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13) 안도의 1 : 안도의 한숨

 

그리고는 “잡았다!” 하는 의미로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야누슈 코르착/노영희 옮김-아이들》(양철북,2002) 44쪽

 

  ‘그리고는’은 ‘그러고는’으로 고칩니다. ‘의미(意味)’는 ‘뜻’으로 손봅니다.
  한자말 ‘안도(安堵)’는 “(1) 사는 곳에서 평안히 지냄 (2) 어떤 일이 잘 진행되어 마음을 놓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안도의 한숨”이나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나 “안도의 빛을 보이다” 같은 보기글이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 한숨을 후유 쉽니다
→ 마음 놓는 한숨을 쉽니다
→ 마음을 놓으며 한숨을 쉽니다
→ 마음이 가벼워지는 한숨을 쉽니다
 …

 

  “안도의 한숨”이라는 말마디에서 ‘안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으레 이런 말투로 쓰기 때문에 낱말책 보기글에까지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런 말은 우리가 얼마나 쓸 만할까요.


  잘 따져 보아야 합니다.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안도하는 한숨’입니다. 적어도 이렇게 적어야 알맞습니다. 그렇다면 ‘안도한다’는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을 놓는다”이고, “마음이 가벼워진다”입니다. 그러면 이 말뜻 그대로 “마음을 놓는 한숨”이나 “마음이 가벼워지는 한숨”으로 적어야 올바를 테지요.


  “마음을 놓는 한숨”인 줄 느꼈다면, 차근차근 가지를 치며 “마음이 풀어지는 한숨”이나 “마음이 가벼워지는 한숨”이나 “마음에 얹힌 짐을 내려놓는 한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숨 쉬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 “한숨을 후유 쉽니다” 해도 되고요. 4337.9.13.달/4346.1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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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잡았다!” 하는 뜻으로 후유 한숨을 쉽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518) 안도의 2 : 안도의 한숨

 

‘아! 이제 평택만 가면 내 인생의 새로운 길이 열리는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오아블로-희망을 푸는 두레박》(미다스북스,2004) 188쪽

 

  “내 인생(人生)의 새로운 길이”는 “내 삶에도 새로운 길이”나 “내 삶에 새 로운 길이”로 다듬어 줍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 히유, 한숨을 쉬었습니다
→ 가볍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 마음이 놓이며 한숨이 나왔습니다
→ 이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 이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맺힌 앙금이나 쌓인 근심이 확 풀렸다고 하면서 한숨을 쉰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숨소리를 옮겨서 글을 쓸 수 있고, 근심이나 앙금이 풀린 만큼 “가볍게 한숨을 쉬었습니다”나 “홀가분하게 한숨을 쉬었습니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마음을 놓았다”라 적어도 됩니다. 큰짐을 더니 마음이 가볍고, 마음이 가벼우니 한숨이 나오며, 한숨이 나오니 마음이 놓입니다. 4339.2.27.달/4346.1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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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평택만 가면 내 삶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구나.’ 가볍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046) 안도의 3 : 안도의 한숨

 

다 치워 놓고 안도의 한숨 쉬고, 텅 빈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오랜만에 바라보듯 마주 바라보았다
《김성혜-이민 가족》(주우,1981) 165쪽

 

  혼례잔치를 다른 걱정이나 어려움 없이 마친 두 사람은, 이래저래 다 치워 놓은 다음 비로소 마음을 놓았답니다. 가만히 마주앉은 두 사람은 히유 하고 길게 한숨을 쉽니다. 이제 걱정과 시름은 사라졌다고 하면서.

 

 안도의 한숨 쉬고
→ 한숨 한 번 쉬고
→ 한숨 푸욱 쉬고
→ 마음 놓여 한숨 쉬고
→ 마음 풀려 한숨 쉬고
→ 이제 다 끝났다며 한숨 쉬고
 …

 

  걱정이 될 때에 쉬는 숨이 한숨이요, 걱정이 풀릴 때에 쉬는 숨이 또 한숨입니다. 기쁠 때 웃지만 슬플 때에도 웃음이 나기도 하며, 슬플 때 울지만 기뻐서 눈물이 흐를 때도 있으니, 이 한숨도 마음이 놓이거나 마음이 답답할 두 가지 때에 저절로 나옵니다.


  보기글에서는 “이제 다 되었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이제 마음쓸 일이 없다”고, “이제는 홀가분할 수 있다”고 해서 한숨을 쉰다고 나타내면 잘 어울립니다. 4340.7.25.물/4346.1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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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치워 놓고 한숨 한 번 쉬고, 텅 빈 마음으로 우리는 서로를 오랜만에 바라보듯 마주 바라보았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08) 안도의 4 : 안도의 한숨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티아스와 조심해서 사다리를 내려왔습니다
《한스 페터슨/김정희 옮김-마티아스와 다람쥐》(온누리,2007) 24쪽

 

  ‘조심(操心)해서’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둘 만합니다만, ‘살금살금’이나 ‘천천히’나 ‘차근차근’으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 후유 한숨을 쉬며
→ 히유 한숨을 쉬며
→ 한숨을 폭 쉬며
→ 한숨을 쉬며
 …

 

  크게 걱정했기에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아무 말 못하고 마음만 졸이다가 드디어 걱정을 풉니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히유, 후유, 에휴, 한숨소리 절로 터져나옵니다. 이때에는 한숨을 ‘폭’ 쉬거나 ‘푹’ 쉬거나 ‘크게’ 쉰다고 할 만합니다. “엄마는 한숨을 크게 쉬며”라든지 “엄마는 자꾸 한숨을 쉬며”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6.1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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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한숨을 폭 쉬며 마티아스와 천천히 사다리를 내려왔습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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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눈물을 눈물로 담아 보여주고, 눈물을 닦으며 웃음짓고 싶은 삶은 눈물을 닦으며 웃음짓는 삶으로 보여준다. 글 한 줄이란, 그림 하나란, 얼마나 싱그러우면서 놀라운 빛인가. 누구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까닭이 없다. 무언가를 꺼리거나 등돌릴 까닭이 없다. 모두 우리 삶 골고루 밝히고 보듬는 아름다운 빛이다. 바닷물이 왈칵 일어나 덮쳤어도 바로 이 바다가 우리를 넉넉히 품으며 보살피는 물결인걸. 바다에서 고기를 얻고, 바다에서 소금을 얻으며, 바다가 뭍찌꺼기를 갯벌에서 보듬어 맑게 다스려 준다. 사람들 스스로 바다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이제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 크나큰 아픔과 생채기란,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부른, 아니 어른들이 부른 말썽이지. 어른들이 말썽을 일으켜 아이들이 다치거나 죽거나 아프지.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높은 곳으로 달리라고 외치기 앞서,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놀 만한 마을을 가꾸어야지. 4346.11.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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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으로 달려!-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2014 SK 사랑의책나눔, 아침독서신문 선정, KBS 책과함께, 우수환경도서 선정, 2013 고래가숨쉬는도서관 겨울방학 추천도서
사시다 가즈 글, 이토 히데오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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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싸웠어!
시바타 아이코 지음, 이토 히데오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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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日本名作おはなし繪本 全24卷 (單行本)
스기야마 아키라 / 小學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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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もたろう (いまむかしえほん 2.) (大型本)
廣松 由希子 / 巖崎書店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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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11.27.
 : 얼음 맞는 가을길

 


- 편지 한 통을 부치려 한다. 겨울 문턱인 터라 가장 따뜻할 때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자고 생각한다. 어느 한편으로는 읍내마실을 해서 우체국에 갈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한겨울이라면 스스럼없이 자전거를 달릴 텐데, 외려 겨울 문턱이 조금 더 춥다고 느낀다. 이래저래 밍기적거리다가 네 시가 다 되어 비로소 길을 나서기로 한다. 아침부터 찬비가 쏟아졌기에 망설였는데, 낮이 되며 해가 나왔고, 낮에 해가 따숩다 싶어 옆지기 두꺼운 겉옷을 빨아 바깥에 말렸다. 이만 한 해님이 있으면 네 시에 우체국 다녀와도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

 

- 바람이 제법 분다. 아이들은 오늘 어떻게 할까. 어제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마실 하며 바람 옴팡지게 먹었다. 큰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이부자리로 깃들었고, 두 시간 넘게 옹크리며 잤다. 오늘도 아이들 데리고 길을 나서면 좀 추우리라 생각하며 혼자 다녀오려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함께 따라나서고 싶은 눈치이다. 너희들 대단하구나. 그래, 이렇게 대단한 숨결이 바로 아이들 숨결이지. 찬바람에 지지 않고, 아니 찬바람과 놀면서, 가을을 누리고 겨울을 맞이하는, 이런 숨결이 바로 아이들 숨결이지.

 

- 문득 아이들 데리고 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제 너희 바람 많이 먹었으니 오늘은 아버지 혼자 우체국 다녀올게.” 하고 말한다. 아이들은 대청마루에 서서 손을 흔들어 준다. “아버지 꼭 오셔요!” 그럼 우체국만 갔다가 돌아오지 어디 가서 안 오겠니.

 

- 생각보다 바람이 드세다. 어제보다 바람이 드세다. 자전거가 휘청거린다. 그런데, 이런 바람이 불어도 나무는 꺾이지 않는다. 나무는 바람 부는 결에 따라 이리 살랑 저리 설렁 살살 움직이면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건사한다. 사람들은 으레 풀만 바람 따라 눕는다고 여기지만, 나무도 바람 따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나무 곁에 서서 나뭇줄기에 가만히 손을 대 보면 안다. 아무리 우람한 나무라 하더라도 바람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데, 무척 크게 움직인다.

 

- 우체국에 닿는다. 편지 한 통 부친다. 저울로 다니 3150원. 택배보다 비싸게 나오네. 차라리 택배 종이 붙이면, 외려 2500원으로 해 주기도 하는데. 우체국 일꾼이 슬그머니 150원을 덜어 준다. 응? 고맙습니다.

 

-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네모빵과 둥근빵을 산다. 우리 집 아이들은 네모낳게 구운 식빵을 ‘네모빵’이라 가리키고, 둥그렇게 구운 바게트를 ‘둥근빵(동그랑빵)’이라 가리킨다. 아이들이 붙인 이런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 느낀다. 아이도 어른도 이렇게 수수하며 재미나게 이름을 붙이면서 살아갈 때에 마음이 아름답게 빛나겠지.

 

- 집으로 돌아간다. 면소재지 벗어날 즈음 만나는 숲이 가을빛으로 흐드러진다. 다음에 바람 적게 불고 햇볕 좋은 날, 이곳에 마실 와야겠다. 마을 뒤쪽 천등산은 도시에서 몰려든 사냥꾼 때문에 갈 수 없다. 주말에도 여느 날에도 사냥꾼 총소리가 펑펑 울린다. 면소재지 조그마한 멧등성이에는 사냥꾼이 올 일 없다. 이곳 숲에서 아이들과 가을빛 누려야겠다.

 

- 면소재지 벗어나서 서호덕마을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얼음이 쏟아진다. 하늘에서 얼음이 퍼붓는다. 서호덕마을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달리면서 아이고 아파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갑자기 퍼붓는 얼음비는 춥기보다 아프다. 웬 난데없는 얼음비람. 오려면 눈이 오지. 눈이 와서 우리 아이들 신나게 눈놀이 하도록 해 주지.

 

- 동호덕마을로 접어드니 얼음비 그치면서 해가 쨍 하고 난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아주 빠르게 흐른다. 얼음비 쏟아내던 매지구름은 벌써 저 뒤로 물러났다. 하늘이 탁 트이다가도 흰구름이 물결치고, 다시 하늘이 탁 트이고 새삼스레 흰구름 그득 찬다.

 

- 구름 누리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름을 아이들과 함께 보면 더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다가, 아이들이 이 얼음비 맞았으면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하다. 어제보다 모진 바람이 불더라도 이 바람을 쐬어야 시골스러운 시골아이로 씩씩하게 자란다고 여겨야 했으려나. 바람이 드세니 길에도 마을에도 사람 그림자가 없다. 자동차도 없다. 맞바람 맞으며 낑낑거리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어제는 늦가을바람 옴팡지게 먹으며 몸이 많이 춥고 힘들더니, 오늘은 이럭저럭 괜찮다. 여러 날 잇달아 바람을 먹으면 차츰 익숙해지는 셈일까.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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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1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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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88

 


뭐가 즐거울까
―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1
 네무 요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3.9.15.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한테 이웃들이 곧잘 묻습니다. 시골에 무엇 볼 것 할 것 있다고 이렇게 지내느냐고. 그러면 언제나 한 마디 말만 들려줍니다. “즐겁거든요.” 무엇이 즐겁느냐 되물으면 “무엇이든 다.” 하고 덧붙입니다. 허허 하고 너털웃음 지으면 두 가지 빼고 다 좋다고 덧붙입니다. “농약 퍼붓는 모습, 쓰레기 아무 데에서나 태우는 모습.” 이 두 가지만 없으면 시골살이가 아주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시골로 오기 앞서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던 때에도 우리 식구한테 이웃들이 곧잘 물었습니다. 왜 아파트에 안 살고 골목집에서 사느냐고. 그러면 늘 한 마디 말만 들려줍니다. “즐거워요. 재미있고요.” 무엇이 즐겁고 재미있느냐 되물으면, 한 걸음만 나가면 골목이고, 두 걸음만 나가면 자동차 못 다니는 골목이며, 세 걸음만 나가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함께 누리는 골목꽃과 골목나무가 흐드러진 데가 바로 이곳, 아파트 아닌 골목동네라고 이야기합니다. 호호 하고 웃으면 두 가지 빼고 다 좋다고 덧붙입니다. “아무 데나 선 자동차, 갑자기 미친 듯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이 두 가지만 없으면 골목살이가 아주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 “여고생은 곧 죽잖아.” “알아듣기 쉽게 말해.” “어? 어라? 못 알아들었어? 으음. 여고생이란 건, 금방 죽잖아.” “…….” “졸업하면 여고생이 아니게 되니까, 그건 곧 여고생으로서의 내가 죽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20∼21쪽)
- “그래, ‘현모양처’란 건 장난으로 적은 거냐? 그런 거면 정말 센스가 없구나. 아니면 진심인가?” (25쪽)

 


  아이들은 나무막대기 하나로도 즐겁게 놉니다. 아이들은 나무작대기 하나로도 하늘을 납니다. 아이들은 빈손이나 맨손이어도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려요. 저희 빈손에 사탕이 있고 얼음이 있으며 떡이나 포도나 밥이 있다고 얘기해요.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문득문득 손바닥을 곱게 펼쳐 들고 다가와서 말합니다. “자, 여기 맛있는 밥이 있어요. 맛있게 드셔요.” 그러면, “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냠냠 먹습니다. 아이들은 히히 웃으며 뒤돌아섭니다.


  소꿉놀이란 소꿉이 있어야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소꿉으로 삼을 무언가 잔뜩 늘어놓아야 소꿉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살림살이 하나조차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소꿉놀이를 해요. 한 사람은 어머니 되고 한 사람은 아버지 될 수 있어요. 학교놀이를 할 적에 번듯한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학교 교사 노릇 맡는 아이가 교사자격증 있어야 하지 않아요. 이런 놀이를 누리건 저런 놀이를 즐기건, 늘 마음으로 합니다. 마음으로 그리며 누려요. 마음으로 웃으며 즐겨요.


  마음이 있기에 놀이가 돼요. 마음으로 놀이를 새로 빚어요. 마음을 모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뛰고 달리고 구르고 날지요.


  마음이 있어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은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살찌우는 일을 해요. 돈을 바라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꾸는 일을 찾아요.


  마음이 없는 채 논다면, 아니 마음이 없는 채 놀 수 없어요. 마음이 없는 채 끌려다니며 레크리에이션이나 체험학습이나 무슨무슨 캠프에 간대서 놀이가 되지요. 마음이 없이 이곳저곳 다닌들 모두 힘들 뿐입니다. 마음을 열어 어디에서나 놀 수 있으면 됩니다. 마음을 모아 다 같이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됩니다.

 

 


- “가사 동아리에 남학생이라니 이상하지 않아?” “가, 가사 동아리가 뭐 어때서?” “천만에! 남자는 뭐니뭐니 해도 수영부지!” “카네타카는 손재주가 좋고 뭐든 잘해. 가사 동아리의 에이스란 말야. 동아리 인기남이라고!” (44쪽)
- “다들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니?” “아, 죄송해요. 지금 바로 스트레칭 시작할게요.” “아,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래. 다들 농구에 대한 마음가짐이 어떤지.” (77쪽)


  우리 삶터 둘레에 꽃이 흐드러진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꽃을 느낍니다. 마음으로 바라볼 줄 모른다면, 우리 눈길이 닿는 자리가 꽃밭이라 하더라도 꽃밭인 줄 알아채지 못해요. 자가용을 몰든 버스나 기차를 타든, 꽃잔치 이루어진 가을길 여름길 봄길 지나가면서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꽃내음 맡고 꽃빛을 바라봅니다.


  바쁜 사람 눈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바쁜 나머지 꽃내음을 못 맡아요. 바쁘니 꽃빛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어요.


  힘들 적에도 그래요. 힘든 사람한테 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한테도, 돈은 많지만 구두쇠로 지내는 사람한테도,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들여다볼 틈이 없어요.


  살림이 넉넉할 때에도 즐거울 텐데, 무엇보다 마음이 넉넉해야 즐겁습니다.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살림이 넉넉하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대학졸업장이 있건 은행계좌 넉넉하건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를 거머쥐었건, 무슨 보람이나 웃음이나 설렘이나 기쁨이 있겠어요. 마음이 넉넉할 때에, 스스로 삶을 즐겨요. 마음을 넉넉하게 두면서, 스스로 삶을 지어요. 마음을 넉넉하게 가꾸고 돌보고 아끼고 북돋우면서 웃음꽃과 이야기꽃 피울 수 있어요.

 


- ‘키스 같은 걸 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98쪽)
- ‘미츠요의 키스는 미츠요의 세계를 바꾸었니? 그래?’ (113쪽)


  네무 요코 님 만화책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하느님들이 모여 놀다가 ‘지구 운명’을 ‘멸망’으로 찍고 말아, 그만 ‘지구 멸망’으로 나아가는데, ‘애써 예쁘고 멋지게 만든 이 지구를 멸망하게 둘 수 없’어서 여러 하느님이 땅으로 내려와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길’을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여느 동네 여느 고등학교 여느 여자농구부 아이들은 시큰둥합니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나, 제가 무슨 하느님이라고 깝죽을 떠는가, 뭔 썰렁한 우스갯소리를 하나, 하고 여겨요.


  그런데, 이 아이들, 여느 동네 여느 고등학교 여느 여자농구부에 찾아온 이가 참말 하느님인 줄 천천히 알아챕니다. 그러고는 저희 삶이, 저희 꿈이, 저희 사랑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거의 아무 뜻이나 생각 없이 흘려보내던 하루하루가 이제부터 예전처럼 흐를 수 없습니다.


- ‘저 애,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145쪽)
- “내 말 명심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영국은커녕 지구 자체가 없어지고 말아. 그 애들이 진심이 되게 하려면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해.” (180쪽)


  오늘 죽으면 꽤 서운할까요. 모레 죽으면 덜 서운할까요. 서른 해를 살면 안 서운할까요. 스물아홉 해 살 수 있으면 조금 서운할까요. 스물일곱 해 산다면, 스물여섯 해 산다면, …… 열다섯 해 산다면, 열네 해 산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요.


  어떤 빛을 누리는 삶인가요. 어떤 빛으로 가꾸는 하루인가요. 어떤 꿈으로 즐기는 삶인가요. 어떤 꿈으로 밝히면서 이루는 하루인가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즐거운지는 누구나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남이 챙겨 줄 수 없는 삶이고, 즐거움이며, 사랑입니다. 남이 내 몫까지 겪거나 누려 주지 않는 삶이며, 즐거움이고, 사랑입니다. 스스로 짓고 일구는 삶입니다. 스스로 가꾸고 밝히는 삶입니다. 4346.11.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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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29. 하늘타리 붉은 잎잔치 2013.11.26.

 


  고샅길 쪽에 있는 우리 집 헛간 벽을 타고 하늘타리가 다닥다닥 뻗는데, 늦가을이 되니 이 잎사귀가 온통 붉게 물든다. 이웃 다른 집들은 벽이나 담에 넝쿨 뻗으면 보기 싫다며 모조리 걷어내시지만, 우리 집만큼은 그대로 둔다. 여름에는 푸르니 싱그럽고, 가을에는 짙붉게 물드니 그야말로 그림이 된다. 아이들과 자전거마실 가려고 자전거를 고샅길로 빼고 대문을 닫으려다가 한참 서서 이 가을빛을 바라본다. 잎빛과 하늘빛과 구름빛이 어쩜 이리 고울까. 고샅길이 옛날처럼 흙길이었으면, 길바닥 흙빛이 한결 곱게 얼크러졌겠지. 헛간이 시멘트벽 아닌 흙담이었으면 훨씬 어여쁜 무지개빛으로 해맑았을 테고.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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