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67) 존재 167 : 속도의 차이가 존재

 

속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인간의 생활은 어디를 둘러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호시노 미치오/김욱 옮김-여행하는 나무》(갈라파고스,2006) 247쪽

 

  ‘속도(速度)’는 ‘빠르기’로 다듬고, ‘차이(差異)’는 ‘다르다’로 다듬습니다. “속도의 차이가”는 “빠르기가 다른”이나 “다른 빠르기”로 손보면 됩니다. “인간(人間)의 생활(生活)”은 “사람살이”나 “사람들 삶”이나 “우리 삶”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속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 빠르기가 다를 뿐
→ 빠르거나 느릴 뿐
→ 빠르거나 느리기만 할 뿐
 …

 

  이 글월에서는 ‘존재할’을 ‘있을’로 고쳐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존재’만 다듬어서는 말짜임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속도의 차이”란 무엇일까요. 빠르기가 다르다는 소리인데, 사람들 삶에서 빠르기가 다르다 하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문명이 빠르게 달라지거나 천천히 달라진다는 뜻일까요. 바쁘게 살거나 느긋하게 산다는 뜻일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이 글월은 일본글에서 한자만 한글로 바꾸고 ‘の’는 ‘-의’로 고친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速度の差異が存在”를 껍데기만 한글로 옮겨적은 꼴입니다.


  무늬만 한글이어서는 한국말이 안 돼요. 겉모습이 아닌 알맹이로 한국말이 되어야 알맞습니다.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분들이 한국말을 조금 더 깊고 넓게 살피는 한편, 한국말을 알뜰살뜰 새롭게 익혀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6.12.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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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거나 느릴 뿐 사람들 삶은 어디를 둘러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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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22. 한국말 살려쓰는 길
― 작은 마음 따사롭게 사랑하기

 


  시인 김명수 님이 쓴 《이육사》(창작과비평사,1985)라는 위인전을 읽다가 112쪽에서 “비록 바지저고리를 입고 홑치마를 두른 촌사람들이었지만”이라는 대목을 봅니다. 아무것 아니라 할 글 한 줄일 수 있지만, 이 대목에 밑줄을 주욱 그었어요. 이 한 줄에서 우리 겨레 오랜 삶을 읽습니다.


  요즈음도 이와 비슷하게 말하는 분이 더러 있지만, 이제는 “치마를 두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예부터 치마는 ‘입는다’보다는 ‘두른다’고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옷을 입는 일을 놓고도 ‘착용’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쓰고, 우리 사회에서는 옷입기를 가리키는 낱말이 하나같이 영어예요. ‘옷차림’이나 ‘입성’이나 ‘차림새’나 ‘옷맵시’ 같은 말은 ‘패션’ 한 마디에 줄줄이 밀려요.


  어린이책에만 나오는 “바지저고리와 홑치마” 또는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우리 겨레가 “한복을 입는다”고 말하지 않아요. 1919년에 만세운동을 하던 이들이 “한복을 입고 만세운동을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입고 만세운동을 했다”고 말합니다.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차린 한겨레는 ‘한옥’에 살지 않아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돌로 바닥을 깔며 흙으로 벽을 바르고 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에 살아요. 우리 겨례 여느 살림집은 흙집이거나 풀집이거나 나무집이거나 돌집입니다. 한자 쓰기를 즐긴 양반이라면 ‘흙집’이나 ‘풀집’이라 말하지 않고 ‘초가’라 했지만, 시골에서 흙 만지고 풀 베는 사람들은 그저 ‘풀집’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밥을 먹는데, 임금이나 양반은 ‘조석’을 먹습니다. 이와 달리 논밭 일구는 시골지기는 ‘아침저녁’을 먹어요. ‘밥’을 먹지요. 우리 겨레가 예부터 먹은 밥은 그저 ‘밥’이지, 어느 누구도 ‘한식’을 먹지 않아요.


  이제 이 나라에 서양 물결이 넘실거리니, 따로 ‘한복·한옥·한식’ 같은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 옷과 집과 밥을 제대로 가리키자면, 우리 겨레 글이 ‘한 + 글’이듯, ‘한 + 옷’과 ‘한 + 집’과 ‘한 + 밥’이 되어야 올바릅니다. 우리 겨레 이름 ‘한 + 겨레’처럼 말이에요.


  유소림 님이 쓴 산문책 《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를 읽다가 30쪽에서 “돌 틈의 작은이들은 저마다 제일 좋아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라 나오는 대목을 봅니다. 국립국어원 맞춤법에 따르자면 ‘작은 이’처럼 띄어야겠지만, 이 책에 나온 그대로 붙여서 ‘작은이’라 쓸 만해요. 작은 사람을 가리킬 수 있고, 작은 목숨을 가리킬 수 있어요. 작은 꽃과 풀과 벌레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며, 작은 새와 물고기도 여기에 넣을 수 있습니다.


  ‘작은이’처럼 ‘고운이’를 쓰고, ‘사랑이’를 쓰며, ‘꿈이’나 ‘착한이’를 써도 재미있어요. 우리 둘레 반가운 님들한테 이렇게 이름 하나 조그맣게 붙이면서 생각을 틔우고 마음을 살찌울 만합니다.


  한국말 살려쓰는 길은 쉽습니다. 즐겁게 살려서 쓰면 됩니다. 작은 마음 따사롭게 헤아리면서 사랑하면 됩니다. 국어학 자료를 꿰거나 온갖 국어사전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 국문학과를 다녀야 하지 않아요. 국어순화 운동을 힘껏 벌여야 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가장 즐겁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면 넉넉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우리들이 아름답게 살려서 쓸 말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즐겁게 쓰는 말이에요. 삶을 밝히는 말을 살려서 쓸 노릇이지, 국어사전에서 잠자는 말을 깨워서 쓸 노릇이 아닙니다.


  우리 겨레가 쓰던 말을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한국말이란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일구며 가꾸던 이들이 쓰던 말이에요. 임금이나 학자나 양반이 쓰던 중국말은 우리 겨레 말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조그마한 시골사람이 흙과 풀과 꽃과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쓰던 말이 우리 겨레 삶빛 흐르는 말입니다.


  시골말 살릴 때에 한국말이 살아요. 시골마을 살릴 때에 이 나라가 살지요. 시골사람 살아날 때에 우리 삶과 문화가 시나브로 살아날 수 있어요. 시골을 잊거나 잃는다면 한국말을 잃는 셈이에요. 시골하고 등지거나 시골빛을 놓친다면 한국말 살찌우는 길하고 멀어져요. 학문으로 살릴 말이 아닌 삶으로 살릴 말이니까요. ‘국어순화 운동’은 그야말로 운동에서 그치기에, ‘삶을 가꾸는 말’로 나아가야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삶을 가꾸면 저절로 말을 가꾸기 마련이에요. 삶을 가꾸는 사람은 마음과 사랑을 가꿉니다. 마음과 사랑을 가꾸니, 허튼 말이나 못된 말이나 얄궂은 말이나 뒤틀린 말을 안 써요. 마음과 사랑을 가꿀 만한 넉넉하고 따사로운 말을 쓰기 마련이에요. 이런 말을 써야 맞고 저런 말을 쓰니 틀리다 할 수 없어요. 삶을 가꾸지 않고 말만 가꾸지 못해요. 삶을 일으키면서 말을 일으킬 수 있지, 말만 번듯하게 세우고 삶을 튼튼히 세우지 못한다면, 도로 무너져요.


  이오덕 님이 쓴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삼인,2005) 101쪽을 읽으면 “농어민들은 자랑스러운 겨레말을 모두 어렸을 때 부모들한테서 듣고 배워, 다시 그 아들딸들한테 건네고, 이래서 배달말은 지금까지 이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일하면서 살아온 모든 부모들은 겨레말을 그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자였다고 하겠습니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말이 아니에요. 집에서 가르치는 말이에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삶이 아니라, 집에서 어버이가 가르치는 삶이에요. 날마다 즐겁게 일구는 삶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이어요. 하루하루 사랑스레 보듬는 삶을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이어요. 아이와 늘 함께 살아가니, 아이 앞에서 어른으로서 삶을 어떻게 다스릴 때에 아름다운가를 스스로 깨닫겠지요. 아이들만 말을 배우지 않아요. 어른들도 스스로 말을 배워요. 어른들은 스스로 삶과 넋과 말을 꾸준히 새로 배우면서 아이들한테 삶밥과 넋밥과 말밥을 물려주는 빛을 드리웁니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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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14 12:22   좋아요 0 | URL
'풀집'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랄 땐 온통 풀밭에서 뛰놀고, 풀빛을 보며 자라고, 풀잎을 베어 지게에 담아 소에게 여물을 주고, 늦여름이면 어른들이 온통 풀베기에 나서서 밭에 쓸 '퇴비'를 만들었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짚으로 지붕을 새로 얹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렇게 흙집과 풀집에서 살던 우리네 삶이 '우리 시대에 이르러' 잠깐 동안에 참 너무 많이 바뀌었단 생각이 드네요.

파란놀 2013-12-14 12:45   좋아요 0 | URL
풀하고 멀어지면서 '풀말'을 잊고, '풀삶'하고 동떨어지는 한편, 풀처럼 푸르고 맑은 마음과 사랑과 빛도 모조리 잃는구나 싶곤 해요..
 

자전거순이 9. 찬바람도 다 좋아 (2013.12.10.)

 


  자전거를 달리면 찬바람도 다 좋아. 겨울에는 찬바람 먹는 맛으로 자전거를 달리지. 여름에는 더운볕에 시원스레 부는 들바람과 바닷바람을 먹으면서 자전거를 달리고. 입을 더 크게 벌리고 겨울바람 실컷 먹으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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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2-14 07:56   좋아요 0 | URL
요즘의 도시 아이들과는 달리 넉넉한 마음과 풍요로운 자연, 거기에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과 고려까지. 정말 잘 자라나는 아이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3-12-14 09:02   좋아요 0 | URL
아이들 스스로 고운 빛 되어 잘 자라리라 생각해요~

2013-12-14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3-12-14 09:02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여러모로 고마워요.
즐거이 기쁘게 예쁜 빛으로 날아올 네지요~ ^^
 

자전거순이 8. 아버지 얼른 와 (2013.12.10.)

 


  수레와 샛자전거를 붙인 자전거를 대문 앞으로 내놓는다. 이제 대문을 닫을 차례. 큰아이가 앞에서 자전거를 붙드니 작은아이도 뒤에서 수레를 붙잡는다. 밑으로 굴러가지 말라며 잡아 주는구나. 고맙네. 오늘은 바람 안 부니 안 잡아도 되는데. 아이들은 자전거를 붙잡고는 “아버지 얼른 와!” 하고 부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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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 - 환경을 사랑하는 어린이 교양 과학동화 1
백용해 글.사진 / 창조문화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환경책 읽기 55

 


꽃을 보려면 걸어야 합니다
―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
 백용해 글·사진
 창조문화 펴냄, 2000.7.6.

 


  밤하늘 올려다보면 별빛을 누립니다. 시골에 살더라도 등불 밝히면 별빛을 누리지 못합니다. 밤에도 전깃불을 켜면 나무가 쉬지 못하고, 논과 밭 또한 쉬지 못합니다. 사람도 나무도 풀도 꽃도 밤에는 고이 쉬어야, 새로 찾아오는 아침볕에 기지개 켜고 일어나며 씩씩하게 하루를 누려요.


  시골마을 고샅에 전등을 놓아야 한다면, 사람이 지나갈 적에 밝히도록 해 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안 지나갈 적에는 깜깜해야지요. 그래야 비로소 시골빛을 누리고, 시골스러운 따사로운 기운이 감돌아요. 밤새 전등을 밝히면 논이고 밭이고 숲이고 모두 힘듭니다. 사람도 힘들지요.


  방에 불을 켜고 자 보셔요. 잠을 잔 듯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불을 끄고 깜깜한 방에서 자야 비로소 눈과 머리와 마음과 몸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도 밤에는 불을 다 꺼야 옳아요. 밤에는 가게도 문을 닫고, 술집 또한 문을 닫으며, 돌아다니지 말아야지요. 아픈 사람 있어 택시를 부를 일이 있을 테고, 병원 갈 일이 있겠지요. 참말, 이렇게 아프거나 힘들거나 어떤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도시에서도 밤을 고즈넉하게 누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새벽을 여는 신문배달부와 우유배달부가 아니라면, 굳이 깊은 밤에 일어나 돌아다닐 일이 없어야지 싶어요.


.. 하늬 아빠와 하늬, 영수는 다른 생물을 조사하기 위해서 해수욕장의 서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도로변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관광버스가 줄지어 5대나 서더니 유치원 아이들 수백 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정리하시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아이들 소리가 뒤섞여서 왁자지껄했습니다. 그런데 하늬의 눈에는 이상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손에는 제각각 플라스틱 음료수 빈병이 한 개씩 들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 하늬 아빠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환경교육을 받아야 하는 거란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선생님들도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저렇게 빈병을 들고 오게 하는 거야. 관찰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라구.” ..  (44∼45쪽)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겨울밤에는 풀벌레나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 말고는 없습니다.


  바람이 불며 밤하늘 구름이 천천히 흐릅니다. 문득 귀를 기울여 구름 흐르는 소리를 들어 봅니다. 별빛이 드리우는 소리와 달빛이 내려앉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귀를 쫑긋해 봅니다. 달빛과 별빛을 받는 밤구름이 천천히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샅길에 켜진 전등을 바라보고,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올봄에 심은 어린 살구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우리 아이들이 언제쯤 마당 한쪽 살구나무 열매와 꽃을 누릴 수 있을까 손꼽아 봅니다.


  다른 시골에는 눈이 온다는데, 눈이 소복소복 내려 추운 시골에서는 어떤 이야기 있을까 궁금합니다. 너무 춥고 눈이 잔뜩 쌓여 자동차 다니기 힘들다고 여길까요. 눈이 소복소복 쌓일 적에 아이들과 눈놀이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즐기면서 자가용은 내려놓고 두 다리로 천천히 눈밭을 거닐며 볼일을 보려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까요. 염화칼슘인지 염화나트륨인지 화학조합물을 길바닥에 뿌릴 생각은 말고, 아이도 어른도 이 눈 기쁘게 맞아들일 수 없을까 궁금해요. 왜냐하면, 예부터 겨울에 눈이 많아야 흙이 포근하게 쉬면서 겨울가뭄 이긴다 했어요. 눈이 많이 쌓여 논과 밭과 숲을 덮어야, 겨우내 벌레들도 많이 죽는다 하고, 새봄에 흙이 한결 싱그러이 살아난다 했어요. 겨울 추위 견딘 나무들은 더욱 씩씩하게 짙푸른 잎사귀 뽐내고, 겨울눈 머금은 나무들은 더욱 튼튼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했어요.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눈을 반겨야 아름답달까요. 도시에서도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버스도 택시도 전철도 모두 멈추고,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쉬면서, 아이들과 홀가분하게 길거리와 공원과 주차장 어디에서든 실컷 눈놀이 누리면 아름답달까요.


  봄이 오면 다 녹을 눈인걸요. 겨울이어도 포근한 햇볕 드리우면 천천히 녹을 눈인걸요.

 

 

 

 


.. “아저씨 말을 들으니 정말 화가 나요. 어른들은 자연을 보호하자고 말하면서 정작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아 자연을 망치고 있으니 말이에요.” … “사람들은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조금 소문만 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다 잡아없애 버리고 난 뒤에야 후회를 하잖아. 앞으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 자연과 그 속의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말이야.” 칠게의 따끔한 말 한 마디가 하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습니다 … “이곳 사람들은 우리를 ‘갱조개’라고 부르기도 하지. 우리는 주로 영광 주변의 서해 지역 모래사장이나 남해의 모래펄에서 살아가고 있어. 그런데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닷물 때문에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단다. 사람들은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애.” ..  (47, 69, 181쪽)


  꽃을 보려면 걸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달려서는 꽃을 누리지 못합니다. 고속철도를 달리거나 시외버스를 달려도 꽃내음을 못 맡습니다. 조그마한 들꽃은 아예 들여다볼 수 없기까지 합니다.


  자가용을 달리며 개구리 노랫소리 듣는 사람 없어요. 비행기를 타거나 고속철도 달리면서 풀벌레 노랫소리 듣는 사람 없어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달리면서 제비 노랫소리 듣는 사람 있을까요.


  나물을 뜯거나 캐거나 꺾거나 끊으려면 걸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달려서는 나물을 얻지 못해요. 두 손으로 흙을 만져야 나물을 얻어요. 두 다리로 흙을 밟아야 나물을 누려요.


  이 겨울에도 어디에선가 냉이가 돋아요. 이 겨울에도 유채와 갓과 쑥과 고들빼기와 씀바귀가 새로 돋아요. 이 추위에도 코딱지나물이며 봄까지꽃이며 살그마니 고개를 내미는군요. 이 겨울추위에도 눈을 맞으며 까마중 열매 새까맣게 대롱대롱 달려요.


  그런데, 두 다리로 천천히 걷는 사람만 겨울빛을 누려요. 겨울꽃을 보고 싶으면 두 다리로 찬찬히 걸어야 해요. 걸을 때에 이야기가 샘솟아요. 걸을 적에 도란도란 마을이 살아나고 오순도순 마을이 노래합니다. 걷지 않으면, 자가용 싱싱 달리면, 모든 고샅과 밭둑과 논도랑을 시멘트로 덮으면, 마을에서도 시골에서도 노래는 몽땅 사라져요.


  새마을운동이 몰아닥친 뒤 두레와 품앗이는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새마을운동이 아직 시골마을마다 남은 탓에 일노래와 굿판은 송두리째 사라졌어요. 일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없어요. 기계로 시끄럽게 흙을 까뒤집을 뿐이에요. 모내기노래를 하는 사람 없어요. 가을걷이노래를 하는 사람 없어요. 콩을 털면서, 깨를 털면서, 까투리를 까부르면서 노래를 하는 사람 없어요. 모두 너무 바빠요. 모두 안 어울려요. 모두 남남이 되고 농협에 수매를 하느라 부산할 뿐이에요. 농협 일꾼은 시골노래 아예 모를 뿐더러 도시 회사원하고 똑같아요.

 

 

 

 


.. “나는 게 중에서 이름을 가장 많이 가진 게야. 강화도에서는 내가 바위 지역에 산다고 ‘바구재’라 하고, 인천·경기 지역에서는 ‘박하지’라고 불러. 그리고 충청도에서는 한 번 물면 천둥이나 쳐야 놓는다고 해서 ‘천둥게’라고 부르기도 해. 전라도 북부 지역에서는 건드리면 뻘떡 일어선다고 ‘뻘떡게’라고도 부른단다. 그리고 전라도 남부 지역에서는 한 번 물면 독하게 안 놓는다고 ‘독게’라고 부르지. 그런데 정식 이름은 ‘꽃게’를 많이 닮아 ‘민꽃게’라고 하는데 어때?” …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펄흙에도 칠게나 농게의 먹이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 모래 사이에도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먹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  (81, 103, 104쪽)


  갯벌 이야기 들려주는 작은 책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창조문화,2000)을 읽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은 동서남북 모두 갯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서북은 매립지가 되었고, 남쪽은 우주기지 들어서면서 바닷물과 바닷가가 나란히 망가져요. 매립지 된 동서북 갯벌 자리에는 드넓게 논을 마련했는데, 이 드넓게 마련한 논에는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엄청나게 논 하나로만 만들었으니 농약이 없이는, 또 기계가 없이는 벼를 거두지 못합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데, 왜 논만 이렇게 드넓어야 할까요. 갯벌이 없으면 뭍에서 흘러나오는 찌꺼기와 쓰레기를 거를 수 없어 바다와 뭍이 함께 더러워지는데, 왜 갯벌을 이렇게 엉터리로 다 메꾸려 했을까요.


  정치꾼과 경제꾼이 흔히 말하는 ‘돈’으로 따져도, 갯벌에서 얻는 돈이 논으로 바꾼 땅에서 얻는 돈보다 훨씬 큽니다. 김을 다루며 염산을 씁니다만, 바지락을 캐거나 낙지와 쭈꾸미를 잡으면서 농약이나 염산을 쓸 일이 없어요. 논밭은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얼룩지지만, 갯벌은 그저 캐고 돌려주기만 하면 언제까지나 먹을거리를 베풀어요. 논을 얻어야 하더라도 알맞게 얻으면 되지, 지나치게 너른 땅까지 만들어야 하지 않아요. 참말 알맞게만, 참말 쓸 만큼만 논으로든 밭으로든 바꾸어야지요.


.. “사람들이 하는 대규모 공사는 수천 년, 수만 년을 흐르는 바닷물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지. 그 결과 갯펄 위에 갑자기 모래사장이 생기는가 하면 모래사장이 다시 갯펄로 뒤덮이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큰 걱정이야. 이 신공항공사로 인해서 내가 사는 강화도에도 영향이 있을 정도라구.” … 영수와 하늬는 칠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어른들이 야속하고 미워졌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을 위해서만 공항을 짓고 칠게를 비롯한 갯벌 친구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상했습니다 ..  (124, 125쪽)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종도와 용유도, 두 섬을 섬 아니게 하나로 메꾸면서 인천공항을 때려지었어요. 인천 앞바다 영종도와 용유도는 갯벌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고, 영종섬 소금밭은 매우 아리따웠지만, 이 모두 공장 터로 닦으면서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갯벌에서 살던 숱한 목숨은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맞이했고, 갯벌로 찾아오던 수만 마리 철새는 보금자리를 다시 하나 더 잃었습니다.


  갯벌은 쓸모없는 땅일까요. 갯벌은 몽땅 뭍으로 바꾸면 될까요. 갯벌 없이 뭍과 바다만 남는다면, 이러면서 갯벌 자리에 시멘트로 높다랗게 둑을 세우기만 하면, 앞으로 이 나라와 이 땅은 어떻게 될까요. 시멘트로 쌓은 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바닷물을 버틸 수 있을까요.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를 고작 서른 해나 쉰 해만에 허물고 새로 짓는데, 시멘트로 막은 둑은 앞으로 백 해쯤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갯벌을 메꾸어 만든 논은 앞으로 백 해 뒤에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 “고둥? 고둥은 뭐고 소라는 뭐야?” 영수의 질문에 칠게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을 했어. ‘소라’는 한문에서 유래된 말이야. ‘고둥’이 순수한 우리 말이지. 지역에 따라서는 ‘골뱅이’ 또는 ‘우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  (140∼141쪽)

 

 

 


  환경책 《하늬와 함께 떠나는 갯벌여행》은 갯벌살이를 보여줍니다. 어린이 눈높이로 갯벌살이를 들려줍니다. 갯벌이 어떤 곳이고, 갯목숨으로 무엇이 있는지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바야흐로 2000년이 되어서야 이런 책이 나왔구나 싶은데, 이런 책이 1950년대나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나올 수 있었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요. 시골 아이들 모조리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회사로 보내려는 오늘날 흐름 아닌, 시골 아이들이 시골을 사랑하고 아끼며 즐겁게 살아가는 빛을 누리도록 이끌 만한 교과서나 책이나 신문이나 잡지가, 이제는 하나둘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 궁금해요.


  이제 와서 매립지를 다시 갯벌로 바꾸기는 어려울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깨달은 다른 나라에서는 매립지를 다시 갯벌로 바꾸려고 엄청나게 많은 돈과 품과 겨를을 바쳐요. 오직 한국만 멀쩡한 갯벌을 아직까지 더 매렵지로 바꾸려고 악을 씁니다. 오직 한국만 멀쩡한 바닷가에 시멘트둑 자꾸 쌓고, 아스팔트 관광길 새로 닦습니다. 제주섬 바닷가 찻길이 바닷물에 무너질 뿐 아니라, 바닷가를 빙 둘러 시멘트둑 쌓고 아스팔트 찻길 닦느라, 바닷가 모래가 모조리 바다로 쓸려가는데, 이런 어리석은 짓을 제대로 깨닫는 공무원도 지식인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요.


  틈틈이 고흥 발포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면서 새삼스레 느끼곤 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발포 바닷가나 다른 바닷가를 찾아가는데, 해마다 모래밭이 줄어들어요. 모래가 사라져요. 군청에서는 다른 곳에서 모래를 사다가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엄청나게 쏟아붓지요. 여름 휴가철에만 바닷가에 가 보면, 모래밭이 드넓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늘 바라보면 모래가 얼마나 어떻게 줄어들거나 사라지는가를 알아챌 수 있어요.


  갯벌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시멘트 문명이 어떤 길로 치닫는가를 깨닫지 않으면, 자동차와 물질문명이 이 나라와 이 땅을 어떻게 잡아먹는가를 알아채지 않으면, 앞으로는 ‘돈’으로 풀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몰아닥치겠다고 느껴요. 일본 후쿠시마는 먼 나라 남 일이 아니에요. 우리들이 곧 겪어야 할 일이에요. 4346.12.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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