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봉오리 하나

 


  우리 집 동백꽃 봉오리는 언제 터지려나 하고 날마다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하나 찾아냅니다. 그래, 여기 안쪽에서 곱다시 숨어 기다리는구나. 너보다 바깥쪽에서 햇볕 더 듬뿍 받는 봉오리들 많은데, 안쪽에 깃든 네가 먼저 활짝 피어나겠구나. 며칠쯤 걸릴까. 며칠이 지나면 네 봉오리가 살그마니 열리면서 흐드러지게 터지는 붉은 빛깔 될까. 마당에서 노는 작은아이를 부른다. “보라야, 저기 봐. 빨간 봉오리 보이니? 우리 집 동백나무도 곧 꽃송이 하나가 터질 듯해.” 한참 두리번거리던 작은아이도 빨간 빛 살짝 내민 봉오리를 알아본다. 이제부터 기운내어 벌어질 일만 남았다. 즐겁게 기다린다.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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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1
마츠모토 코유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2

 


사랑을 가꾸는 ‘푸른 손가락’
― 그린 핑거 1
 마츠모토 코유메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5.25.

 


  어제 아침 전남 고흥에 아주 드문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한 해에 한 차례 올까 말까 한 손님입니다. 손님은 하늘에서 하얀 빛으로 찾아옵니다. 나풀나풀 춤을 추면서 찾아옵니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는 가벼운 몸짓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찾아옵니다.


  손님은 우리 집 지붕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마당을 빙 돌다가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곁에서 노래합니다. 그러고는 뒤꼍과 이웃집으로 골고루 찾아가고,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에도 두루 나들이를 합니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은 낮 열두 시를 지날 무렵부터 천천히 사라집니다.


-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펼쳐지는 광경.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남동생이 까불고,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초록과 빛에 둘러싸인, 우리 가족의 행복의 정원.’ (6쪽)
- “내일이면 필 테니 물 좀 달라고 하고 있는걸.” “꽃은 말 같은 거 하지 않아.” “엄마는 늘 지켜보기 때문에 들리는 거란다.” (14쪽)
- “흐음, 그럼 물과 비료를 주면 꽃은 자라는 거네. 간단하네.” “아니,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응? 그게 뭔데” “후후후, 그건 말이지, 코바나, 사랑이야. 정원으로 나와서 바라봐 주고 사랑해 주면 식물의 목소리가 들린단다.” (16쪽)

 


  새봄을 기다리며 이제 막 돋은 풀이 모두 눈에 덮였습니다. 춥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눈은 이내 녹아 땅으로 촉촉히 스며듭니다. 더 기운을 내라고, 씩씩하게 힘을 내라면서, 겨울눈이 소복소복 쌓였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무리 겨울에도 포근한 고흥이라지만, 눈바람이 한 차례쯤 불면서 숲과 들을 간질여야 겨울이 지나가는 줄 알겠지요. 풀과 나무마다 눈이불을 한 번쯤 뒤집어써야, 아하 겨울이 지나가지, 하고 알아차리겠지요.


  눈이 그득그득 내렸다가 감쪽같이 녹은 들빛은 한결 보드랍습니다. 지난가을부터 시든 풀은 누르스름한 물이 쪼옥 빠져 희멀건 빛이 되고, 희멀겋게 마른 풀포기 사이로 앙증맞게 조그마한 싹이 조물조물 오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빛이지만, 해마다 새롭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봄빛인데, 해마다 새삼스럽습니다. 들과 숲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 애써 베거나 뽑지 않아도 누르스름하거나 희멀건 풀포기는 모두 사라집니다. 새로 오르는 풀줄기는 말라죽은 풀포기를 털어내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말라죽은 풀포기는 봄이 끝나고 여름이 열릴 무렵 참말 몽땅 사라져요.


  흙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흙땅에서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요. 흙땅에서는 어떤 삶과 죽음이 갈마드나요.


- “내가 여기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건 부들레야 때문일지 몰라. 여름 내내 끊임없이 꽃을 피워서, 그 주변에 나비가 날아다녔거든.” (43쪽)
- “아빠와 엄마가 만들었던 정원이 아니라, 내 행복의 정원을 만들 거야! 그게 아빠와 엄마의 바람이란 걸 알았어.” (56쪽)

 


  봄은 늘 풀빛으로 찾아옵니다. 봄빛은 풀빛입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풀빛 사이사이 꽃빛이 맑고, 꽃빛이 한창 흐드러지노라면 어느새 여름 문턱입니다. 여름은 풀이 우거지는 빛이라고들 여기지만, 여름이야말로 꽃빛이 해사한 철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풀이요 여름은 꽃이며 가을은 열매입니다. 겨울은 무엇일까요? 겨울은 눈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있고, 잎과 꽃과 열매를 모두 떨군 가지마다 새로 맺는 눈이 있습니다. 겨우내 모든 나무들은 새눈을 틔우려고 힘씁니다. 새눈에 온힘을 쏟습니다. 지난 한 해 돌이키면서 새로운 한 해에 씩씩하게 돋을 눈에 모든 기운을 바칩니다.


- ‘나무, 풀, 꽃, 산, 숲, 새. 가끔 두더지, 가끔 산토끼, 가끔 너구리. 나는 이곳에서 매일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런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73쪽)
-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버리는 것. 뿌리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 가든 시클라멘에게 리셋의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난 그럴 수 없어. 걱정 마. 너희는 틀림없이 다시 살아날 거야. 내가 되살리고 말 거야!’ (79∼80쪽)


  마츠모토 코유메 님 만화책 《그린 핑거》(학산문화사,2008)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푸른 손가락’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남다른 주인공만 푸른 손가락일까요? 우리 모두 푸른 손가락인데, 우리 모두 스스로 손빛을 잊거나 잃지 않았을까요?


  어느 한 사람만 빼어난 푸른 손가락일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만 푸른 손가락이라면, 몇몇 사람만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고작 쉰 해 앞서만 해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골내기요 시골 흙일꾼이었습니다. 기껏 백 해 앞서를 살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내기이면서 시골 흙일꾼이었어요.


  인류 문명이니 문화이니 하고 말하기 앞서,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이라면, 흙을 알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사랑하는 삶을 일구었습니다.

 


- “너도 마찬가지야. 자신의 힘으로 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거야.” (17쪽)
- ‘그런 건, 식물들에겐 아무래도 좋을 일. 왜냐하면 식물은, 사람을 고르지 않으니까.’ (84쪽)
- “참 아름다워. 새싹이란 건.” (168쪽)


  ‘가꾸다’라는 낱말은 흙을 만지면서 풀과 꽃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을 가리킵니다. 요새는 ‘옷이나 몸매나 얼굴을 가꾼다’고 하는 자리에 이 낱말을 더 자주 쓰는 듯하지만, ‘가꾸다’는 처음부터 “흙을 가꾸다”입니다. 흙을 가꾸고, 집살림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꿉니다. 사랑을 가꿉니다.


  흙에서 풀이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라도록 가꾸는 손길이 바로, 살림과 마음과 사랑을 가꾸는 손빛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누구나 푸른 손가락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흙을 살리고 집살림을 가꿀 뿐 아니라 마음과 사랑을 가꿀 줄 아는 고운 빛입니다.


  사랑을 가꾸는 푸른 손가락인 줄 느끼기를 바랍니다. 몇몇 사람만 남달라서 사랑을 가꾸지 않습니다. 돈이 있거나 이름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돈과 이름과 힘은 아무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 가꿉니다. 꿈은 오직 꿈으로 가꾸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푸른 손가락 되기를 빌어요. 새봄을 앞두고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푸른 노래와 푸른 이야기를 나누는 푸른 숨결로 꿈꿀 수 있기를 빌어요.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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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76) 살려내다

 

  ‘찾다’와 ‘찾아내다’는 뜻이 얼추 비슷하지만, 쓰는 자리가 다르며 느낌이 다릅니다. ‘쓰다’와 ‘써내다’는 글을 적는 모습에서는 비슷하지만, 뜻과 느낌과 쓰임새는 다릅니다. ‘내다’라는 낱말을 움직씨 뒤에 받칠 적에 모두 붙여서 한 낱말로 삼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주 쓰고 익히 쓰면서 저절로 한 낱말이 되곤 합니다. ‘찾아내다’와 ‘써내다’가 처음부터 한 낱말이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사람들이 쓰고 또 쓰면서 어느새 한 낱말이 됩니다.


  숲에서 살려낸 우리 말
  마을에서 살려낸 숲
  바다를 살려낸 아이들


  나는 ‘내다’를 붙여 ‘살려내다’ 같은 낱말을 곧잘 씁니다. 목숨을 살려낸다든지, 우리 말글을 살려낸다든지, 푸른 숨결을 살려낸다든지, 숲과 들을 살려낸다든지, 냇물과 바닷물을 깨끗하게 살려낸다든지, 이런 자리에 씁니다. 띄어서 쓰기에는 알맞지 않고, 한 낱말로 삼아 새롭게 쓸 만하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책이나 글이 얼마 없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살 적에는 그야말로 책이나 글은 아주 드물었어요. 지난날에는 ‘읽다’ 한 가지만 있어도 넉넉했을 텐데, 오늘날에는 누구나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그림책을 두루 만나며, 도서관이 무척 많이 늘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읽다’뿐 아니라 ‘읽어내다’ 같은 낱말을 함께 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읽다’ 같은 낱말이라면, ‘돌려읽다’라든지 ‘즐겨읽다’라든지 ‘살펴읽다’라든지 ‘함께읽다’처럼 더 가지를 쳐서 새로운 낱말을 빚어도 좋으리라 생각해요.


  저마다 기쁘게 우리 말글을 살려내면 아름답습니다. 서로서로 즐겁게 우리 말글을 살려내어 어깨동무하면 어여쁩니다. 한국말사전에 실은 대로만 쓸 말이 아닌, 삶을 가꾸고 넋을 보듬으면서 차근차근 살려내어 쓸 때에 환하게 빛나는 문화와 사회가 되리라 봅니다. 민주도 살려내고 평화도 살려내면서, 꿈과 사랑을 함께 살려내면 더없이 훌륭하겠지요.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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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75) 바람막이숲

 

이렇게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 놓은 나무들을 방풍(바람막이 숲)이라고 해
《손옥희·최향숙-우리 학교 뜰에는 무엇이 살까》(청어람미디어,2012) 84쪽

 


  한국말사전에서 ‘바람막이’를 찾아보면 “바람을 막는 일. ≒방풍(防風)”처럼 풀이합니다. 이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실려 반가운 한편, 뜻풀이는 아쉽습니다. 왜냐하면, “≒방풍(防風)”과 같이 덧달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국말사전을 뒤적여 ‘방풍’을 찾아보면 뜻풀이로 “= 바람막이”라고만 적습니다. 곧, ‘방풍’은 우리가 쓸 만한 낱말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마련한 ‘순화어 사전’을 보면, ‘방풍’은 안 싣지만 ‘방풍림(防風林)’은 ‘바람막이숲’으로 고쳐쓰라고 나옵니다. 다시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바람막이’와 함께 ‘바람막이숲’이 한 낱말로 나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한자말 ‘방풍’을 먼저 적은 뒤 묶음표를 치고는 “바람막이 숲”처럼 띄어서 적었으나, “바람막이숲”으로 붙여서 적어야 올바릅니다.

 

  바람막이돌 . 바람막이집 . 바람막이울


  바람을 막기에 ‘바람막이’입니다. 바람을 막을 만한 커다란 돌을 놓거나 작은 돌을 쌓으면 ‘바람막이돌’입니다. 집을 다닥다닥 붙여 지어 바람을 막으려 하면 ‘바람막이집’입니다. 울타리를 쌓아 바람을 막으려 하면 ‘바람막이울’입니다.


  무언가를 막겠다는 뜻이니, ‘물막이’나 ‘비막이’ 같은 낱말이 가지를 칩니다. ‘벌레막이’나 ‘쥐막이’ 같은 낱말을 쓸 만한 자리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2.8.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렇게 바람을 막으려고 심어 놓은 나무들을 바람막이라고 해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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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놀이 10 ― 눈 덮인 평상 걷기

 


  눈이 소복소복 내려 평상을 덮는다.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마당을 걷던 큰아이가 평상 한쪽 눈을 긁어서 뭉쳐 놀다가, 문득 평상으로 올라서서 걷는다. 마당에서 눈길 걸을 적하고 평상에서 오락가락할 적에 느낌이 다르니? 다르겠지? 후박나무 밑에서 눈빛과 눈내음과 눈노래를 들으면서 새삼스레 즐겁지? 나도 새벽과 이른아침에 후박나무 밑에서 눈을 얼굴로 받으면서 무척 즐거웠단다.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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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2-07 19:00   좋아요 0 | URL
고흥에 눈이 내렸군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파란놀 2014-02-08 07:34   좋아요 0 | URL
낮에 해가 쨍쨍 뜨며
다 녹았지만
한때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