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요 과학은 내친구 15
야규 겐이치로 글 그림, 예상열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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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2

 


맛있게 밥 함께 먹어요
― 배고파요
 야규 겐이치로 글·그림
 예상렬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2.7.30.

 


  배가 고플 적에 밥을 먹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끼니 때에 맞추어 밥을 차릴 수 있습니다만, 배가 고플 적에 먹어야 밥맛이 돕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밥그릇을 싹싹 비웁니다.


  참말 그렇지요. 배가 고프니 밥을 차리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어요. 배고픈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둘러앉아 밥그릇을 비웁니다. 수저를 들고 신나게 먹습니다.


  퍽 어린 아이는 배가 고프면 웁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배가 고프면 울어요. 배가 고픈데 왜 밥을 안 주느냐면서 웁니다. 배가 고프니 얼른 밥을 주어 놀 기운을 되찾게 해 달라며 울어요.


  자, 아이들이 기다리니 밥을 차립니다. 차근차근 밥을 차립니다. 때로는 후다닥 밥을 차려서 내놓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기다리도록 하면서 밥을 올립니다. 밥 익는 냄새가 돌고 국 끓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이야 곧 맛있게 먹겠구나 여기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많이 어린 아이라면 좀처럼 못 기다릴 수 있으니, 아직 다 차리지 않은 밥상에 앉거나 어버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한 입만 두 입만 하면서 입을 쩍쩍 벌립니다. 배부를 적에는 쳐다보지 않던 먹을거리라 하더라도 배고플 적에는 부랴부랴 손을 뻗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거나 가려서 먹는다면, 배가 고프게 하면 됩니다. 신나게 뛰어놀도록 하고는 밥은 살짝 뜸을 들여서 주면 돼요. 밥은 다 차렸지만 밥상에만 올리지 않고는 조용히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지켜봅니다. 그야말로 배가 고파 어떤 밥이든 고맙게 먹으려 할는지, 배고픈 주제에 이것저것 가리려 하는지 가만히 살펴봅니다.

 

 


.. “아, 배고프다. 언니, 오늘은 엄마가 안 계시니까 일찍 간식을 먹자.” “안 돼. 간식은 간식 시간에 먹어야 해!” ..  (2∼3쪽)


  아이들이 먹는 밥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어른은 아이들 몸이 튼튼히 자라기를 바라며 밥을 차립니다. 그런데, 어른은 어른이 되기까지 살아오며 입과 혀에 익숙한 밥을 차리곤 해요.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 먹는 밥’보다는 ‘어른이 이제껏 먹은 밥에 숟가락 더 얹어서 먹는 밥’이 되곤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나라와 고장마다 날씨가 다르고 삶이 달라요.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는 이곳대로 밥삶이 달라요. 티벳이나 몽골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도, 중남미나 북중미도, 또 유럽도, 중국과 일본도, 저마다 밥삶이 다릅니다. 한겨레 사이에서도 함경도와 평안도와 경기도와 강원도와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 밥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날씨가 다르고 삶이 다르니까요. 추운 곳에서는 추운 곳대로 밥을 차리고, 더운 곳에서는 더운 곳대로 밥을 차려요. 바닷마을과 멧골마을 밥차림이 달라요. 들이 너른 마을과 깊숙한 골짝마을 밥차림이 다르지요.


  그래도 옛날에는 어디에서나 시골밥이었으리라 느껴요. 옛날에는 어디나 시골이었을 테니까요. 임금이나 신하 같은 이들이 아니었다면, 양반이라 하더라도 떵떵거리듯 돈이 많은 집안이 아니었다면, 참말 거의 모든 한겨레는 손수 흙을 일구면서 밥을 얻었으리라 생각해요. 흙에서 곡식을 거두고 풀을 얻으며 열매를 따서 도란도란 밥을 차렸으리라 생각해요.


  아마 풀밥이었을 테지요. 끼니마다 키질을 하고 절구질을 하며 조리질을 한 뒤 물을 맞추어 솥에 장작불 때어 밥을 지었을 테지요. 흰쌀밥이란 거의 안 먹었으리라 생각해요.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은 스스로 흙을 만지지도 않고 키질이니 절구질이니 조리질이니, 또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으로 밥을 끓이는 일이니, 아무것도 안 했겠지요. 흰밥에 고깃국이란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이 누리던 밥차림이었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흰밥에 고깃국만 먹던 이들은 쌀알에서 씨눈까지 제대로 먹는 밥이 아니었을 테니 자꾸 몸이 아팠겠지요. 스스로 흙을 만지지 않고 땀흘려 일하지 않는 채 영양소만 많이 집어넣으니 몸이 튼튼하기 어려웠으리라 느껴요. 이와 달리, 누런쌀밥 먹고, 풀을 뜯으며, 늘 흙을 만지고 흙집에서 지내는 거의 모든 시골사람은 몸이 아프거나 힘들 일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 선희네 저녁은 뭐지? 몰라. 하지만 크로켓이면 좋겠다. 나도, 할머니가 만든 만두, 아주 좋아해. 엄마가 만든 크로켓, 할머니가 만든 만두 ..  (13쪽)

 


  야규 겐이치로 님 그림책 《배고파요》(한림출판사,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 배가 고플 적에 얼마나 밥이 먹고 싶을까. 아,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이란 얼마나 맛있을까.


  무엇을 차려서 먹든 대수롭지 않아요.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나물 몇 가지에 밥과 함께 간장에 버무려서 먹어도 반갑습니다. 된장국이랑 밥 한 그릇이어도 즐겁습니다. 김치 한 조각 있어도, 김치 아닌 날무나 날배추 있어도, 언제나 뚝딱 삭삭 말끔하게 밥그릇 비울 만합니다.


  푸른 숨결을 먹는 밥이거든요. 따순 사랑 담긴 밥이거든요. 즐거운 넋 서린 밥이거든요. 밥을 차리는 사람들 예쁜 손길을 밥 한 그릇으로 먹어요. 밥상에 오르기까지 너른 들과 숲과 바다와 멧골 곳곳에서 저마다 푸른 숨결로 살아온 다른 목숨을 먹어요. 나락 한 줌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떤 햇볕을 머금었을까요. 어떤 빗물을 마시고, 어떤 바람을 누리며, 어떤 흙에 뿌리를 내리다가 이렇게 밥 한 그릇이 되었을까요. 나물 한 줌은 어느 들이나 밭둑이나 숲이나 멧골에서 어떤 햇볕과 빗물과 바람과 흙을 누리며 자라다가 우리 밥상까지 왔을까요. 물고기 한 마리는 어떤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파란 물빛 머금다가 우리한테 고기 한 점 될까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삶을 누리느냐가 달라지지 싶어요. 먹는 밥에 따라 삶은 새롭게 거듭나지 싶어요. 사랑스러운 밥을 먹으면서 사랑스러운 삶 되고, 따순 밥을 먹으면서 따순 넋 되어요. 착한 밥을 먹으면서 착한 삶 되고, 고운 밥을 나누면서 고운 넋 됩니다.


.. 아, 맛있었다! 간식을 먹었더니 기운이 난다. 밖에서 놀다 올까? 신나게 놀고 나면 저녁 때는 ..  (28쪽)


  그나저나, 예쁜 그림책 《배고파요》인데, 이 그림책에 적힌 말투는 좀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어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배가 납작납작”이라든지 “배 납작 신호”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이 그림책 말투는 아이 어버이로서 찬찬히 따져야지 싶습니다.


  ‘납작해진다’고 할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징어가 납작해지지요. 쥐포가 납작하지요. 자동차 바퀴에 눌려 납작해져요. 꾹 누르거나 밟으면 납작해집니다. 그러니까, 부피 있는 무언가를 눌러서 부피를 없앨 때에 ‘납작하다’고 합니다.


  자, “배가 납작납작”이라면 어떤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배가 고픈 모습이라면 어떤 말로 나타내야 올바를까요.


  배가 부르면 배가 나옵니다. 배가 고프면 배가 들어갑니다. 배가 쏙 들어가요. 홀쭉해집니다. 그래서 ‘홀쭉이’와 ‘뚱뚱이’ 같은 이름이 있어요. 몸이 마른 사람이라면 ‘날씬하다’고도 하지만, 제대로 못 먹은 사람은 ‘비쩍 말랐다’고 해서 ‘홀쭉하다’고 가리킵니다.

 


 배고파서 배가 납작납작. 지금부터 간식 시간까지 몇 분? (4쪽)
→ 배고파서 배가 홀쭉홀쭉. 이제부터 간식 때까지 몇 분?
 굉장히 배가 고파서 배가 납작해졌어. (9쪽)
→ 몹시 배가 고파서 배가 홀쭉해졌어.
 할머니가 만든 만두. 나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13쪽)
→ 할머니가 빚은 만두. 나 슬슬 배고파.
 우리의 배는 언제 납작해지는 것일까? (16쪽)
→ 우리 배는 언제 홀쭉해질까?
 ‘배 납작 신호’는 우리 몸 속의 ‘에너지’가 모자라게 되었을 때 나옵니다. (18쪽)
→ ‘배 홀쭉 소리’는 우리 몸에 ‘힘’이 모자랄 때 나옵니다.
 ‘배 납작 신호’가 나오면 우리는 배고파져서 밥을 먹게 됩니다. (20쪽)
→ ‘배 홀쭉 소리’가 나오면 우리는 배고파서 밥을 먹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24쪽)
→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간식에는 ‘영양분’이 들어 있지 않나요? (24쪽)
→ 간식에는 ‘영양분’이 안 들었나요?
 ‘영양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덤’인 간식도 필요한 것입니다. (25쪽)
→ ‘영양분’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덤’인 간식도 먹어야 합니다.


  ‘홀쭉’이라고 적어야 할 대목을 ‘납작’이라고 자꾸 적은 대목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배는 홀쭉해지니까요. 그리고, 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 눈높이와 안 맞는 말투도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아직 한글을 모르는 나이부터 이 그림책을 어버이와 함께 귀로 들을 텐데, 너덧 살 눈높이를 헤아려 우리 말글을 찬찬히 살펴 알맞게 가누어야지 싶어요. 낱말도 말투도 꼭 아름다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비로소 아름다운 그림책 돼요.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같은 말투는 한국 말투가 아닌 일본 말투입니다. 이른바 직역투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슬슬 배가 고픈걸” 하고 말해요. “배고파지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밥은 밥이지 ‘식사’가 아니에요. 밥을 먹으면 ‘힘’이나 ‘기운’을 새로 낼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섣불리 ‘에너지’를 말할 까닭 없어요. 이 그림책에서는 “배 납작 신호”라 나오지만, 배가 고파서 홀쭉할 적에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나요. 그러니까, ‘신호’라기보다는 ‘소리’요, ‘신호’가 아닌 ‘소리’라 말해야 알맞다고 하겠어요. 너덧 살 아이들한테까지 ‘필요’ 같은 일본 한자말을 이야기할 까닭은 없어요. 아이들이 튼튼히 자라려면 “영양분이 많이 들”고, 덤인 “간식도 먹어야”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예쁘게 자랄 아이들한테 예쁜 말로 빚은 그림책을 베풀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고 보니, 만두는 ‘만든다’고 하지 않아요. 만두는 ‘빚는다’고 하지요. 도자기를 빚듯이 만두를 빚습니다. 어른들만 보는 책에서도 말은 말대로 옳게 가눌 노릇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은 더더욱 말을 잘 살피고 올바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게 밥 함께 먹고, 즐겁게 책 같이 읽어요.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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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짓고서

 


  식구들 저녁으로 먹을 밥을 다 짓는다. 곁님과 두 아이는 끝방에서 셈틀을 켜서 뭔가 한참 들여다본다. 이동안 혼자 부엌에서 깨작거리면서 밥과 국을 끓인다. 나물비빔은 아침에 넉넉히 했으니 저녁에는 그릇에 옮겨 담기만 하면 된다. 국이 알맞게 식을 무렵, 너무 뜨겁지 않고 따스한 기운 감돌 때에, 식구들 불러 조그마한 부엌에서 저녁을 먹어야지.


  섣달 그믐을 코앞에 둔 저녁은 벌써 어둡다. 한 해에 한 차례 누리는 가장 어두운 저녁이 다가온다. 다섯 시조차 안 되어도 어스름이 드리우는 섣달이란 우리한테 어떤 빛일까. 여덟 시가 넘어도 환한 한여름은 또 우리한테 어떤 빛일까.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내 몸이 되어 주는 쌀알을 생각한다. 지난겨울 어떤 꿈 품으며 볍씨로 고이 쉬다가, 지난봄 어떤 사랑 받으며 모로 자라다가는, 지난가을 어떤 손길 타면서 알뜰살뜰 쌀알로 거듭났을까. 밥 한 그릇에는 나락이 봄여름가을 골고루 누린 따사로운 햇볕이 담뿍 깃들었다.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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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15 18:07   좋아요 0 | URL
저도 밥을 지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네요...
그래도 먹어야 사는데... 말입니다..

파란놀 2013-12-15 18:40   좋아요 0 | URL
음... 그러실 때에는
가끔 한 끼를 건너뛰어 보셔요.

꼭 끼니를 다 맞추어야 하지 않으니까요.
기운이 안 날 적에는
참말
끼니를 한 끼니나 두 끼니 쉬면서
조용히 지내 보시면
외려 몸과 마음이 한결 차분하면서 홀가분해지기도 해요.
 

ㄱ 글쓰기

 


  제대로 된 한국말사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했는가 되돌아보니, 고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였구나 싶다. 그무렵,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적에 한국말사전 아닌 ‘일본말사전을 베낀 국어사전’을 한 차례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전’을 놓고 ‘국어사전’이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대학교에 간다면 우리 말글 배우는 학과에 들어가서 학자가 되어 한국말사전 새로 만드는 일을 해 볼까 하고도 생각했는데, 입시공부에 파묻히느라 그만 이런 생각을 더 잇지는 못했다.


  한국말 학자 되는 길보다 통역과 번역 일을 하고 싶어 외국말 배우는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어느 때부터 시나브로 한국말 새로 익히고 살피는 길로 접어들었다. 스스로 처음부터 뜻한 일이었는지 아리송하지만, 이래저래 우리 말글 살린다는 일을 하며 살았고, 2001년에는 ‘어린이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맡았다. 그러고 열 몇 해 더 흐른 오늘, 내 나름대로 새로운 한국말사전 만들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인다. 2014년에 나로서는 첫 한국말사전을 선보일 수 있다. 다만, ‘사전’이라는 이름까지는 아직 부끄럽고 작은 작품이 될 텐데, 이 작은 작품에 넣을 낱말들 가운데 ‘ㄱ’ 차례에 올릴 낱말을 거의 다 추리고 갈무리했다.


  어쩐지 뿌듯하다. 고작 ㄱ 한 갈래 거의 마무리지은 셈이기는 한데, 한국말사전에서 ㄱ이 퍽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ㄱ을 넘어가기가 첫 고개부터 만만하지 않다 할 만하고, ㄱ을 넘어가면 그 뒤로 제법 수월해서 ㅅ까지 달릴 만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ㅅ에 앞서 ㅂ 고개가 퍽 높다. 그래도 ㄱ을 넘었으면 ㅂ은 가뿐히 넘을 수 있겠지.


  ㄱ 갈래를 마무리지을 낱말 ‘꼭’과 ‘끝’을 돌아본다. 두 낱말이 참 예쁘다. 꼭 이 일을 즐겁게 이어갈 생각이고, 끝을 사랑스럽게 다스려, 아름다운 이야기 태어나도록 마음을 쏟고 싶다.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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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걱정과 끌탕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난 열 몇 해 동안 사람들이 이 세 낱말 쓰는 말씨를 헤아리고

여러 국어사전을 찾아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문학작품에는 이 낱말들 어떻게 나타나는가 돌아봅니다.

무엇보다 시골마을 어른들이 하는 말과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는 말을 곰곰이 가눕니다.

이 낱말들 말느낌과 말결을 살피는 이웃들이

하나둘 나올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

 

 

근심·걱정·끌탕
→ ‘근심’과 ‘걱정’과 ‘끌탕’은 모두 속을 태우거나 애를 태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근심’은 어떤 일이나 모습을 보거나 겪으며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때에 쓰고, ‘걱정’은 “잘못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에 쓰며, ‘끌탕’은 “그저 속이 타거나 안타깝다고 느낄” 때에 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근심이다”와 “잘못될까 걱정이다”와 “속을 태우며 끌탕이다”처럼 세 낱말을 헤아리면 돼요.


근심
: 마음이 놓이지 않음
 - 혼자 잘 갈 수 있는지 근심이 되네
 - 멀리 심부름을 보내고는 근심을 하는 어머니
걱정
1. 잘못되지 않을까 생각함
 - 말 없이 놀러 가서 한참 안 들어오니 걱정을 했잖니
 - 몸이 아픈 동생을 보면 걱정이 많다
2. 어린 사람이 잘못한 일을 꾸짖음
 -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은 동생은 어머니한테서 걱정을 들었다
끌탕
: 여러모로 속을 끓이거나 애를 태움
 - 망가진 연을 어찌 고치느냐며 끌탕이다
 - 저 사람들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끌탕을 한다

 

(최종규 . 2013 - 새로 쓰는 우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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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왕자 레오 1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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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89 

 


구름빛과 함께 즐거이
― 밀림의 왕자 레오 1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
 하주영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1.7.25.

 


  저녁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녁빛을 누립니다. 아주 마땅한 얘기이지요. 저녁에는 저녁빛을 누리고 아침에는 아침빛을 누려요. 새벽에는 새벽빛 있고, 낮에는 낮빛 있어요.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다른 빛을 누려요. 도시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바라볼 수 있으면, 눈길을 돌려 느낄 수 있으면,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과 밤마다 다른 빛을 포근히 누립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저녁빛을 모르고 아침빛을 안 느껴요. 시골에서 살 때에도 마음을 기울여 저녁빛 맞아들이고 사랑을 쏟아 아침빛 반깁니다.

 


- “판자는 동물의 왕이기도 해서, 숲의 짐승들은 모두 그놈 덕에 무사히 사는 게지요.” (15쪽)
- “그게 아닙니다. 판자는 일부러 가축을 죽이는 거예요. 인간을 미워하거든요. 판자는 숲속의 동물에겐 관대하지만, 인간이 기른 짐승은 몹시 미워하는 듯해요.” (17∼18쪽)


  깊은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밤구름을 느껴요. 바람이 자는 날에는 밤구름이 아주 느릿느릿 흐릅니다. 밤구름이 어리는 별빛은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과는 사뭇 다른 빛살입니다. 밤구름이 흐르는 달빛에는 아늑하면서 고요한 이야기 나란히 흐르곤 해요.


  보름달이냐 반달이냐 초승달이냐 그믐달이냐에 따라 밤빛이 달라요. 구름이 얼마나 짙으냐에 따라 밤빛은 또 달라요. 한참 밤하늘 올려다보면 어느 곳에서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별똥이 반짝 빛나면서 지나가곤 해요. 지구에 떨어지는 별똥일는지, 지구 곁을 스치는 별똥일는지, 지구에서 아주 먼 데에서 사그라드는 별똘일는지 잘 몰라요. 눈 한 번 깜짝 하는 사이에 스러지는 별똥을 바라보면서, 우리 눈에는 눈 한 번 깜짝 하는 사이라 할 테지만, 우리 눈에 보이기 앞서까지 얼마나 오래 활활 불타오르다가 사라질까 궁금해요.


  밤에는 아무것 안 보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밤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온갖 것이 내 눈과 마음으로 들어와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밤을 밟겨 노래를 들려줍니다. 늦가을부터 첫봄에 이르기까지는 개구리도 풀벌레도 없지만, 곧잘 멧새가 노래를 베풀고, 멧새 노래가 없으면 밤바람이 스산하게 지나가면서 풀노래와 나무노래를 베풀어요.


  달빛이 없는 날은 별빛이 초롱초롱합니다. 달이 없으면 별빛을 벗삼아 길을 바라보고 느껴요. 달이 훤하면 달빛을 동무삼아 길을 마주하고 누려요.


  참말 얼마 앞서까지, 어느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모두 달빛과 별빛 곱게 누렸으리라 생각해요. 참말 언제부터인가, 어느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모두 달빛이랑 별빛을 까무룩 잊으며 지내는구나 싶어요.

 

 


- “저 구름을 봐. 저 뭉게구름 아래 아버지 나라가 있단다. 아프리카라는 드넓은 나라야. 레오, 넌 동물원에 갔다간 평생을 망치게 된단다. 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사자가 돼야 해.” (45쪽)
- “저 창으로 빠져나가서 아프리카로 가거라.” “싫어,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그게 널 위한 길이란다. 넌 우리 안에서 평생 주는 먹이 받아먹으며 살고 싶니?” (46쪽)


  다른 고장하고 견주어 많이 포근한 고흥 밤빛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잡니다. 밤에 한두 차례 쉬 마렵다 잠에서 깹니다. 가끔 아이들 데리고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밤빛을 아이한테도 나누어 주곤 해요. 저녁에 잠자리에 안 들려 하는 아이들도 마당으로 나오도록 해서 별과 달을 보도록 하고, 마을 한 바퀴를 빙 돌기도 해요.


  우리 고장이 겨울에도 무척 포근하지만, 잠자리 안 들려는 아이들 데리고 밤마실 한 바퀴 하면 다들 춥다고 덜덜 떠는데, 추우면 달리자 말하고 걸음을 재촉하면 콩콩콩 뛰고 달리면서 몸을 달구어요. 저기 우리 집 불빛을 보다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해요. 벼리야, 보라야, 저 구름을 보렴, 밤에 보는 구름 어떠니, 예쁘지 않니.


  시골에도 이제는 등불이 많아 예전처럼 별을 더 누리기 힘들지만, 높은 건물은 따로 없고, 읍내나 면소재지도 일찌감치 닫는 가게 많아요. 도시에서는 늦도록 불을 안 끄는 가게 많고, 자동차도 너무 많은 나머지, 아주 깊은 밤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기 어려워요. 생각해 보면, 낮에 낮구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밤에 밤구름 누려요. 낮에 낮볕 누리는 곳에서 밤에 밤달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흙을 돌보고 살찌우면서 밥을 얻으니 높은 건물이 있을 턱 없어요. 골고루 햇볕을 잘 받아야 흙이 싱그러이 숨쉬거든요. 도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서 옹기종기 살아야 하니 건물을 높이 올릴밖에 없어요. 자동차도 많아야겠고, 가게도 많아야겠으며, 이것저것 크고 높아야 하는 도시입니다. 해와 어깨동무를 하는 시골이니, 밤에는 달과 별하고 함께 지내는 시골이에요. 해는 몰라도 높은 건물과 지하상가와 자동차 물결 그득한 도시이니, 낮이고 밤이고 똑같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똑같이, 숫자 하나만 바라보며 달리는 도시로 치닫지 싶어요.

 


- “이런 데서 표류하고 있다간 평생 가도 못 갈 거야. 네 힘으로 헤엄쳐 가지 않으면.” (62쪽)
- “있잖아, 잭! 동물원은 처음 봤지만 끔찍했어.” “예, 세상엔 저런 게 수천 개는 더 있죠.” “저런 데 사는 동물들은 행복할까?” “글쎄요. 뭐, 다칠 염려도 없고 먹을 것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까요. 우리 쥐들은 꿈도 못 꿀 행복이죠.” “그럴까? 난 아닐 것 같아. 우리도 인간처럼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갈 권리가 있을 거야.” (95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밀림의 왕자 레오》(학산문화사,200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깊은 숲을 보살피는 흰사자는 ‘판자’입니다. 그런데 판자는 나쁜 사냥꾼 꼬임에 빠져 그만 목숨을 빼앗겨야 합니다. 판자 곁님은 나쁜 사냥꾼한테 사로잡혀 도시에 있는 동물원으로 끌려갑니다. 배를 타고 오랫동안 천천히 아프리카를 떠나야 하는 길에 ‘레오’가 태어나요. 레오를 낳은 암사자는 레오더러 ‘너는 동물원 같은 데에 가서는 안 되는 넋’이라 가르치면서, 넓디넓은 바다로 뛰어들어 고향 아프리카까지 헤엄쳐서 돌아가라 이릅니다.


  어머니다운 가르침이요 말이에요. 어머니는 쇠우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지만, 몸이 조그마한 새끼 사자는 쇠우리 틈을 빠져나와 바다로 뛰어들 수 있어요.


  자, 레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머니 품에 안겨 동물원으로 가야 할까요. 씩씩하게 바다로 뛰어들어 밤하늘 달빛과 별빛에 기대면서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할까요.


- “난 아프리카에 돌아가서, 아빠 뒤를 이을 거야. 그리고 전 세계 동물원의 동물들을 아프리카로 불러서, 사이좋게 살 거야.” (97쪽)
- ‘어서 와라, 어서 와라, 레오. 정글은 네 고향이란다, 레오. 따뜻한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라. 모두가 널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라.’ (138쪽)


  어린 사자 레오는 아프리카로 쉬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프리카 아닌 도시를 헤맵니다. 사람들 사는 도시에서 속임수에 휘둘리고, 바보스러운 도시 얼거리를 몸속 깊이 깨닫습니다. 이러는 동안 나쁜 사람들 그득한 사이사이 착한 사람들 있는 줄 살핍니다. 사람다운 넋을 건사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사람다운 넋을 스스로 잃거나 버리는 사람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깊은 숲속에서도 착한 짐승과 나쁜 짐승이 있을까요. 글쎄, 짐승누리에서 착하거나 나쁘다는 잣대로 이래저래 금을 그을 수 있을까요. 착한 나무와 나쁜 나무가 있을까요. 착한 풀과 나쁜 풀이 있을까요. 착한 새와 나쁜 새가 있을까요. 착한 벌레와 나쁜 벌레가 있을까요. ‘착하다’와 ‘나쁘다’라는 잣대나 틀은 오직 사람누리에서 사람들끼리 얄궂게 세우는 바보스러운 잣대나 틀은 아닐까요.

 


- “자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독일군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딸 가진 선량한 시민에 우수한 사냥꾼이라.” (121쪽)
- “자, 여러분. 목소리가 높은 순서로 늘어서 주세요. 이제부터 다 같이 합창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다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함께 노래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죠? 그래서 전 합창단, 아니 오케스트라라는 걸 만들어, 여러분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161쪽)


  어린 흰사자 레오는 아버지와 어머니 넋을 이어받습니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며, 싸움을 말리는 넋입니다. 서로 돕는 넋이며, 서로 아끼는 넋입니다. 이웃 짐승을 돌보며, 동무 짐승을 사랑하는 넋입니다.


  사람들은 전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벌입니다. 사람들은 전쟁무기를 들고 숲속으로 들어와서 사냥질을 합니다. 배가 고파 먹을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냥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사냥을 ‘스포츠’로 여깁니다. 이런 스포츠는 운동경기로까지 뻗어 ‘사격’이 있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서로 치고 때리고 맞고 툭탁거리는 싸움을 스포츠라는 이름을 붙여 큰돈을 걸며 경기장도 짓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데에 꿈과 사랑을 쏟기보다는, 돈이 되는 일거리에 돈을 들여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에 꿈과 사랑을 기울이기보다는, 돈을 더 키우는 일거리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요.


  돈을 만지는 사람은 구름을 볼까요. 돈을 바라는 사람은 해를 볼까요. 돈을 거머쥐려는 사람은 달이나 별을 볼까요. 돈바라기로 흐르면서 정작 이녁 아이들조차 안 바라보지는 않나요. 돈쟁이가 되면서 막상 이녁 식구들 마음조차 안 읽거나 못 보지는 않나요.


  사람은 얼마나 사람답게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얼마나 사람답게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얼마나 사람답게 꿈꾸거나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요. 숲넋 판자 뒤를 이은 레오는 숲에서 살아가는 이웃들한테, 또 숲으로 찾아온 사람들한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 지구별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가슴속에 고운 빛으로 품자는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고 싶습니다.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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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2-1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밀림은, 동물의 왕국, 레오레오레에오, 흰사자 레에오~"
전 아직도 이 만화영화 주제가를 기억해요. 제가 겨우 여서일곱살때 TV에서 보았는데말이지요.

파란놀 2013-12-17 14:36   좋아요 0 | URL
아, 한국말 번안으로 보셨군요!

오오, 예전 동영상을 찾아보면 도무지 한국말 더빙은 안 나오더라구요 ㅠ.ㅜ
그래도 일본말 동영상은 있어,
아이들하고 예전 만화영화를 보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