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오는 아이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어제 못 마친 일을 한다. 서울시에서 마련한 공문서 1100건을 놓고 이 글에 쓴 잘못되거나 아쉽거나 바로잡을 말을 손질하는 일을 두 사람이서 맡아 하는데, 어제는 아이들과 복닥이며 제대로 못했다. 아침에 어제 몫 보내야 하기에 바지런히 책상맡에 앉는데 다섯 시 즈음 큰아이가 잠에서 깨어 아버지 곁에 붙는다. 아무래도 안 좋은 꿈을 꾼 듯하다. 하는 수 없이 셈틀을 끄고 큰아이를 잠자리에 누인 뒤 옆에 나란히 눕는다. 큰아이를 달래면서 등허리를 펴다가 나도 깜빡 잠든다. 살살 동이 틀 무렵 조용히 일어난다. 다시 셈틀을 켜고 일을 하려니, 이제는 작은아이가 잠을 실컷 자고 일어난다. 작은아이 쉬를 누인다. 작은아이는 잠을 달게 자고 일어난 만큼 아버지 곁에 달라붙지 않는다. 일손을 마저 놀린다. 어제 몫은 곧 끝내고 보낸다. 이제 오늘 몫 해야 하겠지. 조금 뒤 큰아이 깨면 둘 다 배고프다 할 테니, 조금 더 일을 한 뒤 아침을 차려야겠다. 하나를 재우면 다른 하나 깨고, 다른 하나 놀려서 재우면 또 다른 하나가 깨고, 이러기를 세 해째 되풀이하니 늘 잠이 모자란데, 작은아이가 몇 살 더 자라면, 이런 일도 앞으로는 누리지 못할 즐거움이 될까. 4346.12.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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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레놀이 1

 


  곁님 뜨개실을 집에서 서재도서관으로 옮긴다. 집을 넓게 쓰려고 뜨개질 담은 상자를 여러 차례 나른다. 아이들은 서재도서관에 뜨개실 상자를 내리고 빈 수레가 되면 척척 올라탄다. 처음에는 저희가 수레를 끌겠다며 용을 쓰지만 꼼짝조차 안 한다. 힘을 더 길러야지. 그런 힘으로 어떻게 끌겠니. 그저 수레 뒷자리에 잘 타면서 놀아라. 4346.12.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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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놀이 1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며 놀다가, 발가락에도 색연필 끼우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해 보나. 그럴 테지. 나도 어릴 적에 발가락에 연필을 끼우고 그림놀이를 했으니. 아이라면 참말 손가락 못지않게 발가락을 써서 꼼지락꼼지락 무언가 하고 싶으리라 본다. 재미있으니까. 4346.12.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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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755) 침묵의 1 : 침묵의 추수

 

침묵의 추수였다 … 그들이 든 낫이 햇빛이 반짝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노래하지 않았다
《민퐁 호/최재경 옮김-아버지의 쌀알》(달리,2009) 17쪽

 

  ‘추수(秋收)’는 ‘가을걷이’로 고쳐씁니다. 한자말 ‘추수’는 그예 토박이말 ‘가을걷이’를 한자로 옮긴 낱말일 뿐입니다. 토박이말 ‘한가위’를 한자로 옮겨 ‘중추절(仲秋節)’이나 ‘추석(秋夕)’으로 적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자말 ‘침묵(沈默)’은 “(1)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음 (2) 정적(靜寂)이 흐름 (3) 어떤 일에 대하여 그 내용을 밝히지 아니하거나 비밀을 지킴 (4) 일의 진행 상태나 기계 따위가 멈춤”, 이렇게 네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째 뜻풀이에 나오는 ‘정적(靜寂)’은 한국말로 ‘고요’를 뜻해요. 셋째 뜻풀이는 “입을 다물다”를 가리키고, 넷째 뜻풀이는 “잠”이나 “멈춤”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말이 없다”와 “고요하다”와 “입을 다물다”와 “잠자다/멈추다”라 말할 대목에 한자말 ‘침묵’이 끼어든 셈입니다.

 

 침묵의 추수였다
→ 말없는 가을걷이였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을걷이였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을걷이였다
 …

 

  한자말 ‘침묵’ 둘째 풀이에 나오는 ‘정적(靜寂)’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고요하여 괴괴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괴괴하다’를 다시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고요하다”를 뜻한다고 나와요. 그러니까, “고요하여 괴괴함”처럼 뜻풀이를 적는다면 같은 소리를 되풀이 적은 셈입니다. “고요하거나 괴괴함”처럼은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조용’과 ‘고요’가 어떻게 다른가 싶어 거듭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니, ‘조용’을 풀이하면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함”을 가리킨다고 나오고, ‘고요’를 풀이하면서 “조용하고 잠잠한 상태”를 나타낸다고 나옵니다.


  한자말 뜻풀이나 토박이말 뜻풀이 모두 엉망진창이라고 할까요. 한자말이건 토박이말이건 엉터리로 뜻을 달아 놓는달까요.

 

 모두 조용한 가을걷이였다
 조용한 가을걷이였다
 고요한 가을걷이였다
 소리가 사라진 가을걷이였다
 …

 

  우리 한국말사전이 언제부터 이처럼 돌림풀이에 갇혔을까 궁금합니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보면, 어느 결엔가 느낌이 잡힌다고 생각해서 이처럼 얼렁뚱땅 붙였는지 궁금합니다. 뜻이나 느낌이 퍽 비슷하다 하더라도 똑같은 낱말이 아닌 ‘조용’과 ‘고요’인데, 이렇게 뜻을 달면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우리 말을 어찌 되새기거나 헤아릴 수 있는가 알쏭달쏭합니다.


  낱말 한 마디라 하더라도 더 애쓰고 돌아보면서 다루어야 하지 않는가 싶어 서글픕니다. 비슷한 낱말이라 한다면 더더욱 힘쓰고 살피면서 다루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 안타깝습니다.

 

 침묵이 흐르다 → 말이 없다 / 조용하다
 침묵을 깨뜨리다 → 고요를 깨뜨리다
 침묵에 빠지다 → 고요에 빠지다 / 입을 못 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 입막음을 지키고 / 입을 다물고
 오랜 침묵을 깨고 → 오랜 잠을 깨고 /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고

 

  낱말풀이가 올바를 때라야 말씀씀이 또한 올바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낱말풀이를 제대로 가누고 슬기롭게 엮어야 글씀씀이 또한 슬기로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세울 때, 이러한 말과 글에 담을 생각 또한 옳고 바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바르게 세우지 않는 말과 글이라 한다면, 우리 넋과 얼은 나날이 비틀리거나 기울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다만, 한자말 ‘침묵’을 쓰고 싶다면 써야 할 테지요. 쓰고 싶으면 쓰더라도 말투와 말씨와 말틀에 어그러지지 않게끔 가다듬어야지요. 낱말을 알뜰살뜰 가려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낱말을 엮는 매무새는 알뜰살뜰 추스를 수 있어야지요.

 

 침묵의 봄
→ 고요한 봄 / 조용한 봄
→ 소리없는 봄 / 소리가 사라진 봄
→ 죽은 봄 / 깨어나지 않는 봄
 …

 

  그러고 보면, 낱말 하나하나 제대로 못 살피는 매무새이기 때문에, 말투든 말씨든 말틀이든 뒤죽박죽이 되는지 모릅니다. 낱말 하나하나 곰곰이 돌아보는 매무새가 될 때에, 말투며 말씨며 말틀이며 아름다이 다스리고 살갑게 다독일 수 있구나 싶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침묵의 봄”을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레이첼 카슨 님이 쓴 책, “silent spring”을 낱말뜻 그대로 “조용한 + 봄”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침묵의 봄”으로 풀어내고 말았습니다. 뛰어나거나 훌륭하다는 번역가들이 “고요한 봄”이든 “소리없는 봄”이든 “죽은 봄”이든 “깨어나지 못하는 봄”이든 생각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잠든 봄 / 잠들어 버린 봄
 잠에 빠진 봄 / 잠에서 허덕이는 봄
 잠을 깨지 못하는 봄
 어두운 봄 / 슬픈 봄
 …

 

  우리 말과 글에서 생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서 사랑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서 빛줄기가 스러져 버렸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서 믿음이 동댕이쳐졌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서 슬기가 빛바래고 말았습니다. 우리 말과 글에서 맑음과 고움과 부드러움이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말은 아직 우리 말다움을 찾지 못합니다. 잠든 채 깨어나지 못합니다. 잠에서 허덕이면서 어두운 나날을 보냅니다. 소리도 느낌도 냄새도 맛도 없어지고 만 우리 말은, 끝끝내 슬픈 나날에 빠져 울먹입니다. 4342.5.8.쇠/4346.12.1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조용한 가을걷이였다 … 그들이 든 낫이 햇빛이 반짝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도 노래하지 않았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13) 침묵의 2 : 침묵의 순간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침묵의 순간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리 폴슨/김민석 옮김-손도끼》(사계절,2001) 52쪽

 

  ‘지금(只今)까지’는 ‘이제까지’나 ‘여태까지’로 다듬고, ‘완전(完全)한’은 ‘오롯이’나 ‘아주’로 다듬습니다. “-의 순간(瞬間)”은 “-한 때”나 “-한 적”으로 손보고, ‘경험(經驗)해’는 ‘겪어’로 손보며, “없다는 사실(事實)을 깨달았다”는 “없는 줄 깨달았다”나 “없다고 깨달았다”나 “없었네 하고 깨달았다”로 손봅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침묵의 순간은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때는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때는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죽은 듯이 고요한 적은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적은
 …

 

  보기글을 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대목만 살리면 넉넉합니다. 글 뒤쪽에 더 힘주어 말하고 싶다면 “소리가 모두 사라진 때”라든지 “죽은 듯이 고요한 때”처럼 적을 만합니다.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때가 어떤 모습인가를 가만히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이야기를 풀면 됩니다. 4346.12.13.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제까지 살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죽은 듯이 고요한 때는 겪은 적이 없다고 깨달았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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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3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3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로 읽는 책 88] 덤

 


  안 남는 장사 없다 하지만
  덤을 주고 에누리를 하기에
  남는 장사 되는구나 싶다.

 


  덤과 에누리는 무엇일까요. 하나를 끼워 줄 때에 덤이거나, 값을 깎아야 에누리일까요. 헌책방에서 아름다운 책 하나를 만났을 적에, 다른 책을 끼워 주거나 책값을 깎아 주어야 에누리라고 느끼지 않아요. 나로서는 아름다운 책 하나 만난 일이 바로 덤이면서 에누리입니다. 남을 때에는 나누고, 모자랄 때에는 함께하는 삶이라면 언제나 아름답고 즐거운 삶 되리라 느껴요. 그러니까, 아름다운 책 하나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도록 가게를 열고, 책꽂이 짜서 곱게 갖추는 모습이 바로 덤이면서 에누리로구나 하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책 하나 써낸 사람과 아름다운 책 하나 엮어서 펴낸 사람이 바로 덤이면서 에누리를 우리한테 베푼 셈이라고 느낍니다. 4346.12.1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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