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22] 숨결

 


  빛줄기 곱게 드리워
  다 다른 목숨 고루 살리면서 살찌우는
  숨결은 언제나 꽃

 


  꽃을 피우지 않는 풀이나 나무는 없습니다. 풀이나 나무는 꽃을 피우려고 자랄까요? 모르는 노릇입니다. 그런데, 꽃을 피우려고 온힘을 모으는 풀과 나무를 바라보면, 풀과 나무가 나누어 주는 숨결은 꽃빛이나 꽃힘이나 꽃내음에서 비롯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꽃송이도 꽃이요 잎사귀도 꽃이며 줄기와 가지와 뿌리도 꽃이지 싶습니다. 서로한테 사랑이 될 적에도 꽃이고, 따사롭게 아끼는 마음도 한결같이 꽃이라고 느낍니다. 4347.4.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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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다고 사라진다면

 


  서강대학교에서 ‘폐기’ 도장을 찍어서 버린 책을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만난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어느 책 하나를 버리려 한다면 버릴 만한 까닭이 있으리라. 우리들이 이 까닭을 알아내든 알 수 없든 틀림없이 까닭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참말 아주 사라져서 종이쓰레기가 되든 되살림종이가 되면 어떻게 될까. 도서관에서는 ‘버리려는 뜻’에 걸맞게 가슴을 쓸어내릴는지 모르지만, 책이 걸어온 발걸음과 발자취로 돌아보자면 여러모로 아쉽다. 생각해 보라. 일제강점기가 끝날 무렵, 일본 군인이 이녁한테 나쁘게 쓰일 만한 자료와 문서를 엄청나게 불태워 없앴다고 하지 않는가. 정권이 바뀔 적에도 자료 없애기나 문서 없애기는 늘 일어나지 않으랴 싶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면, 1960∼70년대를 흐르는 동안 유신독재와 종신독재를 하고자 여러 가지 공공문서와 공공도서를 나라에서 앞장서며 불태워 없애기도 했다.


  여러 달 앞서 헌책방에서 만난 《한국문인협회 엮음-새 국민 문고, 민족 중흥》(어문각,1969)이라는 책을 따올린다. 1969년에 처음 나온 이 ‘유신독재 부스러기’가 언제부터 대학교 도서관 한쪽에 꽂혔는지 알 길은 없다. 어쩌면 1969년에 정부에서 신나게 찍어 전국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도서관에 한 권씩 꽂았을는지 모른다. 나중에 수없이 찍어서 꾸준하게 널리 퍼뜨렸을 수 있겠지. 이 책이 오늘날 몇 권이 남았는지 어느 곳에 남았는지 알 길은 없다.


  그러면, 이 책을 대학교 도서관뿐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까지 없앤다면? 그때에 이 책은 어떤 책이 될까? 없는 책이 될까? 잊혀지는 책이 될까? 태어난 적이 없는 책으로 사람들 마음에 남을까? 아니, 이런 책이 태어난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까?


  버린다고 사라진다면 역사란 없으리라. 버린다고 사라진다면 역사란 모두 거짓말이 되리라. 버린다고 사라지지 않기에 역사가 있고, 버린다고 사라질 수 없기에 역사를 참된 말로 적을 수 있으리라. 이 나라에서 헌책방이 맡은 몫은 참 대단하다.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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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더 하얀 자작나무

 


  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에 자작나무 한 그루 있다. 제법 크게 자란 자작나무이다. 두 그루도 세 그루도 아닌 한 그루만 있기에 더 잘 보인다. 잎이 우거질 적에도 하얀 줄기와 가지가 도드라지는데, 아직 잎을 달지 않아 더 하얀 자작나무는 봄날 다른 나무들과 견주어 새삼스러운 빛이로구나 싶다. 하얀 꽃송이 매다는 나무들이 많은데, 자작나무꽃은 어떤 빛깔일까. 잎을 닮은 빛깔일까, 흙을 닮은 빛깔일까.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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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제비꽃과 유채꽃

 


  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꽃을 만난다. 곁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곁님 목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아이들 노랫소리를 떠올린다. 해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햇살과 햇볕과 햇빛을 받아들인다.


  길가에 스스로 천천히 씨앗을 퍼뜨려 새로 돋는 제비꽃을 만난다. 제비꽃 곁에는 스스로 씨앗을 날려 퍼진 유채꽃이 핀다. 시골에서 경관사업을 하며 심는 유채 말고 시멘트도랑에서 돋은 유채는 지난해에 퍼진 씨앗에서 자랐을까. 지지난해에 퍼진 씨앗에서 돋았을까.


  길가 제비꽃과 유채꽃을 이듬해에도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앞으로도 길제비꽃과 길유채꽃을 해마다 만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얘들아, 고운 꽃송이 활짝 벌리며 언제까지나 맑은 내음 나누어 주렴.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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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하얀 빛깔

 


  앵두꽃이 촘촘하게 맺힌다. 하얀 꽃잎이 눈부시다. 봄날 살짝 찾아와서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는 어느새 톡톡 떨어지고 씨방이 굵어지는데, 짧으나마 꽃빛이 환하게 고우니 발걸음을 붙잡는다.


  꽃이 피어 꽃내음으로 부르고, 열매가 맺어 열매알로 부른다. 빨간 열매가 모두 떨어지면? 그때부터는 푸른 잎이 한결 짙게 팔랑이며 여름을 지나고 가을을 맞이한다.


  나무는 꽃이 필 적에 꽃나무이고, 열매가 맺을 적에 열매나무이다. 꽃과 열매가 모두 지고 잎이 푸르면 잎나무라 할 만할까.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는 어떤 나무라고 하면 좋을까. 아이들과 함께 앵두꽃 냄새를 실컷 들이켠다.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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