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는 손 글쓰기

 


  하루 내내 물을 만지며 집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이 트거나 갈라진다. 밥을 하든 걸레질을 하든 아이 똥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든 빨래를 하든 무엇을 하든, 하루 내내 물을 만지기에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다.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으니 손에 연필을 쥐어 종이에 이야기 한 자락 끄적일 틈은 빠듯하다. 물기 어린 손으로는 종이도 필름도 만질 수 없다. 그렇다고 손이 마를 적에 종이나 필름을 만질라치면,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른다.


  연필만 붙잡고 살아가더라도 손가락에 알이 배기고 굵어지는데, 물을 만지면서 하루를 누리는 사람이 틈틈이 연필을 쥐고, 자전거를 타며, 책을 만지작거리니까, 두 손은 조그맣지만 야물딱지게 움직여 준다. 내 자그마한 손이 이토록 많은 일을 건사하면서 온갖 생각을 삶으로 빚도록 이끌 수 있으니 놀라우면서 고맙다. 내 글은 내 삶이고, 내 손은 내 삶을 살린다. 내 글은 내 사랑이고, 내 손은 내 사랑을 키운다. 4345.1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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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이 숲에는 비둘기 살고
저 숲에는 딱따구리 산다.

 

삐앗삐앗 빼빼 노래하는
작은 새 살고
삐이이이 휘이이이 노래하는
조그만 새 산다.

 

새들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들은 또 풀숲에
보금자리를 엮어
어느 새는
철 맞춰 따순바람 안고
흙집 처마에 깃들지만
어느 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숲속에 깃든다.

 

숲은 새들 삶터
숲은 풀과 나무 삶터

 

사람들 함부로 구멍 뚫거나
사람들 섣불리 긁어내어도 될
값싼 개발지구가 아니다.

 


4345.10.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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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무늬

 


  가을에는 해가 구름 뒤에 꽁꽁 숨는 날이 잦다. 여름에는 해가 구름을 멀리 쫓는 날이 잦다. 여름날에는 빛나는 햇살을 받아 싱그러이 해맑은 풀빛을 누린다. 가을날에는 구름 짙게 드리운 흰그림자 받아 한결 붉으면서 누런 풀빛을 만난다. 아침놀도 저녁놀도 모두 붉으면서 노랗게 타오르듯, 봄들 무늬도 가을들 무늬도 언제나 활활 타오르듯 붉으면서 노랗게 눈부시다. 4345.1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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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과 멧비둘기 (도서관일기 2012.11.15.)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으로 오면, 아이들은 사다리도 타고 골마루를 달리기도 하지만, 곳곳에 가득가득 꽂힌 책을 들추기도 하며, 저희 마음에 드는 책을 펼쳐 읽기도 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도서관을 꾸린다. 곧,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라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놀 적에는 실컷 놀다가 책이 문득 생각나면 스스로 마음에 맞는 책을 살피고 찾아 스스로 읽도록 한다. 아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없다. 아이들이 만져서는 안 될 책은 없다. 아직 아이들 눈높이에 안 맞는 책이 있기는 할 테지만,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풀을 만지며 나무를 만지듯 책을 만진다. 아이들은 스스로 책기운을 느낀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어른이라서 꼭 읽어야 할 책이 있을 수 없다. 스스로 느낄 때에 읽는 책이지, 누가 읽어 보라며 내민대서 읽지 못한다. 스스로 마음그릇 알뜰히 갖춘 다음 비로소 읽는 책이다. 이를테면, 권정생 할아버지 책을 꽤 많이 읽는다고들 하지만, 읽기는 읽되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주 적다. 권정생 할아버지 글을 읽고도 자가용하고 안 헤어지는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자가용하고 헤어진 듯 갖은 티를 내다가 슬그머니 자가용하고 다시 징하게 사귀는 사람이 퍽 있다.


  마땅한 얘기인데, 반드시 자가용하고 헤어져야 하지는 않다. 처음부터 안 사귀면 된다. 사귀지 말고 만나면 된다. 고마운 벗으로 여겨 가끔 만나면 즐겁다. 내 고운 벗님은 내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기도 하고, 내 반가운 벗님은 귤이나 먹을거리를 선물로 보내기도 한다. 자가용 모는 이웃을 가끔 만나며, 나로서는 고마운 선물을 받는다고 느낀다.


  책은 무엇일까. 책은 삶을 사랑으로 빚은 이야기꾸러미이다. 삶을 사랑으로 빚은 이야기꾸러미를 아름드리 숲에서 어여쁜 나무를 베어 얻은 종이에 담는다. 책 하나가 대단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책을 빚은 사람들 손길이랑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 숨결을 생각할 적에는 참 즐겁다. 나는 책을 책 아닌 이야기동무로, 나무숨결로 여기며 마주한다. 도서관이라 할 때에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진 자리란 뜻이다. 내가 누리면서 나누고픈 서재도서관은 ‘사람들 사랑 어린 꿈’과 ‘숲에서 자란 나무들 사랑 깃든 꿈’이 만나는 자리로 보듬는다.


  문닫은 지 제법 되어 거의 숲처럼 바뀐 옛 흥양초등학교 건물이 깃든 도서관 창문을 열었더니 멧비둘기 한 마리 들어온다. 이곳에서 나무내음을 맡았니. 그러나 여기에는 네 먹이가 없단다. 조용히 날갯짓하며 네 숲으로 돌아가렴. (ㅎㄲㅅㄱ)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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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demian 2012-11-2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가용과 사귀지 말고 만나라! 정말 쏙 들어오는 문장이네요. 요즘엔 정말 자동차를 애인으로 여기며 광고하고 아끼고 있는데..자가용과 사귀지 말고 만날 이유는 권정생 선생님 책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도서관을 운영하시나요? 책이 삶을 사랑으로 빚은 이야기꾸러미라는 동시에 나무숨결이란 말도..나무숨결 대하듯이 책도 내 삶도 소중하게 대해야겠지요??

파란놀 2012-11-26 19:58   좋아요 0 | URL
저는 2007년 4월부터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개인도서관(서재도서관)'으로 열어서 꾸렸어요. 지난 2011년 가을부터는 전남 고흥으로 옮겨서 이 일을 이어가요. 알라딘서재에서 '사진책도서관 일기' 게시판에 올린 글은, 도서관을 꾸리며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자리랍니다.

권정생 님 동화책 모두, 또 산문책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을 읽어 보시면, 오늘날 도시사람이 왜 '정치 변혁'이나 '사회 개혁'을 이루는 힘을 모으지 못하는가 하는 '밑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다만, 권정생 님은 '대놓고 어떤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말마디에 서린 넋을 읽으면, 동화책에 서린 꿈과 사랑을 알 수 있고, 산문책에서는 퍽 여러 가지 이야기를 대놓고 조곤조곤 말씀하시기에, 이 산문책을 읽으며 삶을 다스릴 좋은 슬기를 얻을 수 있어요.
 
나무, 나의 모국어 민음의 시 180
이기철 지음 / 민음사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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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꿈
[시를 말하는 시 6] 이기철, 《나무, 나의 모국어》

 


- 책이름 : 나무, 나의 모국어
- 글 : 이기철
- 펴낸곳 : 민음사 (2012.2.24.)
- 책값 : 8000원

 


  비인지 눈인지 얼음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밤입니다. 아마 다른 데에는 눈이 내리겠구나 싶은데, 하루 내내 구름 잔뜩 낀 날씨였습니다.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아, 빨래줄 기저귀는 빨래집게를 꽂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해도 들지 않으면서 바람도 불지 않으니, 빨래를 말리기에는 더없이 궂은 날입니다. 옷가지를 마당에 넌대서 빨래가 마를 듯하지 않아, 낮 두 시부터 빨래는 집으로 들입니다.


  낮이 기울어 저녁으로 넘어설 무렵 두 아이와 자전거마실을 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라 어느 길로 달려도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쌀쌀한 기운도 다른 날보다 한결 적게 느낍니다. 그래도 손이 시려 얼어붙습니다. 이제 장갑을 끼고 자전거를 탈 철인데, 자꾸 잊습니다.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바람소리 들리지 않으니, 작은아이 곁 큰아이랑 자전거 이끄는 아버지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한참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천천히 달리는데,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얘기합니다. “이제 노래 그만 불러 줘요. 보라(동생 이름) 자니까요.”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저 구름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겼을까요. 멀찍이 떨어진 데에서 바라보니 ‘구름덩이’일 텐데, 훨훨 날아 구름 곁에서 바라본다면 구름덩이란 ‘물방울이 무리지은 모습’으로 느낄 수 있을 테지요. 우리 눈으로는 한 덩이를 이룬 모습으로 보지만, 구름은 한 덩이 아닌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이룬 어깨동무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내 몸 또한 멀리서 볼 적에는 한 덩이라 할 터이나, 찬찬히 뜯어서 살피면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졌고, 수많은 세포는 빈틈없이 이어졌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세포를 이루는 원자나 분자를 따지면 서로 붙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요.


.. 돌이 따뜻해질 때까지 / 돌 위에 앉아 시를 쓴다 ..  (나무, 나의 모국어)


  나는 무엇으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삶은 무엇으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밥이란, 물이란, 바람이란, 햇살이란, 흙이란, 나무란, 풀이란, 저마다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이루는 분자나 원자는 왜 이렇게 서로 가까이 이어지며 나란히 움직일까요. 내 몸은, 구름덩이는, 무지개는, 별은, 잎사귀는, 어쩜 이렇게 어여쁜 모습으로 엮인 채 삶을 누릴 수 있는가요.


  내가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가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국을 끓이며 국을 바라봅니다. 국은 펄펄 끓으며 나를 바라봅니다.


  고즈넉한 밤입니다. 비인지 눈인지 얼음인지 내리기에 훨씬 고즈넉합니다. 들새도 멧새도 이 차가운 물방울에 젖지 않으려고 모두들 깊은 숲이나 굴에 머물며 쉬겠지요.


  이런 날, 새들은 먹이를 어디에서 찾을까요.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새들은 먹이를 못 찾고 벌벌 떨기만 해야 할까요. 시골숲에서 살아가는 너구리나 족제비나 오소리나 삵은 저희 삶을 어떻게 꾸릴까요. 토끼나 다람쥐나 노루나 고라니는 저마다 저희 삶을 어떻게 누릴까요.


.. 창을 달자 첫 내방객은 햇빛이다 // 내 시의 첫 글자는 햇빛 / 그 아래서 바람은 생을 건축한다 / 하루는 태양의 분말이라고 쓰고 / 그 뒷 구절은 침묵 ..  (마음 허공에 창을 달다)


  누구나 꿈을 꾸는 대로 살아갑니다. 꿈을 꾸지 않은 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기쁜 꿈이든 서운한 꿈이든, 밝은 꿈이든 어두운 꿈이든, 저마다 스스로 꿈을 짓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넉넉히 받으면서 사랑스러운 꿈을 꿉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사랑이 사라진 꿈을 꿉니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이웃과 동무한테도 사랑을 퍼뜨립니다. 사랑이 메마른 사람은 이웃과 동무한테도 메마른 가슴을 퍼뜨립니다.


  고소한 밥내음은 멀리멀리 고소한 이야기로 흩어집니다. 고약한 쓰레기내음은 두루두루 고약한 이야기로 흩어집니다.


  말 한 마디는 살가운 꿈처럼 번집니다. 글 한 줄은 서글프거나 아픈 화살처럼 퍼집니다. 한 사람이 빚는 사랑스러운 꿈이 온 사람이 누리는 사랑스러운 꿈이 됩니다. 한 사람이 빚는 퀴퀴하고 어두운 꿈이 온 사람이 누리는 퀴퀴하고 어두운 꿈이 됩니다.


.. 스스로 가슴에 들어와 집을 짓는 이름들 / 그것을 누가 처음 사랑이라 불렀을까 ..  (한 그루의 시)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기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보듬지 못하기에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이른바 ‘만장일치’라 하지만, 어떤 일이든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니 모두가 흐뭇해 할 길을 찾지 못할 뿐입니다.


  언제나 가장 바탕이 되는 대목을 살펴야 합니다. 곧 ‘삶’을 살펴야 합니다. 살겠습니까, 죽겠습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살아가는 길과 죽는 길을 놓고 살펴야 합니다. 살고 싶으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물어야 합니다. 즐겁게 살고 싶은지 슬프게 살고 싶은지를 다루어야 합니다. 웃으며 살고 싶은지 울며 살고 싶은지를 보아야 합니다.


  일부러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애써 죽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왜 이런 슬프고 아픈 길을 가려 할까요. 어떤 슬픔과 아픔이 이녁을 죽음으로 내몰까요.


  꿈을 찾아 사랑으로 보듬을 때에는 누구나 반가이 맞아들입니다. 꿈도 사랑도 아닌 정책이나 제도가 되면, 어쩌는 수 없이 다수결로 나아가고, 이때에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생깁니다. 모든 사람이 즐거울 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어떤 사람’이 셈속을 챙기는 길로 빠지고 말아요.


  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을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왜 사대강개발을 밀어붙일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왜 미국 군대가 이 나라에 틀어앉아 수많은 무기를 만드는 데에 엄청난 돈을 쓰게 할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왜 입시지옥은 사라질 낌새 없이 더 커지기만 할까요, 이 민주주의 나라에서.


.. 그러면 키 큰 빌딩들이 새를 부르지 못하는데 그 아래 선 나무들이 새를 불러 모으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  (불멸―숲에 들 때)


  꿈을 꿀 때에 사랑을 합니다. 꿈을 꾸며 사랑을 할 때에 시를 씁니다. 꿈을 꾸며 사랑을 할 때에 시를 쓰면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웃음꽃이 피면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이야기가 샘솟으면서 마을이 이루어집니다.


  따로 문학을 하는 사람이 있고, 따로 시집이 나오며, 따로 문학평론이 있습니다. 따로 시를 짓는 사람이 있고, 따로 시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으며, 따로 시를 배운다는 대학교 학과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따로 정화조를 묻고 상수도를 묻어 수도물을 마십니다. 따로 댐을 짓고 따로 온갖 시설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따로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히는 시설과 공장을 만들’어 물과 바람을 따로 ‘걸러서 먹고 마시’도록 꾀합니다. 처음부터 ‘물과 바람과 흙을 안 더럽히도록 시설과 공장이 없’다면, 누구나 냇물을 떠서 마시고 샘물이나 우물물을 퍼서 마시겠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따로 죽음길로 나아가요. 돈 되는 길이라 일컫지만, 돈이 되는 길은 정작 죽음길이로구나 싶어요.


  왜 커다랗게 공장을 세워 먹는샘물을 페트병에 담아 팔아야 하나요. 왜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공장을 세우고, 찻길을 닦으며, 짐차로 나르고, 가게 불빛을 밝혀 먹는샘물을 돈으로 사고팔아야 하나요. 전기도 석유도 어떻게 뽑아내어 쓰는가요. 이 모든 품과 겨를과 돈과 흐름을 헤아린다면, 냇물이 그저 냇물이도록 지켜보면서 돌보면, 누구나 가장 맑고 싱그러운 물을 돈 안 들이고 늘 마실 수 있어요. 수도물을 만들고 먹는샘물을 만들면서 ‘어떤 사람’은 돈을 벌고, ‘다른 수많은 사람’은 도시에서 노예처럼 쳇바퀴살이에 허덕이고 말아요.


.. 시집 한 권 살 돈이 없어 온종일 헌책방 돌 때 있었네 / 남문시장 고서점, 시청 옆 헌책방 돌 때 있었네 / 하루에 서른 편 키 큰 서가 아래 지팡이처럼 서서 읽을 때 있었네 / 모두들 서럽고 쓸쓸한 말로 시의 베를 짜고 있었네 ..  (사랑의 기억)


  이기철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나무, 나의 모국어》(민음사,2012)를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무가 ‘내 어머니말’이라고 밝히는데, 나무는 누구한테나 ‘나무말’일 뿐입니다. 풀은 누구한테나 ‘풀말’이요, 바람은 누구한테나 ‘바람말’입니다. 어머니이기에 ‘어머니말’입니다. 사람은 ‘사람말’이요, 사랑일 때에는 ‘사랑말’이에요.


  꿈을 꾸는 사람은 ‘꿈말’을 나눕니다. 저마다 삶을 누리며 ‘삶말’을 해요. 하루하루 목숨을 잇는 우리들은 언제나 ‘목숨말’, 곧 내 온 목숨이 서린 말을 합니다.


.. 겨울에도 파란 마늘잎 미나리잎을 보며 / 저것이 내 국어책이라고 생각했다 ..  (나의 국어책은 들판이었다)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내 글 한 줄 쓰자면, 나는 내 삶을 글로 쓰기에, 스스로 삶을 읽어야 스스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느껴요.


  당신은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나는 어디에서 살아가나요. 당신은 어떤 꿈으로 살아가나요. 나는 어떤 꿈으로 살아가나요.


  시는 꿈입니다. 시쓰기는 꿈쓰기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시를 씁니다. 꿈을 누리는 사람은 스스로 시를 읽습니다. 돌멩이를 만지며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어머니 머리카락을 쓸면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아이들 먹을 밥을 차리면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별빛 쏟아지는 시골 밤하늘 누리면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왁자지껄 시끄럽고 어수선한 서울 한복판에서도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면 사랑이 서린 꿈으로 시를 읽고 시를 씁니다. 사랑이 없는 채 바삐 몰아치거나 쳇바퀴 돌듯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이녁은 이녁대로 쳇바퀴를 시로 삼아 읽고 쳇바퀴를 시로 씁니다. 4345.1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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