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와 놀기 - 환상을 담는 토이 카메라
현정민 지음, 한인규 사진 / 시공아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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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놀이 즐기는 삶이란
 [찾아 읽는 사진책 81] 현정민·한인규, 《홀가와 놀기》(시공아트,2009)

 


  ‘홀가’라 하는 사진기가 있습니다. 영어로 ‘토이카메라’ 갈래에 든다는 사진기입니다. 꼭 ‘장난감’이라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이 사진기는 가벼운 장난감이 아닙니다. 놀이하듯 가벼이 즐길 수 있는 사진기입니다. 그래서 ‘토이카메라’를 한국말로 옮긴다면 ‘놀이하는 사진기’, 곧 ‘놀이사진기’로 적으면 알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른바 ‘사진놀이’에 꽤 잘 어울리는 사진기라 할 만합니다.


  나는 ‘놀이사진기’를 따로 쓰지 않습니다. 나는 일부러 빛샘을 즐기지 않거든요. 나는 일부러 사진 테두리가 까맣거나 뿌옇게 나오도록 하지 않아요. 나도 ‘사진놀이’를 즐기는 사람이요,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즐겁게 담습니다만, 애써 ‘꿈 같아 보이는 모습’을 만들 마음은 없습니다.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 언제나 꿈과 같고, 늘 사랑스럽기 때문에, 여느 사진기로 이 꿈 같으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꾸밈없이 담습니다.


  현정민, 한인규 두 분이 함께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홀가와 놀기》(시공아트,2009)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두 분은 “아주 기본적인 장치로만 이루어진 저렴한 카메라 홀가 덕분에 일반인들도 중형사진에 좀더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1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값이 얼마나 싸기에 이렇게 말하는가 궁금하지만, 이래저래 값이 싸기에 이렇게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사진놀이는 값싼 사진기로만 즐기지는 않아요. 대형사진기로도 사진놀이를 즐기면 됩니다. 디지털사진기로도, 1회용사진기로도, 똑딱이디지털사진기로도, 값싼 필름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놀이를 즐기면 돼요. 값싼 사진기를 쓴대서 더 사진놀이를 마음껏 누리지 않습니다. 사진을 하는 마음이 홀가분할 때에 비로소 사진놀이를 신나게 누립니다. 사진기를 쥔 손이 홀가분하고,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온누리를 맑게 헤아릴 때에 바야흐로 사진놀이가 빛납니다.

 

 


  그나저나, 《홀가와 놀기》라 한다면, 이 사진책에 담은 ‘사진기 홀가 모습’부터 ‘홀가 사진기로 찍어서 보여주’면 한결 그럴듯하리라 생각합니다. 곰곰이 보건대, ‘사진기 홀가’는 ‘다른 사진기’로 찍어서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사진기나 필름이나 부품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데에서는 홀가로는 제대로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이라 할 텐데, 참말 “홀가와 놀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된다면, 이런 대목부터 “홀가와 놀기”를 마음껏 선보일 때에 더 재미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파노라마사진기를 이야기하는 사진책은 아예 모든 사진을 파노라마사진기로 찍는 셈입니다.


  “일반 카메라에서 빛샘 흔적이 보인다면 카메라를 수리해야겠지만 홀가는 이러한 단점조차 개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14쪽).”고 합니다. 너무 마땅해서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만, 홀가뿐 아니라 어떠한 사진기라도 ‘좋고 아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모든 대목이 그저 좋기만 한 사진기는 한 가지도 없습니다. 질감이나 빛느낌이 대단히 좋다지만, 장비가 너무 무겁다든지, 사진 한 장 찍기까지 품이나 손이 많이 간다든지 하잖아요. 가볍게 들고 다니며 잽싸게 찍을 수 있다지만 질감은 좀 떨어진다든지 하고요.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사진기가 대수롭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연필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붓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연필이든 볼펜이든, 하얀 종이가 되든 앞쪽은 광고종이요 뒤쪽은 빈종이가 되든, 책 귀퉁이가 되든 껌종이가 되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디에라도 글을 씁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 넋을 온통 불사르며 글을 씁니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든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든 다 좋습니다. 1b이든 2b이든 3b이든 hb이든 대수로울 까닭이 없어요. 아무 연필이든 손에 쥘 수 있으면 돼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라는 아이는 물감이 없어 숯이나 목탄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요.


  홀가이든 펜탁스이든 미놀타이든 캐논이든 롤라이이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로모면 어떻고 후지6×17이면 어떻습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를 실으며,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사진기라면 어떠한 사진기라도 좋습니다. 내 꿈을 담는 사진이고, 내 빛을 선보이는 사진입니다. 내 길을 걷는 사진이고, 내 뜻을 나누는 사진이에요.

 


  《홀가와 놀기》를 내놓은 두 분은 “언제부터인가 내 사진 촬영에서 노력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드는 컷은 취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지워 버리는 일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 쉽게 찍힌 사진이 아무 거리낌없이 버려지는 것을 자주 보는 나에게는 잘 나온 사진이든 그렇지 못한 사진이든 내 기억을 대신해 줄 훌륭한 저장소가 필요했다(79쪽).” 하고 말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이러한 갈림길에 빠진다고 하는데, 참 딱하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쩌는 수 없어요. 삶이 재미없을 때에는 사진 또한 재미없습니다. 삶이 사랑스럽지 않을 때에는 사진이라고 사랑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해요.


  “내 사진을 더 땀흘려 잘 빚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내 삶부터 얼마나 땀흘려 슬기로이 빚는가” 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삶을 추슬러야 합니다. 삶을 다스리는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아려야 합니다.


  사진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진기 아닌 두 손과 두 다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맨눈으로 온누리를 살피고, 맨몸으로 이웃과 동무를 사귀어야 합니다. 맨마음으로 집일과 바깥일을 알뜰히 보살펴야 합니다. 삶을 먼저 사랑할 수 있는 몸가짐을 되찾고서 다시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합니다.


  “홀가처럼 정사각형 필름 안을 채우는 경우는 기존과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99쪽).”는 말마디로는 모자랍니다. 어떤 사진기이든 사진기마다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다릅니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사진기라 하더라도 제품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틀’이 바뀝니다.

 

 


  무딘 칼로 도마질을 할 때랑 날카로운 칼로 도마질을 할 때에는 손놀림이 바뀝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만질 때에는 손길이 달라집니다. 여느 옷가지를 빨래할 때하고 똥기저귀를 빨래할 때에는 사뭇 다릅니다.


  먼저 내 마음을 가다듬은 뒤 사진기를 손에 쥘 우리들입니다. 홀가를 쥐어 놀든, 다른 사진기를 쥐어 놀든, 나 스스로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길을 걷는 어떤 삶을 사랑하려 하느냐 하는 대목을 환하게 깨달은 다음 사진기를 쥐어야지 싶습니다. 꿈과 길과 삶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날이면서 사진기만 먼저 달랑 손에 쥔다면, 어떠한 사진기를 손에 쥐더라도 아무 사랑이 깃들지 못하는 맨숭맨숭한 복제품만 잔뜩 쏟아질 뿐이에요.


  슬픔을 담는 사진인지 기쁨을 담는 사진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진인지 삶이 고단한 사진인지 살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싣는 사진인지 가슴 저린 이야기를 싣는 사진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한테 보여주려 하는 사진인지, 나 스스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진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나저나, 사진책 《홀가와 놀기》는 똑같은 사진을 되풀이해서 쓰는군요. 작은 사진책에 같은 사진을 되풀이해서 쓰는 일은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선보이는 더 많은 사진을 실을 때에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홀가와 놀기》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얼마나 신나게 노느냐’ 하는 이야기는 책 끝자락에 몇 쪽 없습니다. 이 책은 ‘중형필름 쓰는 사진기 다루기’하고 ‘찍은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 파일로 다루기’를 이야기하느라 너무 긴 자리를 써 버립니다. ‘홀가 입문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책을 엮었는지 모르나, ‘기계 다루기’는 ¼쯤으로 간추리고, 나머지는 온통 ‘홀가랑 아기자기하고 멋스러이 논 이야기’를 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5.3.9.쇠.ㅎㄲㅅㄱ)


― 홀가와 놀기 (현정민·한인규 글·사진,시공아트 펴냄,2009.9.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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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잡지 '함께살기' 2호로 <동시집 할머니>를 곧 내놓습니다.

오늘 드디어

겉그림에 넣을 글씨를

손으로 다 적었어요.

 

아이들이랑 복닥이며

겨우 살짝 짬을 내어

크레파스로 적었습니다.

 

 

 

여기에 아이가

지난해 11월,

곧 아이 네 살 적에

그린 그림을 넣어요.

 

예쁘게 나오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함께살기 2호' <동시집 할머니>는

딱 120권만 찍고,

잡지 구독자랑

도서관 도움이한테만

부칩니다~~ ^^

 

(그림 1)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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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0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지세요

파란놀 2012-03-09 08:50   좋아요 0 | URL
에구 고맙습니다~
 


 느낌글 쓰는 마음

 


  내가 내놓은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즐거이 읽은 누군가 곱게 살아가며 느낌글 하나 살가이 쓸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내가 쓰는 느낌글이 내가 장만해서 읽은 책을 내놓은 누군가한테 좋은 말꽃이 되어 나 또한 새롭게 고운 꿈을 꾸며 서로서로 즐거이 살아가며 나누는 말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삶꽃을 책 하나로 갈무리해서 내놓습니다. 내가 느낌글을 쓰도록 이끈 책은 내 아름다운 이웃이 이녁 아름다운 삶을 꽃피우며 내놓았겠지요. (4345.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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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저녁까지
밤을 지나 새벽으로
봄비 한 줄기
온 들판
따사로이 적신다.

 

마늘밭이 젖고
세멘기와 지붕이 젖고
앙상한 모과나무가 젖고
꽃봉오리 터뜨리려는 후박나무가 젖고
세멘으로 닦은
길바닥과 마당이 젖는다.

 

아침과 낮과 저녁
집식구 옷가지와 기저귀
차근차근 손빨래 한다.

 

우리 집에
아직
빨래기계 없다.
내가 늘 집에서 일하니
내 몸이
빨래 예쁘게 건사한다.

 

체르노빌
드리마일
후쿠시마

 

여기에
영광 고리 월성 기장
또는 새로 어느 곳
이름 몇 글자
더하지 말란 법 있을까.

 

전기 없는 날
틀림없이 찾아올 테니
전기 없는 삶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온 하루 축축한 집안에
불을 넣는다.
깊은 새벽에 겨우 마른
기저귀를 갠다.

 


4346.3.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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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8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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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는 누구한테서 배워?
 [만화책 즐겨읽기 125] 데즈카 오사무, 《불새 (8)》

 


  놀이는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서 즐깁니다. 놀이는 아이들이 서로서로 어울리는 동안 스스로 생각해서 즐깁니다. 놀이는 아이들이 둘레 어른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배운 그대로 생각해서 즐깁니다.


  놀이책에 이런 놀이 저런 놀이가 실리니까, 이 책을 읽으며 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놀이교사가 놀이를 이모저모 가르쳐 주니까, 교사한테서 배운 대로 놀이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스스로 놉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놉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 알맞게 놉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누리는 마을과 보금자리에 따라 예쁘게 놉니다.


- “이쿠오, 잘 지냈니?” “응, 엄마.” “자, 선물. 열흘 간 얌전히 집 잘 지킨 상이란다. 이 스위치를 눌러 보렴. 어서. 50 종류의 그림이 스크린에 나타나지. 조합을 통해서 마음대로 얘기를 바꿀 수 있어. 어때? 재미있지?” “좋아요. 엄마. 그런데 언제 놀아 줄 거예요?” “글쎄, 언제가 될까? 호키, 내 스케줄이 어떻죠?” (15쪽)
- “로비타는? 나, 로비타가 보고 싶어. 로비타한테 갈래.” “이쿠오, 그렇게도 로비타가 좋으냐? 우리들이 네 부모잖아? 로비타는 인간이 아니야. 어째서? 이쿠오!” (31쪽)

 

 


  사랑은 사람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나눕니다. 어떤 책에 적힌 대로 사랑을 나누는 일이란 없습니다.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고서 사랑을 꽃피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며 꽃피우는 사랑입니다. 생각이 살아숨쉬고 마음이 자라나며 이루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들려주는 책이 있기에, 이 책 몇 권 읽고 나서 사랑을 불태우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 가슴에서 싹을 틉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바라는 사람들 손길에서 자라납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 몸짓에서 잎을 틔웁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니다. 내 어버이를 사랑하고 내 아이를 사랑합니다. 내 마을을 사랑하고 나를 둘러싼 너른 들판과 멧자락과 바다를 사랑합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사랑합니다.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사랑합니다. 날마다 누리는 물을 사랑합니다. 날마다 받아들이는 햇살을 사랑합니다. 날마다 곱게 드리우는 나무 그늘을 사랑합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를 사랑합니다.


- “와, 로비타.” “도련님, 또 외톨이이십니까?” “저기, 로비타. 여러 가지 놀이 방법을 알던데 누구한테서 배웠어?” “놀이는 누구한테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겁니다.” (18쪽)
- “너, 너를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럼 그 할아버지가 약속대로 나를 네 몸속으로 보내준 건가?” “레오나, 이제 우리들은 함께예요.” “물론이지. 마음이 하나니까. 자아, 치히로, 네 마음속에 내 마음을 잘 붙여 줘.” (106쪽)

 

 


  책을 읽으니 이야기를 꽃피우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오래 다니니까 이야기가 샘솟지 않습니다. 극장에 가거나 놀이공원을 드나들었으니 이야기가 자라나지 않습니다. 큰 회사에 다니거나 공장에서 땀을 흘렸으니 이야기가 쏟아지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놀이를 빛낼 때에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스스로 기쁘게 사랑을 나눌 때에 이야기가 거듭납니다.


  내가 내 옆지기랑 나누는 이야기는 서로 돌보며 일구는 삶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아이들하고 나누는 이야기는 다 함께 좋아하며 아끼는 삶에서 얻습니다.


  갓난쟁이 죽을 끓이며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아이들 밥상을 차리며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걸레질을 하고 비질을 하며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이들 씻기고 옷가지 빨래하는 사이 이야기가 날갯짓 합니다. 나란히 서서 들길을 걷는 동안 이야기가 노래합니다. 파랗게 물드는 하늘에 하얗게 스며드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이야기가 흐드러집니다. 나뭇잎을 스치고 풀잎을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이하며 이야기가 춤춥니다.


  내 삶이 좋은 삶입니다. 좋은 삶이 내 삶입니다. 내 삶이 좋은 이야기입니다. 좋은 이야기가 내 삶입니다.

 

 


- “젊은이, 나는 아직 내 연구를 완성시키지 못했네. 그 완성이란, 인간끼리 합체시키는 것이지! 두 인간의 육체를 섞어 새로운 인간을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내 최후의 목표라네! 지금 그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준비가 끝났네! 자네와 보스는 내일이면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거다! 내가 이 멋진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너무 두근거려서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헤헤헤! 헤헤헤!” (96쪽)
- “알겠나, 선생? 이것만은 말해 두겠어. 어떤 과학의 힘이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쳇, 위대한 철학자 나섰군!” “우주를 방황하다 보면 도를 터득하게 되거든. 인간의 생명이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거야.” (119쪽)


  사랑은 삶에 뿌리를 내리고, 놀이는 삶에 깃을 둡니다. 말은 삶에서 태어나고, 꿈은 삶에 손길을 내밉니다. 아이는 기계 부속품이 아니기에 어머니가 몸속에 열 달을 곱게 품습니다. 아이는 공장 톱니바퀴가 아니기에 어머니가 온 사랑을 들여 낳습니다. 아이는 어른들 놀잇감이 아니기에 어머니가 피와 살을 낸 젖을 물립니다.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마을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다 다른 어머니들 젖을 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사랑을 다 다른 빛깔로 받아먹으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품에 안습니다. 그런데, 다 다른 아이들을 다 다른 빛깔이 어리는 다 다른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어머니와 아버지가 으레 잊거나 잃습니다. 다 달리 사랑할 아이들을 다 똑같이 틀에 가두고 말아요. 다 다른 아이들이 품으며 누려야 할 아름다운 누리에서 아이들이랑 오붓하게 살아가려 하지 않아요.


  어른들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어른들은 일하느라 바쁘다 합니다. 어른들은 문화를 누리고 예술을 즐기며 사회에서 복닥이며 정치를 지키고 경제를 건사하며 철학을 빚고 운동경기로 고단함을 풀다가는 할인마트에서 시름을 달래요. 어른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노래하는 마실길을 잊습니다. 어른들은 자가용을 몰며 텔레비전을 봅니다. 어른들은 조그마한 손전화로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이랑 목소리 곱게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재미나게 놀이를 새로 빚으며 아이들이랑 어깨동무하지 않습니다.

 

 


- “여보, 당신 말대로라면, 당신 나라에서 큰 전쟁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고, 한 번 쏘면 몇 만 명도 넘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서? 게다가 바다는 독이 퍼지고, 산과 들고 말라 버렸다면서?” (168쪽)
- “딸아, 불쌍한 내 딸아. 이 엄마는 1500년 후 미래에서 살고 있었단다. 그곳엔 모두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났고, 고아였던 이 엄마는 수용소에 들어갔었지. 그 시대를 증오했어. 그리고 인간을. 그때, 엄마는 이상한 새를 봤지. 꿈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새의 몸은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어. 그리고 내 소원대로 옛날로 보내주겠다고 하더군. 그리고 돌아오고 싶어질 때까지 있어도 된다고 했어. 믿을 수 없었단다. 그 대신 과거의 역사를 바꾸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엄마의 옷이, 이 시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면 섬유의 역사가 변한다. 그리고 딸이 태어났고, 만약 네가 자라나면, 엄마는 미래인이 낳은 아이가 하나 생기는 거야.” (180쪽)


  놀이를 스스로 빚지 못하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빚으려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채 빚지 못한 때에 일찌감치 틀에 가둡니다. 보육원과 어린이집과 유치원이라는 틀에 아이들을 가둡니다. 이윽고 초등학교라는 틀에 가둡니다. 시험공부와 영재교육과 조기교육과 독서함양이라는 틀에 가둡니다. 아이들은 곧바로 대입시험이라는 틀에 사로잡힙니다. 푸르디푸른 넋을 꽃피울 꿈을 스스로 접고야 맙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마치 살아갈 값어치가 없기라도 한 듯 스스로를 옥죕니다. 어른은 곁에서 아이를 부채질합니다. 어른은 옆에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둘레에서 아이를 다그치고 채찍질합니다. 사랑으로 놀이하고, 사랑으로 일하며, 사랑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여덟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아이로 태어나 푸른 꿈과 맑은 사랑을 빛낸 나날을 누린 적이 있는 줄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어른들부터 당신이 아이였을 적에 푸른 꿈을 못 누리고 맑은 사랑을 못 빛냈는지 몰라요. 오늘날 어른들부터 당신이 아이였을 적에 슬픈 사슬에 매이고 고단한 틀에 사로잡히고 말았는지 몰라요. 오늘날 어른들은 스스로 아름다운 누리를 일군다든지 사랑스러운 터전을 보듬으려는 꿈을 안 꾸는지 몰라요.


  나한테 꿈이 없대서 아이들마저 꿈이 없어도 되지 않아요. 나한테 사랑이 없다지만 아이들까지 사랑이 없는 채 살아도 되지 않아요.


  죽음을 앞둔 사람한테 돈을 잔뜩 갖다 안길 때에 기뻐하지 않겠지요. 이제 막 태어난 아이한테 자가용이나 아파트를 선물한다면 좋아하지 않겠지요. 다섯 살 아이는 누구하고 어디에서 무얼 하며 놀고 싶을까요. 열다섯 살 아이는 어디에서 누구랑 어깨동무하며 땀흘려 일하고 싶을까요. (4345.3.8.나무.ㅎㄲㅅㄱ)


― 불새 8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4.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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