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런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6
박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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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놀이
[시를 말하는 시 29] 박순원, 《그런데 그런데》

 


- 책이름 : 그런데 그런데
- 글 : 박순원
-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13.1.17.)
- 책값 : 8000원

 


  무엇을 하며 놀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닥 재미난 놀이는 떠오르지 않아요. 이것은 재미있고 저것은 재미없지 않아요. 무슨 놀이가 되든 스스로 즐겁게 하면 다 재미있어요.


  놀면서 이 놀이가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 하고 생각하면 재미가 피어나지 않아요. 마냥 놀면서 가붓한 마음일 때에 가만히 재미가 솔솔 피어납니다.


  손가락 하나를 꼬물꼬물 꼼지락꼼지락 놀리면서 놀아도 재미있습니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방바닥에 드러누워 놀아도 재미있습니다. 살며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서 하늘 훨훨 나는 꿈을 꾸는 놀이도 재미있습니다. 바람에 맞서 달리면서 머리카락 훨훨 날리고 옷자락 펄럭펄럭 춤추도록 할 때에도 재미난 놀이가 됩니다.


.. 나는 왜 채송화가 되지 않고 / 굼벵이가 되지 않고 / 나무늘보가 되지 않고 / 이런 엄청난 결과가 되었나 ..  (나는 한때)


  연필을 쥡니다. 공책에 글씨를 씁니다. 글씨마다 살을 붙여 그림을 이룹니다. 나무를 그립니다. 나뭇가지를 그립니다. 나뭇잎을 그리고, 나뭇잎 사이사이 새 몇 마리 그리고는, 벌이랑 나비를 그립니다. 구름을 그리고 빗방울과 눈송이를 그리며 해를 그립니다. 달도 나란히 그리고 별이랑 무지개도 함께 그립니다. 하나하나 그리면서 어느덧 그림놀이가 됩니다.


  하얀 종이에 꽃을 그리고 풀잎을 그려도 그림놀이입니다. 서로서로 얼굴을 그려 주고, 발가락을 그리면서 그림놀이입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들을 왼팔과 오른팔에 누여 노래를 부릅니다. 하나 둘 셋 넷, 열 스무 노래 부릅니다. 그저 누워서 노래를 부를 뿐이라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부르는 노래는 노래놀이가 돼요. 노래를 부르다가 팔베개 한 팔을 와락 모아서 뒹구르르 구르며 김밥말이놀이를 합니다. 드러누운 채 무릎에 아이를 얹어 하늘로 휘휘 들어올립니다. 한 아이는 무릎에 얹고 한 아이는 팔로 가슴을 받쳐 휘휘 들어올리면 두 아이 모두 까르르 웃으며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엎드리라 해서 발을 잡고 번쩍 들어올리면 새삼스레 놀이가 됩니다. 몇 손자국 못 딛고 펄투덕 주저앉지만, 자꾸자꾸 발을 잡고 들어올려 달라 조릅니다. 그래, 이 아이들 허리를 한손으로 척척 들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아이들은 하늘을 날며 노는 셈입니다.


.. 내가 중학교 삼 학년 때 청주에서 소년체전이 열렸다 우리는 마스게임을 준비했다 연합고사고 나발이고 하루에 세 시간 네 시간 임박해서는 반나절씩 일주일 앞두고는 수업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연습했다 주제는 // 충효였다 맨 끝에 가운데 탑에서 연막탄이 터지면 양 옆에서 커다란 ‘충’, ‘효’ 펼침막이 갑자기 펼쳐지고 ..  (마스게임)


  세 살 작은아이는 국수를 먹을 적에 처음에는 젓가락질로 집으려 하지만 잘 안 됩니다. 젓가락으로 집어 숟가락에 얹어 먹으려고 용을 씁니다. 한참 이렇게 하다가는 숟가락 내려놓고 손바닥에 국수를 얹습니다. 손바닥에 얹은 국수를 덥석 입으로 넣습니다. 나중에는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국수를 집습니다. 밥을 먹는 어린이는 밥놀이를 합니다.


  여섯 살 누나가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왜 보라는 젓가락질을 못 해요?” 하고 묻습니다. “벼리야, 너도 동생처럼 어릴 적에는 젓가락질을 못 하고 저렇게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었어. 그래도 이제 동생이 처음에는 한참 젓가락질을 하잖아. 한참 젓가락질을 하다가 힘드니 손가락으로 먹지. 앞으로는 젓가락질 더 잘 하겠지.”


  가만히 보면, 작은아이 밥상 밑이 꽤 깨끗합니다. 한 달 앞서를 생각하고 한 해 앞서를 돌이켜보면, 작은아이 밥상 밑에 이것저것 떨어진 부스러기 많지만, 아주 많이 줄었어요. 그리고, 큰아이 밥상 밑은 아무것도 안 떨어집니다. 작은아이도 한 살쯤 더 먹으면 밥상 밑에 거의 안 흘리고 말끔하게 밥을 먹겠지요.


.. 내가 군에 있을 때 방실이가 서울시스터즈였을 때 위문공연을 왔었다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을 싣고 쿵짝쿵짝 당신은 멀리멀리 몸도 싣고 꿈도 싣고 내 마음 모두 싣고 나는 그때 군화를 신고 춤을 추던 병사였다 ..  (아! 사루비아 꽃을 든 남자)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놀이로 받아들이면서 자랍니다. 길을 거닐 때에도 그냥 걷지 않고 놀면서 걷습니다. 곧게 걷는 법이란 없습니다. 춤을 추듯 이리저리 걷습니다. 앞으로 먼저 달려가다가 뒤로 돌아옵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새를 보고 나비를 보며 꽃을 봅니다. 꽃마다 코를 들이밀어 냄새를 맡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어른들은 놀면서 자라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거의 모든 어른들은 길을 거닐 때에 곧게 걷습니다. 이리저리 몸을 흔들거나 춤을 추며 걷지 않아요. 이를테면, 가게에 가는 마실길에 콧노래 부르면서 거니는 어른은 몇 사람쯤 될까요. 가게에 마실을 간다고 생각하며 자전거를 몰며 파랗게 빛나는 하늘과 하얗게 눈부신 구름을 듬뿍 마시려는 어른은 몇 사람쯤 있을까요.


  아이도 어른도 놀 때에 자랍니다. 아이도 어른도 싱그럽게 놀 때에 싱그럽게 자랍니다. 어른이기에 ‘자람이 멈추’지 않아요. ‘안 자라는 사람’은 없어요. 나이 예순이나 여든에도 자라요. 왜냐하면, 날마다 새로운 하루 맞이하면서 새로운 삶 배우거든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 마주하면서 새로운 사랑 느끼거든요.


  그런데, 누구나 스스로 자랍니다. 남이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놀이는 스스로 찾아내어 즐깁니다. 남들이 이끌어 놀게 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놀이가 될 때에 푸르게 자라요.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마음밭에서 사랑씨앗 뿌리면서 곱게 돌보는 삶일 때에 기쁘게 놀면서 해맑게 자랍니다.


.. 반공 포스터를 그리고 국민교육 / 헌장을 외우고 육영수 / 여사 추모 글짓기 대회를 하고 /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대책 없이 낳다 보면 / 거지꼴을 못 면한다 표어를 / 짓고 쥐 잡는 날 불조심 강조 / 기간 리본을 가슴에 달고 우리는 /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어른’ 박순원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그런데 그런데》(실천문학사,2013)를 읽습니다. ‘어른’인 박순원 님은 이녁 삶이 얼마나 놀이로 가득할까 궁금합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는 일이 ‘어른’한테 놀이가 될까요. 술과 노래방을 빼고는 어른들이 누릴 만한 놀이가 없을까요. 술과 노래방 아니고는 ‘어른’들이 무엇을 누린다거나 즐긴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시로 담기란 어려울까요.


  그런데, 그런데, 바로 이런 모습이 오늘날 ‘어른’들 모습일 테지요. 바로 이렇게 놀 줄 모르는 모습이 박순원 님 한 사람 모습이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도시내기 ‘어른’들 모습이겠지요.


.. 사장이 나에게 주사파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나쁘다고 하지 않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나는 일본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해서도 이란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카니스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가끔 공자님이나 예수님 부처님을 직접 만나고 오신 듯, 공자님도 잘 모르셨던 공자님의 진면목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  (멧새 소리)


  오늘날 도시내기 어른들은 아이들과 제대로 놀지 못합니다. 놀이공원에 자가용 끌고 데려가 주어야 노는 줄 잘못 생각합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아이들과 어찌 놀아야 즐거운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놀이란 생각한대서 샘솟지 않으니, 생각한대서 찾아내지 못해요.


  그냥 놀아야지요. 뒹굴며 놀아야지요. 집에서 뒹굴고 마당에서 뒹굴며 밖에서 뒹굽니다. 주차장이면 어떻게 놀이터면 어때요. 옷이 더러워지건 말건, 신 한 짝 어디로 사라지건 말건, 뒹굴며 놀면 놀이예요.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뛰고 달리고 날고 기고 구를 때에 놀이입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도 이마에 땀이 송송 뱁니다. 그저 땅을 박차고 달리면서도 놀이가 됩니다.


  줄넘기 하나 있어도 백 가지 넘는 놀이를 해요. 줄을 붙잡고 기차놀이가 되고, 줄을 바닥에 놓고 뛰어넘으며 놀아요. 줄을 동그랗게 말아, 동그란 안쪽에서 씨름을 할 수 있고, 깨끔발로 줄을 오락가락 뛰어넘으며 놀지요. 줄을 한 사람이 휘휘 돌리면 다른 사람이 동그랗게 둘러서서 저마다 폴짝폴짝 넘으며 놀아요. 줄넘기를 돌돌 말아 수건돌리기처럼 놀 수 있어요. 놀고 싶다면 얼마든지 놀고, 함께 놀고 싶을 때에는 얼마든지 실컷 함께 놀아요.


.. 내가 본 소는 풀만 뜯어 먹는 참 순한 동물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소가 사람 말 알아듣는다고 여간 조심하지 않으셨다 소 듣는 데서 소 팔아먹는다는 소리 하지 마라 소는 고집도 세고 힘도 세다 소가 한번 심술부리면 아무도 못 당한다 ..  (소)


  그러면, 도시에서는 왜 놀이가 사라질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왜 놀이를 잊어버리고, 도시에서 지내는 아이들한테서까지 놀이를 빼앗을까요. 도시는 어떤 곳이기에 어른이고 아이이고 놀이하고 동떨어지도록 내몰까요.


  숲이 없기 때문일까요. 들이 없기 때문일까요. 멧골과 냇물과 도랑이 없기 때문일까요. 타고 오를 나무가 없고, 꺾으며 놀 풀이 없는데다가, 향긋하게 맡을 꽃이 없기 때문일까요. 구름을 볼 수 없도록 높은 건물이 가로막고, 무지개를 찾을 수 없게끔 자동차가 물결치고, 하늘빛 누리지 못하게 온통 지하철에 지하상가에 가로막히기 때문일까요. 아마 이 모두 없기 때문인지 몰라요. 아마 이 모두 도시에 깃들기 너무 어렵기 때문인지 몰라요. 게다가 도시에서 살아가며 개똥벌레며 땅강아지며 다슬기며 잠자리며 쳐다볼 겨를이 없고, 이런 작은 숨결들 도시에서 모조리 쫓겨나요.


  작은 사람이 도시에서 살기 벅차요. 작은 사랑이 도시에서 싹트기 힘들어요. 작은 이야기가 도시에서 피어나기 빠듯해요. 그러니까, 하도 재미없고 따분한 삶터요 삶자락이며 삶빛이다 보니, 이렇게 “그런데, 그런데” 하고 읊으며 재미없는 글을 쓸밖에 없구나 싶어요.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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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헌책방

 


  책은 불도 싫어하고 물도 싫어합니다. 책은 따스함과 시원함은 좋아하지만, 불과 물은 반기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책이 된 나무도 흙땅에 뿌리를 내려 살아갈 적에 숲에 불이 나거나 큰물이 지면 달갑지 않아요.


  들풀도, 벌레도, 사람도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불을 여러모로 살려서 문명과 문화를 일구는 사람이라 하지만, 불길 치솟는 전쟁과 싸움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가뭄이 들거나 큰물이 질 때면 사람들 삶터 또한 무너집니다. 그렇다고, 냇바닥을 시멘트로 바꾸고 냇둑 또한 시멘트로 높이 쌓는 일이 사람들 삶터를 지키지 않아요. 시멘트 울타리 세우는 댐에 물을 가두어 시멘트관으로 물줄기 이어 도시를 먹여살리려 한대서 사람들 삶터를 살찌우지 못합니다. 흐르는 냇물이 숲을 살찌우고 사람을 살찌웁니다. 맑게 흐르고, 구비구비 흐르는 물줄기가 흙을 살리며 사람을 살리지요.


  비가 내리는 날 헌책방골목은 빗물에 젖습니다. 헌책방골목 길바닥은 깔끔한 돌로 바꾸었으나, 지붕은 따로 없어, 비 내리는 날이면 가게마다 해가리개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잇습니다. 해가리개 사이사이 빗물이 흐르고, 빗물이 길바닥에 덜 튀도록 양동이를 댑니다. 빗물이 덜 튀어야 책이 덜 다치겠지요. 비 내리는 날에는 하는 수 없이 비닐로 책을 덮고, 비닐로 책을 덮으면 책이 잘 안 보이며, 책이 잘 안 보인대서 비닐을 함부로 걷으면 책들이 빗물에 젖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책을 바깥으로 내놓지 않으면 골마루가 책더미에 쌓여 드나들기 어렵습니다. 헌책방은 책을 들이고 내놓는 품을 들이면서 하루를 열고 닫습니다. 비가 안 오면 시골마을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면 책을 걱정합니다.


  비 내리는 날 책방마실 하는 책손은 어느 곳에서 발걸음 멈추고 우산을 끌까요. 비 내리는 날 책방마실 누리는 책손은 어느 책 하나 살포시 가슴에 안으며 빗물내음과 함께 책내음을 마실까요.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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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9. 2013.6.24.

 


  혼자서 젓가락질 씩씩하게 잘 할 줄 아는 산들보라는 혼자서 책을 쩍쩍 펼칠 줄 안다. 그런데 아직 책읽기를 한다기보다 책놀이만 하는 터라, 으레 거꾸로 쥐어서 펼친다. 책을 들여다보는 재미보다는 책을 손에 쥐어 휘리릭 펼치는 놀이를 좋아한다. 혼자서 책 거꾸로 쥐며 놀면서 빙그레 웃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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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운 책 (도서관일기 2013.6.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나한테도 더는 없는 ‘두꺼운 책’을 얻었다. ‘두꺼운 책’을 얻은 값을 곧 부쳐야 할 텐데, 이달에는 못 부칠 듯하고, 다음달에는 붙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고마운 책 기쁘게 보내 주신 분한테 마땅히 책값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책값 치를 만한 글삯벌이 곧 들어오리라 믿는다.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음주에 《이오덕 일기》 예쁜 판으로 나온다고 연락해 준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참 오래 걸렸다. 내가 이오덕 선생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던 2006년부터 《이오덕 일기》를 내놓으려고 하다가 어영부영 한 해 두 해 흘렀고, 2011년부터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시금 힘을 그러모아 애쓴 끝에 비로소 빛을 본다. 책이 나오기 앞서 만든 가제본은 도서관으로 옮겨놓는다. 다음주에 선보일 고운 옷 입은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은 어떤 모습일까. 그 책들을 받으면, 한 권씩 느낌글을 모두 쓸 생각이다. 느낌글 다섯 꼭지를 다 쓰고 나면, 이 책들도 도서관으로 옮겨놓을 수 있겠지. 책시렁 한 칸 비워야겠다.


  내 ‘두꺼운 책’ 꽂을 책시렁도 비운다. 이 ‘두꺼운 책’은 두께만 두꺼운 책이었을는지, 이야기와 알맹이도 두꺼운 책이었을는지 궁금하다. 새책방에서는 진작에 다 팔리고 출판사에도 남은 책이 없다 했으니, 이럭저럭 이야기와 알맹이 깃든 책이었을까. 2쇄를 찍지 못한 채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졌으니, 이번에 얻은 이 책들 아니고는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선물하거나 빌려줄 수 없다. 이 ‘두꺼운 책’ 2000권은 어떤 2000 사람 손길을 거쳐 어느 자리로 갔을까. 저마다 어떤 마음밥 구실을 하려나.


  도서관 둘레 들딸기를 따서 아이들 먹이려 했더니, 이웃마을 누군가 조그마한 알맹이까지 모조리 훑었다. 뽕나무에 맺힌 오디까지 샅샅이 훑었다. 어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아이들 낮밥으로 들딸기랑 오디를 먹이려 했는데, 이만저만 아이들이 서운해 하지 않는다. 미안하구나.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새밥 지어 차릴게. 오늘은 도서관 일 하지 말고 집으로 가자.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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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6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책. 정말 좋습니다. ^^
어느 사람이 그렇게 욕심 사납게 그렇게 들딸기와 오디까지 싹 다 따갔을까요...
그렇게,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하시던 전우익 선생님의 책 제목이 떠오르는
아침이네요. 벼리와 보라가 서운해하는 마음이 표정에 다 나와 있군요.. 에궁..

파란놀 2013-06-26 09:32   좋아요 0 | URL
아마 장날에 내다 팔 생각이었든지,
술을 담그려고 했겠지요...

분꽃 2013-08-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책방에서 보낸 1년" 이 책을 읽고 제가 종규님을 알게 되었네요.
알라딘에서 이책을 보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두꺼은 책을 썼을까?' 놀랐고,
또 '이 책을 낸 출판사도 참말 대단하다' 하고 두 번 놀랐네요.
종규님을 알게 된 고마운 책입니다~
 


 곰팡이떡 된 대형사진 (도서관일기 2013.6.2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바야흐로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서재도서관 들어서는 길은 풀숲이 된다. 아직 그리 키 높이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키로 살피면 제법 우거진다. 이 풀들 조금은 베어서 길을 터야겠지만, 한동안 그냥 둘까 싶기도 하다. 나는 풀이 우거져도 벨 마음이 없다. 풀이 우거지도록 두고 싶으며, 사람이 지나갈 자리만 조금 베거나 뽑으면 된다고 느낀다. 아니, 사람이 지나갈 자리조차 풀을 안 베고 슥슥 밟고 지나가도 된다. 어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만 한 풀숲은 스스로 씩씩하게 헤치면서 다니도록 해 주고 싶다. 그야말로 아무것 아닌 풀숲인걸. 풀잎을 느끼고 풀내음을 맡으면서 자랄 때에 ‘풀아이’가 되지 않겠는가.


  더운 여름에 비가 잦으니 도서관에 후덥지근한 기운이 감돈다. 얼른 창문부터 연다. 엊그제 제법 비가 쏟아졌지만 이번 비는 그닥 새지 않았다. 그런데 큰 포스터 건사하는 큰 종이가방 아래쪽에 곰팡이가 피었다. 아니, 언제 여기에 이런 곰팡이가 피었지? 깜짝 놀라 안에 든 포스터를 꺼낸다. 2004년 무렵에 30인치 크기로 목돈 들여 만든 사진 스무 장 남짓 떡처럼 달라붙어 안 떨어진다. 하이고, 이 사진들 값이 얼마인데. 수십만 원이 한꺼번에 날아가네. 포스터는 어떤가 하고 살피니, 포스터 있는 자리까지 곰팡이와 물기가 스미지 못했다. 비싼 사진들이 떡이 되면서 포스터는 지킨 듯하다.


  떡이 된 사진을 떼려다가 그만둔다. 필름으로 뽑은 마지막 대형사진이라 다시는 이 사진을 만들 수 없다. 이 사진을 다시 만들자면 이제는 수백만 원이 든다. 그나마 사진은 어찌저찌 다시 만들 수 있겠지. 외려 포스터는 다시 얻을 수 없잖은가. 행사 포스터, 광고 포스터, 2002년 월드컵을 하면서 신문사에서 길에 뿌린 축구선수 포스터, 재개발 철거하는 동네에 나붙은 포스터, 사진전시회 포스터, …… 그야말로 온갖 포스터를 열 해 남짓 그러모았는데, 이 포스터를 곰팡이와 물기에서 건졌으니 고맙다 여겨야지 싶다.


  건지기는 했으나 포스터에도 곰팡이 기운 조금씩 올라오려 한다. 마른 물수건으로 곰팡이를 턴다. 2004년부터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골목책잔치 하며 붙인 포스터를 본다. 이 포스터 다치면 안 되지. 2004년에 부산 보수동에서 사진잔치 벌이며 쓴 포스터도 보고, 황새울 사진전시회 포스터도 본다. 2005년치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전시회 포스터를 본다. ‘조아세’에서 2004년치 달력으로 만들었던 ‘친일신문 조선일보’ 알리는 자료를 본다. 어느새 열 살 묵은 이런 달력도 포스터와 함께 건사했었네.


  그나저나 커다란 포스터는 어떻게 두어야 좋을까. 넓은 책상에 포스터를 올려놓고 누구나 손으로 만져서 살피도록 하면 될까. 나이 먹은 포스터에 테이프를 발라 벽에 붙일 수는 없고, 하나하나 비닐을 씌우려 한대도 커다란 비닐 얻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고. 앞으로 열 해쯤 더 묵혀 ‘포스터 나이 스무 살’쯤 될 때에 사람들 앞에 선보일까. 아무튼 이 포스터 잘 건사하는 길도 생각해야겠다.


  오늘도 사진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인천에서 동시 쓰는 할아버지가 손글씨로 부쳐 준 누런봉투도 책꽂이 벽에 붙인다. 손글씨 봉투를 붙이니 보기 좋네, 하고 혼자서 생각한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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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6-26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과 불, 그리고 책벌레는 책보존에 치명적인 것 같네요.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본 영화에서는 고서 희귀본을 모아놓는 방은 습도와 온도거 조절되는 밀실이더군요.ㅎㅎ 고생하시네요.

파란놀 2013-06-26 09:3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만큼 넉넉한 데에
이럭저럭 책을 두었으니
앞으로 잘 돌보면서 건사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