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828) 나름 1

 

여전히 손님은 별로 없지만 ‘아리바이트’까지 하는 할머니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나름 힘겨웠거든
《박기범-낙타굼》(낮은산,2008) 73쪽

 

 ‘여전(如前)히’는 ‘예전처럼’이나 ‘예전과 같이’로 다듬고, ‘별(別)로’는 ‘얼마’나 ‘거의’로 다듬습니다. 흔히 쓴다 싶은 한자말인데, 아마 한자말이라고 못 느끼기도 할 테고, 한자말이라 느끼더라도 이 낱말 쓰는 일이 무어 대수로운가 하고 여기기도 하리라 봅니다.


  그런데, ‘여전히’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언제나’라든지 ‘언제나처럼’이라든지 ‘예전처럼’ 같은 한국말 쓰임새가 줄어듭니다. ‘별로’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그다지’나 ‘거의’나 ‘얼마’나 ‘몇’ 같은 한국말 씀씀이가 사라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바이바이’라 말하면서 ‘잘 가’나 ‘잘 있어’ 같은 한국말이 자취를 감춥니다. ‘또 봐’라든지 ‘다음에 봐’ 같은 한국말도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글쓰기’였을 테지만, 언제부터인지 ‘작문(作文)’이 되었고, 이제는 ‘라이팅(writing)’이라는 말이 곧잘 쓰입니다. ‘리라이팅’ 같은 영어도 쓰일 뿐 아니라 숱한 영어가 곳곳에 쓰여요. 이러면서 한국말로 가리키던 모습은 하나둘 사라져요.


  국어사전에서 ‘나름’이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나름 [의존명사]
  (1) (명사, 어미 ‘-기’, ‘-을’ 뒤에 ‘이다’와 함께 쓰여) 그 됨됨이나
      하기에 달림을 나타내는 말
   - 책도 책 나름이지 / 네가 열심히 하기 나름이다 / 제 할 나름이다
  (2)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방식이나 깜냥을 이르는 말
   - 나는 내 나름대로 일을 하겠다 / 자기 나름의 세상을 살기 마련이다 /
     나름대로 그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을 터 / 태임이는 태임이 나름으로

 

  제가 ‘나름’이라는 말을 올바르게 쓴 지는 2000년 즈음입니다. 이무렵에야 이 낱말 쓰임새를 비로소 제대로 알았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어 주는 어느 분이 어느 날, ‘나름’은 그 자리에 그와 같이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넌지시 일러 주었습니다. 저도, 이 보기글에 나오듯이 “나름 힘겨웠거든” 꼴로 ‘나름’을 쓰곤 했어요. 그분은 저한테 ‘나름’은 이처럼 외따로 적을 수 없는 말입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나름 힘겨웠거든
→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그 나름대로 힘겨웠거든
→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할머니 나름대로 힘겨웠거든
→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당신 나름대로 힘겨웠거든
 …

 

  이 말씀을 듣고 ‘엇, 그런가?’ 하며 온갖 국어사전을 다 뒤적이고, 국어사전에 실린 보기글을 읽었습니다. 한참 읽으며 헤아려 보니 참말 그렇더군요. 여태껏 제대로 모르고 ‘나름’을 쓴 셈이었습니다. 부끄럽더군요. 우리 말 운동을 한답시고 끄적거리는 주제에 ‘나름’ 한 마디 올바르게 못 쓰고 살았다니.


  저한테 ‘나름’ 쓰임새를 알려주신 분은 제가 그 한 마디 똑바로 못 쓴다고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젊은이가 그 말투를 아직 못 배웠겠거니 생각하며 일러 주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어느 때에도 ‘나름’ 쓰임새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법 수업이 있었으나, 이때 ‘나름’을 올곧게 쓰도록 가르치지 않았다고 떠올립니다. 어쩌면 교과서에 실리기는 했는지 모르나, 이러한 말씀씀이는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아요. 교사도 모르고 학생도 모릅니다. 여느 어버이도 모르고 여느 아이도 모릅니다. 지식인도 모르고 교수도 모를 뿐 아니라 기자도 모릅니다. 대통령도 모르고 국회의원이나 군수도 모릅니다. 공무원도 모르고 소설쟁이도 모르며 시인도 모릅니다. 참말 아무도 모르는 한국말입니다. 아무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국어학자 또한 국어사전에 싣기는 하지만 올바르거나 알맞거나 슬기롭게 가다듬지 않는 한국말입니다.

 

 이 일은 이 일 나름 뜻이 있다 (x)
 이 일은 이 일 나름대로 뜻이 있다 (o)

 

  한 마디로 간추립니다. ‘나름’은 외따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너 하기 나름이지”처럼 쓰든지 “할머니 나름대로 하셔요”처럼 써야 합니다. 앞에 이름씨를 하나 넣고, 뒤에는 씨끝을 붙입니다.


  몰랐다면 배워야 합니다. 나이 예순이든 일흔이든,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면 배워야 합니다. 몰랐으니 즐겁게 배웁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어떻게 말썽거리인가 이제껏 몰랐으면, 이제부터 배우면 됩니다.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는 까닭을 그동안 몰랐으니, 나이 예순이 되든 일흔이 되든 이제부터 배우면서 함께 어깨동무를 즐겁게 하면 됩니다.


  딱 하루만 알다가 이 땅을 떠나더라도 즐겁게 배우면 됩니다. 고작 한 시간만 알다가 숨을 거둔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무엇이 옳았는지, 무엇이 참되었는지,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밝고 깨끗한지를 알 때에 내 아름다운 넋이 참말 아름다이 꽃을 피웁니다.


  예수님과 부처님 말씀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아흔아홉 해를 모르고 살았어도, 마지막 한 해를 깨닫고 제대로 헤아리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마음이 평화로우며 사랑을 나누거나 베풀 수 있다고 하지요. 늦는 때란 없어요. 언제부터 마음을 다스리면서 일손을 붙잡느냐가 대수롭습니다. ‘흘러간 낡은 말’을 배우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두고두고 우리 가슴에 새길 ‘언제나 새로운 말’을 배우며 나누는 한겨레요 이웃이며 동무입니다.
 (4341.5.17.흙./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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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손님은 얼마 없지만 ‘아리바이트(곁벌이)’까지 하는 할머니 혼자 가게를 보기에는 퍽 힘겨웠거든

 

..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3) 나름 2

 

젊으면 젊음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나이 들어도 젊은이들의 존중을 받으니까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는 거야
《함규진-10대와 통하는 윤리학》(철수와영희,2012) 41쪽

 

  “젊음 자체(自體)만으로”는 “젊음만으로”나 “젊음 하나로”로 다듬습니다. ‘행복(幸福)하고’는 ‘즐겁고’로 손봅니다. “젊은이들의 존중을 받으니까”는 “젊은이들한테서 우러름을 받으니까”나 “젊은이들이 우러르니까”나 “젊은이들이 곱게 섬기니까”로 손질합니다. “행복할 수 있는 거야”는 “즐거울 수 있어”로 가다듬습니다.


  한 마디 두 마디 살뜰히 추스릅니다. 한 줄 두 줄 예쁘게 보듬습니다.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는 거야
→ 그 나름대로 즐거울 수 있어
→ 서로 즐거울 수 있어
→ 저마다 즐거울 수 있어
→ 다 함께 즐거울 수 있어
→ 모두 즐거울 수 있어
 …

 

  생각을 살뜰히 추스를 때에 내 넋을 어떻게 어떤 낱말에 담아낼 때에 빛나는가를 깨닫습니다. 마음을 예쁘게 보듬을 때에 내 얼을 어떻게 어떤 글줄에 실어낼 때에 환해지는가를 느낍니다.


  좋게 헤아릴 때에 좋게 빛나는 말입니다. 곱게 살필 때에 곱게 피어나는 글입니다.


  이 보기글처럼 글을 쓰더라도 사람들은 무슨 줄거리인지 읽어냅니다. ‘나름’ 같은 말마디를 잘못 적었지만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는가 잘 읽습니다. 아마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린 대목이 있어도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가를 옳게 읽겠지요.


  그런데, 띄어쓰기 틀리거나 맞춤법에 어긋나면 글쓴이나 읽는이나 알맞게 바로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말투나 어그러진 말법이나 비뚤어진 말결은 글쓴이나 읽는이 모두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피지 못하며 생각하지 못합니다.


* 보기글 새로 쓰기
젊으면 젊으니까 즐겁고, 나이 들어도 젊은이들이 좋게 모시니까 서로 즐거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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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인디아 스케치
김아타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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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인가, 철학인가, 예술인가
 [찾아 읽는 사진책 91] 김아타,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예담,2008)

 


  김아타 님 사진책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예담,2008)를 읽습니다. 맨 마지막 쪽에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님 글이 붙습니다. 이주향 교수님은 김아타 님 책에 “김아타의 사진은 사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철학입니다(222쪽).” 하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쟁이’가 아니었군요. 그렇다고 ‘예술쟁이’도 아니었어요. 김아타 님은 바로 ‘철학쟁이’나 ‘철학꾼’이나 ‘철학가’, 쉽게 말하자면 ‘생각쟁이’나 ‘생각돌이’나 ‘생각꾼’이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다(31쪽).” 하고 말하면서 사진을 넣지 않습니다. 그래요, 김아타 님으로서는 당신 생각을 북돋우려고 사진기를 들었을 뿐이니까요. “하얀 보따리가 두 개 있다(53쪽).” 하고 글을 쓰면서 하얀 보따리 둘 있는 사진을 넣습니다. 김아타 님은 하얀 보따리 둘을 꾸밈없이 바라보며 느끼고 싶었으니까요. “많다. 복잡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61쪽).” 하고 말하며 사진을 또 안 넣습니다. 참말 아무 생각이 없으니 사진기를 들어, 날마다 1만 장씩 찍었다 하더라도 사진을 넣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멈춘 순간, 골목이 맑다(111쪽).” 하고 말하지만, 시간이 멈춘 때는 없습니다. 나 스스로 시간이 멈추었다고 생각한 때가 있을 뿐입니다. 곧, 나 스스로 시간이 멈춘 때가 맑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때에 골목을 바라보면 골목이 맑다고 여깁니다. 이때에 아가씨를 보았으면 아가씨 얼굴이 맑다고 여길 테고, 이때에 들판을 바라보았으면 들판이 맑다고 여길 테지요.

 


  누군가는 이런 느낌 한 자락 얻으려고 인도로 나들이를 다닙니다. 누군가는 이런 느낌 한 자락 불러일으키려고 네팔이나 티벳이나 스리랑카나 모잠비크나 파키스탄이나 그리스나 칠레나 아르헨티나를 떠돕니다. 모두들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어느 곳으로도 나들이를 다니지 않더라도 ‘시간이 멈춘 한때’를 늘 느낍니다. 이를테면,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김을 매며 늘 느낍니다. 구부정한 허리가 모질게 아프다가는 아예 구부정하게 굳은 채 걷고 자고 먹고 일어나고 눕고 하는 나날을 이으며 언제나 느낍니다. 또는, 책을 읽으며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한테 젖을 물리며 느끼기도 합니다. 늙은 어버이 이마 주름을 쓰다듬다가 느끼기도 합니다.


  “뭄바이 시내 고가도로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뭄바이는 내가 만난 세상 중 가장 시끄러운 곳이지만 사진에는 소리가 없다(135쪽).” 하고 말합니다. 김아타 님은 스스로 사진에 소리가 없다고 느끼기에 이 사진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 이곳에서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몹시 시끄러웠다고 여겼으면, 그분 그 사진에는 시끄러운 사진이 담깁니다.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생각에 따라 빚는 사진입니다. 생각에 따라 이루는 사진입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기라는 틀을 빌려 당신 생각을 가꾸어 보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김아타 님은 사진을 수없이 찍고 다시 찍으면서 당신 생각이 어디로 흐르고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헤아리고 싶은 삶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는 사진책이라 할 테지만 사진책이 아닙니다. 이주향 교수님 말대로 철학책입니다. 철학을 하고 싶어 사진을 빌 뿐입니다. 거꾸로,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싶어 철학을 빌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을 하고 싶어 영화를 빌곤 합니다. 누군가는 사진을 그리고 싶어 만화를 빌기도 해요.


  글 하나는 시도 되고 수필도 되며 소설도 됩니다. 글이라는 틀을 빌면서 시도 쓰고 수필도 쓰며 소설도 씁니다. 어떤 글은 시와 같지만 편지입니다. 어떤 글은 편지와 같지만 소설입니다. 어떤 글은 소설과 같지만 희곡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으로 보이지만 사진이 아닌 ‘그림’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이라는 겉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진이 아닌 ‘철학’입니다. 어떤 사진은 사진이라는 옷을 걸치지만 사진이 아닌 ‘예술’입니다.

 


  사진기를 쓰기에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쓰며 글을 쓰는 이가 있습니다. 사진기를 빌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기를 빌어 예술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를 뭉뚱그려 ‘사진을 한다’거나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찍힌 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이로구나 좋구나 하고 느끼는 일도 반갑습니다. 사진기로 찍힌 모습을 마주하며 철학이로구나 괜찮구나 하고 느끼는 일도 즐겁습니다. 스스로 껍데기를 벗으면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스스로 허울을 내려놓으면 사랑이 태어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188쪽).” 하는 말마디처럼, 봄바람을 생각하면 봄바람을 느낍니다. 봄볕을 생각하면 봄볕이 내 온몸으로 샅샅이 스며듭니다. (4345.4.30.달.ㅎㄲㅅㄱ)

 


― 김아타, 인디아 스케치 (김아타 글·사진,예담 펴냄,2008.3.25./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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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꽃과 나무와 풀을 읽어요

 


  마당 한켠 후박나무에 꽃봉우리가 활짝 터진 첫날부터 후박꽃 사진을 찍습니다. 날마다 찍은 사진 가운데 어제 찍은 사진이 가장 어여쁘다고 느낍니다. 바람이 한 점조차 없이 아주 고요한 날 아침, 후박꽃이며 후박잎이며 그예 멈춘 듯 꽃내음과 풀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죽을 먹이다가 사진기를 들어 한손으로 찍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가 막 태어나 우리하고 함께 살아가던 때, 나는 첫째 아이가 아직 걸음을 못 떼던 무렵이든 한창 잘 걷던 무렵이든 제법 자란 무렵이든 날마다 안거나 업거나 걸리거나 하면서 골목마실을 여러 시간 다녔습니다. 이때에 늘 한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내 어버이 집을 떠나 혼자 살며 신문배달을 하던 때를 곰곰이 돌이킵니다. 그무렵 나는 자전거를 몰며 신문을 돌렸습니다. 왼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붙들고 오른손으로 바구니에서 신문을 한 장씩 꺼내어 손가락 두엇을 재게 놀리며 반으로 접은 뒤, 오른손으로 반 접은 신문을 허벅지에 탁 퉁기고는 다시 첫째손가락이랑 둘째손가락을 놀려 반을 더 접고는 손아귀로 신문을 집어들고는 손목힘으로만 휙 던져 골목집 대문 위쪽 틈을 지나 안쪽 문간에 톡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자전거를 달리며 이렇게 신문을 꺼내고 접고 던지고 했습니다. 때로는 어깨힘을 쓰기도 하는데, 2층이나 3층에 넣어야 할 때입니다. 웬만한 2층집은 자전거를 달리며 그냥 넣을 수 있고, 3층집이라면 자전거를 멈추어 올려 던집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아이 안고 한손 사진찍기를 할 수 있던 밑힘이라면, 한손으로 자전거 몰며 한손으로 신문 접어 넣기를 여러 해 하며 차근차근 쌓였을 수 있겠다 싶어요.


  살아가는 나날이 생각하는 나날입니다. 생각하는 나날이 사랑하는 나날입니다. 사랑하는 나날이 꿈꾸는 나날입니다.


  날마다 후박꽃 사진을 새롭게 찍으며 생각합니다. 이 어여쁜 후박꽃을 날마다 보는 동안 내 마음 또한 흐드러지게 활짝 피는구나 싶습니다. 내 눈이 어여쁜 후박꽃 아닌 얄궂은 사건사고 신문글에 얽매인다면 내 마음 또한 얄궂은 생각과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 차겠구나 싶습니다.


  어여쁜 아이들 어여쁜 웃음꽃을 늘 바라보는 사람한테는 어여쁜 웃음꽃이 시나브로 피어나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정치부 기자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정치꾼하고 가까이 지내며 취재를 하고 글을 쓰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한다면, 이녁 눈길과 머리와 가슴에는 정치꾼하고 엇비슷한 생각이나 지식이나 정보가 쌓이겠지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면서 자동차하고 가까이 사귈밖에 없습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아파트하고 가까이 지낼밖에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텔레비전에 익숙해질밖에 없습니다.


  꼭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아야만 알지 않아요. 푸른 숲 우거진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으레 도시살이를 힘들어 합니다. 노상 푸른 숲을 그리고 정갈한 시골을 바랍니다. 이때에도 참 마땅한 노릇인데, 숲삶이 몸에 깊이 밴 사람한테는 도시살이가 어울리거나 즐거울 수 없어요.


  자가용을 늘 타는 사람은 두 다리로 걷는 일이 낯설거나 새삼스럽거나 새롭겠지요. 그러나 다시 자가용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자가용이 익숙하거든요. 언제나 전철을 타던 사람은 자가용을 타면 좀 낯설거나 새삼스럽거나 새롭기 마련입니다. 택시만 타더라도 낯설거나 새삼스럽거나 새롭습니다. 다시 전철을 타면 익숙한 냄새와 느낌이 새록새록 피어나겠지요.


  나 스스로 가장 좋아할 만한 가장 어여쁜 꽃과 나무와 풀을 바라보며 즐겁게 읽고 사랑스레 사귀어 봅니다. 나는 내 마음을 온통 어여쁜 꿈과 이야기로 채우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아낄 만한 살붙이하고 가장 포근한 보금자리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내 생각과 가슴과 머리에 가장 빛나며 맑은 꿈과 이야기를 누비고 싶습니다. 예쁜 후박꽃을 예쁜 손길로 담고 싶습니다. 예쁜 후박꽃 사진을 예쁜 이웃한테 보여주고 싶습니다. (4345.4.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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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처음 나올 무렵 장만한 책인데, 그때에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 보니 제대로 못 읽고 덮었다. 2006년이면 오직 자전거만 타고 충북 음성과 서울을 주마다 들락거리던 때였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낸 이듬해에 시골집을 떠나 인천으로 옮겨야 했기에, 책을 주섬주섬 묶느라, 이무렵 나온 책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곤 했다. 2012년이 되어 여섯 해만에 새롭게 들춘다. 이제 와 읽어서 그러한지 모르나, 책이 아주 훌륭하다. 열네 살 철학이라지만, 마흔네 살, 여든네 살 사람들도 '생각'을 하자면 이 책을 읽어야 옳겠다고 깨닫는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열네 살의 철학- 십대를 위한 철학 길라잡이
이케다 아키고 지음, 김경옥 옮김, 현놀 그림 / 민들레 / 2006년 3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1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2년 04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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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지기 뜨개 책읽기

 


  여러 날을 들여 옷가지 한 벌 뜨는 마음은 어떠할까 헤아립니다. 곰곰이 헤아리기보다는 나 스스로 실과 바늘을 놀려 한 가지라도 뜰 때에 온몸으로 잘 알 수 있겠지요. 밭에서 돌을 고르고 이랑이랑 고랑을 낸 다음 씨앗을 심는 일 또한, 나 스스로 땀을 흘리고 품을 팔며 겨를을 기울일 때에 온몸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거나 책으로 읽는다 한들 하나도 알 수 없어요.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무엇을 하든, 어떤 일이거나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기 힘든 아픈 사람은 그저 마음속으로 헤아릴 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길을 걷는 일이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냥 걸을 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두 다리로 서는 일조차 꿈만 같습니다. 마음속으로 서고 마음속으로 걷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한테는 앉는 일마저 꿈이요, 언제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자리 털고 일어날 꿈마저 없는 채 지내기도 하겠지요.


  졸린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다 보면 이윽고 팔다리 등허리 모두 저립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리에 예쁘게 누워 잠들면 얼마나 좋으랴 싶지만, 이런 생각 저런 마음이란 퍽 배부른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무릎에 누일 수 있는 나날이란 더없이 좋으며 즐거운 삶이거든요. (4345.4.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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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5-01 10:41   좋아요 0 | URL
옆지기님이 뜨게질 고수시군요 와우 근사합니다

파란놀 2012-05-01 10:51   좋아요 0 | URL
고수는 아니에요.
이것 뜨는 데에 이레쯤 걸렸거든요... @.@

그냥 즐겁게 뜰 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