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강부회

 


귀신 숭배신앙, 태양신 숭배신앙, 난생 국조신화 등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이를 근거로 한족 계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겠다
《최광식-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살림,2004) 21쪽

 

  ‘숭배신앙(崇拜信仰)’은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섬기는 믿음’이나 ‘받드는 믿음’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난생(卵生) 국조신화(國祖神話)”는 “알에서 태어난 나라 시조 옛이야기”로 다듬고, ‘등(等)은’은 ‘들은’으로 다듬으며, “세계적(世界的)으로 나타나는”은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이나 “온누리 어디에나 나타나는”으로 다듬습니다. “보편적(普遍的) 현상(現象)”은 앞말과 이어 ‘널리’나 ‘두루’를 사이에 넣고, “세계에 널리 나타나는”이나 “온누리 곳곳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는”으로 손질하면 됩니다. ‘근거(根據)’는 ‘바탕’으로 고쳐쓰고, “주장(主張)하는 것은”은 “이야기한다면”이나 “하는 말은”으로 고쳐 줍니다.

  보기글을 이모저모 살핍니다. 한결 쉽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꼭 이렇게 글을 써야 학문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쉽게 쓰는 글로 역사나 철학이나 과학을 할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을 뜻한다 합니다. 곧, 한국말로 하자면 ‘억지’나 ‘악지’란 소리입니다. ‘떼’를 쓴다는 소리입니다. ‘어거지’를 부린다는 소리입니다.

 

 이를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라 하겠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한다면 억지라 하겠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하면 억지이다
→ 이를 바탕으로 말하면 억지일 뿐이다
 …

 

  네 글자 한자말 ‘견강부회’를 곳곳에서 곧잘 듣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리송해 으레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쓰는 분들로서는 손쉬운 낱말이라 여길는지 모르고, 이 낱말만큼 알맞거나 또렷한 낱말이 없다고 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견강부회’라는 낱말을 마주할 때면 늘 골이 아픕니다.


  국어사전에서 말뜻을 헤아리면, ‘견강부회’는 그저 “억지 쓰기”를 가리킵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억지’이고, ‘어거지’이며 ‘떼’입니다. ‘어이없는’ 짓이요 ‘어처구니없는’ 매무새이며 ‘터무니없는’ 몸가짐입니다. 딱히 어떤 다른 뜻이나 느낌을 담는 낱말이 아닙니다. 이 같은 한자말로 써야 뜻이 살아나거나 느낌이 깊어지지 않아요.


  한자 지식을 뽐내어 쓸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한테나 허물없이 쓸 만한 쉽고 바른 말마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견강부회’ 같은 말마디를 고지식하게 붙잡을까요. 한결 살가이 말하기가 더 힘이 들까요. 한껏 따스하게 글을 쓰기가 더 어려운가요.


  이 보기글은 “이를 내세워 한족 갈래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나 “이런 이야기를 들며 한족 갈래라 한다면 더없이 터무니없다”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알맞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올바르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
 …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견강부회’에 ‘아전인수’를 더해 놓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은 사람들한테 더욱 말치레를 하라고 부추깁니다. 사람들이 꾸밈없이 말하고 알맞게 글쓰며 슬기롭게 이야기하도록 도와주는 틀이 아닙니다.

 

 자기의 취미에 맞도록 아전인수 하고 견강부회하는 바람에
→ 제 입맛에 맞도록 뜯어고치고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 저한테만 맞도록 하면서 어거지를 쓰는 바람에
→ 저한테 좋도록 맞추고 바꾸는 바람에
 …

 

  아무래도 말을 말다이 쓰도록 하는 좋은 길을 찾는 국어사전은 아니지 싶습니다. 말을 슬기롭게 배우거나 글을 올바르게 갈고닦는 데에 이바지하는 국어사전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말풀이만 달아 놓는다고 해서 국어사전일 수 없으나, 국어사전을 엮는 고운 길을 놓치는구나 싶습니다. 수많은 낱말을 모조리 실어 놓는다고 해서 국어사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국어사전을 펼칠 사람들한테 훌륭한 길잡이가 되도록 하려는 뜻을 되새기지 못한다 싶어 슬픕니다.


  지식을 주워섬기는 말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담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보다 낫거나 훌륭하다고 내세우는 글이 아닌, 서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껍데기를 씌우는 이야기가 아닌, 넋과 얼을 튼튼하고 알차게 빛내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 함께 살아나는 말을 하고, 서로서로 북돋우는 글을 쓰며, 나란히 빛나는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싶습니다.


  보기글을 하나 더 들여다봅니다.

 

견강부회적인 해석이 눈에 띄는 등, 케이건이 홉스와 칸트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강상중/이목 옮김-청춘을 읽는다》(돌베개,2009) 177쪽

 

 ‘해석(解釋)’은 ‘풀이’로 다듬고, “눈에 띄는 등(等)”은 “눈에 띄는 한편”이나 “눈에 띄고”로 다듬습니다. “정확(正確)하게 이해(理解)하고”는 “제대로 헤아리고”나 “옳게 읽어내고”나 “올바로 알고”로 손질하고, ‘심(甚)히’는 ‘몹시’로 손질하며, ‘의심(疑心)스럽다’는 ‘모르겠다’나 ‘알 수 없다’나 ‘궁금하다’로 손질해 줍니다.

 

견강부회적인 해석이
→ 억지스런 풀이가
→ 어거지 같은 말이
→ 끼워맞추기 풀이가
→ 끼워맞춘 말이
 …

 

  억지스럽게 풀이하는 말이란 깊이 살피지 않고 이렁저렁 끼워맞추듯 풀이하는 말이라는 소리입니다. ‘끼워맞추기’요 ‘때려넣기’요 ‘주워섬기기’입니다. ‘땜질’이며 ‘말장난’이고 ‘얕은 풀이’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엉성한 풀이”나 “어줍잖은 풀이”나 “말이 안 되는 풀이”나 “터무니없는 풀이”나 “뚱딴지 같은 풀이”나 “뜬금없는 풀이”로 고쳐 볼 수 있습니다. 홉스이든 칸트이든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면 올바르게 하는 풀이가 아니라 ‘엉터리’로 하는 풀이인 셈입니다. 한 마디로 “엉터리 풀이”라 해도 되겠군요. 엉터리 같은 풀이라 한다면 “바보스러운 풀이”라든지 “모자란 풀이”라든지 “앞뒤가 안 맞는 풀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엉성한지를 나타내면 되고, 어떻게 모자란지를 보여주면 되며, 어느 만큼 어설픈지 이야기하면 됩니다.

 

 설렁설렁 적은 듯한 말이 눈에 띄며
 아무렇게나 붙인 말이 눈에 띄고
 제멋대로 끄적인 말이 눈에 띄고
 함부로 읊는 말이 눈에 띄고
 …

 

  뜻과 느낌을 살리면서 ‘설렁설렁’이나 ‘아무렇게나’나 ‘제멋대로’나 ‘함부로’ 같은 꾸밈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읊조리던 말마디가 내 귀로는 얼마나 억지처럼 들렸는가를 다루면 됩니다. 누군가 내뱉은 이야기가 내 마음으로는 어떻게 뜬금없게 느껴졌는가를 밝히면 됩니다. 누군가 끄적인 글줄이 내 눈으로는 어느 만큼 엉터리였는가를 적바림하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살리는 길을 찾아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슬기로 우리 글을 빛내는 삶을 살뜰히 꾸리면 좋겠습니다.


  내 말을 말답게 가꾸면서 내 넋을 넋답게 추스르고 내 삶을 삶답게 보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글을 글답게 일구면서 내 얼을 얼답게 다독이고 내 삶터를 삶터답게 다스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근씨와 오이씨

 


 따스한 날씨가 새로 찾아옵니다. 새 날씨에 맞추어 올해 텃밭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어린싹 틔울 판을 마련하기로 합니다. 지난해에는 밭에 바로 씨앗을 심었는데, 이렇게 해도 되지만 다른 풀이 나란히 싹이 트며 당근이랑 감자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어요. 올해 당근은 제대로 거두고 싶어, 판에 씨앗을 먼저 심어 어느 만큼 자란 다음 옮겨심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돌을 고른 흙을 손으로 솔솔 뿌립니다. 판에 흙이 다 차면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자리를 내고 씨앗을 심습니다. 당근씨는 아주 작아 흙을 살짝 덮고, 오이씨는 조금 크니 살짝 깊이 묻고 흙을 덮습니다. 아이는 지난해에 당근씨를 함께 심었습니다만, 한 해 지나고 다시 보니 당근씨인 줄 떠올리지 못합니다. 올해 이렇게 당근씨를 심고 이듬해에 또 심고 다음해에 거듭 심으면, 아이도 당근씨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심는지 찬찬히 깨닫겠지요.

 

 마을 귀퉁이에 굴러다니는 판을 몇 더 주워 다른 씨앗을 심고, 달걀판에는 능금씨랑 배씨를 심을 생각입니다.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따스한 날씨가 고맙습니다. (4345.3.2.쇠.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주 2012-03-03 14:11   좋아요 0 | URL
씨앗을 심는 시기군요!
저는 당근은 키우지 못 했지만 오이는 길러본 적 있어요. 된장 님처럼 씨앗부터 심은 건 아니고요 이웃 할머니께서 싹 틔우신 모종을 주셨었지요. 토종 오이였는데 엄청 맛있었죠. 반찬 해 먹을 겨를도 없이 우리 식구 너도나도 똑똑 따서 맨입에 그냥 먹었답니다. 오독오독 씹으면 싱그러운 오이향기가 물씬~~아항..

파란놀 2012-03-04 04:06   좋아요 0 | URL
집에서 작은 화분으로 길러 보셔요. 꽤 많이 스스로 얻어 즐거이 먹을 수 있답니다~~~~
 
리넨과 거즈 3
아이자와 하루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만화책 즐겨읽기 121] 아이자와 하루카, 《리넨과 거즈 (3)》

 


 한동안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다가 금세 맨손 빨래로 돌아갔습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할 때에는 따순 물이나 차가운 물이나 잘 느끼지 않았습니다. 더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하더라도 꽤 괜찮았고, 오래도록 물을 만져도 손이 덜 아팠습니다. 그런데 고무장갑으로 빨래를 한 지 보름쯤 되었을까, 어느새 고무장갑 한쪽에 구멍이 났어요. 물이 졸졸 새더군요.

 

 새 고무장갑을 살 수 있겠지요. 헌 고무장갑은 버려도 되겠지요. 헌 고무장갑은 잘 잘라서 수도꼭지를 쌀 수 있겠지요. 어쩌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짐을 나르기 수월할는지 모릅니다.

 

 새삼스레 맨손으로 빨래를 하고 보니 두 손은 더 두꺼워집니다. 더 거칠어집니다. 더 딱딱해집니다. 그래도 나는 이 두 손으로 아이들을 쓰다듬고 아이들을 안습니다. 아이들을 어르고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손끝이 갈라지고 틉니다. 갈라지거나 튼 자리에 물이 닿으면 뜨끔합니다. 쓰라림을 참으며 빨래를 합니다. 한창 빨래를 하노라면 쓰라린 줄 느끼지 못합니다. 다시 쓰라릴 때에는 ‘자, 자, 얼른 나아야지, 얼른 아물어야지. 앞으로 할 빨래가 날마다 가득 있는데.’ 하고 속으로 노래합니다.

 

 


- “이래선 언제까지고 이동 카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장래에 대해 생각은 하는 거야? 일에 대해 좀더 욕심을 부려 보는 게 어때? 생활이 걸린 문제기도 하고 말이야. 아까 그 사람들한테도 그런 말 듣고 분하지도 않아?” “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사실이니까.” (14∼15쪽)
- “난, 그저 커피 끓이는 게 좋고, 그걸 마시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기뻐. 그래서 가게를 하는 건데, 그게 이상한가?” (39쪽)
- “부모님을 위해 대회에 출전할 생각 없어. 한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지.” (54쪽)


 아침에 깔개를 치워 먼지를 떨고 비질을 하고 나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먼지가 쌓입니다. 두 아이가 어수선을 피우는 집안은 늘 어지럽습니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치울 수 있고, 얼마든지 골을 부리며 아이들을 나무랄 수 있습니다. 한편,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치울 수 있습니다. 싱긋 웃으며 아이를 부르고는, 너도 좀 거들렴, 하고 말하며 쓸고 닦을 수 있습니다.

 

 좋아서 아이들하고 살아간다면, 좋아하는 아이들이랑 사랑스러운 나날을 빚을 때에 즐겁습니다. 좋아서 조촐히 식구를 이룬다면, 좋아하는 식구들이랑 아름다울 이야기를 엮을 때에 기쁩니다.

 

 어디 놀이공원에 찾아가야 즐거운 하루이지 않으니까요. 어디 자가용을 몰아 마실을 다녀야 기쁜 나날이지 않으니까요.

 

 자가용 없는 우리 식구는 으레 걷습니다. 자전거를 탑니다. 버스를 얻어 타고 돌아다닙니다. 조용히 돌아보고 가만히 살펴봅니다. 나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물끄러미 하늘과 들판을 바라봅니다.

 

 


- ‘원래는 나도 행복해야 하는데, 빼앗아 버렸다.’ (6쪽)
- “당신은 솔직히 어쩌고 싶은데? 왜 이렇게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당신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원해 본 적 있어? 아무도 좋아했던 적 없는 거 아니야?” (35쪽)


 빨래하기 고단한 날, 언제나 옆지기 말을 떠올립니다. ‘집안일을 좋아해야 해요.’ 하고 읊던 말을 되새깁니다. 참말, 나는 손으로 하는 빨래가 좋으니 손빨래를 합니다. 손으로 아이들을 안고 업기를 좋아합니다. 손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즐겁습니다. 등판에 흐르는 땀을 느끼며 자전거를 몰 때에 기쁩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때에 재미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좋아하는 삶이 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니까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스스로 아끼는 꿈을 일구니까 빛나는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자와 하루카 님 만화책 《리넨과 거즈》(학산문화사,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리넨과 거즈》 셋째 권에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기운을 차립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가슴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다스립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아끼면서 슬픔을 달래고 기쁨을 북돋웁니다.

 


- “으윽, 코코미 덕분이야. 코코미 덕분에 이모가 얼마나 위로를 받는지.” (153쪽)
- “잊을 거야. 나도 새로운 사랑을 할 거야.” “뭐, 그것도 나쁘지 않네. 주위에 입후보 하려는 남자들도 많은 것 같던데.” (158쪽)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슬픕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느라 하루 예닐곱 시간이나 아홉열 시간 땀흘려야 하는 사람은 괴롭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들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밥을 먹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으며 좋아하지 않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길을 걷고, 좋아하지 않는 전철을 타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집에서 잠을 자며 쉬어야 한다면, 이러한 나날은 얼마나 고되며 딱할까요.

 

 내 좋은 넋을 씨앗 하나에 담아 밭에 심거나 뿌립니다. 내 좋은 얼을 말 한 마디에 담아 살포기 들려줍니다. 내 좋은 생각을 일으켜 책 한 권 알차게 읽습니다. 내 좋은 마음을 살찌우며 오늘 하루 어여삐 살아갑니다.

 

 어디에서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목숨을 건사합니다. 언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아끼며 숨결을 싱그러이 보살핍니다. 서로서로 좋아할 꿈이어야 합니다. 다 함께 좋아할 누리여야 합니다.

 


-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44쪽)
- ‘웃기도 하고, 우는 일도 없이, 마음속에 파도가 치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 (48쪽)
- ‘마음 깊은 곳에 늘 박혀 있는, 작고 차가운 얼음 같은 덩어리를, 어서 녹여 버리고 싶다.’ (160쪽)


 생각해 보면, 책 한 권 읽는 내 몸가짐은, 책 한 권에 깃든 좋은 열매를 받아먹으면서 내 나름대로 내 슬기를 가다듬고 내 생각밭을 다스리고 싶은 뜻입니다. 누가 거저로 준대서 읽을 책은 없습니다. 싼값에 사들여 읽을 만한 책은 없습니다. 널리 알려지거나 이름난 책이라서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사라느니 상식이라느니 하는 이름이 붙기에 읽어야 하지 않아요.

 

 오직 내 꿈을 빛내는 책이라고 느낄 때에 읽습니다. 오로지 내 사랑을 밝히는 책이라고 여길 때에 읽어요.

 

 이제 슬슬 기저귀 빨래를 할 때입니다. 따순 봄햇살이 마당을 드리우는 날입니다. 먼저 깔개를 빨래줄에 내다 넙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면, 깔개를 걷고 기저귀를 널어야지요. 봄햇살과 봄바람에 기저귀가 마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식구들 다 함께 봄들판을 거닐고 싶습니다. (4345.3.1.나무.ㅎㄲㅅㄱ)


― 리넨과 거즈 3 (아이자와 하루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2.2.25./4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뜨개질 하는 마음

 


 뜨개질은 오직 한 사람이 입을 옷을 뜨는 일입니다. 오직 한 사람 몸크기를 살피며 찬찬히 뜨는 일입니다. 이 뜨개옷을 나중에 누군가 물려받아 입을 수 있겠지요. 실옷인 만큼 몸크기하고 꼭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헐렁하게 입거나 실올이 늘어날 수 있겠지요.

 

 뜨개옷은 오로지 한 사람을 생각하며 짓는 옷입니다. 오로지 한 사람이 이 옷을 입으며 즐거웁기 바라는 마음을 담습니다. 웃옷이건 치마이건 목도리이건 장갑이건 양말이건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한 땀 두 땀 사랑을 담아 짓는 옷에는 온 꿈과 빛이 어우러져 어여쁜 이야기가 스며듭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한테 양말 한 켤레 떠 주려 합니다. 한창 뜨다가 아이 발에 대더니 아무래도 좀 크게 될 듯하다고 걱정합니다. 그대로 끝까지 뜰는지, 실을 다 풀고 다시 뜰는지 생각하다가, 뜨던 품은 그대로 살리며 새롭게 마무리합니다. 아이 양말로 끝내지 않고, 대머리 인형 모자로 끝냅니다. 식구들이 다 함께 즐거이 읽는 만화책 《불새》 위에 모자 쓴 인형을 올려놓습니다. (4345.3.1.나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주 2012-03-03 14:12   좋아요 0 | URL
아기가 발 대 주는 모습도 귀여워요^^

파란놀 2012-03-04 04:06   좋아요 0 | URL
다시 새 양말을 한창 부지런히 뜬답니다~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 아마존 예콰나족에게서 ‘인간 본성을 존중하는 육아법’을 배운다
진 리들로프 지음, 강미경 옮김 / 양철북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안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배움책 4] 진 리들로프,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양철북,2011)

 


- 책이름 :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 글 : 진 리들로프
- 옮긴이 : 강미경
- 펴낸곳 : 양철북 (2011.6.10.)
- 책값 : 13000원

 


 아이를 돌보는 일이란 어버이인 내 삶을 돌보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며 내 삶을 사랑한다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하는구나 싶어요. 어버이로 지내는 내 꿈을 북돋운다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가슴으로 품을 꿈을 곱게 보듬는구나 싶어요.

 

 어버이인 내 삶을 돌보지 않으면서 아이들만 잘 지내라 할 수 없습니다. 어버이인 내 삶을 내팽개치면서 아이들만 씩씩하게 자라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뒷배를 한대서 어버이 노릇을 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대학교 배움값을 대준대서 어버이 구실을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꿈과 사랑을 북돋우는 어버이가 아니라면, 어버이로서 옳고 바르게 살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착한 꿈과 맑은 사랑을 꽃피우도록 이끈 어버이가 아니라면, 어버이답게 즐겁고 아름답게 살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 서구의 아기들이 사무실이나 가게, 작업실, 심지어는 저녁 모임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기들은 대개 시끄럽게 울어대며 발길질을 하거나 팔을 휘두르고 온몸이 뻣뻣하게 긴장돼 있다. 그래서 아기를 얌전히 있게 하려면 누군가의 두 손과 엄청난 관심이 필요하다 … 물론 가장 좋은 의도를 가지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 온 행동을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하지만 우리 못지않게 무지하고 순진했던 부모님이 우리를 대하던 태도와 그 때문에 그분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 어머니나 아버지의 역할에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출산을 앞두고 육아 책을 사들이는 것이 관행이다 … 젊은 엄마들은 자신의 타고난 능력은 깡그리 무시한 채, 아직은 완벽하게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아기의 ‘동기’도 깡그리 무시한 채 책을 읽고 그대로 따른다 ..  (11, 15, 73, 74쪽)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무릎에 누입니다. 옆지기는 지난밤 몇 시간이나 애먹으며 아이를 안고 달랬습니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고이 잠들지 못할까요. 무서운 꿈이라도 꾸었을까요. 몸 어디가 아플까요. 낑낑거리며 자꾸 우는 아이를 번쩍 안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방문을 열고 깜깜한 바깥을 내다 보면, 이제 별들이 찬찬히 사라지는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 멀리부터 시나브로 동이 트려고 옅은 빛이 바뀌는 모습을 살펴보면, 아이는 얌전합니다. 마당을 걷거나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뒤꼍에서 어르는 동안, 아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조용합니다.

 

 잠자리가 아이한테 더웠을는지 모릅니다. 살짝 바람을 쐬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니, 더 따사로이 보듬고 더 포근하게 감싸는 손길을 바랐을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조금씩 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란, 내가 이 아이들만 한 나이를 어떻게 살아내며 내 어버이한테 빛과 사랑과 꿈이 되었는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내 아이들은 나한테 고운 빛이요 사랑이며 꿈입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 고운 빛이요 사랑이며 꿈입니다. 내 아이들은 앞으로 저희 아이들을 낳아 저희대로 새로운 빛이며 사랑이랑 꿈을 느끼겠지요.


.. 아기는 끊임없는 신체 접촉을 통해 나중에 직접 맛보게 될 경험을 하나씩 눈에 담는다. 가만히 품에 안겨 있는 동안에도 아기의 감각은 모두 깨어 있다 … 갓 태어난 아기는 자궁 밖으로 나오면서 겪게 되는 이런 급속한 변화와 그 밖의 느낌을 놀랍도록 침착하게 견뎌낸다 … 어떤 상태든 아기는 어른보다 자신의 경험에 더 민감하다. 자신이 받은 인상을 완화해 줄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 하지만 (아기는) 죽음과도 같은 무의 상태나 안에 천을 깔아 놓은 바구니, 움직임이나 소리, 냄새, 기타 생명의 느낌이 전혀 없는 플라스틱 상자로 뛰어오를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자궁 안에 있는 동안 형성되었던 어머니와 아기의 견고한 관계가 갑자기 단절될 경우 아기만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  (17, 66, 67, 75쪽)


 목숨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 목숨도 어버이인 내 목숨도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로 지내는 나를 갓 낳으며 막 어버이가 된 내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름다운 목숨이요,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웃 어머니와 아버지 또한 아름다운 목숨입니다.

 

 아름다운 목숨이기에 한삶 고이 누리고서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목숨인 만큼 한삶 고이 누리려 신나게 태어납니다. 흙에서 이 땅을 박차고 일어섭니다.

 

 얼마만큼 살아야 좋다 여길 만한 삶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마흔 해를 살아내면 즐거이 살아낸 나날인지, 예순 해는 살아내야 즐거이 살아낸 나날이 될는지, 여든 해나 백 해쯤 살아내야 즐거이 살았다 할 만한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더 먹기에 더 기쁜 삶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돈을 좀 많이 모았기에 기쁜 꿈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거나 글을 많이 썼다면 더 기쁜 사랑이라 할까요.

 

 바야흐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는 날씨입니다. 마을 논둑에는 봄까치꽃이 핍니다. 아직 다른 꽃은 피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동백꽃이 봉오리를 열곤 합니다만, 아직 봉오리를 닫은 동백나무가 훨씬 많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새봄 기운을 곳곳에서 마주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이 새봄은, 해마다 맞이하는 새봄은, 언제 보아도 즐겁습니다. 열일곱 차례 맞이하던 새봄도, 스물일곱 차례 맞이하던 새봄도, 서른일곱 차례 맞이하는 새봄도 언제나 즐겁습니다. 앞으로 새봄을 얼마나 더 볼는지 모르지요. 한 차례 더 보고 삶을 마감할는지, 서른일곱 차례를 더 볼 수 있을는지, 쉰일곱 차례를 더 볼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더 볼 수 있대서 더 좋은 삶은 아니요, 더 볼 수 없어서 더 나쁜 삶은 아니에요.


.. 전문가들이 만족스럽게 사는 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발견하는 데 실패하면 할수록 그들은 이성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면서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 문화가 지성에 의존할수록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인에게 더 많은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다 … 문명사회의 구성원에게서 나타나는 출생외상이라는 현상의 주된 원인은 철제 도구나 눈부신 조명, 고무장갑, 살균제와 마취제 냄새, 왕왕거리는 목소리, 기계 소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출생 과정에서 외상을 입지 않으려면 아기의 경험이 아기와 아기 어머니의 태곳적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 ..  (54, 61, 102∼103쪽)


 진 리들로프 님이 쓴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양철북,2011)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참모습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입니다. 아마존 예콰나겨레 사람들이 아이를 어떻게 낳아 어떻게 돌보며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살펴보면서 ‘서양사람이 나날이 잃거나 잊는 사랑과 꿈’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책입니다.

 

 책을 읽지 않았을 때에도 알고, 책을 읽고 나서도 알 만한 이야기인데, 아마존 예콰나겨레한테 학교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북중미 붙박이한테도 학교란 없습니다. 북극 붙박이한테도 학교란 없습니다. 한겨레 옛사람한테도 학교란 없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임금이나 사대부나 권력자한테조차 학교란 없습니다. 흙을 일구거나 길에서 장사하던 여느 사람들한테만 학교가 없지 않았어요. 누구한테나 학교란 없습니다.

 

 임금이나 사대부나 권력자한테는 ‘늘 곁에 붙어 무언가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한테는 ‘늘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여느 사람들 어버이나 살붙이는 ‘늘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으로 삶과 사랑과 꿈을 가르쳐요.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웁니다. 삶을 보여주고 삶을 물려받아요.

 

 김치를 담그든 밥을 하든 벼를 빻든 베틀을 밟든 물레를 잣든 바느질을 하든, 어떤 학교를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따로 어떤 교과서나 교재가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며 배울 대목이란 학교나 교과서로는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며 배울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할 사람하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 서로서로 가르치며 배웁니다.


.. 아이를 이해해서도 신뢰해서도 안 된다고 배우는 ‘특권’을 갖지 못하는 제3세계 부모들은 네 살이 넘은 아이에게는 예외 없이 집안일을 시키면서 온 가족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 곰곰이 따져 보니 물을 긷는 시간을 그보다 ‘더 알차게’ 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그랬다. 반대로 진보나 그 부산물인 속도, 효율성, 새로운 방식이 기준이라면 물을 길러 가는 것은 누가 보아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 아이들은 흉내 내기 좋아하고 잘 어울리고 개인과 종을 보존하려는 성향을 보이지만, 갓난아기를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는지 같은 세부 사항도 알고 있다 ..  (20, 43, 147쪽)


 서양사람은 아이를 돌보며 사랑하는 길을 잃습니다. 미국사람이든 유럽사람이든 거의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사람도 일본사람도 아이를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잊습니다. 도시사람이든 시골사람이든 한결같이 슬프도록 사랑을 잊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배울 대목을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아이는 사람답게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길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돈이야 물려주고 싶으면 얼마든지 물려주겠지요. 돈이야 벌려 하면 언제라도 얼마든지 벌겠지요. 지식이나 졸업장이야 얻고 싶으면 얼마든지 얻겠지요. 지식이나 졸업장이란 얻으려 하면 언제라도 마음껏 얻겠지요.

 

 한 살 갓난쟁이가 한 살일 적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 한 살 때 사랑은 어떻게든 돌이키지 못합니다. 이 사랑을 돌이키려 하면 아주 힘들며 아주 오래 걸립니다. 두 살 아이가 두 살일 적 사랑을 누리지 못하면, 이 두 살 때 사랑은 어떻게든 갚지 못합니다. 이 사랑을 갚으려 하면 몹시 힘겨우며 매우 오래 걸립니다.

 

 세 살, 네 살, 다섯 살 아이들한테는, 또 여섯 살, 일곱 살, 여덟 살 아이들한테는 학원이나 영어나 유치원이나 만화영화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저를 낳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나날이 즐겁게 누리는 꿈이 가장 대수롭습니다.


.. 경제력이 웬만큼 뒷받침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손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본능을 골프장에서, 지하실 작업장에서, 요트 정박소에서 해소한다 … 큰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려고 갈망하고, 권력을 쥔 사람들은 그 권력으로 더 많은 권력을 탐한다. 하지만 최종 목표에 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밖에서 주어진 갈망에 사로잡힌 채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면 아무리 갈망을 채워도 마음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 남편을 차갑거나, 무심하거나, 냉담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거의 절반이 아이가 사고를 당할 때 남편으로부터 따스한 애정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우리 사회에서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 이유는 고통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당사자가 나서서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불평하기 때문이다 ..  (117, 180, 195, 250쪽)


 돈이 좀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립니다. 돈이 꽤 많이 없으면 많이 없는 대로 그야말로 허리띠 졸라매며 살림을 꾸립니다. 어떻게든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어떻든 살림을 꾸립니다.

 

 사랑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곧 죽음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하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니,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쓸쓸하거나 허전하거나 괴롭거나 힘겨워 그만 목숨을 놓고 맙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삶이기에, 이름이 높거나 동무가 많거나 돈이 많거나 무엇무엇이 많다지만, 살아갈 뜻을 찾지 못해 그예 목숨을 내려놓고 맙니다.

 

 일삯을 많이 쳐주는 일터가 더 좋다고 느끼지 않아요. 일삯이 조금 적어도 즐거이 일하며 사랑스러운 꿈을 키울 만한 일터가 더 좋다고 느껴요. 아니, 일하는 곳이라면 일하는 동안 즐거이 사랑을 키울 만해야지요. 즐거울 수 없고 사랑스러울 수 없다면, 일하는 뜻이나 값이란 없어요. 즐거이 읽는 책이고, 즐거이 먹는 밥이며, 즐거이 마주하는 아이들입니다. 서평을 쓰자며 읽는 책이거나, 끼니를 때우려 먹는 밥이거나, 낳았으니 할 수 없이 학교에 넣는 아이들이라면 얼마나 슬프며 괴로울까요.


.. 삶의 목적은 삶이며, 행복의 목적은 행복의 느낌을 고양하는 데 있다. 출산의 목적은 계속해서 생명을 낳는 데 있다. 이런 순환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으며, 모든 종류의 순환을 통틀어 가장 좋은 것이다 … 아이는 고통을 참거나 갓난아기처럼 어머니의 품에서 위안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전혀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예콰나족에서는) 다들 그런 아이를 이해했지, 혀를 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낯선 곳에서 어머니 곁에 최대한 붙어 있으려는 욕구는 아기의 본성이다 … 우리에게는 지성을 사용해 예콰나족과 우리 조상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저 지식으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1년 동안은 곁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면 아기의 평생에 나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어머니 자신에게도 두고두고 짐이 될 박탈을 막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  (116, 130∼131, 143, 168, 247쪽)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를 쓴 진 리들로프 님은 아마존 예콰나겨레를 살펴보며 ‘서양사람 스스로 잃거나 잊은 사랑과 꿈’을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간추려, 사람을 사람답게 섬기며 돌보는 고운 손길을 아마존 예콰나겨레한테서 찾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지구별 모든 겨레가 아마존 예콰나겨레처럼 해야 할까요?


.. 아이들은 어른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닐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거의 불가능한 우리 문화권에서는 누가 가르쳐 줄 때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따라하고 학습하려는 아이들의 성향을 학교와 교사가 잘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지속적인 신체 접촉 욕구를 모두 충족하며 자신의 연속성 안에서 편안히 지내는 아기는 굳이 에너지를 배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남는 에너지는 자신을 안고 분주하게 활동하는 어른이나 아이한테 넘겨주면 되기 때문이다 … 품을 박탈당한 어른들 사이의 사랑은 개인이 경험한 박탈의 성격에 따라 형태만 다를 뿐 두 가지 욕구의 혼합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모두 똑같다 ..  (219, 236, 239쪽)


 서양사람 누구한테나 있었으나 서양사람 누구나 쉬 내버린 사랑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한국사람 누구한테나 있었으나 한국사람 누구나 함부로 내팽개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제도권 울타리에서는 사랑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회 테두리에서는 사랑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학교 틀거리에서는 사랑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사랑길을 찾아야 합니다.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 사랑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내 살붙이와 복닥이는 조그마한 집에서 하루하루 삶을 누리고 생각하면서 사랑말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요즘 어른들이 왜 아이들을 안 사랑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어른들 스스로 사랑스레 일구지 않는 삶을 옳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즘 어른들부터 맑은 사랑하고 등지는 슬픈 모습을 참다이 헤아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거친 말을 일삼거나 못된 짓을 벌인다면, 이 모든 거친 말을 어른들이 즐겨쓰기 때문이요, 이 모든 못된 짓을 어른들이 자꾸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배우지, 따로 어떻게 나쁜 짓을 스스로 생각해 내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꾸리는 삶일 때에, 아이들은 이 어른들 삶을 날마다 가만히 바라보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이 돌볼 제 삶을 사랑으로 빛낼 수 있습니다. (4345.3.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