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붓꽃의 전설 - 물구나무 026 파랑새 그림책 26
토미 드 파올라 지음, 김경태 옮김 / 물구나무(파랑새어린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돈버는 기계 되라고 낳는 아이가 아닙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2] 토미 드 파올라, 《인디언붓꽃의 전설》(파랑새,2004)

 


 인천에서 지내는 우리 형이 전라남도 고흥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합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형 마중을 갑니다. 가게에 들러 몇 가지를 사고 택시를 부르는 길목, 길가에 붙은 걸개천 하나를 봅니다. 어느 마을 아무개가 5급 공무원 되는 시험에 붙었다든가 5급 공무원이 되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지난달 우리 마을 할머님도 걸개천을 읍내에 하나 걸었습니다. 당신 아들이 ㅋ대학교 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지난달 옆지기 어버이 찾아오셔서 시골집 고치는 일을 도우실 때에, 다 함께 나로도를 한번 찾아간 적 있는데, 이때 나로도 바닷마을 면내 한켠에 서울 ㄷ대학교 수시합격했다는 아이들 이야기가 걸개천으로 붙은 모습을 보았어요. 면내 우체국에 마실할 때면 면내에 있는 ㄷ고등학교 나들문 위에 대기업 붙은 아이들 이름 굵직하게 적은 걸개천이 여러 달째 나부끼는 모습을 봅니다.

 

 젊은이부터 푸름이와 어린이 모두 시골마을을 떠납니다. 젊은이부터 푸름이와 어린이 모두 시골마을을 떠나는데, 이렇게 떠나는 일을 손뼉치며 반기듯 걸개천을 내다 겁니다. 걸개천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고향마을로 돌아오는 일이 없는 듯합니다. 하나같이 서울이나 큰도시에서 크고작은 이름을 얻어 여러모로 돈벌이 잘 하면서 지냅니다.

 

 어느 마을에서는 군인으로 지내는 어느 분이 중령인가 대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걸개천에 담기도 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기쁜 이야기라 여기며 걸개천에 담는구나 싶습니다. 기쁘게 여기지 않는다면 애써 걸개천을 걸지 않겠지요. 대학교에 붙고, 교수님이 되고, 공무원시험에 붙고, 대기업 일꾼으로 뽑히고, 계급 높은 군인이 되고 …….


.. 작은다람쥐에게도 남다른 재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죽 조각과 나무토막으로 장난감 전사들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언덕에서 따 온 산딸기로 즙을 내어 매끄러운 돌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작은다람쥐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지혜로운 주술사는 알고 있었습니다 ..  (7쪽)


 영화 〈로빙화〉를 보면 ‘도시에서 벌이는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은 아이를 기린다면서 학교 아이들이며 마을 어른들이며 길에 줄줄이 늘어서서 손뼉을 치도록 합니다. 영화 끝자락에 ‘죽은 고아명 그림으로 세계 어린이 그림잔치’에서 큰상을 받은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마을사람들은 줄줄이 불려나옵니다.

 

 사람들을 불러내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기릴 만한 일을 기리거든요. 다만, 기쁨을 기리고 즐거움을 나누는 잔치마당을 어떻게 벌일 때에 참말 신나며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은 모르는구나 싶어요. 무엇을 어떻게 왜 기리며 서로 얼싸안을 때에 웃음꽃과 눈물열매를 어깨동무할 수 있는가는 하나도 돌아보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여인은 새하얀 사슴 가죽을 활짝 펼쳐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얀 사슴 가죽을 찾아보세요. 그걸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저녁 하늘의 빛깔을 그대로 그림에 담을 수 있을 거예요.” ..  (11쪽)


 누구한테나 기릴 만한 솜씨가 있습니다. 아니, 솜씨라기보다 삶을 일구는 빛, 곧 삶빛이 있습니다. 누구나 제 삶을 북돋우는 빛줄기를 흩뿌리면서 오늘 하루를 누립니다. 삶빛은 삶꽃이 되어 고운 내음을 나눕니다. 삶빛은 삶씨가 되어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퍼뜨립니다.

 

 백날잔치를 하고 돌잔치를 합니다. 예순잔치를 하고 혼인잔치를 합니다. 서로 기쁘게 잔치를 엽니다. 자랑이 아닌 잔치를 합니다. 뽐내기가 아닌 어깨동무를 합니다. 우쭐대기가 아닌 두레를 합니다.

 

 온누리에는 높고낮음이 없습니다. 높은 자리나 낮은 자리란 따로 없습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이름값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걸개천 내걸며 무언가를 기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걸개천으로 드날리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두 다리로 우뚝 서는 이 땅에 예쁘게 아로새기면서 새로운 사랑씨가 뿌리내리도록 이끄는 땀방울을 흘릴 뿐입니다.

 

 사장이 되건 돈을 많이 벌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인 줄 깨닫고 어른이 되면서 어버이 노릇을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린이답게 웃음꽃 날릴 때에 예쁩니다. 푸름이답게 웃음바다 이룰 때에 예쁩니다. 젊은이답게 웃음열매 맺을 때에 예쁩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가 커다란 흰종이에 크레파스로 슥슥 그림놀이를 하다가 지난달 처음으로 ‘어른이 알아볼 만한’ 얼굴과 눈코입 있는 사람을 넉 점 그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놀랐어요. 네 살 아이는 저랑 동생이랑 어머니랑 아버지를 그렸어요. 나는 그림을 척 보며 누구를 그렸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아이는 이제 얼굴에 팔이나 다리까지 그려요. 아이는 날마다 새로운 말을 익히고, 아이 팔다리는 날마다 더 튼튼해지며, 나날이 키나 몸뚱이가 눈에 뜨이게 자라요. 아직 기기만 하는 갓난쟁이 둘째 또한 날마다 눈부시게 자랍니다. 말귀는 마땅히 알아듣고 울음소리 우렁차며 웃니 아랫니 천천히 돋습니다.


.. 작은다람쥐는 저녁마다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노을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비한 꿈속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광경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26쪽)


 토미 드 파올라 님 그림책 《인디언붓꽃의 전설》(파랑새,2004)을 읽습니다. 그림책 《인디언붓꽃의 전설》은 인디언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이 왜 이러한 이름이 붙었는가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북중미에서 으르렁거리는 커다란 나라가 서기 앞서 오래오래 그곳에서 자연대로 살아온 사람들 터전과 꿈과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며시 보여줍니다.

 

 인디언붓꽃은 있습니다만, 양키붓꽃은 없습니다. 게르만붓꽃이나 바이킹붓꽃 또한 없어요. 어쩌면, 한겨레붓꽃이 있을까요. 일본붓꽃이나 필리핀붓꽃은 있을까요.

 

 그림책 첫머리에는 ‘인디언붓꽃’ 옛이야기 남긴 ‘작은다람쥐’가 어릴 적 어떠했는가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머리를 들여다보면, 작은다람쥐네 어버이는 작은다람쥐가 다른 아이들처럼 활쏘기나 사냥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걱정한다고 나옵니다. 어쩌면, 작은다람쥐가 태어난 겨레는 사냥하는 겨레인지 모르지요. 그러나, 참말 북중미 토박이들 삶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디언붓꽃이라 한다면, 작은다람쥐네 어버이는 작은다람쥐를 걱정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아이 이름을요. 아이는 ‘작은다람쥐’예요.

 

 아이를 걱정하는 어버이였다면 아이한테 바보라느니 멍청이라느니 느림보라느니 얼간이라느니 겁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놀렸겠지요. 그렇지만, 작은다람쥐네 어버이라든지, 동무라든지, 마을 어른이라든지, 어느 누구도 작은다람쥐를 놀리지 않았어요. 하나같이 작은다람쥐를 아꼈어요. 사랑했고 믿었고 좋아했어요. 작은다람쥐는 작은다람쥐답게 들판과 멧자락과 냇물을 누비면서 자연대로 누리는 삶을 맞아들였어요.


.. 이제 사람들은 아이를 작은다람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노을을-땅에-물들인-사나이’라고 불렀습니다 ..  (39쪽)


 누군가는 활쏘기를 잘 하겠지요. 누군가는 배를 잘 뭇겠지요. 누군가는 흙을 잘 다루겠지요. 누군가는 바람흐름을 잘 읽겠지요. 누군가는 풀과 열매를 잘 꿰겠지요. 누군가는 들판에서 실을 얻어 천을 마름하고 옷을 깁겠지요. 이러면서 누군가는 모닥불 피우고 둘러앉은 자리에서, 이불을 덮고 드러누운 자리에서, 사람들 하루일을 마무리짓고 쉬는 자리에서, 모두한테 눈물과 웃음을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겠지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솜씨를 보여줍니다. 아니,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꽃을 피웁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일구어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름값 드날려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아낄 사람입니다.

 

 그림책 《인디언붓꽃의 전설》은 이야기합니다. ‘노을을-땅에-물들인-사나이’가 대단한 그림쟁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은 내 예쁜 삶을 예쁘게 받아들여 예쁘게 돌보는 좋은 꿈을 곱다시 들려줍니다. 노을은 예나 이제나 온누리를 곱게 물들입니다. (4344.12.9.쇠.ㅎㄲㅅㄱ)


― 인디언붓꽃의 전설 (토미 드 파올라 글·그림,김경태 옮김,파랑새 펴냄,2004.2.27./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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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09 09:46   좋아요 0 | URL
제목부터 무척 공감합니다.
돈 버는 기계되라고, 입시 전쟁 치르는 기계되라고, 권력잡고 타인을 누르는 기계되라고
낳은 아이가 아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자식들을 구덩이로 밀어넣는게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 제 딸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파란놀 2011-12-09 11:04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랑 받아먹으면서
좋은 사랑 나누는
좋은 어른으로 우뚝 서리라 믿어요~

페크pek0501 2011-12-09 17:40   좋아요 0 | URL
뭔가 잘못 되어가는 게 많은 세상이지요. 중요한 건 요렇게 무엇이 잘못인지를 짚어가며 살아야 하는 것...

된장님은 바른생활맨이에요. 하하~~

파란놀 2011-12-10 07:30   좋아요 0 | URL
사람들 누구나 옳은 길을 즐겁게 느끼며 예쁘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원고지를 산다

 


 400자 원고지를 산다. 이제 곧 동시를 100 꼭지 쓴다. 이렇게 쓴 동시 100 꼭지를 원고지에 옮겨적으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펴내는 출판사에 손으로 원고지에 옮겨적은 동시꾸러미를 보낼 생각이다. 한편, 동시를 그러모아 잡지를 내놓는 곳에도 몇 꼭지를 띄우려 한다.

 

 출판사에서 동시책을 내줄는지 안 내줄는지 알 길이 없으나, 내 마음은 이 동시꾸러미가 책으로 나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동시잡지에서 내 글을 알뜰히 여겨 아낄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 노릇이 없으나, 내 마음은 이 글을 동시잡지에 예쁘게 실어 주리라 믿는다. (4344.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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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09 17:06   좋아요 0 | URL
바라시는대로 되길 바랍니다.ㅋㅋ

200자 또는 400자 원고지에 볼펜으로 기사를 쓰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답니다. 컴퓨터가 대중화하기 전의 일이지요. 가끔 그런 시간들이 그리워요.

파란놀 2011-12-09 17:24   좋아요 0 | URL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느라,
원고지 사 놓고 아직 뜯지도 못해요
ㅠ.ㅜ
에구구
언제쯤 틈을 내어 원고지에 옮겨적을 수 있을는지...
이구궁
 


 빨래를 해 주는 사람

 


 하룻밤만 묵고 서울을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사이 둘째 옷가지랑 기저귀 빨래는 옆지기가 맡는다. 하루만에 고흥집으로 돌아오지만, 고속버스와 고속철도에서 너무 시달린 나머지 온몸이 찌뿌둥하고 눈을 뜨기조차 버겁다. 이튿날 빨래까지 옆지기가 맡는다. 나는 밤새 잠을 못 들어 아침까지 깬 채 있는 둘째를 안고 어르다가는 업는다. 둘째를 업고 바깥으로 나와 논둑에 선다. 바람이 좀 세다. 날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차갑기에 얼마 있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시원하지만 아이한테는 추울 테니까. 옆지기는 아직 빨래를 한다. 내가 서울을 다녀오며 입던 옷을 모조리 빨아야 하니, 내 옷가지 빨래까지 하자면 더 오래 걸리리라.

 

 아직 뜨기 힘든 눈을 뜨고는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이를 한참 업다가 내린다. 등허리가 좀 결린다. 아이를 안는다. 팔이 후들거린다. 힘이 많이 빠졌는가 보다. 이런 몸으로 빨래를 할 수야 없겠지. 아마, 내가 여느 날 여느 때 여느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옆지기도 이와 같은 몸이면서 마음이 아니었을까 헤아린다.

 

 빨래를 하고 집일을 맡는 사람이 고단할까. 빨래를 할 수 없고 집일을 맡을 수 없는 사람이 고될까. 누가 더 고되다든지 누가 덜 고단하다 할 수 없다. 누구는 한갓지거나 느긋하다 갈라 말할 수 없다. 빨래를 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고마우면서, 나 스스로 빨래를 할 만큼 힘을 북돋우고 몸을 추슬러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내 살붙이한테 고맙고, 나는 바로 나한테 고마운 사람으로 살아야지. (4344.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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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지내던 이름. 어제 인디언붓꽃 그림책을 보면서 아하, 아직 장만하지 못한 그림책 많다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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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세티아의 전설- 멕시코
토미 드 파오라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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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되고 싶어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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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친구야
존 그래험 글, 토미 드 파올라 그림, 고수미 옮김 / 미세기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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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란디의 생일 선물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글, 토미 드 파올라 그림, 엄혜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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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일 내가 차리는 책읽기

 


 두 아이를 함께 낳은 옆지기랑 살아오고 난 다음부터 내 생일을 챙긴다. 나는 예전에 내 생일을 챙기며 살지 않았다. 오랜 술동무들하고 날마다 만나 술을 마시던 퍽 먼 옛날이나, 이 술동무하고 한 주에 한두 차례 만나 술을 마시던 모두들 짝꿍 없이 혼자 살던 조금 먼 옛날이나, 내가 서울과 충청도를 오가며 일하던 살짝 가까운 옛날이나, 내 생일이라 해서 딱히 슬프게 보낸다든지 외롭게 지낸 적은 없다. 언제나처럼 내 할 일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며 한 해 마무리를 했다.

 

 좋은 살림을 이루어 옆지기하고 지낸 다음, 비로소 서로서로 어머니와 아버지 생일을 챙겨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돌이키면, 나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신 날 제대로 전화라도 한 적이 많지 않았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속으로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나중에 옆지기와 아이하고 아버지 생일 때에 찾아가며 ‘아버지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으로 섭섭해 했는가’를 아주 잘 느꼈다. 겉으로 드러내어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나, 마음으로는 오래도록 기다리며 바라신 줄을 느즈막하게 깨우쳤다.

 

 나도 내 아버지 나이쯤 된다면, 내 아이들이 이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아가지 않고 모두 제금나서 살아간다면, 그때에 나는 내가 태어난 날 아이들이 “아버지, 귀빠진 날 축하해요, 사랑해요.” 하고 전화라도 걸어 주기를 바라려나. 미리 못박으면 안 될 노릇이지만, 나는 굳이 내 생일이라서 전화로 이야기꽃 건네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애써 전화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따사로운 넋을 건네는 줄 잘 느끼며 살아가니까. 다만, 아이들 태어난 날이나 옆지기 태어난 날에 내가 미역국부터 밥상을 새삼스레 차렸듯(나는 날마다 식구들 밥상을 차리니까, 생일날에는 조금 새삼스레 차리는 밥상이 된다), 우리 아이들이 한창 큰 나이가 되어 제금나서 살더라도 아이들 태어난 날 기쁘게 찾아가서 미역국 끓여 주고 싶다.

 

 내 생일이라고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는다. 다만, 내 생일을 기리는 뜻이 아니라, 집에서 밥을 하며 미역국을 퍽 자주 끓이니까, 옆지기랑 아이들 몸을 살찌우는 밥으로 미역국을 끓인다. 오늘 내 생일 12월 7일, 모처럼 서울 볼일을 마치고 고흥읍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 ‘음, 그럼 오늘은 케익을 한번 사 볼까?’ 하고 생각한다. 옆지기는 요즈음 마음껏 푸른 멧골을 밟으면서 몸을 북돋우지 못하는 터라, 몸이 힘들고 처져서 케익을 굽지 못한다. 나는 빵집 케익보다 옆지기 케익이 아주 맛나다. 옆지기가 집에서 스텐냄비로 굽는 케익을 먹으면, 바깥에서 사먹는 빵집 케익을 먹을 수 없다. 맛이 얼마나 크게 다른데. 만화책 《맛있는 빵을 드세요!》에 나오는 아줌마가 집에서 ‘제빵기’로 빵을 처음 구워 먹을 때에 ‘참말 이토록 빵이 맛있던가!’ 하고 놀라듯, 오븐 없어 스텐냄비에 불 작게 넣어 굽는 케익을 먹으면, 냄새부터 다르고 맛이 참으로 좋다. 오븐으로 굽는다면 집빵 맛은 얼마나 훌륭할까. 더구나, 케익에 쓰는 설탕은 ‘오키나와 사탕수수 졸인 물’이 아닌가. 케익 반죽을 하며 쓰는 물은 맑고 정갈한 시골물이잖은가.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생일날 누가 미역국을 끓이거나 밥을 차려 줄까. 옆지기 어머님하고 일산에서 아직 함께 사는 둘째 딸이 끓여 줄까. 아직 퍽 어린 중학생 아들이 끓여 줄까. 장인 어른이 끓여 줄까.

 

 내 어머니는 당신 생일날 누가 미역국을 끓이거나 밥을 차려 줄까. 내 아버지가 끓여 줄까. 그러고 보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신 날에 내가 기쁘게 찾아가 미역국 끓여서 차린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언제쯤 내 어머니와 아버지 태어나신 날에 미역국을 끓여서 밥 한 그릇 모실 수 있을까.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 네 식구 함께 마실을 할 수 있는 때가 되면, 고흥 바다에서 건진 미역을 챙겨 찾아가서 미역국 끓여 올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네 식구 살림을 이루어 시골마을에서 좋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씨앗 베푼 어머니와 아버지가 참으로 고맙다고 새삼스레 마음글월을 띄운다. 따뜻한 남녘 시골 밤이다. (4344.1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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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08 00:30   좋아요 0 | URL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가 생일이었군요. 뒷북이지만 축하합니다!^^
부모님 생신에 미역국 끓여 올리는 밥상, 저도 언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다만 제 생일에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드리지요.
남편 생일엔 어머님께 전화드렸는데 이젠 안 계시고, 아버님께는 그런 전화가 안되고...

파란놀 2011-12-08 09:35   좋아요 0 | URL
아, 이 글도 쓰다 보니까 하루가 넘어가더라고요 @.@
고속버스와 기차에 시달리던 몸으로
겨우 버티며 썼어요.
하루 지나면 이 느낌이 사라질 테니까요. 에고고

나중에 아이들하고 좋은 생일상 나누셔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12-08 01:27   좋아요 0 | URL
잠시 다녀갑니다, 제가 요즘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 듯 해요. ^^
된장님, 생일 축하드려요..

그래요, 맞아요. 저도 제 어머님들의 미역국을 끓여드린 적이 없군요.
주말에 모여 식사하거나, 돈 보내드리고 전화드리거나. 하지만
미역국을 끓여드린 적이 없어요. 요즘 무척이나 고생하는 제 옆지기의 생일도 곧 오는데,
좋은 미역을 구해봐야겠어요.... 이번엔 꼭 따스한 국 한그릇 먹여 출근보내야겠어요.

파란놀 2011-12-08 09:36   좋아요 0 | URL
저희한테는 돈이 얼마 없어
돈으로 해 드리는 일이 없어요 ㅋㅋ -_-;;
그래서 늘 이렇게 집안일 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하고 돌아보곤 해요.

고마워요~~

hnine 2011-12-08 07:19   좋아요 0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겨울에 태어나셨군요. 멋진 계절이지요.
아이를 낳은 후엔 저도 제 생일에 어머니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이 생일 되면, 자식 생일은 부모에게도 특별한 날이라는 걸 알게 되고요.
그러고보니 좀 티격태격한 후에라도 제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어요.
매일이 생일이듯이,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맞고 싶습니다. 된장님도 그러시길 바래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파란놀 2011-12-08 09:36   좋아요 0 | URL
네, 사랑이 차근차근 이어진다는 길을 잘 헤아리면서
이 길을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곱게 아끼도록
잘 살아야 한다고 느껴요.

고맙습니다~~ :)

조선인 2011-12-08 08:38   좋아요 0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자식을 낳고 나니 부모님 생각이 더 밀려들죠... 저도 오늘 그리운 마음 담아 미역국을 끓일까 합니다. ^^

파란놀 2011-12-08 09:37   좋아요 0 | URL
저희는 한 해에 1/4은 미역국을 끓여 먹어요 ㅋㅋ
거의 날마다 생일이라는 느낌이랄까요 ^^;;;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