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는 글쓰기

 


  고흥 떠난 시외버스가 세 시간쯤 달려 비로소 충청도 신나게 달릴 무렵, 살며시 눈을 감고 걸상에 폭 기댄다. 버스 엔진과 바퀴 소리 새삼스레 시끄럽다고 느낀다. 귀를 막아 볼까. 손ㄱ사락 하나씩 두 귀를 막는다. 어라, 꽤 조용하네. 귀에 꽂는 솜 있으면 챙겨야겠구나. 그런데, 이런 버스를 하루 내내 몰아야 하는 일꾼은 어떨까. 이녁들은 늘 온몸이 덜덜 떨리며 이 시끄러운 소리 먹어야 하는데. 스스로 소리와 떨림을 느끼지 못할 만큼 무디어지려나. 버스를 몰거나 자가용이나 택시나 짐차를 모는 동안, 책을 읽지도 못하겠지만 글을 못 쓰겠구나.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밖에 없겠구나.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기 어렵고, 싱싱 달리는 차에서 다른 데에 눈길을 두지 못하겠구나. 가을빛이 창밖으로 흐드러져도, 눈송이가 펄펄 날려도, 봄비가 촉촉히 내려도, 여름숲 푸르게 우거져도, 자동차를 모는 이들뿐 아니라 자동차를 함께 타는 이들은 둘레 삶빛에 눈을 뜨거나 귀를 열 수 없구나.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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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엄청난

 


  곁님이 어느 날부터 나더러 스스로 마음속으로 이야기하고 입으로 말하라는 다짐이 있다.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 처음 이 다짐을 들은 날에는 시큰둥했다. 나는 ‘부자’가 될 마음이 이때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짐을 그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스로 “언제나 엄청난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서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없구나 싶다. 말을 살짝 바꾸어, “나는 언제나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즐겁게 쓴다.”처럼 다짐을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이다.”처럼 다짐을 해도 된다.


  이렇게 깨달은 날부터 우리 곁님이 들려준 말대로, 맨 처음에는 “나는 언제나 엄청난 부자이다.”라는 다짐을 스스로 말하고, “나는 언제나 엄청난 사랑이다.”라는 다짐을 이어서 말하며, “나는 언제나 엄청난 빛이다.”라는 다짐을 곧바로 말해 본다. 이렇게 스스로 말하면 참말 스스로 즐겁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즐겁게 장만한다. 책값이 주머니에 없으면? 가슴으로 책을 담으면 되지. 책은 책시렁에 둔대서 마음으로 스며들지 않으니. 책은 언제나 가슴으로 읽어 담을 때에 책이니. 4346.1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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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싱그러운 숲으로
서로 손 맞잡고
천천히 걸어가자.

 

한 손에는 호미 들고
한 손에는 바구니 들어
콕콕 천천히
그득그득 풀내음 담아

 

냇물 긷고 아궁이 불 지펴
도란도란 마주앉아
풀밥 나누어 먹고
풀노래 함께 부르자.

 


4346.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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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월 끝날에 충남 서천여고에 찾아가서

그곳 푸름이와 나눈 이야기입니다.

 

..

 

말넋 19. 아름답게 빛나는 말이란
― 시골말로 이루는 한국문학

 


  1:2,100,000 축적인 길그림을 들여다보면, 충청남도 서천군에 ‘서천읍·장항·개야도·성의·판교·죽도·연도·어청도’까지 나옵니다. 1:75,000 축적인 길그림책을 펼쳐 충청남도 서천군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두툼한 길그림책에는 ‘가르메·고산메·안산넘얼·막굴·북척메·서내바지교·싸름매·시루굴·섭실·수랑골·궁골·관돌·까치고개·개복다리·낭골·큰낭골·냄배·강성구레·시른개·모가울·밭가운데·구수내골·새터·탑시·갈태·원뫼·솜부리시·건드래·칡더굴·부래이골·싸리뫼·윗뜸·가루골·가리골·방죽건너’ 같은 이름이 줄줄이 나옵니다. 마을이름이 재미있구나 싶어 자꾸 길그림책을 들여다봅니다. 문득 궁금해서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자리도 길그림책으로 살핍니다. ‘큰뜸·가는골·땅골고개·가드릿재·송곳산·마파지·동굴섬·샛여·더터굴재·닭섬·솔개재·솔바위고개’ 같은 이름을 봅니다. 이 이름들은 언제 누가 지었을까요. 이런 이름은 무엇을 떠올리며 지었을까요.


  ‘닭섬’이라면 닭을 닮은 섬이라서 닭섬일까요. 그러면 ‘닭’이라는 이름과 ‘섬’이라는 이름은 누가 어떻게 처음 지은 말일까요. ‘새터’는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보는 마을이름입니다. 새로 일군 터, 곧 새로 일군 마을, 그러니까 ‘새마을’과 같은 뜻으로 쓰는 새터예요. 그러면 ‘새(새롭다)’와 ‘터’라는 이름은 누가 어떻게 처음 지은 말일까요. ‘솜부리시’ 같은 마을이름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충남 서천말로 서천사람이 빚은 이름일 테지요. ‘냄배’나 ‘시른개’나 ‘모가울’ 같은 마을이름은 또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이와 같은 마을이름은 어떤 사랑을 담아서 처음 지었을까요. 이러한 마을이름은 어떤 마음으로 처음 붙여서 가리켰을까요.


  ‘마을’은 사람들 살림집이 조그맣게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킵니다. ‘고을’은 마을이 여럿 모여 이루어진 삶터를 가리켜요. ‘서라벌·달구벌·새벌·황산벌’ 같은 땅이름에 나타나는 ‘-벌’은 퍽 크게 이루어진 고을을 가리킵니다. 이때에도 ‘마을·고을·벌’ 같은 낱말을 얼마나 오랜 옛날 옛적에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지었는지 궁금해요.


  ‘사투리’는 어느 한 곳에서 쓰는 말을 가리킵니다. 어느 고장에서 쓰는 말이라면 ‘고장말’입니다. 고을에서 쓰는 말이라면 ‘고을말’일 테고, 마을에서 쓰는 말이라면 ‘마을말’이에요. 마을에서도 어느 집에서만 쓰는 말이라면 ‘집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갈무리하면, 가장 작은 테두리에서 쓰는 말은 ‘집말’입니다. 나를 낳고 돌보는 어버이가 쓰면서 나한테 물려주는 말이 ‘집말’입니다. 집말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면서 여러 집말이 섞여 ‘마을말’이 이루어집니다. 마을과 마을을 여럿 아울러 커다란 고을을 살필 적에는 ‘고을말’이 될 테지요. 다른 고을에서 온 사람이라면 고을말을 느낄 텐데, 요즈음으로 치자면 면내나 읍내쯤에서 쓰는 말이 고을말입니다. ‘고장말’이라면 충청도·전라도·경상도·경기도처럼 더 큰 테두리에서 가리키는 말이에요. ‘사투리’는 집말부터 고장말까지 모두 아울러요.


  서울에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충청도로 접어들면 남다르다 싶은 고장말을 느낍니다. 수원이나 파주에서 태어나 살던 사람이 서울로 나들이를 갈 적에도 남다르다 싶은 고장말을 느껴요. 그런데, 오늘날 서울에서는 구나 동마다 다른 고을말이나 마을말은 사라졌어요. 신림동이나 효자동에 깃든 살림집마다 다 달리 쓰는 집말도 사라졌어요. 텔레비전이 시골까지 퍼지며 오늘날 시골에서도 고장말이나 고을말이나 마을말이나 집말은 거의 사라졌다 할 만하지만, 아직 정갈하게 머리카락을 빗어 비녀를 꽂는 시골 할매가 있는 만큼, 오래된 집말과 마을말을 두멧시골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서천사람한테는 어떤 서천말이 남았을까요. 서천군 마서면에서 살아가는 마서사람한테는 어떤 마서말이 남았을까요.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에서 살아가는 송석사람한테는 어떤 송석말이 남았을까요. 서천군 마서면 송석리 골뫼마을에서 살아가는 골뫼사람한테는 어떤 골뫼말이 남았을까요.

 

  동화책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 님은 경상도 안동 시골마을 사람들 말투를 더듬으며 《한티재 하늘》이라는 이야기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책 《한티재 마을》에 나오는 시골말은 경상말이요 안동말이며 더 깊이 파고들어 조그마한 마을 ‘한티재사람’들이 쓰던 ‘한티재말’이에요.


  우리는 흔히 한국말로 문학을 한다고 일컫는데, 한국사람이 빚어서 나누는 한국문학에서 쓰는 한국말이란 어떤 한국말일까요. 표준 한국말일까요. 서울사람이라면 표준 한국말이 된 서울말로 한국문학을 할 만할 텐데, 인천사람이나 부산사람도 서울말로 한국문학을 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인천사람은 인천말을 찾고, 부산사람은 부산말을 찾아 한국문학을 밝힐 때에 한결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고흥말로 한국문학을 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충남 서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서천말로 한국문학을 할 때에 아름답겠지요. 문학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도 모두 고장말로, 마을말로, 집말로, 시골말로, 사투리로 꽃피울 적에 한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문구 님이나 이청준 님이나 박영한 님이나 조정래 님이나 박완서 님이나 박경리 님이나 ‘표준 서울말’로 이녁 문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녁이 태어나 자란 ‘마을에서 쓰던 말’과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말’로 문학을 했어요.


  오늘날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말로 문학을 하는 셈일까요. 아니면,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말로 문학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대학교나 문학강좌에서 들려주는 말로 문학을 하는 노릇일까요.

 

  누구나 이녁 보금자리에서 삶을 일굽니다. 삶을 일구면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샘솟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노래하면서 말이 태어납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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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3 11:47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글을 올려 주셔서 또
충남 서천여고 푸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들었을
좋은 '말넋'을 함께 듣는군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12-04 07:19   좋아요 0 | URL
시골 아이들이 곧 시골 떠나 도시로 가더라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보람'을
꿋꿋하고 씩씩하게 건사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어요~
 

꽃아이 24. 2013.11.18.

 


  벼리야, 제비꽃 생각나니? 이 아이는 제비꽃이 지고 난 뒤 맺은 씨앗이야. 제비꽃은 봄에 피지만, 가을에도 햇볕이 따사로우니 한 번 더 피어. 제비꽃 씨주머니는 이렇게 세 갈래로 벌어져서 깨알보다 훨씬 작은 조그마한 동글동글이 맺히고는, 어느새 톡톡 터지듯이 퍼져. 우리 집 둘레는 제비꽃밭이 되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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