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52] 배우기

 


  즐겁게 웃으면서 함께 먹을 밥.
  기쁘게 웃으며 서로 배우는 삶.
  웃음을 먹고, 웃음을 가르친다.

 


  시험을 앞두고 문제풀이 시키는 짓은 공부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닦달이라고 해야 맞을 테지요. ‘시험공부’라고 말하지만, ‘시험지옥’이나 ‘시험고문’쯤으로 가리켜야 올바르리라 느껴요. 공부라고 할 때에는 삶을 밝히는 빛인데, 시험문제를 더 잘 풀어서 점수를 더 잘 받는 일이란, 삶을 밝히는 빛이 되지 않아요. 삶을 밝히는 빛이 되려면, 가르치는 사람부터 웃고 배우는 사람이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해요. 웃음을 나누는 공부예요. 삶을 웃으면서 누리고, 사랑을 웃으면서 나누고 싶기에 배우고 가르쳐요. 아름답게 살고 싶으니까요.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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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럿이 읽는 책 (도서관일기 2013.8.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여럿이 읽도록 태어나는 책이다. 한 사람이 장만해서 이녁 집에 갖추는 책이라 하더라도 여럿이 읽도록 태어나는 책이다. 왜냐하면, 책은 책꽂이에 꽂으면 열 해 스무 해 쉰 해 백 해를 고이 흐른다. 이동안 ‘처음 책을 장만한 사람’만 읽지 않는다. 책을 장만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가 이 책들을 만지고, 책을 장만한 사람한테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찾아오는 이가 이 책들을 본다. 책을 장만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 더는 책을 손에 쥐기 어려울 적에 이 책들을 물려준다.


  공공도서관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은 못 되지만, ‘한 사람이 건사한 책꽂이’는 ‘한 사람 삶길을 밝히는 이야기꾸러미’ 되어 통째로 누군가한테 이어진다. 하나하나 따지면, 공공도서관만 도서관이 아니다. 여느 사람 서재 또한 모두 도서관이다. 공공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요, 서재는 ‘서재도서관’이다.


  나는 공공도서관 아닌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그래서 내 서재도서관에서는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이 서재도서관 살림돈과 책 장만할 돈을 보태어 주는 지킴이한테는 책을 빌려준다. 평생지킴이 하는 분한테는 우편으로 책을 빌려주기도 한다. 서재도서관으로 꾸리는 책터인 만큼,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책을 만지면서 읽을 수 있지만, 바깥으로 빌려주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바깥으로 책을 빌려준 적 있는데, 빌려간 사람들이 책을 제때에 돌려주지 않는다. 몇 해 지나도록 아무 말 없는 사람이 있고, 돌려주라는 쪽글이나 전화를 남겨도 전화를 안 받거나 안 돌려주는 사람이 있다.


  책은 여럿이 읽는 책인 만큼 빌리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럿이 읽는 책이니, 빌려서 읽었으면 반드시 알맞춤한 때에, 너무 늦지 않게, 정갈하게 읽고 나서 고운 손으로 돌려주어야 아름답다. 여럿이 읽는 책이기에, 나는 내 책들을 앞으로 쉰 해뿐 아니라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 뒤에도 ‘뒷사람이 읽을 책이 되’도록 보살피고 싶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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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과 신문 (도서관일기 2013.9.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으로 신문 읽으러 다니는 사람이 꽤 있다. 나도 예전에 신문을 읽으러 도서관에 다니곤 했다. 도서관에서는 이 신문 저 신문 골고루 받아서 갖추니, 온갖 신문을 따로 집에서 받아보지 않아도 날마다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더구나 도서관에서는 신문을 날짜에 맞추어 잘 그러모으지 않는가. 여러 날에 한 번 찾아가더라도 며칠 지난 신문뿐 아니라 몇 달 지난 신문까지 차근차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신문을 끊고 안 본 지 퍽 오래되었다. 서울살이를 마감하고 시골로 삶터를 옮기던 2004년부터 ‘마지막까지 보던 신문 한 가지’마저 끊었다. 그러고는 신문을 안 읽는다. 인터넷으로도 안 읽고, 인터넷신문에 뜨는 글조차 안 읽는다. 시민모임이나 작은 마을에서 조그맣게 내는 신문은 도움돈을 보내면서 받곤 한다.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이라든지, 전라도 광주에서 나오는 신문들, 이른바 ‘일간신문’은 아무것도 안 본다.


  사진책도서관에는 해묵은 일간신문 꾸러미는 있지만, 그날그날 나오는 신문은 없다. 사진밭 이야기 다루는 신문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글이 ‘새로 나오는 장비’ 이야기라서, 이 신문을 굳이 받아보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도서관에는 어떤 신문을 갖추어야 할까. 도서관이라는 곳을 꾸리자면 어떤 신문을 받아보면서 ‘신문삯’을 치러야 아름다울까. 이 신문 저 신문 골고루 갖추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도서관마다 이 신문 저 신문 골고루 갖추어야 할까 궁금하다. 날이 갈수록 궁금하다. 일간신문은 모두 서울 이야기뿐이다. 전라도 광주에서 나오는 ‘전라도 일간신문’은 서울과 광주 이야기뿐이다. 이런 신문을 도서관에서 갖추는 일이란 무엇이 될까. 도서관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도시 이야기’만 읽히고 ‘도시 소식과 정보’만 알리는 노릇 아닐까.


  같은 도시라 하더라도,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작은 동네 언저리에서 작은 이야기 그러모으는 작은 신문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사건과 사고나 정치나 경제나 스포츠나 연예를 다루는 신문이 아니라, 동네사람 수수하며 투박한 삶과 사랑을 그리는 신문이 나올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시골에서는 그야말로 시골살이 다루고 보여주며 그리는 신문이 나와야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내 고향 인천에서 〈우각로신보〉가 우편으로 날아온다. 9월이지만 6월호와 7월호를 두 부씩 보내 주었다. 인천 배다리에 깃든 ‘작은 사람’들이 ‘작게 엮은 작은 신문’이다. 두 부 보내 주었으니, 한 부는 사진책도서관 벽에 붙이고, 한 부는 파일에 꽂아 그러모을까 하고 생각한다.


  책 갈무리를 하고 도서관을 나오는데, 문간에서 풀개구리 한 마리 본다. 작은 풀개구리는 늘 똑같은 곳에서 나를 마중하고 배웅한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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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맨발이 훨씬 좋아

 


  누나가 맨발이면 저도 맨발로 다니는 산들보라는, 어디에서나 맨발로 땅을 느낀다. 흙으로 된 땅, 풀밭인 땅, 냇물 흐르는 땅, 바닷물 출렁이는 땅, 어른들이 시멘트나 아스팔트나 대리석이나 자갈을 깔아 놓은 땅, 이런 땅 저런 땅을 골고루 밟으며, 저 스스로 가장 살가운 발느낌을 헤아린다.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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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손톱 깎는 어린이

 


  여섯 살 사름벼리는 혼자서 손톱을 깎을 줄 안다. 누가 안 쳐다보면 아주 잘 깎는다. 누가 쳐다보면 헛놀림을 하기 일쑤라, “자, 줘 봐. 깎아 줄게.” 하고 말한다. 다음에는 아버지가 안 보는 데에서 조용히 천천히 깎아 보렴.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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