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쓰기
― 양달과 응달

 


  사진을 찍을 적에 빛이 늘 알맞게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 바로 이런 빛이지!’ 할 적이 있으나, ‘이런이런, 이런 빛으로 사진을 어떻게 찍나?’ 할 적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잦은지는 모릅니다. 다만, 빛이 알맞든 알맞지 않든, 사진으로 찍고 싶으면 스스로 사진기 노출을 잘 맞추어야 할 뿐입니다.


  지난날 필름사진기만 있던 때에는,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빛을 아주 잘 살피고 알지 않으면 사진이 모두 엉망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디지털사진기는,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이 빛을 썩 잘 모르거나 제대로 못 살피더라도, 사진기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제법 괜찮게 사진을 찍어 줍니다. 다만, 내가 찍고 싶은 자리에 있는 내가 찍고 싶은 모습이 양달과 응달로 또렷하게 갈린다면, 아무리 디지털사진기라 하더라도 갈팡질팡 망설여요. 양달로 맞추어야 하는지 응달로 맞추어야 하는지, 사진기가 오락가락합니다.


  누군가는 양달에 빛을 맞춥니다. 누군가는 응달에 빛을 맞춥니다. 누군가는 양달과 응달 사이에 빛을 맞춥니다. 양달에 빛을 맞추면 응달이 아주 어둡습니다. 응달에 빛을 맞추면 양달이 아주 하얗습니다. 가운데 언저리에 빛을 맞추면 이럭저럭 괜찮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에 맞추어야 한다는 법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드는가를 알려면, 세 가지를 모두 찍어야 합니다. 양달에도 맞추어 보고, 응달에도 맞추어 보며, 가운데쯤으로도 맞추어 봅니다. 디지털사진기로는 곧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 이렇게 석 장 찍고 나면, 내 마음을 사로잡는 빛을 깨달을 만해요.


  사진 한 쪽이 하얗게 날아가도 됩니다. 사진 한 쪽이 까맣게 어두워도 좋습니다.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를 맨 먼저 헤아리셔요. 사진에 담으려는 이야기가 참말 내가 바라는 이야기인가 아닌가를 살피셔요.


  나는 내 사진을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어 찍습니다.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면 그늘진 자리에서도 얼굴빛이 살그마니 살아나면서 하얀 데가 덜 하얗습니다. 이불놀이를 하는 우리 집 아이들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 찍으며 생각합니다. 응달 자리를 더 찍으면 ‘사진멋’은 한결 살아날 수 있겠다고 느꼈는데, 나는 ‘사진멋’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골빛’을 사진에 넣고 싶어요. 그래서 살짝 어두운 빛에 맞추느라 대문 너머 시골마을 모습이 좀 하얗게 날아가는 느낌이 되지만,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커서 이 사진을 새삼스럽게 돌아본다면, ‘아하, 우리들이 어릴 적에 놀던 집과 마을이 이런 모양 이런 빛이었구나’ 하고 되새길 수 있어요. 이불을 말리느라 빨래줄에 널어 마당에 그늘이 넓게 드리우는 겨울날인데, 마당이 넓게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으면 응달빛이 퍽 멋스러운 사진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처럼 아이들 웃음빛과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골빛을 나란히 담고픈 마음에 대문 너머 모습이 살짝 하얗게 날아가더라도 이곳을 더 넓게 사진에 담겠지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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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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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구니 달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1 베틀북 그림책 12
메리 린 레이 글, 바버리 쿠니 그림, 이상희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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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6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 바구니 달
 바버러 쿠니 그림
 메리 린 레이 글
 이상희 옮김
 베틀북 펴냄, 2000.7.15.

 


  메리 린 레이 님이 글을 쓰고, 바버러 쿠니 님이 그림을 그린 《바구니 달》(베틀북,2000)을 읽으면, 책끝에 붙임말이 있습니다. 이 붙임말을 읽으면, 미국에서 나무를 잘라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니, 모조리 사라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그림책 《바구니 달》에서는 미국 숲 문화를 들려줍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나라에서 송두리째 사라진 수많은 풀 문화와 짚 문화를 떠올립니다. 미국에서는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는 사람이 사라졌다면, 한국에서는 짚을 베어 바구니를 짜거나 둥구미를 엮는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바구니나 둥구미뿐 아니라, 섬이나 자리를 짤 만한 짚이 나오지 않습니다. 굵고 단단하며 길고 곧게 뻗은 예쁜 짚이 더는 나오지 않아요. 모두 농협에서 품종개량을 하는 바람에 ‘키 작고 짚 가늘며 거무튀튀한’ 짚만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짚조차 가을걷이를 하면서 모조리 한 덩어리로 묶어 고기소 먹을 사료로 삼습니다.


.. 달이 완전히 둥글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허드슨에 갖다 팔 바구니를 짭니다. 그러다 보름달이 뜨면 집을 나서지요. 우리 집엔 말도 없고 마차도 없어서 아버진 그 먼 길도 걸어 다니세요. 아주 늦게서야 집에 돌아오시는데, 둥근 달이 보름달이라야 캄캄한 밤길을 환하게 비춰 주거든요 ..  (6쪽)

 


  이 땅에서 바구니 짜고 짚신 삼으며 자리 엮는 사람이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시골사람을 몽땅 도시가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를 맞이한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사회를 윽박지르려고, 또 몇몇 재벌을 키워 검은돈을 거머쥐려고 갖가지 특혜를 베풀며 공장을 때려지었습니다. 때려지은 공장에서 부속품처럼 아주 낮은 돈만 받고 일할 노동자가 있어야 하니, 시골에서 젊은이를 끌어모읍니다. 시골 아이를 도시로 보내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두멧자락까지 작은학교를 끝없이 짓습니다.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모두 ‘도시 예비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길을 걷습니다. 시골에서 흙 파며 풀 먹는 삶은 ‘가난하고 나쁜 삶’인 듯 가르칩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장일을 해야 효도가 되는 듯 가르칩니다. 이러는 한편, 시골을 떠난 젊은이 빈자리는 농약과 화학비료로 채우게끔 부채질을 하고, 비싼 농기계를 써서 젊은 일손 몫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이 나라 독재정권은 도시에 있는 공장 노동자로 쓰려고 시골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한편, 시골에 남은 사람들한테서 돈을 울궈내려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다가 쓰도록 이끕니다. 농협에서는 품종개량이라는 이름을 내걸며 씨앗을 농협에서 사다 쓰는 얼거리로 바꿉니다. 한편, ‘경지정리’를 내세워 시골마다 농기계를 안 쓰면 안 되는 틀로 바꾸지요.


  이렇게 되니, 적게 거두어 적게 먹고도 ‘돈 걱정을 안 하면서’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던 마을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그나마, 시골마을 작은학교조차 나라에서는 돈을 안 들이고 지었어요. 시골사람한테 땅을 스스로 내놓게 해서 작은학교 터를 마련하고, 작은학교 건물조차 시골사람 스스로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쌓아서 짓도록 시켰어요. 그리고, 시골마다 학교를 떡하니 지은 뒤에는 온갖 월사금과 납부금을 거둬들였고, 아이들을 몽둥이로 다스리는 짓을 일삼았어요. 이동안 아주 ‘자연스럽게’ 시골에서는 짚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이 사라집니다. 시골사람이 짚신 신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짚신을 신으면 손가락질을 하며 놀려요. 고무신을 신어도 놀리니, 짚신을 누가 신겠어요. 짚이나 억새나 대로 엮은 돗자리는 ‘새마을운동’하고 동떨어진다면서, 짚으로 짠 바구니와 둥구미 또한 ‘새로운 문명이나 문화’하고 안 맞는다면서, 모두 불태우거나 거름더미에 던지도록 내몰았습니다. 나일론 돗자리를 쓰도록 시키고, 플라스틱 바가지와 그릇을 쓰도록 부채질했습니다.


.. 어른들이 바구니를 만드는 동안 어둠이 깃들고, 이런저런 얘기가 오갑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말하고 가끔은 조 아저씨나 쿠엔 아저씨가 말하지요. 보통은 나무가 자기한테 들려줬다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나도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  (12쪽)

 


  숲에서 조용히 살며 나무를 베어 바구니를 짜던 이들은 바구니만 짜지 않았습니다. 이녁이 먹을 밥을 이녁 스스로 흙을 만지면서 거두었습니다. 이녁이 지낼 집 또한 숲에서 나무를 조금씩 얻어서 조그맣고 조촐하게 지었습니다.


  숲에서 바구니 짜던 이들은 쓰레기가 없습니다. ‘쓰레기’라는 낱말조차 없었겠지요. 서로 이웃이 되어 사랑스러운 마을을 이루었겠지요. 서로 아끼고 돌보는 평화로운 삶터를 이루었겠지요. 흙을 만지고 나무를 아끼며 바구니를 짜는 이들 마음속에는 ‘전쟁’이나 ‘경제개발’ 따위는 없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기며, 흙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웁니다.


  이 나라 한국에서 흙을 만지면서 짚을 짜거나 엮거나 삼은 시골사람은 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어요. 숲이 베푸는 노래를 즐겼지요. 골짜기와 바다와 냇물이 가르치는 노래를 배웠어요.


..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나무들은 우리 마음을 알 거야. 허드슨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쓸 것 없단다.” ..  (25쪽)


  전문 가수가 불러야 노래가 아닙니다. 전문 작사가나 작곡가가 지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어야 노래가 아닙니다.


  노래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노래는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노래는 꿈과 함께 태어납니다. 노래는 마알간 눈빛으로 부릅니다. 노래는 따스한 손길로 부릅니다. 노래는 고운 마음을 나누려는 넉넉한 넋으로 부릅니다.

 


..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배워서 음악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지.” 조 아저씨가 계속해서 말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바람의 말을 듣고 시를 쓴단다. 우린 바람의 말로 바구니 짜는 법을 배웠지.” 그때 참나무 이파리 하나가 창고 안으로 날아 들었어요. “바람이 우릴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조 아저씨가 덧붙였어요. “바람은 믿을 만한 존재가 누군지 알거든.” ..  (27쪽)


  바람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햇살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들풀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지켜봅니다. 바닷물이, 냇물이, 도랑물이, 실개울이 우리를 지켜봅니다.


  구름이 우리를 지켜보고, 멧새가 우리를 지켜봐요. 작은 꽃이, 작은 벌레가, 작은 짐승이, 작은 개구리가, 작은 둠벙이, 모두 우리를 지켜봐요.


  가슴으로 함께 느껴요. 우리 가슴속에서 피어날 사랑을 저마다 곱게 느껴요. 마음으로 함께 어깨동무해요. 우리 마음밭에 뿌릴 씨앗을 저마다 즐겁게 헤아려요. 우리가 먹는 밥은 영양소가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업이나 전문영역 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아 누릴 삶은 장래희망이나 진로계획이 아닌 사랑입니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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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9 09:55   좋아요 0 | URL
바버라 쿠니님의 <바구니 달>을 저도 참 좋게 읽었어요~
그림도 좋았고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옮겨주신 27쪽의 말을 마음에 넣어 두었지요~*^^*

파란놀 2013-12-29 10:12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을 읽었나 하고 넘어갔는데
아무리 살펴도 도서관에 없더라구요.
이번에 장만하고 보니 예전에 안 장만했더라구요 ^^;;;

참말 27쪽, 아저씨가 들려준 '바람 이야기'가 아주 좋아요.
그리고, 그 좋은 이야기대로
우리들이 잊은 '우리 풀짚 문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깨달았어요.
 

아름다운 책도, 못난 책도

 


  아름다운 책이나 못난 책이 따로 있을까. 아름다운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 따로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저이는 참 아름다운 사람이야 하고. 저놈은 참 못난 녀석이야 하고. 우리 삶터에 아름다운 빛 드리우려고 힘쓰는 사람한테는 ‘아름다운 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고, 우리 삶터를 짓밟거나 짓누르거나 어지럽히는 사람한테는 ‘못난 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 삶터에 아름다운 빛 드리우려고 한몫 거드는 책일 때에 ‘아름다운 책’이 될까. 우리 삶터를 들쑤시거나 어지럽히거나 편가르기나 따돌림이나 괴롭힘 따위를 불러들이려는 책일 때에 ‘못난 책’이 될까.


  사랑이 없이 태어난 아이는 없다고 느낀다. 사랑을 못 받고 태어난 아이는 없다고 느낀다. 어머니 몸속에서 열 달 지내며 태어난 아이는 모두 사랑을 받았다. 엄마젖을 먹든 가루젖을 먹든, 씩씩하게 자라 어른이 된 사람들 모두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랑을 전쟁으로 짓밟는지든지 독재와 군국주의로 짓누른다든지 하면서 바보짓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 이네들은 왜 바보짓을 일삼았을까. 돈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고, 얼굴 생김새나 학력을 따지면서 이웃을 들볶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이 있다. 이네들은 왜 이런 바보짓을 일삼을까.


  아름답다는 책이든 못나다는 책이든, 모두 나무를 베어 만든다. 숲에서 푸른 바람 베풀던 나무가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고, 나무는 그예 나무일 뿐이다. 책이 되어 준 나무는 ‘아름다운 책’이나 ‘못난 책’이 될 마음이 하나도 없다. 말없이 사람한테 몸을 맡기어 책이 되었을 뿐이다.


  혼자 살던 지난날에 가끔 ‘못난 책’이라 할 만한 책을 냄비 받침처럼 쓴 적 있으나, 도무지 이렇게 할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남들은 으레 이렇게 한다니 나도 한 번 해 보았으나, 책이 되어 준 나무한테 미안해서 차마 책을 냄비 받침으로 못 쓰겠더라. ㅈㅈㄷ신문을 냄비 받침으로 쓴다는 분들도 있는데, 나로서는 ㅈㅈㄷ신문뿐 아니라 다른 신문이라고 그리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데, 어느 신문으로도 냄비 받침을 쓰고 싶지 않았다.


  시골숲이나 시골들을 다니다 보면, ‘미국 자리공’을 곧잘 본다. 뿌리를 뽑고 뽑아도 다시 돋는다. 아무렴. 모든 풀은 자르고 잘라도, 태우고 태워도 다시 돋는다. 미국 자리공만 힘줄이 세지 않다. 개망초이든 망초이든 베고 또 베어도 얼마나 잘 자라는가. 민들레 또한 시골사람이 농약을 퍼부어 태워 죽이고 또 죽여도 그 자리에 씩씩하게 다시 올라온다. 쑥을 보아라. 뽑고 뽑아도 쑥쑥 다시 올라오지 않는가. 그나저나, ‘미국 자리공’을 볼 적에 저 풀을, 저 무시무시하게 번지는 서양풀을, 이 나라 숲과 들을 잡아먹을듯이 퍼지는 저 서양풀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도 그냥 지나친다. 낫으로 벤들, 발로 밟는들 무엇이 달라질까. 이 나라에 퍼진 ‘그야말로 끔찍한 것’들을 떠올리면 자리공은 아무것도 아닐 뿐 아니라, 자리공이든 다른 귀화식물이건 이 땅에서 푸른 바람을 베풀어 준다. 저 서양풀도 미국이건 어느 서양에서건 자랄 적에는 그 나라에서 푸른 숲을 이루어 온 지구별에 푸른 숨결을 베풀어 주지 않았겠는가.


  한국사람이 고추장을 마치 한국 먹을거리인 양 여기지만, 고추가 한겨레 여느 사람이 널리 먹는 푸성귀가 된 지는 아직 백 해가 안 된다. 감자도 고구마도 토마토도 배추도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다. 한겨레가 김치를 먹은 역사는 아직 천 해가 안 된다. 오백 해쯤 되었을까. 솜을 얻는 목화를 언제 들여왔는가. 목화 또한 귀화식물이다. 늦겨울부터 온 시골마다 노란물결 일렁이도록 하는 유채가 한국땅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지 않다. 배추보다는 오래되었다지만, 이렇게 군청마다 잔뜩 뿌린 지는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되었을까.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책을 즐겁게 읽고 싶다.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책은 굳이 읽고 싶지 않으며, 사들일 뜻이 없는데다가, 누가 선물해도 애써 들추고 싶지 않다. 이 지구별에 태어나는 아름다운 책들만 읽어도 이 아름다운 책을 모두 읽을 수 있겠나.


  그러니까, 어떤 나무이든 지구별을 살찌우는 푸른 바람이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를 밝히고 빛내며 보살펴 주는 살가운 마음벗이다. 나는 내 마음에 벗이 될 아름다운 빛인 책을 사귀고 싶다. 아름다운 책이나 못난 책을 따로 가르지 못한다. 그저 내 마음에 닿는 책을 나한테 아름다운 책이라 여기면서, 다른 책들은 다른 책들대로 누군가한테 아름답게 스며들 책이라 느낀다.


  다 다른 사람들한테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들이 태어날 테지. 그러나, 전쟁무기 같은 책만큼은, 아니 전쟁무기가 되는 책만큼은,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되는 책만큼은, 핵발전소나 핵폐기물 같은 책만큼은, 폭력과 욕설 같은 책만큼은, 불평등과 차별 같은 책만큼은, 계급이나 학벌 같은 책만큼은, 부디 태어나지 않기를 빈다. 아름다운 나무로 빚은 종이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실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고 꿈꾼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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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9 10:06   좋아요 0 | URL
예~저도 제 마음에 벗이 될 아름다운 빛인 책을 사귀고 싶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들이 태어나겠지요.^^
그런데 '미국 자리공'은 어떤 풀인가요?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어떻게 생긴 풀인지도 잘 몰라서요..^^;;

파란놀 2013-12-29 10:13   좋아요 0 | URL
사진 몇 차례 찍기는 했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는 힘들고 ^^;;;
자리공 이야기를 하려고
사진을 여러 차례 찍으면서
늘 다른 이야기에 밀려
아직 못 풀었네요 ^^;;;

우리 '느낌(정서)'하고는 안 맞는
열매를 맺고, 좀 ... 거석한 느낌이랍니다.
 

 

  지난 2000년 6월, 아주 뜻깊은 사진책이 하나 나왔지만, 그즈음 이 책을 차마 장만하지 못했다. 사진은 좋은데, 사진마다 엉뚱하게 붙인 뚱딴지 같은 말 때문이었다.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라는 백승종 님이 붙인 ‘사진말’은 몽땅 ‘추리소설’이었다. 이를테면,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저이들 중에도 전쟁의 광란에 야수같이 미쳐 날뛴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니,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247쪽).”, “과일 궤짝에 사과나 배를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어렵게 먼길을 걸어 여기까지 나왔는데, 별로 팔리지를 않아 걱정이다(117쪽).”, “백 장 가량이나 되는 다양한 사진 기록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조국 건설로 가는 북한의 힘겹고 참담한 역사를 한 번 뒤쫓아가 보려고 한다(머리말).” 같은 말들. 처음부터 끝까지 북녘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넣는다. 동독 도편수 에리히 레셀이라는 사람이 북녘사람 여느 삶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는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을 텐데, 이 사진을 어떻게 손에 넣어 남녘에서 사진책으로 내놓는 사회학과 교수이자 역사학자라는 분은 온통 깎아내림말과 비아냥뿐이다. 북녘 학자나 지식인이 남녘땅 여느 사람들 사진을 앞에 놓고 온통 깎아내리기만 하거나 비아냥거리기만 하면 즐거울까? 북녘 정치를 비판하고 싶다면 비판할 노릇이다. 그러나, 비아냥거려야 하지 않으며, 추리소설을 쓸 까닭도 없다. 사진은 사진 그대로 읽어야 한다.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은 책이름 그대로 에리히 레셀이라는 사람이 1950년대 북녘에서 일하며 만난 ‘정치하고는 동떨어진 여느 시골사람과 도시사람’ 모습을 ‘애틋한 이야기(추억)’로 담은 사진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을 들추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우리 이웃과 한겨레를 돌아볼 노릇이지, 싸잡아 헐뜯는 데에 이 사진을 쓰는 일은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 북녘과 남녘 정치가 이토록 엉망진창인 탓을 누구한테 돌리려 하는가. 비아냥과 손가락질과 편가르기를 하는 학자와 지식인이 분단과 반민주와 국가보안법과 불평등과 온갖 차별을 부채질하거나 끌어들이지 않았을까? 부디 이 예쁜 사진책을 고침판으로 다시 펴낼 수 있기를 빈다. 지식인이건 학자이건, 쓸데없는 붙임말은 모두 잘라내고, 그예 우리 이웃이자 한겨레인 북녘땅 여느 사람들 삶을 수수하고 투박하게 만날 수 있도록 새로운 책으로 곱게 엮어서 선보이기를 빈다. 사진들이 너무 아깝다. 4346.12.29.해.ㅎㄲㅅㄱ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 추억
백승종 / 효형출판 / 2000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품절
아버지, 난 누구예요- n세대가 쓰는 이 땅의 작은 역사
백승종 엮음 / 궁리 / 2000년 8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절판

그 나라의 역사와 말- 일제 시기 한 평민 지식인의 세계관
백승종 지음 / 궁리 / 2002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절판

정감록 미스터리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2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3년 12월 2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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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94] 학교 다니기

 


  신나게 놀고, 사랑을 예쁘게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꿈 서로 만나는,
  배움터.

 


  내 어릴 적 학교는 하루라도 빠지면 몽둥이로 찜질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한 주에 두 차례, 때로는 두어 차례 아침모임을 운동장에서 하는데, 앞옆뒤로 나란히를 시키며 줄서기를 해야 했고, 한 시간 남짓 덥든 춥든 꼼짝않고 서지 않으면 뺨을 맞거나 정강이 걷어차이는 곳이었습니다. 군인이 되어 무엇이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도록 길들이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학교 밖으로 나가서 삶을 배울 수도, 사랑을 나눌 수도, 꿈을 꿀 수도 없게 꽁꽁 가두었습니다. 학교를 빠지면 안 되듯이 회사도 빠지면 안 되겠지요. 시키는 대로만 배워야 하듯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놀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어깨동무하거나 꿈꾸지 못한다면, 학교가 아니고 마을이 아니며 보금자리가 아닌 한편, 나라도 정부도 아닐 테지요.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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