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우리 섬
강제윤 글.사진 / 호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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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60

 


걷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본다
―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
 강제윤 글·사진
 호미 펴냄, 2013.12.21.

 


  걷는 사람은 볼 수 있습니다. 걷지 않는 사람은 볼 수 없습니다. 걷는 사람은 이웃을 보고 마을을 볼 수 있습니다. 걷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볼 수 없고 마을을 볼 수 없습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겨울나무를 봅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봄꽃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꾀꼬리가 노래하면서 날갯짓하는 모습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기에 제비집을 보고, 나비춤을 봅니다. 걷지 않는 사람은 겨울나무를 보지 못해요. 걷지 않는 사람이 봄꽃을 볼 수 없어요. 자가용을 몰면서 꾀꼬리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고, 도시에서는 꾀꼬리가 어떤 새인지 아예 생각조차 못 합니다. 걷지 않는 사람이라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제비가 둥지를 짓거나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요.


.. 섬에도 새로운 트레일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하지만 섬의 길들은 부러 만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훌륭한 트레일이다 … 본디 이름 없는 길에 사람이 다니면서 이름이 생겼다가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이름이 없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 길은 자연의 것을 사람이 잠시 빌려 쓰던 것이다 …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분재를 한다고 나무를 캐 가고, 난과 야생화를 파내느라 섬의 산을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산마루가 닳고 등산화 바닥이 닳도록 다닌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다닌들, 이 섬의 산이 쉽게 없어지거나 바닷속으로 꺼져 버리기야 하겠는가 ..  (9, 75, 107쪽)


  걷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걷는 사람이 논일과 밭일을 합니다. 두 다리로 이 땅에 서서 들일을 합니다. 풀을 뽑건 나물을 캐건, 두 다리로 땅을 디뎌야 풀내음을 맡으면서 봄맛을 누립니다. 자가용을 몰아 마트에 가서 푸성귀를 사다 먹을 수 있습니다만, 마트에서 사는 푸성귀로는 영양소는 얻을 수 있을 터이나, 풀 한 포기가 뿌리내리는 흙을 알 수 없어요. 흙을 모르고, 햇볕을 모르며, 빗물을 모르는 채 영양소만 먹을 때에는 몸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흙을 알고, 햇볕을 알며, 빗물을 아는 삶으로 풀을 먹을 때에 비로소 몸이 살아납니다.


  아픈 사람은 예부터 시골로 보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도시에 둔 채 좋은 약만 먹인대서 몸이 낫지 않습니다. 약과 병원과 의사만으로는 아픈 사람을 고치지 못합니다. 아픈 사람 스스로 일어서려고 마음을 먹어야 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이 늘 보는 모습과 마시는 바람과 들이켜는 물과 먹는 밥이 달라져야 해요. 눈코입으로 마주하는 삶자락이 달라져야 아픈 몸을 씻을 수 있습니다.


  안 아픈 사람도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아갈 때에 몸과 마음을 한결 아름답게 건사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시골이듯, 안 아픈 사람은 한결 튼튼하면서 힘차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시골입니다. 그리고 이 시골은 누구나 걷도록 합니다. 누구나 흙을 밟고 만지면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 돌이켜보니 그 시절 농사가 많아서 잘살던 사람들은 이제는 어렵게들 산다. 농사지어도 돈이 되지 않으니 자식들 키우고 결혼 시키느라 농토까지 다 팔아 버렸고 지금은 그저 품팔이나 하며 살아간다. 반면에 농사가 없던 사람들은 바다에서 살 길을 찾다 보니 부유해졌다 … 밭에서 수확한 두릅은 깨끗이 씻어 건조한 뒤 다음날이면 한산도 농협으로 보내져 경매된다. 봄이 와도 이제는 더 이상 산과 들에서 나물 캐는 처녀가 없다. 나물 캐던 처녀는 어느덧 일흔넷 노인이 되었다 ..  (81, 96쪽)


  꽃은 꽃집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꽃은 흙에서 자랍니다. 꽃집에서 꽃을 키우더라도 흙이 있어야 합니다. 꽃집에 두는 흙은 어디 먼 나라에서 사들이지 않습니다. 모두 시골에서 가져옵니다. 시골에서 따스한 햇볕을 먹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며 싱그러운 빗물을 머금은 흙일 때에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 모두 싱그럽게 싹을 틔워요.


  사람도 풀이랑 나무랑 꽃하고 똑같습니다. 풀과 나무와 꽃이 좋은 흙과 바람과 물을 머금으며 아름답게 자라듯, 사람도 좋은 흙과 바람과 물을 마주할 수 있는 터전에서 살아갈 때에 아름답게 자랍니다.


  농약과 비료로 더 굵은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요? 농약과 비료로 키운 열매나 푸성귀는 우리 몸에 얼마나 이바지를 할까요? 농약과 비료가 아닌, 흙과 바람과 빗물로 키우거나 자라도록 하는 푸성귀와 열매를 먹을 때에 비로소 튼튼한 몸과 마음이 되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가르칠 적에도 농약과 비료하고 똑같다 싶은 입시교육으로 닦달하면 아이들 누구나 고달픕니다. 가르치는 교사도 고단합니다. 농약을 뿌리는 사람도 농약 때문에 고단하듯이, 입시교육을 집어넣는 교사도 고단한 노릇입니다.


  시골사람이라면 잘 알겠지요. 농약과 비료를 친 곡식이랑 농약도 비료도 안 친 곡식이랑 맛이 얼마나 다른 줄 잘 알겠지요. 도시 아이들이 왜 아토피로 몸살을 앓는지 시골 할매와 할배도 다 알 테지요. 도시로 떠난 이녁 아이들하고 손자한테 농약과 비료를 듬뿍 친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먹으라고 줄 시골 할매나 할배는 없을 테지요.


.. 자동차의 방해 없이 걸음에 몸을 맡기고 온전히 걸을 때 생각은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 육지의 횟집들에서는 자연산이라 해서 양식보다 몇 배 비싼 값에 회를 팔지만 어부들은 양식이나 자연산이나 같은 값에 활어를 넘긴다. 판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 포로수용소를 만들기 위해 용초도에 들어온 첫날부터 미군들은 여자를 찾았다 한다. 여자들은 모두들 으슥한 곳에 숨어서 숨을 죽여야 했다 … 섬을 찾는 뭍사람들은 대체로 걷기에 목말라 한다. 그러니 섬에는 아무리 많은 걷기 길이 생겨도 지나치지 않다. 제발 자동차 도로 확장은 더는 없으면 좋겠다. 또 관광객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한하면 좋겠다 ..  (180, 194, 196, 316∼317쪽)


  강제윤 님이 통영 둘레 섬을 두루 돌면서 적바림한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호미,2013)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강제윤 님은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섬맛을 봅니다. 자가용이 아닌 두 다리를 아끼고 믿고 사랑하고 즐기고 누리면서 섬내음을 맡습니다. 자전거조차 달리지 않고 오직 두 다리에 기대어 섬을 걸으면서 섬빛을 깨닫습니다.


.. 농담처럼 말씀하시지만 어디 고개 하나만 넘어왔으랴. 삶이 내내 고갯길이었을 것을. 딸들은 서울에 산다. “대학교를 거기서 나와서 안 내려와요.” 하지만 할머니는 욕지도가 제일 좋다. “다 다녀 봐도 여가 젤로 좋아요. 제집이 제일이죠.” … 통영의 무전동은 본래 ‘안개’라 불렀다. ‘개’는 포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내륙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포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228, 249쪽)


  읍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시골 아이는 읍내에서 살고 싶습니다.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닌 시골 아이는 도시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딱히 초·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시골에서만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내는 시골 아이조차 도시로 떠나서 살고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모든 아이를 도시로 내보내기만 합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와 경제는 모든 아이가 도시로 떠나서 자가용을 몰며 회사원이 되도록 밀어붙입니다.


  회사나 공공기관에 두 다리로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요. 학교로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 손을 잡고 걸어서 오가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날 십 리 길이든 이십 리 길이든 씩씩하게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고 하는 어른들이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자가용을 몹니다. 십 리는커녕 한두 리밖에 안 되는 길조차 걷지 않고 자가용을 몹니다.


  가방이나 보자기를 들고 짐을 옮기는 어른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외국여행을 한다면 비행기를 타기까지, 또 자가용으로 호텔 앞에서 내려 승강기를 타고 객실에 들어갈 때까지 커다란 바퀴가방을 돌돌 끌기는 할 테지만,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면서 여행하는 어른도 퍽 드물어요. 다들 자가용을 탑니다. 모두들 자가용을 타려 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아주 빠르게 가로지릅니다.


  서울에도 골목이 아직 많아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면, 관광지도에 없는 아름다운 삶빛을 만날 수 있습니다. 통영 섬에도 아름다운 삶빛이 있지만, 부산에도 인천에도 대구에도 아름다운 삶빛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빛이란, 아름다운 사람들이 조촐하게 가꾸는 빛입니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꾸미는 빛이 아닌, 하루하루 들을 가꾸듯이 보금자리를 가꾸고 마을을 가꾸면서 이룬 빛입니다.


  골목에서는 골목빛입니다. 섬에서는 섬빛입니다. 시골 마을에서는 마을빛입니다. 숲속에서는 숲빛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빛이요, 어디에서나 누리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빛입니다.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의 섬들》은 이야기합니다. 우리 함께 걷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땅을 걷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빛을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일하고, 느긋하게 걸으면서 노래하며, 즐겁게 걸으면서 웃음꽃 피우는 춤잔치 벌이자고 이야기합니다. 4347.2.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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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전화 여론조사

 


  저녁에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을 재운다. 작은아이는 먼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곧 잠들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가 울린다. 집전화 소리이다. 뭔가? 받을까? 받고 싶지 않으나 자꾸 울리니 받아야 한다. “아버지, 전화야? 받아.” 그래, 받아야겠네. 네가 잠들지 못하게 시끄러우니까. 이불을 걷고 옆방으로 간다. 수화기를 든다. 자동응답 목소리가 흐른다. 뭔가, 하고 한 마디를 들으니 여론조사를 한단다. 그렇구나. 고흥군수나 전남도지사 여론조사인가 보네. 그런데, 이런 저녁에 하나? 도시라면 저녁 아홉 시 반이 그리 늦지 않다 할 만하지만, 시골에서는 여덟 시만 넘어도 거의 다 잠자는 때인데. 시골에서 할 여론조사라면 차라리 새벽 여섯 시나 아침 일곱 시에 해야 하리라. 그나저나 자동응답 여론조사는 수화기를 내려놓아도 전화가 안 꺼진다. 전화줄을 뽑을까 하다가 그만둔다. 다시 자동응답으로 걸라면 걸라지. “이제 됐어. 자자.” “응.” 마당에서 흐르는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4347.2.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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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34. 아이를 기다리는 길 2014.2.9.

 


  마을 한 바퀴를 돌든, 우리 서재도서관을 다녀오든, 아이들은 시골길을 걷는다. 아이들이 걷는 이 길에 걸리적거릴 것은 없다. 때때로 마을 할배 경운기가 지나가지만, 경운기는 아이를 윽박지르지 않는다. 아이들 걸음처럼 느린 경운기가 지나가면 아이들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토바이나 자가용이나 짐차는 아이들을 윽박지른다. 이런 자동차는 모두 빵빵거리면서 아이들이 비키도록 내몬다. 차츰 따스한 빛이 감도는 겨울바람을 쐬면서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작은아이가 잘 따라오기를 기다린다. 네 발걸음에 맞출 수도 있지만, 네가 다리힘을 키우도록 누나랑 아버지는 살짝 앞장서 걷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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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생각한다

 


  떠돌이 개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이레가 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떠돌이 개가 어디론지 마실을 가고는 저녁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어디를 돌아다닐까. 엉뚱한 사람을 잘못 따라가다가 붙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저녁에 두 아이를 재우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문득 큰아이가 “보라야, 누나가 개 이름 ‘아오’라고 지었다.” 하고 말한다. 네가 이름을 지어 주네 하고 생각하다가 왜 ‘아오’라고 지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큰아이가 잠자리에서 온갖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기에 가만히 귀여겨듣기만 한다. 너는 어떤 마음으로 떠돌이 개한테 이름을 지어 주었니? 너는 어떤 눈길로 떠돌이 개를 바라보니? 너는 어떤 사랑으로 떠돌이 개를 쓰다듬고 안으며 아껴 주니?


  떠돌이 개가 따뜻할 때에 먹기를 바라며 밥 한 그릇 덜었지만, 밥이 식도록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밤이 깊어 비가 그치면 슬그머니 찾아오려나. 아무쪼록 어느 곳에서든 따사로이 잠을 자고 배부르게 밥을 먹으면서 시골자락 밤과 아침과 낮을 고이 누릴 수 있기를 빈다. 한참 떠들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하다. 잠들었구나. 4347.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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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55. 2014.2.15.

 


  토마토를 얻었다. 풀무침을 하고는 토마토를 잘게 썰어서 꽃접시에 빙 두른다. 다른 접시에 담을까 하다가 함께 담아 보기로 한다. 이렇게 하니 눈으로 보기에도 한결 예쁘다. 몇 가지 못 차리는 밥상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올리느냐에 따라 눈으로 보는 맛이 달라지지 싶다. 당근과 무를 썰어서 나란히 놓으니 빛깔이 괜찮네. 아이들 없이 혼자 살던 지난날에는 이런 밥상을 차린 적이 없다. 나 혼자 차려서 나 혼자 먹던 밥상에 고운 빛이 흐르도록 한 적이 없다. 아이들이 있으니 밥상 빛깔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밥상 빛깔을 더 손질하고 가다듬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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