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3 - 숨어서 놀면 재미있어

 


  평상 밑은 얼마나 넓은 누리일까. 평상 밑으로 기어서 들어간 아이는 이곳에서 어떤 느낌일까. 깜깜하다고 느낄까. 아늑하다고 느낄까. 포근하다고 느낄까. 새롭다고 느낄까. 평상 밑에 들어가서 한참 조용하더니 노래를 부르면서 논다.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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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 빗길 걷는 뒤에서

 


  큰아이는 어느 때부터 늘 앞에서 걷는다. 작은아이는 아직 늘 뒤에서 걷는다. 그러나, 큰아이는 곧잘 뒤에서 걷곤 한다. 걸음이 느린 탓이 아니라, 이것저것 보고 살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읍내나 도시에서는 으레 뒤로 처진다. 둘레에 가득한 ‘볼거리(글씨)’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언제나 앞에서 걷는다. 어지러운 글씨(광고판)가 없이 맑으면서 밝은 소리와 빛깔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시골길을 거닐며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어디인가.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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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함께 (사진책도서관 2014.3.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비 오는 날 두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간다. 천천히 에돌아 걷는다. 빗길을 빗소리 들으면서 걷는다. 비내음을 맡는다. 빗물을 먹는 들풀을 바라본다. 일찍부터 잎이 돋안 유채밭에은 유채꽃이 한창이다. 마을 어른들은 논에서 자라는 유채가 아니면 모조리 꺾는다. 경관사업 유채만 논에서 자라기를 바란다. 유채씨가 날려 논둑이나 밭둑에서 자라면 되게 싫어한다. 유채잎을 뜯어서 나물로 삼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땅한 노릇인데, 유채는 상품이 아니다. 유채는 관리물품이 아니다. 유채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유채잎은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도 잎을 틔운다. 겨우내 잎사귀를 내놓으면서 우리를 먹여살린다. 멧짐승은 유채밭이 된 논으로 내려와서 유채잎을 뜯어서 먹겠지. 사람도 유채잎을 뜯어서 겨우내 푸른 숨결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


  왜 멧짐승이 멧자락에서 마을로 내려와서 먹이를 찾겠나. 사람들이 숲까지 헤집으면서 풀을 밟거나 죽이거나 없애니까. 사람들이 숲 깊은 데까지 밭으로 일구어 숲짐승(멧짐승)이 깃들 자리를 자꾸 파고들면서 숲짐승이 먹을 풀을 사람이 혼자 차지하려고 하니까.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으면 좋을 텐데. 함께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어야 아름다울 텐데.


  도서관에 닿아 한국말사전을 펼친다. 1940년에 나온 한국말사전부터 1999년에 나온 한국말사전까지 펼친다. 아쉽지만, 1999년을 끝으로 ‘큰사전’은 더 안 나온다. 아니, 더 못 나온다. 사람들이 한국말사전을 사서 읽거나 곁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말학자 스스로 한국말사전을 아름답게 엮지 못한다. 오늘날 사람뿐 아니라 옛날 사람조차 안 쓰던 일본 한자말을 잔뜩 실은 책이 요즈음 이 나라 ‘국어사전’이다. 중국 문학책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한자말까지 가득 실은 책이 바로 이 나라 ‘국어사전’이다. 온갖 영어와 자질구레한 시사상식이 될 만한 대목까지 실어서 부피만 두껍게 하고, 뜻풀이에는 제대로 마음을 못 기울인 책이 대한민국 ‘국어사전’이다.


  제대로 아름답게 엮으면 왜 안 팔리겠는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게끔, 이런 데에 제대로 품과 돈과 땀을 들이는 사회 정책과 문화 정책과 교육 정책이 나란히 있어야 할 텐데. 아무튼, ‘라온(랍다)’이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이 언제부터 다루었는지 살펴본다. 1940년 문세영 사전에는 없다. 1947년 조선어학회 사전부터 있다. 1999년 국립국어연구원 사전에는 ‘랍다’로 나온다.


  안동에 있는 이웃 편해문 님이 지난해에 보내 준 예쁜 달력을 넘긴다. 아시아 예쁜 아이들 웃음이 밝다. 이동안 두 아이는 도서관 골마루에서 논다. 두 아이가 일부러 넘어지면서 논다. 골마루 한쪽 바닥이 미끄러운데, 두 녀석이 미끌미끌놀이를 한다. 자꾸 쿵쿵 소리 내며 이리저리 넘어진다. 골마루바닥을 두 녀석이 저희 옷으로 쓸고닦는다는 느낌까지 든다.


  참 잘 노네. 그렇게 놀아야지. 신나게 논 아이들한테 물을 먹인다. 땀을 훔쳐 준다. 덥지? 이제 집으로 가 볼까? 두 아이가 저마다 우산을 하나씩 쓰고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온통 놀이투성이가 된다. 도서관은 놀이터이자 배움터이다. 도서관과 마을은 삶터이자 쉼터이다. 마을과 집은 보금자리이면서 이야기자리이다.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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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 노란잔치

 


  민들레꽃도 참 곱다. 그런데 민들레꽃만 곱지 않다. 시골에서 살며 둘레에 고운 꽃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날마다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꽃가게에 가야만 꽃이 많지 않다. 논둑이나 밭둑에만 서도 꽃이 많다. 들에 서거나 숲에 깃들면 얼마나 많은 꽃이 우리를 반기는지 모른다.


  도시라 하는 인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만난 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아주아주 많은 온갖 들꽃을 보았으리라. 그러나, 온갖 들꽃을 눈여겨본 어른이나 이웃이 드물었다. 우리(아이)한테 온갖 들꽃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면서 꽃이름을 가르치고, 들풀마다 어떻게 건사하거나 먹거나 돌보면 되는가를 알려주는 어른이나 이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만히 돌아보면, 도시에서는 웬만한 풀을 다 뽑아서 버린다. 풀꽃이 꽃을 피우기 앞서 모조리 뽑아서 없애려 한다. 꽃을 피우면 곧 씨를 맺어 퍼뜨린다고 해서 풀을 ‘잡초 뽑기’라는 이름으로 없애거나 죽이기만 한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은 ‘풀은 나쁜 것’이라든지 ‘잡초는 죽이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시골로 떠나 시골살이(귀촌)를 한다 하더라도 풀을 몽땅 베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풀을 배운 적이 없는 요즈음 어른이다. 풀을 가르치는 일이 없는 오늘날 어른이다. 예순 살이나 일흔 살쯤 되는 분들조차 풀을 다루거나 건사하거나 다스리는 길을 배우지 못했다고 할 만하다. 쉰 살이나 마흔 살인 분도 엇비슷하다. 그러면, 스무 살이나 서른 살 언저리인 젊은이가 스스로 풀을 배우거나 살펴야 할 텐데, 이렇게 하지도 않는다. 열 살 안팎 맑은 눈빛 어린이와 푸름이 또한 풀을 바라볼 겨를을 못 낸다.


  민들레꽃 노란잔치를 만난다. 곱다. 참 이쁘다. 그리고, 민들레꽃이 노란잔치를 하기 앞서 이 자리는 갖가지 봄맞이꽃으로 앙증맞은 잔치가 이루어졌다. 봄맞이꽃 앙증맞은 잔치가 모두 끝난 자리에 비로소 민들레꽃이 노란잔치를 벌인다.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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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이긴 날 문학동네 동시집 1
김은영 지음, 박형진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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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4

 


삶에서 살아나는 말
― 선생님을 이긴 날
 김은영 글
 박형진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3.11.

 


  만화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영화를 보는 일곱 살 아이가 곧잘 묻습니다. “아버지, 왜 책이나 영화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안 하고 ‘엄마 아빠’라고 해?” 이런 물음에 딱히 들려줄 말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할 줄 모르는 다른 어른들 넋을 섣불리 아이한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엄마 아빠’는 아기일 적에 쓰는 말이요, 아기 티를 벗고 씩씩한 어린이로 서면, 이때부터 ‘아버지 어머니(아배 어매/아바이 어무이)’로 이름을 고쳐서 쓸 노릇입니다. 말과 넋과 삶을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살림과 사랑과 꿈을 곱게 거느린다면, 이런 낱말 한 마디를 누구나 잘 다스리리라 생각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이 대목을 바로잡았어요. 어느 마을에서나 어느 어른들이나 아이한테 말을 올바르고 슬기롭게 가르쳤습니다.


  말을 올바르고 슬기롭게 가르치는 삶이란, 생각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삶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삶이란, 어른과 아이가 저마다 하루를 알차고 알맞게 가꾸면서 아름다운 빛을 누리는 나날입니다.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다시 말합니다. “책하고 영화에서 ‘아버지 어머니’라고 나오면 좋겠다.” 요즈음 일곱 살 아이는 책을 읽다가 ‘엄마’라 적힌 대목이 보이면 나한테 가지고 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 여기 ‘엄마’를 ‘어머니’로 고쳐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아이한테 자꾸 이 말이 보이니 눈에 걸리는구나 싶어요.


.. 엄마 여길 좀 봐요 / 꽃무늬가 참 예뻐요 ..  (고양이 발자국)


  시골에서 살면서 늘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가니 우리 식구가 나누는 이야기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식구는 텔레비전을 안 봅니다. 우리 식구는 신문을 안 읽습니다. 우리 식구가 주고받을 이야기는 ‘텔레비전과 신문하고 동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늘 듣는 노랫소리인 만큼, 늘 멧새 노랫소리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하루 내내 나무를 바라보고 풀을 마주합니다. 이웃을 만나건 동무를 만나건 언제나 나무랑 풀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이웃이나 동무는 나무나 풀 이야기를 안 하고 싶을는지 모르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무와 풀을 살피는 이야기입니다. 나무를 쓰다듬고 풀을 뜯으며 나뭇잎에 맺힌 벌레 씨앗이랑 풀꽃이 피우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 눈과 비가 어울려 / 사이좋게 내려와요 ..  (진눈깨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빛 묻어나는 이야기잔치입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내음 깃든 이야기잔치입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은 숲노래 그윽한 이야기잔치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삶길을 걷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 까닭은, 사람들 스스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이녁이 그곳에서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좋거나 나쁜 것은 없습니다. 옳거나 그른 것은 없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누군가는 작은 들꽃을 밟으면서 밟은 줄 못 느껴요. 누군가는 풀밭을 자가용으로 밟으면서 밟은 줄 알아차리지 않아요.


  나는 아주 먼 데에 섰어도 느티나무에 새잎이 복복 돋으며 올망졸망 푸른 빛으로 바뀌는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버들잎이 돋는다든지, 초피꽃이 핀다든지, 모과꽃망울이 커진다든지, 매화꽃차례가 하나둘 떨어진다든지, 모두 알아보거나 알아챕니다. 다른 누군가는 겉모습만 보고도 자동차 이름을 훤히 꿸 테지요. 다른 누군가는 차림새만 보고도 저이가 입은 옷이 얼마짜리인지 알아맞추겠지요.


.. 고향 떠나 / 잘 산다는 사람은 / 아무도 / 아직 안 돌아왔어요 ..  (고향 찾는 사람들)


  김은영 님 동시집 《선생님을 이긴 날》(문학동네,2008)을 읽습니다. 무척 맛깔스러우면서 재미있게 쓴 동시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재미있게 놀지 못하면서 시험지옥과 학원지옥에 갇혀야 하는 오늘날 도시 아이들한테 김은영 님 동시집은 싱그러운 샘물과 같은 이야기잔치가 되리라 느낍니다.


  참말 그렇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얼마나 고단한가요. 오늘날 아이들은 ‘제 집 마당에서 놀 수조차 없’어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아이들한테는 마당이 없거든요. 아파트 놀이터라 해서 느긋하게 놀 만한 데가 되지 못합니다. 가까운 공원조차 혼자 가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공원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너무 많고 무시무시하게 달려요. 아이들 어버이는 아이만 달랑 공원에 보내기 두렵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공원에서도 마음껏 뛰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도 하고, 잔디밭에 농약을 듬뿍 뿌리기도 합니다. 공원에도 스쿠터나 오토바이가 싱싱 달립니다. 달릴 곳 없기에 공원을 달리는 자전거도 많습니다.


  개구지게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동시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학교와 학원에 갇힌 채 ‘예비 수험생’처럼 온갖 지식과 교과서와 학습지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아이들한테는 어떤 동시가 삶밥이 될 만할까요.


.. ‘ㄹ’ 받침 한 글자 속에 / 자연이 들어 있구나 / 사람이 살아가는 데 /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구나 ..  (‘ㄹ’ 받침 한 글자)


  삶에서 살아나는 말입니다. 삶이 살아나지 않으면 말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말놀이를 하거나 말솜씨를 부린다고 해서 삶이 살아나지 않고 말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제 삶을 억누르는 고리를 끊거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중·고등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왜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까요? 대학교에 가야 하니 고등학교에 가나요? 고등학교에 가야 하니 중학교에 가나요? 중학교에 가야 하니 초등학교에 가나요? 초등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배움터이거나 삶터일까요?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동시를 살포시 내려놓을 수 있어도 ‘재미있’고 ‘맛깔스러우’리라 생각해요. 아이가 나아갈 삶과 어른이 걸어갈 길을 찬찬히 짚어도 재미있고 맛깔스러우리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을 키우고, 어른들 또한 스스로 삶을 즐기며 신나게 뛰노는 빛을 그릴 수 있으면, 동시이든 어른시이든 아름다운 이야기가 노래처럼 흐르며 재미있고 맛깔스러운 깊이와 너비를 더하리라 생각해요. 4347.4.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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