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80] 다섯 가지

 


  책과 돈이 없어도 살지만,
  해, 바람, 물, 흙, 풀 없으면
  죽는다.

 


  동양에서는 오행을 말합니다. 서양에서는 사원소를 말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해(불+빛), 바람(공기), 물(비+내+바다), 흙(들+논밭), 풀(풀+나무)이에요. 동양에서는 ‘풀(나무)’까지 넣어 다섯 가지이지만, 서양에서는 ‘풀(나무)’을 따로 안 넣어요. ‘흙’이 있으면 풀과 나무가 있다고 여기니까요. 이 가운데 ‘쇠’가 어디 갔느냐 할 수 있지만, ‘쇠’는 ‘돌’에 들어 ‘흙’ 사이에 끼겠지요. 오행이 되건 사원소가 되건, 모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밑바탕이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목숨이 지구별에서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가는 밑힘입니다. 해, 바람, 물, 흙, 풀입니다.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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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남 고흥 시골에서 '사진책도서관'을 꾸리기도 하지만,

나처럼 혼자서 씩씩하게 '서재도서관' 열려는 분들을

이모저모 돕고 싶어서 발벗고 나서기도 한다.

 

시골에서 네 식구 옹기종기 살아가면서

'서재도서관'을 여신 분이 있고,

이분이 부부가 함께 책을 하나 새로 냈다.

 

이 책을 선물받아 읽은 지 한 주가 지났는데

아직 이 책이 어느 책방 사이트에도 뜨지 않는다.

설마, 내가 곧잘 내는 책처럼 '서점 유통' 안 하는 책일까?

 

서점 유통을 굳이 안 할 까닭은 없을 텐데?

언제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쓸 수 있으려나.

언제쯤 이 책을 알라딘에서 입고해서 사람들한테 다리를 놓아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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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별빛·책빛

 


  시골마을에 등불이 언제 들어왔을까요. 시골마을에 왜 등불을 들였을까요. 등불이 있어 어두운 밤에도 다니기 수월하다 말하지만, 저녁부터 어두움에 익숙하게 지내는 시골에서는 등불이 있대서 더 밝지 않습니다. 외려 등불 때문에 등불이 비추지 않는 자리가 더 어둡습니다. 등불이 없으면 밤눈으로 다 알아보았을 텐데, 등불 때문에 시골사람 밤눈이 자꾸 어두워집니다.


  등불 하나 없이 깜깜하던 내 어버이 시골집을 떠올립니다. 내 어버이 시골집 있는 마을 어른들은 등불 하나 없이 논길이건 들길이건 고샅길이건 척척 걷습니다. 도시에서 등불에 기대어 살다 보니 시골 밤길이 익숙하지 않던 어린 나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집니다. 자꾸 넘어지고 걸음이 처지는 나를 보던 외사촌 형이 문득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보며 걸으라’고 말합니다. 땅만 보면 더 잘 넘어진다고, 저 하늘이 얼마나 밝은지 보라고 말합니다.


  넘어져 흙이 묻은 바지를 털며 하늘을 봅니다. 별이 그득 쏟아집니다. 별이란 이렇게 많아서 별이로구나 하고 처음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밤눈이 갑자기 밝아지지 않습니다. 어기적어기적 겨우 꽁무니를 좇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차츰 길바닥이 하얗게 바뀝니다. 밤길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등불 하나 없이 얼마든지 잘 달릴 수 있습니다. 밤길에 등불 없이 자전거를 달리면, 이 길에 선 개구리나 다른 작은 짐승을 곧 알아챕니다. 그러나, 등불에만 기대어 달리면, 이 길에 무엇이 있는지 더 못 알아보고 하늘에 별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모든 책에는 빛이 있습니다. 책에 있는 빛은 책빛이라 합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모든 책빛을 알아보거나 누리지 못합니다. 책빛은 마음을 활짝 여는 사람한테만 밝고 맑게 비춥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면 책을 지식으로는 읽되 빛으로는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별은 밤뿐 아니라 낮에도 밝게 빛납니다. 해는 낮뿐 아니라 밤에도 곱게 빛납니다. 낮을 지나 밤이 되었대서 해가 없지 않아요. 우리가 발을 디딘 지구별에서 저 뒤쪽으로 있을 뿐입니다. 해가 사라지지 않기에 지구별 저 뒤쪽에 있어도 우리들은 밤에 그럭저럭 시원하거나 조금 춥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해가 사라지거나 없어진다면, 우리들은 모두 꽁꽁 얼어죽습니다.


  책마다 서린 빛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책은 누구한테나 빛을 흩뿌립니다. 맞아들일 만한 마음그릇이든, 맞아들이지 못하는 마음그릇이든, 책은 구태여 금을 긋거나 가르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이 빛을 맞아들이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찬찬히 기다리면서 살며시 빛을 드리웁니다. 그래서 어느 책을 손에 쥐더라도, 책을 쥔 사람들은 책빛을 곱게 받아요.


  보름달이 이울며 별빛이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믐달이 되면 이제 별빛은 아주 눈부시겠지요. 도시에서는 등불이 사라져야, 또 아파트와 자동차가 모두 잠들어야, 비로소 별빛이 하나둘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책빛을 읽자면, 책빛을 누리자면, 책빛을 받아먹자면, 우리들은 무엇을 끄고 무엇을 열어야 할까요.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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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헌책방

 


  책방은 책꽂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책방은 간판을 보지 않는다. 책방은 책방지기 얼굴을 보지 않는다. 책방은 오직 책꽂이를 본다. 책꽂이가 통나무여도 좋고 합판이어도 좋으며 쇠붙이여도 좋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살피며 책방 한 곳 살아가는 흐름을 읽는다.


  책방지기가 예쁘거나 잘생겼대서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이름이 예쁘거나 간판이 멋스러워서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이 신문이나 방송에 나왔기에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지기한테 박사학위가 있다거나 시인·소설가라는 이름표가 있대서 책방에 가지 않는다. 책방에는 오직 책을 만나러 간다.


  책방에 깃든 책을 살피며 책방지기 마음을 읽는다. 책방에 갖춘 책을 골라 장만하면서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책을 살피고 장만하는 동안 책방지기하고 말 한 마디 섞지 않는다. 책방 책꽂이에 있는 책을 만지는 사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한 번 슥 훑으면 그만일 듯하다고 여길 수 있는 조그마한 자리에 남은 조금 있는 헌책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조그마한 자리, 조그마한 책꽂이, 조그마한 칸에 깃든 책들을 한 시간에 걸쳐서 찬찬히 살피기로 한다. 보고 또 보면서, 다시 보고 거듭 보면서, 이 작은 헌책방 조그맣게 남고 만 책꽂이 사이에서 아름다운 빛을 누리고 싶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 헌책방살림 벅차고, 그예 다른 일을 한다 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서린 빛을 못 보았을 뿐, 내가 이곳에 있는 빛을 못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즐겨 찾아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이곳을 즐겁게 찾아가서 아름답구나 싶은 책 하나 만나면 넉넉하다.


  이 작은 헌책방에는 책손 열 스물 드나들 수 없다. 이 작은 헌책방에는 책손 두엇만 있어도 꽉 찬다. 이 작은 헌책방에는 차분히 책을 돌아볼 책손 한둘이면 넉넉하다. 이 한둘이 흐뭇하게 책을 고른 뒤 자리를 비우면 다른 책손이 찾아들어 찬찬히 책을 누린다. 아름다운 책빛이 조용히 웃으면서 기다린다.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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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21. 2013.11.26.

 


  단풍꽃은 봄에 핀다. 단풍나무 새잎 돋을 무렵 일찌감치 단풍꽃이 피고, 단풍꽃이 흐드러진 봄날이 지나면 어느새 단풍씨 맺힌다. 단풍씨는 포로로롱 빙글빙글 돌면서 땅으로 떨어진다. 단풍나무처럼 꽃과 씨를 빨리 맺어 떨구는 나무도 없으리라. 단풍나무는 꽃도 씨도 없는 채 무척 오랫동안 지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잎사귀만 팔랑팔랑 바람춤 추면서 지낸다. 이윽고 가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꺼번에 짙붉게 물든다. 어쩜 이리 곱게 물들 수 있을까. 아이들과 가을빛 누리려 마실을 나오는데, 두 아이 모두 이웃마을 오리를 구경한다며 나무는 쳐다보지 않는다. 나 혼자 단풍빛을 들여다보다가 갓 떨어진 작은 잎사귀 둘 줍는다. 하나는 큰아이 주고 하나는 작은아이 주어야지. 수첩에 잘 눌러 놓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오늘(아니 어제) 꽃아이 말고 꽃어른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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