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개구리 글쓰기

 


  네 식구가 마을 뒷산으로 나들이를 옵니다. 풀밭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데, 첫째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며 말합니다. “여기 개구리 있어.” “개구리가 있다고?” “응. 아빠 개구리하고 누나 개구리 있어.” 뒷산 풀숲에 무슨 개구리가 있겠느냐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데, 아이가 또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처럼 몸을 웅크리고는 “어디에 있어?” 하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하고 말합니다.


  한참 들여다보니 비로소 조그마한 개구리가 보입니다. 푸른개구리보다는 조금 큰 옅은흙빛 개구리입니다. 아, 멧개구리로구나. 그래, 논에는 논개구리이고, 메에는 멧개구리이지.


  작은 개구리는 작은 풀잎만 한 몸뚱이를 작은 풀잎에 바싹 붙여 옹크린 채 꼼짝하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는 작은 눈알 굴리며 작은 몸을 풀밭에 가만히 옹크린 채 작은 개구리를 오래오래 바라봅니다. 딸기꽃 하얗게 피고 감잎 싯푸르게 새로 돋는 풀숲에서 멧새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한 줄 조용히 끄적입니다. (4345.4.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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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4-23 06:22   좋아요 0 | URL
숨은 그림 찾기 했네요. 찾았어요 ^^

파란놀 2012-04-23 07:13   좋아요 0 | URL
금세 찾아낼 수 있으면,
이 개구리는 숲에서
금세 잡아먹힐 테니까
살아남을 수 없겠지요~
 


 유채밭 어린이

 


  마을 어르신이 지난가을 논에 유채씨를 뿌렸다. 겨울을 난 봄 들판에 유채꽃이 가득 피어난다. 군청에서는 논에 유채씨를 뿌리면 무슨무슨 도움돈을 준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 모여 얘기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듣고는 제주섬 곳곳이 유채밭이 되는 까닭을 깨닫는다. 다 정부에서 돈을 주어 논에다가 유채씨를 뿌려 ‘보기 좋게’ 꾸미는 셈이다. 이른바, 쌀농사 줄이도록 하는 일인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나마 쌀을 ‘스스로 거두어 먹는다(자급)’ 하지만, 막상 쌀을 스스로 거두어 먹지는 못한다. 도시에 있는 여느 밥집에서는 ‘비싼’ 한국쌀을 안 쓰고 ‘값싼’ 수입쌀을 쓰니까. 따지고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쌀자급율마저 100%를 못 채우지만, ‘쌀 수입 자유화’를 1993년이던가부터 문민을 말하던 정부가 소매 걷고 나서서 이루었으니(더 따지면, 이런 정책이 없었어도 값싼 미국쌀을 억지로 많이 사들여야 하는 정부였다) 도시사람 스스로 못 느끼거나 안 느낄 뿐, 한국땅에서는 시골 논을 되도록 더 놀리거나 비워야 한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리 식구들은 유채밭을 이룬 논 옆을 걷는다. 유채꽃은 저희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저희 마음대로 씨를 퍼뜨린다. 마을 곳곳에 봄맞이 유채꽃이 핀다. 옆지기는 논둑이나 길가나 마당에서 마음껏 자라나는 유채를 뜯어 날로 씹어먹는다. 유채잎도 유채꽃도 잘근잘근 씹어먹으면 맛나다. 유채나 갓은 생김새가 많이 비슷하지만 똑부러지게 다른 대목이 있기도 한데, 이들 줄기는 겉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씹어먹을 수 있다. 둘째를 수레에 태워 끄느라 손을 못 쓰는 나한테 옆지기가 속살을 한두 줄기 벗겨 내민다. 천천히 씹으며 맛과 내음을 느낀다. 어쩌면 껌 씹듯 확 하고 올라오는 느낌일는지 모른다. 문득, 먼먼 옛날 시골 아이들이 껌을 몰랐을 때에, 유채 속줄기나 갓 속줄기를 껌처럼 삼아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배를 채웠겠다고 생각한다. 옆지기와 내가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면 어릴 적부터 이런 풀을 신나게 뜯어서 먹었겠지.


  어쨌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시골 유채밭을 즐긴다. 꽃을 보고 꽃을 먹는다. 푸르디푸른 풀을 보고 푸르디푸른 풀을 먹는다. 유채밭 곁에 선 어린이는 온몸으로 유채 내음과 빛깔을 받아먹는다. (4345.4.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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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제비 책읽기

 


  봄제비를 만난 지 이레쯤 됩니다. 엊그제부터 마을에서도 제비를 알아봅니다. 무섭게 몰아치던 비바람이 멎은 이듬날 우리 집 마당뿐 아니라 온 마을 곳곳에 제비가 무리지어 날아다닙니다. 아이들과 너른 들판을 걷자니 자그마치 백 마리가 훨씬 넘는 제비들이 이리저리 날고 춤춥니다.


  제비 날갯짓과 함께 달리고 뛰며 노는 아이를 바라보다 문득 생각합니다. ‘(중국)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온다’고 하는데, 제비가 남녘땅을 떠나 중국 강남으로 가는 멀고먼 바닷길은 쉴 수 없는 길입니다. 중국 강남에서 남녘땅으로 돌아오는 제비는 남녘땅에서 가장 끝자락 남녘에 맨 먼저 깃을 들입니다. 태평양을 건넌 제비는 해남이나 장흥이나 진도나 고흥 언저리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날갯짓을 쉴 수 있어요. 아마 어떤 제비는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금자리를 틀겠지요. 어떤 제비는 따사롭고 포근하며 들판과 멧자락 넉넉한 고흥에 그대로 눌러앉아 보금자리를 틀겠지요. 애써 북쪽으로 올라간 제비들은 더 넓게 도시가 펼쳐지는 곳에서 그만 먹이를 못 찾다가 더더 북쪽으로 올라가며 사람들끼리 그은 삼팔선을 넘을는지 몰라요. 공장 아닌 숲을 찾고, 커다란 아파트 아닌 작은 시골집을 찾겠지요. 고속도로나 기찻길 아닌 오솔길이나 고샅길을 찾겠지요.


  자동차 넘실대는 곳에서 제비가 살지 못합니다. 흙길이나 논밭이 있더라도 풀약을 치며 풀을 잡는 시골에서 제비가 살 수 없습니다. 제비는 조용하며 깨끗한 곳에서 둥지를 틀 수 있습니다. 제비는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곳에서 알을 까며 새끼를 돌볼 수 있습니다. (4345.4.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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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한사람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논쟁의 진짜 이유..."

그냥 잠을 잔대서 잘못을 줄이지는 않아요. 곰곰이 생각하며 좋은 꿈을 품어야 비로소 내 삶이 좋아지면서 잘못이 차츰 사라져요. 얼키고 설킨 마음인 채 잠들면 되레 더 뒤숭숭해지고 말아요. .. 제가 살아가며 느끼기로는, 진보나 보수 논쟁이란 참 덧없을 뿐 아니라 쓸데없구나 싶어요. 논에 자라는 벼나, 벼를 심기 앞서 자라는 숱한 풀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거든요. 들꽃은 진보한테만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지 않아요. 나무열매는 보수한테만 맛나지 않아요. 무지개는 진보만 알아보지 않아요. 흰구름 파란하늘은 보수만 올려다보지 않아요. 진보도 보수도 다 논자락에서 거둔 나락을 밥으로 지어 먹어요. 예부터 어머님들은 나그네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따위를 가리지 않고 누구한테나 밥 한 그릇 나누어 주었어요. 왜냐하면 이 편 저 편에 앞서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니까요. 왼날개와 오른날개가 고르게 있어야 날갯짓하는 새는 아니에요. 그저 '날개'가 있을 뿐이고, 몸이 홀가분하게 가벼울 때에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새예요. 글이란, 누구나 이녁 삶을 담는 만큼, 비판을 하든 비난을 칭찬을 하든 펌질을 하든, 모두 이녁이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에요. 그러니까, 논쟁이란 하나도 없는 셈이에요. 드러나는 말과 글이 모두 그 사람 생각이자 마음이고 삶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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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이리와 놀자 - 즐거움 가득한 세계의 어린이들
매그넘 지음, 박현영 옮김 / 키다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놀이터와 놀이동무 모두 없는 도시에서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2 : 매그넘 포토스, 《얘들아, 이리 와 놀자》(키다리,2009)

 


  삣삣삣삣 하고 우는 작은 새가 잰 날갯짓으로 우리 집 처마 위아래를 오르락거리며 휙 지나갑니다. 낯익은 날갯짓이라고 느끼며 꽁무니를 좇습니다. 낯익은 날갯짓은 우리 집 앞길 전깃줄에 앉습니다. 꽁지를 팔랑팔랑 흔드는 꼴이 제비입니다. 아침나절 두 아이와 함께 제비 날갯짓을 바라봅니다. 이제 이 제비들은 차츰 따스해지는 날씨를 마음껏 누릴 텐데, 언제부터 짝을 만나고 알을 깔까 궁금합니다. 이 제비들 가운데 누가 우리 집 처마에, 또는 이웃집 처마에 둥지를 틀까 궁금합니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 동무들하고 뛰놀면서 으레 제비를 보았습니다. 낮에는 제비들 낮게 가르는 날갯짓에 놀라워 하면서 뒤를 좇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달음박질로 제비를 좇다가 잡을 턱이 없는지 모르나, 모자를 들고 제비를 잡겠다며 이리 달리고 저리 달렸어요. 제비는 아이들을 우르르 몰게 하는 날갯짓이 재미난지 자꾸자꾸 우리 둘레에서 낮게낮게 날았어요.


  낮에는 제비하고 놀지만, 밤에는 박쥐하고 놉니다. 해가 기운 저녁나절, 모두들 집에서 밥을 먹고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바깥에서는 서로서로 숨바꼭질을 합니다. 으슥한 곳에 살금살금 발을 들여 숨다가 술래가 찾아올 때에 확 뛰쳐나가면 나와 함께 박쥐도 푸드득 하고 놀란 날갯짓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곤 했습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도시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아직 안 많거나 자동차 굴리는 집이 적은 동네에서는 제비도 박쥐도 저마다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이때에는 땅강아지도 사마귀도 저희끼리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어요. 개구리도 참새도 제 나름대로 보금자리를 누리겠지요.

 

 

 


  자동차가 부쩍 늘고 높다란 아파트가 솟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땅을 덮습니다. 빈터 하나 없이 온통 시멘트투성이가 됩니다. 나무 한 그루 마음껏 씨앗을 흩뿌리지 못합니다. 풀꽃 한 송이 기쁘게 씨앗을 날리지 못합니다.


  흔히들 도시 골목에서 아이들 노랫소리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이들 노랫소리가 사라지기 앞서 빈터가 사라졌습니다. 도시 골목에서 놀이하는 아이들 달음박질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이들 달음박질이 사라지기 앞서 나무가 사라지고 풀이 사라졌으며 제비와 박쥐와 개구리와 사마귀가 몽땅 사라졌습니다.


  어른들부터 제비를 잊습니다. 어른들부터 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참새 지저귀는 소리를 알아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부터 개구리 울음소리를 고즈넉하게 들을 줄 모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서로서로 놀이를 물려주거나 이어주지 못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놀이가 사라진 삶인 탓에 아이들 또한 놀이가 사라진 공부쟁이나 학원쟁이나 게임쟁이가 되고 맙니다. 어른들 스스로 회사일과 쇼핑과 유흥문명에 젖어들면서 아이들 또한 서로 어깨동무하며 새·벌레·풀·흙하고 뒹굴던 꿈을 빼앗깁니다.

 

 

 


  매그넘 사진쟁이들 사진에 미국 뉴욕 아이들이 시를 붙이고, 아야나 로웨 님이 엮었다고 하는 《얘들아, 이리 와 놀자》(키다리,2009)라 하는 사진책을 읽습니다. 엮은이 아야나 로웨 님은 “어떤 아이는 감정을 다쳤고, 누군가는 권력을 느꼈고, 어떤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두 아이는 의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40분의 짧은 휴식 시간 동안의 놀이를 통하여 모든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은 것이다.” 하고 책끝에 말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짝을 짓거나 무리를 이루어 놀다가 다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따돌리기도 괴롭히기도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참말 아이들 마음씨가 이와 같아서 서로 계급을 나누거나 힘으로 윽박지르거나 다툴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아이들 놀음놀이는 모두 어른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따라하는 모양새 아닌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을 풀밭에 ‘풀어놓아’ 보셔요. 아이들을 흙밭에 ‘홀가분하게 놓아’ 보셔요. 이 아이들이 서로 계급을 지을까요. 이 아이들이 풀밭에서 전쟁놀이나 총놀이를 할까요. 이 아이들이 흙밭이나 모래밭이나 물가나 냇가나 바닷가에서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힐까요.


  때로는 오래된 사진이고 때로는 요즈막 사진인 《얘들아, 이리 와 놀자》에는 일본 사진쟁이 히로지 쿠보타 님이 북녘 원산에서 1982년에 찍었다는 사진이 실립니다. 1982년 북녘 원산 바닷가 아이들은 해맑은 웃음으로 서로 얼크러지며 놉니다. 2012년 북녘 원산 바닷가 여름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2042년 북녘 원산은 또 어떤 모습이 될까요. 미국 사진쟁이 버트 클린 님이 알라스카 아낙츄북에서 1953년에 찍었다는 사진에는 토박이 할배가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실뜨기를 가르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실뜨기는 1953년뿐 아니라 1993년에도 나타나고 1903년에도 나타났어요. 앞으로도 실뜨기 가르치는 할아버지가 있을까요. 이제는 실뜨기 물려주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없으려나요. 어른들이 벌이는 전쟁 때문에 무너지거나 망가지는 마을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뒹굴며 노는 아이들 사진이 꽤 많습니다. 아이들은 깊은 밤에도 놀려 하니까요.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먼길 달리는 기차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졸음이 쏟아져도 더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빨래하는 아버지 곁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아이들은 밭을 매는 어머니 곁에서도 놀고 싶으니까요.

 

 

 


  사진책 《얘들아, 이리 와 놀자》를 읽으면서, 한국에서 나온 《소꿉》(고래가그랬어,2009)이라는 사진책이 자꾸 떠오릅니다. 《소꿉》은 편해문 님이 사진을 담았는데, 아이들 예쁘장하고 맑은 놀이를 한 가득 담습니다. 《소꿉》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단한 놀잇감이 없고, 멋들어진 놀이기구하고 동떨어집니다. 그러나 모두들 참 재미나게 놀며 웃어요. 한국에서 나온 다른 사진책 《노래가 하나 가득》(일지사,1981)도 떠오릅니다. 이 책에는 김녕만 님이 사진을 담습니다. 윤석중 님 동요에 맞추어 아이들 놀이를 싱그럽게 잘 담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멋스러운 사진으로 아이들 놀이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으니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이네 집》(보리밭,1983)이라는 사진책 하나 더 떠올라요. 《현이네 집》은 이주홍 님 글에 맞추어 최시병 님이 아이들 놀이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고운 빛 가득한 아이들 모습과 눈빛이 살가이 담긴 어여쁜 사진책이에요.


  여러 가지 ‘아이들 놀이 사진책’을 떠올리며 《얘들아, 이리 와 놀자》를 읽다가 생각합니다. 2010년대를 달리는 한국땅에서 ‘아이들 놀이’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겠다 한다면 어떤 놀이 어떤 모습 어떤 아이가 담길까 궁금합니다.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담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여느 때에 얼마나 즐기거나 누릴까요. 오늘날 아이들은 어떤 동무가 놀이동무가 되고, 어떤 이야기를 놀이와 함께 빛낼까요.


  빈터가 없는 도시에서, 너른터가 사라지는 도시에서, 나무와 풀이 마음껏 자랄 터가 없이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이는 도시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지식과 정보와 영어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한테 어떤 놀이와 놀이터와 놀이동무와 놀이사랑과 놀이꿈과 놀이얘기가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4345.4.22.해.ㅎㄲㅅㄱ)


― 얘들아, 이리 와 놀자 (매그넘 포토스 사진,뉴욕 어린이 시,박현영 옮김,키다리 펴냄,2009.6.20./1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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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네 집 사진책 겉그림은 미리 안 긁어 놨네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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