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숙


 서숙을 바라본다. 고흥군 군내버스를 타고 이 마을과 저 마을 사이로 달리면서 서숙을 바라본다. 달리는 버스에서는 눈짓으로 스친다. 나한테 땅이 있어 흙을 일군다면 서숙을 심어 이 어여쁜 곡식을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좋아할 수 있겠지. 나한테 땅이 없지만 이렇게 흙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웃이 있는 만큼, 시골버스로 달리며 서숙밭을 즐기다가는, 천천히 시골길을 두 다리로 걷는 동안 노오란 들판을 멀리까지 내다보면서 기쁘게 사진 한 장으로 담는다.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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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최수연 글.사진 / 그물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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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찾을 수 없기에 사진으로 찍을 만하지 않다
 [찾아 읽는 사진책 65] 최수연, 《소》(그물코,2011)



 최수연 님이 빚은 사진책 《소, 땅과 사람을 이어 주던 생명》(그물코,2011)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소를 사진으로 담아 책으로 내놓은 분이 드문드문 있습니다만, 이 사진책 《소》처럼 흙에 두 발을 디디며 논밭을 일구는 일소를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분은 퍽 드물구나 싶어요. 그런데, 일소를 담은 사진책만 드물지 않습니다. 흙일꾼을 담은 사진책 또한 드물어요. 흙을 일구는 일꾼을 사진으로 담아 본들 신문이나 잡지에서 잘 실어 주기 어렵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싣는다 하더라도 꾸준하게 실어 주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 신문과 잡지는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를 다루어서는 돈벌이를 할 수 없거든요. 신문·잡지뿐 아니라 여느 책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흙일꾼이든 일소이든 푸성귀이든 논밭이든 바다이든 갯벌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밑바탕이 될 터전과 땀방울을 다루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대학교를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니면서 사진길을 걷는다는 젊은이는 거의 모두 패션사진을 하려고 합니다. 드물게 다큐사진에 온삶을 바치겠다고 외치는 젊은이가 있습니다만, 패션사진이든 다큐사진이든 흙일꾼이나 일소를 사진감으로 삼지 않아요. 아니, 흙일꾼이나 일소를 사진감으로 삼아서야 돈벌이를 할 수 없겠지요.

 어찌 되든 먹고살아야 합니다. 누구나 밥을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밥을 굶으면서 사진길을 걸으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같이 패션사진으로 흐르는 한국땅 사진밭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저 한 가지를 말할 뿐입니다. 일소이든 흙일꾼이든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일소와 흙일꾼처럼 흙을 만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흙땅을 보금자리로 삼아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흙을 믿고 흙을 사랑하며 흙을 아끼는 나날을 누리면 돼요. 사진이란 삶이고, 삶에서 태어나는 사진이며, 삶을 아낄 때에 사진을 아끼는 만큼, 흙을 사랑하면서 믿는 나날이면서 사진기를 가만히 손에 쥔다면, 일소하고 흙일꾼을 포근하게 사랑하는 따사로운 마음길로 어여쁜 사진 하나 차근차근 길어올리리라 생각해요.

 《소》를 빚은 최수연 님은 이야기합니다. “이제 일하는 소는 거의 볼 수 없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들녘의 일꾼으로, 사람의 친구로 몇 백 년을 함께했던, 그러나 지금은 동화책에서나 만나게 된 일하는 소 이야기는 이렇게 사진으로 기록되면서 시작한다(4쪽).”고. 참, 그렇습니다. 그래도 일하는 소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 한 해를 살아온 충청북도 음성 멧골자락 건너편 마을에는 일소를 부려 논을 갈고 밭을 가는 할배가 있어요. 봄철에 시골버스를 타고 골골샅샅 천천히 지나다니다 보면, 어김없이 어느 시골자락에서든 일소를 부리는 흙일꾼을 만날 수 있어요. 옛날과 견주면 숫자가 무척 많이 줄었지만, 일소를 아끼는 착한 흙일꾼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가만히 살피면, 최수연 님 말마따나 일소가 크게 줄었습니다. 왜냐하면 일소에 앞서 흙일꾼부터 크게 줄었으니까요.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가 당신 딸아들한테 흙에서 일하도록 이끌기보다 흙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펜대나 셈틀을 붙잡으라고 내몰기에, 더더욱 일소를 마주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시골마을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는 시골마을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한테 ‘너희는 커서 흙일꾼이 되어야지.’ 하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시골마을 초·중·고등학교는 이곳 아이들이 여느 때부터 흙일을 하면서 튼튼한 흙일꾼으로 자라도록 돕지 않습니다. 이것을 탓하거나 저것을 나무라기 앞서, 오늘날 이 터전에서는 흙일꾼으로 태어나 흙일꾼으로 살아가는 얼거리부터 무너졌어요. 돈벌이나 밥벌이에 휘둘리면서 삶짓기나 삶가꾸기를 헤아리던 마음결이 흔들려요.

 머나먼 나라에서 사진감을 찾는 젊은이를 꾸짖을 수 없습니다. 사진을 처음 익혀 사진기를 갓 손에 쥔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도시에서 살아가며 도시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하고 섞입니다. 이들한테는 도시내기로 살아가며 패션사진을 찍거나, 도시에서 출사를 나가는 다큐사진을 찍는 길 말고는 스스로 알아보거나 찾아나설 사진길이 까마득합니다. 배우지도 가까이하지도 만나지도 스치지도 못하는 흙이자 흙일꾼이자 일소예요. 도시에서 살아가며 건물을 찍거나 자동차를 찍거나 자동차 옆에 선 모델을 찍는 사진쟁이는 많을 테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며 호미를 찍거나 밭고랑을 찍거나 가랑잎을 찍는 사진쟁이는 있기나 있겠습니까.

 더 파고들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치고, 바깥으로 나다니며 돈벌이하기에 바쁜 나머지, 집에서 집식구들 사랑스러운 삶자락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부터 퍽 드물어요. 내 보금자리부터 아름답게 느끼면서 아름답게 일구는 삶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럴듯한 모습에 얽매이기 일쑤예요.

 최수연 님은 “13년 전 나는 전주를 지나고 있었고 내 앞에 나타난 풍경은 우연이었다. 처음 소 사진을 찍을 때는 이렇게 많은 것들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에 셔터를 눌렀다. 그 세월이 벌써 15년을 흘렀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118∼11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열다섯 해뿐 아니라 앞으로 맞이할 열다섯 해 사이에도 아주 많은 모습들이 달라지리라 봅니다. 언제나 달라지는 삶입니다. 늘 새로운 삶입니다. 달라지기 앞서 예전 모습이기에 더 멋스럽거나 더 애틋하지 않습니다. 새로 맞이할 모습이라서 더 어여쁘거나 더 값지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선 이곳이 가장 멋스럽고 더없이 어여뻐요.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어깨동무하는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가 참으로 애틋하면서 그지없이 값져요.

 사진책 《소》는 잊혀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사진책 《소》는 따뜻하게 사랑하면서 아낄 내 삶이 깃들 보금자리를 어떤 빛깔로 일구고 싶은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4344.10.10.달.ㅎㄲㅅㄱ)


― 소, 땅과 사람을 이어 주던 생명 (최수연 글·사진,그물코 펴냄,2011.10.1./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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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28.) 

 살고 싶은 마을 들머리에서


 충청북도 멧골자락을 떠나 전라남도 시골자락으로 옮기려고 한다. 빠듯한 살림돈으로는 좀 벅차기에 이모저모 알아보며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듯하다. 돌이키면 참 기나긴 나날 골머리를 앓으며 알아보았구나 싶지만, 달력을 들여다보면 며칠 안 지난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새 보금자리를 알아보러 움직이면서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낼 겨를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 혼자 움직일 때에는 이대로 고단하고, 네 식구 함께 돌아다닐 때에는 이대로 고달프다.

 이제 새 보금자리 집임자를 만나서 이 집을 우리가 물려받고 난 다음 신나게 집안을 손질해서 살림을 옮기면, 이제껏 힘겹게 복닥이느라 떨어져 지내기도 하고,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일산에서 북적인다며 어수선했던 일이란, 애틋하게 돌아볼 옛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고마운 옛이야기로 되새기고 싶고, 살가운 새이야기를 길어올리고 싶다. 두 아이가 마음껏 뛰놀면서 들판이랑 멧자락이랑 바다와 벗삼을 터전에서 우리들 보금자리를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와 가슴을 알뜰히 채운다.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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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바꾸는 책읽기


 옳고 바른 길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고 바른 쪽으로 생각을 가다듬고자 힘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슬프거나 안타까운 길로 빠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와 달리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길로 씩씩하게 걸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참 많은 사람들이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닌대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가 한국말다운 한국말을 어린이가 즐거이 익히도록 마음을 기울인다고 여기기 어렵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알차게 가르친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중학교부터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는데, 중학교이든 고등학교이든 한국말을 알차고 튼튼하게 다스리는 길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대학교는 영어로 강의해야 세계시민이라도 되는 듯 여기지, 대학생이 대학생답게 한국말을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옳고 바르게 써야 한다는 마음을 심지 못해요.

 생각을 기울인다거나 생각을 쏟는다고 하더라도, 말을 말답게 가꾸는 일은 참 힘들구나 싶습니다. 그나마, 생각이라도 조금 기울인다면 반갑기는 한데, 생각을 조금 기울인다고 해서 이제껏 얄궂게 쓰거나 엉터리로 쓰거나 잘못 쓰거나 바보스레 쓰던 말투나 낱말을 바로잡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아니, 고치거나 바로잡을 수 없다고 해야 옳지 싶어요.

 생각을 바꾼다고 하지만, 삶을 바꾸지 않고서야 생각이 바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삶을 바꾸려고 힘써야 한다고 느껴요.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쪽으로 바꾸려고 힘쓸 때에, 내 말이나 글은 저절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쪽으로 바뀌기 마련이에요. 삶을 바꾸려고 힘쓰지 않으면, 생각이건 말이건 무엇이건 바뀔 수 없구나 싶어요.

 내 삶을 바꾸겠다는 뜻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삶을 즐겁게 바꾸면서 내 삶을 아름다이 일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삶을 착하게 바꾸면서 내 삶을 참다이 보살피는 길을 찾으려고 책을 손에 쥐어야지 싶어요. 삶을 바꾸는 책읽기요, 삶을 사랑하는 책읽기일 때에, 비로소 책읽기가 가장 어울리면서 밝게 빛나리라 느껴요.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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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0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1-10-10 20:42   좋아요 0 | URL
한기호 님이 이곳 알라딘서재까지 찾아와서 글을 읽어 주시니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한기호 님 스스로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알아채려 하지 않으니 안쓰럽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한기호 님이 글을 쓴 '논리'에 따를 때에, '헌책방에서 헌책을 사고파는 일' 또한 유통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제는 거의 말하는 사람이 없으나, 지난날 한동안 '헌책방 때문에 새책이 안 팔린다'는 이야기를 출판평론이라면서 쓴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나는 알라딘중교샵을 찾아가서 그곳에 꽂히고 팔리는 책을 보았을 때에, '알라딘중교샵'에서 팔리는 책 갈래에서는, '종이를 아깝게 버리는 자기계발서'를 '한 권이라도 새책으로 덜 찍게 하면서 돌려읽기를 시키는 대목'을 보여주기에, 이 하나로는 참 고마운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알라딘중고샵> 때문에 헌책방이나 인문사회과학책방이나 '인문책 출판사'가 걱정하거나 어렵거나 힘들 대목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할 수까지 있어요.

한기호 님이나 솔 님은 제가 <알라딘중교샵>을 놓고 쓴 글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하나도 잡아채려고 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10월 9일에 쓴 글 말고, 이에 앞서 쓴 글도 있으니, 이곳 게시판에서 잘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빨래하기와 글쓰기


 둘레 사람들이 흔히 ‘최종규 씨는 집에서 손빨래를 하지 않고 기계빨래를 하면 글을 쓸 겨를을 더 낼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걱정해 주는 이야기는 아주 고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빨래하는 내 삶을 돌아본다면, 나는 참으로 오랜 나날을 빨래하기로 보낸다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다가, 밥을 차리고 치우며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는 품을 누군가 해 준다면 얼마나 홀가분할까요. 밥을 하자면 먹을거리를 읍내 저잣거리로 찾아가서 장만해야 하는데, 이 몫을 누가 해 준다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든 읍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든 하면서 내 품을 덜어 준다면, 집안을 쓸고닦아야 하고, 집살림을 돌보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해 준다면, 나로서는 아주 느긋할 수 있겠지요.

 이것저것 하자면 하루에 집일로 쏟는 품은 참 많습니다. 집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글쓰기라든지 책읽기에 더욱 마음을 기울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집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내 글이 한결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책방마실을 마음껏 즐기면서 책읽기를 아주 신나게 할 수 있을까 참말 모르겠습니다.

 아주 조용한 곳에서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붙잡으면 온누리를 따사롭게 비출 살가운 글을 가득가득 길어올릴 수 있는지 그야말로 모르겠어요.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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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0 13:37   좋아요 0 | URL
저두 정말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딱 제 생각을 써주셨어요.
집안일을 천천히 하지 않고 나아갈 때, 과연 나의 삶이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예전에 너무나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마트와 외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때
돈의 여유는 조금 있었지만 과연 행복하고 여유로왔나, 사랑스러웠나 하는 지점에서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파란놀 2011-10-10 17:54   좋아요 0 | URL
앞으로는
마음 착한 사람들이
마음 착한
고운 길을
슬기로이 깨달아 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