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똑같은 교과서를 똑같은 책상에 펼치도록 해서 똑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라 내몰 수 없다. 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다 다른 빛이 있어, 다 다른 꿈을 꾸면서 다 다른 하루를 누리기 마련이다. 이 아이들한테서 샘솟는 고운 이야기를 따사롭게 보듬는 몫이 어른이 할 일이라고 느낀다.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가 아니다. 유명인이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나 공무원이 되어야 할 아이가 아니다. 아름다운 빛을 나누는 사람으로 우뚝 설 숨결인 아이들이다. 코끼리 ‘구룬파’는 저를 수수하게 바라보면서 마음을 연 이웃이 있는 곳에서 저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굴 때에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깨닫는다. 울타리도 교과서도 영어교육도 없이, 그예 모두 신나게 뛰노는 재미난 숲 유치원을 만든다. 4347.1.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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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 글, 호리우치 세이치 그림 / 한림출판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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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마한 달팽이는 작은 당근 한 뿌리이면 넉넉하다. 조그마한 달팽이가 새끼를 낳아도 작은 당근 한 뿌리이면 모두 맛나게 먹는다. 그리고, 작은 달팽이와 당근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야기 하나를 지어 그림책으로 빚는다. 달팽이도 귀엽고 당근도 사랑스럽다. 달팽이가 당근을 먹으며 똥을 누는 한삶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는 오늘 하루도 즐겁다. 그러니, 날마다 ‘좋아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웃음씨앗을 흩뿌린다. 4347.1.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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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토 요코 지음, 변은숙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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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옥 님 만화책 (도서관일기 2014.1.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우리 도서관으로 마실을 오는 분들은 으레 ‘아직까지 간판조차 안 붙인 낡은 폐교 건물’에 먼저 놀라고, ‘폐교 건물을 그득 채운 책’에 다시 놀라며, ‘사진책도서관이라 하면서 만화책이 무척 많다’며 새삼스레 놀란다.


  그런데, 그림책이나 국어사전 또한 엄청나게 많은 모습에는 그리 안 놀란다. 수백 가지 국어사전을 갖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텐데, 이런 모습에는 왜 안 놀랄까. 아무래도 국어사전을 여느 때에 들여다볼 일이 없어, 저 책들이 국어사전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기 때문일까. 여느 때에 그림책을 ‘책으로 여긴’ 적이 없어,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이 퍽 많은 모습에도 그리 놀랄 일이 없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다.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치고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 ‘두툼한 인문책 읽기’만 생각하지, ‘그림책 읽기’를 생각하지 않는다. ‘만화책 읽기’롤 ‘책읽기’로 여기는 평론가나 지식인이나 기자 같은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책을 읽는다’는 틀에 넣지 않으니, 그림책이나 만화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그림책 작가와 만화책 작가가 얼마나 땀을 쏟고 힘을 들이는지를 하나도 모른다. 그림책 작가가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려 어린이부터 할매 할배까지 두루 즐길 만한 책 하나 내놓기까지 흘리는 땀빛을 알아채는 어른이 꽤 적다. 만화책 작가가 조그마한 만화책 한 권에 그림으로 이야기를 알알이 엮으려고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읽고 다리품을 팔며 손품을 들이는가를 알아보는 어른이 무척 적다.


  강경옥 님 만화책을 새삼스레 들여다본다. 요즈막에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를 표절하여 ‘재미난 소재’를 가로챈 연속극이 널리 눈길을 끈다. 그 연속극을 보는 이들은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를 읽지 않았으리라. 이 만화책이 1만 권 넘게 팔렸는지 알 길도 없지만(얼마 안 팔린 듯하다. 며칠 앞서 새책으로 다시 장만하고 보니 간기에 고작 2쇄라 찍힐 뿐이니), 표절 말썽이 불거진대서 만화책을 씩씩하게 사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나저나, ‘사진책도서관’에 왜 만화책이 있을까? 사진책도서관에 왜 만화책을 둘까? 아주 마땅한 소리이지만, 만화책이 있어야 하니까 있고, 만화책을 둘 만하니까 둔다. 만화책 한 권을 엮는 작가들은 사진책도 인문책도 어린이책도 국어사전도 곁에 두면서 ‘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 사진책을 한 권 제대로 내놓으려고 하는 작가라면, 사진책뿐 아니라 다른 그림책과 만화책과 인문책과 어린이책을 두루 알뜰히 읽으면서 우리 삶과 사회와 이웃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사진책 읽기’를 즐겁게 하자면 ‘그림책 읽기’를 즐겁게 할 줄 아는 눈매가 있어야 한다. ‘사진책 읽기’를 사랑스레 하자면 ‘만화책 읽기’를 사랑스레 할 줄 아는 눈빛이 있어야 한다. 사진책만 들여다본대서 사진책을 잘 읽지 못한다. 사진기만 잘 다룬대서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돈만 많대서 기부나 이웃돕기를 잘 하지 못한다. 글만 잘 쓴대서 신문글을 잘 쓰거나 우리 이웃 이야기를 널리 알리지는 못한다.


  마음이 있어야 사진을 찍고 사진책을 읽는다. 마음이 있어야 아름다운 빛을 글로 담고 이웃들이 쓴 글을 읽을 수 있다.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소식지인 〈삶말〉 11호를 내놓았다. 도서관에 갖다 놓는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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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무나 쓰는가

 


  책은 아무나 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샘솟는다면, 책은 어느 누구라도 쓴다. 책은 아무나 못 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속에서 샘솟지 않으면, 아무리 이름난 글쟁이라 할지라도 책은 함부로 못 쓴다.


  책은 아무나 쓴다. 재벌 우두머리도 쓰고, 대통령도 쓰며, 시장이나 군수나 의사나 변호사도 쓴다. 시골 할매도 쓰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도 쓰며, 유치원 교사도 쓴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쓰고, 청소 일꾼도 쓰며,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일꾼도 쓴다. 꼭 작가나 시인이나 소설가나 교수나 학자만 책을 쓰란 법이 없다.


  책은 아무나 못 쓴다. 시인이기에 시집을 내야 하지 않는다. 사진가라서 사진책을 내야 하지 않는다. 학자라서 논문책이나 학술책을 내야 하지 않는다. 하고픈 말이 없이 실적쌓기를 할 생각으로 내는 책은 책이라 할 수 없다. 나누고 싶은 빛이 없이 이름쌓기를 할 뜻으로 내는 책은 책이 되지 않는다. 지구별을 사랑하는 넋이 없이 돈쌓기를 할 마음으로 내는 책은 책꼴은 갖추되 책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다.


  책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이 있어야지. 책에 담을 이야기를 온몸으로 부대낀 삶이 있어야지.


  요즈음은 ‘책을 말하는 책’이 곧잘 나온다. 스스로 다리품을 팔지 않고도 ‘책 몇 권 뒤적이거나 읽은 다음’ 이럭저럭 자료와 정보를 추슬러서 내는 ‘책을 말하는 책’이 더러 나온다.


  책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을 말릴 수 없고, 말릴 까닭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다. 죽어서 이 땅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쓴다면, 책이나 신문 같은 자료만 남았을 테니, 죽은 사람 이야기는 책을 뒤져서 쓸밖에 없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안 죽고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 이야기를 쓸 때에는? 이때에도 책만 뒤져서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쓸 만할까? 멀쩡히 살아서 날마다 새로운 빛을 일구는 사람 이야기를, 이녁을 안 만난 채 써도 될 만할까?


  쉽게 쓰는 책을 쉽게 읽으리라 본다. 쉽게 써서 쉽게 읽히는 책은 쉽게 잊히거나 사라지리라 본다. ‘알아듣기 쉽게 쓰는 글’과 ‘깊이 생각을 가다듬지 않은 채 쉽게 쓰는 글’은 사뭇 다르다. 죽어서 이 땅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쓰더라도, 죽은 그이가 살아서 움직이던 곳을 찾아가서 가만히 돌아보고 난 뒤에 쓰는 글이랑, 죽은 그이가 남긴 글조각만 붙잡으면서 쓰는 글은 매우 다르다. 오늘날은 인터넷 시대라 할 테니, 인터넷만 뒤져도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 그때그때 쓴 글’을 손쉽게 뒤져서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어쩌면 ‘굳이 안 만나고도 인터넷 살피기’만으로도 ‘마치 만난 듯이’ 글을 쓸 만하기도 하다.


  참말, 책을 아무나 쓰는 때가 되었구나 싶다. 책을 아무나 쓰면서 아무나 책을 읽는 때가 되었구나 싶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아무나 책을 쓰는’ 우리 모습은 어쩐지 슬프거나 안쓰럽지 않은가? ‘아무나’나 아니라 ‘누구나’로 거듭나고, ‘누구나’에서 ‘모두’로 다시 태어날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답지 않을까? ‘누구나 책을 쓰’고 ‘누구나 책을 읽’으면서, ‘모두 책을 쓸 수 있’고 ‘모두 책을 즐길 수 있’는 삶을 맞이할 때에, 비로소 이 땅에 즐거운 웃음과 아름다운 사랑이 꽃피우지 않으려나?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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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11 12:41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책을 만드는 일'을 무슨 상품 만들 듯이 만들고 그것도 어떨 땐 불량품들 만들기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진짜 작가도 드물어져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는 사물을 해석하기보다도 해석을 해석하는 데 더 일이 많으며, 책을 놓고 쓴 책이 다른 제목을 두고 쓴 것보다 더 많다.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주석하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너무 자주 갖게 됩니다. 이미 몽테뉴가 살던 때부터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널리 퍼져있었던 듯하니 세월을 탓할 수도 없겠다 싶기는 합니다.

* * *

책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연구의 노력을 아껴 두고 상투어로 잡탕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진부한 소재 외에는 소용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지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소크라테스가 아주 재미나게 에우티데모스를 질책하던 식으로, 학문의 우스운 성과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데 소용된다. 나는 작가가 여러 박학한 친구들에게 이것을 조사해 달라고 하고, 이 다른 재료로 저것을 꾸며 달라고 당부하며, 자기로서는 연구하지도 않고 들어 본 일도 없는 것을 가지고 일을 계획하고, 이 알지 못하는 재료의 묶음을 기교있게 엮어 놓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책을 꾸며 놓는 것을 보았다. 잉크와 종이만이 자기 것일 뿐이다. 그것은 솔직히 말한다면 어떤 책을 사거나 빌려 오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책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알림이 아니고,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는 바, 그가 책을 만들 줄 모른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나는 그 많은 빌려 온 것으로부터 어떤 것은 태평하게 표절하며, 그것을 가장하고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새로운 용도에 사용한다. 그 글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말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거기에 내 손으로 다른 특수한 의미를 주어 가며, 그것을 그만큼 아주 순수하게 남에게서 따온 것이 아니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도둑질한 것을 드러내 보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들은 법 앞에서는 나보다 신용이 있다. 우리 따위의 본성론자(本性論者)들은 인용하는 명예보다도 창작의 명예를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게 평가한다. (몽테뉴)

파란놀 2014-01-11 18:00   좋아요 0 | URL
몽테뉴 님이 밝힌 좋은 글월 잘 읽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잉크와 종이'조차
그들 것이 아니라고 느껴요.
그들은 잉크와 종이조차
스스로 만들지 않으니까요......
 

산국 책읽기

 


  적잖은 지자체에서 가을이면 국화잔치를 연다. 시골사람더러 놀러오라는 꽃잔치는 아니고, 도시사람더러 찾아오라는 꽃잔치이다. 도시로 모두 떠나고 텅 비다시피 하는 시골에서 기차역 둘레를 온통 코스모스밭으로 꾸미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시 시골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벌이는 꽃놀이라 할 텐데, 놀러오는 사람은 부쩍 는다 하지만, 이런 시골로 돌아와서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도시로 나간 사람이 시골로 돌아온다고 할 적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굳이 시골로 가서 살겠다고 할 적에, 이런저런 꽃잔치나 꽃놀이가 있기에 가지는 않으리라 느낀다. 어쩌면, 꽃잔치나 꽃놀이 때문에 시골로 가서 살겠노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흙을 아끼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살려는 사람은 흙을 만지고 싶기 때문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길든 흙이 아니라, 구수하고 포근한 흙을 보듬고 싶어 시골로 간다. 그러니, 도시사람이 시골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지자체 행정이라면, 시골에서 살며 흙을 일구는 할매와 할배부터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도록 이끌어야 올바르다. 아름다운 시골과 사랑스러운 숲이 되도록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시골 군청에서 따로 꽃잔치나 꽃놀이에 돈을 퍼붓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시골 들과 숲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또 겨울에는 겨울대로 온갖 들꽃이 곱게 피고 지기 때문이다. 들꽃을 들꽃대로 아끼고, 숲꽃을 숲꽃대로 바라볼 줄 안다면, 시골은 한 해 내내 들꽃잔치 벌어지는 줄 깨달으리라. 십일월로 접어들며 물결치는 논둑 산국잔치도 곱고, 산국잔치 곁에서 일렁이는 억새잔치도 참으로 곱다. 어느 누구도 심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돈을 들이지 않는다면, 들과 숲은 우리한테 어여쁜 빛을 나누어 준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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