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밥 먹자 64. 2014.3.23.

 


  우리 집 쑥이 뜯을 만큼 올라왔다. 드디어 뜯는다. 얘들아, 지난 한 해 우리 네 식구한테 고마운 밥이 되었는데, 올해에도 새롭게 고마운 밥이 되어 주렴. 보들보들한 갓잎을 뜯고 까슬까슬한 갈퀴덩굴을 꺾는다. 갓잎과 갈퀴덩굴은 송송 썰어서 네모난 접시에 담는다. 쑥은 국을 다 끓이고 나서 된장을 푼 뒤 살그마니 얹는다. 국뚜껑을 닫고 아이들을 부른다. 다른 먹을거리를 밥상에 올린 뒤 맨 나중에 쑥국을 올린다. 쑥내음이 나니? 쑥맛이 나니? 일곱 살 큰아이가 “이거 예전에 먹던 거야.” 하고 말한다. 지난해에 먹은 쑥국이 떠오르는구나. 오늘부터 우리 집 국은 날마다 쑥국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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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63. 2014.3.13.

 


  얘들아, 우리 어떤 밥을 먹을까? 맛난 밥을 먹어야겠지? 너희한테는 어떤 밥이 맛이 있니? 너희는 어떤 밥을 몸에 넣어 즐겁게 뛰놀 기운을 얻고 싶니? 오늘은 네 아버지가 좋아하는 대로 이렇게 밥상을 꾸리는데, 너희가 앞으로 스스로 밥상을 차릴 즈음에는 어떤 밥을 하나둘 올리며 빙그레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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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37. 빛과 볕과 살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말을 틀리거나 잘못 쓰는 일이 없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아갈 때에는 말을 틀리거나 잘못 쓰곤 합니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면 노래를 즐기거나 꽃피웁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살아가면 노래가 샘솟는 길을 못 느끼기 마련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을 합니다. 사진이 즐겁기를 바라니 즐거운 생각을 합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사진이 사랑스러운 빛이 흐르기를 꿈꾸니 사랑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햇빛을 보고 햇볕을 쬐며 햇살을 맞이합니다. 햇빛이 드리울 적에 빛깔을 살피고, 햇볕이 내리쬘 적에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햇살이 퍼질 적에 기쁜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해님이 베푸는 세 가지를 곰곰이 받아들입니다. 빛이 있어 서로서로 알아봅니다. 볕이 있어 함께 어깨동무합니다. 살이 있어 다 같이 노래합니다.


  사진찍기나 그림그리기에서 흔히 ‘황금분할’을 말합니다. 차분하면서 한결 깊거나 넉넉한 느낌을 보여준다고 하는 비율이 황금분할이라고 합니다. ‘좋은 틀(구도)’이라고 하는 만큼, 이 비율을 잘 맞추거나 살핀다면 사진이 여러모로 보기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든 황금분할을 잘 맞추어야 할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네모난 틀을 들여다보면서 황금분할을 맞추는 데에 마음을 어느 만큼 기울여야 하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황금분할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저는 황금분할을 배운 적이 없고, 황금분할이 어떤 비율인지 모릅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늘 ‘스스로 가장 즐겁고 따사로우며 사랑스러운’ 빛을 찾습니다.


  지구별을 비추는 해님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빛이 언제나 다릅니다. 빛깔이 늘 달라요. 해님이 움직이는 결에 따라 빛이 달라질 뿐 아니라, 따스한 기운인 볕이 달라집니다. 빛과 볕이 달라질 뿐 아니라, 살 또한 달라져요.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마음속으로 그린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사진은 단추질이나 기계질이 아닙니다. 단추질이나 기계질이라면, 기계를 시켜도 사진을 찍어요. 사진은 단추질이나 기계질이 아닌 만큼,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이야기를 빚을 때에 태어납니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사진입니다. 곧, 이야기를 담을 때에는 사진이요, 이야기가 없이 황금분할을 했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으면, 흔들리거나 조리개를 어설피 맞추었어도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담으면, 빗나가거나 기울었어도 사진입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분하거나 그윽하대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차분하거나 그윽하다면 ‘구경거리’로 좋다는 뜻입니다. 사진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황금분할이라는 비율은 이러한 비율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만든 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맞출 비율이 아니고, 사진을 읽는 사람이 살필 비율이 아닙니다. 비율을 말하자면 순금분할이라든지 은분할이라든지 봄꽃분할이라든지 달빛분할도 있어요. 사진찍기에서는 사진을 헤아릴 뿐, 다른 것은 살필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빛과 볕과 살을 헤아리느냐 하고 묻겠지요. 왜냐하면, 빛과 볕과 살이 있어야 삶이 있거든요. 해님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비출 적에 지구별에 아름다운 삶이 있어요. 해님이 지구별을 사랑스레 비출 적에 지구별에 사랑스러운 삶이 있어요. 저녁으로 넘어가는 볕살이 드리우는 평상에서 아이들과 라면 한 그릇 먹으면서 따사로운 빛을 느꼈기에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습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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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글’ 쓰기는 힘들다

 


  사과글 쓰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스스로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과글 쓰기는 쉽다. 왜냐하면, 스스로 잘못했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과글 쓰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잘못했다기보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따라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과글 쓰기는 쉽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따라했어도 잘못을 한 사람은 바로 나인 줄 깨닫기 때문이다. 참거짓을 스스로 살피지 않고 다른 사람 말을 따르기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 줄 깨닫기 때문이다.


  짓궂게 구는 아이들이 여린 아이 하나를 괴롭힌다. 이 아이들 옆에서 나도 따돌림을 안 받으려고 한손을 거들어 여린 아이를 괴롭히거나 이런 짓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간다. 이때에 ‘남을 따라하’거나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할 만할까?


  어느 한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든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래, 그렇구나.’ 하고 여기며, 이런 소문을 퍼뜨린다. 그런데 나중에 이런 소문이 잘못 불거졌으며 올바르지 않다고 드러난다. 이때에 나는 ‘다른 사람이 퍼뜨린 소문을 듣고 말했’으니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할 만할까?

 

 * * *


  어느 신문에 글을 쓰는 분이 있다. 이분이 글을 잘못 써서 내가 크게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분은 그 피해가 ‘보도자료를 보고 쓴 글’이기 때문에 이녁으로서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한테 사과할 일이 없다고 한다. 다만, 글을 바로잡기는 하겠다고 한다.


  엎질러진 물을 ‘정정보도’로 얼마나 주워담을 만한지 궁금하기도 하다. 진보매체는 으레 말하지 않는가. ㅈㅈㄷ신문이 잘못 쓴 글을 나중에 코딱지만 한 크기로 정정보도를 내고 끝낸다고. 정정보도 또한 처음 잘못 쓴 기사 못지않게 크게 다루어서 널리 알려야 조금이나무 잘못을 주워담을 수 있지 않나?
  꼭 이러하기 때문은 아니지만, 조선일보가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서 쓰며 잘못된 기사를 퍼뜨리면 어떠한 일을 저지른 셈일까? 스스로 진보매체라고 여기는 신문이라 한다면, ‘보도자료에 기대어 잘못 쓴 글’을 곧이곧대로 받아쓰면서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을까? 참과 거짓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기사로 내보낸 일을 놓고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느끼려는 마음이 없는가?


  기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면 왜 바로잡는가? 누군가 잘못했기 때문일 테지. 그러면 누가 잘못했을까? 보도자료를 쓴 사람만 잘못했는가? 잘못 쓴 보도자료를 고스란히 베껴서 쓴 사람은 잘못이 없는가? 스스로 진보매체라고 밝히지만, 정작 진보스럽거나 진보다운 몸가짐이 아닌 이들을 보면 서글프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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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4-03-24 19:4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리 믿은' 매체는 아니었으나
스스로 '진보라고 내세우는 매체'한테 또 한 번 뒷통수를 맞으니
참 쓸쓸해요.
그네들이 비판해 마지 않는 ㅈㅈㄷ보다도 못한 짓을 왜 자꾸 하는지 궁금해요.

서로 아끼고 좋아하면서
고운 마음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기란
... 아직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싶기도 해요...
 

사름벼리는 복숭아나무와 함께

 


  지난해 봄에 심은 복숭아나무에 드디어 꽃이 핀다. 한쪽 가지만 높게 뻗었는데, 앞으로 이 복숭아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자랄까. 복숭아꽃을 보라고 큰아이를 부른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복숭아꽃을 보며 아이 예뻐 하더니, “복숭아나무는 나하고 키가 같네.” 하고 말한다. 그래, 어린 복숭아나무와 어린 네가 키가 같네. 곧 복숭아나무 키는 쑥쑥 클 테고, 줄기도 굵겠지. 씩씩하게 자라는 복숭아나무 곁에서 맛난 열매 듬뿍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7.3.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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