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볼일 보러 가는 길에 만날 분을 헤아리며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를 또 장만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지내는 분한테 잘 걸맞겠다 싶기도 하고, 우리들 살아갈 길을 곱게 비추는 이 그림책을 곁에 두면서 사랑스러운 빛을 가슴으로 품을 만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 그림책을 선물해 주려고 했던 분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 그림책을 드리지 못한다. 시골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어라 가방에 이 그림책 그대로 있네, 하고 깨닫는다. 나중에 우편으로 부쳐야겠다고 생각한다. 편지 한 통 적어서 새해 선물로 부치면 되겠지. 어떻게 일구는 삶일 때에 스스로 빛나고, 어떻게 가꾸는 사랑일 때에 저절로 환한가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들려주는 《미스 럼피우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빛을 밝힌다. 4346.1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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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럼피우스
바버러 쿠니 글, 그림 |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2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13년 12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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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줍기

 


  시골에서는 길을 걷다가 볼펜 주울 일이 없다. 도시로 마실을 갈 적에는 곧잘 길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보곤 한다. 저 볼펜 누가 떨어뜨렸을까, 저 볼펜 왜 떨어졌을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걸음을 멈춘다. 값비싼 만년필이 아니고서는 볼펜을 찾으러 길을 돌아올 사람이 없으리라 본다. 도시에서는 오토바이나 자동차뿐 아니라, 길바닥 안 보고 걷는 사람들이 밟아서 볼펜이 망가질 테니, 으레 볼펜줍기를 한다.


  내가 글 쓰는 일 안 했더라도 볼펜줍기를 했을까, 하고 돌아본다. 중학생 적에도 국민학생 적에도 으레 볼펜줍기를 했으니, 또 연필줍기도 했으니, 글쓰기와는 얽히지 않겠지. 아주 짧고 닳은 몽당연필이더라도, 길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연필을 지나치지 못했다. 짜리몽땅한 연필은 빈 볼펜대에 끼워서 쓰면 되기도 하고, 저렇게 닳고 짤아질 때까지 사랑받던 손길을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없기도 하다.


  형이 살아가는 인천 골목집에서 잘 묵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골목집 문간에 볼펜 하나 덩그러니 있다. 누가 떨구었을까. 가방이 무겁지만 살살 쪼그려앉아서 줍는다. 너 어쩌다 여기 떨어졌니, 하고는 공책에 슥슥 그어 본다. 안 나온다. 응? 아, 다 쓴 볼펜인가 보구나. 다 썼기에 이렇게 누군가 길바닥에 던져 버렸나 보구나.


  다 쓴 볼펜을 주운 셈이네,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면 이 볼펜을 다시 내려놓아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차마 길바닥에 내려놓지 못한다. 내 손에 있으면 빈 볼펜이더라도 볼펜이지만, 길바닥에 놓이면 쓰레기가 된다. 쓰레기통에 넣어도 쓰레기 된다. 시골집 우리 서재도서관 책꽂이 한켠에 놓을까. 그러면 이 빈 볼펜 이제껏 사랑받으며 살아온 나날 조용히 쉴 만할까. 앞가방 주머니에 빈 볼펜 꽂는다. 4346.1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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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각
― 길빛

 


뚜벅뚜벅 걷다가 문득 선다.
목에 건 사진기 켜서
찰칵 찍는다.

 

고개를 살며시 돌리고
조용히 쪼그려앉아서
찰칵 찍는다.

 

살아가는 곳에서 사랑하고
사랑하는 곳에서 마주한다.
마주하는 데에서 눈 밝히고
눈 밝히는 데에서 웃다가

 

이야기 한 톨
생각 두 톨
노래 석 톨.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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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순 볕

 


손 시리면
시린 대로
조물조물

 

기저귀 빨다가
자그마한 저고리 바지 치마
차근차근 빨다가
걸레를 빨고 이불을 빨며

 

따순 볕
저 멧등성이 위로
빼꼼 고개 내밀기를
호호 기다린다.

 


4346.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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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과 선물과 겨울

 


  곁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기도 일산 구산동에서 지내신다. 겨울도 한 발 먼저 찾아드는 곳이라 할 텐데, 일산에 그득한 아파트 아닌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방에서 지내신다. 얼마 앞서 닥친 추위에 그만 난방조차 못 하고 얼음방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내가 서울로 바깥일 나올 적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곁님이 두툼한 매트와 침낭과 천막을 주문해서 일산에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 얘기했고, 곁님은 이것저것 꾸려서 부친다. 매트랑 침낭이랑 천막 값으로 칠십만 원쯤 들었단다. 우리 집 은행계좌에는 사십만 원쯤 있으니 이달 카드값 채우려면 빠듯하겠네 싶지만, 카드값이란 어떻게 해서든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겨울 추위는 하루 빨리 무언가 마련해야 할 일이다. 곁님 말을 듣고는 카드값을 비롯해 우리 집 기름값 벌 만한 일거리 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바깥일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외버스에서 한 시간쯤 들여 그림책 원고를 하나 쓴다. 새봄 맞이한 지난날 시골마을 이야기가 술술 샘솟아 한 시간쯤 들여 찬찬히 공책에 적었다.


  서울에서 낮 두 시 사십 분에 떠난 시외버스는 고흥 읍내에 저녁 일곱 시에 닿는다. 마을로 들어가는 마지막 군내버스는 여덟 시 반에 있지만, 읍내 언저리에서 한 시간 반이나 헤맬 수 없는 터라 택시를 불러서 들어간다. 시골집에 닿으니 작은아이는 잠들었고, 큰아이는 펄펄 뛰며 노는데, 일산에서 장모님이 김치랑 떡을 보내셨단다. 아이고, 일산집은 추위에 힘들 텐데 무슨 돈이 있어 이렇게 보내시나. 사위가 생일이라며 떡을 보내셨다는데, 나이 마흔에 선물이 뭐 대수로운가. 그저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하지요.


  그러고 보니, 12월 7일 내가 태어난 날이 이제 하루 앞이로구나. 열 몇 해 동안 쓰던 011번호를 이제 더 쓸 수 없어 010번호로 바꾸었다. 마침 우리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새 번호 알리기도 해야 해서 전화를 건다. 나를 낳아 주어 고맙다는 인사는 쑥스러워 못하고, 음성 시골집 물 얼지 않았느냐고만 여쭙고 끊는다.


  일산 할머니가 김치랑 떡을 보낸 까닭이 ‘내 생일 선물’이라고 곁님이 아이들한테 말하니, 여섯 살 큰아이가 “생일은 내 생일이 예전이었는데 왜 아버지 생일 선물이야?” 하고 묻는다. 얘야, 얘야, 너만 태어나지 않았잖니. 너는 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고, 네 어머니랑 아버지는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 음, 여섯 살이면 아직 잘 모를 만한가. “예전에 내 생일에 떡 먹었는데.” 하고 말하는 큰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녀석들 저녁 열 시가 가까운데 잘 생각을 않는다. 불을 다 끄고 드러누워 조곤조곤 나긋나긋 자장노래 부르면 자려나. 그나저나 올해 내 생일인 대설 절기에 날이 포근할 듯하네. 일산에 계신 장모님과 장인어른 추위에 힘드실 텐데, 참 고마운 날씨이다. 4346.1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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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부모 삶을 떠올리게 하는 책들 몇 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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