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에 물리는 책읽기

 


  아침저녁으로 우리 식구들 먹을 풀을 뜯을 적에 모기에 물린다. 우리 식구들 먹을 풀이니까 모기 잡는다며 모기약을 뿌릴 일 없고, 농약도 안 친다. 개구리도 풀벌레도 매미도 서로 얼크러져 살아가는 풀밭에서 풀을 뜯는다. 그러니, 이곳에서 모기도 아주 잘 살아간다.


  모기에 물리지만 씩씩하게 풀을 뜯는다. 그러고서 신나게 아침저녁을 차린다. 아침저녁을 콧잔등이 땀 송송 돋도록 바삐 차리니, 이동안 ‘풀 뜯다가 모기에 물린 일’을 까맣게 잊는다. 모기에 꽤 많이 물리지만, 모기 물린 자국은 모두 가라앉는다. 어느 곳도 안 간지럽다.


  아침에 밥을 먹는데 큰아이가 “어제 모기 물린 데 간지러워.” 하고 말한다. “아버지는 안 간지러워?” 하고 묻는다. “아버지는 모기에 물려도, 모기에 물렸다는 생각을 안 하니 안 간지러워. 벼리는 모기에 물리고서 자꾸 모기에 물렸다는 생각을 하니까 간지럽고 붓지.”


  모기에 물렸을 적에는 어떻게 해야 가장 나을까? 가만히 둘 적에 가장 낫다. 모기에 물린 줄 깨끗이 잊으면 가장 낫다. 넘어져서 피가 날 적에는? 이때에도 흙을 톡톡 털고 일어나서 잊고 놀면 된다. 그러면 무릎이 까졌어도 곧 아문다. 내 몸이나 마음에 생채기가 되는 모든 일이란, 또 내 삶과 꿈과 사랑에 스며든 궂은 이야기란, 그저 깨끗이 잊으면 그야말로 깨끗해진다. 생각해야 할 아름다운 꿈을 생각하면 아름다운 삶이 된다. “벼리야, 모기에 물렸으면 네가 이제부터 무얼 하며 놀면 즐거울는지 생각해. 즐겁게 놀다 보면 모기 물린 데는 말끔히 가라앉으면서 한결 튼튼한 벼리가 된단다.”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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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설거지와 숫돌

 


  밥을 한다. 국을 끓인다. 반찬을 볶는다. 밥을 차린다. 밥을 먹인다. 설거지를 한다. 칼을 간다. 한 마디씩 적고 보면 몇 초면 넉넉한 집일을 아침저녁으로 한다. 쌀을 불려 밥을 하고, 모든 밥먹기를 마치고서 설거지와 칼갈기까지 마무리지어 한숨을 돌리면, 두어 시간 훌쩍 지나간다. 설거지를 하면서 ‘칼은 나중에 갈까?’ 하고 생각한다. 설거지 마치고 좀 드러누워 허리를 펴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뒤로 미루고 미루면 칼은 무디어지기 마련이요, 다음에 바지런히 밥을 차려야 할 적에 무딘 칼로 잘못 칼을 놀리다가 손가락이 다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칼을 덜 갈아 살짝 무딘 나머지 당근을 썰 적에 슬쩍 미끄러져서 손가락을 자를 뻔했다. 아차 하고 느껴 왼손을 잽싸게 빼고 오른손에 불끈 힘을 주어 칼이 도마를 찍지 않도록 막아 손가락이 다치지 않았다. 히유 한숨을 돌리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천천히 느긋하게 즐겁게, 늘 생각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진다. 1분 더 빨리 차린들 1분 더 늦게 차린들 달라지지 않는다. 천천히 차려서 천천히 먹으면 된다. 느긋하게 차려서 느긋하게 먹으면 된다. 즐겁게 차려서 즐겁게 먹으면 된다. 설거지도 느긋하게 천천히 즐겁게 하자. 설거지를 모두 끝내고 칼을 갈 적에도 숫돌에 석석 차근차근 문대면서 날이 잘 서도록 갈자. 가끔 가위도 갈고, 부엌칼 아닌 작은 칼도 갈자. 노래를 부르면서 숫돌질을 하자.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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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

 


  한가위 기차표를 끊는다. 지난해에는 아침에 끊도록 하더니, 올해에는 새벽 여섯 시부터 끊도록 한다. 지난해에는 딱 한 시간 사이에 표를 끊도록 해서, 이때를 맞추느라 몹시 부산했는데, 올해에는 새벽 여섯 시부터 아홉 시 사이에 끊도록 한다. 고흥 깊은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은 기차역까지 가서 끊을 수도 없고, 우리 식구 타야 할 호남선과 충북선 표 끊는 날은 달라 여러모로 번거로운데, 올해에 주어진 세 시간이란 한결 느긋하니, 새벽 다섯 시 반부터 기다려서 가뿐하게 오늘치 표를 끊는다. 이제 모레 새벽에 표를 더 끊으면 한가위 나들이 잘 다녀올 수 있으리라.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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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램 - 내겐 너무 무거운 삶의 무게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수신지 지음 / 미메시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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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63

 


어디가 아플까
― 3그램
 수신지 글·그림
 미메시스 펴냄, 2012.5.20. 12800원

 


  어디가 아플까요. 나는 어디가 아플까요. 시골집은 문이 작아 곧잘 머리를 콩 찧습니다. 콩 찧인 머리와 4대강사업 때문에 파헤쳐진 냇바닥을 함께 돌아볼 때에, 어느 쪽이 나한테 더 아픈 일이 될까요.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느라 부산을 떨다가 한 해에 한 차례쯤 ‘마음을 놓다’가 손가락을 벱니다. 손가락을 칼로 스윽 베면서 아차 하고 깨닫지만, 벌써 늦습니다. 피가 송송 솟습니다. 조금 덜 부산을 떨면서 한결 홀가분하게 밥을 차렸으면, 손가락을 벨 일이 없어요. 손가락을 베면서 생각하지요. 이러면 빨래는 어떻게 하나. 이러면 걸레질은 어떻게 하나. 이러면 작은아이 밑은 어떻게 씻기나. 이런 손으로 두 아이를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하면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가. 이런 손으로 여름날 아이들과 물놀이 다닐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이 잇따릅니다. 이럴 때, 참말 나는 어디가 아플까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나들이를 다녀오면 온몸이 무겁습니다. 다리가 무겁고 허리가 무겁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 살뜰히 먹입니다. 아이들이 밥을 다 먹을 즈음 더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드러눕고 싶습니다. 얘들아 우리 이제 자자, 하고 부릅니다. 큰아이가 아버지한테, 불 끄고 함께 누워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 그래 고맙구나. 얼른 함께 자자. 자장노래를 부르다가 먼저 곯아떨어집니다. 밤새 틈틈이 깨어 아이들 이불을 여밉니다. 삼십 분에 한 차례쯤 이불을 여미면서 밤새 졸음이 더 쌓입니다. 이렇게 몸이 무거운 채 보내는 하루하루란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다리가 무겁고 몸이 무거우니 자전거는 그만두어야 하나 하고 헤아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탈 적에 바람맛 한결 싱그럽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며 어디라도 신나게 다닙니다.


- “배 속에 똥이 꽉 차 있음”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 나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안 좋은 예감은 왜 꼭 맞는 걸까? (22∼23쪽)

 


  아이들은 나한테 대단한 무엇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대단한 무언가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무엇이란 사랑입니다. 땅문서나 집문서나 자가용이나 은행계좌를 나한테 바라지 않아요. 오직 사랑을 바라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바라는 한 가지란, 대단하지 않으면서 대단합니다. 가장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한 가지만을 바랍니다. 가장 반가우면서 기쁜 한 가지만을 꿈꾸어요.


  사랑스레 함께 노는 어버이나 어른을 반기는 아이들입니다. 사랑스레 이야기를 걸고 사랑스레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버이나 어른을 꼭 껴안는 아이들입니다.


  사탕을 준다고 더 좋아하지 않아요. 햄이나 소시지를 준다고 더 좋아하지 않아요. 놀이공원에 데려가야 더 좋아할까요. 자가용 태우고 돌아다녀야 더 좋아하지 않아요.


  따사로운 손길로 쓰다듬을 때에 반깁니다. 손가락놀이 하나로 까르르 웃습니다. 손짓 하나로 웃음꽃 터뜨립니다. 발가락 꼬물꼬물 움직이며 방바닥에서 뒹굴어도 웃고 노래해요.


  사랑이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사랑이 자라날 때에 기쁩니다. 사랑이 넘실거릴 때에 노래가 샘솟습니다. 사랑이 흐를 때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와 품앗이가 싹틉니다.


- 물론 자기 앞에 놓인 일이 가장 심각한 일이겠지만, 괜찮으냐는 한 마디 건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35쪽)

 

 


  난소암 수술을 받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 《3그램》(미메시스,2012)을 읽습니다. 만화를 그린 수신지 님은 난소암 때문에 ‘아프다’고 느낀 적은 없지 싶습니다. 그저 배가 꽤 많이 나와서 어딘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난소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곧바로 받은 뒤 병원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병원 밖으로 나옵니다. ‘아프다’고 느낀 때는 오히려 항암치료를 받을 때였지 싶어요. 온몸에 마취를 해 놓고 배를 갈랐으니 배를 가르며 뱃속에서 무언가 꺼낼 적에는 ‘아프다’고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난소암 판정을 받았지만, 이러한 판정을 받기까지 몸이 ‘아프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마, 퍽 많은 사람들이 암 판정을 받기까지 몸 어느 한 곳이 ‘아프다’고 느끼는 일은 드물지 싶어요. 바쁘게 회사를 다니고, 바쁘게 이 일 저 일 합니다. 바쁘게 사람을 만나고, 바쁘게 하루하루 흐릅니다. 바쁘게 흐르는 삶이기에 몸이 아픈 줄, 마음이 아픈 줄 미처 못 깨달으면서 한 해 두 해 지나갑니다.


- 모든 손님들은 지루한 일상의 큰 기쁨이었다. (66쪽)
- (병원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만의 TV를 갖게 되었다. (84쪽)

 


  만화책 《3그램》에 살랑살랑 물결치는 이야기가 감돕니다. 오르락내리락, 아니 내리락내리락 물결치는 이야기가 감돕니다. 붉으락푸르락하지 않고, 붉으락붉으락하는 이야기가, 또는 거뭇거뭇한 이야기가 감돕니다. 갑작스레 나한테 찾아든 ‘아픈’ 것 때문에 힘겨이 물결치는 이야기가 감돕니다.


- 어느새 봄이 와 있었다. 헤, 시원하다. (177∼178쪽)


  참 작은 것 하나로 ‘아픕’니다. 그리고 참 작은 것 하나로 ‘기쁩’니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손님)들 누구나 반갑고 기쁩니다. 병원에서 보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반갑고 기쁩니다. 병원 아닌 데에서 만나던 사람들도 이토록 반갑거나 기뻤을까요. 병원 아닌 데에서 보던 텔레비전 연속극도 이렇게 반갑거나 기뻤을까요.


  봄이 옵니다. 병원에 가기 앞서도 봄은 늘 왔고, 병원에서 나온 뒤에도 봄은 새롭게 옵니다. 봄바람이 불며 시원합니다. 겨울바람은 차갑거나 추웠을 테지만, 봄바람은 싱그럽고 시원합니다. 겨울바람은 뭇목숨 겨울잠 자도록 싱싱 불지만, 봄바람은 뭇목숨 기쁘게 깨어나서 노래하라며 살근살근 따끈따끈 보들보들 상냥하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언제 ‘아프다’고 느꼈을까요. 우리는 오늘 아픈가요, 어제 아픈가요. 아픔은 왜 나한테 찾아왔을까요. 아픔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속삭일까요. 아픔이 어느새 사라지고 나면, 나는 온누리와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와 보금자리를 어떤 눈길 되어 바라볼까요.


  깊은 밤이 풀벌레 노래하며 지나갑니다. 새로운 하루가 동이 트면서 환하게 밝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깨어나 재잘재잘 노래하면서 놉니다. 나도 아이들 아침으로 어떤 밥 먹일까 생각하면서 새 힘을 내어 하루를 엽니다.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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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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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골목꽃
[시를 말하는 시 34]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책이름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글 : 함민복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96.10.10.)
- 책값 : 8000원

 


  골목동네에 골목꽃이 핍니다. 골목동네에서 피기에 골목꽃입니다. 자그마한 집이 촘촘하게 모인 골목동네인데 울타리 틈이나 계단 한쪽에 작은 씨앗 하나 뿌리를 내려 천천히 피어납니다. 누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어도 들풀은 뿌리를 내리고 꽃송이를 피웁니다.


  골목동네에는 햇볕이 골고루 드리웁니다. 아침과 낮과 저녁에 따라 그림자가 다릅니다. 어느 골목집에 볕이 더 많이 깃들지는 않습니다. 옥탑집이라면 하루 내내 볕이 들 테지만, 낮은 자리에 있는 골목집이라 하더라도 빨래를 말리고 기지개를 켜도록 햇살이 곱게 스며듭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흙땅 없는 골목동네에 꽃밭이나 텃밭을 조그맣게 마련하려고 흙을 퍼서 나릅니다. 천천히 자리를 다지고, 조금씩 흙을 옮깁니다. 한 평조차 안 될 만한 꽃밭이나 텃밭을 알뜰히 가꿉니다. 푸성귀를 심고 나무를 심습니다. 꽃을 심고 사랑을 심습니다.


.. 나는 어머니 속에 두레박을 빠뜨렸다 / 눈알에 달우물을 파며 / 갈고리를 어머니 깊숙이 넣어 휘저었다 ..  (세월 1)


  나무 한 그루 그늘을 드리우기까지 제법 오래 걸립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크는 만큼 두고두고 지켜보면서 돌볼 때에 나무 한 그루 그늘을 맞이합니다. 나무 한 그루 열매를 맺기까지 퍽 오래 걸립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만큼 차근차근 바라보면서 보살필 적에 나무 한 그루 열매를 맺습니다.


  공무원이 심지 않았고, 개발업자가 심지 않았으나, 골목동네에 여러 가지 나무가 자랍니다. 대추나무가 자라고, 감나무가 자랍니다. 석류나무가 자라고, 밤나무가 자랍니다. 탱자나무가 자라고, 무화과나무가 자라요.

  골목동네 골목나무는 어느 골목사람이 언제 심어서 돌보았을까요. 이 골목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골목아이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요. 이녁 어버이가 심어서 우람하게 자란 나무를 어떤 마음이 되어 바라볼까요. 골목동네를 재개발한다고 할 적에 이 나무를 어떻게 하려나요.


..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네 //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도 없다네 ..  (가을 하늘)


  아파트에도 꽃밭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파트에는 텃밭이 없습니다. 아파트에도 나무가 자랍니다. 그러나, 아파트 나무는 관리인이 손질하거나 매만질 뿐,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씨앗이나 어린나무를 심어 보살피지 못합니다.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에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요. 십 층 이십 층 삼십 층에 이르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한테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요. 건물이 크고 주차장이 넓다지만, 정작 나무 한 그루 자랄 땅은 처음부터 안 마련하는 데가 많습니다. 예술작품이니 조형물이니 세우려고 돈을 꽤 많이 쓰지만, 정작 사람들이 흙을 밟고 풀내음을 맡으며 나무그늘 누릴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곳은 아주 드뭅니다.


  흙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풀이 베푸는 내음을 맡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가 나누어 주는 이야기를 마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  (눈물은 왜 짠가)


  사람이 먹는 밥은 흙에서 비롯합니다. 사람이 입는 옷이나 사람이 지내는 집은 흙에서 비롯합니다. 흙이 있을 때에 밥과 옷과 집이 태어납니다. 흙이 있을 뿐 아니라, 흙이 튼튼하고 싱그러울 적에 사람살이가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흙이 튼튼하지 못하면 밥도 옷도 집도 후줄근합니다. 흙이 싱그럽지 못하면 밥도 옷도 집도 빛을 잃고 슬어 버립니다. 흙을 아끼면서 웃음이 피어나는 삶입니다. 흙을 보살피면서 노래가 샘솟는 삶입니다.


  누군가는 골목꽃이 볼썽사납다며 밟거나 꺾습니다. 누군가는 골목꽃을 알뜰히 아끼면서 빙그레 웃는 낯으로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골목꽃이 피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골목꽃 곁에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합니다.


  사람이 따로 물이나 거름을 안 주어도 골목꽃이 핍니다.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먹는 골목꽃은 씩씩하고 예쁘게 자랍니다. 조그마한 틈에서 돋아나 조그마한 씨를 다시 조그마한 틈에 내려놓습니다. 이듬해에 새로운 싹이 돋고 새로운 잎이 나며 새로운 꽃이 핍니다. 달개비도 봉숭아도 고들빼기도 골목길 한쪽 조그마한 틈에서 돋습니다. 민들레도 씀바귀도 냉이도 골목길 한켠 작디작은 틈에서 깨어납니다.


.. 살구골 저수지에 살구꽃 피지 않는다 / 물 흐려져 초등학생들 봄소풍 나오지 않고 / 낚시꾼들 휘두르는 카본대 끝에서 야광찌만 반딧불로 날아 // 살구골 사람들 // 살구골 저수지가 더 빨리 오염되길 바란다 / 살구골 저수지 오염되어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야 / 절대농지 풀리고 땅 팔려 / 도회지로 떠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만 붉다 ..  (살구골 저수지의 봄)


  골목동네 빈터에 자동차 아닌 아이들이 있던 지난날, 골목꽃은 아이들과 함께 놀았습니다. 조그마한 동네 조그마한 빈터라 하더라도, 아이들은 풀내음과 꽃내음 먹고 자랐어요. 작은 집 모인 작은 동네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풀꽃하고 사귀면서 컸어요.


  아이들도 때때로 ‘우리 집이 가난한갑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내 이런 생각을 잊습니다. 놀기에 바쁩니다. 놀면서 웃습니다. 놀면서 신이 나고, 노는 동안 까르르 웃음노래 웃음꽃 웃음잔치 벌어집니다.


  어른들은 으레 ‘우리 집이 가난하구만’ 하고 생각합니다. 참말, 어른들은 이런 생각을 늘 품습니다. 그래도, 곧 이런 생각을 내려놓습니다. 즐겁게 밥을 짓습니다. 즐겁게 빨래를 합니다. 흐뭇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웁니다.


  골목 한쪽에서는 골목꽃이 피고, 골목집 한켠에서는 이야기꽃이 핍니다. 골목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골목동네 골골샅샅 사랑꽃이 핍니다.


.. 물을 길어 먹던 겸허한 세월은 가고 / 물을 끌어다가 먹는 시절이 와 / 저 강물에 빠지면 익사하기 전에 / 오염되어 죽을지도 모를 세월이지만 ..  (한강 2)


  함민복 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1996)를 읽습니다. 함민복 님은 이 시집에서 ‘가난’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아프거나 슬프면서도, 싱긋 웃는 가난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시 가운데 가난을 안 노래한 시가 있었나 궁금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시 가운데 ‘가난하지 않은 삶’, 곧 ‘돈이 넉넉한 삶’을 노래한 시가 있나 궁금합니다.


  돈이 이렇게 있어 즐겁게 이웃한테 나누어 주었다네, 하고 노래하는 시가 있었을까요. 돈이 이렇게 많아 신나게 동무하고 나누며 살았다네, 하고 노래하는 시가 있었을까요. 돈이 자꾸자꾸 생겨 언제나 이리 나누고 저리 나누면서 아름답고 착하게 살았다네, 하고 노래하는 시가 있었을까요.


.. 저 작고 소꿉장난 같은 부엌이 / 나의 어머니다 / 따뜻한 눈물이다 ..  (어떤 부엌)


  ‘가난’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살림돈이 얼마쯤 되어야 가난하다 할 만할까요. ‘내가 가난하다’고 하면, 나보다 살림돈 더 있는 사람은 ‘안 가난한’ 사람이 될까요. 나보다 살림돈 더 없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안 가난하네’ 하고 말할 만할까요.


..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 하수도 물소리 /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  (달의 눈물)


  이 땅에 태어난 아름다운 시를 돌아보면, 어느 시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이 땅에 샘솟는 사랑스러운 시를 살펴보면, 어느 시나 ‘사랑스러움’을 노래합니다.


  참 그렇습니다. 푸른 물결 넘치는 시는, 그야말로 푸릅니다. 파랗고 깊으며 넓은 하늘이나 바다와 같은 시는, 그야말로 파랗습니다.


  함민복 님은 ‘가난’을 노래했을까요? ‘웃음’을 노래했을까요? ‘삶’을 노래했을까요? ‘사랑’을 노래했을까요?


..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  (긍정적인 밥)


  도시에서는 골목꽃입니다. 시골에서는 시골꽃입니다. 두멧자락이나 숲에서는 숲꽃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꽃이요, 너른 들에서는 들꽃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마음꽃이 있습니다. 우리들 생각이 환하게 빛나면 생각꽃입니다. 시 한 자락은 시꽃일 테고, 글 한 줄은 글꽃입니다. 잔잔하게 흐르며 따사로이 감도는 노래 한 가락은 노래꽃입니다. 애틋하며 고운 춤사위는 춤꽃입니다. 밥 한 그릇은 밥꽃입니다. 웃음꽃과 함께 눈물꽃입니다.


  저마다 꽃입니다.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사랑스럽습니다.


  시 한 줄로 쌀 몇 말 얻을 수 있다면 즐겁습니다. 씨앗 몇 톨 심어 쌀 몇 줌 얻을 수 있다면 즐겁습니다. 씨앗을 심어 아끼는 흙일꾼처럼 낱말 하나를 차곡차곡 마음에 심어 꿈을 지피고 사랑을 일구는 시인입니다. 도시에서 시를 노래하는 님들은 골목꽃입니다. 시골에서 시와 춤추는 님들은 시골꽃입니다.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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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7 09:18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사진집, <골목빛_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을 다시
펼쳐보는 시간입니다~
골목동네에 개나리 진달래 수국 도라지꽃 나팔꽃 천사의 나팔 채송화 해바라기
코스모스 국화..골목에 흙을 퍼다가 살뜰히 가꾸는 골목꽃들이 조용한 삶들을 환하고
예쁘게 동무해주네요~*^^*
저도 오늘 제 마음꽃 하나 잘 피워야겠습니다.

파란놀 2013-08-27 16:30   좋아요 0 | URL
골목에서는 골목꽃을 피우고
시골에서는 시골꽃을 피우며
우리 마음에는 마음꽃을 저마다
곱게 피우면 참으로 즐거우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