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창비시선 33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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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1

 


해님도 지구별을 좋아한다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도종환 글
 창비 펴냄, 2011.7.18.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는 재미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새벽을 여는 배달 일꾼이 아니고는 이무렵에 일어나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새벽 한두 시부터 자전거에 신문을 그득 싣고 바지런히 골목을 누비며 신문을 돌리면 3분쯤 지날 무렵부터 땀이 흐릅니다. 삼십 분이 지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고, 한 시간이 지나면 땀내음이 멀리까지 퍼지면서 볼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집니다. 자칫 신문종이에 땀이 묻을까 봐 팔뚝으로 이마와 볼에 흐르는 땀을 훔칩니다. 신문을 쥐기 앞서 옷으로 땀을 닦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배달 오토바이가 차츰 퍼졌는데, 예전에는 으레 자전거나 두 다리로 신문을 돌렸어요. 두 시간쯤 신문을 돌리다 보면 손에 낀 실장갑까지 땀으로 옴팡 젖습니다. 세 시간쯤 신문을 돌리면 손에 묻은 땀을 옷에 닦아 신문을 넣자는 생각이 흐려집니다. 대문 안쪽에 놓인 신문에 엄지 자국이나 물기가 묻었다면, 이는 모두 배달 일꾼이 흘린 땀입니다.


.. 바람이 사소하게 불어도 흔들릴 풍치의 나날과 / 둘 다 연금도 퇴직금도 없이 견뎌야 할 불안한 / 노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  (발치)


  시골에서 맞이하는 새벽 세 시는 아주 고요합니다. 멧새도 모두 잠든 때입니다. 여름으로 접어들면 개구리 노랫소리가 막바지에 이르는데, 여름날 새벽 네 시로 넘어설 즈음 개구리 노랫소리도 잦아듭니다. 그렇지만 풀벌레 노랫소리는 그대로 있어요. 시골에서 한여름 새벽 네 시 반 즈음부터 멧새 노랫소리가 퍼지고, 이제 풀벌레 노랫소리는 사라집니다. 멧새가 깨어나 돌아다닐 적에 풀벌레가 노래한다면, 멧새더러 나 잡아 드시오 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 나무야 네게 기댄다 / 오늘도 너무 많은 곳을 헤맸고 /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 / 기댈 사람은 없었다 ..  (나무에 기대어)


  어린 두 아이와 지내는 낮 세 시는 무척 고단합니다. 아이도 고단하고 어른도 고단합니다. 아침부터 신나게 놀던 아이는 낮 두 시 즈음부터 살짝 졸음이 찾아오고 낮 세 시에는 그예 졸음덩어리입니다. 낮잠을 자지 않으면 몸이 힘든 나머지 골부림이 하늘까지 닿아요.


  세 시 즈음에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달래어 토닥토닥 안고 자리에 눕히려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낮잠을 안 자려고 끝까지 버티고, 네 살 작은아이는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작은아이를 재우려고 눕히고 토닥이다 보면 나도 작은아이 곁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때 큰아이는 혼자 슬그머니 일어나서 만화책을 펼치거나 혼자 소꿉놀이를 합니다.


.. 내가 분꽃씨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 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 내 발걸음마다 채송화가 기우뚱거리며 따라왔고 / 무엇을 잡으려고 푸른 단풍잎 같은 손가락을 / 햇살 속에 내밀 때면 / 분꽃이 입을 열어 나팔소리를 들려주었다 ..  (꽃밭)


  봄이면 낮 다섯 시까지 빨래를 마당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낮 세 시를 지날 무렵 빨래를 집안으로 들입니다. 여름에는 낮 다섯 시를 지나고 여섯 시가 되어도 마당에 빨래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가을에는 낮 네 시까지 빨래를 마당에 내놓고, 다섯 시가 되기 앞서 집안으로 들여요.


  빨래는 시계를 살펴 내놓거나 들이지 않습니다. 햇볕을 살피고 바람을 느낍니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쬘 적에 빨래를 말립니다. 햇볕이 구름 뒤로 숨거나 멧등성이 너머로 사라지기 앞서 빨래를 걷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해와 바람을 살펴 때를 읽었어요. 해시계가 있어 시계가 아니라 해가 고스란히 시계입니다. 바람시계가 따로 있어 시계가 아니라 바람이 언제나 시계예요.


.. 폭발물 덩어리를 바닷가마다 세워놓고 저것을 녹색의 따뜻한 에너지라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이들은 스텔스 전폭기가 영변을 폭격하고 주전자 물이 다 끓기도 전에 대포동 미사일이 고리 원자로에 떨어져 사방 오십리 잿더미가고 방사능이 황사처럼 반도를 덮는 절멸의 날이 오면 어디에 잠자리를 정하고 어디서 어린 자식들을 키울 것인가 ..  (천변지이)


  도종환 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2011)를 읽습니다. 도종환 님 마음자리에 가장 애틋하게 다가오는 한때를 그리는 싯말을 읽습니다. 세 시는 어떤 때인지 그리고, 다섯 시는 어떤 하루인가 헤아립니다. 그러고 보니, 낮 세 시부터 다섯 시 사이는 사진을 찍기에 좋은 햇살이기도 합니다. 새벽 세 시부터 다섯 시 사이는 마음을 가다듬거나 글을 쓰거나 밥을 짓기에 좋은 때입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글을 쓰면 맑은 마음이 되면서 무척 즐거워요. 예전에 새벽 세 시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날마다 맑은 마음이 되었어요. 오늘 이 시골집에서 새벽 세 시에 아이들과 달콤하게 잠들다가 다섯 시 언저리에 일어나 조용히 아침밥 차리려고 부산을 떨면 새삼스레 마음이 맑습니다.


  그렇다고 새벽 여섯 시에 마음이 안 맑지 않습니다. 아침 여덟 시나 저녁 일곱 시에 마음이 안 맑을 까닭이 없습니다. 다만, 새벽과 낮에 맞이하는 세 시와 다섯 시 사이는 하루 가운데 가장 고요하면서 차분한 때가 아닐까 싶어요.


.. 초록은 연두가 얼마나 예쁠까? / 모든 새끼들이 예쁜 크기와 보드라운 솜털과 / 동그란 머리와 반짝이는 눈 / 쉼 없이 재잘대는 부리를 지니고 있듯 / 갓 태어난 연두들도 그런 것을 지니고 있다 ..  (연두)


  나무도 겨울눈을 좋아합니다. 풀도 새싹을 좋아합니다. 할머니도 아기를 좋아합니다. 해님도 지구별을 좋아하고, 우주도 태양계를 좋아합니다. 나이든 이들은 나어린 이를 좋아하고, 스승은 새내기를 좋아해요. 겨우내 시든 풀잎은 봄에 새로 돋아 피어나는 꽃송이를 좋아합니다.


  시는 무르익은 마음으로 쓰기 마련인데, 무르익은 마음이란 풋풋하며 싱그러운 빛을 읽고 아끼는 넋이지 싶어요. 시는 튼튼히 뿌리내린 나무와 같은 숨결로 쓰기 마련인데, 튼튼히 뿌리내린 나무는 늘 새잎을 틔우고 새 가지를 뻗으면서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마음으로 시를 읽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으로 시를 씁니다. 겨울을 새삼스레 누리면서 고요히 쉬는 몸가짐으로 시를 읽습니다. 4347.3.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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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생각하기에는 비슷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서로 다른 '둘레'와 '언저리'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주위'와 '주변'이라는 한자말에 갇히고 말아

두 가지 한국말을 옳게 가눌 줄 아는 사람이

자꾸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맙니다.

 

..

 

둘레·언저리
→ “집 언저리”라고 하면, 집 옆으로 어느 한쪽을 가리키지만, “집 둘레”라고 하면, 집을 빙 두르는 모든 곳을 가리킵니다. 둘러싼 곳을 가리키기에 ‘둘레’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른들은 ‘둘레’라는 한국말보다 ‘주위’라는 한자말을 자주 쓰고, ‘언저리’라는 한국말보다 ‘주변’이라는 한자말을 자꾸 씁니다.


둘레
1. 어느 한 곳에서 바깥으로 비슷한 거리에 있는 모든 곳
 - 마당 둘레에 감나무를 심었다
2. 바깥이나 끝 쪽을 모두 더하거나 한 바퀴 돈 길이
 - 손목이 얼마나 굵은지 둘레를 재다
 - 지구 둘레는 얼마나 긴가


언저리
1. 어느 곳에서 바깥이 되는 자리나 어느 곳을 둘러싼 자리
 - 모임에 끼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맴돌다
 - 부엌 언저리에서 찾아보렴
2. 나이나 시간에서 앞뒤
 - 저 아이는 열 살 언저리쯤 되겠지
 - 다섯 시 언저리까지 놀자
3. 어떤 숫자나 모습에서 위아래
 - 1등은 못 하고 늘 그 언저리에서만 맴돈다

 

(최종규 . 2014 - 새로 쓰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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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883) 다多- 1 : 다문화

 

다문화가 만나는 이 시대의 인류에게 여전히 해당되는 일이다
《윤신향-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한길사,2005) 24쪽

 

 다문화가 만나는
→ 여러 문화가 만나는
→ 온갖 문화가 만나는
→ 수많은 문화가 만나는
 …


  ‘多-’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자입니다. 이 한자를 앞가지로 붙여 한자말을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다목적’이라 ‘다방면’이나 ‘다용도’ 같은 낱말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한자말을 넣은 “다목적으로 쓰입니다”라든지 “다방면에 도움이 됩니다”라든지 “다용도 제품입니다” 같은 글은, “여러 가지로 쓰입니다”나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나 “쓸모가 많은 제품입니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한국말이 아닌 한자를 붙여서 새말을 짓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한국말로 한결 쉬우면서 바르고 알맞게 새말을 지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한국사람이 굳이 영어로 새말을 지을 까닭이 없듯이,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가장 밝고 즐겁게 살찌우면 됩니다. 4340.5.7.달/4347.3.1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수많은 문화가 만나는 오늘날 사람들한테 한결같은 일이다

 

“이 시대(時代)의 인류(人類)에게”는 “오늘날 사람들한테”로 다듬고, “여전(如前)히 해당(該當)되는 일이다”는 “한결같은 일이다”나 “늘 되풀이되는 일이다”나 “그대로 이어지는 일이다”로 다듬어 봅니다.
‘다(多)’는 “‘여러’ 또는 ‘많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나 ‘많은’으로 써야 알맞으나, 사람들이 자꾸 ‘多’를 얄궂게 붙이는 셈입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14) 다多-2 : 다목적

 

강력한 한미동맹 과시, 지역경제 활성화 등 꽤나 다목적으로 기획된 축제였다
《노순택-사진의 털》(씨네21북스,2013) 175쪽

 

 다목적으로 기획된
→ 여러 목적으로 기획한
→ 온갖 목적으로 마련한
→ 여러 가지를 살핀
→ 여러 가지를 내세우는
 …


  한국말사전에서 ‘다목적’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 목적”으로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여러 목적’으로 쓰면 된다는 소리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여러 목적”으로 손보면 되고, “온갖 목적”이나 “수많은 목적”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면, ‘목적’ 같은 낱말을 자꾸 쓰기에 ‘多’ 같은 외마디한자말이 들러붙는다 할 수 있습니다.


  한자말 ‘목적’을 아예 안 쓰면 어떠할까요. 이 한자말이 없으면 우리 생각을 나타내기 어려울까요. 이런 한자말을 자꾸 쓰는 바람에 한국말이 헝클어지거나 어지러워지지는 않을까요.


   교사나 교수가 아닌 일곱 살 어린이한테 물어 봅니다. 어느 말을 쓸 적에 알아듣기에 좋고, 뜻이 잘 드러나는지 묻습니다. 지식인이나 학자가 아닌 일흔 살 할머니한테 여쭈어 봅니다. 어떤 낱말을 쓸 적에 아름다울는지 여쭈어 봅니다. 4347.3.15.흙.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단단한 한미동맹 뽐내기, 지역경제 살리기 같은 꽤나 여러 가지를 내세우는 잔치였다

‘강력(强力)한’은 ‘단단한’으로 다듬고, ‘과시(誇示)’는 ‘뽐내기’나 ‘자랑’으로 다듬습니다. ‘활성화(活性化)’는 ‘살리기’로 손보고, ‘등(等)’은 ‘같은’으로 손봅니다. ‘기획(企劃)된’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마련한’으로 손질할 수 있고, ‘축제(祝祭)’는 ‘잔치’나 ‘한마당’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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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한 줄을 남기더라도

글을 다 읽고서 붙이지

글을 안 읽고서 붙이는 댓글은 없다.

책을 이야기하는 느낌글을 쓸 적에

책을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다 살피지 않고 쓴

느낌글은 없다.

 

그러나, 내 댓글을 누군가는

이녁 글을 안 읽고 붙이는 '인사치레 댓글'이라든지

이녁 글하고 아주 동떨어진 '뚱딴지 같은 댓글'이라 여긴다.

 

이녁은 이녁대로 '뚱딴지 같은 인사치레' 댓글이라 여겨

성가셨겠구나 싶은데,

이런 반응을 보이면,

이녁 글을 읽고 즐겁게 댓글을 붙인 사람으로서

너무 가슴이 아픈 생채기이다.

 

댓글은,

어느 한 사람이 쓴 글에 나오는 '내용을 총정리해서 붙이는 글'이 아니다.

그 글을 읽고 '이웃인 내가 마음속으로 피어나는 이야기'를

서로 즐겁게 나누고 싶기에 붙이는 속삭임이다.

 

그래서, 요즘은 몇몇 분들 글이 아니면

아예 댓글을 쓰지 말자고 생각한다.

 

이제, 이웃서재 글을 읽기는 하되

'공감'만 누르고 댓글은 되도록 쓰지 말자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럭저럭 시간이 지나니

이럭저럭 홀가분한데,

홀가분하면서도 참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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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4-04-16 15:32   좋아요 0 | URL
댓글....
그것 참...!!!!

파란놀 2014-04-17 02:08   좋아요 0 | URL
네, 그것 참~ ^^;;;
 

사진과 함께 36. 지켜보는 눈길

 


  사진은 ‘지켜보는 눈길’에 따라 태어납니다. 그윽하게 지켜보는 사람은 그윽한 맛이 감도는 사진을 빚습니다. 따사롭게 지켜보는 사람은 따사로운 맛이 감도는 사진을 낳습니다. 애처롭게 지켜보는 사람은 애처로운 맛이 흐르는 사진을 찍습니다.


  똑같이 가난한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도, 어떤 눈길로 지켜보느냐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그야말로 가난에 ‘허덕이는 빛’을 사진으로 담고, 누군가는 그야말로 가난하면서 ‘밝게 웃는 빛’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어느 쪽이 참모습일까요? 어느 쪽이 참삶일까요?


  허덕이는 빛을 찍은 사진이 참모습일까요? 밝게 웃는 빛을 찍은 사진이 참삶일까요?


  그러나, 어느 쪽도 ‘찍힌 사람’이 보여주는 참모습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느 사진이든, ‘찍힌 사람’ 참삶이 아닌 ‘찍는 사람’ 참삶이라고 느낍니다.


  고발할 까닭이 없는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되는 사진입니다. 패션사진은 패션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보도사진이나 다큐사진은 무언가를 고발하나요? 얼핏 본다면 고발할 만한 사진일 수 있지만, 어느 사진이든 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픈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쁜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눈물에 젖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만큼 지켜본 뒤에 찍는 사진이냐에 따라 빛이 바뀝니다. 어떤 마음결로 지켜보면서 찍는 사진이냐에 따라 빛이 다릅니다.


  사랑으로 지켜보기에 사랑스럽게 누리는 사진입니다. 꿈꾸면서 지켜보기에 꿈이 피어나는 사진입니다. 사진에 담을 넋을 헤아리면서 지켜볼 노릇입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어깨동무하고픈 얼을 살피면서 지켜볼 일입니다. 4347.3.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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