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12.22.
 : 동짓날 자전거

 


- 생각해 보니 곧 예수님나신날이요 새해이다. 한 해 끝무렵에는 우체국 일꾼이나 택배 일꾼 모두 바쁘다. 이맘때에 편지를 띄우자면 서둘러야 한다. 부랴부랴 소포꾸러미 여럿을 싼다. 경기도 일산에서 살아가는 옆지기 어버이와 충청북도 음성에서 살아가는 내 어버이한테 보낼 우리 집 두 아이 사진을 꾸린다. 우체국에 전화를 건다. 택배를 가져갈 수 있느냐고 여쭌다. 오늘은 가져가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가져갈 수 있단다. 접수가 늦으면 택배도 늦게 가겠지. 동짓날을 맞이해 바람이 대단히 드세게 불며 온도가 뚝 떨어졌지만, 이 바람을 뚫고 우체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 집을 나서려 하는데 옆지기가 “버스 타고 가요.” 하고 말한다. “아, 버스?” 버스 지나가는 때를 살핀다. 읍내에서 16시 40분에 나오는 버스가 있다. 그렇다면 17시 00분에 우리 마을에 지나가겠구나. 시계를 보니 딱 17시 00분. 문을 열어 내다 본다. 아직 버스 지나가는 소리 없고 버스 지나가는 모습 보이지 않는다. 부리나케 가방을 메고 양말을 신고 신을 꿰며 달음박질을 한다. 십 분을 기다린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 집으로 돌아온다. 버스가 오늘은 일찍 지나간 듯하다. 자전거에서 수레를 뗀다. 자전거로만 면에 다녀오기로 한다. 대문을 나서려다가 아차, 발목끈을 묶지 않았다. 바보스럽군.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발목끈을 한다. 또 빼먹지 않았겠지, 살피며 벙어리장갑을 끼고 달린다.

 

- 옛 흥양초등학교 옆을 지날 무렵, 몹시 드센 바람으로 귀가 시리다고 느끼다. 그래, 이런 날은 털모자를 써서 머리와 귀를 가려야지. 장갑만 끼어서 되나.

 

- 면으로 가는 길은 살그마니 내리막이라 퍽 빨리 달릴 만하다. 우체국 때에 늦지 않는다. 가게에 들러 땅콩을 산다. 신집에 들러 털신을 산다. 6000원. 지난해와 견주어 1000원 오른다. 나는 2004년부터 고무신을 신었고,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털신 값은 5000원이었다. 고흥에서는 고무신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동짓날만큼은 발이 시려 안 된다. 지난겨울까지 신던 털신은 쥐가 쏠아서 못 신기에 새 털신을 산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살그마니 오르막. 더군다나 더욱 드센 맞바람을 가르며 달려야 한다. 아주 힘겨이 발판을 밟는다. 맞바람이 대단히 드세기에 자전거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걸을 때보다는 한결 빠르지 않니?’ 하고 생각하며 힘을 낸다. 용을 쓰며 맞바람을 뚫었고, 드디어 마을 어귀에 닿는다. 파란대문 우리 집 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자전거에 수레를 다시 붙인다. 바람이 많이 부니 자전거랑 수레를 붙여야 넘어지지 않는다. 벙어리장갑은 퍽 좋다. 둘째가 무럭무럭 크면 쓰라고 미리 산 벙어리장갑인데, 나한테는 살짝 작으나 손가락장갑보다 한결 따스하다.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손가락을 나누어 잡는 장갑보다, 이렇게 손가락이 하나로 모이는 장갑이 살과 살이 서로 닿으며 더 따스하다고 느낀다.

 

- 이제 바깥문을 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골이 띵해 비틀거린다. 찬바람이 너무 셌나 보다. 골도 띵하고 뒤꼭지도 아프다. 다음에는 털모자 쓰기를 꼭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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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는 쉴 수 없구나

 


 아침 빨래를 마치고 나서,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떤다. 한창 바삐 손을 놀려 밥과 국과 고구마떡볶음을 마무리지어 밥상에 올리기만 하면 끝인데, 이장님 마을 방송이 흐른다. 마을회관에 낮밥을 차렸으니 마을 분들 모두 나와서 드시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무슨 날이기에 마을회관에 모여서 밥을? 아이 둘한테 옷을 입히느라 한참 걸린다. 첫째는 머리도 제대로 안 빗은 채 이 바람 드센 날 엉터리로 옷을 입겠다고 억지이고, 둘째는 기저귀를 가는데 끝없이 울어대서 골이 띵하다. 어찌저찌 옷을 입히고 둘째를 안아서 마을회관으로 간다. 어르신들은 일찌감치 모이셨다. 할아버지들은 벌써 다 드시고 두 분만 남고, 할머니들만 남았다. 마을회관에 모이라는 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우리 집이 꼴찌.

 

 할머니들이 오늘 동짓날이라 함께 팥죽을 먹는다며 어여 자리에 앉으라 말씀하신다. 그렇구나. 동짓날이라 다 함께 팥죽을 드시는구나.

 

 팥죽을 세 그릇 먹고 둘째를 다시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하고 복닥거리느라, 또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듯 집일을 한 터라, 졸음이 가득한 두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자고 싶다. 그런데, 둘째가 똥을 눈다. 그래, 똥을 누었으면 똥을 치워야지. 아침에 두 차례 누고 낮에 한 차례 더 누네. 젖을 먹으면 젖 먹은 대로 똥이 나오겠지. 따순 물을 받아 밑을 씻긴다. 낯도 씻긴다. 똥기저귀는 바로바로 빨아야 똥물이 빠진다.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빨래하는 김에 옆지기 두툼한 옷가지도 빨래한다. 옆지기 옷가지를 빨래하는 김에 아침부터 낮까지 나온 둘째 오줌기저귀도 빨래하고, 첫째 옷가지 여러 벌을 함께 빨래한다.

 

 바람이 드세고 온도가 똑 떨어진 탓에, 후박나무 빨래줄에 건 빨래는 얼어붙는다. 구름이 지나가 햇살이 나면 바람에 날아갈 듯 펄럭거리던 얼어붙은 빨래가 사르르 녹는다. 고흥은 겨울에 그닥 춥지 않지만, 겨울바람은 되게 드세구나.

 

 어제 해 놓고 다 말렸으나 아직 안 갠 빨래를 갠다. 첫째 아이가 곁에서 거든다. 아침에 해 놓고 다 마른 빨래를 갠다. 첫째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논다. 나 혼자서 갠다. 그예 저녁까지 내처 집일을 한다. 열 시에 곯아떨어진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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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장갑 빨래

 


 옆지기 말을 들어 고무장갑 빨래를 하기로 한다. 네 식구 손빨래를 하자니 하루에 서너 차례를 해도 금세 다음 빨래가 쌓다. 집에서 빨래만 하지 않으니 손에 물기 마를 새가 없다. 이러다가 손이 너무 트고 갈라지고 뻣뻣해지고 거칠어질 테니까 빨래를 할 때만큼 고무장갑을 끼어 보기로 한다. 1995년에 홀살이를 할 때부터 손빨래를 했으니까, 열여섯 해 만에 맨손 빨래 아닌 고무장갑 빨래를 하는 셈.

 

 그렇지만, 둘째가 똥을 누어 밑을 씻기고 나서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둘째 밑을 고무장갑 끼며 씻길 수 없으니까. 부엌일을 하다가 빨래를 하거나, 첫째를 씻기고 나서 빨래를 할 때에도 으레 맨손 빨래가 된다. 손에서 물기를 말릴 몇 분이 아까우니 그냥 맨손 빨래가 된다.

 

 요 며칠 두 차례쯤 고무장갑 빨래를 한다. 그러니까, 요 며칠 예닐곱 차례는 그냥 맨손 빨래가 되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면, 물이 찬지 뜨거운지 잘 못 느끼겠다. 옷가지가 잘 비벼지는지, 때는 잘 빠지는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맨손 빨래를 한 나머지,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아직 느낌이 와닿지 않는다.

 

 먼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고무장갑이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내 어머니 젊을 적까지도 고무장갑이란 있을 수 없다. 빨래기계는커녕 고무장갑조차 없던 나날 집일을 도맡던 어머니들은 빨래를 하며 손이 까칠까칠해지고 트고 갈라지고 꾸덕살투성이가 되면서 어떤 마음 어떤 생각 어떤 꿈이었을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 ‘남자가 여자한테 빨래기계 사 줄 돈은 없어 고무장갑 겨우 사 주며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에 곧잘 실리곤 했고, ‘고무장갑 사 줄 돈조차 없어 미안하다’고 하는 이야기가 만화책이나 동화책에 가끔 실리곤 했다고 떠오른다. 빨래기계 안 사 주어도 되고, 고무장갑 안 사 주어도 되니까, 좋은 보금자리 꾸려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함께 손빨래를 하면 즐거웠을 텐데. 집일을 서로 도우면서 하고, 아이를 함께 사랑하면서 보살피면 참으로 아름다웠을 텐데.

 

 나는 네 식구 빨래를 도맡으면서, 네 식구 빨래하며 쓸 고무장갑도 내가 가게로 자전거 타고 마실하면서 장만한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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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복성 곤충기
조복성 지음, 황의웅 엮음 / 뜨인돌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환경책을 왜 읽는가
 [환경책 읽기 34] 조복성, 《조복성 곤충기》

 


- 책이름 : 조복성 곤충기
- 글 : 조복성
- 엮은이 : 황의웅
- 그림 : 이제호
- 펴낸곳 : 뜨인돌 (2011.8.19.)
- 책값 : 15000원

 


 (1) 《파브르 곤충기》와 ‘자연책 읽기’


 《파브르 곤충기》라는 대단하다 싶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무척 널리 읽힙니다. 아이들한테는 ‘필독 추천 명작 도서’로 손꼽히고, 온갖 판으로 많이 옮겨지기까지 합니다.

 

 《파브르 곤충기》와 함께 《파브르 식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벌레 이야기요, 하나는 푸나무 이야기입니다. 으레 벌레 이야기만 알려졌으나, 푸나무 이야기를 나란히 읽어 보면, 파브르라 하는 사람이 지구별 어여쁜 목숨붙이를 얼마나 사랑하면서 아끼려 했는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동물학이고 식물학이고 무슨무슨 학문이고를 떠나, 가장 크게 돌아보면서 가장 깊이 살필 대목이란 바로 사랑이에요. 크고작은 벌레들 표본을 많이 모았대서, 벌레들 한살이를 두루 꿰뚫는 논문을 많이 내놓았대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대서, 이런저런 책을 숱하게 내놓았대서, 벌레를 비롯한 숱한 목숨붙이를 제대로 알거나 올바로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랑하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는 셈입니다.
 

.. 우리 나라에 사는 소똥구리 세 종류는 전부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멈추지 않고 소똥을 빚는다.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 쉴 때는 소똥을 한 조각 떼어먹기도 하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먹듯 달고 맛있게 먹는다. 녀석이 똥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쩝쩝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리는 듯하다 … 이렇듯 매서운 탓에 말벌의 성질이 포악하고 독단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말벌은 애정이 넘치는 화목한 집단을 이루며 일을 매우 조직적으로 분업화해 조화롭게 살아간다 ..  (20, 62쪽)


 학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 학문이란 책을 파헤치거나 책을 쓰기만 하는 학문일 수 없어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생각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학문이어야 합니다. 살리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결·흐름·무늬가 없다면, 학문할 뜻이 없습니다.

 

 이는 학문 자리뿐 아니라, 공무원 자리에서도 똑같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아이를 낳아 집에서 보살피는 어버이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어디에서나 언제나 삶·사람·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삶을 살피고 사람을 돌아보며 사랑을 생각하면서 해야 할 학문이요, 행정이며, 교육이고, 아이키우기입니다.

 

 《파브르 곤충기》와 《파브르 식물기》는 무엇보다 이 삶·사람·사랑을 알뜰히 눈여겨보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벌레 지식이나 푸나무 정보를 다루지 않아요. 벌레와 푸나무를 찬찬히 바라보고 살피며 헤아리는 까닭은, 벌레와 푸나무를 더 잘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니에요. 벌레와 푸나무를 참다이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찾고 싶기 때문이며, 이 벌레와 푸나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착하고 예쁘게 어우러지는 길을 열고 싶기 때문입니다.


.. 녀석(바퀴)은 책 표지에 침을 뱉어 놓는 이상한 습성이 있는데, 이 또한 표지를 만들 때 바른 풀을 부풀게 해서 먹어치우려는 교활한 꾀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된 책이라 해도 이놈한테 한번 걸렸다 하면 순식간에 형편없이 변하고 만다 ..  (38쪽)


 아이들한테 책을 더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굳이 초등학교이건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학원이건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중·고등학교를 안 다녀도 됩니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될 까닭이 없고,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가져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가용을 몰지 못한대서 아이답지 못하겠습니까. 아이들이 영어를 못한대서 사람답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답게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늘 사람다이 살아야 합니다.

 

 참다게 살아갈 수 있으면서 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착하게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사랑할 수 있으면서 맡는 공공기관 행정직, 이른바 공무원입니다.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면서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문화를 하든 예술을 하든 과학을 하든 할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회사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전문가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 또한 회사원으로 살아야 하지 않아요. 어른 누구나 전문가가 될 까닭이 없어요.

 

 사람다운 사람이어야 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즐거이 누려야 합니다. 고운 꿈을 멋지게 이루면서, 맑은 말과 밝은 눈빛으로 사랑을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 옛날부터 늘 우리 곁에서 함께 살던 나방이 요즘에 와서야 화제가 된 사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우리 땅에 사는 곤충에 관심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 같아 애석하기도 하다 ..  (98쪽)


 아이들이 《파브르 곤충기》를 읽어야 한다면, 아이들이 벌레들 살아가는 지구별을 사랑하는 길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벌레들 살아가는 지구별이란 바로 사람들 살아가는 지구별이요, 사람들이란 ‘너와 나와 우리’가 서로 얼크러지는 사람들입니다. 너와 나와 우리가 모여 사람들이 됩니다. 너와 나와 우리가 다 함께 아름다운 삶을 참말 아름다이 여미도록 북돋우는 길이 참살길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사람은 벌레를 아낍니다. 사람을 아끼는 사람은 푸나무를 아낍니다. 푸나무를 아끼기에 사람을 아끼고, 벌레를 아끼기에 사람을 아껴요.

 

 《파브르 곤충기》를 남긴 사람이든, 《시튼 동물기》를 남긴 사람이든, 그리고 《조복성 곤충기》를 남긴 사람이든, 서로서로 한동아리로 흐르는 넋이자 얼이요 꿈이고 빛입니다.

 

 지식이 아닌 삶입니다. 정보가 아닌 사랑입니다. 학문이 아닌 살림입니다. 권위나 권력이 아닌 어깨동무요 두레예요.

 

 지식을 쌓자며 책을 읽는다면, 스스로 바보가 되겠다는 소리입니다. 학문을 이루겠다며 책을 파고든다면, 스스로 얼간이가 되겠다는 셈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꿈을 열고 싶으니까 책을 읽습니다. 나와 너와 우리가 이어지는 고리를 살가이 깨달아 착한 빛줄기를 드리우고 싶기에 책을 펼쳐요. 아이들한테 《파브르 곤충기》를 읽히고 싶다면, 아이들을 낳거나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는 어른들부터 이 책을 찬찬히 새겨읽은 다음, 아이들한테는 ‘종이책’ 아닌 ‘흙책’과 ‘풀책’을 이야기보따리로 들려주며 함께 부대껴야 합니다.

 


 (2) 《조복성 곤충기》는 환경책


 《파브르 곤충기》는 1800년대 끝무렵부터 나와서 1907년에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1907년이라 한다면 한국에는 서양책이 거의 옮겨지지 않던 때입니다. 일본에서는 《파브르 곤충기》를 언제부터 일본말로 옮겨서 읽었을까요. 일제강점기에 교사로 일하고 학문을 파헤치던 조복성 님은 이무렵 《파브르 곤충기》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이 한글이나 일본글로 없다 하더라도, 일본사람이 일본 벌레붙이를 살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2011년에 오랜만에 빛을 본 《조복성 곤충기》는 1948년에 나온 《곤충기》와 1975년에 나온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를 간추려 한데 모은 책입니다. 1948년에 나온 《곤충기》와 1975년에 나온 《조복성곤충채집여행기》는 도서관에서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고, 헌책방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책입니다. 이 땅에서 이 나라 이 겨레 벌레붙이를 살피고 파헤치며 다룬 아름다운 책이지만, 이 책들을 눈여겨보거나 되살리거나 보듬으려는 손길이 너무 얕았어요.


.. 파리가 낳은 구더기는 자연에서 온갖 쓰레기와 썩은 것들, 심지어 배설물까지 마다하지 않고 말끔히 청소해 준다 … 사람들이 더럽다고 욕하고 혐오스러워 하는 곤충들도 저마다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겪어 내야 하는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 … (사슴벌레는) 악착스럽게 다른 곤충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단지 참나무에서 스며 나오는 진액을 빨아먹고 둥치에 구멍을 뚫어 새끼를 치며 즐겁게 살아가는 평화주의자다 ..  (35, 47, 73쪽)


 새로 붙인 그림이 실린 《조복성 곤충기》는 예쁘장합니다. 조복성 님은 당신 이야기책이 이렇게 되살아날 줄 알았을까요. 조복성 님한테서 학문을 배운 이들은 당신 스승 책을 되살리려고 꿈꾼 적이 있었을까요.

 

 예쁘장한 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앞으로도 이 책이 예쁜 손길을 받으면서 예쁜 사랑을 고이 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읽습니다. ‘필독 추천 명작 도서’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사람들한테 좋은 사랑을 두루 나누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면 참으로 기쁘겠다고 빌면서 읽습니다.

 

 《조복성 곤충기》는 환경책입니다. 이 나라 생태·환경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돕는 책입니다. 이 나라 생태·환경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좋을까를 돌아보면서 적바림한 책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흔하게 있으나, 흔히 알아채지 못하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깨달으면서 올바로 알아차리자고 이끄는 책입니다. 삶을 슬기로이 일구면서 내 땅 내 마을 내 터전을 슬기로이 보살피자는 뜻을 널리 나누려는 책이에요.


.. 놈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오랫동안 살 수 있다. 벼룩과 이가 한 달 동안 먹지 않고 사는 데 비해 빈대는 무려 반년이나 버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추위에 견디는 힘이 뛰어나 영하 33℃의 추운 날씨에도 얼어죽지 않는다. 요즘처럼 춥고 배고픈 때, 우리 나라 사람들도 이런 저항력을 지녔다면 얼마나 좋으랴! … 곤충들의 외모는 자연스럽고 순진함과 고상함을 겸하고 있다. 또한 모든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니, 그것을 이해하고 그들을 본받으면 어떨까? ..  (48∼49, 89쪽)


 동짓날 추운 바람을 따스한 집에서 몸을 녹이며 긋습니다. 이 추운 날 한국땅에는 틀림없이 한뎃잠을 자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작은 보금자리가 있으나 따순 이불 한 장 없어 고단한 사람이 있어요. 값비싼 보금자리에서 따스한 사람이 있고, 아무런 보금자리 없이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멀디먼 나라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 곁에 있는 고단하거나 아프거나 슬픈 사람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이러면서 내 삶이 얼마나 참답고 사랑스러운가를 살피면 좋겠어요.

 

 나는 무엇을 누려야 즐거운 하루일까요. 나는 어떤 밥을 어떻게 차려서 먹어야 고마운 하루인가요. 나는 어떤 옷을 입으며 뽐내야 예쁜 모습일까요. 나는 어떤 돈벌이를 하면서 얼마나 은행계좌를 늘려야 넉넉한 삶일까요.

 

 아이들이 《파브르 곤충기》를 읽든 《조복성 곤충기》를 읽든 쇠똥구리나 개똥벌레나 사슴벌레를 만날 일이란 없습니다. 깊은 멧골이나 시골로 놀러가더라도 요사이는 항공방제라는 이름으로 수목원에까지 농약을 마구 뿌립니다. 흙을 밟을 만한 데는 온통 농약투성이입니다. 흙이 없는 데는 온통 시멘트바닥이거나 아스팔트바닥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땅에서 잘도 경제개발을 하고 경제활동을 한다는데,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국회의사당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참 그럴듯하게 밀어붙이는데, 나무 한 그루 심지 않는 지식인과 공무원과 건설회사 일꾼은 어마어마하게 큰 돈을 들여 온나라 물줄기를 시멘트로 발라대는데, 《파브르 곤충기》를 읽든 《조복성 곤충기》를 읽든 무엇을 바꾸거나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내 살림집에서 벌레붙이 하나 만나기 힘든데, 아이들 다니는 학교나 학원에서 바퀴벌레나 개미 몇 마리 말고는, 더러 나방 조금 아니면 마주치기조차 힘든데, 이런저런 책을 읽는들 얼마나 값지거나 뜻있거나 사랑스러울는지요.

 

 개똥벌레가 어떻다느니, 개똥벌레랑 반딧불이는 같은 이름이라느니, 파리가 알을 몇 개쯤 낳고, 이 가운데 몇 개쯤 까며, 애벌레는 얼마만에 어른파리가 되는지를 지식이나 정보로 안다 한들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요. 한미자유무역협정과 4대강사업을 지식과 정보로 아는 이들 가운데 ‘당차게 자가용을 버리고 시골로 살림집 옮겨 흙을 파먹고 살겠다’고 외치는 이는 몇이나 되는가요.


.. 꿀벌은 유용한 꿀을 주는 덕에 아끼다가도 독침이라도 한 방 잘못 쏘는 날에는 곧바로 상대 못할 버러지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또 인간은 흰개미를 자연의 분해자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도 정작 자신의 물건을 갉아대기라도 하면 나쁜 곤충이라며 학대를 서슴지 않는다 ..  (166∼167쪽)


 대통령과 국회의원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뽑도록 지켜보고 한 표 권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거나 이 다음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크게 잘못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나 《조복성 곤충기》를 읽는 일은 아름답습니다. 즐겁고 기쁘며 신납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베푸는 책읽기로만 그친다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독후감 쓰기 숙제를 내주거나 독후표창을 해 준들 부질없습니다.

 

 설명서를 읽고 빨래기계를 돌려 빨래를 해내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다만, 식구들 옷가지를 내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고 비비면서 빨래하는 일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늙고 아프며 힘 못 쓰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큰도시 넓은 아파트 방에 모시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다만, 시골 흙집에서 늘 흙을 만지고 파란 빛깔 하늘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는 터전에서 언제나 곁에서 보살피며 함께 흙을 파먹고 살아가며 모시는 일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자가용 타고 할인매장에서 물건 값싸게 사들이는 일이 나쁘지 않아요. 다만, 식구들 다 함께 시골 논둑길을 거닐며 장마당 천천히 오가며 이야기꽃 피우는 일만큼 아름답지 않아요.

 

 조복성 님은 학문하는 길을 씩씩하고 당차게 걸었습니다. 다만, 학문만 하는 길은 안 걸었습니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길을 걸었고, 벌레붙이를 바라보며 당신 한삶을 늘 되새기는 한편, 사랑스레 지구별을 돌보는 꿈을 빚으려고 땀흘렸어요.

 

 사람 하나 태어나서 죽기까지 책은 손수레로 다섯 차례 나를 만한 부피면 넉넉합니다. 넉넉할 뿐더러 넘칩니다. 《조복성 곤충기》는 다섯 수레 책 가운데 하나로 놓으면 즐겁습니다. 책은 다섯 수레만큼만 읽으면서 삶을 아리땁게 일굴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12.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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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 류가헌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책잔치에서 이 책을 들여다본다. 비닐을 안 씌운 채 있으니까. 안을 들여다보니, 사진이 참 좋다. 인터넷책방 미리보기는 없기 때문에 사진이 어떠한가를 알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도 이만 한 깊이로 항공사진을 보여줄 수 있구나 싶어 기쁘다. 이달에 이것저것 해서 들어올 일삯이 있을 때에 슬그머니 장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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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선물- 헬기에서 내려다본 한국의 사계
이태훈 지음 / 눈빛 / 2011년 11월
25,000원 → 23,750원(5%할인) / 마일리지 72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12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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