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빔 선물받은 어린이

 


  미국에서 석 달 즈음 공부하다 돌아온 옆지기가 일본공항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아이 꽃빔 장만했다. 아이들한테 곱게 입히는 일본겨레 꽃빔이다. 일본겨레 꽃빔을 입은 아이는 일본겨레 아이들 빛을 닮는다. 나중에 베트남겨레나 라오스겨레나 부탄겨레 꽃빔을 장만할 수 있으면, 아이는 언제나 새로우면서 환한 빛을 누릴 수 있겠지. 곧 한가위가 되는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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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2 08:12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옷을 새로 입으니 자세도 평소와 달리 취했는걸요 ^^
화려하고 예쁘네요.

파란놀 2013-09-03 08:02   좋아요 0 | URL
어디에서 보았는지, 요즘 저런 모습을 가끔 보여주더라구요 @,@

하늘바람 2013-09-03 05:18   좋아요 0 | URL
와 참 이쁘네요
미국에서 옆지기님이 공부를
그럼 님이 아이둘을 보신 건가요?
멋집니다
여자가 결혼후에도 뭔가를 한다는 건 남편의 엄청난 내조가 필요해요
부럽네요

파란놀 2013-09-03 08:03   좋아요 0 | URL
그저 스스로 하고 싶다는 꿈을 즐겁게 품으면서 이으면,
누구라도 어디에서나 다 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하늘바람 님도 즐겁게 하늘바람 님 공부를 누리셔요.

옆지기가 한국에 있을 적에도
집일은 혼자 다 했고,
아이들도 언제나 돌보았는걸요~
 

언제나처럼

 


  일산집에 머물며 언제나처럼 조용히 빨래를 걷어 가만히 옷가지를 갠다. 장모님은 장모님대로 이 살림 저 일 도맡느라 바쁘시니, 해가 떨어지기 앞서 잘 마른 옷가지들 걷어 차곡차곡 갠다. 노는 아이들 불러 함께 개지 않는다. 너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놀아라. 네 아버지는 일산집 빨래를 갠다. 그리고, 너희들 땀에 젖은 옷가지는 그때그때 빨아서 널어 놓는다. 4346.9.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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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젤리 삶창시선 36
김은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시와 아이들
[시를 말하는 시 35] 김은경, 《불량 젤리》

 


- 책이름 : 불량 젤리
- 글 : 김은경
- 펴낸곳 : 삶창 (2013.3.8.)
- 책값 : 8000원

 


  아이들이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려서 내주는 밥을 먹습니다. 어른들이 밥을 먹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차려서 내주는 밥을 함께 먹습니다. 아이들한테 아무것이나 먹이면, 어른들도 아무것이나 먹고, 아이들한테 맑으며 곱고 참된 밥을 차려서 내주면, 어른들도 맑으며 곱고 참된 밥을 즐겁게 먹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익힙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말을 지어서 익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으면서 익힙니다. 어른들이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따사롭게 말을 주고받으면, 아이들은 시나브로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따사로운 말을 익힙니다. 어른들 스스로 즐겁지 않거나 사랑스럽지 않거나 따사롭지 않은 말을 주고받으면, 아이들은 아주 마땅히 즐겁지 않은데다가 사랑스럽지 않으며 따사롭지 않은 말을 하나둘 익혀요.


.. 사는 일에 욕심이 너무 많아 그런지 / 나는 / 놀이동산 따위엔 가지 않는다 ..  (바이킹)


  아름다운 나라를 바란다면, 우리 어른들은 아름답게 일하고 생각하며 어깨동무를 하면 됩니다. 즐거운 보금자리를 꿈꾼다면, 우리 어른들은 기쁘게 웃고 노래하며 삶을 지으면 됩니다. 어느 대단한 정치꾼 한 사람이 쑥 하고 나타나서 나라살림 알차게 일구어 주지 않습니다. 어느 놀라운 지도자 한 사람 짠 하고 나타나서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사회를 슬기롭게 가다듬어 주지 않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나 정치꾼 몇 사람이 나라살림 북돋우지 않아요. 이들은 바로 ‘여느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맡길 만한 ‘일꾼’을 찾습니다. 여느 사람들이 장관이 되고 비서가 됩니다. 여느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고 경찰이나 군인이 됩니다. 언제나 여느 사람들 스스로 나라살림을 꾸립니다. ‘남이 아닌 나’ 스스로 공무원이건 경찰이건 군인이건, 또 회사원이건 노동자이건 농사꾼이건 되어, 이 나라를 가꿉니다.


  여느 때 여느 자리 여느 삶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느냐에 따라 나라도 달라지고 겨레도 달라집니다. 여느 때 여느 자리 여느 삶 모습이 찬찬히 모여 ‘오늘 모습’이 이루어집니다. 곧, 바로 오늘부터 내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일군다면, 이 나라는 시나브로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어요.


  다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아요. 한 해 두 해 흐르고 보면 열 해나 스무 해조차 ‘하루아침’으로 느낄 수 있지만, 온누리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씨앗 한 톨이 태어나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천천히 몸을 가꾸어 씩씩하게 어린 싹 하나 내놓고 오랜 나날에 걸쳐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고 떨구기를 되풀이한 끝에 쉰 해나 백 해쯤 지나 비로소 우람한 나무 되어요.


.. 열차는 수시로 병자 같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 억새는 그들의 바짓단에 정표 같은 자줏빛 풀씨 묻혀 보낸다 ..  (억새 군락지)


  천 해를 살고 만 해를 사는 나무한테 쉰 해는 아무것 아닙니다. 그러나, 이 아무것 아닌 쉰 해를 거쳐야 우람한 그늘 드리웁니다. 천 해를 살았고 만 해를 살아온 사람들한테 쉰 해는 아무것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이 아무것 아닌 쉰 해를 슬기롭고 아름답게 살아가야 사람살이를 슬기롭거나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한테 기대는 쉰 해가 아닙니다. 수수한 여느 사람 손길로 가꾸는 쉰 해입니다. 씨앗 한 톨은 남을 쳐다보지 않아요. 생각해 보셔요. 대나무가 참나무를 기웃거리지 않아요. 참나무가 뽕나무를 얼씬거리지 않아요. 뽕나무가 감나무를 시샘하지 않아요. 감나무가 소나무를 미워하지 않아요. 소나무가 잣나무를 깎아내리지 않아요. 잣나무가 밤나무 앞에서 우쭐거리지 않아요. 나무들은 저마다 제 빛을 가슴속에 담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 제 빛을 곱게 보듬으면서 자랍니다.


  오리나무는 오리나무대로 삶을 짓습니다. 대추나무는 대추나무대로 삶을 지어요. 후박나무는 후박나무대로 삶을 잇고, 배롱나무는 배롱나무대로 삶을 빛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삶을 저마다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가꿀 노릇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다 다른 이녁 삶을 사랑하며 아끼고 돌볼 노릇입니다.


.. 기울어진 모퉁이에 앉아 / 빗물을 잔으로 받아내며 / 국수 가락을 건져 올리는 손들은 / 어째서 죄다 풀빛일까 ..  (한 잔의 가을)


  웃으며 어깨동무하던 어른들이 서로 만나 사랑을 속삭일 적에, 웃으며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물려받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노래하며 품앗이하던 어른들이 함께 만나 꿈을 밝힐 적에, 노래하며 품앗이하는 꿈을 이어받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는가요. 오늘날 이 나라 어른들은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스스로 삶을 짓는 어른은 어디에 있는가요. 스스로 이녁 보금자리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어른은 몇이나 되는가요.


  스스로 지어서 나누기에 사랑입니다. 스스로 품으며 가꾸기에 꿈입니다. 남이 선물처럼 내주는 사랑이 아닙니다. 남이 벼락처럼 똑 떨어뜨려 내주는 꿈이 아닙니다. 언제나 스스로 지으면서 빛내는 사랑입니다. 언제나 스스로 일구면서 밝히는 꿈입니다.


.. 고등학교 졸업식 날 엄마는 부업해 번 돈으로 짜장면을 사주었다. 검붉은 짜장 속에서 나는 잘 비벼지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두 스냅사진처럼 예쁘게 웃었지만 메마른 하늘은 눈 한 점 뿌리지 않았다. 마름모꼴의 지하방도 그날로 졸업이었다 ..  (1995년 2월 14일)


  김은경 님 시집 《불량 젤리》(삶창,2013)를 읽습니다. 김은경 님은 이녁 삶이 어떤 모습·빛·결·무늬이기에 “불량 젤리”를 노래할까 궁금합니다. “불량 젤리”는 누가 빚은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남이 만들어 내려보낸 모습인가요. 김은경 님 스스로 빚어서 보여주는 모습인가요. 왜 “불량”이어야 하고, 왜 “젤리”여야 할까요.


.. 박하사탕 봉지를 열면 / 봉지 속엔 / 흰머리 쪽진 / 할머니 ..  (박하사탕)


  아이들이 웃습니다. 어른들이 웃으니 함께 웃습니다.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어른들이 노래하니 같이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놉니다. 어른들이 씩씩하게 일하니, 곁에서 신나게 놉니다. 아이들이 따사로운 말마디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어른들이 둘레에서 따사로운 말마디로 사랑을 속삭이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구니,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따순 사랑을 꾸준하게 일굽니다.


  사랑을 먹으며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어 사랑을 지어 아이들한테 밥·옷·집 모양으로 물려줍니다. 사랑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새롭게 사랑을 가꾸고 돌보며 푸른 꿈을 한껏 키웁니다.


.. 항아리는 옹기쟁이의 체온으로 아직 따뜻하고 / 신의 입김으로 인해 우물물은 아직 썩지 않았습니다 / 사과 속엔 벌레가 지나간 무수한 길들이 있고 / 단내 나는 그 길에는 / 발효의 시간을 기다리는 당신과 내가 있습니다 ..  (아름다운 진화)


  맛난 열매를 벌레가 잘 알아봅니다. 잘 익은 열매를 새가 잘 알아챕니다. 벌레도 새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걸요. 기름진 땅은 시골사람만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도 기름진 땅을 알아보고는 이곳에 씨를 퍼뜨리고 싶습니다. 맑은 냇물은 사람들만 즐겁게 떠서 마시지 않아요. 들짐승도 멧짐승도 들새도 멧새도 모두모두 맑은 냇물 둘레에서 목을 축여요. 풀과 나무도 맑은 냇물 함께 누리고 싶어 뿌리를 뻗습니다.


  바람이 상큼하게 흐르는 곳에서는 사람도 새도 짐승도 벌레도 상큼한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하거나 지저분한 곳에서는 사람도 새도 짐승도 벌레도 매캐하거나 지저분한 바람을 마십니다.

  어떤 삶을 지을는지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어떤 시를 쓸는지 스스로 뒤돌아봅니다. 어떤 사랑을 나눌는지 스스로 빚습니다. 어떤 이야기로 생각을 빛낼는지 스스로 가꿉니다. 4346.9.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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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새 사진기 손에 쥐면서

 


  큰아이가 태어난 뒤부터 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하면서 지낸다. 그동안 쓰던 사진기는 낡고 닳아 더는 쓸 수 없다. 그렇지만, 둘레에서 사진기를 빌려주면서 사진찍기를 이을 수 있었다. 빌려서 쓰던 사진기도 차츰 낡고 닳아 못 쓸 만큼 되는데, 그때마다 부속품을 갈고 손질하면서 사진찍기를 잇는다.


  고치고 손질한 사진기가 하나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새 사진기 장만하기. 어떻게 장만할 수 있을까, 언제 장만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내는데, 형이 새 사진기를 장만해 준다. 새 기계를 만진 지 얼마만인가 하고 헤아리며 살살 쓰다듬는다. 낡은 사진기는 내부청소를 맡겨도 이내 먼지가 스며들어 ‘사진을 찍을 때마다 구석구석에 먼지 자국’이 함께 찍혔다. 새 사진기는 새로 쓰는 사진기인 만큼 ‘하늘에 대고 사진을 찍어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늘빛을 사진으로 담으며 살그마니 응어리가 풀린다. 요 몇 해 동안 사진을 찍으며 ‘먼지가 안 찍히’도록, 또 ‘사진기 거울에 생긴 티끌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고 요모조모 살피며 찍느라 애먹던 앙금이 풀린다. 새 디지털사진기인 만큼, 예전 디지털사진기보다 화소수 높아 한결 또렷하게 보인다.


  아이들이 새 신을 얻어 신을 적에도 이런 느낌일까. 아이들이 새 옷을 선물받아 처음 입을 적에도 이런 빛일까. 4346.9.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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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01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런지 고추밭의 빨간 고추까지 정말 사진이 더 또렷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저도 제 아이 태어나던 해 (2001년) 구입한 사진기를 아직도 쓰고 있답니다. 고맙게도 아직 잘 버텨주고 있네요.
새로운 사진기가 앞으로도 함께살기님이 보여주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들에 날개를 달아주겠지요.

파란놀 2013-09-02 06:38   좋아요 0 | URL
잘 건사하시니 오래오래 쓰시겠네요.
저는 한 해에 여러 만 장을 찍다 보니
사진기 부품이 곧 낡고 닳아서
몇 해를 쓰면 아주 바스라지고 맙니다 ^^;;;
이 사진기로는 아마 서너 해쯤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appletreeje 2013-09-0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가에게 사진기는 또 하나의 '눈'이겠지요.
형님께서 선물하신 새 사진기로, 그동안의 애먹던 앙금이 풀린다는 말씀에 저까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문득, 새로 맞춘 안경을 끼고 바라본 세상이 너무나 환하고 맑았던 그 기쁨이 생각납니다~ 보슬비님의 말씀처럼 앞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랄까 저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9-02 06:37   좋아요 0 | URL
앞으로 즐겁게 두고두고 잘 써야지요.
한결 맑은 눈 되어서요.
 

새도시 거리나무 책읽기

 


  논밭이거나 들이거나 멧골이던 곳을 갈아엎어 새도시로 만든다. 새도시가 되면, 이제껏 자라던 풀과 나무를 몽땅 베어 없앤다. 땅을 고르게 펴고, 시멘트기둥을 박은 뒤, 아파트를 죽죽 올린다. 아파트가 서면 건물 사이사이 자동차 다닐 찻길을 닦는다. 찻길까지 모두 닦고 전봇대를 다 박으면, 바야흐로 찻길에 맞추어 나무를 사다가 심는다.


  새도시에는 으레 벚나무를 심는다. 이 나라 이 땅에도 벚나무는 자랐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벚나무는 ‘일본사람 좋아한다’ 해서 한동안 멀리하더니, 어느새 ‘벚꽃구경’이나 ‘벚꽃놀이’를 도시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찻길 옆에 벚나무를 차곡차곡 심는다.


  그런데, 버찌씨를 심어 아주 어릴 적부터 지켜보는 벚나무는 아니다. 제법 자라서 곧 꽃을 피울 만한 큰나무를 옮겨심는다. 도시사람은 씨앗 한 톨에서 나무로 자라는 줄 지켜볼 틈이 없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빨리빨리 꽃을 보거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두 해만에 뚝딱 하고 새도시가 서듯, ‘나무를 심었’으면 곧바로 꽃구경이나 꽃놀이를 해야 하는 줄 여긴다.


  이럭저럭 커다란 나무를 옮겨심은 만큼, 이 나무들은 잘 자란다. 머잖아 나뭇줄기가 전깃줄을 건드릴 테고, 가로등 키를 넘으리라. 이때, 도시 공무원은 어떻게 하려나. 나뭇줄기 뭉텅뭉텅 베려나. 나뭇가지 샅샅이 자르려나.


  도시계획을 짜면서 전깃줄과 전봇대를 어떻게 하고, 나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살피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나무 몇 그루쯤 돈으로 다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구나 싶다. 왜 그럴까. 왜 이토록 나무를 모르며,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데다가, 나무를 사랑하지 않을까. 대학교 졸업장에다가 대학원 학위에다가 외국 유학까지 갖추었다 하더라도, 막상 풀 한 포기 어떻게 나고, 나무 한 그루 사람살이에 어떻게 이웃이 되는가를 느낀 적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부터 풀씨나 나무씨 한 톨 심은 적 없는데다가, ‘밥’이란 바로 ‘풀열매(‘벼’라고 하는 풀이 맺는 열매)’인 줄 느끼지 않으면서, 영양소로서 배를 채우기만 한 탓이 아닐까.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을 누리지 않는다. 높은 건물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그늘처럼 여긴다.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을 바라지 않는다. 건물에 깃들면 에어컨 빵빵하니, 나무그늘도 나무바람도 쐬지 않는다.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이 어떤 노래 들려주는지 깨닫지 않는다. 나무 밑에 선다 하더라도 찻길마다 자동차 그득한 나머지, 나뭇잎 살랑이며 들려주는 노래에다가, 나무와 풀숲에 깃드는 풀벌레가 베푸는 노랫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4346.9.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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