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 놀자 사이언스 일공일삼 5
나가타 하루미 지음, 박정선 옮김 / 비룡소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7

 


풀놀이, 풀먹기, 풀살이
― 식물과 함께 놀자
 나가타 하루미 글·그림,박정선 옮김
 비룡소 펴냄,2003.5.26./12000원

 


  학문에서는 식물과 동물을 나누지만, 한국말로는 풀과 짐승으로 이야기합니다.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잎과 꽃을 틔우는 숨결은 풀이고, 기나긴 해 살아내는 숨결은 나무입니다.


  사람을 비롯해 숱한 짐승이 풀을 먹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온갖 짐승, 여기에 벌레까지 어마어마한 숨결이 풀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짐승을 잡아먹는 짐승이 있다 하더라도, 짐승이 잡아먹는 짐승은 풀을 먹지요. 그러니까, 짐승 잡아먹는 짐승이라 하더라도 풀을 먹는 셈이고, 풀이 있지 않고서야 살아갈 수 없습니다. 풀 아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구별에 풀이 없으면 고기를 못 먹어요. 사람들이 먹는 고기란 모두 풀을 먹는 짐승입니다.


  사람은 늘 풀에 둘러싸여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풀과 함께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벼도 풀이고 보리도 풀입니다. 옥수수도 풀이요 수박도 풀입니다. 배추나 당근 또한 풀이에요. 풀열매(풀알갱이)를 먹는대서 곡식이라 하지만, 그야말로 수많은 풀이 온 들판과 숲을 덮으면서 푸르게 빛나야 비로소 사람살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풀이 없고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터라면, 사람살이 숨이 막히거나 갑갑하거나 어수선하거나 지저분하기 마련입니다. 잡풀 하나 없는 곳은 꽉 막힌 곳이에요. ‘잡풀’이란 있을 수 없지만, 어떠한 풀이건 풀포기 하나 홀가분하게 자라지 못하는 데라면, 사람도 홀가분하게 지내지 못하는 데가 되어요. 조금만 생각을 기울이면 알 수 있어요.


.. 장미꽃이나 동백꽃처럼 큼직한 꽃을 튀길 때에는 튀김옷을 꽃잎 가장자리에만 살짝 묻혀요. 그런 다음 끓는 기름에 넣었다가 1∼2분 뒤에 꺼내면 바삭바삭해요 ..  (16쪽)

 


  풀을 먹는 사람이기에 풀을 만지면서 놉니다.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열매 얻어서 먹는 사람이기에 나무를 만지면서 놉니다. 냇물이나 바닷물에서 고기를 낚는다든지 조개를 줍는다든지 바닷것 얻는다면, 으레 물을 만지면서 놉니다. 숲속에서 살아간다면 늘 숲을 보듬으면서 놀겠지요.


  곧, 도시 아이들은 도시에 있는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부대끼면서 놉니다. 도시 아이들은 놀이공원에 갈밖에 없고, 플라스틱 장난감 만질밖에 없으며, 텔레비전과 손전화에 빠져들밖에 없습니다. 이런 놀이마저 누리지 못한다면, 학원 뺑뺑이를 치거나 시험공부에 휘둘리겠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시골 아이들마저 도시 아이들하고 눈높이가 엇비슷해요. 시골 아이도 도시 아이와 거의 똑같이 놉니다.


  오늘날 시골 아이들은 들놀이를 즐기지 못하고, 숲놀이를 누리지 못해요. 시골마을 거의 모든 어른들이 들판에 농약을 치거든요. 시골마을 어디라도 멧골에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려대거든요.


  어른도 아이도 들판에 드러누워 쉬기 어렵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숲속에서 숲바람 쐬면서 낮잠 자기 어렵습니다. 어디에 어떤 농약이 얼마나 깃들었는가 모를 노릇이에요. 어디에 어떤 바보짓 해 놓아, 어른 스스로, 더군다나 아이들까지 들놀이와 숲놀이 못하게 가로막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만들어요. 몇 번만 만들어 보면 능숙하게 잼을 만들 수 있어요. 불을 사용할 때는 꼭 어른과 함께 하세요 ..  (20쪽)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커서 새롭게 딸아들 낳으면 어김없이 아토피를 앓습니다. 아토피뿐 아니라 온갖 병치레를 해댑니다. 도시에 아파트 장만해서 살아가는 ‘시골내기였던 사람들’이 ‘시골 늙은 어버이가 키운 푸성귀와 곡식’을 받아서 아이들한테 먹이려 합니다. 그렇지만, 시골에 남은 늙은 어버이는 늙은 몸을 움직여 흙을 일구자니 농약과 비료를 안 쓸 수 없습니다. 유기농 푸성귀와 곡식이 아닌 ‘농약과 비료에 절디전’ 푸성귀와 곡식을 받습니다. 가공식품을 즐기고 화학재료로 지은 시멘트집에서 살아가면서 농약과 비료로 키운 풀을 먹는다면, 아이들 아토피가 낫거나 병치레 가라앉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유기농 밀과 유기농 치즈로 굽는 피자가 있을까요. 피자집에서 쓰는 감자, 고구마, 고기, 푸성귀 들은 어떤 농약과 비료를 얼마나 먹었을까요. 들판에 풀어서 키운 닭을 잡아서 튀기는 닭고기가 있을까요. 닭집에서 쓰는 양념은 어떤 화학조미료와 화학약품을 얼마나 썼을까요. 핵발전소 언저리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이 온 바다를 떠도는데, 방사능 물질 깃들지 않은 물고기와 조개와 김이 있을까요. 일본 후쿠시마만 걱정하지 말고, 한국에 엄청나게 많은 핵발전소를 걱정하고, 핵발전소 못지않게 공해덩어리인 화력발전소를 근심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뜻을 품고 시골로 집 장만해서 지내려 한달지라도, 이웃집 농약질에 시달립니다. 시골마을 이웃집 어느 곳이나 봄부터 겨울까지 농약질입니다. 게다가 비닐농사 지으면서 비닐을 집 한쪽이나 논밭 한 귀퉁이에서 태웁니다. 시골 밭뙈기 장만해서 일구려 하면, 돌보다 쓰레기가 훨씬 많이, 아주 잔뜩 나올 뿐 아니라, 슬레이트지붕(석면) 조각까지 무시무시하게 나옵니다.


  어쩌다 시골까지 이렇게 망가졌을까요. 어쩌다 오늘날 시골마을 흙일꾼조차 흙을 이렇게 무너뜨리면서 뭐가 뭔지 안 깨달으려 할까요. 풀지붕 없애서 슬레이트지붕으로 싹 갈아치우도록 이끈 새마을운동 박정희 대통령이 한 짓은 앞으로 언제까지 이 나라 시골마을 흙과 숲을 어지럽히고 말까요. 새마을운동을 앞세워 온 시골에 비닐농사 퍼뜨린 이 끔찍한 짓은 앞으로 언제까지 이 나라 시골자락 골골샅샅 더럽히고 말까요.


  이제 와서 슬레이트지붕 없앤다고 나라에서 목돈 들여 철거해 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철거를 한다면, 맨 처음 이런 지붕 올리도록 사람들을 닦달하고 들볶으며 괴롭힌 공무원과 정치꾼과 대통령부터 벌을 받을 노릇 아닌지요. 이 나라 사람들 몸을 다 망가뜨린 사람들 모두 고개숙여 뉘우칠 노릇 아닌지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시골마을마다 ‘새마을 깃발’ 펄럭이니, 어찌 된 셈인가요.


.. 긴바지와 긴소매옷을 입고 낙엽 위에 누워 친구들에게 낙엽을 덮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요.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나뭇잎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  (49쪽)

 


  나가타 하루미 님 그림책 《식물과 함께 놀자》(비룡소,200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1998년에 처음 나온 책이라 하고,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을 살피면 ‘풀놀이’로구나 싶습니다. 참말, 아이들한테는 ‘식물’이 아닌 ‘풀’입니다. 어른한테도 식물 아닌 풀이에요.


  어떤 어른은 ‘야생초’이니 ‘산야초’이니 하고 떠들지만, 모두 ‘풀’일 뿐입니다. 식물도 야생초도 산야초도 한국말 아니에요. 시골에 가서 시골 할매나 할배 붙잡고 여쭈어 봐요. 시골에서 흙 만지는 사람은 누구나 ‘풀’이라 말하고 ‘나무’라 말합니다. 풀을 뜯어서 먹는 삶, 조금 다른 말로 하면 ‘나물’ 뜯어서 먹는 삶입니다. ‘들풀’을 일본사람 흉내내어 ‘야생초’나 ‘야초’로 적고, ‘멧풀’을 중국사람 시늉하듯 ‘산야초’나 ‘산초’로 적는 일이란 얼마나 어리숙한지 느껴야 합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살피면, ‘채소(菜蔬)’는 ‘푸성귀’를 가리키는 중국말이고, ‘야채(野菜)’는 ‘남새’를 가리키는 일본말입니다. 들이나 멧골에서 스스로 씨앗 맺어 자라는 풀 가운데 사람이 먹는 풀은 따로 ‘나물’이라 가리킵니다. 따로 밭에 씨앗을 사람이 심어 거둘 때에는 ‘푸성귀’라 가리킵니다. 나물과 푸성귀를 아울러 ‘남새’라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사람은 어느새 이런 풀이름을 잊고 저런 풀살이하고 멀어졌어요. 풀이름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풀살이는 아예 잊은 나머지, 풀놀이 즐기려는 마음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풀놀이 가르치는 아름다운 그림책 《식물과 함께 놀자》를 한국말로 옮기기는 하지만, 정작 한국사람 스스로 이러한 그림책을 일구지 못해요.


  어쩔 수 없겠지요. 이제 한국에서 시골마을 몽땅 무너졌다 할 만큼 농약과 비료와 슬레이트지붕과 비닐더미가 넘실거리며 쓰레기숲 되었으니까요. 쓰레기숲에서 노는 어른도 아이도 없으니까요. 쓰레기숲(시골)을 벗어나 시멘트숲(도시)으로 가려는 시골 어린이와 젊은이만 있으니까요.


.. 우리는 멀리 있는 산이나 들판에 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식물을 이용해 재미있게 놀 수 있어요.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어떤 식물이 눈에 띄나요? 길가에 자라난 잡초들, 집 마당과 학교의 꽃밭에 있는 온갖 꽃들 그리고 동네 공원에 있는 많은 식물들이 보일 거예요. 또 창가에 화분이 없는 집이라도 부엌 한구석이나 냉장고 안에는 늘 야채가 있기 마련이지요 ..  (88쪽)

 


  도시에서 텃밭 일구는 분이라면 농약 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집에 꽃그릇 몇 놓으며 꽃과 푸성귀 돌보는 분이라면 농약 함부로 안 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한테 텃밭농사 하라고 가르칠 때에 아이들한테 농약 쓰라고 말할 어른이 있을까요? 아이들더러 꽃그릇에 콩을 심어 길러 보라고 이끄는 어른 가운데 농약 뿌리라 말할 어른이 있을까요?


  쉽게 생각해 봐요. 파리나 모기 잡는다며 살충제 뿌릴 때에 어떻게 하는가요? 부엌에 있는 그릇 다 덮겠지요. 살충제 물방울이 국그릇에 떨어지면 국을 어떻게 하는가요? 벌레를 잡거나 ‘내가 심은 씨앗에서 자라는 풀’ 아닌 다른 풀이 못 자라도록 농약을 친다 할 때에, 이렇게 해서 자라는 풀을 사람이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이 풀놀이 누리려면 어른들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슬기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풀살이 가르치려면 어른들부터 삶자리 뜯어고쳐야 합니다. 참된 생각을 착하고 아름답게 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몸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어른들부터 쓰레기더미 치우고, 더는 쓰레기 안 나올 삶으로 확 바꾸어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다시 태어나려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우리 어른한테서 아무것도 못 배워요. 어른 스스로 새로 거듭나려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하고 똑같이 바보스럽고 철없으며 어리석은 어른이 되고 말아요.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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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4-07 08:54   좋아요 0 | URL
위의 책을 보니 생각나네요.
예전 제가 중학교 다닐 땐 식물채집이란 방학숙제가 있었어요.
스케치북에 식물을 붙이고 이름을 쓰고 특징을 쓰는 숙제였는데,
요즘은 그런 숙제가 없더라고요. 애들이 식물 이름엔 관심조차 없고 그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놀고 컴퓨터 게임이나 하며 노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손이 많이 가긴 해도 나물 반찬이 저는 좋더라고요. ^^

파란놀 2013-04-07 09:14   좋아요 0 | URL
요새는 도시 어디에서도 풀을 보기 어려우니
식물채집이란 그야말로 못 시키리라 느껴요.
곤충채집은 '생명 윤리' 때문에 덜 시킨다지만
그래도 곤충채집을 시켜서
대형마트에서 곤충을 사다가 쓰기도 한다잖아요.
이와 달리 식물채집은 그나마도 시키지 않아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아이들이 크고
어른들도... 오이꽃 모르며 오이 먹으리라 느껴요... ㅜ.ㅡ
 

아이들과 헌책방 마실

 


  비가 뿌리는 토요일 아침, 아이들과 길을 나선다. 날이 맑다면 마당에서 아이들 놀게 하다가 밥을 먹이고, 밥을 먹은 뒤에는 들마실 나가면 된다. 비가 뿌리면서 바람도 드세게 부니, 오늘은 하루 내내 집에만 있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고흥읍에서 시외버스 타고 순천까지 마실을 가 보기로 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읍내로 군내버스 타고 나가니 좋아라 하다가, 시외버스를 타니 멀미를 하는지 고단한 얼굴이 된다. 그래, 군내버스까지는 좋지만, 한 시간 달리는 시외버스는 좀 힘들지. 게다가 너희들은 순천 헌책방 마실을 마친 뒤에 다시 이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와야 한다구.

 

  아이들한테는 들판이고 숲이고 바다이고, 또 헌책방이고 놀이공원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고, 딱히 대수롭지 않다. 아이들한테는 어디이든 놀이터이다. 아이들로서는 어디이든 노래하고 춤추며 뒹굴고 싶은 놀이터이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면 즐겁고, 맛있게 먹으면 맛있다. 아이들하고 굳이 어디를 찾아가야 하지 않다. 아이들한테 꼭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고픈 데를 찾아서 놀고, 아이들은 스스로 보고픈 것을 찾아서 본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다치지 않거나 걱정할 것 없는 보금자리와 마을살이 일구면 된다. 다른 모든 것은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한다.


  헌책방은 아버지가 가고 싶으니 간다. 좀 먼 바깥마실 또한 아버지가 가고 싶으니 간다. 아버지 혼자 두 아이 당차게 데리고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다닌다. 내 어릴 적에 어머니가 나랑 형 둘을 데리고 씩씩하게 잘 다니셨다고 떠올리면서 마실을 한다. 그런데, 워낙 오래도록 시골집에서 지내고, 더러 읍내나 면소재지 살짝 들른 탓일까. 큰아이가 가게 화장실 쓰기를 꺼린다. 밖에서 쉬를 누고 싶다 한다. 문득 그럴 만하겠다고 느낀다. 시골집에서 아이들은 마당이나 마루를 바라보는 훤히 트인 자리에서 쉬나 똥을 눈다. 때로는 마당 한쪽이나 뒷밭에서 쉬나 똥을 눈다. 높은 벽으로 꽉 막힌 좁은 자리가 아이들한테는 안 달가울 수 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밖이 훨씬 좋으니, 게다가 시골에서는 일부러 밭에 쉬를 누고 거름자리 만들기까지 하니, 도시에 마실을 가서 볼일 보기란 그리 즐겁지 않다.


  집으로 돌아오고 보니, 참말 집이 가장 좋다. 그냥 집에서 놀걸 그랬나. 여름에 찾아들 장마철에도 으레 집에서 놀 텐데, 비오는 시골집을 누릴 때가 한결 나았으려나.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 둘 데리고 살짝 먼 나들이 다녀오고 싶었으니, 아버지를 귀엽게 봐주기를 바란다. 봄비 쏟아진 오늘 하루 살짝 다른 바깥마실 해 보고 싶었으니, 아버지를 예쁘게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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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4-07 08:58   좋아요 0 | URL
책방 놀이터 같네요. 아이들이 재밌겠어요.
가끔 나들이를 해야 집의 소중함과 편안함을 알게 되죠.
누군가가 쓴 글, 여행을 떠나는 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

파란놀 2013-04-07 09:13   좋아요 0 | URL
집으로 돌아오려고 여행을 떠난다니... 음... 그러면 집에서 여행을 해도 되겠군요
^^;;;;;;
 

언제 쓰는가

 


  아이들 어머니가 집을 비운 지 열하루째 지난다. 이제 아흐레나 열흘 기다리면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하고 이처럼 오래 떨어진 채 지낸 적이 아직 없다.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이 어느 나이에 이를 때까지 곁에서 함께 살아가며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하루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나, 이번에 옆지기한테 아주 뜻있고 보람있을 배움자리 하나 있어, 스무 날 남짓 집을 비운다. 이동안 나는 아버지로서 두 아이하고 지낸다.


  둘레 사람들이 자꾸 말한다. ‘사내(아버지)가 아이 둘 혼자 건사하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고. 그러면, ‘가시내(어머니)가 아이 둘 혼자 건사하는 일’은 쉬울까. 아버지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니, 노상 어머니들한테 ‘아이키우기(육아)’를 몽땅 도맡겨야 하는가. 사내들은 아이 맡아 돌보는 삶을 배울 생각을 안 해야 하는가. 사내들은 스스로 핑계거리 만들어 아이 맡아 돌보는 삶하고 자꾸 스스로 멀어질 생각인가.


  사내도 가시내도 아기로 태어나 어린이로 자라며 푸름이로 빛나다가는 어른으로 살아간다. 곧,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아이들 마음을 곱게 건사하면서 어른이 되는 넋을 다스릴 때에 아름답다. 아버지로 살든 어머니로 살든, 두 사람 모두 어버이 넋을 보듬으면서 어린이 넋을 어루만질 줄 아는 착하며 참다운 숨결이 되어야 사람답다 할 만하다. 그런데, 왜 자꾸 사내(아버지)들은 스스로 사람다운 길하고 멀어지려 할까. 왜 자꾸 사내(아버지)들은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 숨결인가를 안 깨달으려 할까.


  나는 옆지기한테 말했다. 스무 날이 아니라 석 달이고 세 해이고 아랑곳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만큼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이녁 스스로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돌보는 길 찾을 때까지 하라고.


  내가 여기에 있건 저기에 있건, 또 옆지기가 거기에 있건 여기에 있건, 아무것 아닌 일이다. 모두 같은 하늘 밑에서 지내는 삶이다. 하루 떨어지건 한 해 떨어지건 다르지 않다. 열흘 못 보건 백 해 못 보건 대수롭지 않다. 서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 때에 삶이고, 서로 마음으로 보살필 수 있을 때에 사랑이다. 입으로 떠드는 얘기가 아니라, 삶이란 이렇고 사랑이란 이러하다.


  두 아이들 고단하도록 놀리고, 두 아이들 배부르도록 먹이고, 두 아이들 즐겁도록 노래하고, 두 아이들 웃도록 함께 마실을 다니면서 하루하루 돌아본다. 나 스스로 잘한다거나 못한다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하고픈 일을 찾고, 아이들이랑 나란히 누리고픈 놀이를 살핀다. 글은 언제 쓰는가. 가장 쓰고 싶으면서 가장 하고픈 말이 터져나올 때에 쓴다. 글은 언제 읽는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만나고 싶을 때에 읽는다.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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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7 16:32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답고 좋은 글..
감사히 마음에 꾹꾹 담아 갖고 갑니다.*^^*

파란놀 2013-04-07 17:24   좋아요 0 | URL
에고 고맙습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

 


  큰아이는 아침 열 시 되도록 못 일어납니다. 엊저녁 늦게까지 논다며 참 늦게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작은아이 혼자 일찌감치 일어나더니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뽀지직뽀지직 똥을 눕니다. 옳거니, 작은아이는 똥이 마려워서 일찍 잠을 깼군요. 보일러를 돌려 따뜻한 물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립니다. 바지 벗겨 밑을 닦고, 똥바지 헹구고는 비누거품 묻혀 담가 놓습니다.


  큰아이가 아무래도 오래 자야 하는구나 싶어 밥은 늦게 차려야겠지만, 작은아이 배고플까 싶어 과일을 썰어서 쟁반에 담아 내줍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과일 써는 동안 한두 점 집어먹을 만하지만, 가만히 기다립니다. 쟁반에 과일 모두 담아 내주니,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누나! 누나!” 하고 부릅니다. 아직 새근새근 자던 누나는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더니 쪼르르 달려나와 함께 과일을 먹습니다.


  엊그제, 작은아이가 일찍 잠든 뒤, 큰아이한테 빵 몇 조각 주는데, “(자는) 보라는요?” 하고는 묻습니다. 동생 자니까 동생 못 먹지 않느냐 묻습니다. 그래, 네 동생은 자니까 못 먹네. 그러면, 동생 몫은 나중에 챙기면 되니까, 오늘은 너 혼자 먹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들 서로 아끼는 마음 곱고 착해, 엊그제는 큰아이를 오늘은 작은아이를 살살 쓰다듬습니다. 4346.4.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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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7 16:18   좋아요 0 | URL
아유~~정말 착하고 고운 아기들이예요. ^^
산들보라! 사름벼리! 짝짝짝~~!!!

파란놀 2013-04-07 17:25   좋아요 0 | URL
놀다가 다툴 때가 있지만,
이보다는 함께 웃고 노래하며 춤출 때가 훨씬 잦아요.
참 잘 노는 아이들이에요.
 


 우리 말도 익혀야지
 (952) 쉽게 쓸 수 있는데 90 : 발아 가능성의 어떤 것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하는 발아 가능성의 어떤 것, 이 질료를 바로 동화의 제재라고 한다
《황선미-동화 창작의 즐거움》(사계절,2006) 30쪽

 

  ‘완벽(完璧)한’은 ‘빈틈없는’이나 ‘옹근’으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하나의 세계를”은 “세계를 하나”로 고치고, “구축(構築)할”은 “세울”이나 “일굴”이나 “열”이나 “만들”이나 “쌓을”로 고쳐 줍니다. ‘질료(質料)’는 ‘밑거름’이나 ‘글감’으로 손보고, “동화의 제재(題材)라고”는 “동화로 쓸 이야깃거리”나 “동화로 쓸 이야깃감”이나 “동화로 쓸 글감”으로 손봅니다.


  ‘발아(發芽)’는 “(1) 초목의 눈이 틈 (2) 씨앗에서 싹이 틈”을 뜻합니다. 국어사전 말풀이에 나오는 ‘초목(草木)’은 한국말로 ‘푸나무’, 곧 “풀과 나무”입니다. ‘가능성(可能性)’은 “앞으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을 뜻합니다. “발아 가능성”이란 “싹틀 수 있는”이나 “눈이 틀 수 있는”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발아 가능성의 어떤 것
→ 싹을 틔워 주는
→ 씨앗 같은
→ 씨앗 구실을 하는
→ 북돋우는
→ 이끄는
→ 도와주는
 …

 

  쉽게 쓰려고 하지 않으면 스스로 말이 꼬이고 맙니다. 쉽게 쓸 마음을 안 품으면 마땅히 어렵디어려운 글이 나오지만, 뜻을 좀처럼 헤아리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글이 되고 맙니다.


  꾸밈없이 쓰면 됩니다. 겉치레를 하지 말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면 됩니다. 대단한 말 들려주려 하지 말고, 수수하고 생각과 삶과 사랑을 나누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해” 하고 말하면 돼요. 좋아하는 아이한테 “좋아해” 하고 말하면 되지요. 동화를 쓸 때에 무엇이 글감이 되는가 하고 밝히고 싶으면, 있는 그대로 밝히면 됩니다. 동화를 읽는 어린이나 동화를 쓰는 어른 모두, 저마다 아름다운 꿈나라를 만들 수 있는 어떤 한 가지를 찾으면, 이 한 가지가 바로 동화를 쓰는 밑감, 밑바탕, 글감, 글거리 된다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셔요. 4346.4.6.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세계 하나를 알뜰히 세울 수 있게 싹을 틔우는 어떤 것, 이 밑싹을 바로 동화로 쓸 글감이라고 한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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