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잎놀이 1

 


  대잎 하나 입에 물고 걸어다니는 아이들. 대잎을 서로 물고 응응거리는 아이들. 좀 질기기는 할 테지만, 잘 씹으면 대잎도 먹을 만하지. 입에 물고 혓바닥처럼 길게 내미니. 눈앞에서 뭔가 대롱대롱 흔들리니 이 땅이 다르게 보이니. 곱게 곱게 잎사귀를 쓰다듬어 주렴.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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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는 두 갈래 길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말하자’ 하고 생각할 적에, 으레 두 갈래 길에 선다. 이 책을 이웃한테 알려주면서 선물할 만한가, 이 책은 조용히 서재도서관에 갖다 두고는 마음속에서 잊을 만한가.


  어느 책이든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한 뒤 읽는다. 다 읽고 나서 즐거운 책이든, 다 읽은 뒤에 아쉽구나 느끼는 책이든, 스스로 살림돈을 덜어 책을 장만한다. 그러니,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말하자’ 하고 쓰는 느낌글은 으레 두 갈래 길에 선다. 내 살림돈을 들여서 장만한 이 책이 즐거웠다면, 조금 들인 책값으로 이렇게 큰 보람을 누리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살림돈을 그러모아 장만한 이 책이 아쉽거나 모자라거나 따분했다면, 조금 들인 책값조차 씁쓸하거나 쓸쓸하다.


  나는 어느 책 하나를 아쉽거나 안타깝다고 느낄 테지만, 다른 이는 이 책을 아쉽지 않다고 느끼거나 안타깝지 않다고 느끼리라. 왜냐하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펴내지 않았겠는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는 냇물을 즐겁게 마신다. 다슬기와 가재가 함께 살아가는 냇물을 즐겁게 마신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수돗물을 마신다. 시골마을 여럿을 잠기게 하고 시멘트로 둑을 세운 커다란 댐에 가둔 물을 시멘트관을 잇고 이어서 화학처리와 살균처리를 한 수돗물을 마시는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다. 정수기로 거르더라도 수돗물은 수돗물이다. 수돗물에서 나는 냄새를 느끼는 사람은 페트병에 담긴 샘물을 마시는데, 페트병 샘물도 샘물이지만, 플라스틱통에 담긴 채 퍽 오랜 날 고인 샘물이다. 흐르는 물이 아니다.


  골짜기와 들과 숲 사이를 흐르는 냇물을 마시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날 아주 드물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이 99:1이라 할 만하니, 1만 냇물을 마실는지 모른다면, 1조차 냇물을 마시지는 않는다. 시골에도 수돗물이 들어온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와 농협에서는 ‘냇물이 안 깨끗하다’는 이야기를 자꾸 퍼뜨린다. 아마 999:1쯤 되지 않을까.


  냇물맛을 모르고 냇물내음을 모르는 사람한테 냇물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냇물빛과 냇물노래를 들려주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조용히 믿는다. 우리 몸을 이루는 물을 헤아리고, 지구별을 둘러싼 빗물과 바닷물을 떠올린다. 어느 누구도 빗물과 바닷물을 화학처리나 살균처리 하지 않는다. 바닷물을 화학처리나 살균처리 한다면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와 조개는 모두 죽는다. 공장에서 냇물에 쓰레기를 흘려 보라. 논밭에서 냇물에 농약을 풀어 보라. 이때에도 물고기는 몽땅 죽는다. 발전소에서 열폐수를 바다에 쏟아부으면 ‘따뜻한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는 몰릴는지 모르나, 발전소 둘레 바다는 몽땅 망가진다.


  독자 자리에 서건 작가 자리에 서건, 모든 사람들이 별을 떠올릴 수 있기를 빈다. 별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똑같이 뜬다. 별은 낮에도 밤에도 똑같이 저 하늘에 있다. 매캐한 먼지띠에 가려 별을 못 본다 하더라도 별은 틀림없이 저 하늘에서 맑게 빛난다. 지구도 우주 한쪽에서 맑게 빛나는 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누구나 맑은 별빛을 온몸으로 담으면서 살아가는 숨결이다.


  책이 되어 준 나무한테 아름다운 빛을 흩뿌리는 삶이 되기를 빈다. 무늬로만 책이 아닌, 속살로 살뜰히 책이 될 수 있기를 빈다. 아름다운 빛을 알뜰히 품는 책이 태어날 수 있기를 빈다. 아름다운 빛을 즐겁게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빈다.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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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망한 생 문학.판 시 15
박상우 지음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44

 


시와 벼랑
― 이미 망한 生
 박상우 글
 열림원 펴냄, 2007.9.3.

 


  고구마를 익힙니다. 흙을 맑은 물로 헹군 뒤 냄비에 불을 아주 작게 올립니다. 냄비를 천천히 달구는 동안, 고구마 곪은 자리를 칼로 도려냅니다. 얼마쯤 걸리려나. 이제껏 냄비에 고구마를 천천히 익힐 적에 으레 한 시간 즈음 걸렸습니다. 스텐냄비에 물 없이 작은 불로 달구어 익히면, 퍽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물로 삶을 적하고는 견줄 수 없이 새로운 맛이 나요. 한 시간 즈음, 때로는 한 시간 남짓 고구마를 익힐 적에 감자를 함께 익히기도 하고, 달걀을 함께 익히기도 합니다. 이때에도 물로 감자를 삶거나 달걀을 삶을 적에는 볼 수 없는 맛이 있어요.


  네 살 작은아이가 자꾸자꾸 아버지를 채근합니다. “아버지, 언제 먹어요?” “고구마 냄새 나!” 하고 잇달아 말합니다. 아직 덜 익었으니 기다리라 하면, “왜 안 먹어?” 하면서 우는 얼굴이 됩니다. 얘야, 기다려야 한단다, 고구마를 삶거나 감자를 삶거나, 찬찬히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야 맛나게 익거든.


  국을 끓여 국부터 마시라고 하니 작은아이는 싫다 합니다. 고구마 익는 냄새가 부엌 가득 퍼집니다. 얼른 고구마를 먹고 싶습니다. 아직 익지 않은 줄 생각하지 못합니다. 덜 익은 고구마를 그냥 꺼내서 줄까 하다가, 아무래도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보채더라도 잘 익은 고구마를 주어야지요. 달래고 또 달래면서 기다리도록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만화책을 보면서 씩씩하게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자, 이제 먹어라.” 하고 부르니 두 아이는 밥상맡에 앉아 신나게 먹습니다. 조금 더 익혀서 아주 맑은 노란빛이 빛날 적에 주고 싶지만, 아이들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다른 때에 주던 달고소한 고구마를 건네지 못합니다.


.. 내 마음은 몇천 년 전 인간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 스스로 축복을 내리노라 / 내 마음은 聖賢들의 마음과 같다는 것에 대하여 ..  (서시, 단세포 동물)


  익힌 고구마를 아이들 밥그릇에 담아서 내놓았습니다. 나도 함께 먹을까 하다가 나중에 먹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고구마가 맛있어서 더 달라고 할 수 있어요.


  가만히 지켜봅니다. 생각대로 두 아이 모두 고구마를 더 달라 합니다. 한 번 더 주고, 두 번 더 줍니다. 참말 내가 먹을 몫을 남겨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 빙그레 웃으며 내어줍니다. 너희들 다 먹어도 돼. 너희들 배불리 먹고 씩씩하게 놀 기운 얻으면 돼.


  어느 어버이라 하든 아이들 맛나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부르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즐겁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삶을 살찌우는 빛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 내 마음에는 / 세상의 잡것들이 들어갈 수 있는 호리병이 있어 / 무엇이든지 들어오면 / 빠져나가기 힘듭니다 ..  (76쪽)


  삶을 살찌우는 빛처럼, 삶을 무너뜨리는 힘도 우리 곁에 있을까요. 아무래도, 모든 빛과 힘은 우리 둘레에 있겠지요. 스스로 삶을 살찌우고, 스스로 삶을 무너뜨려요. 남이 내 삶을 살찌우지 않습니다. 남이 내 삶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싹트는 이야기로 삶을 살찌우고, 내 마음에서 끄집어낸 넋으로 삶을 흔들거나 무너뜨립니다.


  박상우 님 시집 《이미 망한 生》(열림원,2007)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진 삶이라면, 나 스스로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싱그러이 숨쉬는 삶이라면, 나 스스로 어느새 싱그러이 숨쉬기 때문입니다.


  박상우 님은 왜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진 삶을 노래할까요. 박상우 님 둘레에서 마주하는 삶이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졌기 때문일까요. 박상우 님 스스로 이녁 삶이 이미 망가지거나 무너졌기 때문일까요. 망가지거나 무너진 삶은 누가 일으켜세울까요. 망가지거나 무너졌으니 그대로 두기만 하면 될까요.


.. 우리 집 마당의 앵두나무는 / 올해도 꽃이 피고 / 열매를 맺었다 ..  (태치갈리아)


  당근토막을 접시에 놓고 물을 조금 부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새 잎이 돋습니다. 물을 꾸준히 주고 볕좋은 자리에 놓으면 당근잎이 쑥쑥 오릅니다.


  나무는 줄기가 잘려도 새 가지를 내놓습니다. 추위가 닥쳐 잎을 모두 떨구어야 해도, 추위가 수그러드는 봄이 찾아오면 새잎을 다시 내놓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생채기가 난대서 언제나 아픈 채 살지 않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모르거나 못 느끼는 사이에 생채기가 아뭅니다. 생채기가 아문 자리에 새살이 돋습니다. 생채기가 아물어 딱지가 지지 않으면, 어느 사람이든 죽고 말아요. 죽지 않고 살아가는 까닭은 생채기가 아물어 딱지가 지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 똥을 눕니다. 똥을 누고 나서 밥을 먹습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한 해가 지납니다. 나이를 먹고, 삶을 이룹니다. 꿈을 펼치고, 사랑을 나눕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온 들판과 숲과 마을에서 풀이 돋고 나무가 꽃과 잎을 틔웁니다.


  벼랑 끝에서도 풀이 자라고 나무가 뿌리를 내립니다. 풀과 나무는 어디에서도 벼랑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어디에서도 풀과 나무 스스로 자라거나 살아갈 터라고 느낄 뿐입니다. 사람한테도 벼랑은 따로 없다고 느껴요. 도시에 살기에 더 낫지 않고, 시골에 살기에 덜 떨어지지 않아요. 한복판에 있기에 훌륭하지 않으며, 구석이나 끄트머리에 있기에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쓰기에 따라, 한복판도 벼랑이요 벼랑도 한복판입니다. 4347.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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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3) 불안

 

나도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불안이 되게 심했어
《하이힐과 고무장갑-행복의 민낯》(샨티,2013) 26쪽

 

  ‘보통(普通)’은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다른’이나 ‘여느’로 손질해서 “다른 사람”이나 “여느 사람”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에 비(比)하면’은 ‘-에 견주면’이나 ‘보다’나 ‘-에 대면’으로 손봅니다. ‘심(甚)했어’는 ‘컸어’나 ‘많았어’로 다듬어 줍니다.


  한자말 ‘불안(不安)’은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3) 몸이 편안하지 아니함 (4) 마음에 미안함”을 뜻한다고 해요. ‘조마조마함’과 ‘뒤숭숭함’과 ‘느긋하지 않음’ 같은 느낌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불안이 되게 심했어
→ 걱정이 되게 컸어
→ 되게 불안했어
→ 되게 조마조마했어
→ 되게 힘들었어
→ 되게 걱정했어

 

  “두려움이 되게 컸어”처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알맞게 쓰는 한국 말투라면 “되게 두려웠어”입니다. “즐거움이 되게 컸어”처럼 쓸 수도 있어요. “오늘 너를 만나서 즐거움이 되게 컸어”처럼 쓴대서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맞춤하게 쓰는 우리 말투라면 “오늘 너를 만나서 되게 즐거웠어”예요.


  이 보기글을 놓고 보면, 한자말 ‘불안’을 그대로 두려면 “되게 불안했어”로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이 한자말을 덜고 싶으면 “되게 조마조마했어”나 “되게 걱정했어”처럼 다듬을 수 있어요.

 

불안에 싸이다 → 두려움에 싸이다
불안에 떨다 → 두려움에 떨다 / 두려워 떨다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 몹시 조마조마한 얼굴로 /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혼자 있기가 불안하여 → 혼자 있기 두려워서 / 혼자 있기 걱정스러워서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한글 ‘불안’으로 적는 다른 한자말 두 가지가 더 나옵니다. 하나는 ‘佛眼’으로 “부처의 눈”을 뜻한다고 해요. 다른 하나는 ‘佛顔’이고 “부처의 얼굴”을 뜻한다는군요. 아무래도 불교에서 쓰는 한자말이로구나 싶은데, 이런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습니다만, ‘부처 눈’이나 ‘부처 얼굴’이라고 할 때에 한결 널리 알아들으면서 더 손쉽게 쓸 만하리라 봅니다. 애써 한자로 옮겨적는 낱말을 쓴다고 해서 부처님 뜻을 두루 퍼뜨리지 않아요.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어디에서나 또렷하게 주고받을 만한 낱말일 때에 훨씬 즐겁고 사랑스레 깊은 이야기를 나누리라 생각합니다. 4347.1.7.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도 여느 사람들에 대면 되게 조마조마했어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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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콘크리트 블록과 석축으로 조성됐던 저수호안 총 10.5km를 친환경적 자연석과 물억새 등 다양한 식재를 이식해 생태하천으로 복원했다.

 

..

 

요즈음 서울시 공문서 '손질해 주기'를 하는데,

한번 이 글월을 손질해 보시겠어요? ㅋㅋㅋ

아니, 이 글월은 무슨 소리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셈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셔요. 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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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1-08 04:18   좋아요 0 | URL
저는 미국에서 글쓰기를 배울 때 (학사/로스쿨 모두) 가능하면 쉽고 간결하게 쓰도록 배웠어요. 어려운 단어보다는 읽고 눈에 쏙 들어오는 그런 글을 써야 잘 쓰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한국은 반대인 듯 합니다. 공무원, 법률서류, 교수님들이 쓰는 글을 보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만들어야 잘 쓴 글이라고 믿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파란놀 2014-01-08 06:02   좋아요 0 | URL
공문서뿐 아니라,
신문도 책도...
또 책을 말하는 서평도...
다 '어렵고 딱딱한 글'투성이예요.
아이들 읽으라고 내놓는 동화책이나 동시집에까지
'어렵고 딱딱한 글'에다가
서양 번역투와 일본 말투를 쓰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