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어 주는 사람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 있어, 새롭게 생각을 가다듬거나 추스른다. 나 또한 누군가한테 말을 건다면, 나한테서 말을 듣는 사람은 이녁대로 생각을 가다듬거나 추스를 수 있으리라. 한집에서 살아가는 곁님과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와 똑같다. 짤막한 한 마디라도 궁금한 무언가를 떠올리며 살며시 건네는 한 마디가 서로서로 생각을 새롭게 가다듬거나 추스르도록 돕는 빛이 된다. 이를테면, “벼리야, 하늘이 왜 파랄까?”라든지 “보라야, 오늘 먹은 밥은 무슨 맛이야?” 하고 묻는 한 마디가 아이들 생각을 틔운다. 도시에서 흐르는 바람과 시골에서 흐르는 바람은 어떻게 다를까 하고 스스로 물을 적에, 시골집에서 지내는 삶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고 스스로 돌아볼 적에,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고 빛을 얻는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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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 이제부터 찍어요

 


  인천에서 지내는 형네 집에서 하루를 묵고는, 바깥일 하러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사진강좌 나가면서 사진찍기를 배운다면서, 내 가방이며 차림새이며 무언가 ‘사진하는’ 사람 같아 말을 건다고 한다. 이녁은 나라밖 발리섬에서 살다가 한국에 왔다고, 낯선 누군가한테 말을 거는 일이 아무렇지 않다고도 한다. 예전에 발리섬에 살 적에는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가, 사진을 막상 배우고 보니 지난날에 그곳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찍지 않은 일이 아쉽다고, 뉘우친다고 한다. 빙그레 웃으면서 이녁한테 이야기한다. “아쉽고 뉘우친다고 하면, 그곳에 다시 가서 찍으면 돼요. 못 간다고 생각하니까 못 가요. 여러 해 돈을 모아서 가도 되고, 그냥 가도 돼요.” 아침에 형네 집에서 나와 전철역까지 걸어오는 사이에 찍은 골목꽃 사진을 보여준다. “무슨 꽃인 줄 알겠어요? 부추꽃이에요. 이 겨울에도 골목집 꽃그릇에 부추꽃이 피었어요. 이 꽃이 씨앗을 맺고 이 둘레에 떨어지면 이듬해에 푸른 부추잎 새로 돋아 신나게 뜯어먹을 수 있어요. 사진이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이런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좋아하고 즐기면 모두 사진이 되어요.”

 

  돈 때문에 못 하는 일이 있을까? 아무래도 돈이 없어 값진 사진장비를 못 갖춘다고도 할 테지만, 돈 때문에 못 하는 일이란 없다고 느낀다. 값진 사진장비를 갖추고 싶으면, 어버이한테서 돈을 빌거나 스스로 여러 해 돈을 모으면 된다. 은행에서 돈을 빌어서라도 값진 사진장비를 갖출 노릇이다. 돈을 핑계로 삼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나한테 말을 붙인 분도 방을 빼거나 무언가 내다 팔아서 발리섬 찾아갈 돈을 마련하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찍고 싶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사진찍기란 그럴듯한 그림그리기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그럴싸한 모습을 종이에 옮기지 않는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그림을 그린다. 스스로 글을 쓰고 싶으니 글을 쓴다. 스스로 찍고 싶어야 사진을 찍는다.

 

  무언가 알아보아야 찍는 사진이 아니다. 빛이나 구도나 황금분할 따위 모른대서 사진 못 찍지 않는다. 1회용사진기를 쓴다 한들, 가장 값싼 디지털사진기 쓴다 한들, 무엇이 대수로우랴. 어떤 사진기로도 사진을 찍으면 즐겁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든, 글을 쓰겠다고 하든,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든, 먼저 이녁 삶을 스스로 가장 누리고 싶은 하루로 일구어야 한다. 날마다 스스로 가장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내 앞에 드리우는 모든 모습이 ‘사진으로 담아 빛낼 이야기’ 된다. 일본사람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골목길을 한 시간만 걸어다니면 사진책 하나 만들 수 있다 말하는데, 한 시간 아닌 십 분만 걸어도 사진책 하나 묶을 만큼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사진찍기나, 모두 마음에 얽힌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 삶을 즐기는 마음,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 이 마음으로 글과 그림과 사진을 빚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찍으면 된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찍으면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내가 가고픈 길을 천천히 찾을 수 있고, 내가 누리고픈 삶을 천천히 깨달을 수 있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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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추꽃이, 눈꽃같기도 하고 별꽃같기도 합니다!^^
이 부추꽃을 보며 마음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참 좋네요~
그런데 이런 부추꽃을 찬찬히 즐겁게 살피며 사진으로 담으신
고운 눈길이 없으셨다면 또 이러한 즐거움도 없었겠지요~*^^*

파란놀 2013-12-05 21:10   좋아요 0 | URL
부추꽃이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손수 기르더라도 꽃이 피도록 두지 않고
늘 다 먹기만 하시니까요.

그런데, 부추꽃을 한 번 보신 분들은
꽃이 피도록 몇 줄기는 남기셔요.
그러고는 이렇게 9월부터, 자그마치 12월까지도!
흰꽃잔치를 누리시지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숲에서 나무와 벗삼는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만화지기 박재동 님은 그야말로 만화가 가장 좋다 말한다. 아마, 만화를 그리다 보면 밥 먹을 생각조차 잊으리라 본다. 나도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다 보면, 밥때를 쉬 지나치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 돌보는 어버이로 지내니, 밥때를 놓칠 수 없다. 나 혼자라면 밥때를 지나치지만, 곁에 아이들 있으니, 밥때에는 모든 일 내려놓고 밥을 짓는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이들도, 아무리 흙과 풀과 나무가 좋더라도 밥때가 되면 으레 밥을 짓고 차려서 즐겁게 누린다. 그러면, 밥을 잊을 만큼 만화나 글이나 춤이나 노래나 영화나 여러 가지에 폭 빠지는 사람은 바보일까? 아니다. 아니라고 본다. 몸이 힘들지 않고 고단하지 않으며 지치지 않는 새 기운 샘솟도록 하니, 만화가 밥보다 더 좋을 수 있다. 아니지, 만화를 그리면서 저절로 기운이 샘솟는다면 밥을 차리거나 먹지 않아도 배부른 만큼, 삶이 아름답게 빛난다고 해야 할까. 눈망을 빛내고 삶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우리들이 저마다 즐겁게 할 일이라고 해야 할까. 4346.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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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이영옥 지음, 박재동 그림 / 산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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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만화- 그림쟁이 박재동이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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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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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0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밥보다 책이 더 좋아요~ ㅎㅎ

파란놀 2013-12-05 21:07   좋아요 0 | URL
저런!
그래도 밥 잘 챙겨 드셔요~ ^^
 

[함께 살아가는 말 181] 한국말사전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제에 쓰던 말을 애써 떠올려야 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곧잘 어제에 쓰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되새겨 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1800년대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같은 일본 한자말을 썼을까요? 1500년대 사람들은 이런 일본 한자말을 썼을까요? 신문도 방송도 따로 들어오지 않던 1960∼70년대 시골에서 이런 한자말 쓰던 사람 있었을까요? 어제를 살던 사람과 시골서 살던 사람이라면 모두 ‘고맙습니다’ 하고만 말했으리라 느껴요.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까 궁금합니다. 이냥저냥 쓰는 말을 아이한테 물려줄는지, 앞으로 삶을 빛내고 사랑을 꽃피우도록 북돋울 만한 말을 아이한테 물려줄는지 궁금합니다. 어느덧 스무 해가 되는 일인데, 1995년 8월 11일부터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었어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찌꺼기를 털자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해 참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낱말을 버젓이 써요.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과목은 ‘국어’예요. 한국말 아닌 ‘국어’ 교과서에, ‘국어’사전이에요.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겁게 나눌 우리들 어제를 밝히던 말은 스러지면서, 얄궂거나 슬프거나 아프게 짓밟히던 우리들 어제가 드러나는 말은 외려 단단히 뿌리내려요. 우리 말은 어떤 이름을 붙인 사전에 담아야 할까요. 우리 삶은 어떤 낱말과 말투로 엮는 이야기로 살찌워야 할까요. 우리 꿈은 어떤 사랑으로 빛내어 어깨동무해야 할까요.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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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도 겨울눈 책읽기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글문화연대로 찾아간다. 서울시에서 공문서와 보도자료에 쓰는 말이 얼마나 올바른가를 살펴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일감을 맡겼다고 해서, 이 일을 함께 하기로 했다. 뜻있는 여러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이 일감을 맡아 해야 할까 생각한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낮밥을 먹기로 한다. 사무실에서 나와 밥집으로 가는 길에 두리번두리번 돌아본다. 이 둘레에 어떤 나무들 어떻게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잎이 안 진 나무가 있지만, 웬만한 나무는 모두 잎이 졌다.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잎 한두 닢 달랑달랑 남기도 하지만, 거의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덩그러니 있다. 그런데, 잎 모두 진 은행나무이건, 목련이건, 겨울눈 앙증맞게 있다. 너희는 잎을 떨구면서 벌써 겨울눈을 품었니? 사람들은 아마 너희를 ‘앙상한 나무’라 말할는지 모르지만, 앙상하다는 겨울나무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아. 누구보다 먼저 잎을 떨구는 대추나무에도 겨울눈 그득하던걸.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에도, 감나무와 매화나무에도 온통 겨울눈 그득하던걸. 나란히 걷던 한 분한테 “저기 나무 좀 보셔요. 잎 떨군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겨울눈이 가득가득 맺혔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살거나 일하는 이들도 둘레에서 씩씩하게 뿌리내리며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이 나무들을 살며시 보듬거나 얼싸안아 주기를 빈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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