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문화재단 사외보 2014년 1-2월호에 싣는 글입니다. 지난해 11월에 써 두었고, 이제 비로소 올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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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21. 우리와 함께 있는 말
― 누가 언제 쓰는 말일까

 


  아이한테 읽히려고 그림책을 장만합니다. 그림책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읽히기도 하지만, 아이가 한글을 천천히 익히면서 스스로 읽을 책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어버이 목소리를 들으며 말을 익히고, 나중에는 눈빛을 밝혀 글을 깨칩니다.


  어느 책이건 아이한테 먼저 쥐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창작 그림책이건 번역 그림책이건 아이들 삶과 걸맞지 않다 싶은 낱말이나 말투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아이한테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없는 낱말과 말투가 있어요. 이를테면, 요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조차 ‘생일잔치’ 아닌 ‘생일파티’라 하고, 어느 곳에서는 ‘버스데이 파티’라고까지 합니다. ‘버스데이 파티’라 하는 곳은 아이들한테 영어를 더 가르치려 하는 곳인데, 요즘 어른들 가운데 ‘파티’가 영어이고 ‘잔치’가 한국말인지 아는 분이 무척 적어요. 이리하여 ‘돌잔치’ 아닌 ‘돌파티’를 ‘럭셔리’하게 하는 어른들이 있어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참말 이렇습니다. 어느 그림책을 읽다가 ‘생일파티 미션’이라는 말이 흐르기에 이내 덮었어요. 도무지 보아주기 힘들더군요.


  스웨덴에서 1983년에 처음 나오고, 한국에서는 2011년에 옮긴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기 앞서 차근차근 살피다가, “첫눈은 뭔가 특별하고 멋지니까요”라든지 “눈에게 불공평하게 굴지는 않아요”라든지 “눈은 자작나무 숲 위로 펑펑 내리고 있어요”라든지 “한손 부인”과 “한손 씨”와 같은 말투를 봅니다. “계속 달리기만”하고 “내처 달렸어요” 같은 말투도 봅니다.


  아이들한테 ‘다르다’나 ‘남다르다’라는 낱말을 들려주는 어른이 아주 드문 요즈음입니다. ‘까다롭다’라는 낱말을 쓰는 어른도 퍽 드뭅니다. 어른들 스스로 “첫눈은 뭔가 남다르고 멋지니까요”라든지 “눈한테 까다롭게 굴지는 않아요”처럼 말하지 않아, 아이들은 ‘남다르다’라든지 ‘까다롭다’ 같은 낱말을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좀처럼 못 듣습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쓰자면 “눈은 자작나무 숲에 펑펑 내려요”처럼 손질해야 합니다. 눈은 “숲 위로”가 아닌 “숲에” 내립니다. “지붕 위로” 쌓이는 눈이 아니라 “지붕에” 쌓이는 눈입니다. 영어 현재진행형을 잘못 옮겨 “내리고 있어요”라 적지만, “내려요”로 바로잡아야 올발라요. 어른들 읽는 책에서도 올바로 가누어야 아름답고, 아이들 읽는 책에서는 더욱 마음 기울여 올바로 가누어야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한손 부인” 아닌 “한손 아주머니”요, “한손 씨” 아닌 “한손 아저씨”입니다. 아이들이 어른한테 “한손 부인” 하고 부르겠습니까. “한손 아주머니(아줌마)”라 부르지요.


  누가 언제 쓰는 말인가 하고 찬찬히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으레 쓰는 말을 아이들이 흔히 들으면서 자라는 줄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부터 말매무새 올바로 가다듬으라 했어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습니다.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뜻일 뿐 아니라, 어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듣는다는 뜻이에요. 어른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어른들 내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주고받는다 하더라도, 이런 말이 모두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로 이어져요. 여느 때에 언제나 아름답게 말할 줄 아는 어른이어야, 아이들 또한 언제나 아름답게 말하는 삶 물려받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늘 사랑스레 말할 수 있는 어른이어야, 아이들도 늘 사랑스레 말하고 글을 쓰는 넋 이어받아요.


  정일근 님이 쓴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비,1987)을 읽다가 8쪽에서 “대청마루 떡하니 놓인 쇠북을 보면”이라는 대목을 만났어요. 제 이름 ‘최종규’에서 ‘종’은 한자로 적으면 ‘쇠북 종’입니다. 제 이름에 깃든 ‘종’이라는 한자를 ‘쇠북’으로 읽는 줄 어릴 때부터 알기는 했지만 쇠북이 무엇인 줄 가르쳐 주는 어른이 둘레에 없었어요. 다른 동무는 예쁘거나 멋지다 싶은 뜻(새김)을 이름으로 얻는데, 나는 쇠북이 뭐냐, 웬 이름이 이러한가, 하고 여겼습니다. 아마 어른들도 쇠북이 무엇인 줄 제대로 몰랐구나 싶은데, 나이 서른을 한참 넘긴 어느 날 스스로 쇠북을 깨달았어요. 쇠로 만든 북이라 쇠북이요, 쇠북이란 ‘종’을 가리키는 한국말이었습니다. 떵떵 울리는 ‘종’은 중국말이었어요.


  이오덕 님이 쓴 동화책 《종달새 우는 아침》(굴렁쇠,2007)을 읽으며 31쪽에서 “나만은 내일 학교를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대목을 만납니다. 무릎을 철썩 칩니다. 그래요. 저도 어릴 때부터 ‘쉰다’는 말을 자주 듣고 썼어요. 몸이 아프면 학교를 쉽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몸이 아픈 날 회사를 쉽니다. 네 식구 살아가는 시골집에서 몸이 고단하면 집일을 살짝 쉽니다. 학교나 회사를 다닐 적에는 “학교를 빠진다”라 말하기도 했어요. 이럴 때마다, 학교에서는 ‘결석’이라는 말을 썼고, 회사에서는 ‘결근’이라는 말을 썼어요. 서류에는 이런 낱말 써야 한다고 하지만, 왜 서류에 ‘쉼’이라는 말을 쓸 생각은 못 할까요.


  우리 겨레가 한자를 쓴 지 1500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 겨레가 한자를 쓰지는 않았어요. 임금님과 신하와 지식인만 한자를 썼어요. 서울에 모이거나 읍내에 모인 몇몇 관리와 지식인, 여기에 임금님만 한자로 글을 썼을 뿐, 글 아닌 말에서는 모두 ‘한자 아닌 한국말’이었어요. 99.9%를 훨씬 넘는 여느 사람들은,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일하면서 ‘정갈하고 고운 한국말’을 썼습니다. 정치와 행정 맡은 이들이 한자를 받아들여 썼다지만, 다른 거의 모든 사람은 한자를 모르는 채 한국말만 알뜰살뜰 주고받았어요.


  여느 시골사람은 ‘물들이기’를 하지만, 관리와 지식인은 ‘염색’을 말합니다. 여느 시골사람은 ‘흙(논밭) 일구기’를 하지만, 관리와 지식인은 ‘농사’를 말합니다. 더 낫거나 더 좋은 말은 따로 없다고 느껴요. 우리가 쓰는 말이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말입니다. 우리가 선 자리에서 말이 새로 태어나고, 우리가 생각하며 사랑하는 자리에서 말이 새로 자랍니다. 아이 앞에서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삶과 넋 곱고 사랑스레 돌보며 말과 글 나란히 곱고 사랑스레 돌보기를 빌어요. 삶사랑이 말사랑 됩니다. 삶가꾸기가 말가꾸기 됩니다. 삶짓기가 말짓기 돼요. 4346.11.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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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간판 옷집

 


  헌책방을 꾸리는 분 가운데 간판을 굳이 올리지 않는 분이 있다. 예전 가게 간판을 그대로 두는 분이 있다. 이와 달리, 헌책방 간판을 그대로 둔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드물다.


  어떤 마음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본다. 헌책방 간판을 내리지 않은 채 다른 가게를 꾸리는 분은 어떤 넋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예전에 이곳에 헌책방이 있었다는 자국을 치우지 않은 모습이 무척 반갑다. 문화부도, 시청이나 군청도, 신문사나 방송사도, 출판사나 작가나 시인도, 헌책방을 살뜰히 아끼는 법이 없고, 알뜰히 사랑한 일이 매우 드물다. 헌책방이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돌아보거나 갈무리하는 공무원이란 없으며, 헌책방 박물관도 없다. 헌책방 간판 하나 건사하는 기관이나 박물관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데, 전주 홍지서림 골목 한쪽에 있는 조그마한 옷집은 ‘헌책방 간판’을 얌전히 두었다. 옷집 간판과 예전 헌책방 간판이 사이좋게 어울린다. 간판 하나로도 따사로운 빛이 흐른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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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0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주에 갔다오셨군요.저도 저 간판 기억납니다.한참 절판된 SF및 추리소설을 찾으로 전국을 누볐을때 저곳에서도 한 두권 구매한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늦었지만 함께살기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파란놀 2014-01-07 01:59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도 즐거우며 아름다운 새해 예쁘게 누리셔요~
 

전주 관광지도

 


  전국 어디에나 헌책방은 있다. 그러나 헌책방을 관광지도에 예쁘게 적어 넣는 지자체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다. 부산에는 보수동 헌책방골목 있으나, 이곳을 관광지도에 넣은 지 아직 열 해가 안 된다. 서울에 있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어떠할까? 서울 관광지도를 거의 본 일이 없어 모르겠는데, 서울 관광지도에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적어 넣었을까?


  곰곰이 헤아리면,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조차 관광지도에 안 넣기 일쑤이다.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까. 아니, 관광지도를 만드는 일은 공무원이 하는데, 공무원 스스로 책방마실을 누리거나 즐기지 않기에, 관광지도에 책방을 넣으려는 생각을 못한다고 느낀다.


  ‘전국 새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전국 헌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만큼 많으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전국에 있는 헌책방을 두루 찾아다니는 사람은 제법 많다. 이분들이 서로 조각조각 정보를 주고받은 열매를 얻어, 지난 2004년에 처음으로 ‘전국 헌책방 목록과 전화번호부’를 마무리짓고 세상에 두루 알렸다. 아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내려받아 ‘전국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분이 꽤 될 테지. 관광지도에는 없으니, 이 목록과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리라.


  전주 관광지도에 〈홍지서림〉 한 군데는 나온다. 그렇지만, 〈홍지서림〉을 둘러싼 헌책방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홍지서럼〉이 있는 골목에 전주시는 ‘예술의 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예술의 거리’라, 예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있기에 예술인가. 전주시 공무원과 예술인한테 참말 차분히 여쭙고 싶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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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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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사진을 <로타와 자전거> 그림책하고

나란히 놓고서 찍었습니다.

두 그림책이 아주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로타와 자전거>는 1982년에 처음 한국말로 번역되었는데,

(어쩌면 1979년이었는지 모릅니다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사랑받고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터라,

이참에 함께 사진으로 선보입니다.

즐겁게 누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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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8

 


별잔치를 가슴에 담는 삶
―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논장 펴냄, 2013.12.16.

 


  하늘에 걸린 달이 초승달 되고, 초승달이 어느새 그믐달 되면, 밤하늘은 온통 별잔치입니다. 서울이나 부산에 살더라도, 대전이나 광주에 살더라도, 인천이나 대구에 살더라도, 조그마한 도시에 살더라도,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에 살더라도, 집안에 있는 전깃불을 모두 끄고, 길가에 있는 전깃불은 손으로 가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봐요. 그윽한 별잔치가 얼마나 고운지 함께 누려요.


  한겨울 그믐밤에는 마을 고샅길 전깃불이 있어도 별잔치를 가리지 못합니다. 지구별과 제법 가까운 별은 눈부시게 밝습니다. 지구별과 제법 먼 별은 미리내가 됩니다. 지구별과 아주 먼 별은 흐릿흐릿 허연 바탕입니다.


  달에서 지구별 바라본 사진이라든지, 달에서 먼 우주를 바라본 사진을 고맙게 얻어서 들여다보면, 드넓은 우주에 뭇별이 환하게 빛납니다. 이렇게 많은 별이 이렇게 넓은 우주에 그득해요. 지구별은 아주 조그마한 삶자리입니다. 지구별은 드넓은 우주를 이루는 작은 깨알입니다.


.. 로타가 다시 말했어요.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미아 마리아가 말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허풍이 너무 심하네.” 요나스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어요. “그럼 스키 타고 방향 바꾸기도 할 수 있어?” 요나스는 요즘 한창 방향을 바꾸며 스키를 타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로타는 발끈 화를 냈어요. “내가 언제 방향을 바꿀 수 있댔어?” “좀 전에 뭐든지 할 수 있댔잖아.” “할 수 있어. 방향 바꾸기만 빼고 뭐든지 다.” ..  (3쪽)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다 도시에 살아가기 때문인지 별을 잊습니다. 별을 잊으면서 별을 잃습니다. 별을 잊고 잃으면서 달 또한 잊고 잃어요.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인 달조차 잊고 잃으면서, 온 우주를 채우며 밝히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함께 잊고 잃어요.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풀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다 시골에서 전기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난날 사람들은 함경도에 살든 전라도에 살든, 평안도에 살든 경상도에 살든, 밤하늘을 그득그득 채우는 별잔치를 언제나 누렸어요. 드넓은 우주를 밝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 가운데 하나가 지구라고 노상 느끼고 깨달으면서 살았어요.


  별을 느끼고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상냥하며 착합니다. 별을 느끼지 않고 우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상냥하지 않을 뿐더러 착하지 않습니다. 별을 느끼고 우주를 생각하는 사람은 평화와 사랑을 꿈꿉니다. 별을 안 느끼고 아주를 안 생각하는 사람은 평화와 사랑 아닌 전쟁과 권력과 재산에 끄달립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요. 맑은 냇물을 늘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맑은 숨결로 살아가요. 공장에서 버리고 아파트에서 흘려보내는 지저분한 쓰레기물 흐르는 냇물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맑은 숨결로 살아가기 어려워요.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하니까요. 맑은 물을 두 손으로 뜨지 못하고, 맑은 물을 눈과 코와 귀와 살갗으로 누리지 못하니까요.


  나무가 우거진 푸른 숲을 누리는 사람과 나무 한 그루조차 못 누리는 사람은 삶이 달라요. 다만,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 없는 데에서 살더라도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 있어요. 나무 우거진 아름다운 숲속에서 살지만 마음이 좁거나 아픈 사람 있어요.


  맑은 냇물과 함께 살아가더라도 스스로 몸가짐을 곱게 추스를 때에 고운 삶이 되어요. 맑은 냇물과 함께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몸가짐을 곱게 추스를 줄 알면 고운 삶으로 나아가요.


.. 로타는 스키 지팡이 없이도 스키를 타곤 했지만, 비닐봉지 두 개와 밤세를 들고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안되겠다. 넌 빵 봉지 속에 들어가 있어.” 로타는 빵 봉지 속에 밤세를 우겨 넣고 고무줄로 다시 꼭 묶었어요. 봉지 속에서 밤세가 조금 못마땅한 눈으로 로타를 바라보았어요. 로타가 밤세를 달랬어요. “조금만 참아. 그 대신 배가 고프면 빵을 조금 먹어도 좋아. 티 나지 않게 말이야.” ..  (7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붙인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논장,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예수님나신날 기다리는 아이들은 ‘성탄절나무’를 집안에 꾸미고 싶습니다. 로타네 아버지는 ‘마을에서 전나무 파는 가게에 그만 나무가 더 없다’고 말합니다. 전나무를 사올 수 없다고 해요. 로타네 아이들은 몹시 서운합니다.


  그런데, 살짝 알쏭달쏭합니다. 로타네가 살아가는 곳은 큰도시가 아니에요. 거의 시골이라 할 만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면, 로타네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 이끌고 가까운 숲으로 가서 전나무 한 그루 벨 수 있어요. 한 시간을 걷든 두 시간을 걷든 숲으로 마실을 가면 돼요. 마을 어른들이 함께 숲으로 나들이를 가서 ‘전나무 마련하지 못한 집’ 숫자에 맞추어 전나무를 베어 올 수 있어요.


  전나무를 꼭 돈으로 사야 하지 않으니까요. 돈으로 사는 전나무도 누군가 숲에서 베어서 가져오니까요.


  어린 로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로타네 어머니와 아버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돈으로만 하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아요. 전나무를 살 돈은 있으나 전나무는 없잖아요? 그러면, 돈이 아닌 ‘삶과 몸짓과 마음’을 움직여 전나무를 장만해야지요.


.. 로타는 아줌마의 베개를 폭신폭신하게 부풀렸어요. 그리고 빵을 두툼하게 썰고 버터를 발라 아줌마한테 드렸어요. 숨이 찰 때 먹으면 좋다고 하면서요. 그러고는 설거지도 하고 바닥도 쓸었어요. 뭐든지 어찌나 척척 잘 해내는지, 로타 스스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답니다. “이만큼이나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아줌마, 또 시킬 일 있어요?” “그럼, 가게에 가서 신문 좀 사다 주겠니?” 로타는 이 심부름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  (14쪽)

 


  예수님은 어디에서 나셨을까요. 지구별에서 나셨지요. 지구별은 어떤 별일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별이지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별은 어떤 별인가요. 예수님이 나신 별이지요. 예수님은 어떤 넋일까요. 사랑이 그득한 넋이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사랑이 그득한 지구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넋이에요. 누구나 사랑 그득한 넋입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을 나누면서 맑은 눈빛으로 환하게 웃는 사람들입니다.


  가슴속에 고운 사랑 있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속에 맑은 사랑 있으면 언제나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로타는 돈도 힘도 이름도 딱히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로타는 스스로 씩씩하고 꿋꿋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로타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외치거든요. “참말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마음으로 외치고 속삭이며 이야기할 때에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스스로 할 수 없다 여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못해요. 스스로 할 수 있다 여기는 사람은 참말 스스로 해요.


.. 아빠도 말했어요. “아무렴, 다른 전나무들은 다 잊어도 로타의 전나무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가만히 이런 생각을 했어요. ‘신기해. 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 크리스마스트리를 구하는 일이든 뭐든 다 할 수 있어. 맞아. 정말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  (28쪽)

 


  아름다운 빛이 별과 함께 지구로 찾아와요. 아름다운 사랑이 서로서로 마음속에서 샘솟아 지구별을 감돌아요. 내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우리 살가운 이웃한테 건네요. 우리 살가운 이웃이 건네는 사랑을 즐겁게 내 마음으로 받아요. 아이들하고도 주고받아요. 곁님하고도 나누어요.


  함께 하기에 즐거운 사랑입니다. 같이 나누기에 기쁜 사랑입니다. 함께 걷기에 즐거운 삶입니다. 같이 돕고 돌보기에 기쁜 삶입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인데, 이 예쁜 책에 적힌 글월은 어린이 눈높이와 걸맞지 않습니다. 어린 로타는 그림책에서 ‘다섯 살’로 나와요. 한국 나이로는 일곱 살이라 할 만하지 싶습니다. 곧, 한국으로 치면 일곱 살 어린이 눈높이로 맞추어 이 그림책 글월을 가다듬어야 올바릅니다. 여덟 살도 아홉 살도 아닌 일곱 살 눈높이로, 초등학생 교과서에 나오는 말마디나 어른들 읽는 인문책에 나오는 말마디 아닌 일곱 살 어린이 말마디에 맞추어, 신문이나 방송에서 흐르는 말투 아닌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듣고 배울 말투로 추슬러야 아름답습니다.


 허풍이 너무 심하네 → 허풍이 너무 세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 겨울 방학이 되었고
 별로 어렵지 않을 → 그리 어렵지 않을
 로타네 가족이 사는 → 로타네 식구가 사는
 아줌마한테 안부 전해 주렴 → 아줌마한테 잘 계시느냐 말씀 여쭈렴
 빵 봉지 속에 들어가 있어 → 빵 봉지에 들어가
 게다가 속도도 빨랐어요 → 게다가 무척 빨랐어요
 집에 도착했을 때 → 집에 닿았을 때
 로타가 힌트를 주었어요 → 로타가 귀띔을 했어요
 얼마나 겁을 먹고 있을지 → 얼마나 무서워 할는지
 너무 울적하니까 → 너무 슬프니까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어요 → 큰 소리로 외쳤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자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자
 혹시 쓰레기 더미 맨 위에 → 설마 쓰레기 더미 맨 위에
 절대, 절대 안 배울 거야 → 다시, 다시 안 배워
 스스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답니다 → 스스로도 놀랄 만했답니다
 이만큼이나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 이만큼이나 하자면 쉬운 일은 아니죠
 화를 내며 연방 으르렁거렸지만요 → 골을 내며 자꾸 으르렁거렸지만요
 하지만 트리는 꼭 있어야 된다고요 → 그렇지만 나무는 꼭 있어야 된다고요
 자, 식사하자 → 자, 밥 먹자
 못 구하면 그때는 단념하는 거다 → 못 사오면 그때는 그만두자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 짐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전나무는 아주 근사했지만 → 전나무는 아주 멋졌지만
 로타의 전나무는 영원히 기억할 거야 → 로타 전나무는 늘 떠올리겠어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아름다울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빌어요. 일곱 살 어린이가 어떤 말을 쓰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게다가, 로타네는 도시 한복판이 아닌 고즈넉한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숲으로 둘러싸이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조용한 마을에서 살아갑니다. 한결 상냥하면서 부드러운 말마디를 떠올려야지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가장 사랑스럽고 따사로우면서 환한 말을 익힐 수 있도록, 이 그림책 말마디를 하나하나 다듬어야지 싶습니다.


  어른들이 익숙하게 쓴대서 아무 말이나 아이한테 들려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니까 일곱 살 어린이한테 들려주어도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가 다 옳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이 다 알맞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나오거나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서로 살갑고 사랑스레 나눌 아름다운 말을 헤아릴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그리고, 일곱 살 어린이가 글을 깨쳤다고 할 적에, 이 아이가 다섯 살 동생한테 물려줄 말을 떠올려요. 일곱 살 어린이가 네 살이나 세 살 동생한테 말을 가르치는 모습을 헤아려요.


  어른들은 일곱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때에 아름다울까요. 일곱 살 어린이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배워서 제 어린 동생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밤하늘 그득 채우는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생각해 봐요.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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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1-08 05:56   좋아요 0 | URL
우리 집 아이들은 이 <로타와 자전거>를 오랫동안 보다 못해
낙서까지 해 놓아서... -_-;;;;
큰아이가 하도 저 그림책을 좋아한 나머지
볼펜으로 그림에 '그림 그린다'며 죽죽 그은 곳이 여럿 있답니다... ㅠ.ㅜ

<난 뭐든지 할 수 있어>가 이번에 새로 나온 만큼
<로타와 자전거>도 곧 새로 나오겠지요...

막내 2014-06-30 13:27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막내 2014-06-30 13:27   좋아요 0 | URL
<로타와 자전거>는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출판사) 제목으로 이번에 출간되었습니다. 소식 전해드려요~~
 

[함께 살아가는 말 186] 보고 배우기

 


  아이들은 보고 배웁니다. 둘레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른들도 보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뛰노는 넋을 배웁니다. 어른들은 해맑은 마음을 배웁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과 꿈이 되어 고운 빛이 됩니다. 아이들은 ‘학습(學習)’도 ‘견습(見習)’도 ‘수습(修習)’도 ‘견학(見學)’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배웁니다. 차근차근 익힙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견습·수습·견학’은 거의 같은 낱말이고, ‘견학’ 말풀이를 “‘보고 배우기’로 순화”로 적어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국말사전에 ‘배움’이나 ‘배우기’라는 낱말을 따로 실으면 되겠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한국말사전을 누구나 즐겁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삶을 어른과 아이가 서로 ‘보고 익힐’ 수 있도록, 함께 웃으며 어깨동무하면 참으로 기쁘겠습니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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