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 과학은 내친구 25
고바야시 미노루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박숙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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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비행기를 접으며 논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0] 하야시 아키코·고바야시 미노루, 《종이비행기》(한림출판사,2008)

 


 나는 국민학생이던 때에 종이비행기를 즐겁게 날렸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이던 때에도 종이비행기를 즐겁게 날렸습니다. 국민학생 때에는 종이가 아주 드물지는 않았으나 아주 흔하지도 않았어요. 종이가 있다 하더라도 딱지접기를 하느라 빠듯하니까 종이비행기까지 접지 않곤 했어요. 좋다 싶은 종이를 얻는다면, 이를테면 달력 종이라든지 포장종이를 얻을 때에는 뒤집어서 교과서를 싸는 데에 쓰고, 때로는 종이비행기를 접곤 했습니다.

 

 잘 접은 종이비행기 하나는 여러 날 가방에 곱게 챙기고 다니면서 날립니다. 집에서도 학교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길에서도 날립니다. 힘껏 던지듯 날리기도 하고, 살살 손을 놓듯 날리기도 합니다. 동무들하고는 공차기나 공치기뿐 아니라 제기차기나 돌놀이나 구슬놀이나 땅놀이나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나 갖은 놀이가 많으니,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기 하나에만 마음을 쏟지 않아요.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를 하고, 저 놀이를 하고는 그 놀이를 합니다.


.. 종이비행기예요. 모양도 가지가지. 어떤 모양으로 날아갈까요? ..  (3쪽)


 중·고등학생 때에는 그만 ‘동무들과 마음껏 놀기’가 꽉 억눌립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더는 놀 나이가 아니’라고 못박힙니다. 무슨 놀이를 할라치면 ‘너희가 애들이냐’는 핀잔을 듣습니다. ‘아이도 아니요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가 되고 맙니다. 말이 좋아 청소년이요 사춘기이지, 정작 푸른 삶 푸른 꿈 푸른 빛을 북돋우는 일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오직 하나, 더 일찍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들볶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학교 가는 길에 학원 광고 하는 쪽글을 많이 받습니다. 국민학생 때에는 구경을 못하던 종이가 넘칩니다. 국민학생 때라면 딱지를 접느니 개구리를 접느니 종이비행기를 접느니 모자를 만드느니 하면서 종이 하나 얻으려고 손을 벌려야 하는데, 중학생 때부터 종이가 남아돕니다.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버려지는 종이가 매우 많아요.

 

 메마른 시험공부와 팍팍한 대학바라기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광고종이를 접습니다. 종이비행기로 하나하나 다시 태어납니다. 큼지막한 종이로는 큼지막한 종이비행기를 접습니다. 종이비행기를 잔뜩 만들어 여럿을 한꺼번에 날리기도 합니다. 어차피 교실 안팎 청소는 우리가 하니까, 일부러 교실 뒤쪽 빈터로 종이비행기를 잔뜩 날립니다. 교장선생이나 교무주임이 무어라 떠들건 말건, 종이비행기 날린 ‘범인’을 잡아내겠다며 으르렁거리든 말든, 감옥처럼 갑갑한 곳에서 몰래몰래 종이비행기를 날립니다.


.. 날개가 넓은 비행기. ‘휘잉’ 하고 날아가요. 원을 그리며 날아가요 ..  (7쪽)


 한창 신나게 날리면서 놀던 종이비행기는 어느새 하나둘 사라집니다. 개골창에 빠지고, 찻길에 떨어져 자동차가 밟으며, 높은 울타리 너머로 날아갑니다. 교사들한테 빼앗기며 꿀밤을 맞거나 얼차려를 받고, 소지품검사 때 빼앗기며 쓰레기터에서 불에 탑니다.

 

 그림책 《종이비행기》(한림출판사,2008)를 펼치면서 옛일을 떠올립니다. 나는 언제부터 종이비행기를 더는 안 접고, 더는 날리지 못하며, 더는 헤아리지 못했는가를 되새깁니다.

 

 군대에서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렸다가는 고참이나 하사관이나 소대장이나 중대장한테 신나게 얻어터집니다. 아니,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릴 만한 틈조차 없고, 빈종이 하나 얻을 구석이 없지만, 마음을 놓거나 마음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신문배달을 하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던 무렵에도 종이비행기를 접지 못합니다. 여느 길이란 없이 온통 찻길투성이라, 느긋하게 종이비행기를 날리지 못해요. 어른인 나도, 동네 아이들도, 종이비행기는 날리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회사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껏 종이비행기를 접을 만해요. 네 식구 조용히 지낼 시골집이고, 첫째 아이는 열흘 뒤 새해를 맞이하면 다섯 살이거든요. 첫째 아이하고 신나게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며 놀 수 있어요. 이제는 종이 많고, 빈터 넓으며, 아이가 어버이랑 좋은 놀이동무입니다.


.. 비행기 두 개를 겹쳐서 날리면 어떻게 될까요? ..  (20쪽)


 일본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 《종이비행기》입니다. 하야시 아키코 님 퍽 예전 빛느낌과 무늬와 결을 느끼는 그림책입니다. 한국에서는 2008년에 옮겼으니, 서른다섯 해 묵은 그림책을 옮긴 셈일 텐데, 일본에서는 1973년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사랑받겠지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한국에서 1973년에 누군가 그림책을 내놓거나 글책을 내놓거나 사진책을 내놓았다 할 때에, 2011년 오늘 돌아보면서 ‘참 좋고 애틋하며 아름답구나’ 하고 여기어 새롭게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더없이 예쁜 그림책이니까 일본에서 1973년에 나온 녀석이지만 2008년에 한글판으로 나올 만합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꿈같으며, 한편으로는 슬픕니다. 한국 어른들 스스로 종이비행기 날리며 놀 말미가 거의 없는 채 살아가니까, 한국 어른들 스스로 한국 아이들한테 종이비행기 이야기를 살포시 물려줄 만한 그림책을 빚지 못하거든요. 아니, 아이들한테 물려주기 앞서 어른들 스스로 예쁘게 놀 줄 몰라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보고 신나고 즐겁게 놀라며 《종이비행기》 같은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겨 선물한다지만, 막상 어른들 스스로 즐거우며 신나게 놀도록 이끌거나 돕거나 북돋우는 이야기책이 퍽 드뭅니다.

 

 너무 바쁜 하루라 한다면, 너무 벅찬 하루라 한다면, 너무 고단한 하루라 한다면, 아이들이랑 그림책을 천천히 넘기다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보셔요. 굳이 그림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아이하고 종이 한 장 나누어 쥐면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보셔요. 길에서 날려도 좋고 집안에서 날려도 좋습니다. 종이 한 장에 글월 곱다시 적어 비행기로 날려 보셔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한테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셔요. (4344.12.22.나무.ㅎㄲㅅㄱ)


― 종이비행기 (하야시 아키코 그림,고바야시 미노루 글,박숙경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8.6.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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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할아버지 묵은 동시집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묵은 동시집이 아니라, 권정생 할아버지 어린 날 이야기를 적바림해 놓고는 고이 묻어둔 옛글이겠지. 발굴된 시가 아니라 할아버지 가슴에 고이 묻어둔 이야기를 끄집어 낸 셈이겠지. 다음에 책 주문할 때에 함께 주문하자고 생각하며 보관함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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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삼베 치마- 권정생 동시집
권정생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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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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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2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시를 읽는 아저씨?란 어떤 분일지... 대충 감이 잡히는데요. ㅋㅋ 너무 맑은 생각으로 사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스 쳐 요.

파란놀 2011-12-21 20:56   좋아요 0 | URL
좋은 시라면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요.
에고고 ^^;;;
 


 고운 사람들 고운 삶을 고운 사진으로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3] 한금선,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안목,2009)

 


 여느 책방에서는 팔지 않는 사진책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안목,2009)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장만합니다. ‘류가헌’은 2011년 12월 한 달 동안 ‘사진책잔치(포토북페어)’를 열어요. 작지도 크지도 않게 알맞춤한 사진쉼터 류가헌에서 씩씩하게 꾸리는 사진책잔치는 어여쁩니다. 이 사진책잔치에 마실하는 길에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를 만났습니다. 반갑게 펼치고 기쁘게 장만합니다.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는 이 사진책 내놓은 안목 출판사 누리집(http://anmoc.com)에서 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인터넷 아닌 책방에서 손으로 만지작거린 다음 장만하고 싶어 책이 나온 지 이태 만에 비로소 구경하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흑백사진으로 이루어진 꽃무늬 몸빼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 모습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는, 책끝에 붙은 만나보기 글을 읽습니다. 권은정 님이 한금선 님을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 가운데 “한참 전에는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사진이 따뜻하다고 해요. 더러는 같은 사진을 두고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141쪽).”라는 대목을 찬찬히 곱씹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지난날 한금선 님 사진은 ‘사람들이 슬프게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찍었’기에 지난날 한금선 님 사진을 읽을 때에 ‘슬프구나’ 하고 느낄 만할 수 있어요. 2009년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에서는 사람들이 슬프게 여기기를 바라지 않는 사진이었으니까, 곧 ‘사람들이 내 살가우며 가까운 이웃이요 동무요 한식구라고 여기며 받아들이기를 바라면서 찍었’기에 2009년 이 사진책은 ‘따뜻하다’고 느낄 만하구나 싶어요.

 

 한금선 님은 잇달아 “시설 안에 있는 이들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 모두에게 그 정서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은 거지요. 그분들에게는 한 공간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지난한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채워 왔던 그분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드리려고 해요(142∼14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참말 이 이야기 그대로 한금선 님은 ‘남다르지 않은 사람’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남다르지 않은 사람들 남다르지 않은 삶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남다르지 않기에 남다르게 바라볼 까닭이 없는 사람들 수수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꾸밈없이 마주하고 즐거웁게 어우러질 좋은 사람들 꿈을 사진으로 빚어요.

 

 사진책을 덮습니다. 며칠 뒤 사진책을 다시 펼칩니다. 또 사진책을 덮습니다. 이러고 며칠 뒤 사진책을 거듭 펼칩니다. 보름 남짓 이러기를 되풀이합니다. 아이가 먹을 밥을 차리고, 아이가 입을 옷가지를 빨래하며, 아이와 드러누워 잠잘 집안을 쓸고닦습니다. 두 손에 물기 마를 겨를이 없다고 늘 느끼면서 문득 생각합니다. 고운 사람들 고운 삶을 고운 사진으로 담는다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삶을 사랑스러운 글로 엮는다고.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삶을 좋아하는 그림으로 선보인다고.

 

 사진기를 쥐며 어떤 사진이야기 하나 빚으려는 분들 누구나 이 생각을 예쁘게 건사하면 반갑겠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좋아하는 사진을 찍어야 해요. 가난하거나 불쌍하거나 슬픈 사람을 애써 만나며 가난하거나 불쌍하거나 슬픈 이야기를 보여주려 할 까닭이 없어요. 사랑할 사람을 사귀면서 사랑할 이야기를 글·그림·사진·춤·노래·연극으로 빚으면 즐거워요.

 

 함께 말을 섞고픈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섞으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같이 밥을 먹고 나란히 밤별을 올려다보고픈 이와 얼크러지면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사진은 고발하지 않아도 돼요. 고발하고프다면 고발사진을 찍으면 되겠지요. 기사로 내보내고 싶으면 보도사진을 찍으면 되고요. 내 사진이 고발사진이라면 고발사진 느낌을 물씬 살리면 됩니다. 내 사진은 보도사진이라 할 때에는 그야말로 신문이나 잡지에 번쩍 하고 실려 번쩍 하고 놀래키도록 보도사진을 찍으면 돼요.

 

 시골집에서 두 아이랑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나는 고발사진을 찍을 일이 없고 보도사진을 찍을 까닭 또한 없습니다. 나는 네 식구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언제나 즐거이 사진꿈으로 북돋우면 넉넉해요.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쥐면서 사진꿈에 젖어요.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사진빛을 누려요. 즐거이 찍은 사진을 다달이 한 차례쯤 종이에 뽑아 음성에서 살아가는 내 어버이와 일산에서 지내는 옆지기 어버이한테 편지를 적어 띄우면서 사진길을 걷습니다. 내 사진을 가장 좋아할 사람은 누구보다 우리 아이요 옆지기이며 어버이예요. 그래서 나는 내 사진삶을 ‘이야기사진’으로 일구어요. ‘사랑사진’으로 빚고 ‘시골사진’이랑 ‘살림사진’으로 여깁니다.

 

 사진책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를 생각합니다. 한금선 님이 붙인 이름처럼 “꽃무늬 몸뻬”가 “막막한 평화”로 마무리됩니다. 아, 이 사진책 ‘남다르지 않은 사람들 남다르지 않은 이야기’는 “꽃무늬 몸뻬” “어여쁜 하루”가 아닌 “막막한 평화”로 마무리할밖에 없군요.

 

 이 사회가 이렇게 이끌기 때문일까요. 우리 스스로 이처럼 바라보기 때문인가요.

 

 사진책과 사진이야기에 붙는 이름이 “꽃무늬 몸뻬”이기만 했다면, “꽃무늬 몸뻬” “꽃내음 밥상”이었으면, 꽃무늬가 꽃송이 꽃누리 꽃내음 꽃열매 꽃빛 꽃꿈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으면, 참 아리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12.21.물.ㅎㄲㅅㄱ)


― 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한금선 사진,안목 펴냄,200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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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님 다른 사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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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이갑철 지음 / 류가헌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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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 사진과 함께 숨을 쉬다
 [찾아 읽는 사진책 76] 이갑철, 《가을에》(류가헌,2011)

 


 이 겨울에 대청마루로 스미는 볕살을 누립니다. 우리 집 네 살 아이는 대청마루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합니다. 쿵쿵 발을 구릅니다. 이리 달리고 저리 내닫습니다. 나무널로 지은 대청마루 밟는 느낌이 좋을까요. 맨발로 쿵쿵 달릴 때마다 발바닥부터 머리카락까지 올라오는 느낌이 신날까요.

 

 아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어린 날을 돌이킵니다. 인천에서 충남 당진으로 내 어버이를 따라 나들이를 하노라면, 대청마루 밟는 느낌이 새삼스러웠습니다. 곧장 해를 바라보는 대청마루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추운 대청마루입니다. 여름에 발바닥으로 느끼는 마루결이랑 겨울에 발바닥으로 받아들이는 마루결이 사뭇 달라요. 겨울날 쉬를 누러 대청마루에 발을 디디면, 또 신을 꿰려고 대청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저 밑 신발을 찾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 쉬를 누고 돌아와 대청마루에 손을 디디면, 이 차가운 기운이 얼마나 파르르 떨리면서 올라오던지요. 얇은 창호종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또 얼마나 차가운데, 방바닥은 뜨끈뜨끈한 불이 올라오던지요.

 

 두 아이와 옆지기랑 살아가는 아버지로서 돌아봅니다. 이런 시골집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하지 못했을는지, 꿈꾼 적이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어린 날 살던 인천 오래된 아파트는 마루가 나무바닥이었습니다. 방은 시멘트바닥이었으나, 마루는 나무였어요. 5층 작은 아파트는 연탄을 때도록 되었는데, 연탄 한 장 집어넣어 바닥을 덥히더라도 워낙 추워 마루에 난로를 피우고 이불을 뒤집어써야 했어요. 우리 집은 툇마루 바깥창이 없었기에 방에 달린 창문에는 언제나 성에가 끼고 얼음이 두껍게 맺혔습니다. 아침마다 얼음을 떼내고 걸레질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창문에 맺힌 얼음이 툭툭 떨어지거나 얼음 녹는 물이 벽을 타고 줄줄 흘렀어요.

 

 아버지 어머니 태어난 시골집으로 겨울 나들이를 가서 스무 날쯤 지내면, 유리 아닌 종이로 댄 창문에 성에가 끼거나 얼음이 얼 일이란 없습니다. 흙으로 지은 집은 나무로 불을 때고, 어디를 걷든 달리든 놀든 흙을 밟습니다. 내 어릴 적 내 어버이 시골집은 온통 흙누리였어요. 흙이랑 물이랑 풀이랑 바람이랑 햇살이 골고루 하나로 얼크러졌어요.

 

 인천을 떠나 두 해째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처음 한 해를 보낸 충청북도 멧골자락에서든 올 새 한 해를 보내는 전라남도 시골자락에서든, 마당이나 고샅이나 모두 시멘트길입니다. 애써 도시를 벗어나 시골살이를 누리지만, 흙으로 된 땅을 밟기 만만하지 않아요. 집이며 벽이며 바닥이며 시멘트입니다. 흙이랑 나무로 따로 집을 짓지 않는다면, 하루 내내 시멘트에 둘러싸인 채 시멘트내음을 맡아야 합니다.

 

 흙을 시멘트나 아스팔트나 쇠붙이나 대리석으로 덮어야 문명이 될까요. 흙을 밟지 않아야 세계시민이나 문화시민이 되나요. 나는 ‘시민’이 아니라 ‘군민’이고 ‘면민’이자 ‘마을사람’인데, 조그마한 시골마을 사람으로서 흙을 누리는 길은 꽁꽁 틀어막혀야 하나요.

 

 어릴 적 국민학교 운동장은 흙땅입니다. 어릴 적 으레 갯벌에 놀러다니고, 흙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며 동무들하고 놀았습니다. 흙이 있어야 땅바닥에 금을 긋고 놉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땅바닥에서 놀자면 학교에서 분필 몇 자루 훔쳐야 합니다. 또는 바닥에 대고 그을 때 하얗게 묻어나는 돌멩이를 어디에선가 주워야 합니다.

 

 학교 운동장 흙땅에서 공차기를 하고 공놀이를 하며 즐거웠습니다. 달리다가 넘어져도 조금 까질 뿐, 때로는 피가 살짝 날 뿐, 어디 뼈가 부러지거나 으스러지지 않아요. 사내아이는 누구나 얼굴 몇 군데 흙땅에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며 긁힌 자국이 있습니다. 긁혀 피가 나더라도 모두들 똑같으니 옷섶으로 슥슥 문지르고 끝납니다. 무릎이 까지면 살짝 이맛살 찡그리고 절뚝이다가 어느새 아까와 똑같이 내달리며 놉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인천 중구 신흥동3가 연탄공장 바로 곁, 철길하고 이웃한 국민학교에서 맞이한 운동회는 언제나 두근두근 설레는 놀이마당입니다. 운동회를 앞두고 봄부터 가을까지 날마다 ‘방과 후 연습’을 두어 시간 남짓 해야 했지만, 운동회 하루 놀 생각으로 이 고단한 ‘훈련 같은 연습’을 잘 치렀습니다. 운동회를 한 달 앞두면 연습은 네 시간으로 늘어났고, 각목을 무시무시하게 휘두르는 교사들 앞에서 움찔거리면서도 운동장 흙땅에서 온몸이 누렇게 바뀌어도 잘만 뒹굴었어요. 날마다 체육복을 빨아도 날마다 방과 후 연습을 하느라 체육복은 너덜너덜 흙투성이가 되고, 연습을 마치면 이 너덜너덜 흙투성이 체육복차림으로 또 몇 시간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어요.

 

 이갑철 님 사진책 《가을에》(류가헌,201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진책 《가을에》에 담긴 모습은 시골마을 운동회라 하는데, 시골마을 같지 않은 시골마을 운동회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연대를 살그머니 거슬러오르면, 시골마을 아닌 여느 도시에서도 이와 얼추 비슷한 모습을 쉬 보았으니까요. 1970년대이든 1960년대이든 1950년대이든, 큰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국민학교가 아니라면 으레 작은 동산 한둘쯤 옆에 낀 학교였고, 학교 둘레로 풀밭이나 논밭이 있기 마련이었으며, 여느 도시라면 멧꼭대기까지 빼곡하게 들어차는 다닥다닥 작은 집이 있었어요. 어르신들도 손주 운동회 뛰는 모습을 구경 나오고, 조촐히 동네잔치를 이루었어요.

 

 그러고 보면, 《가을에》는 시골마을 운동회를 담는데, 막상 ‘여느 도시 작은 국민학교 작은 운동회’이든 ‘커다란 도시 큰 국민학교 큼지막한 운동회’이든 알뜰살뜰 사진으로 남겨 이야기자락 하나 빚은 일이 거의 없구나 싶습니다. 이 나라 자그마한 분교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분은 있으나, 이 나라 여느 도시 여느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는 없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 운동회를 두고두고 다시 찾아가며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모두들 멀디먼 옛날 옛적 이야기만 헤아릴 뿐, 바로 오늘 바로 이곳 바로 우리 아이들 요즈막 웃음꽃과 눈물바람이 깃든 운동회 파란하늘 흙땅을 살피는 사진이야기 피어나기란 너무 벅찬 노릇이구나 싶어요.

 

 사진책 《가을에》는 사랑스럽습니다. 가을날, 사진과 함께 숨을 쉬는 사람들 싱그러운 꿈을 느낄 만합니다. 누군가 “겨울에”나 “봄에”나 “여름에”를 뒤이어 빚을 수 있다면, 누군가 저마다 다 다른 자리 다 다른 이야기 서린 다 다른 “가을에”를 예쁘게 바라보며 얼싸안을 수 있다면, 산들바람 부는 가을빛과 눈바람 부는 겨울빛과 꽃바람 부는 봄빛과 햇살바람 부는 여름빛을 곱다시 무르녹일 수 있으면, 참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얼굴이 흙을 닮아 흙빛일 때에 그지없이 사랑스럽습니다. (4344.12.21.물.ㅎㄲㅅㄱ)


― 가을에 (이갑철 사진,류가헌 펴냄,2011.10.31./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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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백나무 옷장 책읽기

 


 십이월 첫머리에 맞춤한 편백나무 옷장이 어제 마무리되어 오늘 짐차로 왔다. 전라도 광주에서 빚은 편백나무 옷장을 실은 짐차가 마을 들머리에 접어들 때부터 ‘고놈 참 크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베니어판을 대지 않고 통나무로만 지은 편백나무 옷장은 값이 만만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옷장을 나와 옆지기뿐 아니라, 먼 뒷날 우리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한테서 곱게 물려받아 알뜰히 아낄 수 있기를 바랐다. 목돈을 써야 하는 옷장이란, 그만큼 오래도록 우리 시골집에서 함께 숨쉬고, 같이 살을 맞댈 동무이자 살붙이라 할 만하다. 화학 냄새 많이 나는 여느 옷장을 집에 들일 수 없다.

 

 바닥이 고르지 않고 중천장 또한 고르지 않은 가운뎃방에 편백나무 옷장을 넣는다. 뒤꼍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은 막힌다. 이 작은 문 고리를 열었어야 했다고 뒤늦게 깨닫는다. 어쨌든 자물쇠로 잠그지 않았으니 열 수 있겠지.

 

 옷장에서 나는 편백나무 냄새가 온 집안을 감돈다. 페인트도 니스도 바르지 않은 새 옷장은 하야말갛다 할 만한 빛깔이다. 보드라운 나무결을 느낀다. 옷장이 막 들어올 무렵 두 아이 모두 졸음에 겨워 악지를 쓰고 울먹울먹하더니 잠들었고, 옷장을 다 들이고 이제 방을 치우려 할 무렵 드디어 옷장 구경을 하더니 슬슬 옷장 안쪽으로 기어든다. 베니어판 아닌 나무판으로 댄 옷장은 튼튼해서 두 아이가 옷장 안으로 기어들어 방방 뛰어도 튼튼하다. 그렇지만, 벼리야, 너는 좀 큰 아이란다, 네 살 나이 오늘은 뛰어도 되지만, 네가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 된 다음에는 뛰면 안 될 듯해.

 

 옷장 안에 들어가 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어릴 적 이 아이들처럼 커다란 옷장 안에 몰래 들어가 놀던 일이 있었다고 떠올린다. 옷장이란 얼마나 숨기 좋은 곳인가. 이불이 없어도 들어가기 좋고, 이불이 있으면 더 아늑하며 재미나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운 다음 손을 뻗어 옷장을 톡톡 두들겨 본다. 소리가 좋다. 나와 옆지기가 이런 옷장을 손수 짤 수 있으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한다. 못 짤 일은 없으리라. 다만, 꿈을 천천히 꾸어야지. 우리 두 사람이 나중에 우리 옷장을 새로 짜기를 바라기 앞서,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이곳에서 나무를 알뜰히 심어 돌본 다음,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 집을 지을 때에, 또는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이 저희 집을 짓는다 할 때에 쓸 만한 나무를 얻게끔, 우리 집숲을 곱게 보살펴야지.

 

 이제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는 새로운 이야기책 하나가 생긴다. 아이들이 나중에 잊어버리더라도 아버지가 처음 찍은 사진이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옷장과 아이들이 맺을 이야기가 하야말간 편백나무 옷장 구석구석에 하나둘 아로새겨지리라. (4344.12.2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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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2-21 08:44   좋아요 0 | URL
옷장이 아이들 집이 되었네요^^
편백나무 냄새, 여기까지 나는듯 합니다.

파란놀 2011-12-21 09:35   좋아요 0 | URL
이제 오늘은 이 옷장에 옷과 이불
차곡차곡 넣어야지요.
에고~

페크pek0501 2011-12-21 15:15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 적 술래잡기할 때 옷장에 들어가거나 또 책상 밑에 이불로 커튼처럼 치고 들어가 숨어서 논 적이 많았어요. 그곳이 비밀스럽고 아늑해서 좋았어요. 저만의 세계 같았고요. 유쾌하고 아름다운 어린시절이지요. ㅋ 사진 속의 아이들도 그때의 저처럼 행복하겠지요. ㅋ

파란놀 2011-12-21 20:56   좋아요 0 | URL
아이와 어버이 모두 즐거이 하루하루 누려야지요~ 그러려고 애쓰기는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