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놀이

 


  아름답게 꿈꾸며 살아가기에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가장 좋은 마음을 품으며 말을 섞고 사랑을 빛내며 뜻을 펼칠 때에 내 하루를 즐거이 누립니다. 스스로 놀이를 즐겁게 생각하기에 언제나 스스로 즐겁게 웃습니다. 누가 이끌거나 시키는 놀이를 한다면 자꾸 누군가한테 기대요. 스스로 삶을 짓기에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고 스스로 꿈을 피울 수 있습니다.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먹는 삶은 어느 누구도 따로 배우지 않아요. 갓난쟁이도 아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스스로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먹어요. 돌이켜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바람·햇살·빗물(또는 냇물), 이렇게 세 가지만 먹고살았을 수 있어요.


  작은아이가 누나 신을 예쁘게 여겨 신고 벗는 놀이를 한참 합니다. 여러 날째 지치지 않고 씩씩하게 신발놀이 즐깁니다. (4345.11.1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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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똥을 뿌지직 신나게 놀자!
윤아해 외 글, 신동준 그림 / 사파리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무얼 먹고 살아가나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7] 신동준·윤아해 보린 유다정, 《초록똥을 뿌지직》(사파리,2012)

 


  풀을 먹으니 풀똥을 누고 풀내음을 풍겨요. 밥을 먹으니 밥똥을 누며 밥내음을 풍겨요. 아닌 듯하나요? 고구마 먹으면 고구마똥을 누고 고구마내음 솔솔 피우는 방귀 뀌잖아요. 감자 먹으면 감자똥을 누며 감자내음 솔솔 피우는 방귀 뀌어요.


  상추를 먹으니 상추똥을 눕니다. 쑥을 먹으니 쑥똥을 눕니다. 파를 먹으면 파똥을 누고, 부추를 먹으면 부추똥을 누어요. 미역 먹은 사람은 미역 방귀를 뀝니다. 김 먹은 사람은 김 방귀를 뀝니다.


  돼지고기 먹었으니 돼지고기가 뱃속에서 찬찬히 삭은 다음 돼지고기 방귀 뽕뽕 뀌어요. 술을 마시면 술 방귀를 뀌고, 과자를 먹으면 과자 방귀 뀌겠지요.


  풀을 먹는 짐승들은 풀똥을 눕니다. 고기를 먹는 짐승은? 아주 마땅히 고기똥을 누겠지요. 사람은 무슨 똥을 눌까요? 사람은 무얼 먹고 무슨 똥을 누면서 살림을 꾸릴까요? 어른들은 무슨 밥을 즐겨서 먹고, 아이들한테 어떤 밥을 차려서 먹일까요?

 

 

 

 


  먹은 대로 똥이 나오듯, 읽은 대로 생각이 나오리라 느껴요. 곧, 책을 읽으면 저마다 읽은 책결 그대로 생각이 나오겠지요. 다만, 이 책을 읽는대서 이 책에 담긴 줄거리나 알맹이처럼 생각이 나오리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책에 깃든 줄거리와 알맹이’를 받아들이자면, 이 책을 쓴 사람 넋과 꿈과 사랑을 내 삶으로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거든요. 마음그릇은 아직 안 되었으면서 책만 먼저 읽는대서 책읽기가 되지는 않아요. 마음그릇을 알차게 다스린 뒤에라야 비로소 책읽기를 할 수 있어요.


  아닌 듯하나요? 그러면 갓난쟁이한테 고기를 먹여 보셔요. 먹을 수 있나요? 갓난쟁이는 족발을 뜯지 못해요. 갓난쟁이는 낙지를 날로 먹지 못해요. 아직 어금니 없는 아이는 오이조차 깨물어 먹지 못해요. 곧, 아이들은 ‘이가 제대로 나고 잇몸이 튼튼해야’ 비로소 온갖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아이들은 조금만 매우거나 시거나 달거나 짜거나 시큼하거나 뜨겁거나 차가울 때에도 못 먹어요. 곧, 글을 읽을 수 있다지만 글에 깃든 넋을 읽지 못한다면 글에 깃든 생각을 읽지 못해요. 글은 읽더라도 줄거리와 알맹이가 어떤 깊이요 너비인지 헤아릴 수 없다면 ‘글자 읽기’로 끝날 뿐이에요.


  밥을 맛나게 먹으며 씩씩한 기운을 즐겁게 얻습니다. 책을 기쁘게 읽으며 슬기로운 생각을 반갑게 얻습니다. 밥을 맛나게 먹을 수 있게끔 몸을 튼튼히 다스립니다. 책을 기쁘게 읽을 수 있도록 마음을 알뜰살뜰 가꿉니다.

 

 

 

 


  풀 먹는 달팽이는 풀똥을 흙에 남깁니다. 풀 먹는 사람은 풀똥을 거름으로 삼아 새롭게 곡식을 일굽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을 먹고 똥오줌을 누면서 이녁 보금자리를 가꿀까 궁금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꿈과 사랑으로 흙과 풀을 보살필까 헤아려 봅니다.


  신동준 님이 그림을 그리고, 윤아해·보린·유다정 세 분이 글을 넣은 그림책 《초록똥을 뿌지직》(사파리,2012)을 읽습니다. 풀잎이나 오이를 먹을 때에는 풀똥을 푸르게 누고, 노란 꽃잎을 먹을 때에는 노란 빛깔 똥을 누며, 빨간 딸기를 먹을 때에는 빨간 빛깔 똥을 누는 달팽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앙증맞게 엮습니다.


  참말 달팽이는 먹은 대로 똥을 눕니다. 달팽이가 먹은 것 빛깔에 따라 달팽이 똥빛이 달라져요. 그림책이라서 부러 재미나게 그린 모습이 아니에요. 참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달팽이뿐 아니라 어느 짐승이든 똑같아요. 어느 짐승이든 저마다 먹는 대로 똥을 누어요. 다만, 염소나 토끼나 노루는 똥빛이 풀빛을 닮지는 않는데, 이들 풀짐승이 누는 풀똥은 고스란히 흙으로 돌아가며 풀과 나무가 새삼스레 씩씩하게 자라는 거름이 됩니다. 오늘날에는 우리에 가두어 키운다 하지만, 염소이든 토끼이든 노루이든 들판과 멧골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풀을 먹고 똥을 눌 적에는 이들이 ‘밥을 먹은 자리(풀을 먹은 자리)’에 똥을 누고 오줌을 누어요. 고스란히 풀한테 돌려주는 삶이에요.

 

 

 

 


  우리가 마시는 바람은 곧바로 들숨 날숨 되어 바깥으로 나옵니다. 푸른 숨을 들이마신 뒤에는 푸른 기운을 내보냅니다. 매캐한 숨을 들이마시고 나서는 매캐한 기운을 내보내요.


  푸른 말을 들었으면 푸른 말이 나오겠지요. 따순 말을 듣는 사람은 따순 말이 흘러나올 테지요. 고운 말을 들으며 고운 말이 터져나올 테니, 예부터 가는 말이 고울 때에 오는 말이 곱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요즈음 우리 누리를 살피면, 가는 말이 곱다 하더라도 오는 말은 안 고울 때가 있어요. 곱거나 따숩거나 참답거나 착하거나 푸르거나 어여쁜 말이 흘러도, 귀를 꽁꽁 닫거나 막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음을 콱 닫아걸고는 모질거나 거친 말을 일삼는다든지, 뒤틀리거나 비틀린 말을 내뱉는 사람들마저 있어요.


  풀을 먹어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무엇을 먹더라도 생각이 아름답고 삶이 아름다울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요. 말투와 말씨가 곱대서 고운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아요. 생각과 말과 삶이 한동아리 되어 고울 때에 비로소 고운 사람이라고 느껴요.


  달팽이는 달팽이 삶에 맞추어 알맞게 먹고 걷고 자고 놉니다. 사람은 어떤 삶을 헤아리며 먹고 걷고 자고 노는 하루를 누리는가요. (4345.11.11.해.ㅎㄲㅅㄱ)

 


― 초록똥을 뿌지직 (신동준 그림,윤아해 보린 유다정 글,사파리 펴냄,2012.9.3./9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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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사는 즐거움이라면
 [고흥살이 13] 아이들 마을놀이

 


  시골 사는 즐거움이라면 아이들 마을놀이가 아닌가 느낍니다. 아이들은 자동차 빵빵 뿡뿡 시끄럽지 않은 시골에서 맨발로 논을 달리고, 고샅길을 이리저리 저희 땅으로 삼아 돌아다닙니다. 마당에서도 놀고, 마을에서도 놉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이나 보육원이나 유치원에 보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집과 마을과 숲에서 저희끼리 신나게 뛰놀 수 있으면 돼요.


  나라에서 보육비 지원을 해 주어야 보육정책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는 어른들 누구나 회사일에 적게 얽매이면서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어울릴 겨를이 넉넉할 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보육정책이 되리라 느껴요. 아이들 얼굴도 보기 힘든 오늘날 문명사회가 참말 ‘문명’다운지 알쏭달쏭해요. 맞벌이를 해서 돈은 많이 번다지만, 아이들은 돈을 몰라요. 아이들은 돈을 쓰지 않아요.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뛰놀 뿐이에요.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놀고 달리듯, 어른들도 개구지게 뛰놀고 달려요. 이름표도 계급장도 모두 내려놓고, 나이값도 밥그릇 숫자도 모두 내려놓으며 즐겁게 뛰놀고 달려요. 가을바람을 쐬고 가을햇살을 맞으며 가을내음을 듬뿍 들이켜요. (4345.1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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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한 줄기

 


  빛 한 줄기 있어 삶을 누립니다. 빛 한 줄기 있어 책을 읽습니다. 빛 한 줄기 있어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으며, 길을 걷습니다. 나는 내 가슴속에서 빛 한 줄기를 봅니다. 나는 옆지기와 아이들한테서 빛 한 줄기를 느낍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과 별한테서 빛 한 줄기를 느끼고, 낮하늘을 바라보면서 햇살과 구름한테서 빛 한 줄기를 받아먹습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빛 한 줄기가 흘러나옵니다. 풀 한 포기에서 빛 한 줄기가 새어나옵니다. 가을날 쑥꽃을 봅니다. 겨울날 동백나무를 봅니다. 봄날 들판을 봅니다. 여름날 바다를 봅니다.


  내 둘레에 이루어진 숲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루는 숲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숲에서 내 마음과 생각과 사랑이 어떤 숲이 되어 숲바람과 숲햇살과 숲내음을 나눌 수 있는가 헤아립니다.


  내 가슴속 빛 한 줄기는 내 숨결이 되어 내 눈빛으로 나타납니다. 내 마음속 빛 한 줄기는 글 한 줄이나 말 한 마디 되어 내 노랫가락으로 드러납니다. (4345.1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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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팬클럽·공지영 팬카페

 


  누군가를 마음 깊이 섬기거나 모시는 일은 훌륭하리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섬기면서 스스로를 올바로 가다듬을 수 있고, 누군가를 마음 넓게 모시면서 스스로를 어여삐 다스릴 수 있어요. 그런데, 팬클럽이나 팬카페처럼 받아들이면 그만 스스로 수렁에 빠집니다.


  팬클럽을 이루거나 팬카페를 여는 일이 잘못일 수 없습니다. 다만, 팬클럽이나 팬카페가 되면서 스스로 잘잘못을 바라보지 못하고 말아요. 제 눈에 들보라는 말처럼, 눈꺼풀이 쓰이고 말아요.


  2012년 대통령 뽑는 자리에 나온 박근혜 님을 깊이 섬기면서, 박근혜 씨가 하는 일이나 읊는 말이라면 모두 받들거나 몽땅 우러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의자놀이》라는 책을 내놓고 ‘진보 의제’까지 건드리면서 더 널리 이름값 높이는 공지영 씨가 쓰는 글이나 내놓는 책이라면 모두 읽거나 몽땅 외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른바 ‘박근혜 팬클럽’과 ‘공지영 팬카페’입니다.


  누군가 박근혜 씨를 좋아하거나 섬기는 일이 잘못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면 좋아할 뿐입니다. 누군가 공지영 씨를 아끼거나 즐겨읽는 일이 허물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즐기면 즐길 뿐입니다.


  박근혜 씨를 일부러 깎아내릴 까닭이 없고, 공지영 씨를 애써 나무랄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 그대로 바라보면서 숨결 그대로 맞아들이면 됩니다. 말과 넋과 삶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내 삶을 옳고 바르며 즐겁고 아름다이 추스를 수 있으면 됩니다.


  박근혜 씨는 ‘독재자 딸’이 아니라 박근혜 한 사람입니다. 공지영 씨는 ‘유명 작가’가 아니라 작가 한 사람 공지영입니다. 정치밭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박근혜 씨라면, 정치밭에서 하는 일과 읊는 말을 살피면서 이이 매무새를 가늠할 노릇입니다. 글밭에서 글을 쓰겠다는 공지영 씨라면, 글밭에서 하는 일과 읊는 말을 살피면서 이이 몸가짐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팬클럽을 만들든 팬카페를 열든 ‘취향’이고 ‘자유’라 할 테지요. 그런데, 팬클럽과 팬카페 목소리에 묻혀 정작 ‘작고 낮은 여러’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팬클럽 목소리와 팬카페 글이 넘치면서 온누리 ‘작고 낮은 여러’ 사람들 얼굴과 몸뚱이가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따지고 보면, ‘리영희 팬클럽’이든 ‘이오덕 팬카페’이든 몹시 부질없습니다. 리영희를 읽는 이라면 리영희 님 넋과 얼을 내 넋과 얼이 거듭나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뿐입니다. 이오덕을 읽는 이라면 이오덕 님 슬기와 깜냥을 내 슬기와 깜냥이 새로워지는 밑틀로 삼아야 할 뿐이에요.


  밭에서 풀을 뽑을 때에나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입니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숙일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를 재우거나 젖물리는 어버이가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힙니다. 사람이 사람 앞에서 줄을 세우거나 금을 그을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살피지 못하고 ‘박근혜 팬클럽 줄서기’를 한다든지(또는 ‘공지영 팬카페 금긋기’를 하는 이들은 스스로 이녁 가슴속에 깃든 빛줄기를 짓밟는 꼴입니다. 스스로 서야지, 남을 세울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빛나야지, 남을 빛낼 일이 아닙니다. 즐기지 않고 무리를 만드는 사람은 권력으로 치달아 독재자를 만듭니다. (4345.11.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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