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창호종이문 바르기

 


 부엌 창호종이문을 드디어 바른다. 바르고 보면 뚝딱 하고 해치울 만한데 나는 이 일을 여태 미루었다. 부엌 나무문에 붙은 헌 창호종이를 뗀 지 스물닷새쯤 되었으나, 이런저런 일을 치른다는 핑계를 스스로 붙여 이제껏 안 바르며 지냈다.

 

 찌뿌둥한 몸으로 드러누워야 하나 생각하다가, 한 시간 품을 팔자고 다짐한다. 마당가 헛간에서 풀을 꺼내 작은 대야에 담는다. 물을 조금 담아 왼손으로 비빈다. 햇살 드는 대청마루에 몇 분 둔 다음 하얀 천에 풀을 석석 발라 먼저 나무문살에 붙인다. 문고리 자리는 가위로 알맞게 잘라 예쁘게 댄다. 몇 분 기다리고 나서 창호종이를 바른다. 창호종이는 한 장 반 든다.

 

 예전에는 창호종이만 발랐다는데, 이제는 하얀 천을 먼저 바르고 이렇게 창호종이를 붙인단다. 하얀 천은 어떤 천일까. 무슨 천인지는 모르고, 면내 천집에서 ‘창호종이 바를 때에 속에 대는 천’이라고 여쭈어 사 왔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 이렇게 하신다기에 우리도 이리 해 보았다.

 

 속에 천을 한 겹 붙이고 창호종이를 붙이니, 창호종이에 구멍 날 일이 없다. 아이는 부러 구멍내기 놀이를 하지만, 따로 놀이를 않더라도 문을 여닫다가 그만 구멍이 나곤 한다. 천으로 한 겹 대니 어쩌다 손가락이 문살 사이로 쏙 들어가 톡톡 치더라도 구멍이 나지 않는다.

 

 하룻밤 잘 자면 곱게 마르겠지. 이웃집 할머니는 잘 말린 나뭇잎 한두 장을 함께 붙이면 한결 그윽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자면 가을날 문을 발랐어야지. 한겨울에 무슨 나뭇잎을 잘 말려 함께 붙이나. 남녘땅 고흥이 안 춥대서 이래저래 미적미적 일을 미룬 셈인가. 낮잠 한 시간을 못 자고 창호종이를 바른 탓에 이듬날은 아침 여덟 시가 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좋다. 하루쯤 몸을 더 부리거나 굴려도 좋다. 밀린 일 하나 씻어 아주 기쁘고 홀가분하다. (4345.1.5.나무.ㅎㄲㅅㄱ)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2-01-05 11:26   좋아요 0 | URL
와우, 창호지가 요즘에도 있네요.
저게 습도 조절엔 그만이라는데.
저도 어렸을 땐 창호지 바른 집에서 살았는데...
운치있고, 정감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2-01-05 14:26   좋아요 0 | URL
시골집은 모두 창호종이문이에요.
그래도 다들 예쁘게 잘 사셔요.
우리 집도 창호종이문이라 좋은데,
어쩔 수 없이 벽은 시멘트랍니다 ㅠ.ㅜ

나중에 돈을 모아 흙집을 따로 지어야지요~~~

하늘바람 2012-01-05 12:31   좋아요 0 | URL
이거 은근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릴때 발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쭈글쭈글 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파란놀 2012-01-05 14:27   좋아요 0 | URL
풀을 종이에 바르고서 좀 두었다가 붙이면 쭈글쭈글하지 않아요.
그런데 엊저녁 붙이면서 깜빡하고
또 그냥 붙였어요 ㅠ.ㅜ

잉잉..

hnine 2012-01-05 16:02   좋아요 0 | URL
딴 얘기인데, 산들보라하고 사름벼리, 남매가 진짜 많이 닮았어요 ^^

파란놀 2012-01-05 16:57   좋아요 0 | URL
음... 밤에 오줌 누어 기저귀 갈 때
빽빽 끝없이 울어대는 모습
참... 똑같아요 -_-;;;;;;;

마녀고양이 2012-01-05 21: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흰천을 먼저 붙이고 창호지를 붙이는거군요, 요즘은.
저는 첫 사진을 우선 봐서, 창호지는 천이구나 했어요... 긁적긁적.

깨끗하니 좋은걸요.

파란놀 2012-01-06 01:56   좋아요 0 | URL
창호지에서 '지'가 '종이'에요.
창호는 창문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창문 종이'란 뜻이에요.

붓글씨를 쓰는 종이도 바로 이 창호종이잖아요~ ^^
 


 뜨개옷 실 풀기

 


 아이 어머니가 뜨개를 한다. 한창 뜨다가 자꾸 푼다. 누군가 고마이 올려준 도안을 내려받아 종이에 뽑은 다음 찬찬히 들여다보며 뜨는데, 뜨개질 손놀림이 어디에선가 꼬여 엉뚱한 모양이나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도안대로 찬찬히 떴다지만 생각보다 예쁘게 나오지 않거나 실이 많이 들어가 무겁게 될 때에도 푼다.

 

 곁에서 뜨개질을 지켜보는 아이 아버지는 생각한다. 며칠에 걸쳐 뜬 옷가지를 십 분도 걸리지 않아 풀면 얼마나 아깝고 아쉬운가. 잘못 떴으면 잘못 뜬 대로 마무리를 해도 좋으련만.

 

 둘째 기저귀를 빨래하며 생각한다. 아냐, 잘못 뜬 옷가지를 그대로 마무리하면 제대로 입거나 걸치지 못할 뜨개옷이 잔뜩 생기지 않겠니. 이 옷가지를 나중에 어떻게 하겠니. 여러 날 품을 들였어도 다시 풀어야 이 실로 새롭게 예쁘게 즐겁게 뜨개질을 할 수 있잖아.

 

 나는 내가 쓴 글을 책으로 엮으려고 한 꼭지 두 꼭지 갈무리할 때에, 어김없이 글 손질을 한다. 엊그제 쓴 글이든 한 달 앞서 쓴 글이든 몇 해 앞서 쓴 글이든 여러 차례 되읽으면서 낱말이랑 말투를 모두 새로 가다듬는다. ‘그대로 마무리’했다가는 썩 예쁘지 않은 글이 온누리에 책옷 입고 태어날 수 있으니까. 예전에 글을 쓰며 미처 모르던 ‘아직 바르게 가다듬지 못한 말투’는 다스려야지. 엉성하거나 성긴 글을 부끄럽게 누구한테 읽히겠니.

 

 그렇지만, 엉성하거나 성기게 쓴 오늘 이 글을 누군가 읽어 준다. 그냥저냥 그대로 둔다 해서 나쁠 구석 없다. 참말 그렇다. 도안과는 다르게 뜬 옆지기 뜨개옷이라 하더라도 그냥 마무리해서 즐기면 넉넉하다. 이 뜨개옷에는 여러 날이라는 품이 아니라, 한 땀 두 땀 애틋한 손길과 따순 마음이 깃들었으니까. 좋은 사랑과 어여쁜 꿈이 담긴 뜨개옷이기에, 풀지 않고 그대로 입어도 좋고, 씩씩하게 풀어서 다른 새 옷을 떠도 반갑다. (4345.1.5.나무.ㅎㄲㅅㄱ)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2-01-05 13:19   좋아요 0 | URL
참 옛날 생각나게 해 주는 페이퍼 입니다.
옛날에 울엄니도 저렇게 살았는데...ㅠㅠ

파란놀 2012-01-05 14:28   좋아요 0 | URL
오늘이라도 집에서 해 보셔요.
차근차근 하면 누구나
즐겁게 뜨개하고
놀 수 있으리라 믿어요~~

BRINY 2012-01-05 14:21   좋아요 0 | URL
저희 어머니랑 이모들도 옛날에는 저렇게...
실을 풀어서 재활용할 때 뜨거운 김을 쐬어주면 꼬불거리지않고 좋다고해서,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그 김으로 실을 풀면서 둘러앉아 뜨게질하는 모습을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보니 왜 옛날에는 저렇게 둥그렇게 짜서 목에 감을 생각을 못했나 몰라요.

파란놀 2012-01-05 14: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천천히 집에서 함께 뜨고 놀면
아이들도 어른돌도
일하고 놀며
참으로 좋구나 싶어요.

옆지기가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이렇게 뜨개를 하니
더없이 고맙답니다~~

마녀고양이 2012-01-05 21:03   좋아요 0 | URL
된장님의 옆지기님 때문에
다시 뜨게질 배우게 생겼네요... 어쩜 뜨신 작품마다 저리 이쁠까.
손으로 만드는 것, 진짜 당기네요, 요즘. 저도 주섬주섬 무엇인가 만들 때가 되었나봐요.

파란놀 2012-01-06 01:57   좋아요 0 | URL
이번 뜨개목도리는
아무래도 잘못 뜬 듯하다며
다 풀기로 했답니다 ^^;

그런데, 찬물 빨래한 이 목도리는
아직까지 다 안 말랐어요.
이틀이 되도록... 흠...
 


 할 말을 쓰는 글

 


 아이들 자고 옆지기 자는 깊은 밤과 새벽에 잠을 잘 수 없다. 왜냐하면, 이동안 지난 하루 겪은 일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나 살아온 숱한 나날 되짚어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 밤과 새벽이 더없이 고맙고 기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때가 아니라면 나한테는 글쓰기 붙잡을 겨를이 없어 그만 잠을 쫓고야 만다.

 

 아니야, 아무리 이렇더라도 이래서는 안 되지. 오늘 하루 집일을 다 끝내지 못해 밀린 빨래가 있잖아. 얼른 빨래를 해야지. 그러고 나서 예쁘게 잠들어야 새로 맞이할 이듬날에 아이들 밥을 먹이고 집일을 새롭게 돌보면서 또 하루를 보내지. 이 밤에 잠을 안 자면 이듬날 아이들 어떻게 씻기고 어떻게 집일을 건사하겠니.

 

 아, 허리가 아파도 방바닥에 드러누워 허리 펼 1초가 아깝다. 팔뚝이 저려도 자판 두들기기를 멈추어 손목 주무를 1초가 아쉽다. 하고픈 말은 쏟아지고 짊어질 내 일거리는 어서 와 나를 치러 달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래, 이 밤, 이른 한 시에 아이들 옷가지 신나게 빨래해서 방마다 옷걸이로 꿰어 걸어 주리라. (4345.1.5.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점 숲의 아카리 9
이소야 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꿈 없는 한국 새책방은 무엇을 지킬까
 [만화책 즐겨읽기 101] 이소야 유키, 《서점 숲의 아카리 (9)》

 


 시골은 군입니다. 시이면서 시골도 있겠지요. 도에서는 시이면서 시골인 곳이 많으니까요. 거꾸로 군이요 읍이면서 도시와 똑같은 데도 꽤 많아요.

 

 어쨌든, 군에서는 읍과 면과 리로 나눕니다. 시에서는 구와 동으로 나눕니다. 군에는 군청과 읍사무소와 면사무소가 있습니다. 시에는 시청과 구청과 동사무소가 있습니다. 군청은 시청과 같다 할 만하고, 읍사무소는 구청과 같다 할 만하며, 면사무소는 동사무소와 같다 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정작 들여다보면 군청은 시청보다는 구청하고 비슷한 크기요 짜임새이기 일쑤입니다. 읍사무소는 면사무소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동사무소와 비슷하다 할 만합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웬만한 도시 여느 시청이랑 같은 자리에 놓자면 도청이 되는구나 싶어요. 시골 군청은 웬만한 도시 구청하고 같은 자리에 있구나 싶고요.

 

 내가 살던 인천에서 드나들던 동사무소는 어디에서나 참 작았습니다. 사람 많이 살거나 가게 많이 있는 동네 동사무소는 으레 일꾼이 쌀쌀맞거나 딱딱하곤 했습니다. 사람 적게 살거나 가게 적게 있는 동네 동사무소는 으레 일꾼이 한갓지면서 어영부영이곤 했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곧잘 면사무소에 드나듭니다. 예전 시골 어르신들은 면서기만 되어도 꼼짝 못하시기도 했다지만, 나는 도시에서 살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군청에 볼일 보러 드나들면서 야코죽지 않았어요. 만날 사람을 만나고, 나눌 얘기가 있어 전화를 겁니다.

 

 전라남도 고흥으로 살림을 새로 옮기며 여러모로 도움을 받거나 서류를 떼거나 내야 할 일이 많아 아직 군청이나 면사무소를 곧잘 드나듭니다. 이때에 여러 기관 일꾼들 매무새와 말씨와 여러 가지를 가만히 살피면, 면사무소 일꾼은 참 작구나 하고 새삼 느끼고, 이 작은 면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은 군청 일꾼이랑 대면 더 작다고 느낄 수 있겠구나 싶어요. 이런 흐름이라면, 면사무소 일꾼이 군수님 나들이를 한다 할 때에 어떻게 나오겠느냐 하고 쉬 그림을 그릴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구청장이 동장을 찾아간다고 할 때에, 시장이 구청을 찾아간다고 할 때에 어떠하겠느냐 하는 그림이 쉬 나와요.


- ‘변해 가고 있어. “바벨의 도서관”에서 테라야마 씨를 끌어내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뜻인가?’ (25쪽)
- ‘미도리 씨와 깨끗이 사귈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96쪽)


 무늬로 치면, 도시 동사무소랑 시골 면사무소이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동이랑 면은 달라도 참으로 다릅니다. 동사무소가 깃든 시내에는 밥집 많고 술집 많으며 찻집이랑 빵집이랑 피시방이랑 이것저것 많은 한편, 드문드문 책방이 있습니다. 면사무소 깃든 시골 면내에는 빵집이란 구경하기 힘들고, 밥집이나 술집은 띄엄띄엄 있으나, 피시방 또한 좀처럼 구경하지 못합니다. 면에서 책방이 있는 시골이 한국에 몇 군데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에서는 ‘동네책방’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아니 아직까지 제법 씁니다. 시골에서는 ‘면내책방’이라는 말을 쓰지 못합니다. ‘읍내책방’이라는 말도 좀 힘들어요. 읍내라지만 책방 없는 읍이 꽤 많습니다. 아니, 책방 사라진 읍내라고 해야 걸맞겠지요. 읍내책방이 있다 하더라도 읍내책방은 아주 이름난 작가와 퍽 커다란 출판사에서 낸 책이 아니고는 갖추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책이라 하더라도 팔기에 수월하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책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아니 아이들은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지, 여느 책들을 들여다보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새끼가게는 시골 읍으로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롯데리아 같은 가게는 시골 읍내까지 파고든다지만,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는 읍내나 면내에 자그마한 새끼가게를 낼 생각을 하지 않아요.


-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없어요. 혹시 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었거든요. 당신은 그런 책이 없나요?” “있습니다.” “서점은 이런 뜻밖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아요.” (59∼60쪽)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전라남도 고흥 읍내에는 롯데리아마저 없습니다. 롯데리아는 웬만한 시골 읍내에 다 들어가는데, 고흥군만큼은 찾아들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흥 읍내에는 롯데리아이든 맥도널드이든 케이에프시이든 뭐든 없군요. 지난해 시월 즈음 베스킨라빈스가 군청 가는 네거리 모퉁이에 조그맣게 열었는데 얼마나 잘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깊디깊은 시골 읍내에 이런 가게가 들어서는 일이 참 놀랍습니다. 이른바 ‘체인점’이라 하는 새끼가게가 거의 없는 읍내인데, 이러한 새끼가게는 얼마나 이름값을 치르면서 가게를 버틸 만할까요.

 

 시골에서 시골살이를 하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도시살이를 할 때하고는 아주 다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삶이 다르고 삶자락이나 삶결 모두 다르거든요.

 

 나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가 서울에서 부산이나 인천이나 대구나 전주나 광주나 …… 온 나라 곳곳으로 새끼가게를 뻗치면서 지역책방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일을 몹시 싫어합니다. 이름과 돈과 적립금으로 밀어붙이는 이 끔찍한 일을 책마을에서도 버젓이 저지르는 꼴을 보기 싫습니다.

 

 그런데, 면내책방이란 아예 없고, 읍내책방은 참고서 장사나 문방구 장사에 기대는 시골가게 살림을 돌아본다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데가 ‘시골 읍면 작은책방 새끼가게’를 여는 쪽으로 물꼬를 바꾼다면, 좀 달리 바라볼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 “그 만화책을 놔둠으로써, 실용서적을 놔둘 귀중한 공간이 하나 사라져요. 그 만화책이 팔리면 코믹 매장의 매출은 올라가지만, 실용서적의 매출에는 득이 안 되죠. 예전에 일했던 지점에서는 이 정도로 뚜렷하게 갈리지 않았거든요. 책은 넘쳐나지만 공간은 한정돼 있으니까요. 서점 전체를 위하는 길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86쪽)
- “한국에서는 할인 경쟁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원래 서점 숫자가 일본에 비해 적어서 인터넷뿐 아니라 점포로 고객을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우선 할인 이외의 서비스로 다른 서점과의 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군요.” “한국에서는 서점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점포에서는 고객이 책을 찾을 때 친절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고객도 그런 서비스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작은 배려를 무척 반깁니다.” (167쪽)


 롯데리아조차 없는 고흥군 읍내이지만, 편의점은 있습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없으나 편의점만큼은 있어요. 다만, 편의점조차 거의 없기는 한데, 면소재지 가운데에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편의점으로 살짝 무늬만 바꾼 곳도 있어요.

 

 나는 이들 면소재지 편의점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교보문고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지점’을 열고, ‘교보문고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지점’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교보문고가 이렇게 새끼가게를 연다고 하면, 나는 교보문고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영풍문고가 고흥군 포두면이나 풍양면 소재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작은책방 지점’을 열어서, 마을 어린이와 젊은이와 어르신 모두한테 책삶을 베푸는 길을 빚으려 한다면, 나는 영풍문고를 못마땅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장사를 꾀하는 이런저런 대형서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군청이나 도청에서 ‘시골 읍내책방·시골 면내책방’ 정책을 세워, 시골사람이 도란도란 모여 책이야기 꽃을 피우고 스스로 책을 장만하는 길을 마련하며, 시골 젊은이가 시골 한켠 책방 일꾼으로 뿌리내리면서 문화와 삶을 나누는 밑바탕이 되도록 뒷배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꿈을 꿉니다.

 

 옛말 그대로 낮에는 들판과 바다에서 땀흘려 일을 합니다.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면소재지에 살짝 들러 ‘면소재지 작은책방’에서 마음밥 살찌우는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돌아와 읽습니다. 책값을 돈으로 내기 힘들면 ‘농약과 비료 안 친 정갈한 푸성귀’를 내면 되지요. ‘무농약 친환경 무’ 몇 뿌리라면 책 한 권 살 만한 값이 됩니다. 그러면, 면내 작은책방에서는 이 ‘무농약 친환경 무’를 현물로 받아 면소재지 면사무소나 학교나 소방서나 경찰서나 은행이나 이런저런 데에서 일하느라 ‘흙을 일구지 못하는’ 사람한테 팔 수 있습니다. ‘면내 작은책방’에서 인터넷방을 열어 이러한 ‘무농약 친환경 푸성귀’를 예약주문을 받고, 시골 흙일꾼 할매 할배한테서 틈틈이 현물을 받아서 보낼 수 있으며, 이동안 시골 흙일꾼 할매 할배는 현물로 낸 푸성귀 값을 ‘책을 살 수 있는 돈’이나 ‘책을 안 사고 맞돈으로 받아도 되는 제도’로 슬기롭게 세우면, 그야말로 어여쁜 시골 삶꽃 책꽃이 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시오미 씨는 언제 봐도 근사해. 미인이고 똑 부러지고 좋은 냄새가 나고, 유능하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결혼을 못해도 좋으니 저런 식으로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 (107쪽)
- ‘조금씩 변해 가는 걸까.’ (160쪽)


 이소야 유키 님 만화책 《서점 숲의 아카리》 9권을 읽습니다. 9권째에 이르니, 이 만화책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사이에 ‘서로 엇갈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바야흐로 무르익습니다. 그러나, 《서점 숲의 아카리》는 책이름 그대로 “서점 숲” 이야기인 만큼, 사랑이야기는 살며시 접고는, 책이야기로 흐릅니다. 책을 바라보고 책마을을 걱정하며 책삶을 아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펼칩니다.

 그러다가 툭 하고 한 마디 내뱉듯 적바림하면서 9권을 마무리짓습니다. 너무도 마땅하고 참으로 옳으며 그야말로 즐거운 말마디입니다. ‘책에는 길이 없잖아.’


- ‘대체 이게 뭘까? 책에는 답이 적혀 있지 않은 건가?’ (179쪽)


 책에는 길이 없어요. 흔한 말로 ‘책에는 길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책을 읽어도 책에서 길을 찾을 수 없어요. 책에서 길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북돋울 때에 나 스스로 길을 열어요. 그러니까, 책을 읽기 때문에 스스로 길을 열 기운을 얻는다 할 수 있을 테지만,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사람을 읽고 삶을 읽으며 자연을 읽고 몸뚱이를 읽으며 길을 찾아요. 책이란, 사람과 삶과 자연과 몸뚱이를 오롯이 갈무리하여 간추린 알맹이입니다. 알맹이를 훑으며 슬기로이 깨닫기도 하지만, 어느 목숨붙이라 하든 알맹이만 먹지 않아요. 이를테면, 밥을 먹으며 씨눈을 먹어야 비로소 영양을 먹는다 하지만, 씨눈만 먹어서는 영양조차 못 먹는 셈이에요. 씨눈이랑 씨눈을 덮은 쌀 몸뚱이(알맹이가 아닌 테두리)를 함께 먹어야 해요.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바람을 들이킵니다. 골고루 맞아들이면서 햇살 또한 온 살갗으로 받아먹어요.

 

 책에 길이 없을 수밖에 없어요. 책이란 바로 ‘씨눈’이거든요. 씨눈만 먹는대서 목숨을 잇지 못하거든요. 씨눈을 먹어야 내 몸을 참다이 빛내며 돌본다지만, 씨눈만 먹고 쌀알을 안 먹는다든지, 씨눈은 먹되 물을 안 마시거나 바람을 안 들이키거나 햇살을 받아먹지 않으면 어찌 되나요.

 

 이제 《서점 숲의 아카리》 10권에서는 어떤 이야기로 ‘책을 읽는 삶에는 길이 없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 하는 꿈과 사랑을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4345.1.4.물.ㅎㄲㅅㄱ)


― 서점 숲의 아카리 9 (이소야 유키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9.25./42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흙을 밟는 못둑 걷기
 [고흥살이 4] 아름다운 그림이란

 


 내 생일 이튿날, 형이 인천에서 고흥까지 찾아왔다. 참 먼길인데 참 고맙게 찾아왔다. 여러 날 머물다가 인천으로 돌아가던 날까지, 형하고 느긋하게 바닷가 나들이를 다닌다든지, 가까운 산에 오른다든지 하지 못했다. 형이 찾아오고 여러 날 동안 바람 모질게 불고 날이 꽤 춥기도 했고, 때맞춰 이래저래 집일을 건사하느라 몸이 무너져 끙끙 앓기까지 했다. 헌 창호종이를 떼고 새 창호종이 떼는 일을 함께 하다가 나는 그만 자리에 드러누웠다.

 

 더 재미나게 놀지 못하고 형을 떠나 보낸 날, 무언가 허전하고 아쉬우며 속이 안 좋았다. 그러나 아이들 빨래는 끝없이 해야 하고, 아이들 밥을 차려 먹여야 하며, 아이들 씻기며 집도 이럭저럭 쓸고닦아야 한다. 참으로 하루하루 눈코 뜰 사이가 없다.

 

 저녁에 빨래를 걷다가 함께 걷기로 한다. 형이 있을 때에 이렇게 함께 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동백마을 바로 위에 있는 지정마을 못가로 걸어간다. 네 식구끼리 있을 때에도 이 넓은 못가를 좀처럼 걷지 못했다. 지정마을과 신기마을과 동백마을 논자락을 적시는 못물이 꽤 넓다. 이 못물 있는 둑을 걷는다. 못둑은 풀밭길. 시멘트를 깔지 않아 흙을 밟을 수 있다.

 

 옆지기는 둘째를 업고 걷는다. 나는 첫째 손을 잡고 걷는다. 자동차 한 대 안 다니는 찻길을 천천히 지나는 동안, 첫째 아이는 혼자 달리기를 하겠단다. 길가 대숲에 누군가 베어 쓰러진 작은 대나무 하나를 주워서 논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앞서 가도 아이는 혼자 놀기에 바쁘다.

 

 못물에서 물고기가 펄떡펄떡 뛴다. 오리들이 물고기 잡으려고 되게 빨리 물갈퀴질을 한다. 한겨울 한복판인데 못둑에서 노랗게 꽃을 피우는 작은 풀이 있다. 첫째 아이는 어느새 대나무를 버리고 억새를 뜯어서 논다. 옆지기가 날 따스할 때에 못둑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구나.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두 눈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걸. 이 아름다이 그려지는 그림을 손을 거쳐 종이에 옮기면 되는걸. 그림은 바로 이 아름다운 풀숲이 들판이 흙땅이 하늘이 구름이 저녁놀이 햇살이 곱게 가르치고 알려주는걸. (4345.1.4.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