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한 줄기

 


  시골에서 쓰는 찬물은 쓰면 쓸수록 차가운 기운이 짙다.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시골물은 찬물이다. 입으로 마셔서 몸으로 받아들일 때나 손발로 적셔 살갗으로 맞아들일 적이나 언제나 찬물인 시골물이다.


  도시에서 쓰는 물은 언제나 찬물이 아니다. 아무리 쓰고 써도 물 기운은 똑같다.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도시에서는 찬물을 쓸 수 없다. 도시에서 먼 시골자락 멧골마을 여러 곳을 시멘트 울타리 세워 물을 잔뜩 가둔 댐부터 시멘트관으로 잇고 이어 도시로 끌어들이는 물에는 찬 기운이 서리지 않는다.


  물을 마시거나 물로 살갗을 적시면서 물빛과 물내음과 물맛을 어느 만큼 느끼는가 하고 돌아본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은 저마다 어떤 기운을 물에서 얻는가 헤아린다. 물빛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물내음을 맡으며 물을 쓰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가. 물맛을 짚으며 물을 누리는 사람은 한국땅에 있기는 있는가.


  비오는 날에 비를 기쁘게 맞으며 걷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시골에서 손으로 냇물을 떠서 마시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4346.7.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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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운 손님 (도서관일기 2013.7.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포두면에서 산다는 분이 도서관으로 찾아오겠다 전화를 한다.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마을에서 내린 뒤 연락을 한다고 한다. 마당에 옷가지와 이불과 베개를 잔뜩 널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으로 간다. 장마가 살짝 쉬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는 땡볕이 후끈후끈 내리쬔다. 이불도 옷가지도 베개도 잘 마른다. 장마비 내리는 동안 집안이 눅눅해지며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에 스미던 물기가 바짝바짝 마르는구나 싶다. 며칠 뒤 또 비가 온다 하니, 햇살내음 듬뿍 받기를 바라면서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를 평상이며 마당에 잔뜩 깔아 놓고 도서관으로 간다.


  햇볕은 따갑고 뜨겁지만, 우리 도서관에 깃들며 창문을 열면 시원하다. 이곳이 폐교 되기 앞서도 이렇게 시원했을까. 폐교가 된 뒤 운동장이며 학교 건물 둘레며 온통 풀밭이 되어 뙤약볕을 한껏 받아들여 주면서 풀바람이 불기에 시원하지는 않을까.


  2011년 가을에 사진책도서관을 고흥으로 옮기면서 여태껏 ‘젊은이’가 우리 도서관에 오겠다고 전화하며 찾아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교사나 어른을 따라 함께 온 젊은이와 푸름이는 있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찾아온 사람은 아직 없다. 오늘 손님은 여러모로 반가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참 마땅한 일인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읽을 책이지, 억지로 누군가 끌여들여 손에 책을 쥐도록 할 수 없다. 시골숲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숲에 깃들어야 시골숲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고 느낀다. 시골바람이 시원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바람을 쐬어야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시바람하고 사뭇 다른 달콤한 시골바람 시원한 맛을 느낀다.


  남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한다. 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스스로 찾고 살피면서 어떻게 내 마음을 건드리거나 움직이도록 이끄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궁금한 대목은 스스로 찾아서 밝힌다. 아쉬운 대목은 스스로 갈고닦아서 북돋운다. 기쁜 대목은 동무들과 도란도란 책이야기를 펼쳐 나눈다. 아름다운 대목은 마음에 잘 아로새겨 내 삶길에 밑바탕으로 삼는다.


  돌이켜보면, 어느 도서관도 ‘도서관 홍보’를 하지 않는다. “우리 도서관으로 오십쇼!” 하고 홍보하는 데는 없다. 도서관은 늘 그 자리에서 씩씩하게 책터를 가꾸면 된다. 사람들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고 생각을 열며 책을 손에 쥐어야 한다. 도서관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문을 열어야 할 뿐이고, 사람들이 찾고 싶은 책을 언제라도 내어줄 수 있도록 책시렁 알차게 갖추어야 할 뿐이다.


  반가운 손님을 앞에 두고 책꽂이 자리를 바꾼다. 지난해에 새로 들인 책꽂이에 곰팡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목 아닌 합판으로 짠 책꽂이는 참말 쓸 것이 못 된다. 아무리 새로 들인 책꽂이라 하더라도 합판으로 댄 책꽂이는 도서관에 두어서는 안 되는구나 싶다.


  나무로 빚은 책을 나무로 짠 책꽂이에 둘 때에 도서관이 된다. 나무로 지은 집에 온갖 나무 알뜰살뜰 가지를 뻗고 푸른 잎사귀 빛낼 때에 보금자리가 된다. 책이란 나무빛이라 하겠구나. 집이란 보금자리숲이라 하겠구나.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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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6] 한 마디 말

 


  능금씨 심으면 능금나무 자라고
  부추씨 떨어지면 부추풀 돋으니
  씨앗 한 톨 온누리 어루만진다.

 


  어른들이 고운 말 즐겁게 쓰면, 아이들도 고운 말 사랑스레 쓴다고 느껴요. 어른들이 고운 말을 잊거나 즐겁게 주고받는 말빛을 잃으면, 아이들도 고운 말을 잊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즐겁게 말빛 주고받는 기쁨을 잊어요. 한 마디 말은 언제나 한 마디 말씨앗이에요. 두 마디 말은 늘 두 마디 말씨앗이고요. 능금씨 한 톨이 뿌리를 내려 우람한 능금나무 되고는 맛난 능금알 베풀듯, 곱게 나누는 말씨 한 마디는 아름다운 말나무 되어 온누리 따사롭게 보듬는 사랑스러운 말빛이 됩니다. 4346.7.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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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7-14 18:09   좋아요 0 | URL
장일순님의 <나락 한알속의 우주>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작은 나락 한알 속에서 우주를 보는 것, 씨앗 한톨 에서 온누리를 읽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골목꽃

 


  골목 한켠에 피어나는 꽃은 사람들 눈에 확 뜨이도록 커다란 송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씨앗은 조그마한 뿌리를 내리고 조그마한 줄기를 올린 뒤 조그마한 잎사귀를 벌려 조그마한 꽃송이 틔웁니다. 풀밭은 아주 조그마한 풀포기가 수없이 얽히고 설켜 이루어집니다. 커다란 풀 몇 있는대서 풀밭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조차 잊은 온갖 풀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자라기에 풀밭이 되어요.


  그늘진 골목 한켠에 풀이 돋습니다. 햇볕 한 조각 살짝 비출까 말까 싶은 자리에 꽃이 맺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누군가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그렇지만, 골목꽃은 씩씩하게 피어납니다. 골목꽃은 맑은 빛깔 살그마니 내놓아 커다란 도시 한쪽에 조그맣게 그림을 그립니다. 풀과 벌레와 사람과 흙이 서로 손을 맞잡아 따사로운 보금자리 되는 그림을 조그맣게 그립니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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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빛나는 책시렁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는 쓰다듬거나 비빈다고 닳지 않는다. 살아서 바람을 마시는 목숨은 닳지 않는다. 사람도 쓰다듬거나 어루만진다고 해서 닳지 않는다. 산 목숨은 닳지 않고 단단해진다. 산 숨결은 닳는 일 없이 한결 곱게 빛난다. 고운 손길 뻗어 쓰다듬을 적에 사랑이 스민다. 맑은 눈빛 드리워 어루만질 때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나무에서 태어난 책은 사람들이 만지고 만질 때마다 조금씩 닳는다. 나이를 먹는 책은 천천히 낡는다. 백 사람도 만 사람도 손으로 만져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천 해 지나고 이천 해 흐르는 사이 종이가 바스라지고 책등이 조금씩 터진다.


  그런데, 낡거나 닳는 책은 껍데기가 낡거나 닳더라도 빛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은 껍데기나 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에 얹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는 책이지, 종이를 읽거나 껍데기를 읽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책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은 이야기를 살피고 헤아리며 즐길 뿐, 껍데기에 붙인 이것저것을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즐기지 않는다. 겉장은 단단한 종이로 새로 붙여도 된다. 속종이는 아예 새로운 종이에 다시 박아서 묶을 수 있다. 그런데, 겉장을 새로 붙이든 속종이를 새로 찍어서 묶든, 속에 얹는 글(이야기)은 한결같다.


  가지 하나 부러지더라도 나무는 나무이다. 잎사귀 모두 떨구어도 나무는 나무이다. 꽃이 새로 필 적에도 나무는 나무이다. 벼락을 맞아 부러지거나, 나무꾼이 도끼로 베어 그루터기만 남아도 나무는 나무이다.


  아이들이 과자 먹던 손가락으로 책에 기름을 묻히더라도 책은 책이다. 빗물이 떨어져 책종이가 일어나도 책은 책이다. 끈으로 질끈 묶인 채 몇 해 동안 책손 손길을 타지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더라도 책은 책이다. 많이 팔리는 책도 책이고, 책손 한 사람이 알뜰히 사랑해도 책이다.


  나무가 빛나는 책시렁을 바라본다. 나무에서 태어난 책은 나무를 잘라 마련한 책시렁에 놓이면서 빛난다. 어쩌면, 사람들 숨결도 늘 나무가 아닐까. 나무가 있어 집을 짓고, 불을 피우며, 연장을 마련한다. 나무가 있어 그늘이 있고 푸른 바람이 불며 둘레에 온갖 풀이 자란다. 나무가 있어 새들이 깃들어 노래한다. 나무가 있기에 숲이 우거지면서 냇물이 흐른다. 나무가 있어 구름이 피어나고 무지개가 뜨며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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