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새롭게 읽는 책

 


  이오덕 님이 엮어서 내놓은 《일하는 아이들》(청년사)을 헌책방에서 새삼스레 본다. 1978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이 나라 교육과 문학을 뒤집는 노릇을 했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이 나라 교육과 문학은 아이들을 ‘동심천사주의’ 그물에 옭아매어 입시문제로 들볶느라, 삶도 꿈도 놀이도 빛도 사랑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멧골마을 아이들 삶이 드러나는 글을 모아서 엮은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읽으면, 아주 마땅히, 책이름 그대로 “일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런데, 일하는 아이들만 나오지 않는다. 일하는 아이들이란 “놀이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 놀이가 수없이 나온다. 또 “사랑하는 아이들”이다. 동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붙이를 사랑한다. 꽃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며 숲을 사랑한다.


  그러면 왜 책이름이 “일하는 아이들”이었을까? 스스로 삶을 밝히면서 가꾸는 일이 무엇이요 사랑이 어떠한가를 깨닫지 못할 적에는 도시문명사회에서 돈벌이로만 치닫는 생체기계인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삶다운 삶을 찾는 첫길로 “일다운 일”을 찾는 “일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일하는 아이들》 예전 판을 본다. 이 책은 무척 많이 팔렸다고 하는데, 나중에 출판사에서 판매부수를 속이고 인세지급을 안 하며 책을 새로 찍고도 ‘중판’이라 적거나 ‘판수 줄이기’ 장난을 쳤다고 한다. 이를테면, 8쇄를 찍었으면서 간기에 ‘7쇄’라 찍어서 출고를 하는 모양새로. 이런 이야기를 이오덕 님 둘레에서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어서(권정생 님도 여러 차례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오덕 님은 청년사 대표한테 편지를 띄웠고, 청년사 대표가 흐리멍덩하게 말을 흐리자, 안 되겠구나 싶어 내용증명을 보내 절판시키라 했다. 그러나 곧바로 절판시키지 않고 한두 해쯤 몰래 더 찍어서 팔았다고 한다.


  엊그제 헌책방에서 만난 《일하는 아이들》은 1쇄를 찍은 뒤 이레만에 2쇄를 찍은 판이다. 3쇄는 얼마만에 찍었을까. 모두 몇 권이나 찍었을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밥 얻었을까. 2002년에 새옷 입고 다시 나온 책도 있는데, 헌책방에서 예전 판으로 만나 다시 읽으면 새로운 느낌을 얻는다. 1970년대 끝무렵 아직 군사독재정권 서슬이 시퍼렇던 그때, 이런 책 내놓았다고 문교부와 지방교육청 장학사한테 들볶이고 시달리던 이오덕 님 삶을 돌아본다. 총칼로 사람들 억누르던 군사독재정권이 이 땅 아이들을 어떻게 입시노예 도시노예로 길들이려 했던가 하는 이야기를 헤아린다. 1970년대에 어린이였던 사람은 오늘날 어떤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볼까 궁금하다.


  오늘날 어른은 “일하는 어른들”일까, 아니면 “돈버는 어른들”일까.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하는 아이들”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아이들 가운데 “꿈꾸는 아이들”이나 “사랑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삶을 아끼고 동무를 보살피며 이웃과 어깨를 겯는 착하고 참다운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삶을 지을까.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3-07-1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간나면 헌책방 찾아가야겠어요.^^
나중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한번 더 가 보고요.ㅎㅎ

파란놀 2013-07-16 17:41   좋아요 0 | URL
대구에 있는 <대륙서점>도, 또 부산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골목도,
또 알라딘책방도 모두 즐겁게
책마실 하시면서
두 손에 고운 책빛 담아 보셔요~~ ^^
 
고릴라를 쏘다 - 안티기자 한상균의 사진놀이
한상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42

 


사진을 읽는 길
― 고릴라를 쏘다
 한상균 글·사진
 마로니에북스 펴냄,2012.10.15./15000원

 


  연합뉴스 사진기자 한상균 님이 쓴 《고릴라를 쏘다》(마로니에북스,2012)를 읽습니다.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어 매체에 실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지난 2012년에 한상균 님이 내놓은 책은 ‘사진찍기’ 아닌 ‘사진읽기’를 이야기합니다. 누구보다 한상균 님 스스로 사진을 어떻게 읽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놀이라면 재밌어야 하지 않을까요(18쪽)?” 하는 말처럼, ‘사진놀이’일 적에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놀이’이니까요. 노래놀이가 되든 그림놀이가 되든 글놀이가 되든 춤놀이가 되든, 놀이일 적에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를 꽃피우고 재미를 나누는 놀이예요.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도 서로 재미있자고 합니다. 공놀이도 씨름놀이도 함께 재미있자고 해요. 죽자 사자 겨루면서 누가 이겨야 하는 놀이가 아니에요. 곧, 사진놀이일 적에는 서로 재미있는 길을 찾으면서, 사진이란 이렇게 재미나구나 하고 깨닫자는 뜻입니다. 1등이나 꼴등 따로 없이 어느 사진이든 재미있게 놀자는 뜻입니다.


  사진놀이 아닌 ‘사진’이라고만 할 적에는 사뭇 다릅니다. 사진놀이에는 놀이라는 이야기가 함께 따르지만, 사진이라고만 할 적에는 놀이가 따를 수 있기도 하지만 일이 따를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삶이 따릅니다.

 

 

 


  놀이와 일과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곧, 사진이라 할 때에는 즐거움입니다. 삶도 일도 놀이도 즐겁게 나누자는 뜻이요, 삶과 일과 놀이 되어 어우러지는 사진이란,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가진 카메라에는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과 일상이 주로 담기게 됩니다. 처음부터 이러이러한 사진은 나쁜 사진이라는 틀을 가지고 시작하면 나중에도 그 습관을 벗어던질 수가 없습니다 … 매우 개인적인 것이 사진입니다. 그냥 자기 사진이 있을 뿐입니다(69쪽).” 하는 말을 생각합니다. 여느 사람들이 장만한 사진기로는 이녁 여느 삶을 담겠지요. 그런데, 더 생각해 봐요.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은 ‘여느 삶(일상)’이 아닐까요? 사진기자가 찾아다니는 취재 현장은 ‘여느 삶터’가 아닐까요? 바로 오늘 어떤 일이 터져 어떤 현장이 되었다지만, 바로 이곳은 조금 앞서까지만 해도 여느 삶터였어요.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운동선수이건 처음부터 국회의원이었거나 대통령이었거나 운동선수가 아니었어요. 모두 여느 사람이었어요. 여느 아기로 태어나 여느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곰곰이 따지자면,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도 ‘여느 삶’을 보여줍니다. 다만, 사진기자가 찍는 ‘여느 삶’은 수십만 수백만 사람이 쳐다보는 매체에 실린다뿐입니다. 사진기자가 찍는 사진은 ‘매체 보도’가 되어 ‘보도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지만, 속살을 파헤치면 모두 똑같은 ‘여느 삶’을 보여주어요. ‘여느 삶’에서 ‘보도가 될 이야기’를 새로 얻는다고 할까요.


  다시 말하자면, 여느 사진기로 여느 삶을 찍는 여느 사람인 우리들은 ‘여느 이야기’를 일굽니다. 여느 이야기에서 여느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여느 사랑에서 여느 꿈과 여느 마음을 가꾸지요.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궁한 가능성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은 결코 ‘뭘 찍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찍지?’의 문제로 다가오게 될 겁니다(75쪽).” 하는 말마따나, 사진기를 손에 쥔 우리들은 우리 여느 삶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즐겁게 찍는 사진은 즐겁게 읽을 수 있어요. 즐겁게 찍는 사진이기에 즐겁게 나눌 수 있습니다. 억지로 찍는 사진이라면 억지로 읽어야 해요. 억지로 꾸미거나 만든 사진일 때에는 억지로 읽어내거나 억지로 비평하거나 억지로 문화나 예술 이름표를 붙이고 말아요.


  무엇을 찍느냐? 바로 우리는 우리 삶을 찍습니다. 무엇을 찍느냐? 사진기자는 기자로서 매체에 담을 삶을 찍습니다. 이이가 찍거나 저이가 찍거나 모두 삶을 찍어요. 이 사람이 찍었기에 대단한 사진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찍었기에 대수롭지 않은 사진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찍을 때에 즐겁게 읽을 만한 사진이 됩니다. 이야기를 찍지 않을 때에는 겉보기로 그럴듯한 모습만 나타납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렌즈 화각 등을 잘 이용해서 색감, 구도 등이 잘 나온 사진을 찍었다면 그게 적어도 나쁜 사진은 아니겠지만 잘 찍은 사진이 꼭 좋은 사진일까요(120쪽)?”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저는 좀 많이 다르게 생각합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감도, 렌즈 화각”을 잘 살펴 찍은 사진은 “조리개 잘 살핀 사진”이거나 “셔터스피드 잘 맞춘 사진”이거나 “감도 잘 맞춘 사진”이거나 “렌즈 화각 잘 살핀 사진”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나쁜 사진이고 좋은 사진이고가 아닌, 그저 그런 사진일 뿐입니다. “색감, 구도 들이 잘 나온 사진”이라면 “색감이 잘 나온 사진”이거나 “구도가 잘 나온 사진”이지요. 이런 사진을 놓고 좋은 사진이라거나 나쁜 사진이라 할 수 없어요. 그저 그런 사진일 뿐입니다.


  흉내낸 사진은 흉내낸 사진입니다. 스스로 찍은 사진은 스스로 찍은 사진입니다. 사랑스레 찍은 사진은 사랑스러운 사진이에요.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은 활짝 웃는 이야기 담은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할 때에 좋아할 만한 사진입니다. 스스로 아낄 때에 아낄 만한 사진입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못하거나 아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남이 해 주는 사진이 아닙니다. 스스로 하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단추를 눌러요. 스스로 바라봅니다. 스스로 느껴요. 스스로 삶을 이룹니다.


  한상균 님이 들려주는 사진 이야기는 “여행이 좋아 사진을 찍는다면 모를까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간다면 말에 어폐가 있지 않을까요? 그냥 출사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네요(194쪽).”와 같은 말마디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좋아할 때에 사진을 좋아할 수 있어요. 스스로 꿈을 꿀 때에 사진을 꿈꿀 수 있어요. 스스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진으로 이야기를 빛낼 수 있어요.


  그럴듯한 모습에 사로잡혀서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남이 찍은 모습을 흉내내서는 내 사진을 이루지 못해요. 다른 사람 삶을 뒤꽁무니 쫓는대서 내 삶이 나아지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울 수 없듯, 나는 늘 내 사진을 생각하고 찾으며 즐길 뿐입니다. 내 삶을 내가 빛내어 누리듯, 내 사진을 내가 빛내어 누립니다. 사진을 읽는 길이란, 삶을 읽는 길입니다. 삶을 스스로 씩씩하게 일구는 사람은, 사진을 스스로 웃음꽃으로 피웁니다.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벼락

 


땡볕 내리쬐는 칠월
윙윙윙윙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 뜨더니
쏴쏴쏴솨 물벼락
퍼붓는다.

 

마당에 넌 이불과 빨래
흠뻑 젖고

내 머리와 옷도 젖고
내 자전거도 젖고
텃밭에도
감나무와 후박나무에도
물벼락.

 

해 떨어진 저녁에
웬일인지
개구리 노랫소리
없다.

 

그 많던 개구리
모두 어디 갔지?

 

개구리 잡아먹던
해오라기는
어디 갔지?

 

친환경농약 물벼락
이웃마을에도
떨어졌을까?

 


4346.7.15.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데에서 책을 만지던 사람들이 ‘책이야기’를 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넷책방 알라딘에서 일하던 사람도 ‘책이야기’를 쓴 적 있으니, 커다란 책방에서 여러모로 잘 팔리는 책을 말하는 이야기 쓸 수 있겠지. 그런데, 사람들 사이로 곱게 스며드는 책빛은 어디에서 태어날까. 사람들 보금자리를 맑게 밝히는 삶빛은 어디에서 자라날까. 골목동네 조그마한 책방에서 삶을 일구는 사람들 목소리를 기다린다. 시골마을 숲속에서 사랑을 가꾸는 사람들 웃음을 기다린다. 먼 서양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 가져올 수 있지만, 이 나라 이 땅에서 여느 사람들 스스로 책삶 가꾸는 모습 만나고 싶다.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13년 07월 16일에 저장
절판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분꽃 2014-04-1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감동도 있고, 책방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한 번 가보고 싶은 곳!!
 
자연과 하나되는 녹색도시 이야기
창조문화 어린이환경팀 지음 / 창조문화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환경책 읽기 45

 


개구리 몽땅 죽은 ‘조용한’ 마을
― 자연과 하나되는 녹색도시 이야기
 창조문화 어린이 환경팀 엮음
 창조문화 펴냄,2002.4.20./8000원

 


  하루아침에 개구리 밤노래가 사라집니다. ‘친환경농업단지’라 이름을 붙인 우리 마을 논자락에 ‘친환경농약’을 ‘무인 헬리콥터’로 뿌린 날부터입니다. 해거름이 듣는 저녁부터 이듬날 새벽 네 시까지 펼쳐지던 개구리 밤노래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무더위를 식힙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아이들이 포근하게 자도록 이끕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한여름 짧은 밤을 한껏 밝힙니다. 개구리 밤노래는 달빛과 별빛을 받으면서 온 마을 따사로이 어루만집니다.


  그러나 이 밤노래를 올해에 더는 누릴 수 없습니다. 모두 숨을 거두었으니까요.


.. 급격하게 늘어나는 도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산과 숲의 녹지를 파괴하여 집을 짓는 것, 그리고 자동차와 건물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 때문에 공기가 오염되는 것, 그리고 각종 하수와 쓰레기에 의해 바다와 육지가 더럽혀지고 있는 것들이 자연 훼손의 모습들입니다. 또한 도시는 엄청난 양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한 예로 서울의 63빌딩이 하루에 소비하는 전기는 청주시 전체의 하루 전기 소비량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  (6쪽)


  달과 별이 밝은 밤에 아이들한테 부채질 해 주며 재웁니다. 두 아이를 나란히 눕힌 뒤 부채 둘을 한손에 하나씩 쥐어 천천히 부칩니다. 시골집은 도시와 달리 여름밤에도 그닥 더울 일 없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면 가만히 드러누워도 땀이 솟습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하루였다 하더라도 흙과 풀과 나무가 있고, 시내가 흐르며 바다가 있을 적에는 사뭇 다르지만, 바람이 조용한 날에는 시골도 제법 덥습니다.


  그런데, 시골마을 저녁에 왜 바람이 조용할까요. 개구리가 모조리 죽어 조용해진 탓에? 바람도 이 슬픔을 알아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슬퍼하기 때문에? 

  밤새 틈틈이 깨어 아이들 부채질을 해 주면서 가만히 귀를 기울입니다. 참말 논개구리 몽땅 죽고 말아 밤노래는 조금조차 들을 수 없는가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열두 시 지나고 두 시가 될 무렵, 돌울타리로 이웃한 옆집 밭자락에서 개구리 노랫소리 한 가락 가냘피 들립니다. 올해에 깬 개구리인가 싶습니다. 용하게 넌 살아남았구나. 세 시 지날 무렵, 마을 앞자락 논배미에서 두어 마리 즈음 힘없이 노래하는 소리 들립니다. 그래, 그 엄청난 ‘항공방제’를 여러 날 자꾸자꾸 뿌리고 또 뿌렸는데에도 너희들은 참 대단한 목숨처럼 살아남았구나. 저녁나절부터 밤까지 어떤 개구리 밤노래도 못 들었는데, 깊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마디 두 마디 이곳과 저곳에서 가늘게 앓는소리 내뱉는구나.


.. 돈이나 편리한 생활보다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깨끗한 자연이 우리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다라는 생각이 녹색도시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마음놓고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주위에 얼마나 있는지. 콘크리트로 된 골목길은 자동차로 꽉 차 있고, 아파타를 제외하면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거의 없습니다. 또 생각해 보세요. 도시에서 야생동물을 본 적이 있는지. 다람쥐, 너구리, 개구리, 하늘소, 종달새를 본 적이 있나요? 도시의 하천에서 물놀이를 한 적도 없지요?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도시는 이제 오히려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  (9, 16쪽)


  도시는 자동차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길을 거닐며 이야기 나누기 어렵습니다. 자동차가 드센 물결 이루어 시끄러이 지나다니기에, 도시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귀가 찢어집니다. 한갓진 골목마저 사라진 도시예요. 골목길을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으면서 ‘그리 안 넓은’ 골목마다 자동차가 빼곡하게 섭니다. 좁은 골목길을 자동차가 빵빵거리며 달립니다. 좁은 골목길 따라 배달 오토바이가 무섭게 내달립니다.


  골목동네 아이들조차 골목에서 쉽게 못 놉니다. 자동차 등쌀과 오토바이 주먹다짐에 쫓겨납니다. 자동차는 달리지 않을 때에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말아, 아이들이 뛰놀 자리를 빼앗습니다.


  도시는 자동차 문명이 되면서, 흙으로 이루어진 길을 모조리 없앱니다. 도시 어른과 아이는 흙을 밟거나 만지지 못합니다. 아니, 도시에서는 흙을 구경할 수도 없어요. 흙이 어디에 있나요? 꽃그릇 하나 건사할 적에도 흙보다 ‘흙 구실 한다는 화학조합물’을 차곡차곡 담아요. 도시에서는 꽤 예전부터 ‘물을 돈 주고 사다 마셔야’ 했고, 도시에서 흙을 만지려면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그나마 손바닥만 하다 싶은 공원이 있으면 흙을 밟을까 싶지만, 잔디 다친다며 흙 못 밟게 하지요. 더군다나 공원 흙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밟아서 딱딱해진데다가 쓰레기와 담배꽁초 마구 버리고 말아 냄새조차 안 좋습니다.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사람이 몰려들어 살아가는 도시인데, 막상 사람 숫자는 많지만, 도시에서 사람다운 아름다운 빛 나누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대로 만만하지 않은 삶이고,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대로 고단한 삶이에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랑스레 나누지 못하고,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은 돈을 적게 버는 나머지 이웃사랑을 홀가분하게 펼치지 못해요.


  무엇보다 도시에서는 하늘을 못 봅니다. 아니, 도시에서는 땅(흙)도 못 보고 하늘도 못 봅니다. 하늘을 못 보는 도시라는 말은, 사람이 10초만 안 마셔도 죽음으로 치닫는 ‘바람’을 아예 생각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할 노릇입니다. 돈은 못 벌어도 이럭저럭 살림 꾸릴 수 있어요. 바람을 안 마시면 곧바로 죽어요. 돈을 왕창 벌어 100억이니 1000억이니 쌓았어도 맑은 바람 못 마시면 몸이 망가져서 ‘애써 번 돈 제대로 못 쓰고 죽’겠지요. 돈은 한푼조차 없다지만 맑은 바람 쐬며 살아간다면,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하는 하루를 누릴 수 있어요.


.. 우리 나라의 경우 공해의 1/3이 건축물이 배출하는 물질 때문이라고 합니다 … (독일 샤프뢸 마을은) 마을 밖에 주차장을 설치하여 마을 안으로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걸어다닐 수 있고, 따라서 소음과 매연도 줄어들었습니다 … 서울의 거리를 생각해 보세요. 거리는 늘 막혀 있습니다. 그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도시의 하늘은 항상 뿌옇습니다. 이 매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고 있습니다. 또한 오염물질이 녹아 있는 산성비로 인해 도시의 문화 유적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  (21, 23, 29쪽)


  시골은 농약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지내지 못합니다. 시골사람 누구나 논밭에 농약을 치지만, 밥을 끓이거나 국을 끓이면서 농약을 뿌리지 않아요. 시골사람 누구나 모기약 파리약 잔뜩 뿌리지만, 옷을 빨래하거나 말릴 적에 옷에 모기약 파리약 뿌리지 않아요.


  시골 떠나 아이(손자) 낳은 딸아들한테 ‘몸에 좋으라’고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보내려 한다면, 이러한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에 농약을 칠 일 없겠지요. 아토피 때문에 아파하는 아이들(손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이 아이들(손자들) 먹일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거둔다 할 적에 농약 한 방울조차 안 쓰겠지요. 도시로 떠난 이녁 딸아들이 할매와 할배가 ‘농약 쳐서 거둔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인 줄 안다면 아이들(손자들)한테 안 먹이리라 생각해요. 적잖은 돈을 들여서 ‘유기농’으로 사다 먹이겠지요. ‘화학성분 없는 연고와 약’을 찾아서 아이들(손자들) 살갗에 발라 주겠지요. 도시로 떠난 시골 딸아들은 도시에서 살더라도 당신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가장 깨끗하고 가장 정갈하며 가장 좋은’ 것을 찾아 돈을 아낌없이 씁니다.


  그런데, 막상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을 많이 쓰고 비료도 잔뜩 써요. 시골에 일손이 없다는 말로 농약과 비료를 잔뜩 써요.


  나이든 할매와 할배 몸으로 드넓은 논밭을 건사하기 힘들겠지요. 그렇다고 옛날처럼 논밭에 돋는 온갖 들풀을 들나물 삼아 뜯어서 먹지도 않습니다. 고작 할매 할배 둘뿐인 살림이니, 들나물 잔뜩 돋아도 이 나물 뜯을 일손이 없고, 애써 뜯는들 나물로 무칠 일손이 없어요. 논일 밭일 바쁜데 들나물은 쳐다볼 겨를 없어요. 이제 시골에서는 ‘들나물’이 아닌 ‘잡초’일 뿐입니다. 빨리 농약 쳐서 죽여 없앨 ‘잡초’요 ‘해충’입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을 사랑할밖에 없는 얼거리가 되었어요.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이 아니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삶이 되었어요. 1960∼70년대에 밀어닥친 독재정권 새마을운동이 뿌린 농약농사를 어느 시골마을에서건 슬기롭거나 씩씩하게 걷어치우지 못해요. 도시로 떠난 이녁 딸아들은 도시에서 큰돈 들여 ‘농약 안 친 푸성귀와 열매와 곡식’을 사다 먹으려 하는데에도, 정작 시골에 남은 할매와 할배는 농약농사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 도시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나무들이 줄어드는 것은 대기오염에 치명적입니다. 공해로 인해 환경이 나빠지면 나무의 수는 줄어들게 되고, 도시의 나무들이 사라지면 도시의 대기오염은 더욱 심각해지는 식으로 악순환도 반복될 것입니다. 또한, 나무는 도시의 기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나무가 줄어들면 도시는 여름의 강한 햇빛과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므로,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게 됩니다 …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8300만 톤에 이르는데, 이는 일인 당 7.87톤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나무가 정화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는 겨우 140만 톤에 불과합니다  도시에는 공해에 강한 나무만이 생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나무들도 공해가 심해지면서 그 숫자가 줄고 있습니다 ..  (37, 39, 51쪽)


  도시사람은 자동차를 없애거나 줄이지 않고서는 사람다운 삶 누리기 어렵습니다. 시골사람은 농약을 없애거나 줄이지 않고서는 사람다운 삶 일구기 어렵습니다.


  도시사람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조금이라도 걷어내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비로소 사람답게 살 만한 보금자리 이룹니다. 시골사람은 논둑이나 밭둑을 덮은 시멘트를 치우고, 흙으로 된 논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려는 어리석은 짓 그쳐야 비로소 사람답게 일굴 만한 보금자리 누립니다.


  도시사람은 돈벌이 아닌 삶짓기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시골사람은 돈 되는 농사 아닌 삶을 가꾸는 농사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돈에 매이면 삶을 잃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돈에 사로잡히면 삶이 힘을 잃습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시원한 땅밑물(지하수)이 흐르는데, 시골마을 구석구석 수도물 쓰게 하려는 바보스러운 토목공사는 뚝 그쳐야 합니다. 시골사람이 수도물 마시는 삶은 ‘문명’이나 ‘문화’가 아닌 ‘죽음’입니다. 도시사람은 맑은 물 마시려고 시골을 찾아다니는데, 외려 시골사람이 스스로 맑은 물 내다 버리고 집집마다 수도물 이으려 한다면,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시골 지자체(군청)에서는 ‘시골 수도물 사업’을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합니다. 시골 지자체(군청)에서는 시냇물과 도랑물이 흙바닥과 돌바닥으로 흐르는 물길 그대로 이어가도록 시멘트 퍼붓는 막개발 집어치워야 합니다. 4대강사업만 바보짓이 아니에요.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바꾸는 일 또한 바보짓이에요.


  시멘트가 그리 좋으면 논바닥과 밭뙈기에도 시멘트를 뿌려야지요. 시멘트논에 모를 심어 보라지요. 시멘트밭에 콩을 심어 보라지요. 될 턱이 있겠습니까? ‘좋은 흙’에는 석면(슬레트 지붕) 기운이 스미면 안 될 뿐 아니라, 시멘트 기운도 스미면 안 되어요. 비닐쓰레기 태운 논밭에서 키우는 곡식이 사람들 몸에 좋을 수 있겠습니까? 밭둑에서 플라스틱과 농약병 태우더라도 밭자락에 나쁜 기운 스며들어요.


.. 일년에 자동차는 15.1%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른 자동차 연로는 매년 12.6%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연간 6조 원이 넘는 돈이 자동차 연료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자동차가 먼저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운전자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경적을 울려댑니다. 이렇게 사람보다 자동차를 우선하다 보니 교통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녹지와 생태계를 파괴한다든가, 교통 체증과 소음으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과, 교통쇼ㅏ고로 인한 사망과 재산피해 등은 공해가 없는 자동차가 발명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48, 52, 55쪽)


  예부터 쓰레기 없던 시골이지만, 이제 시골은 쓰레기나라 되었습니다. 맨땅에 비닐 안 덮고 고추농사 짓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감자도 토마토도 오이도 모두 비닐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아예 비닐집 커다랗게 짓기까지 해요. ‘흙’농사는 사라지고 ‘비닐’농사만 남았다 할 만해요. 게다가 ‘농사’란 없이 ‘농약농사’만 있다고 할 판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 아닌, 농약에서 와서 농약으로 돌아가는 사람 됩니다.


  삶을 짓거나 삶을 낳는 농사는 밀려나요. 돈을 짓거나 돈을 낳는 농사가 아니라면 안 되는 나라입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농사로 나아가려는 길은 꽉 막힙니다. ‘마을에서 모두 농약을 쓰는데 당신은 왜 농약을 안 쓰느냐’는 삿대질과 손가락질을 받아야 합니다. 친환경농업이라 하지만, ‘친환경’농약을 논에 뿌리니 논개구리 모조리 죽습니다. 겨우 몇 마리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이들이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농약은 한 번만 치지 않으니까요. 개구리는 논둑이나 밭둑에 올라서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논으로 들어갈 텐데, 논둑과 밭둑에 농약 잔뜩 뿌려대어 들풀 모조리 죽이면 개구리도 죽을밖에 없습니다. 논둑과 밭둑에 뿌리는 농약은 ‘친환경’농약조차 아니지요. 그러니까, 개구리 잡아먹는 해오라기와 수많은 새들은 농약에 찌든 개구리를 먹고는 그만 뱃속이 뒤집어져서 죽습니다.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에 항공방제를 하기 앞서까지 밤에는 우렁찬 개구리 노래잔치였고, 낮에는 수십 마리 해오라기들 하얀 날갯짓잔치였으나, 이제 밤에도 낮에도 아무런 잔치를 맞이하지 못해요. 개구리 사라지고 해오라기 사라져요. 개구리 죽고 해오라기 죽어요.


  고흥 도화면 발포리에는 ‘백로·왜가리 도래지’라는 데가 있어 관광명소로 바깥에 널리 알립니다만, 이렇게 농약 흠뻑 뿌려 개구리 몽땅 죽이면, 해오라기도 왜가리도 그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새가 무엇을 먹나요.


  그리고, 개구리는 무엇을 먹지요? 초등학교 자연(과학) 수업에서도 개구리는 파리와 모기를 잡아서 먹는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개구리가 파리와 모기를 먹도록 잘 지키지 않으니, 파리와 모기가 들끓으면 다시 파리약이니 모기약이니 잔뜩 뿌리겠지요. 농약에 파리약에 모기약에, 다시 농약에 파리약에 모기약에, 이러면 시골이라는 데가 사람이 살 데가 될는지 안 될는지,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눈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소음이란, 이 모든 소리 중에서 듣기 싫고, 심지어 불쾌감을 일으킬 정도로 큰 소리를 말합니다 … 조용한 곳에서 사는 어린이들은 시끄러운 곳에 사는 어린이들보다 읽기, 말하기, 듣기를 잘 한다고 합니다 … 우리 나라 하천은 좁고 구불구불한 것이 특징입니다. 구불구불한 하천은 물살의 빠르기가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생태환경이 들어설 수 있습니다 …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만들어 놓고 어떻게 쓰레기를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  (61, 62, 75, 117쪽)


  아이들 읽을 환경책으로 엮은 《자연과 하나되는 녹색도시 이야기》(창조문화,2002)를 읽습니다. 이 책은 도시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삶을 어떻게 마주하거나 바라보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일구도록 도울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태 문제이든 환경 문제이든 ‘자연보호’ 문제가 아닙니다.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누리도록 스스로 생각과 마음을 가다듬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돈만 많이 버느라 젊은 날에 젊은을 한껏 꽃피우지 못한다면 이녁 삶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대학입시에 목을 매다느라 어린이와 푸름이가 햇볕조차 못 쬐고 들놀이 숲놀이 물놀이 실컷 즐기지 못한다면, 우리 어린이와 푸름이는 무슨 기쁨과 웃음을 마음에 새기겠습니까. 시골 할매와 할배가 늘그막까지 농약과 비료에 찌든 채 힘겨이 살아야 되지 않아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자연과 하나되는” 삶, 곧 “숲과 하나되는” 삶, 그러니까 풀과 꽃과 나무하고 하나가 되는 삶을 누릴 때에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를 잊거나 괴롭힐 때에는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잊거나 괴롭힌다는 뜻이에요.


  개구리 죽은 마을에 사람이 얼마나 살 만한지 생각해야 해요. 개구리 사라진 마을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개구리 살아남을 수 없는 마을에 사람이 어떤 착한 삶 어떤 참된 삶 누릴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4346.7.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환경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