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책읽기 (ㅈ상병)

 


  군인 ㅈ상병은 상병이라는 군대 계급을 얻기까지 사흘 가운데 하루는 휴가나 외박으로 지냈다. 연예인으로 있다가 군인이 된 ㅈ상병은 여론 뭇매를 받았고, 군부대에서 ㅈ상병한테 ‘근신 이레’라는 징벌을 준다. ㅈ상병은 이레 동안 ‘자숙’을 하면서 책을 두 권 읽었다고 한다.


  군인 ㅈ상병은 연예인이기에 여느 사람들과 달리 ‘사흘 가운데 하루를 휴가나 외박으로 지새우기’를 누렸고, ‘여론 뭇매’를 받으며, ‘근신 이레’라는 징벌을 받는데다가, ‘근신 이레 동안 책 두 권 읽기’를 하는구나 싶다. 여느 군인이었고, 강원도 양구 ‘최전방’이라는 데에서 젊은 날을 보낸 내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나는 여섯 달에 한 번 휴가 나오기도 힘들었지만, 열석 달만에 휴가를 나온 적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외박을 딱 하루 받은 적 있고, 내가 군대에 있는 스물여섯 달 동안 읽을 수 있던 책은 한 권조차 없다. 나는 ‘영창’이라 하는 군대 감옥에 간 적은 없지만, 여러 선배나 동기나 후배는 영창살이를 했으며, 영창이 아니더라도 ‘군기교육대’라는 데를 다녀와야 하던 이들이 많았다. 영창이나 군기교육대를 가지 않더라도, 지오피 근무를 마치고 주둔지로 내려오면 두 달에 한 차례 군단훈련·사단훈련·연대훈련·중대훈련 들이 잇달았고, 한여름과 한겨울에 혹서기훈련·혹한기훈련이 찾아왔다. 혹서기훈련은 새로운 신병교육대 채찍질이요, 혹한기훈련은 영하 20∼30도 추위에 얼음산에서 텐트 치고 자면서도 살아남도록 하는 발길질이었다.


  내가 ‘최전방’에서 군대살이를 했기에 ㅈ상병 또한 최전방 군대살이를 해 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ㅈ상병 스스로 ‘최전방’에 가겠다 말하니, 또 ‘근신 이레’를 하면서 책 두 권 읽었다고 하니, 문득 내 군대살이가 떠오른다. 군대 관계자들은 ‘보직 변경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듯 말하지만, ‘신청’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땅개로 구르는 육군 보병조차, 어쨌든 ‘신청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저, 신청을 하는 방법을 안 알려줄 뿐이요, 신청을 한들 들어주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만고땡’이라는 보직을 누리는 이들이 스스로 ‘육군 땅개’가 되고 싶다 하면 ‘귀엽게(?)’ 봐주면서 육군 땅개로 굴러 보라고 해 주곤 한다.


  비록 ‘상병’까지 되고 나서 최전방에 가겠다고 하는 품이 미덥지 않으나, 최전방 지오피 말고, 지오피 바로 밑에 있는 주둔지로 가 보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두 달에 한 차례, 때로는 다달이 훈련을 뛰어 보기를 바란다. 훈련을 뛰느라 휴가도 외출도 외박도 없이, 병장을 달고 전역을 앞두도록 내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서 삽질과 곡괭이질과 걸레질과 손빨래를 몸소 겪어 보기를 바란다. 스스로 ‘고생을 사고’ 싶다면, 휴가를 몽땅 ‘반납’하면 된다. 나는 내 후배 둘한테 내 휴가를 이레씩 잘라서 나누어 준 적 있는데, ㅈ상병도 나처럼 이녁 휴가를 ‘반납’해서 고향 어머니 그리워하는 후배한테 나누어 주면 된다.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를 위안해 주는 ‘연예인 사병’인지 나로서는 잘 모른다. 내가 있던 부대로 위로나 위안을 온 ‘연예인 사병’을 스물여섯 달 동안 한 차례도 본 적 없으니 모르겠다. 아니, 내가 있던 중대뿐 아니라, 내가 몸담은 대대나 연대 관할 언저리로도 위로나 위안을 온 ‘연예인 사병’은 없었다. 참말, ‘연예인 사병’으로서 무언가 베풀고 싶으면, 여느 육군 땅개 끄트머리 중대에서, 삽질 두 시간 하고 담배 한 개비 물며 쉴 적에 노래 한 가락 뽑으면 넉넉하다. 완전군장 짊어지고 높다란 멧골 오르내리며 땀을 비오듯 쏟고 나서 10분 쉴 참에, 어머니 그리는 노래 한 가락 뽑으면 된다.


  노래를 잘 해야 하지 않는다. 춤을 잘 추어야 하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된다. 내 이웃을 바라보고, 내 동무를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군대는 평화를 지켜 주지 않고, 군대는 평화를 부르지 않는다만, 힘이나 이름이나 돈이 없는 여느 수수한 사내들이 군대로 끌려온다. 이들 여느 수수한 사내들 가슴을 촉촉히 적실 ‘노래 이야기’를 깨달을 수 있기를 빈다. 아직 멀지 않았고, 아직 늦지 않았다.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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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1-16 11:28   좋아요 0 | URL
함게살기님의 글을 읽으니 'ㅈ상병'에 관한 전후사정을 잘 모르고 있던 저조차 공감이 많이 느껴지고, 특히 까마득한 옛날 우리네 고달프고도 서글펐던 군대살이가 다시금 떠오르기도 하네요.

저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83년에 입대하여 '땅개'로 강원도 고성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부모님이 면회 오셨을 때 깊숙한 산골 군부대에 도착하신 게 밤 9시가 다 될 정도로 강원도 오지에 배치를 받았었어요.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께선 고향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셨다더군요. 자식한테 먹일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그 먼길을 오신 거였죠. 날은 저물고 '버스'조차 끊긴 캄캄한 밤길에 군부대는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아서 '그저 기가 막히다'는 말씀만 하시더군요. 저 역시 첫 휴가는 '열 달' 이상을 빡세게 뒹군 끝에 간신히 나왔고, 정기휴가는 27개월 근무하며 딱 두 번 찾아 먹은 거 같아요. 혹한기, 혹서기 훈련에다가 10월 초부터 시작되는 겨울은 그 다음해 5월 중순이 지나서야 끝이 날 정도로 지독시리 추웠었죠.

제가 군생활을 할 땐 특히 강제징집도 많았지요. 저는 다행히 자발적으로 입대했지만, 제가 입대 후에 '강집'당한 선배들도 더러 만났었고, 제 친구들도 여럿 강집을 당해 군대에 끌려갔었죠. 그들은 군생활 중에 수시로 혹은 정기적으로 보안반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고 '순화교육'을 받고 난 뒤에 '자대'로 되돌아오곤 했었고, 언제나 감시대상이었지요. 군생활의 혹독함 때문에 멀쩡히 복무하던 몇몇 전우들이 '탈영'을 시도하고 '영창'을 다녀오는 모습도 가끔 있었고, 군기교육대에 끌려가 열흘씩 보름씩 '지옥같은' 생활을 겪고 나온 전우들은 '중죄를 지은 죄수'와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모습들이었죠. 그러다가 '군생활'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부대원들을 사살하고 월북하는 경우조차 있었죠.(제 입대동기 한명이 GP근무 중 그렇게 희생되었답니다.)

세상이 온전히 공평하길 바랄 순 없는 노릇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공감'만이라도 느껴질 수 있는 모습들을 제발 좀 보여줬으면 싶어요.

파란놀 2013-01-16 12:00   좋아요 0 | URL
'전방'이나 '최전방'에서 군대를 보낸 분들 가운데에도 '중대'이나 '대대'이냐에 따라서도, 노는 물이 달랐어요. 아마, 겪은 분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ㅈ상병이 최전방에 간다 하더라도, 소총중대 아닌 대대나 연대 급으로 간다면... 연예인 사병으로 있더라도 똑같인 셈이 될 테지요.

저도, 제가 군대에 있을 적에, 지뢰 밟아서 죽었다는 사람과, 트럭엔진 과열로 터져서 죽었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지뢰 터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고참이나 하사관한테 얻어맞아 죽었을 텐데, 상부에는 거짓으로 보고했겠지요.

군대에 있을 적에는 '개미에 물려 죽었다'는 사람도 보았는데, 나중에 전역하고 나서야 그 말이 '구실을 갖다 붙이는 말'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았어요. 구타로 죽은 사람은 이래저래... 그런 셈이었지요..

oren 님도 힘든 나날 겪으셨군요. 그 힘든 나날이 좋은 씨앗이 되리라 생각해요.

oren 2013-01-16 11:47   좋아요 0 | URL
한가지 의아한 건, 함께살기님처럼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 '군대에 있는 스물여섯 달 동안' 한 권의 책조차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인데요. 어쩌면 그만큼 함께살기님의 군대살이가 힘들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군대에서 책을 좀 읽을 수 있었답니다. 주로 형한테 부탁하거나 '장교분들' 한테 말씀드려서 책을 사달라고 해서, 취침시간에 몰래 관물대 밑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읽기도 했었죠. 물론 편안하게 '책만 읽을 수 있는 시간들'도 있었는데 그건 군복무중 제법 심하게 다쳐서 여러달 '후송'을 간 덕분이긴 했지만요. http://blog.aladin.co.kr/oren/4070322



파란놀 2013-01-16 12:04   좋아요 0 | URL
상병 6호봉이 될 때까지는 책을 건드릴 수 없었고요, 상병 6호봉을 넘긴 뒤로는 훈련이라든지, 강원도에 잠수함 타고 건너온 북쪽 병사들 때문이라든지, 또 훈련이라든지... 여름에는 비 오면 물골작업 가고, 겨울에는 눈 오면 눈치우기 가며... 이래저래 해서 책은 손에 대지도 못하고 전역을 했어요.

지오피, 도솔산, 선점중대... 늘 이렇게 돌고 돌다 보니까, 군대에 있는 동안 늘 1000~1500 고지에서 지냈답니다... '도솔산'이라는 곳은 이제는 없어진 곳인데, 흔히 '펀치볼'이라고 일컫는 곳입니다 ^^;;;

군대에서 열여덟 권 읽으셨나요? 오오... 스스로 더 단단히 갈고닦았으면, 저도 그렇게 읽을 수 있었을는지 모르나, 저는 군대에서 그냥 몸으로 때우며 살았어요.
 

 

골목해설사

 


  사람들한테 골목동네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골목해설사’가 있다고 한다. 문학을 비평하는 ‘문학비평가’처럼, 골목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만하리라 본다. 그런데, 문학을 어떻게 왜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할까. 그리고, 골목을 어떻게 왜 누구한테 이야기해야 하는가.


  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문학 이야기꾼’이라 말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골목을 이야기하는 사람 가운데 스스로 ‘골목 이야기꾼’이라 말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곧, 문학비평가나 골목해설사는 ‘이야기’ 아닌 ‘지식’을 다루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문학을 빚은 사람들 마음을 읽기보다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긴 줄거리를 읽는 문학비평가요, 골목동네에서 꿈과 사랑을 빚는 사람들 넋을 읽기보다 골목이라는 건축물에 깃든 역사나 문화를 읽는 문화해설사로구나 싶다.


  문학을 이야기하려면 문학을 누려야 한다. 스스로 문학을 읽을 뿐 아니라 문학을 써야 한다. 골목을 이야기하려면 골목을 누려야 한다. 스스로 골목을 거닐 뿐 아니라, 골목(동네)에서 살아야 한다. 문학을 하지 않으며 문학비평만 하는 일이란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하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지 않으며 골목해설만 하는 일이란 얼마나 살가울까 궁금하다.


  글쓰기가 바로 문학쓰기이다. 역사에 남는다든지 작품책을 내야 문학쓰기가 아니다. 스스로 일구는 삶을 사랑으로 아로새길 때에 문학쓰기, 곧 글쓰기이다.


  삶읽기가 바로 골목읽기이다. 이런 건축물 저런 문화재를 알려준대서 골목읽기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골목사람 되어 골목이웃과 알콩달콩 빚고 엮는 이야기를 누릴 때에 골목읽기, 곧 삶읽기이다.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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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책

 


  사람들이 못 알아보니 ‘귀중한 책’이 된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알아볼 때에는 ‘읽는 책’이 될 테지요. 사람들이 못 알아보니 ‘읽는 책’이 얼마나 ‘귀중한 책’인가를 못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볼 때에는 ‘읽는 책’이 더없이 ‘빛나는 책’인 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먼 나라에서 찾는대서 ‘귀중한 책’이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탓에 ‘귀중한 책’이 되었달지라도 ‘읽는 책’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빛나는 책’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하나 돌아보자면, 모든 책은 ‘읽는 책’이면서 ‘귀중한 책’이요 ‘빛나는 책’입니다. 읽을 때에 값진 보배가 샘물처럼 솟는 책이 되고, 읽으면서 빛이 나는 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읽지 않으면 값진 보배가 못 되고, 읽지 못할 때에는 빛을 누리지 못합니다.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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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

 


  부산마실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오는데, 부산 사상 버스역에서 시외버스 기다리다가, 우리 집 큰아이가 동무 아이랑 잘 뛰노는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는 뒷간 다녀와야겠다 싶어 뒷간에 들었더니, 큰아이가 아버지 사라졌다며 버스역이 떠나가도록 꺼이꺼이 운다. 책방 아저씨가 곁에 있어도 아버지 없다며 우는 소리에, 뒷간에 앉아 볼일을 보지도 못하고 바로 나온다. 얘야, 너 아버지 있건 말건 네 동무하고 이 버스역 구석구석 달리고 뒹구며 노느라 아버지는 안 쳐다보고 불러도 안 오잖니. 아버지가 너를 두고 사라질 일 있겠느냐. 바깥마실 다니느라 속이 더부룩해서 뒷간에 가려 했는데, 그대로 놀면 되잖니. 어쩌면 너는 그렇게 개구지게 뛰놀면서도 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내내 지켜보았니. 그곳에 아버지가 있으니 마음을 푹 놓고 이 버스역을 네 앞마당 삼아 신나게 뛰놀았니. 네 웃음소리도, 네 울음소리도 그예 하늘을 찢고 가슴을 찢는구나.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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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토의 푸른 하늘 - 생활 팬터지 동화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40
후쿠다 이와오.시즈타니 모토코 지음,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7

 


우리 함께 살아요
― 마코토의 푸른 하늘
 시즈타니 모토코 글,후쿠다 이와오 그림,김정화 옮김
 아이세움 펴냄,2008.1.30./7500원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잘 안 떠오르지만, 돌아가신 뒤 있던 일은 환하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어도 할아버지와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할아버지 심부름을 한 적은 있어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다든지, 내가 먼저 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 들려주기를 바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와 할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는지 모르던 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또한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는지 몰랐을 뿐 아니라, 배우지 못했고, 생각을 못했구나 싶습니다.


  내 아버지는 왜 당신 아버지와 당신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못 피우셨을까요. 내 할아버지는 왜 당신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못 피우셨을까요.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학교에서 너무도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 내내 시달리느라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는 당신 아이하고는 살가이 놀거나 어울리지 못하셨을까요. 내 할아버지는 당신 젊은 날 바깥으로만 너무 돌아다니다가 그만 집에서 식구들과 오순도순 어울리거나 이야기꽃 피우는 즐거움을 못 느끼셨을까요.


.. 아빠는 회사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일을 할 때가 많았고, 엄마는 아는 사람이 하는 작은 잡화점에서 일하시는데 하는 일이 여러 가지라서 하루 종일 밖으로 돌아다닐 때도 있다고 했다. 주먹밥을 데워 먹다가 문득 에리코 누나는 뭘 먹을까, 생각했다. 에리코 누나는 며칠 동안 먹을 걸 구경도 못 한 사람 같아 보였다 … 나를 만나면 언제나 “안녕!” 하시거나 “잘 지내지?” 하시며 말을 건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할머니한테 인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16, 18쪽)


  내 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나는 식구들하고 늘 집에서 함께 지냅니다. 아이들과 늘 복닥거리면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목소리를 느끼면 즐겁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늘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내 할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나는 식구들하고 언제나 나란히 움직입니다. 아이들과 언제나 함께 있고 보면, 어버이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운가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어버이 몸가짐이 아이들 몸가짐이 되고, 어버이 말씨가 아이들 말씨가 돼요. 어버이 생각은 고스란히 아이들 생각으로 이어지고, 어버이 사랑 또한 하나하나 아이들 사랑으로 이어갑니다.


  다만, 많이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마실을 다니자면 고단합니다. 아이들은 새 바람을 쐬고 나도 새 바람을 누립니다만, 면내나 읍내나 도시로 마실을 가면, 시골하고는 사뭇 다르게 넘치는 자동차와 시끄러운 가게 때문에 고달픕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놀고 싶지만, 도시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헤아리지 않아요. 자동차는 그저 달리고, 그예 빵빵댑니다. 개구지게 달리는 아이들을 귀엽게 바라보는 어른이 있습니다만, 쉬잖고 달리거나 까부는 아이들을 못마땅해 하는 어른도 있습니다.


  도시라는 곳은 너무 바빠야 할까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내는 바빠야 할까요. 바쁜 나머지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까요.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데는 이웃 어른을 돌아볼 겨를 또한 없지 않나요.


  바쁘게 살아갈 때에는 무엇을 누릴까요. 바쁘게 일할 때에는 무엇을 얻을까요. 바쁘게 몰아칠 때에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바빠야 하고, 학원에 바빠야 하며, 손전화 기계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들여다보느라 바빠야 한다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어른들이 회사에 바빠야 하고, 술담배에 바빠야 하며, 정치나 사회운동에 바빠야 한다면, 어른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너나 없이 바쁜 탓에 자동차를 타고 싱싱 달려야 하는지요. 예나 이제나 바빠야 하는 탓에 걸음 느린 아이들은 안 살펴도 될는지요. 늘 바쁘게 돈을 벌거나 써야 하니까 사랑을 아끼거나 꿈을 보살피는 길하고는 멀어질밖에 없는가요.


.. 할아버지 젊었을 때라니, 상상이 더 안 되었다. 젊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다 … “매번 이렇게 복을 나눠 주니 고맙구나.” 스시마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복을 나눠 준다고요?” “그래, 옛날에는 그렇게 말했단다.” ..  (35, 47쪽)


  바쁜 사람은 겨울이 온 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봄이 온 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여름이 오거나 가을이 와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아이들이 꾸준히 자라는 모습을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아이들과 말을 섞을 틈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꽃내음을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구름이나 별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이웃에 있는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바라볼 틈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내 손길을 따사로이 내밀며 일구는 마을살이를 깨달을 겨를이 없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민주와 평화는 뒤로 밀립니다. 바쁘기 때문에 평등과 자유는 짓밟힙니다. 바쁘기 때문에 숲을 밀어내고 냇물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수출과 수입에 얽매이고, 바쁘기 때문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씁니다.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버이가 가르치지 않고 교사나 강사한테 맡깁니다.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은 삶 아닌 지식을 배우고 살림 아닌 자격증에 끄달립니다.


  우리, 함께 살아가면 좋겠어요. 목숨만 붙은 채 이 지구별에 함께 있는 모습 아니라, 서로 차분히 바라보고 지긋이 손을 맞잡으며 따사로이 이야기꽃 피우는 삶을 일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으로 하나되는 지구마을 아니라, 웃음과 이야기로 하나되는 지구마을 되면 좋겠어요.


  밥 함께 지어 함께 먹고 함께 설거지를 하는 삶을 누려요. 흙 함께 일구고 곡식 함께 거두며 씨앗 함께 나누는 삶을 누려요. 널따란 냇물 돌바닥에 이불 담가 서로서로 발로 꾹꾹 밟으며 빨아요. 여럿이 이불 맞잡고 힘껏 쭉쭉 짜요. 오순도순 모여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재미나게 놀이를 즐겨요.


..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양반이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부동산) 할머니는 질렸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당신같이 나이 먹은 노인네한테 방을 빌려 줄 사람이 있겠냐고요?” … 왜 아파트를 헐까. 관리만 잘 하면 아직 한참은 더 쓸 만하다고 했던 할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 계속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할아버지가 집을 얻으려고 고생 안 해도 되고. 나도 전학 같은 거 안 가도 되는데. 날마다 바둑을 둘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아프면 내가 간호해 드리고,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소리 따위는 상관 없었다 ..  (63, 93쪽)


  시즈타니 모토코 님 동화책 《마코토의 푸른 하늘》(아이세움,2008)을 읽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네 식구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아파트라 하지만, 처음에는 번듯하게 지은 예쁜 층집이었고, 예쁜 층집은 예쁜 사람이 예쁜 손길로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쁜 손길로 돌보던 예쁜 사람이 숨을 거둔 뒤, 예쁘지 못한 손길로 예쁘지 못한 돈을 바라는 예쁘지 못한 사람이 층집을 예쁘지 못하게 어지럽힙니다. 10층에 이르는 층집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떠납니다. 떠날 새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사람만 마지막까지 남아 넉 집이 남고, 넉 집 식구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넌 아직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쉽지 않아.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허덕대잖니.” 여느 때와 다르게 낮은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럼 아라키다 할아버지가 진짜 우리 할아버지면요?” “그러면 생각해 보겠지…….”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있는 힘껏 문을 닫았다. 할아버지의 어릴 때 얼굴이 떠올랐다. 꼭 쥔 주먹이 오랫동안 부르르 떨렸다 ..  (129쪽)


  자동차를 얻어 타면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기차를 얻어 타면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달려도 제법 빨리 갈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 퍽 느리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다리로 걷더라도 마음이 바쁘면, 들판에 흐드러진 꽃을 느끼지 못해요. 두 다리로 걷다가 다리를 쉬려고 멈추었어도 마음이 바쁘면, 둘레에 가득한 꽃내음을 맡지 못해요.


  마음이 너그러울 때에 꽃빛을 느낍니다. 마음이 따스할 때에 꽃내음을 맡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날 때에 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환한 기운 북돋울 수 있습니다.


  서로 바쁘다면, 함께 살아갈 사람이 못 됩니다. 서로 힘들다면, 어깨동무할 이웃이 못 됩니다. 서로 즐거울 때에, 함께 살아갈 사람이 됩니다. 서로 웃을 때에, 어깨동무할 이웃이 됩니다.


  어린이집부터 학교까지, 이런 시설 저런 기관에 넣으려고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서 돈 잘 벌라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흙 한 줌 만지지 않거나 바람 한 자락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려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습니다. 보살피고 즐겁게 웃고 싶어 아이들을 낳습니다. 서로 좋아하고 서로 손 맞잡을 삶벗이 되고자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갑니다. 동화책 《마코토의 푸른 하늘》에 나오는 ‘마코토’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 올려다볼 겨를 없이 바깥일에 바쁩니다. 아마, 오늘날 웬만한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마코토네 어머니와 아버지랑 엇비슷하게 바깥일에 매달리겠지요.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또 아이들도, 하늘 올려다보며 구름과 별을 누릴 틈이 없겠지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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