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16 - 완결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68

 


전쟁을 만든 사람
― 불새 16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2.9.25./4500원

 


  새벽별을 바라봅니다. 십일월로 접어든 다섯 시 반에 새벽별 초롱초롱 환합니다. 한 달 앞서만 하더라도 다섯 시 반은 날이 훤하게 샜고, 두 달 앞서만 하더라도 네 시 반 즈음이면 날이 훤하게 샜어요. 이제는 다섯 시 반에도 하늘빛 깜깜합니다. 앞으로 한 달 더 흐르면 여섯 시가 되어도 하늘빛이 깜깜하겠구나 싶습니다.


  새벽별 곁에 새벽달이 있습니다. 십일월 첫날 새벽달은 초승달입니다. 실웃음을 짓는 입술과도 같은 새벽달은 새벽별한테 둘러싸여 노랗게 빛납니다. 이 새벽이 저물고 먼동 천천히 트면서 날이 훤하면, 둥그렇고 하얗게 빛나는 해가 저 멧자락 위로 봉긋 솟겠지요.


  시골마을에는 해와 달과 별을 가리는 전깃줄이 없습니다. 마을 고샅 밝히는 등불 몇 있으나,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이 없습니다. 해를 보고 싶으면 해를 봅니다. 달을 보고 싶으면 달을 봅니다. 하늘을 보고 싶으면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싶으면 별을 보아요.


  들을 살살 어루만지는 바람을 살갗으로 누립니다. 숲을 감돌며 부는 바람이 멧새 깃털을 간질이면서 숲노래 나누어 줍니다. 새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서 이웃으로 지냅니다. 물질문명과 도시와 농약이 멧짐승 거의 모두 죽여 없앴지만, 깊은 시골마을 숲에는 크고작은 숲짐승 조금 남아 숲살이를 가늘게 잇습니다.


- “이봐, 왜 그래?” “이 염불 같은 교주의 말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 “곧 익숙해질 거야. 익숙해지면 신경 쓰지 않게 돼. 오히려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걸.” (6쪽)
- “자, 자, 뭣들 하는 거냐? 애들 싸움도 아니고. 한쪽은 특수훈련을 받은 여전사. 다른 한쪽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킬러잖아. 좀더 터프하게 해 보라구. 갈갈이 찢어 버려!” (12쪽)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역사 과목이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로 역사를 배웁니다. 교과서로 아이들이 받아드는 역사책을 펼치면,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온통 전쟁 이야기입니다. 누가 임금이 되어 땅을 얼마만큼 넓혔고, 어느 한 나라 곁에 또 누가 임금이 되어 땅을 얼마쯤 넓히려고 어떤 무기를 갖추어 치고받아 죽이고 죽는 싸움을 언제까지 벌였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는 모두 궁중 문화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들 문화는 한 줄로조차 안 나옵니다. 가만히 살피면, 1500년대이든 1000년대이든 500년대이든, 임금 둘레에 있는 신하나 심부름꾼 숫자는 시골 흙지기 숫자하고 댈 수 없을 만큼 적어요. 이무렵 시골 흙지기는 99%쯤 되었을 테지요. 어쩌면 99.9%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1%니 0.1%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벌인 싸움 이야기만 가득해요. 1%나 0.1%밖에 안 되는 사람이 권력을 거머쥐어 흥청망청 누리던 문화 이야기만 빼곡해요.


  역사는 전쟁일까요? 역사는 전쟁인가요? 역사는 권력다툼과 땅따먹기일까요? 역사는 전쟁무기요, 임금과 신하와 양반 꽁무니 쫓는 이야기인가요?


- “그때, 지상 프론트에서 당신 손에 죽었어도 난 상관 없었어. 나도 그냥 킬러일 뿐이야. 임무를 위해 사람을 벌레 죽이듯 몇 십 명이나 죽인 인간이야.” “그럼, 왜 날 도와주는 거지? 어서 죽이지 않고?” “그럴 수가 없어! 이번만큼은 널 찌르는 것도 망설였어. 이유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16쪽)
- “아뿔싸! 리카온이야.” “리카온이 뭔데?” “본부 직속 킬러야. 해저 수용소의 보고를 받고 잠복하고 있었을 거야. 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31쪽)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말을 모릅니다. 이런 말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시골사람도 ‘싸움’이라는 낱말을 쓰기는 하지만, 임금이나 신하나 양반 같은 권력자 때문에 쓸 뿐입니다. 싸움터에 끌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 흙지기는 애먼 권력자 때문에 시골을 떠나 병졸이 됩니다. 이웃나라에서도 시골 흙지기가 애먼 권력자 때문에 시골을 떠나 병졸이 돼요. 싸움터에서 부딪히는 사람은 모두 시골 흙지기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거나 죽여야 할 까닭이 없지만, 등 뒤에서 권력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부라리며 닦달하니까, 애먼 이웃 흙지기를 칼로든 창으로든 베어 죽여야 합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내가 죽으면 내 시골마을 보금자리 아이들이 슬퍼서 웁니다. 그런데, 내가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를 죽이면, 이웃나라 시골마을 아이들이 슬퍼서 울어요.


  권력자가 일으키는 전쟁은 애먼 시골 흙지기가 애꿎게 서로를 미워하도록 부추깁니다. 아무런 미움도 다툼도 슬픔도 눈물도 없던 시골 흙지기끼리 뜻없이 서로 손가락질하도록 닦달합니다.


  시골 흙지기는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 땅뙈기를 빼앗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 마을 내 땅뙈기 잘 돌보면 넉넉할 뿐입니다. 이웃나라 시골 흙지기도 우리 시골 땅뙈기를 가로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땅을 넓혀야 할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일굴 수 있을 만한 넓이를 일구면 될 뿐입니다.

  이와 달리 권력자는 흙을 안 일굽니다. 흙을 안 일구면서 책상머리에서 책만 펼치니, 더 큰 권력과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을 드날리려는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으려고 전쟁을 북돋웁니다. 다시 말하자면, 흙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만듭니다. 흙을 모르고 흙밥 안 먹으며 흙삶 안 짓는 권력자와 지식인이 전쟁을 만들 뿐 아니라, 전쟁 이야기를 역사로 남기고, 이 역사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이들한테 교과서로 가르쳐서 머릿속에 지식으로 쑤셔넣으려 합니다.


- “으음, 자네가 부럽군. 영계가 보이다니. 난 강제로 출가해 불법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안 보인다네. 신앙이란 그런 건지도 몰라. 믿음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신을 느끼는 것인가.” (47쪽)
-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이대로 계속 전진하십시오. 영계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건 왕자님의 강한 의지밖에 없습니다.” (72쪽)
- “천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그분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 이누 족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인간이 될까. 그리고, 어떻게 이누 족으로 돌아올까.” (219쪽)

 

 


  전쟁 이야기만 넘치는 역사란, 권력자와 지식인 놀음놀이입니다. 권력자와 지식인 놀음놀이밖에 안 되는 하잘것없는 전쟁 발자국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배워야 할 뜻도 값도 없습니다.


  우리가 배울 참다운 역사라면, 흙빛과 흙내음과 흙노래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흙을 어떻게 아끼고 살찌우면서 사랑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역사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풀이름과 나무이름과 벌레이름과 새이름과 짐승이름 들을 어떻게 지어서 붙였고, 이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짐승이 시골사람과 어떤 이웃이 되어 어깨동무를 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바로 역사 배우기입니다.


  풀을 배워야 역사를 배웁니다. 나무를 가르쳐야 역사를 가르칩니다. 흙을 배울 때에 역사를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풀줄기에서 실을 얻어 천을 짜고 옷을 짓는 삶을 가르칠 때에 역사를 제대로 가르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와 흙과 돌과 짚으로 집을 짓는 슬기로운 넋을 고이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있을 때에 ‘교육’이 참답게 이루어집니다.


- “정말 내 피가 필요없나요?” “거 정말 끈질기군. 필요없다니까.” “욕심이 없는 사람이군요.” (91쪽)
- “이곳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천 년 남짓 후의 세상이에요. 이 세상에서도 빛의 일족과 그림자 일족이라는 두 개의 신앙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죠. 하지만 난 인간들이 자연스레 문제를 해결하길 지켜보고 있을 뿐이에요.” “이렇게 끔찍한 전쟁인데도?” “그래요. 정말 처참한 일이죠. 종교 전쟁이란 언제나 그런 법이에요. 인간이란 존재는 몇 백 년 몇 천 년이 지나도 어딘가에서 늘 종교 문제로 끔찍한 전쟁을 벌이죠. 도무지 끝이 없어요. 나도 말릴 도리가 없고요.” “끝이 없다고? 왜 그렇지?” “종교니 신앙이니 하는 거 전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두 다 옳죠. 그래서 옳은 것끼리의 싸움은 막을 도리가 없는 거예요.” (96∼97쪽)
- “침략자인 불교가 옳단 말인가? 난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쁜 건 종교가 권력과 맺어졌을 때뿐이에요. 권력에 이용당한 종교는 정말 잔인하죠.” “하긴, 네 말이 옳긴 해. 권력이라.” “인간의 권력은, 인간 자신의 손으로 없애는 법. 그래서 난 지켜보고만 있는 거예요.” (98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2002) 열여섯째 권을 읽습니다. 《불새》 열여섯째 권에서는 ‘전쟁을 만드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을 짓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을 만드는 사람이 지구별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랑을 짓는 사람이 지구별을 얼마나 포근하게 돌보고 아름답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 “왕자여, 저 일출을 보아라.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답지 않느냐.” “정말 아름답습니다.” “왕자여, 나는 해의 신을 모시고 해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로 했다. 너도 날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 “아버님에게 신이라면 제게도 신입니다.” (114쪽)
- “종교 따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상에 차별만 만들었을 뿐이잖아요! 이젠 지겨워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닥쳐!” (146쪽)
- “너의 의문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 생각을 들어 봐라. 나는 빛 대신 새로운 종교를 만들 것이다. 그 종교는 내가 만든 것이다. 전 인류가 날 따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행복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요컨대 인간이 스스로의 지혜로 영원한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 그걸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종교지. 이것을 난 불멸교라 이름 지었다.” (194쪽)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싸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싸우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삶을 누리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는 삶을 누립니다. 남을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려는 사람은 참말 남을 등치거나 밟고 올라서서 스스로 1등이니 2등이니 하고 숫자를 외칩니다.


  어른인 나 스스로 어떻게 살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인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떠한 삶을 물려줄 적에 기쁘게 웃을 만한가요. 어른인 우리들은 저마다 어느 마을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일구어야 즐거울까요. 어른인 우리들은 서로서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거나 두레를 하면서 손을 맞잡아야 웃음꽃 기쁘게 피울 수 있는가요.

 


- “아주 긴 시간이었어. 우리가 헤어진 지 천 년이나 됐어.” “그래요. 당신도 나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났죠. 천 년 동안. 아버지는 당신이 반드시 영계로 돌아오리라 믿으셨어요.” “그래, 지금의 난 인간이 아니야. 육체는 이미 죽었어. 여기가 어디지?” “아마 이누 족의 마을일 거예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232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불새》는 열여섯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열여섯째 권으로 기나긴 이야기가 끝나고 열일곱째 권에서는 ‘뒷이야기(외전)’를 들려줍니다.


  《불새》 열여섯째 권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이야기 한 자락은 ‘몸은 죽되 마음은 죽지 않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몸은 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마음은 죽지 않아요. 몸은 사라져서 흙으로 돌아가지요. 아니, 몸은 흙이 되지요. 그렇지만 마음은 흙으로 가지 않아요. 하늘로 가서 맑은 빛이 돼요. 맑은 빛이 되는 마음은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따사롭고 환하게 밝히는 사랑으로 이어져요.


  삶이란 마음이고 마음이란 사랑이 되어 사랑은 다시 푸른 숨결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전쟁이란 전쟁입니다. 전쟁은 전쟁을 낳습니다. 전쟁은 다시 전쟁을 부릅니다. 전쟁은 언제나 전쟁입니다. 사랑은 사랑이지요. 사랑은 사랑을 낳아요. 사랑은 다시 사랑을 부릅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나요? 싸우면서 싸움에 휘둘린 채 살아가고 싶나요? 사랑하면서 사랑을 나누고 노래하며 살아가고 싶나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사람답게 아름다운 빛을 흩뿌리며 즐겁게 웃는 길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바보스럽게 뒹구는 길도 하나이지요. 바보스럽게 뒹굴며 스스로 갉아먹는 길 또한 하나예요. 십일월 가을빛 환한 아침에 멧새들 우리 집 둘레에서 시원스럽게 노래하며 고운 빛을 깨웁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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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사랑을 낳고 전쟁은 전쟁을 낳는다.
- 아주 간단한 내용 같지만 깊게 생각해 볼 만한 말입니다.
좋은 포토 리뷰입니다. ^^

파란놀 2013-11-01 13:37   좋아요 0 | URL
가장 아름다운 길은
가장 쉬운 길이고,
가장 즐거운 길은
가장 사랑스러운 길이니,
이러한 길을
사람들이 스스로 알뜰살뜰 느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쓰레기더미 아파트 책읽기

 


  아파트 앞마당은 쓰레기더미 된다. 아파트 앞마당 밑은 깊이 파헤쳐 자동차 대는 자리가 된다. 아파트 둘레에 아파트 쓰레기를 묻을 자리가 없다. 모두 어디론가 멀리 내다 버려야 한다. 병도 플라스틱도 종이도 상자도 책도 이것저것도 모두 쓰레기가 더미를 이루고, 이 쓰레기더미는 날마다 쏟아져 어디론가 잔뜩 실려 가야 한다.


  아파트를 짓기까지 송전탑이 서서 이곳을 드나들어야 한다. 도시가스 흐르도록 기나긴 쇳줄 이어야 한다. 저 먼 시골마을 꼴깍 잠기도록 해서 만든 댐에 가둔 물을 이곳까지 물줄로 이어야 한다.


  돈으로 짓는 집이기에, 돈을 쓰면서 살아가는 집이 된다. 전기가 끊어지고 수돗물 끊어지며 가스가 끊어지면 아파트는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한 감옥으로 바뀐다. 여기에다가, 쓰레기를 치워 줄 사람이 없으면 무시무시한 쓰레기터 되겠지.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낳지 못하는 마을은 언제나 쓰레기를 낳고야 만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낳는 삶 일굴 적에는 아무런 쓰레기가 안 나올 뿐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운 웃음과 노래와 사랑이 샘솟는다.


  온갖 도시 커다랗게 지어 놓은 오늘날이니, 쓰레기를 줄이거나 없애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런 길만 찾는들 쓰레기를 줄이지도 없애지도 못한다. 삶을 찾는 길을 걸어가야 비로소 삶이 샘솟는다. 삶을 찾아야 쓰레기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삶을 찾을 때에 웃음이며 노래며 사랑이 샘솟는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책을 읽혀야 하겠는가.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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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01 13:22   좋아요 0 | URL
저도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찜찜합니다.
식구는 몇 안 되는데 쓰레기는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에요.
저도 쓰레기를 줄이려고 나름대로 노력은 한답니다.
집에선 종이컵이나 나무 젓가락을 사용할 일은 없고...
음식 쓰레기가 되도록 생기지 않도록 애쓰죠.
그마나 제가 사는 아파트는 폐품 관리가 철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 양이 엄청나잖아요.

파란놀 2013-11-01 13:38   좋아요 0 | URL
지난날에는 쓰레기 아닌 거름이었고,
거름조차 모자라 똥오줌을 모으는 데에
무척 애를 썼는데,
이제는 흙한테 돌려줄 생각을 아예 잊다 보니
모두 쓰레기가 되는구나 싶어요...
 

[시로 읽는 책 70] 마음에 빛

 


  새벽별 환하게 드리우며 먼동이 틉니다.
  새들 노래하고 풀바람 살랑거리더니,
  아이들 기지개 켜고 까르르 웃으며 일어납니다.

 


  누구나 ‘말’이 ‘마음’을 얼마나 살찌우는 ‘빛’이 되는가를 즐겁게 느끼며 아름답게 돌아본다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말이 마음을 얼마나 살찌우는 빛이 되는가를 즐겁게 느끼지 못하거나 아름답게 돌아보지 못하면, 스스로 말과 마음과 빛을 살찌우지 못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해요. 한국말은 한국사람답게 슬기롭게 쓸 노릇입니다. 영어는 나라밖 사람들과 슬기롭게 나눌 노릇입니다. 한자말은 한국말이 아니니 한국말을 쓰도록 마음을 기울이면서, 중국이나 일본 이웃과 사귈 적에는 중국말과 일본말 주고받을 수 있게끔 해야지요. 언제나 말로 만나고 마음으로 사귀며 빛으로 사랑이 피어납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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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여고에 우리 말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먼 마실 다녀왔습니다.

이곳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써 두었던 글을

이제 살짝 올려놓습니다.

 

..

 

시골 고등학교 푸름이와 어른
― 서천 서천여고 예쁜 벗들한테

 


  저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옆지기와 두 아이하고 살아갑니다. 올해 제 나이 서른아홉이니, 옛날 같으면 두 아이 아닌 예닐곱 아이쯤 낳았을 테고, 옛날이라면 첫째나 둘째 아이가 열일곱이나 열여덟 살쯤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 곁에는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들 나이를 생각하면 제 나이도 젊구나 싶지만, 옛날 사람들을 떠올리면 제 나이도 꽤 늙수그레한 축에 들겠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옛날이라면 제가 낳았을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도 시집이나 장가를 들어 아이를 낳을 만한 나이가 되거든요.


  시골에서 지내며 시골 이웃을 늘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지내니 시골 이웃을 만날 테지요. 우리 식구한테 시골 이웃은 거의 모두 할매나 할배입니다. 젊은 이웃은 찾아보기 아주 어렵고, 푸름이나 어린이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면소재지에 가면, 면소재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곧잘 만납니다. 읍내에 가면, 읍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드문드문 마주쳐요. 그렇지만, 스치거나 마주칠 뿐 더는 없습니다. 시골 면내나 읍내 아이들은 면내나 읍내에서 누릴 만한 ‘문화생활’이 없다고 여겨 피시방에 가거나 학교 기숙가로 돌아가거나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합니다.


  전남 고흥은 바닷가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입니다. 아주 높은 멧자락은 없지만, 알맞게 오르내릴 만한 멧자락과 앙증맞은 숲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흥 푸름이나 어린이 가운데 바다와 멧자락과 숲과 골짜기를 즐거이 누리는 일은 매우 드물어요. 봄소풍이나 가을소풍 때에 한 번 오면 올 뿐, 스스로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여러 시간 걸려 고흥이나 장흥이나 강진이나 해남 같은 데로 나들이를 옵니다. 물과 바람이 맑고 숲과 바다가 좋다고 하면서 먼길을 자가용 싱싱 달려 찾아와요. 이들 도시 관광객 가운데에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분이 있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분이 있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어릴 적부터 시골숲이나 시골바다를 거의 못 누린 채 입시공부만 하다가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살면서, 하도 답답해 시골로 여행을 떠나요. 도시에서 태어난 분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이 좁거나 갑갑하다 여겨 도시로 가려고 해요. 그런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매캐한 바람과 안 깨끗한 물에서 벗어나려고 휴가를 내고 목돈을 모아서 시골로 여행을 옵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찾아 어떻게 살아갈 때에 스스로 가장 즐거우면서 더없이 아름다운 모습이 될까 궁금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물을 만지는 삶은 참말 고달프거나 어렵거나 힘겹다고만 할 만한지 궁금해요.


  전남 고흥에서 지내는 푸름이들을 보면,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기숙사에서 내처 지냅니다. 주말에도 집에 안 가기 일쑤입니다. 읍내에서 퍽 깊은 두멧자락에 깃든 집으로 오가는 시간마저 아깝다고 여기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 세 해를 보내는 동안 이녁 어버이들 봄일이나 여름일이나 가을일 거들 틈이 없습니다. 아마, 이녁 어버이들부터 아이들더러 대입시험 공부나 하라 시킬 뿐, 모내기나 풀베기나 가을걷이 거들라 시키지 않겠지요.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철썩 붙어, 시골에서 몸 쓰는 고된 일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겠지요. 시골 읍내나 면내 푸름이들이 꿈꾸는 ‘장래 희망’도 100이면 100 모두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꿈을 꾸는 아이가 없어요. 농약과 비료에서 벗어나, 깨끗하며 아름답게 흙을 살찌우겠노라 꿈을 꾸는 아이가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모두 농사꾼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골사람도 얼마든지 도시로 가서 일거리 찾아서 지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골사람도 도시로 가든 말든, 시골이란 어떤 곳인지 시골마을 어버이와 교사인 어른들이 슬기롭게 가르치고 보여주면서, ‘도시에서 할 만한 일거리’를 찾도록 이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가을에 가을내음 마시고, 봄에 봄꽃 누리는, 철과 날을 맞아들이며,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과 나무를 꾸밈없이 사랑할 수 있는 넋을 건사할 때에, 몸과 마음이 나란히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서천여고 푸름이들이 이 학교를 다니는 세 해 동안, 충남 서천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삶터를 온몸 가득 온마음 두루 받아들이면서 하루하루 기쁘게 누리기를 바랍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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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의 아이》 다섯째 권을 앞에 놓고

 


  여러 해에 걸쳐 찬찬히 이어진 만화 이야기 하나 다섯째 권으로 마무리된다. 바닷마을에서 아이들이 바닷내음과 바닷소리와 바닷노래를 누리면서 밝히는 바다빛을 들려주는데, 마지막 권에서는 어떤 내음과 소리와 노래를 조곤조곤 속삭일 수 있을까. 바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살아갈까. 바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다 곁에서 지낼까. 바다하고는 동떨어진 채 말로만, 지식으로만, 학문으로만, 책으로만, 기사로만 마주하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까. 바다와 한몸이 된 채, 바다와 한마음이 되는 빛을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 바다에는 ‘바다 아이들’ 있고, 들에는 ‘들 아이들’ 있다. 아스팔트길과 시멘트집에는 ‘아스팔트 아이들’과 ‘시멘트 아이들’이 있을까. 만화책 《해수의 아이》 다섯째 권을 앞에 놓고 이제부터 읽으려 한다. 4346.10.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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