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어린이 발가락

 


  어머니 곁에 큰아이가 나란히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색연필은 바닥에 잔뜩 펼치고 그린다. 큰아이는 스스로 곱다 여기는 바지를 입으며 하루 내내 돌아다닌다. 발가락은 꼬물딱꼬물딱 하면서 그림은 저 그리고픈 대로 그린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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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와 ‘마음’
[말사랑·글꽃·삶빛 33] 삶과 넋과 말에 쏟는 사랑

 


  마음을 기울입니다. 마음을 씁니다. 마음을 바칩니다. 마음을 쏟습니다. 마음을 들입니다. 마음을 보내고, 마음을 움직이며, 마음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마음을 북돋아요.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 움직임’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말이 바뀝니다. 나는 한국사람이기에 한국말로 내 마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떠올리고 저런 말을 그립니다.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웃이나 동무는 내 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 저런 글을 영어나 중국말이나 일본말로 옮긴다 한다면,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 궁금합니다. 어떤 이는 ‘마인드’라는 영어를 써야 당신 뜻을 제대로 가리킨다 싶어 여느 한국말로는 나타내지 않는다는데, “마음을 기울이다”를 비롯해 “마음을 북돋우다” 같은 온갖 말마디를 영어로 옮기자면 어떻게 될까요. 지난날 지식인은 ‘마음’이라는 한국말보다 ‘정신(精神)’이라는 한자말을 즐겨썼는데, 숱한 ‘마음말’을 한자말로 옮겨적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생각하다·살피다·살펴보다·가누다·헤아리다·어림하다·따지다·돌아보다·되돌아보다·뒤돌아보다’ 같은 한국말은 어떠한 한자말이나 영어로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거꾸로 다른 한자말이나 영어 또한 한국말로는 가리킬 수 없어요.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는다 싶은 말로 옮겨적을 뿐입니다.


  연예인 조혜련 님이 쓴 《조혜련의 미래일기》(위즈덤하우스,2009)라는 책을 읽다가 36∼37쪽에서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위해서 마인드를 바꿔 보자.”와 같은 글월이랑 “이제는 ‘척’이 ‘진정한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단계가 되었다.”와 같은 글월을 봅니다. 조혜련 님은 ‘마인드(mind)’라는 영어로 당신 생각을 나타냈다가 ‘마음’이라는 한국말로 당신 생각을 다시 나타냅니다. 두 낱말을 쓴 자리는 다르지만, 두 낱말은 같은 이야기를 나타냅니다. 조혜련 님은 ‘같은 마음’으로 두 낱말을 써요.


  스스로 삶을 어떻게 일구려 애쓰는가에 따라 넋을 어떻게 북돋우는가 하는 매무새가 달라집니다. 삶을 일구고 넋을 북돋우는 매무새에 따라 말을 살찌우는 몸가짐이 달라집니다.


  마음은 ‘마음결’이 되고 ‘마음씨’가 됩니다. ‘마음무늬’가 되고 ‘마음밭’이 됩니다. ‘참마음’이 되고 ‘큰마음’이 되며 ‘첫마음’이 돼요. 마음자리를 살핍니다. 마음닦기를 생각합니다. 마음보기를 떠올립니다. 마음사랑을 하면서 마음길을 걷습니다. 마음날개를 펼치면 어떤 꿈으로 이어질까요. 마음다리를 놓아 서로 만날 수 있고, 마음집을 지어 가슴을 활짝 열 수 있어요. 하늘마음이나 바다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멧마음이나 들마음이 될 수 있어요. 새마음이나 풀마음이나 꽃마음이 되어도 즐거워요.


  스스로 사랑을 쏟기에 여러 가지 마음말을 빚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바치기에 이런 말 저런 글 하나둘 빛내요.


  고운마음·착한마음·맑은마음은 어떤 빛깔이 될까 헤아려 봅니다. 기쁜마음·너른마음·깊은마음은 어떤 무늬가 될까 어림해 봅니다. 마음에 씨앗 하나 두며 마음씨앗이 됩니다. 마음이 소담스레 무르익어 마음열매가 됩니다. 마음이 푸르디푸르게 빛날 적에 마음잎이 자라고 마음싹이 돋겠지요. 마음이 꽃과 같아 꽃마음이라 하고, 마음이 활짝 피어나 마음꽃이라 합니다. 마음이 씩씩하게 샘솟거나 터져오를 적에는 마음샘이 솟거나 마음줄기가 오른다고 할 수 있어요. 마음이 튼튼히 뿌리내릴 때에는 마음뿌리를 다스리고, 마음이 넓게 그늘을 드리우며 더위를 식힌다면 마음가지를 거느리겠지요.


  내 마음은 어디쯤 있을까요. 내 마음은 어디에 둘 때에 어여쁠까요. 이 땅에 태어나 자라는 사람들은 이녁 마음을 어떻게 건사하면서 마음빛을 밝힐 때에 저마다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어떤 마음밥을 받아먹으며 클까요. 어버이는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마음그릇이 되어 하루를 누릴까요.


  놀이를 누리는 놀이마음이고, 일을 누리는 일마음입니다. 고향을 그려 고향마음이요, 마을을 아끼면서 마을마음입니다. 누군가는 해마음·달마음·별마음이 됩니다. 마음에 햇살이 떠올라 마음햇살이 되고, 마음이 몽실몽실 구름처럼 흐르며 마음구름이 돼요.


  마음옷을 입습니다. 곱고 정갈하게 마음옷을 추스릅니다. 마음빨래를 합니다. 맑고 산뜻하게 마음빨래를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삶을 짓습니다. 마음쓰는 사람이라며 삶을 빛냅니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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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1-05 10:30   좋아요 0 | URL
영어의 '마인드'는 우리말로 '마음'과 조금 다른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된장님 즐겨 쓰시는 '얼'의 의미랄까요, 정신, 마음가짐?
저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정확히 집어낼 수는 없지만요.

파란놀 2012-11-05 11:20   좋아요 0 | URL
이 글에서도 말하지만, 영어와 한국말과 한자말(중국말,일본말)은 다 달라서, 1:1로 번역할 수 없어요.

거꾸로 생각해 보셔요. '마음'은 '마인드'로 옮길 수 없고 '정신'으로도 옮길 수 없어요. 비슷하게 따지자면, '얼'은 '스피릿'하고 비슷하다 하겠지요.

그러나, '마인드'라는 영어를 한국 사회에서 쓰는 사람은 '생각이 없이' 쓰기 때문에, 이 영어를 쓰는 사람 스스로 무슨 뜻이나 느낌인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으로든 다른 낱말로든 걸러내거나 고쳐쓸 수 없기도 하답니다.
 

 

 다시 보는 빈들

 


  지난해(2011년) 가을날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들판 가득한 나락빛을 보았고, 이내 들판 모두 텅 비는 호젓한 볏포기빛을 보았다. 이제 다시금 들판 가득한 나락빛을 보다가는 들판 모두 텅 비는 호젓한 볏포기빛을 본다.


  바람이 불어 들내음을 온 마을 골고루 흩뿌린다. 나는 어느새 들사람이 되고 들마음이 된다. 들을 바라보고 들을 생각한다. 시골에 내 땅이 있으면 내 논에는 겨울에 물을 대고는 얼음판이 되도록 할 테지. 겨울에 논을 새로 갈아 마늘을 심으면 돈푼 제법 만질 수 있다는데, 나로서는 돈푼보다 아이와 어른 누구나 마음껏 싱싱 달릴 논얼음판 꾸릴 수 있으면 기쁘리라 꿈꾼다.


  생각에 생각을 기울인다. 시골마다 아이들이 철철 넘치던 지난날에도 따순 남녘 시골에서도 논마다 마늘을 심었을까. 바지런히 마늘을 심는다 하더라도 한두 논배미는 마을을 안 심고 놀렸다가 물을 대어 얼음판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제아무리 먹고살기 빠듯하던 보리고개 근심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 마음껏 뛰놀 얼음판 하나쯤 넉넉히 마련하며 삶을 사랑하며 빛내지 않았을까.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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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들 누런빛 책읽기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살찌우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한국말이 한국말답게 국어사전에 제대로 안 실리곤 한다. 그런데, ‘노란빛’도 ‘누런빛’도 국어사전에 실린다. 뜻밖이라 하거나 놀랍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두 빛깔말이 국어사전에 실린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국어사전에 이런 빛깔말이 실리고 안 실리고를 떠나, 노란빛과 누런빛이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환하거나 해맑은가를 살결 깊숙이 가슴으로 느끼거나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내지 않으니 스스로 겪지 못한다. 스스로 겪지 못하니 스스로 알지 못한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데 깨닫거나 빛내지 못하고, 스스로 깨닫거나 빛내지 못하기에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노란빛과 누런빛 이야기를 글로 쓴다든지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사진으로 찍는다든지, 아니 무엇보다 말로 들려주지 못한다.


  스스로 살아낼 때에 알 수 있다. 스스로 살아낼 때에 비로소 알아보고 느끼며 말할 수 있다. ‘황금빛 물결’이란 너무 안 맞는다. 시골사람은 어느 누구도 ‘황금빛 물결’이라 말하지 않는다. 시골서 살며 ‘금’을 보거나 ‘금빛’을 생각할 일이 없는걸. 도시에서 금덩이나 돈을 주무르는 사람들 눈썰미로 생각하자니 ‘황금빛 물결’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튀어나올 뿐 아니라 널리 퍼진다.


  가을들은 ‘가을들빛’이다. 가을들빛은 누런빛이다. 누런빛은 나락빛이다. 나락빛은 사람들을 살찌우고 먹여살리는 밥빛이다. 밥빛은 삶빛이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곱다시 드리운 햇빛이다. 햇살이 살찌우고 돌본 벼빛이다. 흙일꾼이 구슬땀을 흘리며 사랑한 흙빛이면서 손빛이고 사랑빛이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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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자는 유자빛 책읽기

 


  유자 열매 노랗게 익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유자랑 탱자랑 엇비슷하다. 가까이서 보면 유자는 크고 탱자는 작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엇비슷하다. 유자는 무슨 빛깔이라고 할 만할까. 탱자는 무슨 빛깔이라고 할 만할까. 귤은? 감귤은?


  사람은 모두 달라 저마다 스스로 이름을 붙인다. 큰 테두리에서는 ‘사람’이고, 사람 테두리에서는 ‘이름’이 있다. 유자도 큰 테두리에서는 저마다 달라 ‘유자빛’ 한 마디로는 뭉뚱그릴 수 없다. 크게 얽어 ‘유자빛’이라 하지만, 유자 열매마다 빛깔과 빛결과 빛무늬가 조금씩 다르다. 똑같은 모양이나 크기나 무게나 맛이나 멋인 유자 열매는 한 가지조차 없다. 그런데 유자나무에 달린 유자잎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나무이건 다 다른 가지가 자라서 다 다른 잎이 돋는다. 다 다른 꽃이 피고 다른 열매를 맺으며 다 다른 씨앗을 키운다. 다 다른 씨앗은 다 다른 땅으로 떨어져 다 달리 뿌리를 내리며 다 다른 나무로 새삼스레 자란다. 얼마나 아름다운 숲이요 마을이며 지구별인가.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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