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 풀잔치길 걷기

 


  자운영 씨앗을 뿌리거나 유채 씨앗을 뿌리면 경관사업은 된다. 온 들판이 발그스름한 빛이 돌고 노르스름한 빛이 돌지. 그런데, 따로 돈을 들여 경관사업을 하지 않아도 봄들은 아름답다. 냉이꽃은 하얗게, 코딱지나물꽃은 발그스름하게 빛난다. 아무런 경관사업을 하지 않는데 이처럼 빛나는 봄들을 보라. 아이들은 노래하면서 이 길을 걷는다. 어른들도 이 길에서 노래할 만하지 않은가.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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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빛을 보셔요

 


  아마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튤립잔치를 하는 곳에서 피어난 튤립만 볼 테지요. 그러나 나는 튤립만 볼 수 없습니다. 튤립이 자라는 흙을 볼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볼 적에도 아이들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를 함께 보고, 아이들을 둘러싼 보금자리와 마을을 함께 바라봅니다. 도시를 바라보건 시골을 바라보건 똑같습니다. 어느 한 가지만 바라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튤립도 풀이요 꽃입니다. 풀과 꽃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구경거리로서 튤립 둘레에 아무 풀도 돋지 않아야 할까요. 튤립만 돋보이고, 흙에 아무것도 안 나면 튤립은 싱그럽거나 튼튼하게 살 수 있을까요?


  흙빛을 보셔요. 튤립만 덩그러이 있는 꽃밭 흙빛이 얼마나 ‘사막과 같은’지 보셔요. 튤립이 애처롭습니다. 이웃이나 동무가 없이 튤립만 외롭게 있어야 하는 흙을 보셔요. 이렇게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 튤립은 얼마나 곱거나 환하게 빛날 수 있을까요.


  줄에 맞추어 심는대서 예쁜 꽃밭이 아니에요. 꽃이나 풀이나 나무는 줄을 맞추어 자라지 않아요. 꽃이나 풀이나 나무는 숲을 곱게 가꾸는 무늬와 빛으로 자라요.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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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4-05 16:29   좋아요 0 | URL
매년 계속 가꾸는곳이 아닌 한 시즌만을 위한 축제이다보니 이런것 같아요. 저도 종종 이렇게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꽃들을 보면서 꽃이 이뻐 좋긴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필수 있는 꽃도 한번으로 생을 마감하는것 같아 안타까워요.

계속 계속 이쁘게 가꾸는 꽃정원이 되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4-04-06 00:35   좋아요 0 | URL
어떤 꽃이 피든 다 이쁘기에 굳이
풀을 다 뽑지 않아도 되는데,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못 되고,

또 관광객도 '다른 풀이나 꽃'이 있으면
어설프다고 여기니
이래저래 눈요기 행정과 행사가 되지 싶어요.
 

곯아떨어졌다가 일어난 아침

 


  신안마실을 다녀왔다. 우리 ‘사진책도서관’과 ‘살림집’을 앞으로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마실길이었다. 지난 2011년에는 춘천시에서 우리더러 오라 했고, 올 2014년에는 신안군이 우리더러 오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2011년에는 춘천시로 갈 뻔하다가 우리 식구끼리 ‘도서관숲’과 ‘집숲’을 가꾸어 보자고 생각하며 고흥에 왔다. 고흥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네 해째 되는 올해에 곰곰이 돌아본다. 고흥에서 네 해만에 ‘숲을 말하는 책(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선보였다. 고흥군에서는 우리 도서관이나 살림집을 놓고 눈길조차 두지 않는다. 군청에서 눈길을 받으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 대수로울 일이 없는데, 다시금 다른 지자체에서 ‘숲으로 가꾸는 도서관과 집’에 눈길을 보내니 요즈음 이모저모 생각이 늘어난다.


  아주 마땅한 노릇으로, 사람은 숲이 있어야 살고, 숲은 사람이 사랑으로 돌볼 적에 빛난다. 우리는 우리 땅이 아직 없어도, 집터와 도서관 둘레에서 숲과 나무와 풀을 사랑하는 길을 헤아리면서 지낸다. 고흥군 행정이 앞으로도 시멘트 막공사에만 눈길을 둔다 하더라도 이곳에서 씩씩하게 숲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차마 볼 수 없는 나머지 훌훌 털고 새로운 터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느끼지 않는다. 더 낫거나 덜 나쁜 쪽은 없다. 어디에서든 숲을 가꾸면 우리 삶은 아름다우니까.


  고흥군을 돌아보면,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할 만큼 숲이 예쁘지만, 정작 고흥군수나 고흥군 공무원은 이를 눈꼽만큼도 못 깨닫고는 마구 파헤치기에 바쁘다. 신안군을 헤아리면, 하늘이 내린 메마른 터를 예쁘게 가꾸려는 손길이 눈부시지만, 나무와 풀과 숲을 마주하는 눈썰미는 아직 모자라다. 숲은 사람이 가꿀 수는 없다. 숲은 숲 스스로 가꾼다. 사람은 숲한테 사랑을 보낼 뿐이다. 아직 신안군에서는 이 대목까지 바라보지는 못하는데 앞으로 어찌 될는지 모를 노릇이다. 그러면 춘천시는? 춘천시는 이럭저럭 하늘선물을 잘 누리고, 사람이 할 몫도 어느 만큼 잘 건사한다고 본다. 그런데, 군부대와 골프장과 아파트가 지나치게 많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술에 찌들은 관광객이 너무 많은 모습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안군도 무척 아름다운 바다이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로 찾아오는 도시내기는 쓰레기를 어마어마하게 퍼붓는다. 신안 바다와 갯벌을 살피다가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를 쳐다보며 가슴이 아프다. 신안 고기잡이 아재가 바다에 버린 소주병이 안쓰럽다.


  신안마실을 빠듯하게 다녀오면서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한 탓에 고흥으로 돌아와서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싶었으나 몸이 너무 무거워 눈만 뜨고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새벽 다섯 시에 겨우 일어났다. 새벽 다섯 시에 겨우 일어나서 맨 처음 쓴 글은 ‘신안에서 본 아픈 후박나무’ 이야기이다. 나는 도서관을 가꾸면서, 게다가 사진책도서관을 가꾸면서, 언제나 내 글을 ‘숲과 나무와 풀과 꽃과 흙과 바람과 햇볕과 냇물과 아이들’ 이야기로 채운다. 이러한 빛을 읽어야 삶을 말하면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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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앓는 소리를 들어요

 


  어느 나무이든 가지를 곧게 죽죽 뻗는다. 가지를 곧게 뻗지 않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가지를 비틀거나 뒤틀 적에는 아프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억지로 휘거나 꺾으니 울면서 비틀거나 뒤틀기도 한다.


  사람들은 공원을 만들면서 큰나무를 옮겨심기도 한다. 큰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으려면 오랜 나날 차근차근 해야 한다. 먼저 나무한테 말을 걸어야 한다. 네가 살아갈 자리를 옮길 테니 부디 너그러이 헤아려 주렴, 하고 인사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새터로 나무를 옮길 적에 잘 뿌리내릴 수 있게끔, 큰나무 둘레 알맞는 넓이로 땅을 파서 굵고 큰 뿌리를 끊는다. 이렇게 여러 날 지낸 다음 땅을 더 깊이 파서 나무 아래와 옆으로 난 뿌리를 웬만큼 잘 건사한 뒤 짐차에 실어 천천히 옮긴다.


  나무를 새터에 옮겨심을 적에는 뿌리와 둥치를 감싸던 천을 얼른 벗겨야 한다. 얼른 벗겨서 땅에 살뜰히 심어야 한다. 이 다음으로 할 일은 나무 둘레에 가랑잎을 골고루 뿌리는 한편, 쑥이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를 ‘옮겨심은 나무 둥치 둘레에 찬찬히 옮겨심어’야 한다. 쑥이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를 흙까지 넓적하게 파내어 옮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흙을 살려야 하기 때문인데, 풀이 있어야 흙이 산다. 풀과 흙을 함께 파내어 ‘옮겨심은 큰나무 둥치 둘레에 나란히 놓아’야, 옮겨심은 나무에서 뿌리가 땅밑에서 숨을 쉴 수 있다. 숨을 쉬면서 새 뿌리를 내려고 기운을 낼 수 있다.


  한편, 큰나무를 옮겨심을 적에 가지를 함부로 치면 안 된다. 나무는 밑에서 뿌리가 흙을 머금고 위에서 줄기가 잎을 매달며 햇볕과 바람을 마신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치는 일이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왜 치는가? 큰나무를 파내어 옮겨심을 적에 번거롭거나 성가시기 때문이다.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면 나뭇가지를 함부로 쳐서는 안 된다.


  바닷가에 있는 공원에 간다.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일까? 아, 저기로구나.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나무 둘레로 휑한 흙땅을 본다. 나무 둥치를 감싼 천을 아직도 안 벗겼다. 얼마나 갑갑할까. 숨을 쉬고 싶은데 숨을 못 쉬도록 해 놓았으니 나무가 어찌 견디나. 하루 빨리 저 천을 걷어야 할 텐데,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 삼백예순닷새 늘푸른잎을 뽐내는 후박나무인데, 잎이 모두 말라죽었다. 아니, 아직 다 죽지는 않았다. 숨이 거의 다 넘어갈 노릇이다. 그 많았을 가지가 거의 사라졌다. 후박나무는 가지가 없으면 아주 괴로워 한다. 후박나무 가지는 푸른 빛깔을 띄면서 새로 돋는다. 푸른 빛깔 가지처럼 푸른 빛깔 잎사귀를 내놓고, 네 철 내내 푸른 숨결을 내뿜는다.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들어요. 옮겨심기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옮겨심으려면 제대로 나무를 아끼면서 옮겨심어 주셔요. 나무를 돈으로 여기지 말아요. 돈 들이는 생각이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손길로 옮겨심어 주셔요. 조경학이나 원예학으로 나무를 바라보지 말아요. 나무는 나무 그대로 바라보셔요. 이 커다란 후박나무가 살던 보드라운 흙이 있고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던 모습으로 가꾸어야, 앓는 나무가 되살아날 수 있어요. 나무 둘레에 풀이 하나도 자라지 못하면, 끝내 후박나무 한 그루는 안타까이 숨을 거두고 말 테지요.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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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잡초’라는 이름을 쓰는 탓에, 풀을 ‘풀’다움을 잃는다. 자잘하거나 쓸데없다는 느낌이나 뜻을 담아 ‘잡초’라 가리키니, 풀이 얼마나 푸르면서 싱그러운가를 잊는다. 사람들은 풀을 먹는다. 사람들은 채소도 야채도 먹지 않는다. 사람들은 풀을 먹는다. 사람들이 마시는 바람이 싱그럽거나 맑거나 푸른 까닭은, 지구별 바람은 풀내음이 깃들기 때문이다. 풀이 흙을 살리고, 풀이 있기에 나무가 살며, 풀이 있어서 모든 목숨이 살 수 있다. 이를 깨닫는다면 슬기로운 빛이 가슴속에서 환하다. 이를 안 깨닫는다면 지식이나 정보를 잔뜩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하더라도 참삶과 멀어진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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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재발견
조지프 코캐너 지음, 구자옥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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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0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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