에서 한자를 받아들이기 앞서에는 글을 쓰던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글이 없대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다. 따로 글을 쓰지 않아도 누구나 말을 하면서 살아가니까요. 글이 없으니 책이 없습니다. 글과 책이 없으나 머리와 마음과 몸으로 서로 어우러지면서 아름답고 즐겁게 잘 살았습니다.

 21. 한글이나 한자가 없을 때에는 어떤 글을 썼나요
 : 한글이나 한자가 없을 때에는 글을 쓰지 않았어요. 굳이 글을 써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아니, 애써 글을 쓸 까닭이 없었어요. 글을 쓰는 까닭은 내 머리나 마음으로 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데, 지난날 사람들 삶으로는 이야기를 더 많이 글로 남겨 책으로 물려주기보다, 머리와 마음으로 새겨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물려주었습니다. 흙을 일구든 살림을 하든 아이를 낳아 키우든, 책이나 글이 아닌 몸뚱이를 움직이는 삶으로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22. 어떤 특징 때문에 한글을 세계적인 언어라고 하나요
 :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를 만든 틀이 하나하나 짜임새가 있다고 합니다.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는 어떠한 틀에 따라 만들었는지 똑똑히 밝혀졌습니다.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를 엮으면 온누리 거의 모든 소리값을 훌륭히 담아서 나타낼 수 있다고 합니다.

 23. 비속어를 알맞게 쓰면 우리나라 말을 ‘표현하는 영역’을 넓힌다고 볼 수 없나요
 : ‘알맞게’가 어느 만큼이어야 알맞게인지를 아무도 재거나 따지지 못합니다. ‘비속어’란 “내 이웃이나 동무를 깎아내리는 얄궂은 말”입니다. 이러한 말을 알맞게 쓴대서 우리말 쓰임새를 더 넓힐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말 쓰임새를 더 넓히려고 “내 이웃이나 동무를 깎아내리는 얄궂은 말”을 두루 써야 한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슬프거나 안타까울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착하면서 어여쁜 말을 한껏 북돋우면서 우리말 쓰임새를 차근차근 넓히거나 깊이 다스리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24. 어른들한테 반말을 쓰면 안 되나요
 : 반말이란 낮추는 말입니다. 어른한테든 동무한테든 반말이란 썩 좋지 못한 말입니다. 어른부터 어린이한테 반말을 쓰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반말 아닌 ‘여느 말’을 써야 올바릅니다. 나보다 낮은 자리에 있다고 여기며 쓰는 말이 아니라, 나와 같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며 쓰는 말을 잘 살펴야 아름답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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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내 책이 아직 하나도 못 나온다. 원고를 좀 늦게 넘겼기 때문이다. 

오늘밤에서야 겨우 두 권째 원고를 마무리짓는다만, 아직 한 꼭지를 더 써야 한다. 

이제 새날이 될 16일에는 <우리 말과 헌책방> 11호 원고를 마무리지어야지. 

사진책을 이야기하는 <사진책 읽는 즐거움>이 3월에 나올까, 4월에 나올까.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는 그림을 넣어야 하니까 5월쯤에 나올 수 있을까. 

부디 둘째 아이 태어나는 오뉴월이 되기 앞서 나와 주면 좋으련만... ㅠ.ㅜ 

잡지 11호 원고를 끝내면, 돌봐야 하는 글 두 가지를 돌본 다음, 

<토씨 -의 바로쓰기 사전> 원고를 얼른 추슬러서 넘겨야 한다. 

이 또한 아이가 태어나는 오뉴월이 되기 앞서까지.... @.@ 

그래도, 즐겁게 살아가면서 일하자. 이제 오늘은 그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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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17 08:26   좋아요 0 | URL
ㅎㅎ 이렇게 책을 많이 내시는줄 몰랐네요.예전에 숨책에서 된장님의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모두 몇권정도 출간하셨나요?

파란놀 2011-03-17 09:20   좋아요 0 | URL
글쎄... 책방에 있는 책은 아홉 가지이고, 1인잡지는 열 권이 나왔습니다
^^;;;; 조기 위에 뜬 그림들을 보면 됩니다 ^^;;
 



 학교와 책읽기


 나는 사진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나는 사진강좌를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사진교실에 나간 적이 없다. 나는 오로지 사진기 하나로 사진을 배웠다. 헌책방에서 하나둘 사서 읽은 사진책으로 사진을 익혔다. 나한테는 사진학과 교수나 강사나 전문가나 기자라 하는 스승이 아무도 없다. 나한테는 사진학과 스승이 아무도 없으니, 사진밭하고 이어진 사람줄이 하나도 없다. 나한테는 내 사진길을 스스로 찾도록 일러 준 숱한 사진책만 있는데, 내가 아는 사진쟁이 이름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저 내 마음으로 파고드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면 좋아하고, 내 마음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면 반기지 않았다.

 사진을 볼 때에는 사진쟁이 이름을 보지 않는다. 사진을 볼 뿐이다.

 어쩌면, 나는 문예창작학과라든지 문헌정보학과 같은 데를 다니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교가 한 사람한테 얼마나 덧없으며 끔찍한가를 잘 깨달아 대학교를 다섯 학기 다니고 그만둘 수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이든 글을 쓸 때이든 사진을 읽을 때이든 사진을 찍을 때이든 내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느낀다. 고등학교부터 그만둘 수 있었으면 조금 더 일찍 내 책과 내 글과 내 사진을 마주했을 테고.

 사람들은 ‘고졸 출신 대학교수’라든지 ‘초졸 출신 대학교수’가 태어날 때에 몹시 놀라워 하거나 대단하다고 손가락을 추켜세우곤 한다. 그런데 대학교수쯤 되려면 참말로 대학교이든 초·중·고등학교이든 스스로 그만두거나 아예 안 다닌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을까. 대학교 학문이란 교과서나 교재로 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들어오겠다는 학생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거나 대학생 스스로 찾도록 이끌 학문이란 굳어진 옛 학문이 아니라 새 학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옛 학문은 학생 스스로 지난날 나온 책을 도서관을 다니거나 헌책방을 돌아보면서 하나하나 찾아 읽어 새기면 된다. 교수 자리에 설 사람은 학생이 스스로 찾아 읽으면 되는 책을 굳이 교재로 삼아서 가르칠 까닭이 없다.

 책을 살 때에는 글쓴이 이름을 보지 않는다. 글을 읽을 때에는 글을 볼 뿐, 글쓴이 이름을 살필 까닭이 없다.

 그림을 볼 때에도 그린이 이름을 볼 까닭이 없다. 그저 그림을 보면서 좋다 싶은 그림이면 된다. 노래를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름을 보거나 외우는 까닭이 하나 있다면, 나중에 어떤 노래인가를 알아본다든지 어떤 책이 더 있나를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책 한 가지를 훌륭히 잘 썼대서 다른 책 모두를 알뜰히 잘 쓰지는 않는다. 또한, 어느 책 한 가지를 곰곰이 새기며 읽으면, 애써 다른 책 모두를 샅샅이 훑어 읽지 않아도 글쓴이가 바라거나 바라보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백만 줄을 읽는대서 글쓴이 마음을 알겠는가. 만 줄쯤 읽으면 글쓴이 넋을 알겠는가. 백 줄을 읽었기에 글쓴이 뜻을 모르는가. 한 줄을 읽는다면 글쓴이 사랑을 못 느낄까.

 글 한 줄에도 사랑이 담긴다. 아니, 글 한 줄이기에 사랑을 담는다.

 사진 한 장에도 믿음을 싣는다. 바로, 사진 한 장이라서 이 한 장에 믿음을 그득그득 싣는다.

 나는 학교를 믿지 않는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교과서나 교재를 믿지 않는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배우려 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나는 학교 졸업장이나 학번 숫자를 들이미는 사람을 사귀지 않는다. 나는 나를 학교로 부르려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나는 스스로 학생이라고 밝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고, 당신은 네 길을 갈 뿐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줄에 글쓴이 온삶이 스미도록 애써야 할 뿐이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진마다 사진쟁이 온꿈이 깃들도록 힘써야 할 뿐이다.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책읽기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학교를 다니던 발자국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사진읽기를 엉터리로 하고 만다. 학교하고 등을 지지 않으면 사람읽기를 옳거나 바르거나 참답거나 착하거나 곱게 할 수 없다. (4344.3.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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