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로 볼일 보러 간다.

서울 볼일은 수요일인데

아침 열 시부터 모임을 해야 한다.

한글문화연대에서 하는 어떤 일을

함께 하기로 해서,

이 일로 가느라, 아무래도 이틀을 서울에서 묵어야 하는구나 싶다.

 

이렇게 마실을 하는 김에

새로 창간한 사진잡지사에 찾아가

단출하게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시민사회신문>에 쓸 "숲사람 이야기" 일곱째 꼭지로

사진길 씩씩하게 걷는 사람들 삶을 쓸 생각이다.

철수와영희 출판사에 들러

내 책 몇 권을 사서

한글문화연대에 드리거나 팔아서 찻삯에 보탤까 싶고,

<새로 쓰는 우리말> 편집방향 이야기를 들으며

원고쓰기에 더 기운을 내려 한다.

 

사진길 걷는 다른 출판사인 포토넷에도 들러

사진책 어루만지는 마음을 들어야지.

 

이런저런 사이사이 번역쟁이 털보 아저씨를 볼 수 있으려나.

인천에 가서 형한테 시그마렌즈를 건네야지.

형이 새로 지내는 화평동 골목집 둘레를

오랜만에 즐겁게 거닐고 싶기도 하다.

형 주소를 보니 그 동네 언저리를 얼마나 많이 자주 걸었는지

새삼스레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적에 품에 안고

참말 씩씩하게 그 길 많이 거닐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차를 탈까.

순천에서 내려 순천 헌책방 사장님을 뵐까.

그렇구나. 대전에 들러 대전 헌책방을 들를 수 있겠네.

아무튼, 이틀 마실 알차게 보내야지.

그동안 우리 식구들 시골집에서

즐거운 나날 잘 보내기를 빈다.

 

미역국 한 솥 끓이고

나물무침도 한 가지 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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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1:16   좋아요 0 | URL
두루두루 뜻깊은 나들이~
즐겁게 잘 다녀 오세요~*^^*

파란놀 2013-12-04 08:05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마워요~
모든 일 잘 되고
시골집에도 즐겁게 돌아가려 해요~ ^^
 

거의 스무 해 만에

 


  1995년에 처음 알고 지낸 벗님이 있다. 이 벗님을 언제까지 얼굴을 보았는지 잘 떠오르지 않지만, ㄱ대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는 벗님을 만나려고 이문동에 있는 신문사지국에서 짐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곤 했다. ㄱ대학교 앞에 있던 헌책방 ㅅ에서 《삶과 믿음의 교실》이라는 책 첫쇄를 보고는 이 책을 벗님한테 건네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일찌감치 읽었기에 벗님도 읽으라고 건넸는데, 이날 헌책방 ㅅ에서 만난 《삶과 믿음의 교실》에는 이오덕 님이 누군가한테 선물한 자국이 있었다. 이오덕 님 손글씨를 보고는 내가 이 책을 가졌으면 하고 아주 살짝 생각했으나, 머잖아 다른 데에서 또 보겠지 하고 느꼈다.


  ㄱ대학교 사범대학 다니는 벗은 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이무렵 나도 대학생이기는 했으나, 내가 다니던 대학교와 학과에서는 학문을 제대로 안 가르쳤다. 베껴쓰기 숙제와 줄서기 학점과 훔쳐보기 시험이 판쳤다. 진절머리나는 모습을 보며 대학교를 더 못 다니겠다고, 아니면 다른 학교나 학과로 옮겨야겠다고 한창 골이 아프던 때에, 아이들한테 빛과 꿈이 되는 길을 걷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벗님이 참 멋스럽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와 학과와 동아리에서는 ‘함께 책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다. 학교도서관에서든, 학교 앞 인문사회과확책방에서든, 학교 둘레 헌책방에서든, 즐겁게 책을 장만해서 읽고는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눈빛 밝힐 책벗이 없었다.


  내 대학살이는 2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에 가면서 거의 끝을 맞이한다. 그러나 2학년에 접어든 뒤에는 신문배달을 하며 밥벌이를 하고, 도서관하고 구내서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느라 후배들 얼굴 볼 겨를을 내지 못했다. 하루가 저물면 다들 술집으로 떠날 뿐, 같이 책방마실을 할 벗은 없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보내고 대학교로 돌아와서도 달라지는 일은 없다. 내 나이가 늘고, 복학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벗이나 책방마실 다닐 벗은 없다. 후배들은 한 번쯤 나한테 붙들려 책방마실을 억지로 끌려오기는 하지만, 두 번이나 세 번 붙들리지는 않는다. 술집이나 당구장으로 데려가는 선배를 좋아할 뿐이다.


  이런 곳에서는 견딜 수 없어 대자보를 여러 장 써서 게시판에 붙인 뒤 자퇴를 했다. 내가 쓴 대자보는 한나절이 못 되어 누군가 북북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네 하고 느끼니 외려 후련하기도 했다. 자퇴를 하겠다는 나를 두고 하나같이 ‘취업’을 걱정해 주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한다. 그래, 우리는 서로 길이 다르고 삶이 다른데, 어쩌다가 한울타리에 있었을 뿐이야.


  내 길을 찾아 신문배달 자전거를 달리다가, 책마을에 깃들었고, 책마을에서도 슬픈 모습을 많이 겪으며, 또 혼자 동떨어져 지낸다. 이동안 가끔 ㄱ대학교 다니던 벗님이 떠올랐지만, 연락처를 알 길이 없었다. 어디에선가 잘 지내며 아이들 예쁘게 가르치는 길을 걷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러구러 삶이 흐르고 흘러 2013년 12월 1일, ‘그림책 읽는 엄마’ 누리모임에서 오랜 벗님을 다시 만난다. 두 아이 어머니요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두 아이 아버지요 새로운 한국말사전 엮는 일을 하니까, 이녁이나 나나 이럭저럭 대견한 나날 누리는 셈일까.


  거의 스무 해쯤 다리를 건너며 만난 벗한테 책꾸러미를 보낸다. 스무 해쯤? 글쎄, 스무 해라 해 보았자 스무 해뿐이리라 느낀다. 서른 해 지나서 마주쳤든, 마흔 해 지나서 만났든, 대수롭지 않다고 느낀다.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누린다면, 언제 보아도 푸른 넋과 빛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고 느낀다.


  누구나 예나 이제나 같다. 겉모습이 바뀌고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기는 하지만, 누구나 예나 이제나 같다. 갓 태어나 앳되며 사랑스러운 하느님 같은 모습인 채 스무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며 예순 살 여든 살이 된다. 벗이 ㄱ대학교 언저리, 또는 서울에서 지낸다면 보문동 막걸리를 한잔 얻어마시고 싶지만, 수원에서 지낸다 하니 수원 나들이를 하면서 남문 둘레 책방마실도 할 수 있기를 손꼽아 본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헌책방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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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0:57   좋아요 0 | URL
참으로 기쁘고 반가우셨겠어요~!^^
스무 해 전에, 반갑고 기쁜 '좋은 씨앗'을 마음에 품으셨던 분들이
다시금 서로서로 대견한 나날을 누리시다 만나셨군요~*^^*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누린다면, 언제 보아도 푸른 넋과 빛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고 느낀다.'-

마지막글에 '누구나~여든 살이 된다' 귀절이 뭉클합니다.
언제 보문동 막걸리,도 마시고 싶구요~^^;;;

언제나 삶으로 쓰시는 마음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파란놀 2013-12-04 07:13   좋아요 0 | URL
이렇게 즐겁게 읽어 주시는 이웃님 있으니
저도 늘 새롭게 기운을 내요~

transient-guest 2013-12-04 03:32   좋아요 0 | URL
젊은 나이에 또래와는 다르게 좀더 깊은 실존적인 고민을 하신 것 같아요. 같은 것을 나누고 즐길 수 있는 벗은 흔하지 않지요. 아주 친한 친구가 몇 있지만, 저도 책사랑은 함께 나누지 못해요.ㅎ

파란놀 2013-12-04 07:13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책사랑 나눌 수 있는 벗이란
아주 대단하며 아름다운 삶지기이지 싶어요..
 

가계부 글쓰기

 


  가계부를 쓰려고 했지만 이제껏 모두 두 손 들었다. 가계부 쓰기가 힘들어서 두 손을 들었다기보다, 가계부를 쓰는 데에 품과 겨를을 들이지 못했다. 가계부를 꼼꼼히 쓰자면 품과 겨를을 많이 들여야 한다. 섣불리 쓸 수는 없다.


  곰곰이 돌아본다. 가계부를 쓰는 만큼 살림을 알뜰살뜰 여밀 수 있다. 꼼꼼하게 쓰고 차근차근 살피는 만큼, 척척 이것저것 떠올릴 수 있다. 가계부에는 들고 나는 돈만 적지 않는다. 그동안 무엇을 장만했고, 어떤 밥을 차렸는가 하는 그림이 환하게 나온다. 저자마실을 하면서 무엇을 장만했는지 하나하나 읽기만 하더라도, 아하 이날 이렇게 밥을 차렸구나 하고 읽을 수 있다. 이러면서, 저번에는 이렇게 했으니 오늘은 저렇게 할까 하고 생각을 잇는다.


  읍내로 저자마실 나오면서 문득 가계부를 생각한다. 내 삶이 가계부를 쓰기 좀 벅차다면, 다르게 무언가 적자고 생각한다. 글공책을 꺼낸다. 오늘 저자마실을 하며 할 일을 적고, 무엇을 사야 하는가를 적는다. 읍내에서 군내버스를 내려 이 가게 저 가게 들르면서 글공책을 꺼내어 동그라미를 그린다. 하기로 한 일을 마치니 동그라미이다. 아무래도 오늘 못 하겠구나 싶으면 줄을 죽죽 긋는다. 글공책에 적지 않았으나 장만한 무언가 있으면 새로 적어 넣고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에 어머니는 늘 쪽종이에 이것저것 적어서 심부름을 보냈다. 귀로만 듣고 심부름을 나서면 꼭 한 가지를 빠뜨리곤 한다. 쪽종이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고르면 한결 빠르게 고를 뿐 아니라 빠뜨리는 일이 없다. 어머니도 쪽종이에 안 적고 저자마실을 나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차, 그것 안 샀네.’ 하면서 무릎을 친다. 버스를 타고 저자마실을 나왔으면 돌아가서 사지 못하지만, 동네 가게에서 빠뜨린 무언가 있으면 집앞까지 왔다가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려가서 사온다.


  그랬구나. 어릴 적에 어머니하고 그렇게 저자마실을 다녔구나. 우리 아이들도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 아버지 곁에서 할머니하고 아버지가 어린 나날 어떻게 저자마실 다녔는지 살며시 그릴 수 있겠지.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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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달려와

 


  마실을 다녀오며 한껏 즐거운 산들보라 모자 뒤집어쓰고는 손을 뻗으며 달려온다. 손, 손, 손을 달라 하는데 살살 잡힐 듯 말 듯 떨어지면서 부른다. 얼른 달려서 이리 오면 잡지. 힘껏 달려서 이리 와서 잡아야지. 콩콩콩 다리힘을 붙여라.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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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1:02   좋아요 0 | URL
아유! ~~우리 노란돌이 산들보라 웃는 모습에
제 마음이 다 환해집니다~*^^*

파란놀 2013-12-04 07: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얼굴 보면서 날마다 삶빛 얻어요~
 

오리 구경 어린이

 


  이웃마을 어느 집에서 오리를 키운다. 오리들은 도랑물에서 지낸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서재도서관에 들르는 길에, 큰아이는 어김없이 “나, 오리 보고 가야지!” 하고 말한다. 아마, 오리가 물놀이 하는 모습 하루 내내 지켜보아도 심심할 일 없으리라. 추위도 타지 않고 씩씩하게 후박나무 밑에 앉아 오리를 바라본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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